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어
1.1. 예, 무엇에 대한 긍정의 답
방언에 따라서는 거의
[야]
에 가깝게 발음되는 경우도 있다.[1] 흥미롭게도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어단어 yeah는 그 발음 또한 언뜻 듣기에 비슷하다.
독일어,
네덜란드어 ja또한 같은 의미와 발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 사실 전세계적으로 "예"를 뜻하는 단어는 발음이 다 비슷한 편이다.[2]이전에는 예라는 단어만 긍정 표현으로서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네라는 표현이 언중들에게 보편적으로 사용되므로, 1989년 국립국어원에서 '네'와 '예'를 모두 복수 표준어로 재정의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여전히 '예'를 고집하는 이들이 많고, 그래서 '네'라고 대답했다가 지적을 받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있다.
반대의 경우는 "아니요[3]"라고 하며, "네"라는 표현과도 바꿔 쓸 수 있디.
1.2. 예, 앞의 때를 뜻하는 우리말
앞의 때를 가리키며 예전, 옛날 등의 말에도 쓰인다.1.3. 예, " 여기"를 뜻하는 준말
지금은 옛 표현이라고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예가 어디냐?" / "우리 학교는 예서 멀다." 등 "여기"를 뜻하는 준말로서의 의미가 있다.1.4. 예, 일본( 왜국)을 가리키던 옛 순우리말
자세한 내용은 왜나라 문서의
고유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더욱 고형은 '여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4] 그래서 혜성가의 '倭理'는 주로 '여리'로 읽는다.
1.5. 예( 例), 예시
자세한 내용은 예시 문서 참고하십시오.1.6. 예( 禮), 예의
자세한 내용은 예(사상) 문서 참고하십시오.1.7. ye, 영어 단어
자세한 내용은 ye 문서 참고하십시오.편의상 본 문서에도 싣기는 했으나 발음은 ' 이'/ji/이다. ' the'의 다른 표기인 'ye'도 있으며 이때의 'ye'는 발음이 'the와 동일하다. 칸예 웨스트의 새 이름으로 쓸 때는 '예이'로 발음한다.
2. 한자
한국 한자음 빈도 |
권 당 독 령 로 루 만 면 묘 병 송 승 심 약 어 요 음 저 절 차 체 추 태 피 향5 건 격 결 곡 광 괴 군 급 내 등 란 려 렬 록 류 맹 목 문 번 변 산 설 습 야 예 욕 용 운 작 점 좌 중 질 채 척 충 타 탁 탄 판 표 필 혼 홍 황 회 후 희4 검 국 궁 귀 규 극 노 담 답 두 락 랑 력 례 료 률 마 막 민 발 백 범 불 빈 술 실 앙 애 억 열 염 옥 은 일 임 준 직 착 참 책 철 촉 총 택 토 통 투 폭 함 헌 혜 확 효3 걸 겸 곤 균 난 남 뇌 다 돈 둔 람 략 뢰 륙 륜 림 맥 몽 묵 물 밀 벌 벽 붕 빙 삭 색 섭 손 쇄 악 암 압 액 언 옹 와 완 왕 외 월 육 윤 읍 응 익 잠 접 족 존 졸 집 징 찬 처 첨 촌 최 측 칠 탈 탐 패 평 풍 학 행 허 험 혈 협 혹 획 휘 휴 흉2 |
[1~10위]
[11~106위]
[107~308위]
[309~407위] * 위 숫자는 해당 음절에 배당된 교육용 한자 수이다. |
교육용 한자에서 '예'로 읽는 글자는 아래 4자이다.
교육용 한자에서 '례'이며 두음법칙에 의해 어두에서 '예'가 되는 글자는 아래 3자이다.
3. 문자
3.1. 라틴 문자 J
한국에선 영어식 이름을 따라 '제이'라고 하지만, 네덜란드어 이름은 '예'이다.3.2. 한글 ㅖ
자세한 내용은 ㅖ 문서 참고하십시오.4. 문서가 있는 동음이의어
-
민족
예맥(
濊)
동예는 예맥인들이 세웠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 고조선의 대부 대부례
- 한국의 성씨 예씨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예(신화)
- 게임 Nine Sols의 등장인물 예(Nine Sols)
- 대한민국의 유튜버 예?
-
카니예 웨스트의 본명이자 8집 정규 음반
ye(칸예 웨스트)
2018년 발매한 카니예 웨스트의 8집 정규 음반. 본인도 이 당시 예명을 예(ye)로 바꾸고 활동한다 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후 2021년 10월 19일 본명을 ye로 개명하였다. - 어셔의 노래 Yeah!
- 전생검신의 등장인물 예(전생검신)
5. 문서가 없는 동음이의어
5.1. 예나라(芮), 중국 서주 시대의 고대 국가
엄밀히 말하면 상 말기 문왕이 서백(西伯)이던 시절부터 존재가 확인된다. 시경과 사기 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 문왕이 예(芮)와 우(虞)의 토지 분쟁을 중재했다는 내용이다. 그 즈음 예(芮)는 주나라에 귀부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상서에 따르면 서주 왕조 개창 이후에도 예(芮)의 수장인 예백(芮伯)이 서주 왕조의 경사를 지냈음이 확인되는데 고명(顧命)편에서 예백은 무려 소공 석 다음으로 언급되고 강왕지고(康王之誥)편에서도 소공과 함께 등장한다. 서주 초기 예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예는 다시 사서에서 모습을 감추다가 여왕 대에 예량부(芮良夫)가 여왕의 실정을 비판했다는 내용이 국어, 사기, 일주서(逸周書) 등에 등장한 뒤 춘추시대까지 다시 기록이 없어진다.춘추시대에 들어서면 관련 기록이 비교적 풍부해지기 시작하는데, 진(晉)의 내전에 말려들고 내부의 권력 투쟁까지 맞물리는 혼란을 맞이하였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진(秦)의 공격을 물리치는 등 그 역량은 상당했던 듯하다. 그러나 위의 혼란의 여파인지 예는 춘추시대 영역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고 결국 목공 20년 진(秦)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