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6:36:20

공필성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31528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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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N팀)
'''27 이호준 [[틀:NC 다이노스 감독|
]] · 69 김종호 · 75 진종길 · 76 전민수
· 78 최건용 · 79 조영훈 · 80 지석훈 · 86 김종민
· 90 손정욱 · 99 이용훈 · # 서재응'''
2군(C팀)
0 공필성 · 71 손용석 · 72 전상렬 · 83 윤병호
· 92 윤수강 · 98 김수경 · # 박용근
잔류군(D팀)
74 전형도 · 81 김건태 · 85 권정웅 · # 최정민
코칭스태프 |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 입대 선수 등록 선수 육성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공필성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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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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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형운 (1) (2)
(14명)
김석일
김성호
김종근
김호근
박영태
박정후
배경환
양상문 (1)
우경하
유두열
장상철 (1)
최동원
한문연
(12명)
김민호
김재열
김진근
김한조
배종문
안창완
윤학길 (1)
이문한
이석규
정인교
조성옥
조용철
(8명)
박동수
박희찬
양상문
이동완
이재성
이충우
장상철 (1)
한영준
(8명)
강수경 (1)
김성현
박동희
오명록
윤학길
이창원
임경택
최계영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김용권
김종석
정국헌
구명근
김형섭
이승훈
김청수
서호진
김선일
김도형
공필성
박정태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강성우 김경환 강상수 문동환 차명주
(고졸)
손균환
이재섭
이정훈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손민한
(고졸)
신명철
이승훈
정인석
임경완
(고졸)
김정열
김진수
이승학 (1)
정원욱
(고졸)
송승준
강민영 추신수 (1)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이정민 박정준 장원준 이왕기 손용석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이상화
이재곤
장성우 오병일 홍재영 (2) 김명성 (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김원중 (2) 송주은 (2) 김유영 강동관 박종무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윤성빈 한동희 서준원 최준용 손성빈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이민석 김민석 (2) 전미르 (2) 김태현 (2)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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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필성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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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우승엠블럼V2.jp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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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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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ed1c24> 1982~1983 1984 1985 1986 1987
권두조 김성관
김용희
유두열 정학수
1988 <rowcolor=#ed1c24> 1989~1991 1992 1993~1994 1995
김용철 ?? 한영준
조성옥 한영준
<rowcolor=#000> 1996 1997 1998 1999 2000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박정태
강성우
2001 2002 <rowcolor=#fff> 2003 2004 2005
강상수 조경환 박현승 김대익 염종석
<rowcolor=#fff> 2006 2007 2008 2009~2010 2011
손인호 손민한 정수근 조성환 조성환 홍성흔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사율 조성환 박준서 최준석 강민호
2017~2018
<rowcolor=#fff> 2019 2020 2021~2022 2023
이대호 손아섭 민병헌 민병헌 전준우 안치홍
<rowcolor=#fff> 2024
전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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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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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d3dade
초대 2대 3대 4대
강대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4)
배수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
이충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감독 대행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5대 6대 7대 8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윤동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1991)
정연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4)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1996)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김윤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3)
송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6)
14대 15대 16대 17대
박종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김광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
박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송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감독 대행
김우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18대 19대 20대 21대 22대
송일수 파일:일본 국기.svg
(2013)
황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
송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2017)
이강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
23대 24대 25대 26대
강석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19)
박철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2021)
이복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이정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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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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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d1c24> 초대 2대 3대 4대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감독 대행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6)
성기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어우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1989)
<rowcolor=#ed1c24> 5대
6대
7대
김진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
감독 대행
도위창 파일:일본 국기.svg
