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7:08:01

이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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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무신 집권자
李義方 | 이의방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이름 이의방(李義方)
사평왕후(思平王后)
형제 이준의, 이린(李隣), 이거
출신지 고려 전주 [1]
사망지 고려 개경 나성 선의문(宣義門) 앞
생몰연도 ? ~ 1174년
재임기간 1170년 ~ 1174년 (4년)

1. 개요2. 생애
2.1. 무신정변을 주도하다2.2. 정권 장악2.3. 의종 시해와 계속되는 막 나가는 행위2.4. 갑오정변: 처참한 말로
3. 여담4. 대중매체에서5. 같이보기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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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무신 (武臣). 100년 동안 이어질 무신정권의 실질적인 첫 번째 집권자이다.

2. 생애

2.1. 무신정변을 주도하다

본관과 출신지 모두 전주 전주 이씨 출신이다. 또한 그의 동생인 이린은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의 6대조이다. 반역자로 규정된 이의방과 혈연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걸렸는지 《전주 이씨 족보》에는 이의방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2] 족보에 의하면 전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에서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3]이다. 그의 15대 후손이며, 아버지는 대장군 직위를 가졌던 이용부(李勇夫)이고, 어머니는 정승 이형(李珩)의 딸 이씨로 부계는 무신 집안이고, 모계는 문신 집안이었다. 숙부 이단신(李端信)은 문하시중, 사촌 이작산(李作山)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형으로는 이준의, 동생으로는 이린과 이거, 여동생이 있었다.
정변 당시의 직위
직위 견룡행수(牽龍行首) 친위대인 견룡군의 친위대장 직위.
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났을 당시 이의방은 근위대의 대장에 해당하는 견룡행수(牽龍行首) 직위에 있었다.[4] 견룡군은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호위하는 친위 부대로서 로마 제국 근위대 프라이토리아니의 예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런 근위 부대의 경우, 왕실에서 정변을 일으키기 최적의 위치였다. 견룡행수(牽龍行首)는 그런 견룡군의 실병(實兵) 지휘 즉 실질적인 지휘를 맡아 직접 동원할 수 있는 병사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 견룡군은 직제상 2군(二軍)에 속했으나 왕의 직속 친위 부대로서, 견룡행수는 2군(二軍) 즉 응양군, 용호군의 상장군, 대장군이 아닌 임금에게 직접 지휘를 받았으며, 유사시에는 왕의 허락하에 타 부대에 대한 지휘권도 행사할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5] 이의방은 이고, 채원 등과 함께 하급 장교파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정중부 등 고위 장군들이 온건적인 노선을 취할 때,
"문신의 관을 쓴 놈들은 한낱 서리(胥吏)일지라도 죽여서 씨를 남겨 두지 마라!" (凡戴文冠者, 雖胥吏, 殺無遺種!)
《고려사》 <정중부 열전>
면서 문신들을 철저히 색출한 뒤 싸그리 쓸어버리는 냉혹한 면모를 보인다.[6][7]
정변 후 의종에게 받은 직위
직위 응양군(鷹揚軍) - 용호군(龍虎軍) 중랑장(中郞將) 고려 2군 6위 중 2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의 4번째로 높은 직위.[8]
의종은 곧 이의방에게 응양군과 용호군의 직위를 동시에 주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의 형 이준의는 승선(承宣) [9] 직위에 봉해져 형제가 무관과 문관의 요직을 차지했으나 결국 의종을 폐위하고 거제도에 유폐시켰다. 효령태자 왕기도 폐한 후 유배보내고 태손을 죽였다.
정변 후 명종에게 받은 직위
공신호 벽상공신(壁上功臣)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려진 신하는 삼한공신(三韓功臣)이라 한다. 초상화는 공신당의 벽 위에다 붙혔기 때문에 이의방 때부터 벽상공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이후 두 명칭이 합쳐져 벽상삼한공신(壁上三韓功臣)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직위 대장군(大將軍) - 전중감(殿中監) 兼 집주(執奏) 대장군은 두 번째로 높은 무관직, 전중감은 궁궐 내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 집주는 신하가 왕에게 올린 문서를 감독하는 직위.
9월에 의종의 동생인 익양공 왕호를 명종으로 옹립한 후, 대장군 兼 전중감에 올라 정권을 장악해 최초의 무신 집권자가 되었다.

