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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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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353b4,#1353b4>재위 <colbgcolor=#fff,#1f2023> 영국 여왕 · 영연방 왕국 여왕 ( 캐나다 여왕 · 호주 여왕 · 뉴질랜드 여왕) · 영국 왕실 수장
재위시기 제2차 엘리자베스 시대 · 사건 일람
생애 생애 · 사망
가족관계 아버지 조지 6세 ·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배우자 필립 마운트배튼 · 동생 마거릿 공주 · 장남 찰스 3세 ·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 · 차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 3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기타 퀸 엘리자베스 · 퀸 엘리자베스 제도 · 퀸 엘리자베스 2세 파크 · RMS 퀸 엘리자베스 2 · 엘리자베스 여왕배 · 기타 창작물 · 더 크라운 ( 엘리자베스 2세(더 크라운)) ·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 영국 왕실과 정부의 전용기 · God Save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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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장례 절차 및 구성 (유니콘 작전)3. 경과
3.1. 9월 8일(D-Day): 여왕 사망 당일3.2. 9월 9일(D+1): 장례절차의 시작3.3. 9월 10일(D+2): 찰스 3세 국왕 즉위 회의3.4. 9월 11일(D+3): 여왕의 시신이 에든버러로 이동3.5. 9월 12일(D+4): 국왕 부부의 스코틀랜드 행3.6. 9월 13일(D+5): 여왕의 시신이 런던에 도착3.7. 9월 14일(D+6): 웨스트민스터 안치3.8. 9월 15일(D+7)3.9. 9월 16일(D+8)3.10. 9월 17일(D+9)3.11. 9월 18일(D+10)3.12. 9월 19일(D+11): 장례식3.13. 9월 20일(D+12)
4. 이후 영국의 변화5. 조문객 명단
5.1. 영연방5.2. 유럽5.3. 아메리카5.4. 아시아5.5. 아프리카 및 중동5.6. 국제 기구5.7. 비참석 국가
6. 반응7. 여담

1. 개요

파일:royaluk.png
파일:20220909_064549.jpg
여왕께서는 오늘 오후 밸모럴 성에서 평온히 승하하셨습니다. 왕과 왕비께서는 오늘 저녁에 밸모럴 성에 머물고 내일 런던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버킹엄 궁전 발표문
현지 시각 2022년 9월 8일 오후 6시 30분, 버킹엄 궁전은 "여왕이 밸모럴 성에서 평온히 승하했다."고 발표했다. 현지시각 오후 3시 10분에 사망했으며, 당시 여왕의 곁은 와 장녀 앤 공주와 개인비서 겸 스타일리스트 안젤라 켈리가 지켰다. 아들 찰스 3세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손자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도 급히 스코틀랜드로 떠났지만 여왕 사망 후에 도착하여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여왕은 임종 단계에서 평온히 천수를 다하고 96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사망했다.[1] 사후 발간된 왕실 전기에서 말년에 골수암에 걸려 투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22년 9월 8일 영국 윈저 왕조 제4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스코틀랜드 체류 중 사망한 사건에 관하여 서술한 문서이다. 1926년에 태어나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장장 70년이라는 긴 재위기간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의 밸모럴 성에서 사망하면서 런던 브리지 작전 대신에 유니콘 작전이 즉각 실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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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queenelizabethdeathcertificate.jpg

스코틀랜드 국립기록원에서 공개한 사망진단서에 의하면 공식적인 사인은 노환으로 기록되었다. #

2. 장례 절차 및 구성 (유니콘 작전)

"여왕이 사망하면 어떻게 되는가: 런던 브리지 작전", 워싱턴 포스트
("What happens when the queen dies: Operation London Bridge", Washington Post)
파일:20220909_032332.jpg
런던 브리지 작전 또는 유니콘 작전은 신속한 연락과 정보 전달, 지체 없는 장례 수행을 위한 자원 확보, 국가원수의 유고에 따른 공공 질서 유지 등이 프로토콜의 목적으로, 이미 1960년대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다. 해당 계획의 일부는 엘리자베스 2세 본인이 수립했으며, 실제로도 ' 런던 브리지'로 통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영국 국내외에 '런던 브리지 작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일종의 완곡어법이기도 한데, 국왕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암구호처럼 서로 알고 있는 코드를 미리 설정하여 계획된 프로토콜을 수행해야 함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 1950년대 당시 전화 교환수가 있었을 때 조지 6세가 서거한 것을 교환수가 미리 알지 못하게 하도록 후술할 Hyde Park Corner(하이드 파크 코너)라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일설에는 "여왕의 개인 비서가 총리 관저에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을 전할 때 '런던 브릿지가 무너졌다(London Bridge is down)'라고 말한다"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구체적인 절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계획에는 영국 총리를 포함한 주요 요인과 외국 대사관에의 통보, 대중에 대한 공식 사망 발표, 국장의 진행 및 애도 기간 설정 등의 수행 내용이 담겨 있으며, 여기에는 근위대를 포함한 영국군 런던 경찰, GCHQ, MI5 및 영국 교통부, 런던 교통국 등이 두루 참여하게 되어 있다.

여왕이 스코틀랜드에서 사망하면서, 런던 브리지 작전의 부수 작전인 유니콘 작전[2] 이 실행된다. 현지 언론이 보도한 작전 세부사항에 따르면, 여왕은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소재한 국왕의 스코틀랜드 공식 거주지인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에 먼저 안치하고[3] 로열 마일(Royal Mile)을 따라 장례 행렬을 갖고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로 옮겨진 후,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에서 왕실 열차 또는 항공기를 통해 런던으로 운구해 나머지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2002년 골든 주빌리 당시에 계획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유사한 작전으로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는 "Hyde Park Corner(하이드 파크 코너)",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Operation Tay Bridge(테이 브리지 작전)", 필립 공은 "Operation Forth Bridge(포스 브리지 작전)"라는 코드가 있었다. 왕세자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사망했을 때는 "메나이 브리지 작전"(Operation Menai Bridge)이라는 암호를 사용한다.[4] 찰스 3세 프린스 오브 웨일스이던 시절에는 메나이 브리지 작전이었으나, 이후 암호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기사

장장 70년간 재위했던 오랜 역사 때문에 현대에 생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영국인, 그리고 영연방 왕국 국민들이 처음으로 겪는 국왕의 사망이며, 또 난생 처음으로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5]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전 영국에서 있었던 마지막 국왕의 장례식은 1972년 여왕의 백부 에드워드 8세의 사망이며, 대관식은 1953년이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전에 국왕의 장례식 및 대관식을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은 이제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고 현대 영국인의 몫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대관식을 주관하는 문장원총재(紋章院總裁, Earl Marshal, 귀족 중 으뜸가는 귀족으로 분류되는 노퍽 공작이 세습)의 경우, 16대 공작이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주관했으나, 노퍽 공작은 대가 2번이나 바뀌어 18대 공작이다.[6] 17대 공작은 대관식을 치러보지도 못하고 사망한 셈. 문장원총재를 위원장으로 하여 "황금 보주 작전(Operation Golden Orb)"이라는 이름으로 찰스 3세의 대관식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찰스 3세의 대관식은 2023년 5월 6일에 열렸다.

