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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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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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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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2008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
2009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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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d0ad67>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황태환 OB 베어스 |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
<rowcolor=#d0ad67>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
<rowcolor=#d0ad67>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
이상훈 LG 트윈스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
<rowcolor=#d0ad67>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
신윤호 LG 트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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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송진우 한화 이글스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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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김광현 SK 와이번스 |
로페즈 KIA 타이거즈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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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해커 NC 다이노스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
<rowcolor=#d0ad67>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미란다 두산 베어스 |
|
<rowcolor=#d0ad67> 2022 | 2023 | ||||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페디 NC 다이노스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페어플레이상 역대 수상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d0ad67>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
최기문 롯데 자이언츠 |
김기태 SK 와이번스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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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이숭용 현대 유니콘스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강봉규 삼성 라이온즈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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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
김선우 두산 베어스 |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
박용택 LG 트윈스 |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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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
김재호 두산 베어스 |
유한준 kt wiz |
김광현 SK 와이번스 |
채은성 LG 트윈스 |
나성범 NC 다이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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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21 | 2022 | 2023 | 2024 | 2025 | |
고영표 kt wiz |
이지영 키움 히어로즈 |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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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MVP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dba628>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투수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포수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투수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투수· 내야수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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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
|
<rowcolor=#dba628>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
김상호 OB 베어스 / 외야수 |
구대성 빙그레 이글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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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우즈 OB 베어스 / 내야수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박경완 현대 유니콘스 / 포수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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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투수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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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투수 |
김광현 SK 와이번스 / 투수 |
김상현 KIA 타이거즈 / 내야수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내야수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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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테임즈 NC 다이노스 / 내야수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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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투수 |
김재환 두산 베어스 / 외야수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투수 |
로하스 kt wiz / 외야수 |
미란다 두산 베어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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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2022 | 2023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
페디 NC 다이노스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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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2010~2015 월간 MV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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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4월 | 5월 | 6월 | 7월 | 9월 | 10월 |
2010 시즌 | ||||||
카도쿠라 SK 와이번스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송승준 롯데 자이언츠 |
|
2011 시즌 | ||||||
박용택 LG 트윈스 |
이병규 LG 트윈스 |
가르시아 한화 이글스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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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즌 | ||||||
정성훈 LG 트윈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이호준 SK 와이번스 |
서재응 KIA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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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즌 |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옥스프링 롯데 자이언츠 |
손민한 NC 다이노스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
2014 시즌 | ||||||
유희관 두산 베어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찰리 NC 다이노스 |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a] | |
2015 시즌 | ||||||
안영명 한화 이글스 |
이호준 NC 다이노스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해커 NC 다이노스 |
정의윤 SK 와이번스 |
|
[a]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으로 인한 브레이크로 MVP 미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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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다승 1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24승 |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30승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27승 |
김시진·
김일융 삼성 라이온즈 / 25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4승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23승 |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 18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2승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9승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송진우 빙그레 / 19승 |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승 |
이상훈 LG 트윈스 / 18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8승 |
이상훈 LG 트윈스 / 20승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승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18승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20승 |
김용수 LG 트윈스 / 18승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20승 |
김수경·
임선동·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8승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5승 신윤호 LG 트윈스 / 15승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키퍼 KIA 타이거즈 / 18승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7승 |
레스 두산 베어스 / 17승 리오스 KIA 타이거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7승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8승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승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2승 |
김광현 SK 와이번스 / 16승 |
로페즈 KIA 타이거즈 / 14승 윤성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조정훈 롯데 자이언츠 / 14승 |
김광현 SK 와이번스 / 17승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17승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17승 |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세든 SK 와이번스 / 14승 |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20승 |
해커 NC 다이노스 / 19승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2승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양현종·
헥터 KIA 타이거즈 / 20승 |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18승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0승 |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20승 |
뷰캐넌 삼성 라이온즈 / 16승 요키시 키움 히어로즈 / 16승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켈리 LG 트윈스 / 16승 |
페디 NC 다이노스 / 20승 |
곽빈 두산 베어스 / 15승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 15승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평균자책점 1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1.82 |
하기룡 MBC 청룡 / 2.33 |
장호연 OB 베어스 / 1.58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70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99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9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21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7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3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55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2.33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 |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2.15 |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1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8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1.88 |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 1.86 |
임창용 삼성 라이온즈 / 2.14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2.77 |
박석진 롯데 자이언츠 / 2.98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엘비라 삼성 라이온즈 / 2.50 |
바워스 현대 유니콘스 / 3.01 |
박명환 두산 베어스 / 2.50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2.46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2.23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07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33 |
김광현 SK 와이번스 / 2.80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2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45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나이트 넥센 히어로즈 / 2.20 |
찰리 NC 다이노스 / 2.48 |
밴덴헐크 삼성 라이온즈 / 3.18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2.44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95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피어밴드 kt wiz / 3.04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88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2.29 |
요키시 키움 히어로즈 / 2.14 |
미란다 두산 베어스 / 2.33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2.11 |
페디 NC 다이노스 / 2.00 |
네일 KIA 타이거즈 / 2.53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탈삼진 1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 141K |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220K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223K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210K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4K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163K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20K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98K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89K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0K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이강철 해태 타이거즈 / 155K |
김상엽 삼성 라이온즈 / 170K |
정민철 한화 이글스 / 196K |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 163K |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221K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정민철 한화 이글스 / 160K |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 183K |
김수경 현대 유니콘스 / 184K |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 174K |
에르난데스 SK 와이번스 / 215K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김진우 KIA 타이거즈 / 177K |