(1990)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3)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1998)
감독 대행
김명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rowcolor=#000> 8대 9대
10대
김명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1)
감독 대행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감독 대행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2003)
<rowcolor=#fff>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감독 대행
김용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5)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2007)
로이스터 파일:미국 국기.svg
(2008~2010)
양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2)
<rowcolor=#fff> 15대 16대
17대
18대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4)
이종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
조원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2018)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감독 대행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rowcolor=#fff> 19대
20대
21대 파일:롯데 자이언츠 워드마크.svg
허문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2021)
서튼 파일:미국 국기.svg
(2021~2023)
감독 대행
이종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김태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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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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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px -10px"
{{{#00275a,#a4cb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한문연
(2013~2018)
유영준
(2019~2021)
공필성
(2022~ )
감독대행
조영훈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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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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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2대 3대
김경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8)
감독 대행
유영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
이동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2022)
감독 대행
강인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강인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2024)
<rowcolor=#fff> 3대 4대 파일:NC 다이노스 홈 워드마크.svg
감독 대행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이호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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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필성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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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3번
김응국
(1988~1989)
공필성
(1990~1991)
조성환
(199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0번
김성철
(1991)
<colbgcolor=#000000><colcolor=#fff> 공필성
(1992~2000)
이승화
(2001~200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차명주
(1996~1997)
공필성
(2002~2004)
이종우
(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조성옥
(1996~1997)
공필성
(2005)
양용모
(2008~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이종우
(2005)
공필성
(2006~2014)
구승민
(2015)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가득염
(2013~2015)
공필성
(2016~2018)
김원형
(2019~202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박주언
(2018)
공필성
(2019)
서튼
(2020~2023)
두산 베어스 등번호 89번
정경배
(2019)
공필성
(2020~2021)
고토
(2023~)
NC 다이노스 등번호 90번
이종준
(2021)
공필성
(2022~2023)
손정욱
(2024~)
NC 다이노스 등번호 0번
이인혁
(2022~2023)
공필성
(2024~)
현역
}}} ||
}}} ||
파일:공필성2024프로필.jpg
<colbgcolor=#315288><colcolor=#fff> NC 다이노스 No.0
공필성
孔弼聖 | Kong PillSung
출생 1967년 11월 11일[1] ([age(1967-11-11)]세)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77kg[3], B형[4]
학력 제황초 - 진해남중 - 마산상고 - 경성대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0년 1차 지명 (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0~2000)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02)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주루코치 (2003)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04~2011)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3~2014)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5)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6~2017)[5]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7)[6]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18)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19)[7]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 (2019)[8]
두산 베어스 2군 야수총괄코치 (2020)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21)
NC 다이노스 2군 감독 (2022~2024)[9]
NC 다이노스 감독대행 (2024)[10]
NC 다이노스 2군 감독 (2025~)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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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본관 곡부 공씨
}}}}}}}}} ||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
5.1. 선수 시절5.2. 감독 시절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NC 다이노스 2군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3루수.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04.jpg 파일:external/dimg.donga.com/43347692.7.jpg
진해남중학교, 마산상고 경성대를 졸업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조만간 롯데의 확고부동한 주전 유격수감이라는 큰 기대를 받으며 입단했지만 타격도 최악, 수비도 최악.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대형 실책을 저질러 "움직이는 화약고"라는 별명도 붙었다. 과거 파울볼을 잡다가 앞구르기를 두 번이나 하면서 공을 놓쳐버린 일화도 있다. 3루수로 전업한 이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아무래도 수비부담+조급함이 있었던 모양.

