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22:26:54

김대익

김대익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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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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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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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d1c24> 1982~1983 1984 1985 1986 1987
권두조 김성관
김용희
유두열 정학수
1988 <rowcolor=#ed1c24> 1989~1991 1992 1993~1994 1995
김용철 ?? 한영준
조성옥 한영준
<rowcolor=#000> 1996 1997 1998 1999 2000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박정태
마해영
2001 2002 <rowcolor=#fff> 2003 2004 2005
조경환 강상수 박현승 김대익 염종석
<rowcolor=#fff> 2006 2007 2008 2009~2010 2011
손인호 손민한 정수근 조성환 조성환 홍성흔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사율 조성환 박준서 최준석 강민호
2017~2018
<rowcolor=#fff> 2019 2020 2021~2022 2023
이대호 손아섭 민병헌 민병헌 전준우 안치홍
<rowcolor=#fff> 2024
전준우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번
조성옥
(1985~1995)
김대익
(1996~1997)
우드
(200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전준호
(1991~1996)
김대익
(1998~2004.7.12.)
김승관
(2004.7.13.~200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
김승관
(1996~2004.7.12.)
김대익
(2004.7.13.~2004)
박석민
(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이정호
(2002~2004)
김대익
(2005)
김덕윤
(2006~2006.7.1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1번
김덕윤
(2005)
김대익
(2006~2007)
김진웅
(2008~2010)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94번}}}
심규범
(2014)
김대익
(2015~2017)
박지호
(2018)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3번}}}
장종훈
(2015~2017)
김대익
(2018)
김태룡
(2019)
}}} ||
파일:김대익 코치.jpg
김대익
金大益 | Kim Dae-Ik
출생 1973년 6월 3일 ([age(1973-06-03)]세)
부산직할시 진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진초 - 부산동성중 - 부산고 - 경성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6년 2차 3라운드 (전체 24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6~2004)
삼성 라이온즈 (2004~2007)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2군 작전코치 (2015)[1]
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코치 (2015)[2]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6)[3]
롯데 자이언츠 1군 외야수비코치 (2016)[4]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5]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6]
롯데 자이언츠 1군 외야수비코치 (2017)[7]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타격코치 (2018)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9~2020)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대행 (2020)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1~2022)
홍익대학교 야구부 코치 (2023~)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지도자 경력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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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홍익대학교 야구부 코치.

2. 선수 경력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412000039591.jpg
(출처 : 포토로)

부산고, 경성대를 졸업하고 1996년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알고 보면 그도 황금의 92학번 중 하나. 신인 시즌 제한된 출전 기회 속에서도 .283의 타율과 13도루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7년 롯데는 당시 실업팀 현대 피닉스 소속이었던 문동환의 계약을 해지하고 롯데로 입단시키기 위한 댓가로 리드오프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로 5억에 현금 트레이드하게 되는데, 롯데가 기꺼이 전준호를 포기한 배경은 바로 김대익이 전준호의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8]

실제로 전준호가 현대로 떠난 뒤 첫 시즌인 1997년에는 롯데의 1번 타자로 자리잡아 .272의 타율과 42도루를 기록하며 전준호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받았다. 커리어하이 시즌인 1998년에는 .292의 타율과 136안타, 27도루를 기록하며 리드오프로서 만개하나 싶었지만, 이듬해인 1999년 롯데가 시즌 내내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질주하며 공포의 타선을 뽐냈음에도 김대익 혼자만 .242의 타율로 부진하며 기세가 꺾였다. 이후로도 2001년까지 2할 중후반대 타율과 세 자릿 수 안타, 두 자릿 수 도루를 꾸준히 기록해주면서 그냥저냥 준수한 외야수로 뛰긴 했지만 한 번도 3할 타율은 못 기록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롯데가 한창 비밀번호를 찍던 2003년에는 .198의 타율로 팀 성적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2004년에는 주장을 역임했으나 시즌 도중이던 7월 12일 롯데 주장 자리의 저주 때문에[9][10] 박석진[11] 함께 김승관, 노장진과 맞트레이드되어 정든 롯데를 떠나고 삼성으로 이적한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613202735674.jpg
(출처 : 포토로)
이전과 다르게 많이 후덕해진 삼적화? 삼성 라이온즈 현역 시절. 표정과 얼굴보고 삼성의 개그맨으로 떠올랐다면 그건 기분 탓이다.[12]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뒤 2004년 후반기 내내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2위 수성에 보탬이 됐고, 이후에도 주전은 아니지만 대타 등으로 1군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췄다.

2005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2:1로 뒤지고 있을 때 큼지막한 뜬금포를 날려 김경문의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이후 김재걸의 적시 2루타와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김종훈의 끝내기 안타로 3:2로 승리. 그리고 팀이 두산 베어스를 스윕, 우승하면서 자신은 콩라인 탈출.[13]

2005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2년간 총 3억 2000만원에 재계약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엔트리에 들면서 말년에 삼성에서 2년 연속 우승반지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후 2년간 더 뛰다가, 200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위의 롯데 시절 사진과 삼성 시절 사진을 비교해 보면 과거에는 안경을 착용했다가 벗은 걸 알 수 있는데, 롯데 말기 시절 라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수술 후 야간에 빛이 번져보이는 후유증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다고. 어찌보면 이후 타격에서의 하락세가 라식 후유증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3. 은퇴 이후

2011년에는 부산에서 사회인 야구로 활동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부산 사회인 리그 중 "한마음 리그" 모 팀에서 활동 중인 것이 포착되었다.