이승호 LG 트윈스 / 157K |
박명환 두산 베어스 / 162K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147K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47K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204K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78K |
김광현 SK 와이번스 / 150K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50K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7K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178K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210K |
리즈 LG 트윈스 / 188K |
밴덴헐크 삼성 라이온즈 / 180K |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 194K |
보우덴 두산 베어스 / 160K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켈리 SK 와이번스 / 189K |
샘슨 한화 이글스 / 195K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189K |
스트레일리 롯데 자이언츠 / 205K |
미란다 두산 베어스 / 225K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224K |
페디 NC 다이노스 / 209K |
하트 NC 다이노스 / 182K |
|||
* 탈삼진왕은 1993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승률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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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박철순 OB 베어스 / 0.857 |
이길환 MBC 청룡 / 0.682 |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 0.833 |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0.833 윤석환 OB 베어스 / 0.833 |
최일언 OB 베어스 / 0.826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
윤석환 OB 베어스 / 0.813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6 |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26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오봉옥 삼성 라이온즈 / 1.000 |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0.813 |
김홍집 태평양 돌핀스 / 0.800 |
이상훈 LG 트윈스 / 0.800 |
구대성 한화 이글스 / 0.857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0.909 |
김수경 현대 유니콘스 / 0.750 김용수 LG 트윈스 / 0.750 |
문동환 롯데 자이언츠 / 0.810 |
송진우 한화 이글스 / 0.867 |
갈베스 삼성 라이온즈 / 0.714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0.714 신윤호 LG 트윈스 / 0.714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김현욱 삼성 라이온즈 / 1.000 |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0.895 |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0.895 |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0.909 |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 0.778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리오스 두산 베어스 / 0.815 |
채병용 SK 와이번스 / 0.815 |
김광현 SK 와이번스 / 0.857 |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 0.833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0.773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탈보트 삼성 라이온즈 / 0.824 |
류제국 LG 트윈스 / 0.857 |
소사 넥센 히어로즈 / 0.833 |
해커 NC 다이노스 / 0.792 |
니퍼트 두산 베어스 / 0.880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헥터 KIA 타이거즈 / 0.800 |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0.857 |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0.870 |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0.909 |
수아레즈 LG 트윈스 / 0.833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엄상백 kt wiz / 0.846 |
쿠에바스 kt wiz / 1.000 |
박영현 kt wiz / 0.833 |
2011 일구상 최고 투수상 |
{{{#!wiki style="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C5ABB 0%, #FFF 20%, #FFF 80%, #2C5ABB); 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김상현 , KIA 타이거즈 / 내야수, |
이대호 , 롯데 자이언츠 / 내야수, |
윤석민 , KIA 타이거즈 / 투수, |
박병호 ,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박병호 ,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
서건창 ,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박병호 ,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
최형우 ,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
양현종 , KIA 타이거즈 / 투수, |
김재환 , 두산 베어스 / 외야수, |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
양현종 , KIA 타이거즈 / 투수, |
최형우 , KIA 타이거즈 / 지명타자, |
이정후 ,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
이정후 ,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
노시환 , 한화 이글스 / 내야수, |
좋아하는 국내외 활동 야구 선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한국갤럽은 매년 초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국내외 활동 야구 선수'를 선정하고 있다. |
2000년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5년 | ||||
※ 2010년 이후의 공식 발표 자료만 남아 있어 5위까지만 확인 가능.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박찬호 | 최희섭 | 이승엽 | 김병현 | 이종범 | |
2008년 | |||||
※ 2010년 이후의 공식 발표 자료만 남아 있어 5위까지만 확인 가능.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공동 5위 | |
이승엽 | 박찬호 | 양준혁 | 이대호 | 김병현 / 이종범 |
2010년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10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이종범 | 이대호 | 양준혁 | 김현수 | 최희섭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류현진 | 김상현 | 봉중근 | 강민호 | 이용규 | |
2011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이용규 | 류현진 | 이종범 | 홍성흔 | 김광현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강민호 | 김현수 | 김상현 | 이용규 | 최희섭 | |
2012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박찬호 | 이승엽 | 이대호 | 추신수 | 류현진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종범 | 김태균 | 김병현 | 윤석민 | 홍성흔 | |
2013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류현진 | 이승엽 | 이대호 | 추신수 | 강민호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공동 9위 | ||
이용규 | 윤석민 | 홍성흔 | 김태균 / 오승환 | ||
2014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공동 5위 | |
류현진 | 추신수 | 이대호 | 이승엽 | 강민호 / 윤석민 | |
<rowcolor=#fff> 7위 | 8위 | 9위 | 10위 | ||
오승환 | 이병규 | 김태균 | 김현수 | ||
2015년 | |||||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 |||||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류현진 | 추신수 | 이대호 | 오승환 | 강정호 | |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공동 2위 | 공동 4위 | |||
이승엽 | 강민호 / 윤석민 | 박병호 / 김태균 / 홍성흔 | |||
<rowcolor=#fff> 7위 | 8위 | 공동 9위 | |||
손아섭 | 김현수 | 양현종 / 김광현 | |||
2016년 | |||||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 |||||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류현진 | 추신수 | 이대호 | 박병호 / 강정호 | ||
<rowcolor=#fff> 6위 | 7위 | ||||
김현수 | 오승환 | ||||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이승엽 | 강민호 | 이용규 | 양현종 / 김태균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공동 10위 | |
김광현 | 윤석민 | 이병규 | 손아섭 | 구자욱 / 정근우 / 나성범 | |
2017년 | |||||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 |||||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2위 | 공동 3위 | |||
류현진 | 추신수 | 김현수 / 박병호 / 오승환 | |||
<rowcolor=#fff> 6위 | 7위 | ||||
강정호 | 황재균 | ||||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이대호 | 이승엽 | 강민호 | 이용규 | 김태균 | |
<rowcolor=#fff> 6위 | 공동 7위 | 9위 | 10위 | ||
정근우 | 김광현 / 양현종 | 서건창 | 손아섭 | ||
2018년 | |||||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 |||||
※ 2018년은 해외파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만 선정. 2019년은 좋아하는 선수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 | |||||
<rowcolor=#fff> 1위 | 2위 | 공동 3위 | 공동 5위 | ||
이대호 | 양현종 | 김선빈 / 김태균 | 김광현 / 김현수 | ||
<rowcolor=#fff> 7위 | 공동 8위 | 10위 | |||
강민호 | 박병호 | 손아섭 | 나성범 |
2020년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20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공동 3위 | 공동 5위 | ||
류현진 | 추신수 | 이대호 / 이정후 | 김광현 / 양현종 | ||
<rowcolor=#fff> 공동 7위 | 9위 | 10위 | |||
최지만 / 박병호 | 김태균 | 양의지 | |||
2021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추신수 | 류현진 | 이대호 | 김광현 / 양현종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정후 | 양의지 | 김하성 | 최지만 | 손아섭 | |
2022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류현진 | 추신수 | 이정후 | 김광현 | 이대호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양현종 | 구자욱 | 나성범 | 양의지 | 강백호 | |
2023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이정후 | 류현진 | 김하성 | 추신수 | 김광현 | |
<rowcolor=#fff> 공동 6위 | 8위 | 공동 9위 | |||
양현종 / 양의지 | 최지만 | 김현수 / 최정 | |||
2024년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공동 5위 | |
류현진 | 이정후 | 김하성 | 추신수 | 문동주 / 양현종 | |
<rowcolor=#fff> 7위 | 8위 | 공동 9위 | |||
오지환 | 손아섭 | 전준우 / 구자욱 |
같이 보기: 올해를 빛낸 스포츠 선수 | }}}}}}}}} |
}}} ||
윤석민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 ||||
오봉옥 (2002~2003) |
→ |
윤석민 (2005~2009) |
→ |
조태수 (2010~2012)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 |||||
조태수 (2009) |
→ |
<colbgcolor=#091231><colcolor=#ffffff> 윤석민 (2010) |
→ |
(2011~2012)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 |||||
손영민 (2010) |
→ |
윤석민 (2011~2013) |
→ |
송은범 (2014)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 |||||
곽정철 (2014) |
→ |
윤석민 (2015~2017) |
→ |
이윤학 (2018)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 |||||
유재신 (2017.7.31.~2017) |
→ |
윤석민 (2018~2019) |
→ |
김민식 (2020~2022.5.8.) |
A대표팀 참가 경력 | ||||||||||||||||||||||||||||||||||||||||||||||||||||||||||||||||||||||||||||||||||||||||
|
윤석민 尹錫珉 | Yoon Suk-min |
|||
출생 | 1986년 7월 24일 ([age(1986-07-24)]세) |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 |||
거주지 | 경기도 용인시[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구리초등학교 (졸업)[2] 인창중학교 (졸업) 야탑고등학교 (졸업)[3] |
||
신체 | 185cm, 85kg, B형 | ||
포지션 | 투수[4]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2005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KIA) | ||
소속팀 |
KIA 타이거즈 (2005~2013)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2014)
|
||
해설위원 |
SPOTV 야구 해설위원 (2022) TVING 야구 해설위원 (2024) 2024 WBSC 프리미어 12 특별 해설위원 ( SPOTV Prime) |
||
병역 |
예술체육요원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배우자 | 김수현[5](2017년 12월 9일 결혼 - 현재) | |
자녀 |
장남 윤여준(2016년생) 차남 윤여찬(2018년생) |
||
가족 |
아버지[6], 어머니 장모 김예령(1966년 3월 4일생) 6촌 윤석영 |
||
본관 | 파평 윤씨 | ||
응원가 | 싸이 - 아버지[가사][듣기] | ||
종교 | 무종교 → 개신교[9] |
| | |
[clearfix]
1. 개요
"남들은 나보고 운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KIA 타이거즈 같은 명문팀에서 1선발로 뛰고 있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2007년 암울한 KIA 타선과 수비로 최다패를 기록했을 때
2007년 암울한 KIA 타선과 수비로 최다패를 기록했을 때
대한민국의 방송인이자 前 KIA 타이거즈 소속 우완 투수.
KIA 타이거즈의 암흑기에 데뷔하여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의 기둥이 되어 활약한, KIA로 팀명이 바뀐 후 탄생한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이자 레전드[10]이다. 주축 투수로 팀의 12년만의 V10에 큰 기여를 하였고, 2011년에는 리그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 및 21세기 투수로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빼어난 속구, 슬라이더를 비롯하여 다양한 구종으로 국가대표에 여러 번 발탁되어 총 38⅔이닝 평균자책점 1.39라는 매우 뛰어난 성적 #을 거뒀다.
2007년에는 꼴지를 하며 엘롯기로 조롱당하던 팀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맡았는데, 이 때 윤석민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류윤김'으로 불리며 류현진, 김광현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다.[11]
2000년대 중반까지 우완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영수, 박명환, 손민한이 부상으로 부진하며, 프로야구에 뛰어난 우완 선발이 거의 없다시피하던 시점에 등장하였다. 이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에서 꾸준히 던져주는 우완 투수들은 대부분 외국인 선수인 상황에서, 송은범과 함께 선발, 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여 정통파 우완의 자존심을 세우던 선수였다.[12]
2014년 미국 무대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2015년에 KIA로 돌아와 1년간 마무리 보직을 맡으며 시즌 30세이브를 올리는 등 활약했다. 그러나 예전부터 지속되었던 어깨 통증으로 이듬해부터 고전했고, 우리나라에선 수술이 불가하여 일본에 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재기하지 못해[13] 2019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년 후인 2021년 5월 30일 광주 kt전에서 'UNTOUCHA 2 1E'이라는 이름으로 은퇴식을 가졌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윤석민(투수)/선수 경력 |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은퇴식 |
2014년 | ||||
2006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3년 |
3. 피칭 스타일
주력 구종은 시속 156km/h 까지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과 복수의 서클 체인지업이며 간간이 슬라이더를 곁들인다. 선발 투수임에도 구속이 매우 빠른 투수였는데, 평균 구속 140대 중반(시즌마다 차이가 있으나 선발투수로 뛰던 전성기 시절 대부분의 통계상 평균구속은 144~146km/h사이에서 집계된다.)에 최고 구속이 156km였으므로 전성기의 배영수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이때는 배영수의 전성기에 비해 몇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에 당연히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토종 선발투수였다. 커브도 궤적이나 제구 모두 좋은 편이지만 2011년을 기점으로 사용 빈도가 낮아졌다. 팜볼, 슬러브 같은 온갖 변화구는 물론 투심, 싱커 같은 변형 패스트볼까지 실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그걸로도 재미를 보던 투수였지만, 마찬가지로 2011년을 기점으로 사용 빈도가 확 낮아졌다. 2011년을 기점으로는 높은 아웃 코스에서 주로 사용하여 직구처럼 보이게 하다가 살짝 떨어져서 루킹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데 주로 사용하는 130km 중후반대의 낙폭이 큰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 존에서 뚝 떨어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낙폭이 작은 140km/h 대의 고속 슬라이더[14] 두 개를 주로 사용한다.
