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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 | 의정부 | 국왕 직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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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 오위 → 비변사 오군영 속오군 | |||
<rowcolor=#f0ad73> 고려 중앙정치기구 · 대한제국 중앙정치기구 |
1. 개요
이조(吏曹)는 조선 시대의 중앙 행정기관인 육조의 으뜸으로 천관(天官)이라고도 한다. 문관의 인사 및 인사고과와 작위 및 상훈 등의 업무를 맡았다. 일반 행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장은 정2품 판서이다.오늘날 인사혁신처, 행정안전부에 해당한다.
관청은 현대의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2. 연혁
고려 시대에는 상서성의 상서이부(尙書吏部)였다가 원 간섭기에 상서예부와 통합되어 전리사(典理司)가 되었다. 간섭 탈피 후 이부와 예부로 회복되었다가 다시 각각 전리사와 예의사(禮儀司)로 바뀌고, 다시 각각 이부와 예부로 환원하기를 반복하였다. 공양왕 대에 이조로 바뀌어 곧바로 조선으로 이어졌다.3. 조직
<rowcolor=#F0AD73> 『
경국대전』 1485년( 성종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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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0AD73> 구분 | 품계 | 관직 | 정원 | 비고 |
당상 堂上 |
정2품 | 판서判書 | 1 | 오늘날의 장관 | |
종2품 | 참판參判 | 1 | 오늘날의 차관급 | ||
정3품 | 참의參議 | 1 | 오늘날의 관리관급 | ||
<rowcolor=#F0AD73> 문선사文選司 / 고훈사考勳司 / 고공사考功司 | |||||
낭관 郎官 |
정5품 | 정랑正郞 | 3 | 오늘날의 서기관급 | |
정6품 | 좌랑佐郞 | 3 | 오늘날의 사무관급 | ||
아전 衙前 |
녹사錄事 | 8 |
오늘날의
주무관급 판서, 참판 직속 1명씩 2명 그 외 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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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書吏 | 21 |
오늘날의
공무직급 판서, 참판, 참의 직속 1명씩 3명 그 외 1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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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하 기관
- 충익부(忠翊府) - 원종공신 담당 기관이다.
-
상서원(尙瑞院) -
관인 담당 기관
임금의 옥새, 관리들의 병부(兵符)와 같은 도장, 부패(符牌), 절월(節鉞) 등 각종 증명 관련 업무를 맡았다. 시기에 따라 상서사(尙瑞司)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신은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설치된 인사 담당 기관인 정방이다. 직무 특성상 결재에 필요한 관인들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 육조직계제 시행으로 인사 직무가 이조로 완전히 이관되면서 관인 관리 기능만 남았다. 기관장인 정(正)은 승정원 도승지가 겸임했다.
-
액정서(掖庭署) - 왕실 비품 관리 기관
왕명의 전달과 알현, 왕이 쓰는 붓과 벼루와 같은 문구의 공급, 궁궐의 자물쇠와 열쇠나 정원의 관리, 각종 의식 때 왕의 시위(侍衛) 및 배종(陪從), 향안(香案) 및 표안(表案) 및 보안(寶案)과 같은 의례 및 사무용 가구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다.
5. 이조판서 목록
- [ 이조판서 목록 펼치기 ]
-
이조판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므로 권신들이 많이 차지하기도 했다.
- 노론 4대신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 소론 5대신 중에서도 조태구, 최석항, 유봉휘, 이광좌
- 인현왕후의 작은오빠이자 숙종의 작은 처남이자 영조 때 노론의 영수인 민진원
- 숙종 때 수학자인 최석정
- 인현왕후의 백부인 민정중
- 산림의 영수인 송시열과 송준길
- 척화파의 대표 주자인 김상헌과 주화파의 대표 주자인 최명길
- 척화파 김상헌의 동생인 김상용
- 송시열의 수제자인 김수항
- 훈구파의 창업 멤버인 한명회와 훈구파의 영수 정창손
- 뛰어난 학자인 서거정과 강희맹
