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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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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N팀) | ||
'''27
이호준 [[틀:NC 다이노스 감독| ★ ]] · 69
김종호 · 75
진종길 · 76
전민수· 78 최건용 · 79 조영훈 · 80 지석훈 · 86 김종민 · 90 손정욱 · 99 이용훈 · # 서재응''' |
|||
2군(C팀) | |||
0
공필성 · 71
손용석 · 72
전상렬 · 83
윤병호 · 92 윤수강 · 98 김수경 · # 박용근 |
|||
잔류군(D팀) | |||
74 전형도 · 81 김건태 · 85 권정웅 · # 최정민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
공필성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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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필성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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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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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c2340> |
롯데 자이언츠 역대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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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d1c24> 1982~1983 | 1984 | 1985 | 1986 | 1987 |
권두조 |
김성관 ★ |
김용희 ☆ |
유두열 | 정학수 | |
1988 | <rowcolor=#ed1c24> 1989~1991 | 1992 | 1993~1994 | 1995 | |
김용철 | ?? |
한영준 ★ |
조성옥 |
한영준 ☆ |
|
<rowcolor=#000>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
김응국 | 이종운 | 공필성 |
박정태 ☆ |
강성우 | |
2001 | 2002 | <rowcolor=#fff> 2003 | 2004 | 2005 | |
강상수 | 조경환 | 박현승 | 김대익 | 염종석 | |
<rowcolor=#fff> 2006 | 2007 | 2008 | 2009~2010 | 2011 | |
손인호 | 손민한 | 정수근 → 조성환 | 조성환 | 홍성흔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김사율 | 조성환 | 박준서 | 최준석 | 강민호 | |
2017~2018
|
<rowcolor=#fff> 2019 | 2020 | 2021~2022 | 2023 | |
이대호 | 손아섭 → 민병헌 | 민병헌 | 전준우 | 안치홍 | |
<rowcolor=#fff> 2024 | |||||
전준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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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2군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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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2대 | 3대 | 4대 | ||
강대중
(1983~1984) |
배수찬
(1985) |
이충순
(1986) |
이선덕
(1987) |
감독 대행 이광환 (1987) |
|
5대 | 6대 | 7대 | 8대 | ||
이광환
(1988) |
감독 대행 이선덕 (1989~1990) |
윤동균
(1990~1991) |
정연회
(1991~1994) |
손상대
(1995~1996) |
|
9대 | 10대 | 11대 | 12대 | 13대 | |
김윤겸
(1997) |
손상대
(1998) |
강태정
(1998) |
손상대
(1999~2003) |
송재박
(2004~2006) |
|
14대 | 15대 | 16대 | 17대 | ||
박종훈
(2007~2009) |
김광림
(2010) |
박승호
(2011) |
송재박
(2012) |
감독 대행 김우열 (2012) |
|
18대 | 19대 | 20대 | 21대 | 22대 | |
송일수
(2013) |
황병일
(2014) |
송재박
(2015) |
공필성
(2016~2017) |
이강철
(2017) |
|
23대 | 24대 | 25대 | 26대 | ||
강석천
(2018~2019) |
박철우
(2019~2021) |
이복근
(2022) |
이정훈
(2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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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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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d1c24> 초대 | 2대 | 3대 | 4대 | |
박영길
(1982~1983) |
감독 대행 강병철 (1983) |
강병철
(1984~1986) ★ ☆ |
성기영
(1987) |
어우홍
(1988~1989) |
|
<rowcolor=#ed1c24> 5대 |
6대
|
7대
|
|||
김진영
(1990) |
감독 대행 도위창 (1990) |
강병철
(1991~1993) ★ |
김용희
(1994~1998) ☆ |
감독 대행 김명성 (1998) |
|
<rowcolor=#000> 8대 | 9대 |
10대
|
|||
김명성
(1999~2001) ☆ |
감독 대행 우용득 (2001) |
우용득
(2002) |
감독 대행 김용희 (2002) |
백인천
(2002~2003) |
|
<rowcolor=#fff> 10대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
감독 대행 김용철 (2003) |
양상문
(2004~2005) |
강병철
(2006~2007) |
로이스터
(2008~2010) |
양승호
(2011~2012) |
|
<rowcolor=#fff> 15대 | 16대 |
17대
|
18대 | ||
김시진
(2013~2014) |
이종운
(2015) |
조원우
(2016~2018) |
양상문
(2019) |
감독 대행 공필성 (2019) |
|
<rowcolor=#fff> 19대 |
20대
|
21대 | |||
허문회
(2020~2021) |
서튼
(2021~2023) |
감독 대행 이종운 (2023) |
김태형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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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2군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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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
