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8:18:35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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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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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등재과정4. 전 세계의 세계기록유산
4.1. 대륙별 목록4.2. 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
4.2.1. 목록
4.2.1.1.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4.3. 북한의 세계기록유산4.4. 중국의 세계기록유산
4.4.1. 목록
4.5. 일본의 세계기록유산
4.5.1. 목록
4.6. 미국의 세계기록유산
4.6.1. 목록
4.7. 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
4.7.1. 목록
4.8. 세르비아의 세계기록유산4.9. 기타 세계기록유산
5. 등재 추진 중인 기록유산
5.1. 한국5.2. 중국5.3. 일본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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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Memory of the World)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문화재로, 인류 대대손손 길이길이 보존할 만한 기록물을 대상으로 지정한다.

2. 특징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오래된 자료만 등재될 것 같지만, 한국의 새마을운동 기록물이나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처럼 현대의 기록이거나, 개인적인 기록도 역사적으로 훌륭한 가치가 있다면 등재된다. 다른 국가의 경우를 들어보자면, 체 게바라에 대한 일기, 신문기사, 문서등을 포함한 기록물이나 쿠바 영화뉴스, 니카라과 문맹퇴치기록물, 남미 70-80년대 독재정권에 대한 문서, 필름등이 포함된 기록물들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있다. 다시 말해 오래된 '문화유산'이 대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 선정된다. 기록물의 형태도 다양해서 책, 신문, 잡지, 포스터, 그림, 악보, 영화, 지도 등 거의 모든 기록물이 포함된다.

세계기록'유산'이라는 번역 때문에 문화유산처럼 오해되곤 하지만 원문은 Memory of the World, 즉 세상의 기억이란 뜻이다. Record가 아닌 memory라서 기억이 더 적합한 의미인데다 유산을 의미하는 heritage는 들어 있지도 않다. 다른 한자 문화권 국가들의 경우는 중국은 '世界记忆计划(세계 기억 계획)'을, 일본은 '世界の記憶(세계의 기억)'을 사용한다. 유네스코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문화유산/자연유산에 맞춰 번역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기록유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기록물의 내용보다는 기록물 그 자체에 초점을 둔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도 그것이 당대에 적힌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기록된 것이 전해 내려져 오는 것이면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한다.[1] 따라서 엄밀히는 '세계기록유산'보다는 '세계기록물유산'이 더 알맞은 표현이다. 기록의 내용 보다는 기록물 자체의 중요성을 높게 치기 때문이다.

성경이나 쿠란, 불경 같은 서적들도 그 기록 자체를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아니고 실존하면서도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어 있는 판본을 등재하는 것이다. 알레포 코덱스(구약, 이스라엘에서 등재)와 라틴어 성경 MS. GKS 4 2° 제1~3권(덴마크에서 등재), 구텐베르크 42행 성경(독일에서 등재), 복음서 코덱스 베라티누스 1, 코덱스 바레티누스 2(알바니아에서 등재), 마인츠 시편(오스트리아에서 등재) 오스만의 무스하프 코란(우즈베키스탄에서 등재), 이집트 국립도서관의 맘루크 쿠란 필사본 컬렉션(이집트에서 등재) 문화적 가치가 높은 판본은 등재되어 있으며, 불경도 한국의 팔만대장경, 인도의 미륵내시경 등이 등재되어 있다.

2023년 청주시 흥덕사지 근처에 기록을 관리, 연구하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개관했다. #

3. 등재과정

유네스코에서 세계 각국들에서 2년에 한 번 새로운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을 받는다. 기한은 한 번의 등재과정이 끝나고 끝난 해(홀수 해) 말까지. 따라서 자료를 제출해야 되는 실질적인 시한은 대략 6개월 정도이다. 각국이 유네스코에 낼 수 있는 유산은 한 번에 최대 2건이다. 등재신청에는 세계기록유산 신청하는 자료(원본, 사본)[2]와 세계기록유산 신청한 자료에 대한 설명, 그 자료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역사적 현실, 역사적 영향, 세계기록유산이 등재될 수 있는 당위성 등의 자료를 첨부하여야 한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 신청받은 안건에 대해 짝수 해 동안에 검토를 벌이면서 각국에 자료가 부족한 등이면 추가 자료를 요청한다. 이렇게 모인 자료들과 서류보완 지적을 받은 추가 자료들을 취합하여 새로운 홀수 해에 유네스코 총회를 열어 이 총회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회의를 한다. 이 등재회의에서 그 나라에서 내놓은 자료들에 대한 기록유산 등재안건을 의결하고 유네스코 총회 의장이 승낙하면 그날부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 그리고 새로운 자료를 신청받는 사이클로 운영된다.