3. 경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기간을 요약, 정리한 영상. 배경음악은 영국의 비공식 애국가인 I Vow To Thee My Country를 편곡한 문명 5 영국 문명 평화 테마.

날짜 및 시각의 경우 영국 현지 시각인 BST(UTC+1, 서머타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3.1. 9월 8일(D-Day): 여왕 사망 당일

<rowcolor=#FFF> BBC 뉴스가 처음으로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모습 곧 이어 바로 이어진 BBC 뉴스의 공식발표
파일:bbc 9월 8일 여왕 사망 기사.png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는 BBC 뉴스 1보
2022년 9월 8일 현지시각( UTC+1)[7] 18시 30분[8], 버킹엄 궁은 여왕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직후인 33분경 이 사실은 영국의 공영방송 BBC AP통신을 비롯한 주요 언론 속보를 통해 공개되었다. # # BBC는 여왕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여왕의 존영과 함께 God Save the Queen의 1절까지의 반주를 재생하였으며, 이어 앵커가 고인의 일생과 업적을 기리는 멘트를 하였다. #[9][10]
파일:royaluk.png
파일:9c809920-2fab-11ed-a75f-d1cd0b151798.webp
<rowcolor=#fff> 영국 버킹엄 궁에 게시된 부고문
버킹엄 궁 성명문 전문
The Queen died peacefully at Balmoral this afternoon.
The King and The Queen Consort will remain at Balmoral this evening and will return to London tomorrow.

— Thursday, 8 September 2022
여왕께서는 오늘 오후 밸모럴 성에서 평온히 승하하셨습니다.
왕비께서는 오늘 저녁에 밸모럴 성에 머물고 내일 런던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 2022년 9월 8일 목요일
사망 직후 영국 왕실 웹사이트와 버킹엄 궁전 정문에 게시된 성명문.

트위터 SNS에는 언론 및 개인 계정으로 #Londonbridge, #Londonbridgeisdown 등의 해시태그가 게시되었다.
파일:스크린샷 2022-09-09 오전 11.07.14.png
변경된 BBC 공식 유튜브 배너

이후 리즈 트러스 총리가 추모 담화문을 발표하였다.[11]
파일:FcJuUlxWAAIdLGl.jpg
성명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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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ATEMENT FROM HIS MAJESTY THE KING AT THE TIME OF THE QUEEN'S DEATH

The death of my beloved Mother, Her Majesty The Queen, is a moment of the greatest sadness for me and all members of my family.
we mourn profoundly the passing of a cherished Sovereign and a much-loved Mother.
I know her loss will be deeply felt throughout the country, the Realms and the Commonwealth, and by countless people around the world.
During this period of mourning and change, my family and I will be comforted and sustained by our knowledge of the respect and deep affection in which The Queen was so widely held.
Thursday, 8th September 2022
여왕 폐하 사망 시점의 국왕 폐하의 성명문
나의 친애하는 어머니 여왕 폐하의 죽음은 나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큰 슬픔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소중히 여기던 군주이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나는 그녀를 잃은 것을 온 국가, 왕국 연방,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깊게 느껴질 것임을 안다.
변화와 통곡의 이 순간 동안, 나와 나의 가족들은 우리들의 지식과 존경심, 그리고 여왕께서 가지고 계셨던 깊은 애정에 의해 안정되고 지속될 것이다.
2022년 9월 8일 목요일

사망 당시 진행 중이던 UEFA 유로파 리그 FC 취리히 아스날 FC 경기,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의 경기에서는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 추모 시간을 가지고 검은 완장을 착용했다.

당일 저녁에 열린 UEFA 유로파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소시에다드의 경기와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FCSB의 경기는 순연 조치를 하기에는 이미 늦어 정상 진행하되 유로파 음악이 나오지 않았으며 역시 경기 시작 전 추모 시간을 가지고 검은 완장을 착용하였다.

원래 9월 중 영국의 전국철도해운운수노조(RMT)에서 철도와 우편 파업 계획이 있었으나,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을 기리는 의미에서 취소되었다. # #

이후 밝혀진 바로는 여왕의 사망 시각은 공식 발표가 있기 약 3시간 20분 전인 15시 10분경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오후 늦게 밸모럴 성에 도착한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윌리엄 왕세자는 여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3.2. 9월 9일(D+1): 장례절차의 시작

더 가디언지의 과거 보도에 따르면, 이 날부터 약 12일 간 영국은 국가 애도 기간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동안 모든 왕실 직원은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착용하며 10~12일차는 국가애도일(Bank Holiday)로 지정돼 금융 시장을 비롯한 관공서, 은행 등이 문을 닫는다. #

이번 주말 프리미어 리그 EFL을 비롯한 영국 내 다수의 축구 경기가 연기되었다. 프리미어 리그 입장문 EFL 입장문 영국 경마도 8~9일 경기를 모두 취소, 연기했다. 타 스포츠의 경우 주말 경기를 정상 진행하되 경기 전 추모 시간이 있을 예정이다. 후술하는 대로 모터스포츠 쪽에서는 브리티시 GT 챔피언십이 실제로 2분간 추모 시간을 가졌고 이탈리아 몬차에 있는 국립 몬차 자동차 경주장에서 열리는 2022 포뮬러 1 이탈리아 그랑프리 FP1 시작 전에도 1분간 추모 시간을 가졌다.
<rowcolor=#FFF> 스코틀랜드 애버딘 공항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찰스 3세 런던 노솔트(Northolt) 공군기지에 도착한 찰스 3세[12]
찰스 3세는 현지 시각 11시경, 밸모럴 성을 떠나 런던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영국 내 성당에서 울리는 추모를 위한 종 추모회의를 시작하는 영국 서민원 의원들