한문연 (2013~2018) |
유영준 (2019~2021) |
공필성 (2022~ ) |
감독대행 조영훈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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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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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
김경문
(2011~2018) ☆ |
감독 대행 유영준 (2018) |
이동욱
(2019~2022) ★ |
감독 대행 강인권 (2022) |
강인권
(2023~2024) |
|
<rowcolor=#fff> 3대 | 4대 | ||||
감독 대행 공필성 (2024) |
이호준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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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필성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3번 | ||||
김응국 (1988~1989) |
→ |
공필성 (1990~1991) |
→ |
조성환 (1999)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0번 | |||||
김성철 (1991)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 공필성 (1992~2000) |
→ |
이승화 (2001~2003)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 |||||
차명주 (1996~1997) |
→ |
공필성 (2002~2004) |
→ |
이종우 (2005)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 |||||
조성옥 (1996~1997) |
→ |
공필성 (2005) |
→ |
양용모 (2008~2011)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 |||||
이종우 (2005) |
→ |
공필성 (2006~2014) |
→ |
구승민 (2015)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 |||||
가득염 (2013~2015) |
→ |
공필성 (2016~2018) |
→ |
김원형 (2019~2020)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 |||||
박주언 (2018) |
→ |
공필성 (2019) |
→ |
서튼 (2020~2023)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89번 | |||||
정경배 (2019) |
→ |
공필성 (2020~2021) |
→ |
고토 (2023~) |
|
NC 다이노스 등번호 90번 | |||||
이종준 (2021) |
→ |
공필성 (2022~2023) |
→ |
손정욱 (2024~) |
|
NC 다이노스 등번호 0번 | |||||
이인혁 (2022~2023) |
→ |
공필성 (2024~) |
→ | 현역 |
}}} ||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NC 다이노스 No.0 | |||
공필성 孔弼聖 | Kong PillSung |
|||
출생 | 1967년 11월 11일[1] ([age(1967-11-11)]세) |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7cm, 77kg[3], B형[4] | ||
학력 | 제황초 - 진해남중 - 마산상고 - 경성대 | ||
포지션 | 3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90년 1차 지명 ( 롯데)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 (1990~2000) | ||
지도자 |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02)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주루코치 (2003)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04~2011)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3~2014)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5)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6~2017)[5]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7)[6]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18)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19)[7]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 (2019)[8] 두산 베어스 2군 야수총괄코치 (2020)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21) NC 다이노스 2군 감독 (2022~2024)[9] NC 다이노스 감독대행 (2024)[10] NC 다이노스 2군 감독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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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본관 | 곡부 공씨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NC 다이노스 2군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3루수.2. 선수 경력
결국 3년차부터 주전 유격수는 신인 박계원에게 넘겨주게 되고 3루수로 전업하게 된다. 다행히 3루수로 전업하고부터는 특유의 근성 넘치는 플레이가 보통 '핫코너'로 불릴 만큼 강한 타구를 많이 상대해야 하는 3루 수비의 특성과 잘 맞았고, 그때부터 움직이는 화약고 이미지는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덕분에 그동안 롯데 3루를 지켜온 선배 한영준의 후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1992년부터 3루수로 전업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롯데는 주전타선 9명중 5명이 3할타율을 기록하는 공포의 소총부대였는데, 주로 하위타순에 기용되었던 공필성이 .286, 포수 강성우는 무려 .303의 타율[11]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쉬어갈 수가 없는 타선을 자랑했다. 수비에서도 수비부담이 줄어든 3루수를 맡으면서 번뜩이는 플레이를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위기 순간에 기록한 동물적인 다이빙 캐치 (20분 5초)는 그야말로 백미.