- 세종 때의 기술관료이자 세조의 사돈이고 성종 때의 국가원로인 정인지
- 세조 때 청백리인 구치관
- 영조 때 노론의 영수인 정호, 이관명, 홍치중
- 중종 때 명신인 정광필
- 효종, 현종의 신임을 받은 정태화, 이경석
- 대동법을 확장시킨 김육
- 서인 산당의 영수이자 송시열, 송준길의 스승이고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
- 대동법에 앞장선 이시백
- 서인의 핵심 영수인 심지원
-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
- 대동법을 창조한 이원익
-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연 장본인인 김조순과 김희순, 김달순, 김문순, 김이교, 김이재, 김유근, 김홍근, 김흥근, 김좌근, 김수근, 김보근, 그리고 김병기, 김병학, 김병교, 김병국, 김병덕, 김병시
- 풍양 조씨의 중심인물인 조만영, 조인영, 조병현, 조성하, 조영하, 조경하
- 여흥 민씨 세도가 민규호, 민태호, 민겸호, 민치상, 민영목, 민응식, 민영익, 민영상, 민영휘, 민영준, 민영규, 민영환
- 훈구파 학자였던 홍귀달
- 무오사화 때 실록청 당상관이던 이극돈
- 현종의 처백부이자 명성왕후의 백부, 그리고 김육의 아들인 김좌명
- 정치공작의 달인인 김석주
- 정현왕후의 친척인 조사석
- 숙종 때 남인 청남의 영수이자 송시열의 라이벌인 윤휴
- 효종, 현종, 숙종 때 남인 핵심 대신인 이원정
- 인평대군의 인척인 오시수
- 남인의 핵심인물인 목내선
- 서인 핵심 중진인 이정영
-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연산군의 장인인 신승선
- 강희맹의 아들인 강귀손
- 연산군에게 직언을 한 허침과 성종의 신임을 받은 허종 형제
- 정현왕후의 인척인 윤필상
- 훈구파의 영수이자 중진이던 노사신
-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무관 출신의 어유소
- 훈구파의 중진이자 대학자인 이승소
- 훈구파 계열의 대학자인 홍귀달
-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과 숙부인 홍인한
- 반정 3대장 중에 성희안, 유순정
- 신숙주의 손자인 신용개
- 조선사 최강의 권신인 김안로
- 김안로의 측근인 장순손, 한효원, 김근사
- 중종 때 권신이자 학자인 남곤
- 중종 때 권신인 심정, 이행, 이항, 김극핍
- 중종 때 조광조를 추천한 안당
- 황진이와의 일화로 유명한 소세양
- 명종 때 국가원로였던 홍언필, 윤인경
- 굽은 소나무 청백리로 유명한 김수동
- 중종 때 대학자인 성세창
- 영남 유림의 영수 이언적
- 명종 때 청백리이자 국가원로인 상진
- 명종, 선조 초기에 원상인 이준경
- 신숙주의 증손인 신광한
- 선조 초기에 국가원로였던 홍섬, 이탁
- 명장 권율의 아버지인 권철
- 선조 때 동인의 영수인 노수신
- 선조 때 서인의 영수인 박순
- 대북의 영수임에도 인목왕후 폐위에 반대한 기자헌
- 선조 말기의 권력실세인 류영경, 허욱, 한응인
- 선조, 광해군, 인조 때 대학자이자 명신인 이정구
- 선조의 고명대신이자 인조 때 국가원로인 신흠, 오윤겸
- 민회빈 강씨의 아버지인 강석기
- 인조반정의 핵심공신인 김류, 이귀
- 인선왕후 장씨의 아버지이자 효종의 장인인 장유(조선)
- 김상헌의 형인 김상용
- 효종 때 서인의 영수인 이후원
- 현종 때 서인 한당 영수인 홍명하
- 숙종 때 서인 중진인 남용익
- 서인 산당 중진인 조복양
- 김조순의 절친인 남공철, 이상황, 심상규
- 송시열의 수제자이자 송규렴의 아들인 송상기
- 권상하의 동생인 권상유
- 송시열의 핵심 수제자인 권상하
- 송시열의 수제자였지만 정적으로 돌아선 윤증
- 사변록의 저자인 박세당
- 정희왕후의 인척인 한계미, 한계희, 한계순 형제
- 박원종의 아버지인 박중선
-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
-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은 명재상인 황희, 맹사성
-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재상 허조
- 소론의 재야영수인 박세채
- 연산군 초기에 국가원로였던 이극배
- 갑자사화에 억울하게 연루된 성준, 이극균
- 정희왕후의 인척인 성봉조
- 훈구파의 중진, 영수이자 정희왕후의 측근인 홍응
- 임진왜란 때 나라를 살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유성룡
- 이순신을 구명한 정탁
-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
-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
- 인종 때 대윤의 핵심인 유관, 유인숙
- 명종 때 권신이자 외척인 이량
- 인순왕후의 처숙부인 심통원
- 정태화의 동생인 정치화
- 민암의 측근이자 남인 탁남의 중진인 유명천, 유명현 형제
- 기사환국 이후 남인의 원로였던 이관징
- 남인계의 핵심 원로실세였던 심재
- 숙종 초에 탁남의 영수인 민희, 민점
- 숙종 초에 청남의 거두였던 홍우원