12시경, 성공회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윈저 성, 그리고 영국 내 성당에서 추모를 위한 종이 울렸다. 같은 시각, 서민원 의원들은 국회의사당에 모여 여왕 추모회의가 열렸다.
영국 곳곳에서 발사된 조포
13시경, 하이드 공원을 시작으로 런던 탑, 에든버러 성, 힐즈버러 성, 카디프 성, 벨파스트, 지브롤터 등 영국 주요 도시 및 해외 영토에서 여왕 추모를 위한 조포(弔砲)[13]가 발사되었다. 10초 간격으로 총 96번 발사되는데 이는 여왕의 사망 당시 나이가 96세라는 의미이다.
<rowcolor=#FFF> 버킹엄 궁전에 도착한 찰스 3세 국왕이 된후 처음으로 리즈 트러스 총리와 접견한 찰스 3세
14시 10분 즈음, 찰스 3세 런던 버킹엄 궁전에 도착해 마중 나온 국민들과 인사를 나눴고, 이후 16시 26분 즈음에 리즈 트러스 총리를 접견하였다.
찰스 3세의 국왕으로서 최초 담화
18시경, 찰스 3세는 국왕으로서 최초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해당 연설은 당일 오후 버킹엄 궁전에서 사전녹화 되었다. 이 연설에서 윌리엄 왕자를 공식적으로 왕세자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임명했다.
엘리자베스 2세 추모 만도
같은 시각,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추모 저녁 만도가 시작되며 이곳에는 리즈 트러스 총리 및 장관들을 포함해 약 2,000명이 참석하였다. 이 저녁 만도에서 찰스 3세 즉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국가가 God Save the King으로 변경된 상태로 연주되었다. #

3.3. 9월 10일(D+2): 찰스 3세 국왕 즉위 회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찰스 3세/즉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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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220910_200508.jpg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찰스 3세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추밀원 주최로 즉위 회의(accession council)가 오전 10시에 열렸다. 이 자리에서 찰스 3세가 국왕으로서 공식 선포됐다. 역사상 최초로 즉위 회의가 방송된다고 하며, 국민들은 처음으로 국왕이 선포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14] 참고로 법적으로 영국의 국왕 승계는 선왕이 승하하는 순간 왕세자가 승계받기 때문에 즉위 회의 전에도 이미 찰스는 국왕이었다.[15]

이후 11시에 세인트 제임스 궁전 발코니에서 공식적으로 즉위가 공표되며, 하이드 공원과 런던 탑을 포함한 영국 곳곳에서 즉위 예포가 발사되었다. 동시에 깃발은 26시간 동안 다시 풀 마스트 상태로 올라가며, 이 26시간 이후 다시 조기 상태로 내릴 예정이다.
로열 익스체인지에서 진행된 공표식

12시 정오에는 런던 시(City of London)에 있는 로열 익스체인지에서 두 번째로 즉위가 공표된다.
파일:FcT4lVdXoAIAx1f.jpg
파일:FcTodvNWAAcDVsF.jpg
찰스 3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리즈 트러스 총리와 서민원 의원들 찰스 3세를 알현하는 총리와 장관들
파일:FcTodvSXEAE3KkR.jpg
찰스 3세를 알현하는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찰스 3세를 알현하는 주요 야당 대표들

오후에는 서민원 의원이 다시 국회의사당에 참석해 찰스 3세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고, 전날에 마치지 못한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추모 회의가 이어진다. 추모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리즈 트러스 총리 및 장관들과 주요 야당 대표[16]들은 버킹엄 궁전에 방문해 찰스 3세를 알현하였다.
파일:FcTYmMMXoAAYfbM.jpg
비공개 장례식에 참석하는 왕실 가족들

14시에는 밸모럴 성 근처에 있는 Crathie Kirk에서 왕실 가족만 참석하는 엘리자베스 2세 비공개 장례식이 열렸다.[17]

SRO 모터스포츠 그룹이 주관하는 브리티시 GT 챔피언십은 브랜즈 해치 GP 서킷에서 경기가 열리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는 묵념을 2분간 진행 후 행사를 진행했다.
파일:윌리엄왕세자가작성한추도문2.jpg

16시 30분, 윌리엄 왕세자가 추모문을 작성하였다. #
윈저 성에 방문한 윌리엄 왕세자 부부와 해리 왕자 부부

17시 즈음, 웨일스 공 윌리엄, 웨일스 공비 캐서린,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서식스 공작부인 메건 윈저 성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해 조의를 표하기 위해 방문한 국민과 조우하였다.

3.4. 9월 11일(D+3): 여왕의 시신이 에든버러로 이동

파일:20220911_185435.jpg
밸모럴 성에서 출발하는 여왕의 관

10시 정각,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이 10시에 밸모럴 성을 출발하였다. 스코틀랜드 내에서의 시신 운구에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W212 모델 기반의 장의차를 사용했다.
에든버러에서 진행된 공표식 카디프에서 진행된 공표식 벨파스트에서 진행된 공표식

12시 정오, 전날에 이어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 찰스 3세 공표식이 진행되었다.
훌리루드하우스 궁전에 도착한 여왕의 관

16시 20분 즈음,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이 에버딘, 앵거스, 던디, 퍼스[18] 등을 거쳐 에든버러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 도착해 안치되었다.
파일:찰스3세와패트리샤스코틀랜드.jpg
<rowcolor=#ffd51d> 찰스 3세을 알현하는 패트리샤 스코틀랜드 영연방 사무총장 영연방 왕국 고등판무관들과 접견하는 찰스 3세

한편 런던에서는 패트리샤 스코틀랜드 영연방 사무총장이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3세를 알현하였다. 그 뒤 찰스 3세는 버킹엄 궁전 바우 룸에서 영국 국왕 국가원수로 섬기는 나라들의 고등판무관들과 접견하였다.[19]

3.5. 9월 12일(D+4): 국왕 부부의 스코틀랜드 행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진행된 추도식[20]
10시 즈음, 찰스 3세는 이날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해 귀족원 서민원 의원들의 참석 하에 추도식이 진행된다. 가장 먼저 존 맥폴 남작 귀족원 의장, 그 다음에 린지 호일 서민원 의장이 추도문을 낭독하며, 마지막으로 찰스 3세가 추도 연설을 하였다. 추도식은 영국 국가를 제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 도착한 찰스 3세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장례행렬을 갖고 진행된 저녁 만도

이후, 카밀라 왕비와 함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이동한 뒤 13시 10분경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 도착하였으며 14시 25분 즈음에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을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서 로열마일을 따라 장례행렬을 갖고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안치시킨다. 이때 군대 명예계급을 박탈당한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와 왕실 공무를 그만둔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를 제외한 왕족들은 영국군 예복을 착용한다.[21]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 도착한 15시 15분 부터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기념하는 저녁 만도를 드리며 만도가 끝나는 16시 15분부터 안치된 시신은 약 24시간 동안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조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찰스 3세를 알현하는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서 열린 추모회의

그 뒤,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는 다시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으로 이동해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을 접견한다. 접견을 마치면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 방문하며, 17시 30분 그곳에서 추모회의를 진행하였다. 이때부터 철야기도[22]까지 후임 국왕인 찰스 3세는 아래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킬트를 입는다.
파일:20220913_014258.jpg
파일:20220913_063930.jpg
<rowcolor=#FFF>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여왕의 관[23] 철야기도 중인 찰스 3세,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이 날 일정을 마친 후 찰스 3세는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이동해 19시 45분부터 왕실 가족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했다. 여담으로, 프린세스 로열 앤은 역사상 왕실 철야기도를 하는 최초의 여성이다.