1994년부터 1995년까지가 그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이들 두 시즌을 연속으로 전 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1994년은 시즌 초부터 맹타를 휘두르고 홈런을 작렬했는데,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전반기를 마감할 때까지 .308의 타율로 당당한 3할 타자였고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데뷔 후 첫 3할 타율을 달성하나 싶었지만 당시 주전 선수들의 대거 방위복무로 인해 내야진이 크게 얕아져 3루수 외에 유격수까지 병행해서 출전한 탓에 후반기에는 체력이 저하된 탓인지 타율도 많이 떨어졌다. 1994년 시즌 최종 성적은 .271의 타율에 12홈런 57타점.
이듬해인 1995년에도 맹활약하였다. 개인 성적은 .264의 타율과 4홈런 50타점으로 전년도에 비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2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롯데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역대 최고급의 3루수 수비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해당 시즌에는 22개의 사구를 맞아 당시 한 시즌 최다 사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맞아서라도 출루하려 했고 그 근성이야말로 롯데 팬들에게 있어서 아직도 공필성의 선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 첫 타석에서까지 몸쪽 커브를 일부러 사구로 맞고 출루하자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KBS의 정도영 아나운서가 감탄사처럼 내뱉었던 '맞기 전문 공필성~!' 은 지금 시대였다면 가히 플짤감이었다.
타율만 보면 전성기라도 별거 없네하고 저평가하게 되는데 이 2년간 wRC+가 128.0, 119.5. sWAR*이 4.55, 4.13으로 전성기 2년 만큼은 한대화 다음가는 리그 No.2 3루수였다.
1996년부터 김용희 감독이 박현승을 주전 3루수로 전업시켜 기용하면서 바로 전 해에 전 경기를 출전했던 주전에서 한순간에 백업으로 강등되었다.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지만 묵묵히 백업의 역할을 수행하며 눈에 띄진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수준의 활약을 해 줬다. 박현승이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다시 주전을 맡았으며, 특히 1999년은 백업임에도 무려 124경기를 뛰며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1999년 한국시리즈 당시 부상으로 결장한 박현승을 대신하여 출장했던 3, 4, 5차전에서 모두 멀티히트를 기록할 정도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8회말 3루타를 치고 나가 추가 득점 찬스를 만들었지만, 뒤이은 희생플라이에서 주루사를 범해 롯데 팬들을 좌절시켰고,[12] 끝내 롯데는 한화에게 9회 역전을 허용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백업으로 112경기를 소화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총평을 하자면 1995년 22개의 사구를 기록한 것[13] 정도가 특기할만한 기록이었고, 그 외의 선수시절 성적은 평범했다. 그럼에도 그가 선수생활을 10년 정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리몸과는 거리가 멀었고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는 투지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살이 지난 선수 생활 후반기에도 백업으로서 다른 선수들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마지막 해가 된 2000년까지 열 한 번의 시즌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3할을 넘어서지 못했다. 1994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지도 못했고, 반대로 다섯 시즌을 두 자리 수의 실책을 기록했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 1992년이나, 1994-1995 시즌엔 공격 면에서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그 외엔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상술했던 대로 전성기 2년간은 세이버로 보면 리그 2위의 3루수라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의 선수시절인 1990년대에는 그런 질적 분석지표가 없어서 무의미했다.
