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민(투수)
,
김광현
류윤김 관련 틀 | |||||||||||||||||||||||||||||||||||||||||||||||||||||||||||||||||||||||||||||||||||||||||||||||||||||||||||||||||||||||||||||||||||||||||||||||||||||||||||||||||||||||||||||||||
|
<rowcolor=#fff>
한화 이글스 No. 99 |
KIA 타이거즈 No. 24 |
SSG 랜더스 No. 29 |
1. 개요
200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국대의 핵심 투수.2000년대 중후반부터 각각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이자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한 3인방인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을 함께 묶어 부르는 말이며, 류김양 이전의 원조 3인방이다.
이들은 각 팀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들이었다.[1] 그와 동시대에 활약한[2] 08~10년도는 08 베이징 올림픽 우승, 09 WBC 준우승, 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우승이라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적을 냈다.
2. 명단
2.1. 류현진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fc4e00> |
관련 문서 류현진 Ryu Hyun-jin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이전 선수 경력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tablewidth=100%> 아마추어 경력 | ||
고교 시절 · 입단 과정 | ||||
프로 경력 | ||||
한화 이글스 1기 Hanwha Eagles |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포스팅 |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Los Angeles Dodgers |
||||
<rowcolor=#005A9C,#62BCFF>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1차 FA | ||||
토론토 블루제이스 Toronto Blue Jays |
||||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
2차 FA |
한화 이글스 2기 Hanwha Eagles |
|
2024년 · 2025년 | |
국가대표 경력 |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
|
2006년 아시안게임 · 2007년 ABC · 2008년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 본선) · 2009년 WBC · 2010년 아시안게임 | |
기록 | |
연도별 성적 · 주요 기록 · 수상 기록 · 통산 승리 일지 | |
평가 | |
플레이 스타일 · 팬 서비스 · 평가 및 업적 · 연도 별 평가 | |
기타 | |
갤러리 · 사건 사고 · 활동 내역 ( 다큐멘터리) · 별명 · 여담 · 류윤김 · 류김양 · 코리안 몬스터 · 특이 사항 / 분류 · 사진 |
류현진은 박찬호와 함께 한국 투수 GOAT로 거론되고 있으며, 역대 MLB에서 활약한 아시아 출신 좌완 투수 중에서 승리 기여도 1위의 기록을 경신하면서 아시아 야구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06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2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부터 엄청난 활약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최연소 MVP, 트리플 크라운과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화 이글스에서의 7시즌 동안 탈삼진왕 5회, 정규 이닝 최다 탈삼진, 최연소 MVP, 최연소 & 최소 경기 1000 탈삼진, 최다 연속 QS, 21세기 유일한 규정이닝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의 리그 기록을 경신하며 데뷔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KBO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한화 이글스 1기 시절의 류현진은 소위 류윤김으로 일컬어지는 국대 에이스 3인방, 그리고 류김양으로 엮이는 좌완 트로이카 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 류현진은 단 7년만 뛰고도 KBO 통산 투수 WAR 13위를 기록했다. 류현진이 MLB로 떠난 뒤 김광현과 양현종이 2019 시즌까지 뛰고 나서, 즉 류현진이 떠나고 7년을 더 뛰고 나서야 류현진의 sWAR을 넘었다.
류현진은 KBO 리그에서 MLB로 진출한 역대 최초의 선수로서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했다. 이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좌완 투수로 활약했다. 2019년에는 아시아 출신 야구선수 최초로 NL 평균자책점 1위, 사이 영 상 1위 득표, 2020년에는 MLB 최고의 좌완 투수에게 주어지는 워렌 스판 상을 수상했다. 다만,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 및 수술의 여파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한 후에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인뒤 2024 시즌 12년만에 친정팀 한화로 복귀하였다. 이후 좌석 매진을 47번이나 달성해 KBO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KBO 리그 1000만 관중 돌파라는 유례없는 흥행의 기폭제가 되었다.
경기 | 선발 | 이닝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실점 | 자책점 | 4구 | 삼진 | 상세 |
14 | 11 |
51⅔이닝 (2위) |
3.31 |
5 (1위)[3] |
1 | 1 | 0 | 52 | 22 | 19 | 13 |
49 (3위) |
- |
- 올림픽: 4경기 23이닝 2승 1패 ERA 1.93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경기 7이닝 1승 1홀드 ERA 2.57
- 아시안 게임: 4경기 16⅓이닝 1승 0패 11자책 ERA 6.06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경기 5이닝 1승 ERA 3.60
2.2. 윤석민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ea0029> |
관련 문서 윤석민 Yoon Suk-min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마추어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
프로 경력 | ||
KIA 타이거즈 KIA Tigers |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
노폭 타이즈 Norfolk Tides |
||
2014년 | ||
KIA 타이거즈 KIA Tigers |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국가대표 경력 |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
||
2006년 도하 AG · 2008년 올림픽 · 2009년 WBC · 2010년 광저우 AG · 2013년 WBC | ||
플레이 관련 | ||
피칭 스타일 | 평가 | |
기타 | ||
여담 · 윤석민상 · 류윤김 |
배영수, 손민한, 박명환 우완 트로이카 이후 2000년대 중반 한국 대표팀의 우완을 책임져준 투수. 2000년대 기아 타이거즈 최고의 토종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KIA로 팀명이 바뀐 후 탄생한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이자 레전드 반열의 투수. 팀의 에이스 투수로써 12년만의 V10에 큰 기여를 하였고, 09 WBC 준결승 전에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투구를 펼쳤다. 2011년에는 리그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 및 21세기 투수로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투수 4관왕을 달성하며 해외 진출의 꿈이 열리나 했지만 기아에서 포스팅을 거절하였으며, 이후 2년 뒤에 FA로 진출하였지만 이미 기량이 하락한 시점에서 진출했기에 아쉬운 모습만 보여준채로 국내로 복귀, 이후엔 재활로 상당기간을 보내다가 18시즌 종료 이후 아쉽게 은퇴하고 말았다.