3.6. 9월 13일(D+5): 여왕의 시신이 런던에 도착

찰스 3세 카밀라 왕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로 이동한다. 북아일랜드에 도착하면 12시 30분 즈음에 힐즈버러 성으로 가서 그곳에서 크리스 히튼 해리스 북아일랜드 국무 장관[24]과 북아일랜드 정당 대표들을 접견하였고, 이후 북아일랜드 의회 의장이 추모 메세지를 낭독을 하였다.

접견을 마치면 15시 즈음 세인트 앤 대성당으로 가서 추모 성찬례를 드리고, 런던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는 15시까지 국민들의 조문을 받으며, 16시 15분 경,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이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출발해 에든버러 공항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다시 영국 공군 C-17 수송기[25]로 런던 노솔트 공군 기지에 도착해 20시 즈음에 버킹엄 궁전에 도착했다.[26] 노솔트 기지에서 이 곳 까지는 재규어 XJ 기반의 운구차를 사용해 운구했다.
파일:ZZ177.jpg
에든버러 공항에서 여왕의 관을 싣고 이륙하는 C-17 수송기.
파일:queen_airport.jpg
런던 노솔트 공군 기지에 도착한 여왕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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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궁에 입장하는 여왕의 관.

시신은 앤 공주와 동행하며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마중을 나왔다.

3.7. 9월 14일(D+6): 웨스트민스터 안치

이 날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이 14시 22분 즈음에 버킹엄 궁전을 출발해 웨스트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해 안치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찰스 3세 프린세스 로열 앤,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그리고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가 동행하였으며, 15시 즈음에 안치된 이후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짧은 추모 기도를 진행하였다. 해당 예배는 찰스 3세를 포함한 왕실 가족 및 영국 국회의원들이 참석하였으며, 추모기도를 마치면 17시부터 일반 국민들은 여왕에게 조문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방문할 수 있다.

이날 2명의 여성이 웨스트민스터 궁전 앞에서 줄을 서있던 중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

참배객들이 몰리면서 바닥이 손상을 입었다. #

3.8. 9월 15일(D+7)

이 날은 별도의 공식 일정은 없으나, 왕실 가족들은 각각 영국 곳곳을 방문해 조의를 표하려는 국민들을 만났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는 계속해서 국민들의 조문을 받았으며 템즈 강을 따라 무려 8km의 긴 줄이 이어져 11시간을 기다려야 하며 조문객이 더 늘어나면서 현지 언론은 조문 행렬이 최대 16km에 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초반부터 줄이 4km가 넘어 영국 정부에서 "대기 시간이 30시간이 될 수도 있다. 건강이 나쁘다면 조문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했다. #1 #2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어디에 줄서야 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생중계하고 있다.

장례식에 초청을 받은 국가는 이 날 까지 참석 의사를 밝혀야 한다.

3.9. 9월 16일(D+8)

9시 55분 즈음, 영국 정부는 조문을 위해 선 줄이 계속 길어져서 결국 한계치에 달해서 잠시 추가적으로 조문을 위해 줄을 서는 걸 임시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기존 줄이 줄어드면 다시 열릴 예정이다.

찰스 3세 카밀라 왕비는 이 날 웨일스 카디프 방문을 끝으로 영국 4개 국가 순방을 마친다.

11시 30분 즈음, 찰스 3세 카밀라 왕비는 가장 먼저 웨일스 카디프에 있는 랄란도프 대성당에 도착해 1시간 동안 추모 성찬례를 드렸다.

성찬례를 마친 후 12시 50분 즈음, 찰스 3세는 웨일스 의회에 도착해 그곳에서 추모 회의를 열었다. 이곳에서 찰스 3세는 웨일스어로 추모 연설을 낭독하였다.

14시 10분, 찰스 3세는 카디프 성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마크 드레이크포드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과 알현하였다.

15시 45분, 웨일스 공 윌리엄 캐서린 왕세자비 서리 퍼브라이트 바락(Pirbright Barracks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동원될 영연방 캐나다,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파견된 군인들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뉴질랜드군은 하카를 보여주었다.

16시 55분, 웨일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에 복귀한 찰스 3세는 이 날 저녁 종교 지도자들을 접견하였다. 이 때 본래 일정보다 앞당겨서 접견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유대교 안식일 동안[27] 이동 시 오직 도보만 허용되기 때문에 본래 일정대로 였다면 유대교 지도자가 참석이 어려워 졌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7시 5분, 영국 정부에서 조문을 온 국민들을 위해 다시 줄을 서는 것을 허가하였다.[28] 한편 조문객 중에서는 데이비드 베컴 역시 포착되어서 화제가 되었다.[29]

19시 45분,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들과 딸이 철야 기도[30]를 드렸으며, 이 때는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역시 군 예복을 입고 철야 기도에 참석하였다. 영상 이들이 철야 기도를 드리는 동안, 웨일스 공 윌리엄쪽 가족과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쪽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왕실 가족들은 옆쪽에서 지켜보았다.

20시 5분, 영국 정부에서 장애인 조문객들이 줄을 서는 것을 임시로 중단한다고 밝혔으며[31], 다음날 정오에 다시 개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3.10. 9월 17일(D+9)

17~18일에 열리는 프리미어 리그를 포함한 모든 축구 경기에는 양 팀 선수와 심판은 검은색 완장을 착용한다. 킥오프 전에는 양 팀 선수단과 심판이 센터 서클에 모여 국가가 연주된 후 팬들과 함께 1분 간 묵념으로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또한 조의를 표하는 반기가 게양되며, 경기 시간 70분 때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이 올라오며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 시간을 갖는다.

12시 15분 즈음에 찰스 3세 웨일스 공 윌리엄 뉴 스코틀랜드 야드에 방문하였고 찰스 3세는 마크 로우리 경 런던광역경찰청장, 사디크 칸 런던시장과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과 접견하였고 윌리엄 왕세자는 자원봉사자 들과 조우하였다.

이후 12시 30분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는 엘리자베스 2세 조문객들과 조우하였다.

이날 기준 조문 행렬은 무려 16km로 최소 16시간에서 24시간 이상을 대기해야 하며 긴 대기로 인해 400명 이상 실신했다. 현재까지 구급 처치를 받은 인원은 710명이며 이 중 81명이 입원했다. 장애인 조문객 행렬도 마찬가지라서 결국 영국 정부는 16시 33분 부터 더 이상 추가로 장애인 조문객 행렬을 열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이 와중에 상·하원 의원들은 긴 줄을 건너뛸 수 있었던 게 알려져 빈축을 샀다. #1 #2 #3 #4
이날 18시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여덟 손주들이 철야 기도를 드렸으며 이 때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는 군 예복을 착용하였다.[32] 손주들이 철야 기도를 드리는 건 영국 역사상 최초이다.[33] # 영상 (10분 10초부터)

한편 저녁에 찰스 3세 버킹엄 궁전에서 영연방 왕국 소속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필립 데이비스 바하마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드루 홀네스 자메이카 총리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접견하였다.