사실 윤석민의 패스트볼 구위는 A급은 아니나[15] 워낙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다른 구종을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양준혁 등 일부 전문가들[16]은 윤석민의 서클 체인지업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네수엘라전에서는 파워피처가 아닌 팔색조 투구로 미겔 카브레라, 바비 아브레우를 비롯한 올스타급 라인업의 베네수엘라 타자들을 농락했지만, 그중에서도 서클 체인지업이 독보적으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9년 WBC 당시 윤석민에 대한 평가 및 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구종 분석) 그러나 '윤석민은 슬라이더'라는 세간의 평가와, 2011년을 기점으로 파워피쳐로 노선을 완전히 변경한 이후로부터는 더 이상 체인지업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미국에서의 실패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이도 상당수 있다.[17]
KBO 기준에서야 구위와 무브먼트라는 상대적 약점을 빠른 구속과 제구로 커버하는 게 가능했지만, 미국 기준에서는 결코 빠른 구속이 아니었기에 구위와 무브먼트 문제만 부각되었기 때문. 미국 기준에서는 슬라이더만 노리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자신의 최대 장점이었던 레퍼토리가 역으로 족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류현진이 MLB에서 주 구종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 구종을 추가하는 등 꾸준히 변화하여 MLB의 타자들을 이겨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나마도 노포크 시절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2013년 부상으로 인해 위력이 국내에서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낙폭이 적은 커터성 슬라이더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구종의 무브먼트 감소는 가뜩이나 슬라이더를 노리고 들어오는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어 피홈런 증가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여러 가지 구종을 잘 던지는 유형의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예로 프로야구매니저의 윤석민 카드를 보면 각종 구종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 일단 본인이 구종을 배우는 데 열심이고 실전에서 한 번씩 사용해보긴 하기 때문.[18] 또 본인의 시그니쳐 구종인 슬라이더를 15분만에 익힐정도로 손감각 역시 좋기로 정평이 나있었다고 한다. 2008~10시즌 때는 그 류현진과 비견될 정도의 손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을 정도. 일례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훈련 중 임태훈에게 포크볼을 전수받기도 했으며, 2011 시즌에는 팀에 영입된 이범호를 통해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19] 그립을 전해받아서, 자신만의 포크볼 그립을 만들어 활용해 보기도 했다. [20]
팜볼도 아주 가끔씩 던지곤 한다.그 일례로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6차전에서 이호준에게 팜볼[21]을 던지고 결승 홈런을 허용했다. 홈런 직후 카메라에 조범현 감독의 표정이 잡혔는데, 김현태 아나운서와 하일성 해설위원은 조범현 감독이 왜 이렇게 밋밋한 변화구를 던졌냐는 표정 같다고 해설했다. 이후 나주환에게 똑같은 변화구를 초구에 던졌는데 그 공으로 나주환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다.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또 쳐봐라'라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다 치더라"라고 인터뷰를 해서 한동안 까인 적이 있었다. 은퇴 후에 야신야덕에 나와서 밝히기를 자신은 포크볼을 던질 정도로 검지와 중지가 벌어지질 않아서 유일하게 포크볼만 못 던진다며 그 대신에 선택했던 게 비슷한 매커니즘의 팜볼이였다고 한다. 위의 포크볼 사용 경험과 합쳐보면 포크볼을 이래저래 던져보다가 영 아닌 거 같아서 선택했던 구질이였단 이야기. 실제로 자기 구질을 해당 영상에서 짚어주는데 포크볼은 말하지 않고 던지지도 않았다.
다양하게 구사하는 변화구 때문에 야구를 처음 접하는 라이트 팬들 중엔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윤석민은 2007~2010년까지의 윤석민이었고, 2005, 2006의 2년과 2011년 이후로는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위주의 파워 피쳐로 분류하는게 맞다. 물론 전자의 투구 스타일였어도 KBO 기준으로 패스트볼이 약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변화구 비중, 그리고 코너웍 피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막상 포심을 던져도 위력적이었던 것.
전반적인 스타일을 보면 일본 시절 데뷔 초의 다르빗슈 유와 비슷한 점이 많다. 다르빗슈 유 역시 그 강력한 패스트볼을 가지고도 뛰어난 손감각 덕에 다양한 구종의 변화구를 활용한 팔색조 투구를 선호했던 투수였던 데다[22]가 마침 시그니쳐도 슬라이더로 동일했다. 또 둘다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바꾸면서 엄청난 시즌을 보냈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다만 다르빗슈 유는 뛰어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패스트볼의 구위와 솔리드함 덕분에 메이져에서도 통하고 롱런할 수 있었지만, 윤석민은 피지컬의 한계로[23] 인한 구위 및 내구성의 부족 때문에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변화구 위주로 삼진이 아니라 맞춰잡는 피칭도 곧 잘하는 투수다. 실제로, 2008년 숙취 상태[24]로도 온갖 아리랑볼을 뿌려대며 7이닝 1실점으로 막아내는게 가능했을 정도. 하지만 던지는 구종이 늘어날수록 내구성에는 문제가 발생했다.[25][26] 일례로 부상을 덜 당한 2008 시즌에는 다른 년도에 비해 패스트 볼의 비중을 비교적 높게 가져갔던 덕이 컸다.
다만 어디까지나 윤석민 치고 포심 비중이 높았던 것이지 파워 피쳐라고 하기에는 포심 비중이 확실히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2009, 2010 시즌에는 변화구 구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2008년에 비해 눈에 띄게 잔부상이 많았다. 이는 본인의 피지컬 변화에 따른 구종 선택의 변경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 실제 2008 시즌의 윤석민의 투구폼은 어깨상태가 절정이었기에 상체 위주의 부드러운 투구폼에 시속 140km 중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패스트볼도 적당히 활용하는 피칭이었던 반면, 2009~10년의 윤석민은 이때보다 어깨 상태의 문제인지 포심의 위력이 떨어져 있었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변화구 비중을 훨씬 높혔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로 하체를 이용한 피칭을 시작하며 강력한 직구와 함께 안정적인 변화구 구사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2011 시즌 초에는 그동안 상체위주로 던졌던 것과 달리 밸런스를 잡는데 애를 먹으며, 타자들이 아예 패스트 볼[27]은 버리고,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춰서 공략해 들어오곤 했다. 이 시기 구사비율이 높아진 서클 체인지업의 경우 장기인 고속 슬라이더과 패스트 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움직임에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직구처럼 보이게 오다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격 리듬을 변화구 타이밍에 맞추고 있어야 공략이 가능한 공이고, 따라서 최소한의 패스트 볼 구위가 밑밥으로 깔려있어야 타자가 소위 직구-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에 걸려서 속아넘어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패스트 볼 비중이 줄어든 탓에 애초부터 타자들이 변화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춘 채 체인지업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족족 얻어맞게 된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28]들이 이 점을 지적했고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 내용을 바꿨고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전성기때 상체가 많이 흔들리는 투구폼으로 김성근이 체력 소모가 많고 롱런이 힘든 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29] 실제로 윤석민은 커리어 내내 내구성 문제를 노출했고, 5일 로테이션을 도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6일 로테이션을 돌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결국 롱런에 실패했다.유리몸이라고 놀림받지만 선발과 마무리를 돌리며 애니콜의 계보를 잇게하는 정신나간 혹사인데 몇년동안 버텨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한국 복귀 이후에는 체력 문제로 불펜투수로 2015년에는 중무리로 뛰었고, 2016년에는 선발 전환을 시도했으나 시즌 초반 부상 이후엔 다시 마무리로 돌아갔고 결국 선발 투수로 복귀하는 데엔 실패했다.