결국 3년차부터 주전 유격수는 신인 박계원에게 넘겨주게 되고 3루수로 전업하게 된다. 다행히 3루수로 전업하고부터는 특유의 근성 넘치는 플레이가 보통 '핫코너'로 불릴 만큼 강한 타구를 많이 상대해야 하는 3루 수비의 특성과 잘 맞았고, 그때부터 움직이는 화약고 이미지는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덕분에 그동안 롯데 3루를 지켜온 선배 한영준의 후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1992년부터 3루수로 전업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롯데는 주전타선 9명중 5명이 3할타율을 기록하는 공포의 소총부대였는데, 주로 하위타순에 기용되었던 공필성이 .286, 포수 강성우는 무려 .303의 타율[11]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쉬어갈 수가 없는 타선을 자랑했다. 수비에서도 수비부담이 줄어든 3루수를 맡으면서 번뜩이는 플레이를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위기 순간에 기록한 동물적인 다이빙 캐치 (20분 5초)는 그야말로 백미.

1994년부터 1995년까지가 그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이들 두 시즌을 연속으로 전 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1994년은 시즌 초부터 맹타를 휘두르고 홈런을 작렬했는데,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전반기를 마감할 때까지 .308의 타율로 당당한 3할 타자였고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데뷔 후 첫 3할 타율을 달성하나 싶었지만 당시 주전 선수들의 대거 방위복무로 인해 내야진이 크게 얕아져 3루수 외에 유격수까지 병행해서 출전한 탓에 후반기에는 체력이 저하된 탓인지 타율도 많이 떨어졌다. 1994년 시즌 최종 성적은 .271의 타율에 12홈런 57타점.

이듬해인 1995년에도 맹활약하였다. 개인 성적은 .264의 타율과 4홈런 50타점으로 전년도에 비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2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롯데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역대 최고급의 3루수 수비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해당 시즌에는 22개의 사구를 맞아 당시 한 시즌 최다 사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맞아서라도 출루하려 했고 그 근성이야말로 롯데 팬들에게 있어서 아직도 공필성의 선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 첫 타석에서까지 몸쪽 커브를 일부러 사구로 맞고 출루하자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KBS의 정도영 아나운서가 감탄사처럼 내뱉었던 '맞기 전문 공필성~!' 은 지금 시대였다면 가히 플짤감이었다.

타율만 보면 전성기라도 별거 없네하고 저평가하게 되는데 이 2년간 wRC+가 128.0, 119.5. sWAR*이 4.55, 4.13으로 전성기 2년 만큼은 한대화 다음가는 리그 No.2 3루수였다.

1996년부터 김용희 감독이 박현승을 주전 3루수로 전업시켜 기용하면서 바로 전 해에 전 경기를 출전했던 주전에서 한순간에 백업으로 강등되었다.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지만 묵묵히 백업의 역할을 수행하며 눈에 띄진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수준의 활약을 해 줬다. 박현승이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다시 주전을 맡았으며, 특히 1999년은 백업임에도 무려 124경기를 뛰며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1999년 한국시리즈 당시 부상으로 결장한 박현승을 대신하여 출장했던 3, 4, 5차전에서 모두 멀티히트를 기록할 정도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8회말 3루타를 치고 나가 추가 득점 찬스를 만들었지만, 뒤이은 희생플라이에서 주루사를 범해 롯데 팬들을 좌절시켰고,[12] 끝내 롯데는 한화에게 9회 역전을 허용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백업으로 112경기를 소화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총평을 하자면 1995년 22개의 사구를 기록한 것[13] 정도가 특기할만한 기록이었고, 그 외의 선수시절 성적은 평범했다. 그럼에도 그가 선수생활을 10년 정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리몸과는 거리가 멀었고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는 투지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살이 지난 선수 생활 후반기에도 백업으로서 다른 선수들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마지막 해가 된 2000년까지 열 한 번의 시즌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3할을 넘어서지 못했다. 1994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지도 못했고, 반대로 다섯 시즌을 두 자리 수의 실책을 기록했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 1992년이나, 1994-1995 시즌엔 공격 면에서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그 외엔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상술했던 대로 전성기 2년간은 세이버로 보면 리그 2위의 3루수라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의 선수시절인 1990년대에는 그런 질적 분석지표가 없어서 무의미했다.