2019년 이후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UNESCO탈퇴하면서 분담금 지급을 중단해버리자 유네스코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6년만의 등재 회의가 2023년 다시 열렸고, 같은 해 7월 10일 미국도 UNESCO에 재가입하였다.

4. 전 세계의 세계기록유산

※ 3건 이상 보유국만 서술.

4.1. 대륙별 목록

4.1.1. 세계기록유산/아시아

4.1.2. 세계기록유산/유럽

4.1.3. 세계기록유산/아메리카

4.1.4. 세계기록유산/기타

4.2. 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세계기록유산 18건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시아 1위, 세계 5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2007년 이후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전근대 자료 하나와 근현대사 자료 하나를 묶어서 등재를 추진하였는데, 그 등재 추진의 결과물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료, 새마을운동 관련자료,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관련 자료의 3건이다. 한편은 2017년에는 문화재청 주도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을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민간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등재신청하였다. 이 중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3건이 등재되었고 2023년 5월 18일에는 4.19 혁명 관련 기록물과 동학농민운동 기록물이 추가되어 총 18건이 되었다.

단순히 해당 기록물이 오래되었다고 등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물이 써진 당시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거나 후세에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들을 전세계가 같이 보호하고자 만든 제도인 만큼,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들을 전하려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후손으로서 성심성의껏 보호할 의무가 있다.

다음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된 것은 유네스코 산하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MOWCAP)가 주관해 따로 등록한 것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주관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4.2.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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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본)』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佛祖直指心體要節 (下卷)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高麗大藏經板-諸經板)

조선왕조 『의궤(儀軌)』

『동의보감(東醫寶鑑)』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일성록(日省錄)』

『난중일기(亂中日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陣中日記)

새마을운동 기록물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한국의 유교책판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
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4.19혁명 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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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1.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4.3. 북한의 세계기록유산

2017년 10월의 대한민국이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 3종을 등재함과 동시에 북한은 무예도보통지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면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다. 이는 북한 최초의 세계기록유산이다. 대한민국 보다 20년 늦었다.

무예도보통지는 한국에도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왜 등재를 안 했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해명으로는 소장 기관들이 등재 신청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아무리 문화재라도 소유권 자체는 소장기관에 있다보니 그쪽에서 신청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리고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등록돼있는 내용도 가관인데 무예도보통지 화원이 김홍도라고 주장한다던지 기록된 무술들이 태권도의 원류라고 설명하는등 왜곡된 내용들을 등재했다.

이후 혼천전도도 한국도 가지고 있는데 결국 또 북한이 등재시켜버렸다. #

4.4. 중국의 세계기록유산

중국에는 모두 15개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긴 시간과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 기록유산에 있어서 한국보다 수가 적은 것은 국공내전으로 대만으로 상당한 량의 고문서들이 반출되었고, 이외에도 근현대기의 중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으로 상당수의 기록유산이 소실되거나 반출되었던것도 있지만, 그래도 중국 국가도서관이나 각 박물관 등에 막대한 고문서 자료나 서책 자료들은 아주 많이 남아있으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만한 서책들이야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기록유산 등재건수가 적은것은 처음 세계기록유산이 선정되기 시작할때부터 2009년 동의보감 등재 이전까지는 중국 당국에서 1번에 1건씩만 선정해서 등재신청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중국 당국과 문화부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건수가 많은것에 대해 큰 관심이 있던것은 아니었다는것을 알수있었다. 하지만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에 진짜로 등재되자, 중의학의 종주국이라면서도 정작 중의학 서적 등재에는 소흘히해서 후발주자에게 선수를 뺐기게 되었다는 여론의 비난을 사게 된 중국 문화부에서 등재선정을 매번 1건에서 2건으로 부랴부랴 늘렸던것이었다. [3], 일본도 마찬가지로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록물들이 속속 등재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세계기록유산에 신경쓰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이유다.