신인 시절에 마무리 투수로 뛴 적도 있기에[30] 팀 사정에 따라서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됐다. 이는 국가대표 차출 때도 해당되는 사항으로, 당시 윤석민은 선발과 불펜을 모두 잘하는 만능형 투수였기에 상황에 따라 중간계투, 마무리투수로도 나왔다. 실제로도 KIA의 중간이나 마무리가 헐거워졌다하면 가장 먼저 고려되던게 윤석민 불펜 전환 카드였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철저하게 관리받아야 하는 선수를 혹사시키게 된다는 점[31]에서 KIA 팬들은 양날의 검으로 생각했고, 이것은 윤석민의 커리어 전체에 아주 큰 악영향을 미쳤다.
윤석민이 내구성이 나쁜 투수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졸 투수가 데뷔하자마자 첫 두 시즌을 순수 불펜으로만 각각 84이닝, 94.2이닝을 소화했다. 심지어 그 시절은 126경기 체제로 현재같은 144경기 체제 하에서는 평균적으로 불펜으로만 100이닝을 소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윤동이 144경기 체제에서 2년 연속 80이닝 정도를 소화하고 어께 부상을 당해 결국은 은퇴한 것을 생각해보자. 윤석민은 그러고도 2007, 2008시즌을 거의 풀타임 선발투수로 보냈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아예 시즌 중에도 선발과 계투를 여러차례 번갈아 수행했다. 시즌 중에 선발투수와 중간계투 사이에서 포지션을 한 번 바꾸는 것도 큰 부담이 가는데 윤석민은 걸핏하면 선발 로테이션을 돌다가 중간계투로 던지길 반복한 것이다. 따라서 2009, 2010년의 소화이닝을 바탕으로 혹사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도하 아시안게임, 베이징 올림픽, WBC까지 국가대표로도 소속팀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계속 참여했다. 2008년에는 선발투수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계투로 활약하고 팀에 복귀하여 다시 선발투수로 뛰었어야 했다. 2009 WBC역시 직전 시즌 선발투수로 뛰던 투수를 대회 초반에 계투로 기용했고 그마저도 김광현과 류현진이 난조를 보임에 따라 준결승전에는 선발투수로 기용해야 했다. 심지어 윤석민의 선발투수 커리어 최고 기록인 2011 시즌도 세이브가 있을 정도이다. 데뷔 두 시즌 서정환 감독의 무리한 기용과 잦은 포지션 변동만 아니었어도 아직까지 소소하게나마 커리어 말년을 보냈을 수도 있는 투수라고 보는 것이 맞다.
4. 평가
자세한 내용은 윤석민(투수)/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연도별 성적
5.1. KBO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윤석민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ERA+ | sWAR |
2005 | KIA | 53 | 84 | 3 | 4 | 7 | 0 | .429 | 4.29 | 92 | 8 | 38 | 49 | 47 | 40 | 1.48 | 99.2 | 1.11 |
2006 |
63 (5위) |
94⅔ | 5 | 6 |
19 (5위) |
9 | .455 | 2.28 | 81 | 5 | 31 | 75 | 26 | 24 | 1.14 | 158.8 | 3.62 | |
2007 | 28 | 162 | 7 |
18 (1위) |
0 | 0 | .280 | 3.78 | 161 | 10 | 74 | 104 | 76 | 68 | 1.36 | 104.1 | 3.19 | |
2008 | 24 | 154⅔ |
14 (2위) |
5 | 0 | 1 |
.737 (5위) |
2.33 (1위) |
121 | 10 | 46 |
119 (5위) |
45 | 40 |
1.05 (1위) |
176.0 (1위) |
5.29 (3위) |
|
2009 | 27 | 119⅔ | 9 | 4 | 7 | 0 | .692 | 3.46 | 110 | 9 | 52 | 117 | 52 | 46 | 1.29 | 136.3 | 3.85 | |
2010 | 23 | 101 | 6 | 3 | 3 | 0 | .667 | 3.83 | 95 | 5 | 39 | 94 | 48 | 43 | 1.30 | 119.0 | 2.98 | |
2011 | 27 |
172⅓ (5위) |
17 (1위) |
5 | 1 | 0 |
.773 (1위) |
2.45 (1위) |
137 | 10 | 50 |
178 (1위) |
53 | 47 |
1.05 (1위) |
168.4 (1위) |
6.62 (1위) |
|
2012 | 28 | 153 | 9 | 8 | 0 | 0 | .529 | 3.12 | 120 | 9 | 41 |
137 (4위) |
60 | 53 |
1.00 (1위) |
131.2 | 3.95 | |
2013 | 30 | 87⅔ | 3 | 6 | 7 | 2 | .333 | 4.00 | 91 | 9 | 29 | 76 | 41 | 39 | 1.36 | 107.2 | 1.92 | |
2015 | 51 | 70 | 2 | 6 |
30 (3위) |
0 | .250 | 2.96 | 69 | 4 | 26 | 68 | 23 | 23 | 1.33 | 166.8 | 3.87 | |
2016 | 16 | 31 | 2 | 2 | 1 | 6 | .500 | 3.19 | 36 | 1 | 13 | 26 | 14 | 11 | 1.42 | 162.2 | 0.88 | |
2017 | 1군 기록 없음 | |||||||||||||||||
2018 | 28 | 40 | 0 | 8 | 11 | 0 | .000 | 6.75 | 55 | 9 | 10 | 29 | 32 | 30 | 1.63 | 76.0 | 0.03 | |
2019 | 1군 기록 없음 | |||||||||||||||||
<rowcolor=#373a3c>
KBO 통산 (12시즌) |
398 | 1270 | 77 | 75 | 86 | 18 | .507 | 3.29 | 1168 | 89 | 449 | 1072 | 517 | 464 | 1.21 | 135.3 | 37.31 |
완투, 완봉 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2005년 | 0완투 | 0완봉 |
2006년 | 0완투 | 0완봉 |
2007년 |
2완투 (3위) |
1완봉 (2위) |
2008년 | 1완투 | 0완봉 |
2010년 | 1완투 | 0완봉 |
2011년 |
3완투 (1위) |
3완봉 (1위) |
2012년 |
3완투 (2위) |
2완봉 (1위) |
2013년 | 1완투 | 0완봉 |
2016년 |
1완투 (3위) |
0완봉 |
<rowcolor=#373a3c> KBO 통산 | 12완투 | 6완봉 |
5.2. MiLB
역대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4 | 노폭 타이즈(AAA) | 23 | 95⅔ | 4 | 8 | 0 | 0 | .333 | 5.74 | 125 | 15 | 31 | 67 | 69 | 61 | 1.58 |
<rowcolor=#373a3c>
MiLB 통산 (1시즌) |
23 | 95⅔ | 4 | 8 | 0 | 0 | .333 | 5.74 | 125 | 15 | 31 | 67 | 69 | 61 | 1.58 |
6. 양현종과의 반비례?
같은 소속팀 KIA의 에이스인 양현종과의 엇갈리는 행보가 눈에 띈다. 2년 선후배로 거의 같은 동년배에 둘 모두 전성기 때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투수였지만 공교롭게도 둘이 동시에 좋은 성적을 찍은 해가 없다시피하다.07~08년까지 양현종은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유망주였지만, 윤석민은 07년은 불운의 에이스, 08년은 평균 자책점 1위를 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09~10년은 양현종이 드디어 터지면서 좋은 성적을 찍었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불펜기용, 부상 등으로 인해 2년 모두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11~12년은 말이 필요없는 양붕괴 시즌. 2년 합쳐 WAR가 0.46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반면 윤석민은 11시즌 투수 4관왕으로 MVP. 12시즌은 전년도보단 못하지만 준수한 1선발 성적을 찍어주며 주가를 올렸다. 덧붙여 이때 양현종은 부진한 자신과 달리 MVP를 찍으며 잘나가는 윤석민을 보고 이미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13시즌은 양현종이 드디어 부활을 시작했다. 단, 그게 전반기라는 게 함정. 후반기는 부상으로 거의 못 나왔다. 그래도 비율 성적은 좋은 편이어서 충분히 희망을 보여준 시즌. 하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어깨 부상으로 불펜으로 보직 변경하였으나 비율 성적 또한 좋지 않아 FA 직전 해로썬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14시즌은 양현종이 완벽히 부활한 시즌. 윤석민은 노폭전드. 미국에서 완벽하게 말아먹고 이듬해 한국으로 복귀했다.
