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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10월 8일 ([age(1958-10-08)]세) |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익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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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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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제13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 ||
2019년 12월 1일 ~ 현직 | |||
서명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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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99><colcolor=#ffc224> 부모 |
아버지 에른스트 알브레히트[1] 어머니 아델 스트로메이어[2] |
|
형제자매 |
남동생 한스홀거 알브레히트[3] 외 6명 |
||
배우자 | 하이코 폰 데르 레이엔[4] (1986년 결혼) | ||
자녀[5] |
장남 데이비드 폰데어라이엔(1987년생) 장녀 소피 폰데어라이엔(1989년생) 차녀 도나타 폰데어라이엔(1992년생) 삼녀 빅토리아 폰데어라이엔(1994년생) 사녀 요한나 폰데어라이엔(1994년생) 차남 에그몬트 폰데어라이엔(1998년생) 오녀 그라시아 폰데어라이엔(1999년생) |
||
학력 |
괴팅겐 대학교 (
경제학 /
중퇴) 뮌스터 대학교 (경제학 / 중퇴)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경제학 / 중퇴) 하노버 의과대학 ( 의학 / MD) 하노버 의과대학 ( 공중보건학 / 석사) |
||
신체 | 161cm | ||
직업 | 정치인, 전 의사 | ||
종교 | 루터교 | ||
정당 |
{{{#!wiki style="display: inline; background-color: currentcolor;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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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하노버 의과대학 부속병웡 여성클리닉 보조의사 하노버 의과대학 역학, 사회의학 및 보건시스템 교수 독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독일 노동부 장관 독일 연방방위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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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의사 출신 정치인. 現 제13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다.2. 생애
벨기에의 익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 정치인으로 니더작센 주총리와 연방상원 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에른스트 알브레히트 #인데, 벨기에에서 근무하던 중 태어난 것. 알브레히트 가문은 비록 귀족은 아니었으나 하노버 왕국의 유력한 가문이었다.생애 초반에는 의사로 일했다. 원래 괴팅겐대, 뮌스터대, 런던정경대를 다니며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모두 중퇴했고(1977-1980년), 하노버 의과대학을 87년 졸업한 뒤 의사로 일했다. 1992년 MD를, 2001년 공중보건석사(MPH)를 받았다. 이후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하였다.[6] 1986년에는 역시 의사인 헤이코 폰데어라이엔[7]과 결혼했다.
3. 정치 활동
3.1. 독일
2003년 니더작센주의원 당선으로 첫 정치 경력을 시작한 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앙겔라 메르켈의 메르켈 내각에서 독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을 역임하고, 2009년 연방의회 의원이 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국방장관으로서 모토는 "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라는 것이다. 때문에 사병들의 복지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다.다만 정작 독일 연방군의 군 주요인사들에겐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군인에 대한 복지가 좋아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전에 훈련, 전투 준비를 비롯한 각종 장비의 구입과 관리 등에도 예산이 필요한데 현재 독일 국방부의 예산이 군인의 복지에 치중되어 있어 전쟁의 준비가 소홀해졌다는 의견 때문이다. 현재 독일군의 각종 군사장비 가동률은 땅을 치고 있으며 유럽합동훈련 때 초과근무수당 지급할 예산이 없다고 조기복귀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실정이다. 군인의 가장 중요한 일이 언제든지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점이라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대책이 필요한 편.