10월에는 외가 쪽 고향인 금구를 현으로 승격시켰으며 정중부, 이고와 함께 벽상공신(璧上功臣)으로 책봉되었다. 1171년 1월에는 자신을 살해하려고 대장군 한순과 장군이었던 한공, 신대예, 사직재, 차중규 등이 모의하자 차중규를 유배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의종의 사저 3채를 이의방, 정중부, 이고가 나누어 가졌다. 이의방은 천동댁(泉洞宅), 정중부는 관북댁(館北宅), 이고는 곽정동댁(藿井洞宅)을 각각 나누어 가졌다.[10]

이의방이 중방 기녀들을 데려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마음껏 마시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대궐 안까지 들렸으나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2.2. 정권 장악

무신 정권 기구
<rowcolor=#fff> 정치 기구 사병 기구 친위 겸 정규군 기구
<rowcolor=#fff> 연립 ~ 최충헌 최충헌 최우 ~ 임연 경대승 ~ 임연 최우 ~ 임유무
중방(重房) 교정도감(敎定都監) 교정도감 & 정방(政房) & 서방(書房) 도방(都房) 삼별초(三別抄)

집권 시기의 직위
직위 흥위위(興威衛) 섭대장군(攝大將軍) - 위위경(衛尉卿) - 지병부사(知兵部事) 흥위위 섭대장군은 2군 6위 중 6위인 흥위위 소속의 섭대장군이다. 섭대장군의 섭은 오늘날의 (진)과 비슷하며 녹봉 대우는 한 단계 아래인 장군과 같다. 지병부사는 지금의 국방부 차관급 직위이다.
좌승선(左承宣) 위 직위에서 승진. 선지(宣旨)를 조정에 알리거나, 조정의 의견을 왕에게 올릴 때 검사하는 직위다.
1171년 1월에 모반을 도모하던 이고를 죽였고 [11] 직후인 4월에 다시 모반을 도모한 채원마저 제거하며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이고와 채원의 반역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을 본다면 둘 다 이의방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천하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이의방은 중방(重房)을 강화하여 고위급 무신들을 끌어들이는 유화책을 펼치며 정국을 이끌어 나가려 했다. 애시당초 하급 무관 출신으로 서열상 재상의 직위로 직행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던 이의방이 자신의 상관들이었던 중방의 대장군들과 상장군들을 끌어들이기 애매했기 때문에 중방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때 중방의 수장이며, 원로 무신들의 리더인 정중부와 연합해 중방의 지지를 얻어냈다. 《고려사》 <정중부 열전>에는 이고, 채원이 연이어 제거되자 이의방 형제를 의심하여 조정에 나가지 않고 있던 정중부를 이의방이 술을 들고 찾아가 대화를 나누니 부자 관계를 맺고 서로 연합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방의 수장이었기에 중방의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일선에서 직접 지휘하는 하급 무관들의 지지가 필요한 정중부와는 반대로 하급 무관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본인도 하급 무관 출신이다보니 중방의 지지가 필요한 이의방이 처한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2.3. 의종 시해와 계속되는 막 나가는 행위

1173년 8월에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과 살아남은 일부 문신들이 의종 복위를 내세우고 한달 후 을 일으켰는데, 이에 이의방은 군을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10월에 이의민 경주로 보내 유폐되어 있던 의종을 시해하면서 대대적인 역풍 크리를 맞게 된다.[12] 이로 인해 조정 여론 등이 악화되었고, 개경 승도의 난, 조위총의 난이 연달아 터지며 이의방 정권에 위기가 찾아온다.

1174년 1월에 귀법사의 승려 100명이 성 북문을 침입하자 이에 반격을 가해 그들을 모조리 죽여 진압했고, 귀법사, 중광사, 홍호사, 홍화사 등 여러 절의 승려들 2,000명이 모여서 성문을 공격하자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승려들을 죽이면서 들까지 모두 전소시켜 버린 것도 모자라 절의 재산들도 다 압수했다. 귀법사는 광종(제4대), 홍호사는 선종(제13대)이 각각 창건했던 절들이다. 이 절들은 개성 부근에 위치한 근왕 사찰들로서 근왕의 의도로 이의방을 공격한 것으로 추측된다.[13]

이를 말리는 형 이준의와 말다툼하다가 이준의가 이의방이 저지른 악행을 말하며 질책하자[14] 격분하여 이준의를 죽이려고 했지만, 문극겸 정중부의 만류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이때 이준의를 죽이려다가 그가 달아나서 실패하자 화를 참지 못했는지 칼로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쓰러졌다고 한다. 사실 정중부 역시 이준의를 체포해 죽이려 했으나, 정중부의 부인이 굳이 다른 집의 형제 싸움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며 만류했고, 정중부 본인도 부인의 말을 받아들여서 이준의는 무사히 넘어갔다.[15] 이 살벌한 형제 싸움은 나중에 둘이 조용히 화해해서 해결했다고 한다.