간혹 중국보다 한국의 기록유산이 많은 것을 두고 세계기록유산의 귄위나 의미를 절하하는 주장도 있다. 중국이 한국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물을 많이 만들었는데도 그렇다는 것이 요지. 그러나 이는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생각이다. 물론 대체로 중국이 보유한 역사적 사료와 문헌들은 한국보다 훨씬 방대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가치있는 사료들을 전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어렵다. 세계기록유산은 그 기록 내용의 정보적 가치 외에도 기록물의 실물 자료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중시한다. 즉 허준이 발간한 당시 판본으로서 '동의보감', 이순신 장군이 직접 붓으로 써내린 친필 문집으로서 '난중일기'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될 수 있었다. 중국의 유교경전이나 사기 같은 사료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해도 저자가 직접 집필한 그 시대의 판본이 남아있지 않기에 등재하기 어려운 것이다.[4] 내용상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 무조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세계기록유산은 기록의 내용이 아닌 기록물 자체의 가치와 보존에 치중한다. 애초에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 측의 확실한 검증 후에 일련의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기록유산은 미래로 전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등재하는 것이다. 등재 여부에 권위나 의의를 논하는 것은 본 제도가 가진 의의를 착각한 지적이다.

중국 쪽이 중의학 기록물에 무관심하다가 동의보감 등재 이후 여론의 비난을 받자 이에 자극되어서 발빠르게 중의학 서적 등재에 나섰으며 2011년 본초강목과 황제내경을 등재했다. 그러나 중국이 동의보감에 대항하여 등록한 황제내경과 본초강목도 상당히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동의보감과 달리 원전(초판) 자료가 남지 않은 문헌들이기 때문이다.[5]

2014년에 '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였으나, 2015년 심사에서 등재되지 못하였다. 같이 올라간 난징대학살 기록물과 대비되는데, 등재되지 못한 이유가 흥미롭다. 유네스코가 '위안부 문제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해당국들과 같이 공동신청을 하는 것을 유네스코 규정으로 장려한다'는 것이 반려 사유였기 때문이다.[6] 한편 대한민국 또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을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4.4.1. 목록

  • 중국 전통 음악 녹음 자료 - 1997
  • 청 왕조 내각 문서 - 1999
  • 고대 나시(納西)족 둥바(東巴) 문헌 필사본 [Ancient Naxi Dongba Literature Manuscripts] - 2003
  • 청 왕조 금방(金榜) - 2005
  • 청 왕조의 양시 레이(样式 雷) 기록물 - 2007
  • 본초강목 <本草纲目> - 2011
  • 황제내경 <黄帝内经> - 2011
  • 원 후기의 티베트 관련 문서 - 2013
  • 화교 관련 자료 - 2013
  • 난징대학살 기록물 - 2015
  • 근현대 소주(苏州) 비단산업 기록물 - 2017
  • 갑골문 - 2017
  • 샤파 시니카스, 청 왕조의 마카오 공식 문서 (포르투갈과 공동 등재) - 2017
  • 사부의전 <四部醫典> - 2023
  • 마카오 콩 탁 람 사원의 원고와 기록물 - 2023

4.5. 일본의 세계기록유산

일본에는 현재 모두 8개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불과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세계기록유산이 하나도 없었다. 건축물 상당수를 세계 유산으로 등록한 것에 비해 기록 유산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기록유산 면에서는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일본은 '국가 기록물' 즉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낸 기록물이 빈약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화 이전의 이야기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2000년대까지 기록유산 등재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2011년에 이르러서 등재가 시작되었다.

등재된 기록물은 야마모토 사쿠베에(山本作兵衛)의 기록물.[8] 2013년에는 헤이안 시대의 세도 권력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일기인 『미도간파쿠키(御堂関白記)』[9]와 『케이쵸견구사절관계자료(慶長遣欧使節関係資料)』[10]가 등재되었다. 2015년에도 2건이 새로 등재되어 총 5건이 되었다.

2013년 일본에서는 카미카제와 관련한 자료 333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기사 이 중에는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스스로 반성하자는 의미라면 참 좋겠지만 2013년 현재 일본의 우경화 추세를 감안한다면 카미카제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피하기는 힘들다. 일단 2015년에 등재되는 것을 목표로 자료 수집 및 등재 신청 보고서 작성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회의로 넘어가기도 전에 유네스코 일본 위원회에서 부결시켰다. 일본 관점에서 기술된 자료밖에 없기 때문에 형평성이 없다는 것이 사유. 등재를 추진한 가고시마 측에선 2년뒤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기사[11]