3. 지도자 경력

파일:공필성퓨처스올스타전220715.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공필성/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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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여담

  • 공필성을 상징하는 등번호는 0번. 선수단 숫자가 크게 늘어나서 0번이나 3자릿수 등번호도 볼 수 있게 된 2010년대 프로야구에서는 가끔씩 보이는 번호이지만 90년대 당시엔 드문 등번호였다. 은퇴 이후 일구회 자선시합에도 이 0번을 달고 나오는 등 0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수 중 하나. 마침 성이 '공' 씨였기에 그런 점도 있다. 그래서 이름풀이가 "공(0)을 달면 필히 성공할 것" 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0번을 달게 된 동기는 원래 등번호였던 43번을 뺏기고 나서 달 번호가 없어서. 이유야 어찌 되었건 공필성에게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등번호였다.
  • 나름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유명한 1999 시즌 플레이오프 7차전의 기적도 공필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9회 공필성이 안타로 출루했고, 이후 임수혁이 동점 홈런을 때렸다.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3_90091_1360015206834751.jpg [14] 파일:external/db.kookje.co.kr/L20141103.22021201919i1.jpg 파일:external/ph.spotvnews.co.kr/39765_57295_2658.jpg
* 미소년 미청년 미중년 미노년 단계를 착실하게 밟아가는 KBO 대표 미남이다. # 이대형 심수창 이정후 등 KBO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미남 선수들도 공필성에게는 비비지 못 할 정도. 178cm 74kg의 피지컬도 좋아 야구계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연예계에 투신했다면 일세를 풍미했을 거라는 평가도 왕왕 있다.
  • 롯데 코치 시절인 2006년 8월 5일 SK와의 경기에서 SK 투수 신승현 펠릭스 호세를 맞춰 양 팀 사이에 벌어진 벤치클리어링 도중 호세를 말리기 위해 나서다가 그만 호세가 휘두른 주먹에 대신 맞고 떨어져나가 그의 살신성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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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5월 19일, 롯데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15주년을 기념해 올드 유니폼을 입고 당시 윤형배 2군 투수코치와 시구-시타로 나섰는데, 현역 시절 근성의 사나이라는 별명답게 여기서도 데드볼을 맞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했다. 영상(제일 첫 부분) 당시 기사 여담으로 당시 공필성이 맞은 데드볼이 두 코치 간 서로 사전모의한 게 아니라 우연의 결과라고 한다. 공필성은 이 사구에 대해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난 현역 시절에도 그러지 않았다" 라고 답했다.
  • 1992년, 1995년, 1999년 총 3번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총 두 개의 홈런을 때렸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통산 홈런 1위 기록이다. 여담으로 두 개 친 선수가 공필성 한 명뿐이라 한 개만 친 이종운도 2위다. 또한 한국시리즈를 세 번이나 나가서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 통산 한국시리즈 경기, 안타, 3루타, 홈런, 타점, 3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중 타율[16] 1위다. 이 기록들이 갱신되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롯데가 2000년부터 한국시리즈를 못 가고 있기 때문이다.
  • JTBC 최강야구가 2022 시즌 당시 사상 첫 프로팀과의 경기로 NC 다이노스 2군과 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2군 감독으로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경기 전 2군 경기에 1군선수를 3명[17]이나 왜 데리고 왔냐는 김선우의 질문에 쩔쩔매며 횡설수설하다못해 말리는 모습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였다. #
  • 야구게임인 마구마구에도 그의 성적을 참고한 선수카드들이 등록되어 있다. 그동안 레어카드 하나 없이 스페셜카드만 있다가 재평가로 1994년 공필성 선수카드가 레어로 승급되었다.[18]
  • KBO 최초로 2개 팀에서 감독대행을 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2번 다 정식 감독 승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 2군 감독으로써의 평가는 선수들을 잘 다독여주고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주는 등 다정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육성과 성적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는 편이라 롯데와 NC 2팀에서 1군 감독 대행직을 수행했지만 정식 감독 승격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보다는 멘탈 코치나 수석코치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의견도 많은 편.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선수 시절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롯데 78 177 .232 41 8 1 1 15 20 6 22 .305 .315
1991 81 158 .215 34 6 1 3 16 20 3 15 .323 .280
1992 100 280 .286 80 17 3 6 40 30 2 28 .432 .347
1993 124 379 .240 91 23
(5위)
3 1 38 36 6 33 .325 .299
1994 126 420 .271 114 23
(8위)
5
(3위)
12 57 55 25
(6위)
58
(7위)
.436 .355
1995 126 390 .264 103 14 6
(3위)
4 50 60 22 74
(3위)
.362 .378
(8위)
1996 114 299 .251 75 18 1 4 34 37 8 31 .358 .315
1997 79 207 .246 51 13 1 1 20 19 9 19 .333 .307
1998 120 364 .245 89 12 2 6 42 42 12 47 .338 .327
1999 124 238 .214 51 13 2 2 21 28 9 27 .311 .292
2000 112 149 .208 31 4 1 1 13 16 4 17 .268 .287
KBO 통산
(11시즌)
1184 3061 .248 760 151 26 41 346 363 106 371 .355 .326