2.4. 갑오정변: 처참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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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적들을 없애며 권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정중부의 연합으로 중방에게까지 지지를 받아내면서 정치적으로 세가 커진 이의방은 아예 좌승선에 오른 후, 태자비를 쫓아내고 자신의 딸[16] 왕태자비로 왕태자[17]와 정략 결혼까지 시키는 행보를 걸었다. 하지만 명문가라 해도 문관 출신도 아니고, 하급 무관 출신인 이의방이 태자비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딸을 태자비로 들인 것은 도가 넘은 처사였기에 신하들이 반발하였다. 특히 이의방을 경계하던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은 이의방의 계속된 전횡으로 말미암아 더는 묵과하지 않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1174년 북계 40개 성이 가담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북면으로 향하던 도원수 윤인첨[18]이 대패하고, 동북면으로 향하던 도지휘사 최균[19][20][21]이 죽자, 다시 동북면으로는 두경승을 보내어 진압했으나, 서북면에서는 조위총의 군대가 개경 턱밑까지 도착한다. 대노한 이의방은 내통을 의심하여 서경 사람인 상서 윤인미, 대장군 김덕신, 장군 김덕재 등 100여명을 북문 앞으로 불러 모은 후 이들을 모두 참살하고, 이들의 수급을 저자에 효수하였다. 이후 이의방 자신이 직접 출정해 예성강을 넘어 최숙을 선발대로 보내 적을 혼란에 빠뜨린 후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대동강까지 이르렀으나, 조위총의 군대가 성 안으로 들어가서 공성전을 펼치며 추위로 인해 전황이 어려워지자 조위총의 아들을 포로로 삼아 귀환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재출정을 준비하던[22] 1174년 12월에 선의문 밖에서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과 그의 사주를 받은 승려 종참 등(僧宗旵等)에 의해 살해된다.[23] 결국 조위총의 난이 한창인 어수선한 정국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때 이의방은 정중부 세력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아무런 호위도 거느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갑오정변(甲午政變)이라 부른다.

결국 그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고, 딸 또한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 태자비에서 폐출당했다.[24] 무신들은 처음에는 문신들이 승군을 사주하여 일어난 일로 여기고, 문신으로서 원정군 지휘관인 윤인첨을 죽이려 했으나, 정중부가 설득하여 겨우 막았다. 이후에도 직속 부하들인 장군 이영령, 별장 고득시, 대정 돈장도 이의방의 복수를 하려다 발각되어 모두 붙잡혀 귀양가게 된다. 반면에 정중부는 문하시중에 임명되며 동시에 무신 집정에 오른다. 이의방의 죽음을 계기로 그 동안 이의방의 무력에 눌려 있던 중방의 원로 무신들이 실질적인 권력자로 등장하며, 정중부는 그들을 기용하면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문신들을 우대하여 문신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진다.[25][26]

3. 여담

  • 일설에는 < 십팔자위왕> [27]의 도참설을 신봉하여 왕이 되고자 했는데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이의방이 척살당한 후 이린은 전주로 내려가 전주 이씨 가문을 존속시켰고, 이린의 집안에서 이성계가 탄생해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면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 벽상공신(璧上功臣)에 정중부, 이고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으니 이들 3명이 무신정변의 주동자이다. 일반적으로 무신정권의 첫번째 집권자로 본다. 이고가 부각되던 시기가 잠시 있었으나 그 기간이 짧은데다 이고가 절대권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이고, 이의방, 정중부 3명이 서로 눈치보며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이의방의 집권기를 정중부의 집권기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무신정변 당시부터 집권 이후에도 정중부가 더 높은 자리에 있었고 대외적으로 무신들을 대표하는 위치였다. 이의방과 이고는 처음에 무신정변의 대표로 우학유[28]를 내정하였으나 우학유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정중부에게 제의하고 정중부는 이를 받아들인다. 둘은 성향 차이도 확연한데 정중부를 비롯한 노장파 무신들은 온건파[29]로 분류되는데 반해 이의방 등의 소장파들은 문관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던 강경파였다.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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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rowcolor=#670000,#fedc89>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rowcolor=#670000,#fedc89>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rowcolor=#670000,#fedc89>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
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2(姦臣二)」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128권 「반역2(叛逆二)」 129권 「반역3(叛逆三)」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한순 다지 · 홍복원 (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 신창(창왕)) }}}}}}}}}}}}