빠른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 서클 체인지업을 모두 A급으로 구사 가능한 선수로[4], 몸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 선수이다.
한기주, 신용운과 더불어 만일 기아가 이들을 혹사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는 주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
연도 | 선발 등판 횟수 | 불펜 등판 횟수 | 총 등판 경기 수 | 총 소화 이닝 |
2006년 | 0회 | 63회 | 63경기 | 94.2이닝 |
2007년 | 26회 | 2회 | 28경기 | 162.0이닝 |
2008년 | 23회 | 1회 | 24경기 | 154.2이닝 |
2009년 | 16회 | 11회 | 27경기 | 119.2이닝 |
2010년 | 13회 | 10회 | 23경기 | 101.0이닝 |
2011년 | 25회 | 2회 | 27경기 | 172.1이닝 |
2.3. 김광현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ce0e2d> |
관련 문서 김광현 Kwang Hyun Kim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마추어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
프로 경력 | ||
SK 와이번스 SK Wyverns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St. Louis Cardinals |
||
2020년 · 2021년 | ||
SSG 랜더스 SSG Landers |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국가대표 경력 |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
||
2005년 ·
2006년 ·
2008년(
최종예선 ·
본선) · 2009년 · 2014년 · 2015년 · 2019년 · 2023년 |
||
평가 | ||
플레이 스타일 | 통산 승리 일지 | |
기타 | ||
선행 ·
KK 위닝 플랜 ·
논란 및 사건 사고 ·
류윤김 ·
류김양 ·
분류 ·
사진 ·
선수 경력 틀 |
류윤김 중 가장 많은 5개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으며, MVP와 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이다.
200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1차지명을 받아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전해 SK 가 김광현의 지명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류거이를 시전하였고,[5] 20경기 3승 7패 77이닝 3.62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평범한 신인으로 지나가나 싶었지만,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1승 2패로 몰려있던 상황에 22승 투수 다니엘 리오스 상대로 깜짝 등판해 7⅓이닝 9k 무실점이라는 괴물투로 팀의 우승에 큰 공헌을 하고, 역대급 임팩트를 남겼다.
그 다음해 2관왕과 골든글러브, MVP까지 수상하며 리그 최정상급 좌완의 등장을 알리고, 09년에는 강습타구가 손에 맞는 부상을 당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 2010년에는 총 31경기 193⅔이닝 17승 7패 183K 의 성적을 거두며 다승왕에 올랐고, 우승 경기의 마무리투수로 헹가리를 받는 등, SK 와이번스의 보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시즌 이후 뇌경색이 발병하였으나, 빡빡한 팀 로테이션 사정으로 인해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등판, 결국 시즌 후 어깨 부상까지 당했다. 몇년간 이름값에 비해 부족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2014년 메이저 포스팅에도 결국 이적하지 못한 채 국내에 잔류하게 되며 메이저 진출을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고, 2017년엔 토미존 수술까지 받게 되며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되었다.[6]
2017년 토미존 부상 이후 장기 재활, 그리고 2018년에는 팀의 철저한 관리 아래에 폼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고, 2019 시즌 종료 이후 포스팅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으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2022 시즌 2년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MLB 진출 전 우려했던 의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메이저 리그에서 선발 투수로서 경쟁력을 여감없이 보여주었다. 코로나19와 MLB 노조파업이 장기적으로 흘러가며 SSG 랜더스로 예정보다 일찍 복귀하였고 정규시즌에서 KBO 리그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7]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경기 | 선발 | 이닝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실점 | 자책점 | 4구 | 삼진 |
17 |
13 (1위) |
59⅔ (1위) |
3.92 |
5 (1위)[8] |
4 |
3 (1위) |
0 | 61 | 29 | 26 | 17 |
62 (1위) |
※ 청소년 국가대표 대회 성적은 미 포함. |
- 아시안 게임: 2경기 2선발 7⅔이닝 8K 0승 0패 ERA 3.52
- 올림픽: 5경기 4선발 25⅓이닝 21K 3승 0패 1홀드 ERA 1.42
- 프리미어 12: 5경기 5선발 21⅔이닝 23K 2승 2패 ERA 2.95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경기 2선발 5⅓이닝 10K 0승 2패 2홀드 ERA 20.25
3. 해체
류현진이 2013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 윤석민은 2013 WBC에서 데드암 증세까지 얻으며 더 이상 국대에 차출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김광현은 2023 WBC를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들 이후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만한 국대 3인방이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4. 여담
놀랍게도 3명의 선수 모두 SK 와이번스의 연고 지역 출신으로[9], 1차 지명으로 SK 와이번스에 올 수 있었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는 윤석민 대신 최정을 지명했고[10], 2006년 드래프트에서는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지명해 무산됐다.[11][12][13]참고로 김광현과 류현진은 아직까지도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 다만 두 투수 모두 윤석민과의 맞대결 기록은 존재한다.