15시즌은 양현종이 무려 WAR 8을 넘게 찍으며 압도적인 리그 투수 1위, 윤석민도 마무리 투수로서 30세이브에 리그 구원투수 WAR 1위를 찍으며 둘 다 성공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윤석민이 본업인 선발투수가 아니었던 게 옥의 티. 따지고 보면 이때만큼 두 선수가 함께 잘한 적이 없었다.
16~17시즌은 양현종이 각각 200이닝, 20승을 찍어주며 이제는 KIA의 토종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했지만, 윤석민은 16시즌은 잠깐 보이더니 17시즌은 통째로 사라졌다.[32]
18시즌은 역시 꾸준한 양현종이 sWAR 리그 5위, 국내 선수중에선 2위를 찍으며 여전히 리그 탑급 에이스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0승 8패 11세이브, 40이닝, 평균자책점 6.75 라는 재앙급 성적을 내면서 역시 무너졌다. 선발로나 불펜으로나 예전의 위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19시즌, 양현종은 비록 초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규정 이닝 투수 최하위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미친 페이스로 평균자책점을 2점대로 끌어내리며 결국 리그 평균자책점 1위로 시즌을 마쳤고 WAR도 리그에서 투타 종합 1위를 기록했다.[33] 반면 윤석민은 등번호도 바꾸고 연봉도 대폭 줄였지만 이해 아예 1군 무대를 밟지조차 못 했으며 이젠 팬들 사이에서 관심조차 없을 정도. 결국 소리소문 없이 은퇴했다.
두 선수가 선발로 동시에 활약하는 것은 기아 팬들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윤석민까지 완벽 부활을 한다면, 혹은 둘의 전성기가 겹쳤다면 기아는 리그 탑급, 아니 KBO 역사상 최고의 국산 원투펀치를 보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 윤석민의 부진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면서 거의 포기 상태. 그리고 2019년 12월 13일자로 윤석민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2021년 양현종은 MLB 도전을 선언하며 미국행을 택했고 하필 이 해 윤석민이 뒤늦은 은퇴식을 치르면서 은퇴 자리에도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게 되며 많은 KIA 팬을 슬프게 했다.
7. 은퇴 이후
7.1. 골프 선수 활동
은퇴 후 취미로 즐기던 골프 훈련에 매진하면서 완전히 골프에 맛들렸고 KPGA 2부 투어 예선에 나간 적이 있다. 실력은 70타대 정도라는 증언이 있는데 이 정도면 아마추어는 평정한 레벨. 골프 관련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에 종종 출연하고 있어서 은퇴 이후로는 야구보다 골프계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 2020년 12월에 정식 골프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골프 선수가 되려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고 언젠가는 타이거즈로 돌아오고 싶다고 답했다. #
2020년 2월 재활 중에 골프를 치고 다녔다는 의혹에 대해 자신은 절대 아픈 채로 골프를 친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반응들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게 스크린 골프에 빠졌다는 글이 2017년 해당 골프장 인스타에 올라왔고 당해년도 윤석민은 재활을 한다며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윤석민이 은퇴 이후에도 여론이 좋지 않은 큰 대목이다. 스톡킹 19-1회 영상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겨울 시즌 때 사람들을 몰아서 만나고 오버스로에서 사용하는 어깨 근육과 골프 스윙 자세에서 사용하는 어깨 근육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사실 야구 하는 데에 지장이 있는 부상이지만 골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시즌을 치르면 개인적 대인 관계가 허락되는 기간이 겨울에 한정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만 윤석민은 시즌 중에 1군도 2군도 제대로 뛰지 않았고 심지어 감독과 코치도 터치하지 않는 말년병장과 같은 포지션에서 고작 겨울에만 골프 쳤다고 하는 핑계가 먹힐 리가 없다. 이미 시즌 중에 스크린 골프장에 자주 드나든다는 썰이 돌 정도였으니...
2024년 KPGA 제1차 프로 선발전을 통과하며 KPGA 프로(준회원)가 되었다. 7번째 도전만에 된 것이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편히 임했더니 성적이 잘 나왔다고 밝혔다. #
7.2. 방송인 경력
자세한 내용은 윤석민(투수)/활동 내역 문서 참고하십시오.7.2.1. 해설위원 경력
2022 시즌부터 SPOTV의 스포츠 타임 베이스볼 크루로 합류했다. 프로그램에서의 닉네임은 '사이버윤'.정식 중계진은 아니지만 가끔 스페셜 해설로 현장에도 나서고 있다. 2022년 7월 13일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경기가 현장 해설 데뷔였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기간에 KBS의 프리뷰 쇼 패널로 김구라, 김태균과 함께 출연했다.
2024년부터 TVING 슈퍼매치의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7.3. 윤석민골프TV
소속사인 JDB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022년 4월 6일부터 유튜브 '모던남 윤석민' 채널을 오픈했다.'모든 걸 던지는 남자'의 준말로, 야구공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들을 던저 표적에 맞추는 콘텐츠를 선보인다.
개설 초기 이후로는 상술된 물건을 던지는 콘텐츠나 야구관련보다는 골프 위주로 가고 있다. 그래도 2023년 9월 기준 업로드는 활발히 하는 편.
윤석민의 유명세에 비해서는 구독자 수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평균적인 조회수는 꽤 높은 편이다. 골프채널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윤석민골프TV이다.
8. 여담
8.1. 별명
- 신인 시절 믿음직한 투구와 낙차 큰 슬라이더를 가지고 마무리 투수를 맡아 '광주댐'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어려 보이는 외모로 '석민 어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대표적인 별명은 석개. 연패 기간내내 KIA 갤러리에서 윤석민 개새끼 해봐라는 꾸준글이 올라왔고 그것이 별명화돼버렸다. 이후 윤석민 본인도 윤석개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트위터에서 밝혀졌다. 본래 뜻을 알고 쓰는 건지 아니면 2011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면서 석개가 윤석민 개쩔어로 변형되면서 처음부터 그 뜻이었던 것으로 아는 건지는 본인만 알 듯. 나중에 나쁜 뜻인줄 알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갸갤에서는 석개로 많이 불린다.
- 야구 갤러리 한정으로 타팀 팬들에게는 윤복서,[34] 윤공황[35] 등으로 불린다. 이후 ~개 가문(소위 '무등 개씨')은 '호투하는 KIA 토종 선발'로 용어가 바뀌면서 양현종의 붕개[36]로 이어지고, 한승혁, 이민우도 잠시 슝개, 식개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 싸이월드에 올라온 위 글로 인해 가끔 가다 윤섹서이라고도 불린다. 덕분에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PC방에서 싸이월드 로그아웃하지 않은 상태로 나가버렸다가 생긴 해프닝인 듯.
- 메이저리그 도전 후 볼티모어 산하 트리플 A 노폭 타이즈에만 머물다 1년 만에 돌아오면서 노폭전드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타팀 팬들에게는 노폭이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리고 이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마이너에 머무른 박병호는 로체스터전드, 양현종은 락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 2015 시즌 한정 별명은 석센시오. 90억이나 받는 마무리 주제에 블론 세이브를 8개나 범하며 리그 전체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려 전년도 마무리인 어센시오와 이름이 합쳐졌다. 물론 블론 세이브 말고 전체 성적을 놓고 보면 어센시오를 윤석민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윤석민에게 굴욕일 정도의 차이.
- 2017 시즌 이후 재활이 더디게 진행되어 복귀가 몇 년간 계속 미뤄지자 ' 사이버 투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 국내 복귀 후 2년 만에 부상으로 자취를 감추고 은퇴하기까지 그 90억(혹은 92억), 그 금액으로 불리며 금지어 취급을 당했다.
8.2. 등번호
후배이자 본인 다음 KIA 에이스 자리를 차지한 양현종과 달리 등번호를 꽤 자주 바꿨다.[37] 바꾼 등번호들이 모두 20번대에 몰려있다는 것이 특징.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는 18번을 배정 받았는데 기존에 달던 21번은 이미 주인이 있어서 20번대에서 빈 번호를 찾다가 선택했다고 한다.- 20번(2005~2009, 2015~2017) : 입단 당시부터 달았던 등번호였고 2009년까지 사용했다. 이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기존에 달던 21번은 절친인 곽정철이 사용하고 있어 다시 20번을 달게 됐고 2017까지 사용했다.
-
21번(2011~2013) : 윤석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등번호. 2010시즌 종료 후 21번으로 변경해[38] 2013년까지 사용했는데 이 기간 동안 투수 4관왕에 MVP를 수상하는 등 국내 최정상급 우완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그래서 윤석민의 은퇴식 부제인 UNTOUCHA21E에도 21이 포함됐다. 국내 복귀 후에는 절친인 곽정철이 21번을 선점해 20번을 달고 뛰게 됐다.