[1] 現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2] 이준의와 함께 《 고려사》 < 반역 열전>에 올랐기 때문에 훗날 국성이 된 전주 이씨는 족보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 관계를 단절하고자 했다. [3] 고려 시기 다른 반역자 중 하나였던 이자겸의 증조부 역시 이한(李翰)이라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4] 직위 자체는 8품 밖에 안 될 정도로 낮지만, 실질적 권한이 막강하고,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키다보니, 실세가 되기 좋은 자리였다. 대한민국만 해도 곽영주 차지철의 예시가 있다. 그만큼 실제 입지도 남달랐다. [5] 때문에 이의방이 보현원에서 왕명으로 순검군(巡檢軍)을 동원할 수 있었다. [6] 그런데 이 말은 굉장히 모순적인 것이 족보에 의하면 이의방 본인의 외조부 이형은 재상이었다. 즉 이의방의 어머니는 문신 집안이었고, 이의방의 남동생들 이린, 이거 또한 문신이었다. 당연히 이의방의 동생들은 이러한 숙청 리스트에서 빠졌는데 이의방이 문신들에게 분노해서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을 했다기보다는 어머니가 문신 집안이라 다른 무신들에게 의심받을지도 모르니 문신들에 대해 더욱 강경하고 잔혹한 태도를 보여 다른 무신들에게 "저놈의 어미가 문신 집안 여식이라 문신들을 싸고 돈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가 추측된다. 평민 출신에 문신인 김돈중에게 수염을 불태워지는 치욕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인 정중부와 달리 이의방은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권력가 자제들이 갈망하던 자리인 견룡행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배경이 좋다보니 일반적인 천대를 받는 무신들 입장에선 정중부의 입장에 더 감정이입하기 쉬웠을 문제도 있다. 근데 저 말을 이의방이 직접 한 건 아니고, 정변을 주도한 무신들이 사람을 시켜서 길거리에서 저 말을 외치게 한 것이다. [7] 그리고 이의방이 했던 이 말을 드라마 <무인시대> 첫 회 끝에서 대사로도 쓰이기도 했다. [8] 고려의 무관직은 상장군 > 대장군 > 장군 > 중랑장 > 낭장 > 별장 등등 순이다. [9] 지주사와 함께 임금의 선지(宣旨)를 선포하고, 임금에게 올라오는 문서를 관리 및 감독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10] 원래 궁(宮), 별궁(別宮)으로 불렸는데 의종이 소유한 별궁이 너무 많아서 댁(宅)으로도 불렸다. 의종이 별궁을 소유하고 짓는데 그 수도 많지만 이를 환관이 주관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원망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1] 이때 직접 궁문 밖에서 대기하다가 철퇴를 사용해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 [12] 이의민 역시 평생 동안 임금을 시해한 대역죄인이라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경대승이 편전에서 대놓고 "선왕을 시해한 역적이 있는데 어째서 이대로 있는 거요?"라며 큰 소리로 일갈했을 정도. 결국 경대승과 도방을 두려워한 나머지 고향 경주로 낙향하게 된다. [13] 고려시대의 절은 흔히 승려들이 참선하는 이미지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고려에서는 승군(僧軍)을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로 승려 집단은 나름 그럴싸한 무력을 갖춘 집단이었다. 때문에 호족들이 후원하는 사찰의 승려들이 호족들 간의 권력 다툼에 동원되기도 하였고, ' 만불향도'(萬佛香徒) 같은 불한당 무리가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4] 의종을 살해한 것, 의종의 저택을 빼앗고 의종의 후궁을 첩으로 삼은 것, 태후의 여동생을 겁탈한 것. 막가파인 동생 이의방보단 최소한 정치 센스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15] 하지만 나중에 이의방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이준의도 정중부에 의해 살해된다. 즉, 정중부가 이준의를 죽이려던 건 라이벌인 이의방의 세력을 약화시킬 기회를 잡았다고 여겨서였을 가능성이 높고, 정중부의 부인은 그 대신 둘의 갈등을 이용하자고 봤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결국 둘 다 죽이는 데 성공한다. [16] 시호는 사평왕후. [17] 훗날의 강종. [18] 윤관의 손자로, 문신 출신이다. 윤관은 문신이지만 무신들에게도 존경받았기 때문에 윤인첨은 무신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19] 동북면 도지휘사이자 동북면 병마부사 최균(崔均)이 동북면 병마사 이의(李儀)를 만나기 위해 함경도 화주성에 머무는데, 한 낭장이 성문을 열어 서경 출신 장군 김박승, 조관이 이끄는 서경유수군(西京留守軍)이 들이닥쳤다. 조위총 측에 가담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오히려 이를 꾸짖자 최균 이하 제장들까지 전원을 몰살시켰다. 