3.2. 유럽연합
현재 독일의 거물급 정치인이자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잇는 차세대 총리 후보로 각광 받고 있으며 독일 내에서는 상당히 명망이 높다. 관련기사. 2019년 12월 1일부터 EU 집행위원장의 임기를 시작했다.집행위원장 추천 과정에서 EU 정상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후보 선정에 난항이 많았는데 추천된 사람들의 자질에 대한 잡음이 있는 편이다. 영상
최근에 의대 교수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화이자 CEO 에게 지속연락하여 유럽연합을 위한 백신 18억 도스를 확보하며 잡음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강력한 우크라이나 지지와 대러제재 가지는 반면 극우정권에 대한 우려 메세지, 환경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가지는 등 기존의 집행위원장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본인이 6년 동안이나 있었던 국방장관 재임 기간 동안, 독일 연방군의 방치에 가까운 상태가 이제서야 제대로 드러나면서, 중, 동유럽 국가들은 공동방위에 있어 독일에 대한 불신이 한층 심해져 이 부분은 비판받고 있다.
2023년 1월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란 혁명 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2023년 5월 19일~21일 일본 히로시마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2일 한-EU 정상회담을 위해 샤를 미셸 상임의장과 함께 방한했다. EU의 투톱인 집행위원장·상임의장이 동시 방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사람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 #
차기 나토 수장으로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 # 그러나 본인은 나토 수장 대신 EU 집행위원장 연임을 택했다.
2024년 6월 27일, EU 정상회의에서 차기 EU 집행위원장 후보로 본인을 추천하기로 확정되어 연임 문턱을 넘었다. 유럽의회 1, 2, 4위 정치그룹인 중도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 자유당그룹(Renew Europe) 간 협상에서 도출된 잠정 합의 결과가 그대로 승인된 것이다. # 7월 열릴 유럽의회 본회의 인준투표에서 720석의 과반인 361표 이상을 얻으면 연임이 확정된다. 본인에게 우호적인 EPP와 S&D, 자유당그룹의 의석수를 합치면 399석으로 과반이나, 무기명투표 특성상 이탈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
2024년 7월 18일,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인준투표가 열리기 직전에 50분가량 연설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노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산업 경쟁력도 유지하겠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기후위기 규제 강화 요구와 친기업 정책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나토가 여전히 유럽 집단방위의 근간이라면서도 "유럽 국방 동맹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일환으로 국방 담당 집행위원직 신설, 국방 미래 백서 발간 등을 약속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는 '변함없는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방러에 대해서 실명은 거론하지 않고 비판했다. # #
그리고 이날 진행된 인준투표에서 전체 720표 가운데 찬성 401표, 반대 284표, 기권 15표, 무효 7표로 과반을 안정적으로 넘겨 5년 연임을 확정지었다. 참고로 5년 전 2019년에는 불과 9표 차이로 간신히 집행위원장이 되었는데, 폰데어라이엔의 대안이 될 후보가 사실상 전무했던 데다 러우전쟁 등으로 유럽 안팎의 정세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안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 # 특히, 이탈리아의 형제들 포함한 일부 의원 반대하는 것에 대한 역풍이 있다. #
9월이 돼서야 6명의 수석 부집행위원장과 20명의 집행위원 등 후보 26명 명단을 발표했다. # 11월 27일. 내각 승인안을 찬성 370명, 반대 282명, 기권 36명으로 유럽의회에서 승인되었다. # 이는 1993년 위원단에 대한 투표권을 얻은 이래로 의회에서 가장 적은 지지를 받았다.
4. 기타
7남매 중 한 명이며, 슬하에도 자녀가 7명(2남 5녀)이나 있다.
[1]
1930년 6월 29일 출생, 2014년 12월 13일 사망(향년 84세). 전
니더작센 주총리, 전
연방상원 의장
[2]
1928년 출생, 2002년 사망
[3]
1963년 7월 29일 출생. 전
Deezer CEO
[4]
1955년 6월 2일 출생.
의사이자
오어제네시스의 의료부문 이사이다.
[5]
삼녀와 사녀는 쌍둥이이다.
[6]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하노버의대 부속병원 여성클리닉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휴직하고 주부로 지냈다. 1996년부터는 지역 정치에 관여했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진 하노버의대에서 수업을 했다.
[7]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귀족 출신이다.
비단 산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18세기에 세습
남작 작위를 획득한 집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