- 24번(2018~2019) : 말년에 달았던 등번호로 본인과 아내, 아들의 생일일자와 동일해 선택했다고 한다.
- 28번(2010) : 2009년 우승 후 본래 달던 20번에서 28번으로 변경했는데 성적이 썩 좋지 않았고 윤복서 사건에 두 차례의 사구 사건까지 겹치며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탓에 1년만 사용하고 21번으로 변경했다. 리그에서는 최악의 기억으로만 가득한 번호지만 국제대회에서는 20번을 이승호(작은승호)와 진갑용이, 21번은 정대현과 오승환이 사용하다 보니 28번을 달고 호투하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8.3. 인간관계
-
동명이인 야구선수였던
타자 윤석민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던 사이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 그런데 서로 같이 놀면서도 이름을 몰랐고, 같이 리틀 야구단에 입단하면서 이름이 두 번 호명되어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 이름이 호명되자 둘 다 당황했는데, 그 대상이 같이 놀던 형/동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 놀랐다고. 투수 윤석민은 어릴 적 타자 윤석민에 대해 "그 형은 어릴 때부터 덩치가 워낙 크고 힘도 세서 동네 골목대장이었고, 놀다가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많이 때리기도 해서 같이 놀면서도 우리들끼리는 무서워하던 형이었다. 특히 지금은 내가 키가 좀 더 크지만 아직도 그 형만 보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예로 동네에서 같이 야구할 때 내 방망이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슬슬 피한 적도 많다고 한다. 투수 윤석민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나서도 어릴 적 이야기를 주변 선수들에게도 많이 해서 소문이 났는데, 타자 윤석민은 "내가 애들 괴롭히고 그랬다는 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타자 윤석민은 지금의 투수 윤석민을 "어릴 때부터 체격도 작고 말라서 항상 약해보였다."고 기억하며 지금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이 사항은 구리 리틀야구단 시절에는 타자 윤석민이 투수, 투수 윤석민이 배터리를 맞추던 포수였다고 한다. 사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도 둘의 인연은 있었다. 많이
야탑고등학교 졸업으로 나와있어 둘의 인연이 중학교 때까지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투수 윤석민은
인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투수 윤석민은
야탑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후 계속 다른 팀에서 활동하여 운명적인 인연(이름+동네+학교+야구)인 것 치고는 절친 급은 아닌 듯 하지만, 모 스포츠 신문 동명이인 특집에서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서로 더 잘 되기를 응원한다고 하는 등 친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최근 슈퍼소닉 이대형에 타자 윤석민과 같이 출연하여서 말하길 프로와선 가끔 연락은 주고 받았다고 한다.
* 윤희상, 오재일과도 어린 시절 동네 야구를 같이 했던 친한 사이다. 네 명 모두 같은 리틀야구단에서 활동했으며, 중학교까지도 모두 같았다. 고등학교는 갈라졌는데, 처음에는 두 윤석민이 같은 인창고로 진학했으나 투수 윤석민이 오재일이 있던 야탑고로 전학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윤석민과 오재일은 초, 중, 고 모두 같은 팀에서 야구를 하게 되었다.
- 입단 동기인 곽정철과는 절친이라 할 수 정도로 친하며, 2년 후배인 양현종과도 서로 외모에 대한 디스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다. 윤석민의 은퇴식 당시 양현종은 미국에 있어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KIA 구단 유튜브에 업로드 된 윤석민 헌정 영상에 댓글을 남겨 친한 형의 은퇴를 축하해줬다.
- 201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기록한 풀백 윤석영이 윤석민의 6촌지간이다. # 어렸을 때에는 숨바꼭질도 하고 축구도 했던 사이였다고. 또한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3라운드 지명을 받은 윤석주도 투수 윤석민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졌었으나, 윤석민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위에 언급한 윤석영의 동생으로 윤석주라는 친척이 있는것은 사실이나, SK에 입단한 윤석주와는 동명이인이라고 한다.
- 기본적으로 베테랑을 중시하는 성향인데다 2015시즌 윤석민이 3이닝 세이브를 할 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할 정도로 윤석민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2018시즌에도 멀쩡하게 돌아가던 선발 로테이션을 파괴하면서까지 윤석민의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던 김기태 감독이었기에 의외지만, 2018시즌에 복귀와 관련해 김기태 감독과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음에도 김기태 감독이 1군으로 콜업하는 바람에 윤석민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팔을 풀라는 지시를 받고 불펜에서 팔을 풀고 대기 중이었는데 다른 투수가 나가는 게 반복되다 보니 짜증이 폭발해 김기태 감독에게 크게 대든 적도 있다고 한다. 윤석민도 머리로는 감독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몸 상태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발생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39]
8.4. 야구 관련
- 윤석민의 어머니는 아들을 훌륭한 야구선수로 키우고자 열심히 뒷바라지 했었다고 하는데, 기상 직후, 취침 직전 우유 500ml씩 매일 1L의 우유를 중고등학교 생활 내내 마셨다고 한다. 또한 등산이 취미였던 부모님이 더덕등을 캐와서 종종 먹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감정가 700만원짜리 산삼을 캐오셔서 그 산삼의 열매까지 씹어 먹기도 했다고. 부모님의 이런 노력덕분인지, 부모님 키가 큰 편이 아닌데도 185cm라는 좋은 피지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 리틀야구 시절 홈런을 27개 쳤었다고 한다. 후에 회고하기로는 거의 매경기 홈런을 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27개보다는 더 쳤을것 같아서 적당히 줄여서 말했다고. 타자가 아닌 투수로도 괜찮았는데, 당시 키가 작아서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윤석민 본인 피셜 최고 구속이 125km였다고 한다. 다만, 2학년 ~ 3학년 넘어가는 시기 키가 급속도로 성장[40]하여 구속이 15~20km 상승했다고 한다. 키가 늦게 커서 프로 이후에도 3cm가 성장했다고...
- 상당히 학구적인 선수다. 스톡킹에서 말하기를 배트를 들고 타자들의 타격폼을 따라하며 상대에게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한다. 더불어 다양한 변화구를 배워서 실험해보는 투수로 유명한데 손가락 길이 때문에 포크볼만은 유일하게 던지지 못했다고 한다. 1년 후배인 류현진과 함께 손 감각이 좋은 투수의 대명사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 2008 시즌 10승을 달성한 7월 15일 경기 2회말때 강민호에게 아리랑볼을 던지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윤석민 팜볼 연습 본인 썰에 따르면, 올림픽 최종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결정된 월요일에 소식을 듣고선, 불펜 포수와 함께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문제는 그게 선발 등판일인 화요일. 6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되는데 6시 7분까지 술에 취해서 뻗어있었다고. 취기가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취해있어서 실실 웃으면서 던졌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날 7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것... 2020년 10월 스톡킹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로 보완되었는데, 발표가 난 이후 이대진이 먼저 한 잔 하자고 했다가 이대진이 던지고 마셔. 라고 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 2013 시즌 이후 FA 선언을 했었을 때 2월 이후까지 계약이 안 되다보니 국내 5개 구단이 컨택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 계약 규모도 100억 이상이었다고.
- 2020년 시점으로 양현종, 나지완, 김선빈 함께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바뀐 이후에 KIA에서 데뷔하여 팀 레전드가 된 선수로 평가 받는다.[41] 역대 최악의 FA 먹튀 사례로 꼽히지만 이용규와 함께 암흑기 시절 팀을 지탱했던 소년 가장 겸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에이스라는 상징성이 있다 보니 애증의 선수 정도로 취급됐다. 이후 프로 초창기에 당한 엄청난 혹사가 재조명됐고 은퇴한지 4년이나 지났기에 2024년 시점에선 명실상부한 팀 레전드로 대우받고 있다.
- 2022년 4월 광주MBC 유튜브 채널인 전설의 타이거즈 박재용- 박지훈 편에 전화로 출연했다. 박지훈이 선수생활 당시 존경하는 선배로 윤석민을 말했으며 즉석에서 전화연결하였다. 윤석민은 정작 "박지훈이 왜 전설이에요?"[42], "저는 이 채널(전설의 타이거즈)을 잘 모르는데.."[43]로 답변했다.
- 이대형과 PDB유튜브에 출현하여 현역 때와 투/타를 변경하여 흥미진진한 영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 어깨 수술 후 함평에서 재활하던 시절, 헬스장 의자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이 찍혀서 팬들에게 미친 듯이 까였던 적이 있다. 스톡킹에서 해명한 바에 따르면, 점심시간에 후배들이 불편해해서 헬스장 의자에 누워서 쉬다가 잠깐 잠 들었는데 그걸 재활 시설 공사 인부가 찍어서 운동 안하고 잔다고 인터넷에 올린 것이라고 한다. 이후 구단에서 당사자를 잡았고 윤석민도 상당히 화가 나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구단에서 말려 어찌저찌 넘어갔다고 한다.