일본의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 전용기로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기준으로 17일에 출발하여 18일(영국 현지시간 17일) 런던 북부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루히토 천황 내외는 일본 시간을 기준으로 17일부터 20일까지 머물 예정이다. 나루히토 천황은 황태자 시절 2년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한 바가 있으며 이때 엘리자베스 2세 홍차를 즐기는 등 인연을 맺은 바 있다. #

연합뉴스가 한국 언론 최초로 내부를 취재하였다. #

3.11. 9월 18일(D+10)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런던에 도착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전용기를 통해 서울공항을 출발하여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하였다.

참고로 혼잡 방지와 경호상의 이유로 대개 영국에 정상들이 방문할때 이용하는 히스로 공항이 아닌 스탠스테드 공항이 이용되었다.[34] 해당 공항에는 한국 뿐만 아니라 영국에 장례식 차 방문하는 모든 전용기 약 70대 이상이 총집결했다.

버킹엄 궁전에서 외국 정상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렸다. 리셉션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20시 정각에는 국가 차원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기리기 위한 1분 간의 묵념이 진행되었다.

22시 41분을 끝으로 조문 행렬을 폐쇄하였다. 기존에 이미 행렬에 서고 있는 조문객들이 조문을 마치면 일반 국민들의 조문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3.12. 9월 19일(D+11): 장례식

이날 6시 30분을 끝으로 마지막 조문객이 조문을 하면서 국민들의 조문은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이날 영국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어 학교가 휴교하고 가게들 상당수가 문을 열지 않았다. 원래 이 날은 영국 대학교들이 학기를 시작하는 Freshers' week의 첫 날이었다.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추모 분위기로 인해 월요일 당일로 예정되어 있던 대부분의 행사는 취소되었으나 국제 학생들을 위한 BRP카드 발급 등의 필수 절차는 정상 운영되었으며, 장례식을 강당 등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생중계 해주기도 했다.
엠빅뉴스 장례식 5분 정리

이 날 11시 정각[35],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예식이 국가장으로 진행되며, 해당 장례예식은 약 2000명이 참석했다. 또한 이 날은 공휴일로 지정된다.

영연방 왕국 영연방 국가의 국가원수, 정부수반, 그리고 각국 군주 등 동맹 미국을 비롯해서 영국과 우방 관계인 친서방권 주요 국가들은 정부수반이나 국가 원수가 참여하든지, 최소 공식 대표 사절을 파견할 것으로 관측된다.

영국에서 이 정도로 국제적 주목을 받는 장례식 주최는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의 국장 이래 57년 만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다시 큰 주목을 받는다는 평가도 있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미사와 2013년 넬슨 만델라 장례식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전 세계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즉 대부분의 대통령, 총리 높으신 분들이 다 온다고 보면 된다.

우선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을 확정지었으며, EU에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도 참석을 확정짓거나 검토하고 있으며, 같은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 등도 참석이 점쳐진다.

또한 같은 군주국인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6세, 일본 나루히토 천황[36] 등도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예식 참석을 공식화했으며, 한국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다. 마침 유엔 총회가 9월 19일부터 개최되는데, 상당수의 정상들이 영국 런던을 경유하여 유엔 본부가 위치한 미국 뉴욕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왕치산 부주석을 파견하지만, 대만은 하나의 중국으로 인해 특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대신 왕치산 부주석은 웨스트민스터 홀의 입장은 거부당했고, 대만 측에서는 켈리 셰 주 영국 타이베이 대표부장이 참여했다. 대만 측 인사들은 웨스트민스터 홀의 입장이 허용되었다.[37]

각국 대사관에 보낸 안내문을 통해 장례식에 참석하는 정상들은 전용기가 아닌 상업용 항공기를 이용하고 장례식장까지는 런던 서쪽의 한 장소에 모여 버스로 함께 이동해 달라고 당부했다. 헬리콥터와 개인 차량을 통한 이동은 제한된다. # 실제 장례식에서는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특히 높다고 판단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만이 특별히 개인 차량을 통한 이동을 허용받았다.

말 그대로 세기의 장례예식이 될 예정이라 정상급이 참석하는 나라도 최소 수십 개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 다만, 버스를 타라는 지침 때문에 경호 논란이 생겼고, 한발 물러섰다. #

2일 전 나루히토 천황의 예처럼 왕실 경호처 차량을 이용할 듯 하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더 비스트를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미국은 국가원수의 경호만큼은 동맹국이라도 믿지 않고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 마찬가지로 테러 가능성 때문에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개인 차량을 탔다.

장례식 초청 대상에서 러시아, 벨라루스, 미얀마, 시리아, 탈레반 정권 하의 아프가니스탄 등은 제외됐다. #

이는 미국 EU,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수많은 국가의 정상급과 의전 및 보좌를 위한 조문단 수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다. 따라서 참석한 나라들끼리의 양자회담 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찰스 3세 혹은 리즈 트러스 총리 등[38]과의 회담 정도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상술했듯 장례예식 날이 유엔 총회 개막일이라서, 곧바로 뉴욕으로 가야 하는 정상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붙어야 하는 항공기 도착 시의 의전과 의전차량 제공, 교통 통제, 숙소 및 경호 제공만 해도 예산 및 인력의 소모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런던 해즈 폴른이라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테러리스트들이 군침을 흘리기 딱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경호에 드는 노력이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당장 영국 경찰 인원도 감당이 안 돼서 RCMP, 호주 연방경찰, 뉴질랜드 경찰의 지원을 받는다.

참고로, 군주 19명, 대통령 48명, 총리 22명 등 145개국(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142개국, 옵서버 국가 2개국, 코소보)이 참석한다. 기존의 기록은 1980년 유고슬라비아 초대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장례식에는 128개의 유엔 회원국이 참석했다.

장례예식에 참석하는 공식 조문단들은 8시부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입장이 가능하며 10시 44분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전통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사원으로 영국 해군 수병들이 인력으로 끄는 수레에 실려 운구된다. 이후 11시(한국 시각 19시)에 국장 장례예식이 거행됐다. 한편, 장례식 동안 히스로 공항의 항공기 이착륙이 제한되기도 하였다.

설교는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가 맡았고, 11시 55분경, 영국 전역이 2분간 묵념에 들어갔으며, 장례예식은 12시 정각에 영국 국가를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쳤다.