5.2. 감독 시절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9 롯데 자이언츠 50 14 35 1 10위[#] 탈락
2024 NC 다이노스 8 1 7 0 9위[#] 탈락
통산 58 15 42 1

6. 관련 문서


[1] 음력 10월 10일 [2] 당시에는 경상남도 진해시. [3] 네이버 프로필 기준 [4] 구단 홈페이지 기준 [5] ~4월 17일 [6] 4월 18일~ [7] ~7월 18일 [8] 7월 19일~ [9] ~9월 19일 [10] 9월 20일~ 10월 22일 [11] 규정타석에는 미달이었다. 이 해의 강성우는 사실상 김선일의 백업이었다. [12] 희생플라이를 틈타 홈으로 들어오려다가 한화 우익수 송지만의 홈송구에 놀라 도로 3루로 돌아가던 중, 오히러 3루에서 아웃당하고 말았다. [13]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을 하는 자세, 치지 못한다면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라는 본인의 성격으로 인해 당시 사구를 가장 많이 맞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이 기록은 당시 1982년 김인식이 기록했던 18개의 기록을 갱신하였으며 1999년 31개의 사구를 기록한 박종호에 의해 깨졌다. [14] 이 사진은 1994년 8월 20일 삼성과 롯데의 경기가 벌어진 대구구장 사진기자실에서 훈련을 마친 후 사진기자실 계단에 걸터앉아 햄버거와 콜라로 저녁식사를 때우는 것을 찍은 것이다. 참고로 이 사진에 대해서는 90년대 프로야구의 그늘이 드러나 있는데, 당시 선수들은 아무래도 경기 전이다 보니 위에 부담이 덜 되는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좋았지만 그때는 원정팀에 대한 배려가 깊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끼니를 때워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팀의 코칭스탭들이나 몇몇 고참급 선수들은 아예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반대로 홈팀 선수들은 번듯한 샤워실에서 훈련으로 찌든 땀을 깨끗이 씻어낸 후 맛난 호텔식 뷔페로 식사를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다행히 지금은 야구단 환경이 많이 좋아져 제대로 된 식사에 과일과 건강음료까지 챙겨 먹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원정팀에 대한 시설보완에 대해선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 많은 현실이다. [15] 당시 호세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넘어지면서 호세에게 깔린 채로 엉덩방아를 찧은 SK의 최태원 코치도 같이 화제가 되었다. [16] 0.308 [17] 오영수, 서호철, 박대온. 이 중 박대온은 이듬해 SSG 랜더스로 이적했다. [18] 클래식 스탯으로는 3할에 미치지 못하지만(0.271), 당 시즌 올스타전 출전 및 전 경기 출장(126경기)에 커리어 유일 두 자릿수 홈런(12홈런)을 기록한 것과 도루, 사사구, 2루타, 3루타 부문에서 10위권 안에 진입하였으며, 롯데의 3루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전반기에는 타율이 3할을 기록한 행적을 뒤늦게나마 반영한 모양이다. [#] 감독 대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