- 2024년 한일 야구 드림 플레이어즈 경기에 출장해 최고 133km/h의 패스트볼과 여전히 날카로운 변화구를 던지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 롯데와의 악연이 꽤 있다. 통산 롯데전 성적은 50경기에서 149.0이닝을 소화하면서 ERA 4.35 10승 10패 12세이브 1홀드를 기록해 롯상바 이미지에 비해서는 준수한 편이다. 다만 2010년에 4강 경쟁팀 롯데의 주축 타자인 홍성흔과 조성환을 사구로 큰 부상을 입히며 멘탈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고 MVP 시즌이었던 2011년에 강타선을 보유한 롯데를 일부러 피해다니며 성적을 관리했다는 비아냥을 듣는 등 2010년부터 롯데전 성적이 좋지 않아졌다. 2010년부터 롯데전 성적은 ERA 4.76으로 커리어 평균보다 높고 2011년부터는 롯데를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하며 4패만을 떠안았고 2012년에는 팀의 4강이 걸린 경기에서 여지없이 털리며 팀의 호흡기를 손수 끊어놓기도. 그나마 미국에서 돌아온 2015년에는 마무리로서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하며 체면치레는 했다.
- 전성기인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는 류윤김이라고 하여 류현진, 김광현과 국가대표 3선발로 묶였다. 명실상부 리그 최고 투수인 류현진은 이론이 없으나 윤석민이 김광현보다 먼저 나오는 것을 두고 기아팬과 SK팬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다. 류윤김이 함께 뛰었던 2007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누적 sWAR을 비교하면 윤석민은 2010년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하게 활약했고 김광현은 2011년과 2012년을 부상으로 날렸기에 윤석민이 1.46 차이로 아주 근소하게 우위이다. 다만 2013시즌 이후 김광현은 부상을 딛고 부활에 성공해 메이저리그에서까지 활약했고 윤석민이 부상으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탓에 선수로서의 평가는 김광현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윤석민이 은퇴한 후로 류윤김은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를 추억할 때나 소환되고 윤석민의 자리는 친한 팀 후배이자 본인 다음 KIA의 에이스인 양현종이 들어가 국가 대표 좌완 트로이카인 류김양을 구성하고 있다.
- 2000년대 중후반 KIA가 암흑기에 빠져있을 무렵 이용규와 함께 몇 안 되는 국가대표급 선수이다 보니 이용규와 윤석민의 활약을 보고 유입된 KIA 팬이 상당히 많고 차기 영구결번 후보로도 언급됐다. 이후 에이스인 양현종과도 가끔 비교되며 피칭 퀄리티는 윤석민이 더 낫다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할 정도. 다만 윤석민은 데뷔 초반에 당한 무식한 혹사로 인해 커리어가 빨리 꺾여 팀 레전드 위치에 만족해야 했고 이용규는 FA 이적 과정에서 광갈없을 시전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한화로 이적한 탓에 이적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금지어 취급을 당하고 있다.
- 2009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막판에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로페즈보다 평균자책점 등 세부 스탯이 더 뛰어난 본인이 1차전에 선발 출장할 줄 알았는데 2차전 등판을 통보 받아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들은 조범현 감독이 윤석민을 불러 로페즈가 1차전에 무너진다면 2차전인 네가 정말 중요해진다며 2차전 등판 이유를 설명해주니 곧바로 기분이 풀어져 납득했다고 한다. 로페즈가 SK에게 극도로 강한 모습을 보였고 2009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이긴 했으나 윤석민 역시 2009시즌에 SK를 상대로 ERA 0.79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인 SK 킬러였기에 이유있는 자신감이었던 셈이다.
- 윤석민의 팬 카페에선 윤석민의 투구폼과 '기아 타이거즈 에이스 윤석민'이 새겨진 노란 수건을 들고 응원하는 특징이 있다. 노란 수건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윤석민의 팬덤은 '황건적'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8.5. 기타
* 워낙 어린이 이미지도 강하고 강민호, 양준혁 등이 워낙 머리가 큰 것으로 유명해서 묻히는 감도 있지만, 의외로 대두의 소유자. 실제로 덕아웃에 있는 사진이나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서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머리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아주 멀리서 줌으로 당긴 화면은 원근법이 사실상 무시되는 것이 맞다. 근데 뒤에 있는 사람이 앞에 있는 사람보다 커질 순 없다. 비교 대상자는 김원섭. 윤석민이 스톡킹에서 말하길 본인도 위에 사진을 봤다고 하며 차이가 나는 건 김원섭이 머리가 작아서 유독 그래보였다고. 그리고 윤석민이 은퇴하고 4년이 지나 윤석민과 성도 똑같고 머리 크기도 똑같은 상위픽 투수가 입단해 '대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 마구마구를 아주 잘한다고 한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 김현수와 마구마구 대결을 해서 이겼다. 임창용을 가지고 있다고. 기사에 의하면 마구마구에서 닉네임을 실명으로 쓴다고 한다. 자기 소개를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어느 날도 마구마구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니가 윤석민이면 난 이종범이다, 선배한테 인사해야지? 라는 드립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 꼽은 바 있다. 2009년 8월 18일에는 자기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s.m이라는 마구마구 클럽을 만들어서 가입 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초딩은 제외하고. 참고로 다이어리가 올라온 것은 16시. 즉 등판하기 2시간 전에도 마구마구 생각을... 마구마구에서는 자기 자신을 선발로 사용하는 타이거즈 올스타 덱을 사용하다가 중후반 쯤에 3엘리트를 비롯 괴악한 카드를 교체하는 잡덱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4월에는 이병규 엘리트를 획득(3이닝 10실점한 그날)하여 엘리트카드를 4장째 보유중. 휴식일에 마구마구에 출몰하여 이벤트성으로 유저들과 플레이한다고 한다. 이 마구마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점으로 인해서 올스타전 시기에 김현수와 함께 켠김에 왕까지에 출연했다.
- 2011년도의 화려한 성적을 재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야구게임에서 매우 놀라운 성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구마구에선 상급 레어에다가 후에 엘리트 카드가 추가됐으며,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1년에 투타 한장씩만 만든다는 EX 카드로 등장했다. 2014년 미국 진출로 인해 마구마구2014에서는 '박규환'이라는 가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내복귀로 최근 업데이트 이후 다시 본명으로 돌아왔다.
- 2011 시즌 화려한 성적에 대한 비하인드로 나는 가수다 임재범의 모습을 보고 겸손한 마음에서 거만한 마음으로 마음을 바꿨었다고 한다. 그 뒤로 성적이 좋아졌는데 2011년 승수인 17승 중 5월~9월 사이 기록한 승이 16승에 이룰 정도라고 한다.
- 2011 시즌 중 트위터를 개설했다. #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비교적 트위터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글 올리는 속도가 무섭다. 비시즌 기간에 글이 많이 올라온다.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뒤숭숭했을 때는 이런 트위터를 남기기도 했다. 저 믿으삼^^
* 2016년 9월 지인의 소개로 만나 2년여간 교제해온 신인 탤런트 김시온[44]과 약혼식을 했다는 뉴스가 떴다. 시즌 후 결혼할 예정이라고. # 2009년 영화 여고괴담5에서 여고생 강민주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후 집으로 가는 길에도 출연했으며, 영화 뿐아니라 2014년 연극 이바노프를 통해 대학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 당초 2016년 11월 결혼 예정이었으나 아내가 12월에 첫째 아들을 출산하면서 결혼식이 늦춰졌고, 이른바 과속 스캔들이 되었다. # 여담으로 김시온의 모친은 중견배우 김예령이다. 동년 12월에 득남했으며, 2년 뒤 2018년에 다시 득남하면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 2017년 충남 소재 모 대학교[45] 야구부 감독이었던 정 모씨가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10여년 전 정 씨가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였던 시절 현 KIA 선수인 제자에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사실이 밝혀졌다. KIA 선수단에서 야탑고 출신은 윤석민과 박정수 둘 뿐이고, 정 씨가 코치로 있었던 시기를 추론하면 윤석민이 피해자였던 것으로 나온다.[46]
- 2020년 10월 스톡킹에서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갑자기 야구가 하고 싶어져서 공을 한 번 던져봤는데 직구가 108km/h가 나올 정도로 어깨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그가 돈값을 못했다고 비난하던 이들이 많던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 2022년 4월 2일 MBC 지상파 2022년 프로야구 개막전 KIA vs LG 경기에서 해설위원을 맡았다.