김광현 VS 윤석민
2007년 5월 13일 페넌트레이스 광주 무등경기장 SK 와이번스 대 KIA 타이거즈
김광현: 6이닝 무실점 (승)[14]/ 윤석민: 9이닝 2실점 (패)
2011년 10월 7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인천 문학경기장 KIA 타이거즈 대 SK 와이번스
윤석민: 9이닝 1실점 (승) / 김광현: 4⅔이닝 1실점 (패)
윤석민: 6이닝 3실점 (승) / 김광현: 2⅓이닝 7실점 (패)
류현진 VS 윤석민
2007년 8월 26일: 페넌트레이스 광주 무등경기장 한화 이글스 대 KIA 타이거즈
윤석민: 7이닝 3실점(ND) / 류현진: 7이닝 1실점(ND)
5. 관련 문서
[1]
류현진 06 MVP, 김광현 08 MVP, 윤석민 11 MVP
[2]
다만 2010년은 김광현이 불참했다. 이유는 뇌경색.
[3]
윤석민, 김광현, 손민한과 공동 1위
[4]
이는 2007~2010년까지의 피칭 스타일로 한정한다. 2011년부터 윤석민은 패스트볼과 고속슬라이더를 중심으로한 투피치 스타일의 운영을 펼쳤다
[5]
물론 당시엔 지금처럼 욕먹진 않았다. 당시 고교 최고 유망주는 한기주, 나승현이었다. 이재원이 FA 먹튀 행보를 보여준 이후 심각하게 두드러진 사례.
[6]
다만 이는 김광현에게 큰 호재로 돌아왔다. 뇌경색, 어깨 관절와순 골절이라는 부상까지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로테이션에서 쉬지도 못하고 비시즌엔 국대에도 꾸준히 출석하면서 08-10년도에 보여줬던 구위와 스터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토미존 부상으로 한 시즌을 쉬면서 비로소 장기 재활 기간을 가질 수 있었고, 18년도엔 팀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해준 결과, 19년도에서야 흔히 알던 김광현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가진 기량에 비해, 그 기량을 완전하게 펼치지 못할뻔한셈.
[7]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MLB에서도 단 5번만 있었던 기록이다.
[8]
윤석민, 류현진, 손민한과 공동 1위
[9]
류현진은 동산고, 윤석민은 야탑고, 김광현은 안산공고 출신이다.
[10]
다만 이는 정배픽이었다. 최정은 초대 미추홀기에서 우수 투수상을 받는가하면, 전국 대회에서는 각종 타격상을 휩쓸며 고등학교 3년 내내 유신고를 이끈 올라운더 유망주였다. 윤석민은 3학년때 신체가 급성장한 덕분에 구속이 늘어 지명된 케이스. 또한 그가 받은 2차 1번이라는 번호는 같은 번호대에
조정훈,
정의윤,
오승환,
정근우가 있음을 감안하면 결코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11]
당시 상황을 본다면, 다음해에 김광현의 지명이 확정되어 있었고, 정상호의 성장세가 생각보다 너무 더딘데 반해 박경완의 나이는 30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야 몸관리 잘하면 30중반에도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이미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당시 류현진의 팔꿈치 수술 경력도 문제였다. 이를 두고 SK 내부에서도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류현진으로 방향을 정했으나, 조범현 감독의 강력한 요청 끝에 이재원을 지명했다.
[12]
지금의 팬들 입장에서는 두 선택 모두 아쉬운 결과로 곱씹힐 수 밖에 없다. 결과론적으로 봤을때 만일 SK가 류현진을 지명했다면, SK는 류현진, 김광현이라는 두 초대형 투수를 먹을 수 있었고, 삼성과 해태의 아성에 버금가는 왕조를 건설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이재원이 입단 초기 좌타 플래툰 요원이 아닌 포수로 2군에서 혹독하게 벼려졌다면, 기본기 탄탄한 포수로써 지금까지도 안방을 책임지고 있을법했다. .
[13]
이는 2024년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SSG 랜더스는 토종 선발가 아쉬운 상황에, 류현진이 있었다면 그래도 로테이션이 문제없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고, 포수 문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해 조형우 지명, 박대온, 신범수 2차드래프트 지명, 김민식 트레이드 영입, 이지영 FA 영입에 이어 2025년 드래프트에서 이율예를 1차 지명했다. 현재 SSG의 드래프트 기조가 즉전감 지명이 강한데, 포수로 계속해서 지명권이 빠지니 투수 전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14]
참고로 이 승은 김광현의 데뷔 첫 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