2016년부터 일본 외무성세계기록유산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세계의 기억을 공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공식 명칭인 'Memory of the World' 를 직역한 표현이기는 하다. 또한 중국과 한국에서의 정치 이용이 문제시되고 있다느니 권위있는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과의 혼동 방지를 위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껏 내부적, 공식적으로 잘 써왔던 것을 난징대학살 기록 유산 등재 직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오히려 기록유산의 위상 깎아내리기와 정치성 띄우기라는 의구심만 높아진 상황이다. 기사 한편 일본이 심사의 투명성을 내세워 회원국 대표들이 참가하는 '정부간위원회' 설치와 전문가의 현지조사 등 제도개혁을 유네스코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등록된 자료에 대해서도 적절히 보관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확인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록유산지정 취소는 물론, 심지어 국제자문위원회(IAC) 위원 선출방법이 투명하지 않다면서 회원국에서 공모하는 방법으로 선출방법을 바꿀 것도 제안했다. #

평화헌법 중 헌법 9조와 관련된 자료 등을 '정치적 안건'을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

2017년 부산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공동 등재하는데 성공하였다.

4.5.1. 목록

  • 야마모토 사쿠베에 컬렉션 697점 - 2011
  • 『미도칸파쿠키(御堂関白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의 원본 친필 일기 자필본 14권, 필사본 12권 - 2013
  • ‘게이초켄오시세쓰(慶長遣欧使節)’의 유럽 방문 관련 자료(일본·스페인 공동 등재) 3점 - 2013
    1613년 일본 센다이(仙台) 번주 다테 마사무네 스페인에 파견한 일본의 사절단. 7년 동안의 여행을 마친 사절단이 귀국할 때 일본에 가지고 온 3가지 물건, 즉 게이초켄오시세쓰를 이끌었던 하세쿠라 츠네나가의 ‘로마시 공민증서’, ‘쓰네나가의 초상화’, ‘교황 바오로 5세의 초상화’ 3개와 스페인의 기록보관소 두 곳에 보관되어 있는 사절단과 관련된 94점의 문헌 자료이다. 게이초켄오시세쓰가 유럽으로 출발한 직후 일본에서 실시된 이른바 ‘ 쇄국(鎖國) 정책’ 때문에 이후에는 유사한 다른 사절단이 더 이상 파견되지 않았고, 이후 일본은 250년 동안 기독교를 금지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가져온 위의 세 점의 유물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문화자료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때문에 이 자료는 ‘대항해시대’ 동안 이루어진 동서양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도지 하쿠고 분쇼(東寺百合文書) - 2015
    일본의 국보로 나라 시대 부터 에도 시대 까지 1000여년간 교토의 도지에 모아놓은 2만 4천 67통, 약 8만 페이지[12]의 고문서. 원래 각종 다른 상자와 가방에 담겨져 있었으나 에도 시대 카가 번의 번주 마에다 쓰나노리(前田綱紀)가 1685년에 오동나무 상자 100합을 제작, 거기에 모두 정리 후 수납했다고 해서 백합문서라고 한다. 메이지 시대에 확인해보니 93합이 남아있었고 그 중 한 상자는 기록과는 달리 전나무 상자에 담겨져 있었다. 1886년 메이지 정부의 대일본편년사(大日本編年史) 편찬사업에 쓰인 후 방치되어 있다가 1900년대 후반 교토 부립 종합 자료관으로 옮겨지면서 다시 빛을 보았다. 이때 그 동안에도 소홀히 다루지 않고 관리해왔던 5000통의 문서를 중심으로 목록의 개작 및 정리 사업을 실시하여 1980년에 도지백합문서 목록 전 5권이 발간되었고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내용은 도지의 영지였던 야마시로 국(山城国)의 上久世荘과 下久世荘, 와카사 국(若狭国)의 太良荘, 하리마 국(播磨国)의 矢野荘, 탄바 국(丹波国)의 大山荘, 히고 국(肥後国)의 鹿子木荘 등 여러 장원들의 경영에 대한 경내의 회의록이다. 일본 봉건 영주들의 대사원의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다.
  • 마이즈루(舞鶴, 교토에 있는 도시)로의 생환(舞鶴への生還) - 2015
    관동군 시베리아 포로 기록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일본군 포로의 기록 570점 #, ##
  • 조선통신사 기록물 (대한민국과 공동 등재) - 2017
  • 고즈케 삼비(上野三碑) - 2017
  • 지증대사 엔친 관계 문서 전적 -일본·중국 문화교류사-(智証大師円珍関係文書典籍―日本・中国の文化交流史―) - 2023