그리고 12시 15분부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웰링턴 아치(Wellington Arch)까지 역시 수병들이 수레를 직접 끌고 찰스 3세 등 일행도 수레 뒤를 걸어서 행진했으며, 13시에 웰링턴 아치 도착 직후 앞서 잉글랜드 내에서의 시신 운구를 맡은 재규어 영구차을 옮겨 윈저 성까지 이동했다. 15시 경에 영국군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윈저 성 안에서 성 조지 성당으로 이동했고, 관을 성당 내부에 안치시키며 외부에서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16시 15분경에 시작된 매장예식 전 저녁 만도는 약 800명이 참석하였으며, 여왕의 관 위에 놓여있던 영국 제국관 & 셉터 & 오브를 왕실 보물 담당관이 회수하고 의무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찰스 3세가 부러트려 관 위에 올려놓는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후 19시 30분 왕실 가족만 참석하는 밤 기도가 진행된 뒤 매장예식이 외부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작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의 옆자리에 생전 즐겨 착용하던 진주 귀걸이와 결혼 반지만을 착용한 채 안장되었다. #

3.13. 9월 20일(D+12)

이날 아침 국기를 다시 올리면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 절차는 모두 마무리되었다.

4. 이후 영국의 변화

영국은 국왕 자체가 국가의 상징[39]이기 때문에 화폐, 군함, 표식 등 대부분의 국가 상징물에 국왕의 존함이나 초상화가 들어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70년 넘게 재위하였기 때문에 현대 영국의 거의 모든 상징이 엘리자베스 2세로 굳어져 왔다.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할 때 태어난 이들이 벌써 70세를 넘겼으며, 엘리자베스 이전 시대[40]를 기억하는 사람은 못 해도 70대 후반 이상이다. 때문에 62년을 재위한 쇼와 덴노 이상으로 더 충격일 수밖에 없다.[41]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함에 따라 영국의 모든 국가상징물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영국뿐만 아니라 같은 국가원수로 모시는 영연방 왕국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왕실 깃발부터 교체된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찰스 3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의 선수가 일치해서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선왕이었던 조지 6세의 사망 당시 사례를 보았을 때, 이미 사용 중인 화폐나 표식 등을 모두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새로 발행하는 화폐나, 기물을 수리 교체할 때 새 군주 버전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서서히 바꿔나가게 될 것이다.

남성 군주인 찰스 3세가 즉위함으로서, 국가가 God Save the Queen에서 God Save the King으로 바뀌고, 일부 영연방 국가들은 헌법을 수정해야 한다.[42]

파운드 스털링과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이 들어가는 지폐를 가진 나라들의 경우, 도안으로 그려진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이 찰스 3세의 초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지만, 이미 수많은 화폐가 유통된 상황이라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43]

캐나다 중앙은행은 당장의 화폐 변경 계획은 없으며, 화폐 변경 여부는 재무부의 결정에 따른다고 밝혔다. 다만, 이쪽은 신권이 나오고 있는 중인데 군주의 초상이 들어가는 권종이 아직 도안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그다지 문제될 건 없는 상황이다. #

12월 19일, 영란은행이 찰스 3세의 초상이 들어간 파운드 스털링 지폐 도안을 공개했으며, 2024년 중반부터 유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44] 이로써 찰스 3세는 파운드화 지폐에 초상이 들어가는 두번째 국왕이자 첫번째 남성 국왕이 되었다.

5. 조문객 명단

5.1. 영연방

5.1.1. 파일:영국 국장.svg 영국 왕실


5.1.2. 영연방 왕국

5.1.3. 영연방 기타 국가

5.2. 유럽

5.3. 아메리카

5.4. 아시아

5.5. 아프리카 및 중동

5.6. 국제 기구

5.7. 비참석 국가

6. 반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사망/반응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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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그녀의 사망은 의료진과 가족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비록 임종 전날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지만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임종 전날에도 윌리엄 왕세손 가족들은 등교 행사를 하고 있었다. # 그러다가 찰스를 비롯한 직계 자손들이 모두 급히 밸모럴로 간 것을 보면, 예상치 못한 급격한 건강의 악화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불과 몇달 전 진행된 플래티넘 주빌리에 감사미사 불참, 발코니에서의 모습 역시 2020년의 여왕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바로 이틀 전인 9월 6일 총리 임명 추인을 위한 리즈 총리와의 대면식에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고, 얼굴에도 세월로 인해 주름만 도드라졌을 뿐 또렷한 정신이었고 그 외 뚜렷하게 병색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틀동안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65]
  • 2020년까지만 해도 90대 중반의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굉장히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2019년에 불거진 차남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 2020년 해리 왕자 부부의 독립 선언과 왕실에 대한 비방성 폭로 등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던 와중에 2021년 4월 남편 필립 공과 사별한 후에 건강이 많이 쇠약해졌고[66] 이듬해 2월 코로나19에 확진되고 나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 한편 사상 최대의 국장을 치르게 된 영국의 보안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여왕의 장례식에 수백만의 군중이 밀집하고 19일 최종 장례식에는 전 세계의 국가원수 행정부 수반 등 최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세기의 장례식이기에 각종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67]

    가장 왕실을 밀접하게 경호하는 영국군 근위대[68]는 물론이고 런던광역경찰청, MI5, MI6, GCHQ 등 영국의 최정예 사법 기관과 정보 기관이 전면 투입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경찰로도 부족해서 RCMP, 호주 연방경찰, 뉴질랜드 경찰 등이 지원하고 있다.

    일단 19일 본 장례식 전후 방문하는 시민들 수도 만만치 않지만 장례식을 기점으로 영국 런던에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원수, 정부수반 외교관들로 인해 외국의 경호기관들까지 합세한다면 역대급으로 삼엄한 경계 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 이 와중에 여왕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돌아가던 찰스 3세 앞에 한 남성이 무모하게 돌진하다가, 저격수들에게 총을 맞을 뻔했던 사건도 있었다. #[69]
  • 영국의 더 가디언은 이번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됨에 따라 영국이 기술적 경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경제컨설팅 기업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 사무엘 톰스 영국 담당 수석연구원은 장례식과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9월 영국 GDP가 0.2%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장례식과 찰스 3세 대관식 비용을 합쳐 9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기사

    다만 이러한 분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실제 엘리자베스 2세 장례에 쓰이는 비용은 대략 83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70] 또한 "9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치는 AJ+라는 알자지라 산하의 소셜 미디어 소식통이 트위터에 보도한 것으로 #, 비용 산정 근거도 방식도 없이 내놓은 뇌피셜에 불과하다.[71] 이를 검증없이 보도한 채널 A 영상에 비판과 조롱하는 댓글들이 잔뜩 올라왔다.
  • 본래 BBC 월드 서비스 단파방송의 동아시아향 저녁 단파송출(9410kHz)이 한국시각 오후7시~9시인데, 9월 19일은 여왕 장례식 특별 생중계 관계로 오후6시에 송출시작하여 오후10시에 종료했다.
  • 바로 위 사건으로 중단된 노선 중 하나가 하필이면 엘리자베스선이다. 여왕 사망으로부터 불과 몇 달 전 개통한 노선이며, 그 개통식에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했었다. 결국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일에 본의아니게 열차가 하루 운행 중단된 셈이다.