다시 동북면으로 향한 두경승이 함경도 의주성을 함락하고, 최균과 제장들을 죽인 김박승의 목을 베어 개경으로 보냈다. [20] 최균은 조위총의 난에 맞서 의연한 죽음을 맞이했다며 완주백(完州伯)에 봉해지고, 전주 최씨(全州 崔氏) 사도공파(司徒公派)의 시조가 된다. 그런데 훗날 1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상황이 바뀌어 당시 성문을 열어준 낭장은 정변을 일으킨 반란군에 맞서 서경유수군을 도왔다며 하빈군(河濱君)에 봉해지고, 하빈 이씨(河濱 李氏)의 시조이자 전주 이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의 파조(派祖)가 된다. 당시 무신정변에 반대하며 성문을 열어준 이 낭장이 바로 이의방의 동생이자 문극겸의 사위인 이거(李琚)였다. [21] 문극겸의 두 딸이 이의방의 동생 이린, 이거와 혼인하였다. 즉 문신들의 대표격이던 문극겸과 무신정변 주동자 이의방은 겹사돈이다. 겹사돈을 맺을만큼, 서로에게 파국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어떤 정치적인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2] 1174년 11월 27일, 원수 윤인첨, 후군총관사 두경승을 지휘부로 하는 대규모 원정군이 구성된다. 그런데 여기에 승려들로 구성된 승군(僧軍)도 참여하게 된다. 승군(僧軍)이 원정군을 구성하기 위해 개경으로 모였다. 이들은 이의방이 암살된 후에도 명종이 이의방 딸인 태자비 폐출을 주저하자 보제사(普濟寺)라는 절에 모여서 태자비 폐출 관련 상소를 올렸다. [23] 이의방을 암살한 승려 종참은 그 이후로도 정균에 빌붙어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먹다가 1183년, 경대승에 의해 정중부 일파가 모두 쓸려나간 후 감히 승려의 신분으로 함부로 조정에 드나들고 권세를 취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 [24] 훗날 희종(熙宗)이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폐위되자 즉위한 이가 바로 이의방의 딸과 혼인한 강종이다. 강종(康宗)이 왕위에 오르자 폐위된 태자비 이씨는 복위되었고, 사후 사평왕후(思平王后)로 추존된다. 둘 사이에 수령궁주(壽寧宮主)라는 딸이 하나 있다. [25] 문신들에게 치욕을 당한 피해자 입장이던 정중부지만, 이미 김돈중을 죽여서 복수도 한 마당에 괜히 원한도 없는 문신 전체에게 확대하기보다는 적절히 타협하는 편을 선호했다. 당장 이는 비단 정중부만이 아니라 정중부의 지지 세력이며 정중부 세력의 핵심인사들인 중방 원로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중부의 세력 중 네임드가 훗날 정중부를 죽인 경대승의 부친 경진이었다. [26] 대장군 정도만 되더라도 후대가 귀족 집안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 중방 원로들은 한뢰 같은 원한 품은 놈들만 제거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었다. 특히 급격한 사회의 변화보다는 문신들과 결탁해서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으로, 문신과 무신의 혼인동맹이 이렇게 탄생해 살아남은 문벌귀족들의 전횡이 이어진다. [27] 李를 파자(破字)하면 十八子가 되니, 이씨(李氏)가 왕(王)이 된다는 도참이다. 고려 왕실에서도 이 도참이 신경쓰였던지 '이왕도한양'(李王都漢陽), 즉 '이씨가 왕이 되어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는 《서운관비기》(書雲觀秘記) 등을 믿어 한양을 남경(南京)으로 삼고,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을 부윤(府尹)으로 삼아 운(運)을 지나가게 하며, 삼각산 아래에는 오얏나무(李)를 심어 번성하면 벌리사를 보내어 오얏나무(李)를 베고, 이 일대의 지명은 벌리(伐李)로 하여 이씨의 기를 누르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의 지명이 이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도참은 현실이 되어 조선 왕실의 문양은 오얏꽃, 즉 '이화'(李花)이다. [28] 김부식 휘하에서 묘청의 난을 진압한 우방재의 아들이다. 우방재는 무신이지만 공로가 많아 형부상서와 우복야를 역임했고, 생전 아들에게도 문신들과 다투지 말라고 타일렀다. 우학유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어 정변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았는데 마침 아내가 이의방의 누이이기도 해서 큰 화를 입지는 않았다. 혼인한 시기가 흥미로운데 무신정변이 성공한 직후로 우학유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걸로 추측된다. [29] "우리가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은 이복기, 한뢰 등 4~5인이다"며 대대적인 문신 숙청을 만류한 대장군 진준의 입장이 당시 고위 장군들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진준은 이의방이 죽고 정중부가 정권을 장악하자 참지정사로 중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