3. 지도자 경력
|
자세한 내용은 공필성/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
4. 여담
- 공필성을 상징하는 등번호는 0번. 선수단 숫자가 크게 늘어나서 0번이나 3자릿수 등번호도 볼 수 있게 된 2010년대 프로야구에서는 가끔씩 보이는 번호이지만 90년대 당시엔 드문 등번호였다. 은퇴 이후 일구회 자선시합에도 이 0번을 달고 나오는 등 0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수 중 하나. 마침 성이 '공' 씨였기에 그런 점도 있다. 그래서 이름풀이가 "공(0)을 달면 필히 성공할 것" 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0번을 달게 된 동기는 원래 등번호였던 43번을 뺏기고 나서 달 번호가 없어서. 이유야 어찌 되었건 공필성에게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등번호였다.
- 나름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유명한 1999 시즌 플레이오프 7차전의 기적도 공필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9회 공필성이 안타로 출루했고, 이후 임수혁이 동점 홈런을 때렸다.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3_90091_1360015206834751.jpg [14] |
- 롯데 코치 시절인 2006년 8월 5일 SK와의 경기에서 SK 투수 신승현이 펠릭스 호세를 맞춰 양 팀 사이에 벌어진 벤치클리어링 도중 호세를 말리기 위해 나서다가 그만 호세가 휘두른 주먹에 대신 맞고 떨어져나가 그의 살신성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 1992년, 1995년, 1999년 총 3번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총 두 개의 홈런을 때렸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통산 홈런 1위 기록이다. 여담으로 두 개 친 선수가 공필성 한 명뿐이라 한 개만 친 이종운도 2위다. 또한 한국시리즈를 세 번이나 나가서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 통산 한국시리즈 경기, 안타, 3루타, 홈런, 타점, 3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중 타율[16] 1위다. 이 기록들이 갱신되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롯데가 2000년부터 한국시리즈를 못 가고 있기 때문이다.
- JTBC 최강야구가 2022 시즌 당시 사상 첫 프로팀과의 경기로 NC 다이노스 2군과 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2군 감독으로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경기 전 2군 경기에 1군선수를 3명[17]이나 왜 데리고 왔냐는 김선우의 질문에 쩔쩔매며 횡설수설하다못해 말리는 모습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였다. #
- 야구게임인 마구마구에도 그의 성적을 참고한 선수카드들이 등록되어 있다. 그동안 레어카드 하나 없이 스페셜카드만 있다가 재평가로 1994년 공필성 선수카드가 레어로 승급되었다.[18]
- KBO 최초로 2개 팀에서 감독대행을 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2번 다 정식 감독 승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 2군 감독으로써의 평가는 선수들을 잘 다독여주고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주는 등 다정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육성과 성적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는 편이라 롯데와 NC 2팀에서 1군 감독 대행직을 수행했지만 정식 감독 승격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보다는 멘탈 코치나 수석코치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의견도 많은 편.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선수 시절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0 | 롯데 | 78 | 177 | .232 | 41 | 8 | 1 | 1 | 15 | 20 | 6 | 22 | .305 | .315 |
1991 | 81 | 158 | .215 | 34 | 6 | 1 | 3 | 16 | 20 | 3 | 15 | .323 | .280 | |
1992 | 100 | 280 | .286 | 80 | 17 | 3 | 6 | 40 | 30 | 2 | 28 | .432 | .347 | |
1993 | 124 | 379 | .240 | 91 |