참고로 "한마음 리그"는 부산 경남중학교를 홈으로 한 3부급 리그여서 선수출신[14]은 뛸 수 없는 리그이나 40세 이상은 선수출신으로 보지 않는 룰 덕[15]에 활동하는 듯했다. 여러 선수들의 특성상 복수 리그를 중복으로 뛸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김해시 장유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방송에 많이 나왔던 주인 집이라 카더라

2013년 6월 26일 롯데 자이언츠 구단이 주선한 '응답하라 1999' 이벤트에 참여했고, 1999년 당시 유니폼을 입고 오랜만에 사직구장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4. 지도자 경력

2014년 12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의 2군 주루코치로 영입되면서 약 10년만에 친정팀 롯데로 돌아왔다. 사실상 CCTV 사찰 사건 때문에 여러 내홍을 겪은 상황에서 팀에 오려는 코치가 워낙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라는 평이 많았다.

그러다가 2015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1군 1루코치인 안상준과 교체되어 1군으로 올라갔다.

최근 모습을 보면 선수 시절에 비해 체구가 비대해져서 언뜻 보면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16] 선수 시절에는 이런 기사도 나왔는데.. 김대익, 수영장서 아줌마들에 인기 한몸

8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손아섭의 유격수쪽 깊은 땅볼에 아웃 판정이 내려졌는데, 이게 사실은 세이프라 합의판정은 왜 안 했냐고 팬들에게 까였다. 팬들이 그냥 봐도 합의판정을 할 만했고, 덕아웃에서 이우민이 합의판정을 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음에도 신청하지 않아 더더욱 까였다.

이종운 감독이 경질되고 조원우 감독 체제로 출범한 2016년에는 2군 수비코치로 내려갔다가, 6월 15일부로 1군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017년에는 1군 타격 보조코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시즌 초에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가 3군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단독으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타격성적이 갈수록 저조해지자, 17시즌 후반기에 김승관에게 타격코치 자리를 넘기고 다시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지금 타자들 상태를 보면 그냥 상동에 박아버리는 게 나을 듯 한데 조원우의 넘치는 학연사랑 때문에[17] 안내려가는 롯데의 새로운 철밥통으로 등극이 머지않은 듯하다.

2018년에는 잔류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사실 자영업 사장님 하던 양반이자 얼마 전까지 사회인 야구에서 활약하던 사람이 코치 연수도 안 거치고 뜬금없이 프로 팀 코치로 복귀를 한다는 것은 웃음거리다. 팬들이 이 사람도 얼른 나가서 고기나 구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모토니시 코치 돌려놔라 롯데야

결국 2018년 시즌 종료 후 조원우 감독이 경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익 또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모교인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로 부임했다.

2020년 8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부터 감독대행으로서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를 이끌게 되었다. 그러나 2020년 9월 14일에 박계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에 취임한 것으로 보아, 사임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를 역임했다.

2022년을 끝으로 부경고를 떠나 2023년부터 홍익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임중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롯데 84 237 .283 67 15 2 6 28 39 13 19 .439 .331
1997 122 356 .272 97 22 3 6 35 47 42 13 .402 .346
1998 124 466 .292 136 29 7
(3위)
5 40 79 27
(5위)
52 .416 .363
1999 131 415 .246 102 22 3 9 49 75 16 45 .378 .318
2000 133 464 .278 129 27 4
(5위)
6 47 72 12 55 .392 .352
2001 130 404 .285 115 24 2 5 33 55 9 34 .391 .337
2002 91 303 .264 80 12 0 3 21 36 6 23 .333 .315
2003 48 106 .198 21 4 0 0 6 9 0 12 .236 .27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삼성 / 롯데 93 210 .290 61 10 2 2 25 32 5 17 .386 .339
2005 삼성 61 86 .314 27 4 0 1 19 14 0 12 .395 .394
2006 107 239 .243 58 6 1 2 23 18 1 21 .301 .300
2007 69 86 .198 17 2 0 0 6 5 0 13 .221 .203
KBO 통산
(12시즌)
1193 3372 .270 910 177 24 45 332 481 102 345 .377 .335

6. 관련 문서


[1] ~7월 16일 [2] 7월 17일~ [3] ~6월 14일 [4] 6월 15일~ [5] ~5월 15일 [6] 5월 16일~7월 31일 [7] 8월 1일~ [8] 전준호를 트레이드 시키지 않았다면, 롯데 역사는 달라질수 있었다...는 야만없. [9] 2000년부터 롯데의 주장을 맡아 왔던 마해영, 조경환, 손인호는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었고 염종석, 손민한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고 정수근사고치고... [10] 그 와중에 김대익과 조경환은 모두 주장을 맡고 있던 시즌 중에 트레이드되었다. [11] 사실 원래 삼성 선수였다. 김종훈, 박동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것. [12] 개그기질은 그 뒤로 박석민에게 이어졌다. [13] 1999년 롯데 시절과 2004년 삼성 시절에 준우승만 했다. [14] 고등학교 선수 출신 이상 [15] 만 40세 이상은 선수출신으로 분류하지 않는 룰은 사실이긴 하나 김대익은 당시 30대로 리그마다 룰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3부는 선수출신 1명 출전, 투구 금지라서 야수로만 출전한 듯하다. [16] 운동 선수들은 은퇴 후 식사량은 똑같은데 운동량은 줄어서 살이 많이 찐다. [17] 김대익은 조 감독의 부산고 2년 후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