- 2022년 9월 현대건설이 광주광역시 광산구 첨단지구에 조성중인 고급 아파트 현대건설 라펜트힐의 가장 큰 평수인 302.36㎡(91평)을 계약했다고 한다. 분양가는 무려 30억원 정도라고 알려졌다.
9. 관련 문서
[1]
최근
광주광역시
광산구
첨단지구에 들어설 아파트에 입주 계약을 했다고 한다.
#
[2]
교문초에서 전학
[3]
인창고에서 전학
[4]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경우가 잦았다.
[5]
김시온에서 개명했다. 당초 2016년 8월 약혼하고 동년 11월 결혼 예정이었으나 12월 첫째 아들을 출산하게 되면서 결혼식을 늦췄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12월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6]
경찰 출신으로 2021년 4월 한 방송에서 아버지 퇴직 선물로 캠핑카를 선물하는 모습이 방송에 탔다.
#
[가사]
KIA의 언터쳐블 윤석민 ~ KIA의 윤석민 윤석민~ KIA의 언터쳐블 윤석민~ 윤석민 사랑해요~
[듣기]
#
[9]
원래 종교가 없었으나 결혼 후 아내의 영향으로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10]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타자로는 이적해 왔음에도 간판 스타이자 국가대표로 성장한
이용규가 있다.
[11]
세 투수는 각각 한살씩 차이가 난다. 세 투수 모두 어린 나이에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맹활약하여 일찌감치 군면제를 받고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미국까지 진출했다. 윤석민은 이 세 투수 중 유일한 우완이다.
[12]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전천후로 불펜 알바를 자주 뛰었다는 점과 높은 기대치에 비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시즌이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하일성 해설위원은
김현태 아나운서와 함께 중계한
2009년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를 시작하기 앞서 두 투수는 국내 선발진 가운데 가장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투수이며 경기 운용을 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평했다.
[13]
본인은 같은 병원에서 수술한
윤규진,
안영명의 케이스로 미루어 보아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석민의 부상 부위는 이들보다 더 깊숙한 부위에 발생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스톡킹 참고.
[14]
특히, 마무리로 뛰던 2006년에는 최대 148km/h까지 나오는 탈 KBO급의 슬라이더로 유명했다.
[15]
물론, 당시 패스트볼 구위 A급의 기준은 배영수부터 시작해서 류현진, 김광현,
오승환같은 2000년대 들어서도 손 꼽히는 수준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특급투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16]
같은 시기를 뛰었던
심수창 해설위원이 윤석민은 당시 우완투수 중 독보적으로 서클 체인지업을 잘던졌다고 평가했었다. 다른 투수들은 서클 체인지업을 던질 때 중지까지 사용하는 게 고작인데 윤석민은 약지, 새끼손가락까지 다 활용했기에 회전 먹는 게 차원이 달랐다고.
[17]
특히 2007년부터 2010시즌까지의 윤석민을 기억하는 팬들이 이런 의견을 많이 냈다. 이 때도 윤석민은 내구성이 문제였지 기량 자체는 2007년 극한의 팀운 때문에 17패를 하고도 3.78라는 방어율을 찍고, 2008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할 정도 뛰어난 투수였기 때문. KBO 수준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포심과 슬라이더에 몰빵하면서 자기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자기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구종 활용 능력을 깎아버렸다는 의견 역시 많다.
[18]
본인의 성격 자체가 일단 뭘 하나를 배우면 어떻게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방송에서 배우기만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실전에서 배운 바를 써보지 않는 선수들을 답답해했다.
[19]
특히, 자기처럼 손이 작았던
스기우치 토시야의 포크볼을 눈여겨봤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시즌 동안 계속 시도해봤지만 이 그립만큼은 도저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해서 때려 치웠다고 한다.
관련기사
[20]
결론적으로 손가락 길이의 문제로 포크볼만큼은 못던지는걸 후일 고백했다
[21]
써클 체인지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2]
지명 당시에 자기는 8구종을 던질수 있는 변화구 투수라고 표현했다. 엄청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에 매료되어 스카우트한 니혼햄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지경.
[23]
물론 이는
다르빗슈 유가 일본-이란 혼혈이기에 아시아에서 나오기 힘든 사기적인 피지컬을 타고났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윤석민도 아시아인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피지컬이었다.
[24]
당시 다승 1위를 포함해 리그 정상급 성적을 찍고 있었음에도 베이징 올림픽 차출명단에서 탈락했다. 그 때문에 멘탈이 박살나버려서 선발 등판 전날이었음에도 술을 진탕 마셨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윤석민 인터뷰를 보면 분명 정상적 상태라고 보긴 힘들다.
[25]
물론 윤석민의 내구성은 커리어 내내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변화구 구사가 많아진다는 것 하나만 원인으로 볼 순 없다.
[26]
사실 인간의 신체에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구종은 구속이 가장 빠른 패스트볼이다. 인간의 신체로 정지 상태에서 130km/h 이상의 물체를 꾸준히 던지는 게 업인 투수는 누구든 서서히 노쇠화가 올 수밖에 없다.
[27]
포심 제구가 이전과는 달리 불안정했던것도 있지만, 반대급부로 시즌 초반 부진했을때에도 구위 자체는 당시 KBO 기준 최상급이었다. 굳이 다른 비중이 높은 먹잇감을 놔두고 무리해서 포심을 공략할 필요가 없던 셈.
[28]
특히,
이순철은 패스트볼만 던지더라도 타자들이 못치는데 왜 변화구를 던지냐며 윤석민이 잘던져서
데일리 MVP를 탄 날 인터뷰(3시간 13분 지점부터 인터뷰 시작)에서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29]
다만, 이 때는 윤석민이 부진하고 있었던 2013년 이야기로, 최전성기였던 2011년의 투구폼이 상체가 많이 흔들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2008년부터 윤석민의 투구폼은 부드럽고 유연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30]
2006년에 특유의 낙차 큰 슬라이더로 붙은 '광주댐'이라는 별명에서 윤석민이 얼마나 믿음직한 마무리였는지 알 수 있다.
[31]
불펜 혹사도 혹사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나타나는 루틴의 변화 문제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 같은 팀 투수였던
신용운도 가뜩이나 혹사로 간당간당했던 상황에서 선발까지 오가게 되자 완전히 망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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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 해 양현종은 팀의 통합 우승과 20년 만의 토종 20승, 한국시리즈 MVP, 정규시즌 MVP까지 다 싹 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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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시즌에 MVP를 받았어야했던 성적. 그러나 2017년과 비슷한 이유로 이번엔 본인이
조쉬 린드블럼에게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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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주먹질하다가 부상당해 팀 16연패의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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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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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쪽도 마찬가지로 2011, 2012시즌 당시 양현종이 크게 부진했을 때 마운드 붕괴 + 개새끼라는 뜻이 합쳐진 부정적인 별명이었지만 에이스로 각성한 지금은 애칭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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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은 데뷔 초반 2년까지 37번을 달았고 2009년부터는 미국 생활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익숙한 54번을 쭉 사용하고 있다.
[38]
본래 사용하던 20번은 선배
조태수가 가져가서 다시 가져가지 못 해 팀 후배
손영민이 달던 배번을 대신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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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해당 시즌에 임창용도 투수 운용 문제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했을 정도로 2018시즌의 김기태의 투수 운용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특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윤석민을 선발로 쓰겠다고 임기영과 한승혁을 불펜으로 보내거나 마무리로 호투하던 임창용 대신 셋업맨 역할을 하던 김윤동을 마무리로 종종 기용하는 등 투수진의 보직파괴가 시즌 내내 이어졌다. 윤석민은 바로 다음 날 김기태 감독에게 사과를 해서 저 정도로 마무리된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임창용처럼 시즌 후 방출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40]
12cm 컸다고 한다.
[41]
이밖에도 KIA 시절의 레전드론
이종범,
장성호,
이강철,
이대진이 꼽히는데, 이강철, 이종범은 해태 시절의 활약이 컸고, 장성호는 해태에서 데뷔하였으며, 이대진은 해태 시절 스타급의 성적과 부상 이후의 투지라는 상징성이 어우러진 평가이다.
[42]
이 채널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은퇴선수들을 모두 전설로 호칭하며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한 선수들도 전설로 칭한다.
신종길이 출연하여
이건열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종길아? 니가 거기 왜 있냐? 니가 전설이냐? XX야"라고 일갈한 건 덤.
[43]
2021년 초에 런칭한 채널로 구독자는 약 3만명이며 해태-KIA 팬들이 주요 시청자다.
[44]
이후 김수현으로 개명했다.
[45]
현재 학교는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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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경동고 감독을 맡으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금품 및 향응 수수와 관련 감사에 걸렸으며 2009년 야구부 입학예정자 12명의 학부모로부터 스카웃 명목으로 600만원을 수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