- 중종 때 권신인 권균
- 을사사화를 일으킨 임백령
- 김장생의 손자이자 김만기, 김만중의 숙부인 김익희
- 서인 노론 중진인 홍처량
- 이건명, 이관명의 아버지인 이민서
- 서인 소론 중진인 박태상
- 민암의 측근이자 남인의 핵심 중진이자 행동대장인 오시복
- 송시열의 수제자이자 서인의 핵심인물인 이숙, 이익
- 송시열의 강력한 수제자인 이단하
- 김조순의 후원자인 김재찬, 서매수, 이시수, 한용귀, 김사목
-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이서구
- 정순왕후 김씨의 오빠 김관주
- 영조 후기에 노론의 영수였던 김상복, 한익모, 신회, 김양택, 이사관
- 벽파의 영수인 김종수, 심환지, 유언호, 윤시동
- 노론 탕평당의 영수인 김상로, 신만
- 영조 중반기에 노론의 영수이자 중진인 김약로, 김취로 형제
- 균역법을 제안한 홍계희
-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
- 김정희의 친구인 권돈인
- 김조순의 절친이자 순조 때 권력실세인 임한호
- 민진후의 증손자인 민종현
- 영조 중반기 소론의 영수인 이종성
- 영조 초반기 소론의 영수인 이태좌
- 희빈 장씨 모친의 가마 궁궐 출입을 불허한 이익수
- 명종 때 재상을 지낸 윤개
- 정조의 최측근인 정민시
- 정조의 초계문신인 서유린, 서유방
-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초가 되는 김이소
- 풍산 홍씨 외척인 홍낙성, 홍낙명, 홍양호
- 홍국영의 숙부인 홍낙순
- 순조와 헌종 때 척신인 홍석주, 박종훈
- 순조 때 시파 중진으로 활동한 이만수
- 철종 때 원로대신인 이헌구, 김도희, 박회수
- 헌종의 측근으로 청렴결백했던 이지연
- 헌종, 철종 때 김대건 신부를 죽이고 안동김씨 세력과 대립했던 권돈인
- 고종 때 원로대신인 신응조
- 송시열의 8대손 송근수
- 고종 때 수구파의 핵심인물인 심순택, 서당보
-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
- 이완용의 양부인 이호준
-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 청백리인 정원용
- 정원용의 아들인 정기세와 손자인 정범조
- 방곡령을 발의한 조병식
- 영조와 정조의 측근인 서명응
- 영조 때 노론 중진인 윤급
- 영조 때 노론 영수인 민응수
- 영조 때 노론 영수이자 선봉장인 김재로
- 정조의 총애를 받은 원로대신 김치인
- 숙종 때 노론 영수이자 송시열의 수제자이고 이단하의 조카였던 이여
- 북한산성을 증축한 이유
- 숙종 중반기 노론 중진인 서종태
- 중종 때 조광조를 추천한 안당
-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자 수구파의 거두인 홍순목, 한계원
- 광해군 때 대북 거물인 한효순, 민몽룡
- 영조 중반기 소론의 영수인 정석오
- 영조 때 노론 중진인 조상경
- 광해군 때 북인의 영수인 박홍구, 조정
- 안동 김씨 가문 중 벽파의 영수인 김달순
- 순조 때 시파 영수인 이존수
- 영조 때 노론 강경파 거두인 이의현
- 민시중의 아들인 민진주
- 윤두수의 아들인 윤방
- 조선 광해군과 인조 때 실학자인 이수광
- 이수광의 아들 이성구
- 청국과의 물물교환에 능통한 심열
- 인조 때 서인 영수였던 홍서봉
- 윤지완의 동생인 윤지선
- 영조 때 소론 온건파의 수장이자 거두인 최규서
- 숙종 때 노론의 영수인 이유와 이여
- 유영경의 측근인 성영, 최천건
- 허균의 형인 허성
- 인조의 외할아버지인 구사맹
- 송시열의 문인인 이숙
- 광해군의 측근이자 북인의 중진인 이상의
- 청렴결백 하였지만 중종의 친위쿠데타인 기묘사화에 협조했던 김전
- 정광필의 손자인 정유길, 정광필의 증손자인 정창연
- 선조 때 유교7신 중 한 명인 신흥
-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
- 선조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한 박장원
- 정조 때의 명신인 채제공
자세한 내용은 분류:이조판서 문서 참고하십시오.
6. 관련 기록물
7. 기타
- 특기할 만한 직책이라면 이조 소속 관리직 중 하나인 이조 전랑(銓郞)이 있다. 이조 전랑은 이조의 정5품 정랑(正郞)과 정6품 좌랑(佐郞)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조선 삼사에 대한 임명권인 당하통천권,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벼슬로 추천하는 권한인 낭천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조선 붕당 정치의 핵심 중 하나였다. 또한 이조 전랑은 다른 직책과 달리 이조의 최고위직인 이조판서가 임명할 수 없었으며,[1] 자신의 후임자를 직접 추천하는 자대권(자천권)을 가지고 있었다. 선조 때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림파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면서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