    히스로 공항에서 런던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 히스로 익스프레스 크로스레일이 모두 중단되었으므로, 당연히 히스로에서 오는 조문인파도 모두 혼란에 빠졌다.
  • 장례식 시청 인구가 영국 전체 인구의 41%이다. 다이애나비 기록에는 못 미쳤다. 다만 스트리밍을 제외한 것이라 실제론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마지막 안식처를 표시하는 추모 석판이 9월 24일(현지 시각) 공개됐다. 석판 한가운데에는 금속별이 새겨졌으며 가터 기사작위를 상징한다. 기사
  • 2022년 11월 30일 동년배인 장쩌민도 세상을 떠나며 장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국가원수 둘이 한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 장례식과 관련 행사에 1억 6천 170만 파운드(약 2천690억원)를 썼다고 밝혔다. #


[1] 남편 필립 공 사후 급격히 건강을 잃었고, 2022년 2월 코로나 감염 이후 후유증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사망 기록서에 노환으로 확정되었다. [2] 영국 국왕의 상징물로 알 수 있듯이 스코틀랜드의 상징이 유니콘이기도 하다. [3] 한국으로 치면 궁궐이 아닌 기타 장소에서 사망한 국왕을 인근의 행궁으로 운구하는 것. 다만 영국은 실질적으로 한 나라지만, 명목상으론 4개 국가이 합쳐진 "연합왕국"으로, 홀리루드 궁전은 스코틀랜드 왕의 정식 법궁이다. [4] 메나이교는 웨일스 공의 영지인 웨일스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 왕실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4 9화에서 언급됐다. [5] 성인 기준으로 아무리 젊어도 20살에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는 것을 보았으면 현재 나이가 90세가 넘어가고, 인지능력이 있는 초등학생 시절에 목격하였어도 평균 수명에 근접한 최소 70대 후반의 고령이다. 해당 연령층의 대부분이 고령으로 사망했음을 고려했을 때,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를 목격한 영국 시민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 # 찰스 3세조차도 어머니의 즉위 당시에는 고작 3살이었다. 게다가 70세 이하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다. [6] 17대 공작이 16대 공작의 6촌이기 때문에, 직계 후손은 아니다. [7] 영국의 시간대는 대한민국과 9시간 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무렵의 영국은 서머타임을 쓴다. [8] 대한민국 표준시(UTC+9) 기준으로는 9월 9일 오전 2시 30분이다. [9] 이 뉴스를 보도한 앵커인 휴 에드워즈(Huw Edwards)는 웨일스 출신으로 1984년 BBC에 입사해서 2003년부터 현재까지 BBC News at Ten의 메인 앵커를 맡고 있다. 여왕의 신변에 관한 소식인 만큼 이날 특별 방송 체제가 꾸려진 직후 뉴스를 진행했고, 이후 직접 여왕의 사망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10] 여왕 사망 직전 BBC 각 채널들의 방송. # BBC Two는 뉴스를 편성하지 않고 여성 육상경기를 보여주었는데 출발선에 선수들이 등장할 때 딱 정규방송이 종료되었다. 스코틀랜드 게일어 방송인 BBC Alba는 땡땡의 모험 스코틀랜드 게일어 더빙판을 틀고 있었다. [11] 담화문의 내용은 아래 '반응'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12] 타고 온 항공기는 등록번호 G-LEGC, 엠브라에르 ERJ-135BJ Legacy 600으로 영국의 VVIP 여객 수송 항공사인 Luxaviation UK 사의 비즈니스 제트기다. 런던에서 다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이동할 때도 노솔트 공군기지에서 이 항공기를 이용했다. [13] 조의와 추모를 표하기 위한 예포를 말한다. [14] 또한 기술의 발달로 역사상 처음으로 고해상도 카메라 및 컬러로 방송되는 영국의 국왕 선포식이다. [15] 대한민국 대통령도 취임 당일 오전 0시를 기해 신임 대통령이 한국군의 최고 작전사령관인 합동참모의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며 전군의 경계 및 작전준비태세 보고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군 통수권을 이양받으므로 취임식 이전부터 이미 대통령 임기가 개시된다. [16]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 이안 블랙포드 스코틀랜드 국민당 서민원 원내대표, 에드 데이비 자유민주당 당수 [17] 국가 차원에서 열리는 장례식과는 별개로 진행하는 장례식이다. [18] 호주의 도시가 아닌 이름의 유래가 된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도시 [19] 영연방 왕국 소속 국가들은 상대국에 보내는 외교사절을 대사가 아닌 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으로 지칭한다. 즉 찰스 3세가 만난 사절들은 사실상의 각국 대사들이다. 영연방을 주도하는 영국에 파견하는 사절만 고등판무관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영연방 왕국 끼리의 외교사절도 고등판무관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주 캐나다 호주 대사의 공식 명칭은 High Commissioners of Australia to Canada. 그래서 영국의 외무부도 그냥 외교부가 아닌 외무영연방 개발부(Foreign, Commonwealth and Development Office)다. [20] 추도식 자체는 영상 14분 40초부터 진행된다. [21] 여성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은 프린세스 로열 앤 영국 해군대장 예복을 착용하여 영국에서 소소한 화제거리가 되었다. [22] Vigil of the Princes(직역: 왕자들의 철야)라고 하며 자식들이 10~20분 정도 관 주변에 서서 지키는 의식이다. #. 당연히 개신교에서 하는 그런 철야기도가 아니라, 성공회 성무일과의 밤기도 양식이다. 밤을 새는 것은 성목요일 성체수직과 유사하다. [23] 관 위에 있는 왕관은 스코틀랜드의 왕관이다. [24] 국무 장관을 접견하는 사유는 현재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25] 해당 기체의 등록번호는 ZZ177이다. [26] 여담으로 엘리자베스 2세를 수송한 항공편인 KRF01R은 기존의 SPAR19의 기록을 깨고 Flightradar24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추적한 항공편이 되었다. [27]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28] 실제로는 14시 10분 즈음부터 다시 열기 시작하였다. [29] 베컴 역시 12시간 정도를 대기했다. [30] Vigil of the Princes(직역: 왕자들의 철야)라고 하며 자식들이 10~20분 정도 관 주변에 서서 지키는 의식이다. #. 당연히 개신교에서 하는 그런 철야기도가 아니라 성공회 성무일과의 밤 기도 양식이다. 밤을 새는 것은 성 목요일 성체수직과 유사하다. [31] 실제로는 16시 45분 즈음에 이미 추가로 받지 않았다. [32] 해리 왕자는 본래 왕실에서 물러났기에 군 예복이 허락이 되지 않았으나 철야기도 때는 찰스 3세의 특별 요청으로 착용이 가능했다. [33] 이전에는 자손들만 참여했으며, 그나마도 아들들만 참여하였다. [34] 실제로 9월 17일과 18일 양일 간 히드로 공항은 상당히 혼잡했는데, 조문 인파도 조문 인파지만 그 날이 영국 대학교들의 기숙사 입주일이기도 하여 수많은 유학생들의 입국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공항 측에서는 학생비자 소지자들을 입국심사대 뒤쪽에 따로 줄 세워두고 일반 입국자 위주로 먼저 입국심사를 진행했기에 학생비자 소지자들은 이날 입국심사대에서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35] 한국 시간으로 오후 7시에 시작되었다. [36] 나루히토는 즉위하자마자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해외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장례식 참석이 첫 해외 방문이 된다. 