23 (5위) |
3 | 1 | 38 | 36 | 6 | 33 | .325 | .299 | |
1994 | 126 | 420 | .271 | 114 |
23 (8위) |
5 (3위) |
12 | 57 | 55 |
25 (6위) |
58 (7위) |
.436 | .355 | |
1995 | 126 | 390 | .264 | 103 | 14 |
6 (3위) |
4 | 50 | 60 | 22 |
74 (3위) |
.362 |
.378 (8위) |
|
1996 | 114 | 299 | .251 | 75 | 18 | 1 | 4 | 34 | 37 | 8 | 31 | .358 | .315 | |
1997 | 79 | 207 | .246 | 51 | 13 | 1 | 1 | 20 | 19 | 9 | 19 | .333 | .307 | |
1998 | 120 | 364 | .245 | 89 | 12 | 2 | 6 | 42 | 42 | 12 | 47 | .338 | .327 | |
1999 | 124 | 238 | .214 | 51 | 13 | 2 | 2 | 21 | 28 | 9 | 27 | .311 | .292 | |
2000 | 112 | 149 | .208 | 31 | 4 | 1 | 1 | 13 | 16 | 4 | 17 | .268 | .287 | |
KBO 통산 (11시즌) |
1184 | 3061 | .248 | 760 | 151 | 26 | 41 | 346 | 363 | 106 | 371 | .355 | .326 |
5.2. 감독 시절
역대 감독 전적 | |||||||
연도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포스트시즌 |
2019 | 롯데 자이언츠 | 50 | 14 | 35 | 1 | 10위[#] | 탈락 |
2024 | NC 다이노스 | 8 | 1 | 7 | 0 | 9위[#] | 탈락 |
통산 | 58 | 15 | 42 | 1 |
6. 관련 문서
[1]
음력
10월 10일
[2]
당시에는 경상남도
진해시.
[3]
네이버 프로필 기준
[4]
구단 홈페이지 기준
[5]
~4월 17일
[6]
4월 18일~
[7]
~7월 18일
[8]
7월 19일~
[9]
~9월 19일
[10]
9월 20일~ 10월 22일
[11]
규정타석에는 미달이었다. 이 해의 강성우는 사실상 김선일의 백업이었다.
[12]
희생플라이를 틈타 홈으로 들어오려다가 한화 우익수
송지만의 홈송구에 놀라 도로 3루로 돌아가던 중, 오히러 3루에서 아웃당하고 말았다.
[13]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을 하는 자세, 치지 못한다면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라는 본인의 성격으로 인해 당시 사구를 가장 많이 맞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이 기록은 당시 1982년
김인식이 기록했던 18개의 기록을 갱신하였으며 1999년 31개의 사구를 기록한
박종호에 의해 깨졌다.
[14]
이 사진은 1994년 8월 20일 삼성과 롯데의 경기가 벌어진 대구구장 사진기자실에서 훈련을 마친 후 사진기자실 계단에 걸터앉아 햄버거와 콜라로 저녁식사를 때우는 것을 찍은 것이다. 참고로 이 사진에 대해서는 90년대 프로야구의 그늘이 드러나 있는데, 당시 선수들은 아무래도 경기 전이다 보니 위에 부담이 덜 되는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좋았지만 그때는 원정팀에 대한 배려가 깊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끼니를 때워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팀의 코칭스탭들이나 몇몇 고참급 선수들은 아예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반대로 홈팀 선수들은 번듯한 샤워실에서 훈련으로 찌든 땀을 깨끗이 씻어낸 후 맛난 호텔식 뷔페로 식사를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다행히 지금은 야구단 환경이 많이 좋아져 제대로 된 식사에 과일과 건강음료까지 챙겨 먹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원정팀에 대한 시설보완에 대해선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 많은 현실이다.
[15]
당시 호세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넘어지면서 호세에게 깔린 채로 엉덩방아를 찧은 SK의
최태원 코치도 같이 화제가 되었다.
[16]
0.308
[17]
오영수,
서호철,
박대온. 이 중 박대온은 이듬해
SSG 랜더스로 이적했다.
[18]
클래식 스탯으로는 3할에 미치지 못하지만(0.271), 당 시즌 올스타전 출전 및 전 경기 출장(126경기)에 커리어 유일 두 자릿수 홈런(12홈런)을 기록한 것과 도루, 사사구, 2루타, 3루타 부문에서 10위권 안에 진입하였으며, 롯데의 3루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전반기에는 타율이 3할을 기록한 행적을 뒤늦게나마 반영한 모양이다.
[#]
감독 대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