장례식에는 기시다 총리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아래 참석자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영국은 입헌군주국에 대해서는 왕실에만 초청장을 보냈고, 이는 일본에도 해당된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가 이러한 의전 규칙을 모른 채 영국에서 조문외교를 한다고 밝혔지만, 주일 영국 대사관의 연락을 받고서야 뒤늦게 대상자가 아님을 깨닫고 취소한 것. [37] 2021년 영국 의원들이 중국의 위구르족 집단수용과 강제교화 등을 강하게 비난하자 중국 당국은 즉시 하원의원 5명, 상원의원 2명 등이 포함된 영국인 9명에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의 제재를 내렸다. 이에 린지 호일 하원의장은 대사 등 중국 공무원의 의사당 출입을 1년 간 금지시키며 맞섰다. 금지령이 아직 안 풀리기도 했었만 호일 의장이 조문이란 명분에도 중국 외교단의 의사당 출입을 거듭 거부한 것이다. [38] 새 국왕은 말할 것도 없고, 트러스 총리도 불과 여왕 사망 이틀 전에 취임한 새 총리다. 국왕과 총리 모두 눈 앞에 둔 현안이 산적해 있고, 세계 정세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외교 데뷔전을 이 날 치르게 되는 셈.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회담 요청이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39] 애초에 국호 자체가 "United Kingdom"이다. [40] 조지 6세 시대, 조지 5세 시대, 극소수는 에드워드 7세 시대 출생이 2022년 기준으로 살아있었다. [41] 쇼와 덴노 역시 사망 시점인 1989년 기준으로 못해도 70대 이상의 사람들만 그 이전 시대인 다이쇼 시대, 메이지 시대를 기억했다. [42]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헌법에 새 국왕의 승계를 규정해 문제가 없지만, 일부 국가는 '여왕'으로 되어 있어 개헌이 필요하다. # [43] 동전은 찰스 3세의 초상이 들어간 새 도안이 발표됐지만, 지폐의 경우 파운드 스털링에 국왕의 초상이 들어간 것이 엘리자베스 2세 시절부터(1959~)인 관계로 이전 왕 시대의 전례가 존재하지 않는지라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44] 다만 기존에 발행되어 멀쩡히 사용 중인 엘리자베스 2세 도안 지폐를 일부러 회수하지는 않으며, 지폐의 총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 내지는 사용불능 판정을 받은 지폐의 교체 목적으로만 발행한다. 찰스 3세 국왕이 환경에 관심이 많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선왕에 대한 지지가 워낙 넘사벽이라(...) 최대한 적게 발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침 2016년부터 파운드 스털링 지폐가 폴리머 재질로 점차 교체되어, 여왕의 초상을 담은 지폐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45] 캐나다 국왕, 호주 국왕, 뉴질랜드 국왕 등. [46] 최연소 참석자 [47] 여동생 마거릿 공주의 아들 [48] 여동생 마거릿 공주의 딸 [49] 이름은 마리 크리스티네. [50] 캐나다 국민훈장 수훈자 자격으로 조문단에 합류했다. [51]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참석하지 않는다. 인도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인인만큼 사실상 정치적인 불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52] 엘리자베스 2세의 8촌.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의 여동생. 역시 엘리자베스 2세와 8촌인 남편 콘스탄티노스 2세 전 국왕은 건강상 불참 [53] 엘리자베스 2세의 8촌이다. 현재는 전 국왕. [54] 엘리자베스 2세의 6촌이다. [55] 엘리자베스 2세의 9촌이다. 미하이 1세의 장녀 [56] 엘리자베스 2세의 8촌. [57] 엘리자베스 2세의 8촌. [58] 엘리자베스 2세의 8촌. [59]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와의 전쟁 수행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60]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위해 여왕의 장례식 기간에 주영 브라질 대사관저 발코니에서 선거운동을 해 논란이 일었다. [61] 외교적 특성상 공식적인 초청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켈리 셰 대표부장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 대신 장례식에 참여했다. 웨스트민스터 홀 입장이 거부된 중국 측 인사인 왕치산과 달리 대만 대표부 소속 직원들은 웨스트민스터 홀 입장이 허용되었다. [62] 러시아와 달리 장례식 초청은 받았으나 웨스트민스터 홀 입장은 거부되었다. 이에 대해 린지 호일 하원 의장, 리즈 트러스 총리,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 제임스 클레벌리 외무장관의 의중이 있다는 분석도 존재했다. 반대로 외교 특성상 초청 받지 못한 대만 측 인사들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홀 입장은 허용되었다. [A] 런던에 대사관이 있는 경우 * [A] [65] 파일:20220908_014409.jpg 단 이때 유독 오른손 손등이 시커멓게 변색됐는데 이것을 건강 이상 징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66] 가족의 죽음은 사람을 큰 고통에 빠지게 만든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하다. 실제로 101세 넘게 장수하던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도 작은딸 마거릿 공주의 죽음으로 앓고 있던 감기 증상이 악화하여 마거릿 공주 사망 2개월 뒤에 사망하였다. [67] 실제로 이런 상황을 다룬 런던 해즈 폴른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68] 여기서 영국군 외에도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역시 자국 의장대를 파견했다. [69] 국장으로 인해 영국군 영국 모든 경찰들이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장례식 길목마다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하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런 돌발행동을 했다간 총에 맞아도 할 말 없다. 국가원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70] 링크된 기사에는 $10.1 million, 즉 1,010만불로 나와 있으나 이 기사가 미국 기사가 아니라 뉴질랜드 기사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저 수치는 뉴질랜드 달러로 환산해야 하므로, 140억원이 아니라 83억원 가량으로 계산이 된다. [71] 아랍의 봄 당시 활약으로 인해 얻은 이미지와는 달리, 알자지라는 어느 정도의 가짜뉴스나 음모론 보도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짧은 글에 근거없는 내용만 던지기 일수인 AJ+는 말할 것도 없다. [72] 스완지, 카디프, 브리스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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