4.6. 미국의 세계기록유산

미국은 그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관심이 없었다. 비록 전근대 시기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근현대사 쪽 기록물은 넘쳐나다보니 미국 의회도서관같은 기관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만한 서적이나 영상물들이 적지 않지만 관심이 썩 크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 때문에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매우 늦어져서 2017년 기준 7개가 있다. 아무리 국가에 등록하고 싶은 게 많아도 2년마다 2개씩밖에 등록이 안 되니 첫 등록이 늦어지면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을 정식 회원국으로 승격해준 것에 대한 항의로 아예 유네스코에서 탈퇴하고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중단해버렸다가, 후에 2023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신냉전 하 중국 견제를 이유로 유네스코에 재가입하고 유네스코 분담금도 다시 납부하기로 하였다.

4.6.1. 목록

4.7. 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에서 폴란드도 빠질 수가 없다. 폴란드는 공동등재 포함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4.7.1. 목록

4.8. 세르비아의 세계기록유산

파일:tumblr_mnh077dxKC1rrjpupo1_1280.jpg
오스트리아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왕립정부는 주 베오그라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대사를 통해 1914년 7월 23일 귀국에 통보한 요구에 대해 귀국이 만족스러운 회답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정부 왕국정부는 스스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도록 강요받은 상태에 놓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국은 무기에 의지해야한다.
결론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부는 세르비아 왕국 정부와 전쟁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통보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세르비아 왕국에 통보한 제1차 세계 대전 선전포고 전보. 세르비아에서 제출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링크

세르비아의 세계기록유산 중 가장 유명한 기록물은 바로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알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선전포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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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d5772> 2003년 니콜라 테슬라 기록물
2005년 미로슬라브 복음서 – 1180년부터 전해오는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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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기타 세계기록유산

5. 등재 추진 중인 기록유산

5.1. 한국

5.2. 중국

5.3. 일본

6. 관련 문서



[1] 예외적으로 나중에 다시 기록된 기록물 그 자체에 또다른 가치가 있다면 등재될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가 좋은 예시. 이는 성경의 내용을 기록유산으로서 인정한게 아니라,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을 상징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 원본은 심사가 끝나고 돌려주고, 사본은 유네스코에서 증거보존함. 팔만대장경 같은 경우는 직접 들고 갔다가 오기에는 답이 없을 정도라 아예 유네스코 실사단이 한국에 상주하면서 심사를 했다. [3] 한국도 한복에 대해 고루하다는 인식이 일다가 중국의 분청성향 네티즌들이 한복을 자기네 문화로 주장하는 일이 있고나서야 한복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느니 하는 일과 판박이다. [4] 반대로 현존하기 때문에 같은 사서삼경이라도 한국의 유교경전은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었다. 이 유교경전은 경전 그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당대 조선의 양반가에서 경전을 자체적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서 기록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5] 예컨대 '황제내경'을 보더라도, 신화적 인물인 황제의 집필 참여(?) 여부는 따지지 않더라도 당나라 왕빙의 주석본 원본이 남은 것이 아니라, '실물 자료'로서 지닌 가치는 거의 없다. [6] 사실 정치적으로 편향되었을 가능성(=일본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물을 등재하려 시도할 가능성)을 돌려말한 거라고 할 수 있다. [7] 예를 들어 일본은 국가 공인 정사가 고사기 일본서기밖에 없다. 본래 정사는 후대 왕조에서 전대 왕조의 역사를 편찬하는데 일본의 경우 왕조의 힘에 대부분 미약했기 때문에 많은 돈과 시간, 인재를 필요로 하는 정사 편찬을 하기 힘들었던 것. 반대로 한국과 중국의 왕조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정사의 편찬이 활발했다. [8] 야마모토 사쿠베에는 20세기 초의 광부로, 세세한 그림과 함께 광부들의 일상을 치밀하게 기록했다. 사쿠베의 경우나 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등재된 것처럼, 꼭 옛 것이야만 등재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래에 나오듯이 영화나 창작물도, 개인의 기록도 등재될 수 있다. [9] 정작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평생 간파쿠(관백)에 오른 적이 없다. 이 제목은 후세에 붙여진 제목. [10] 다테 마사무네 유럽의 선교사를 통해 스페인 국왕과 로마 교황에게 파견한 사절과 관련된 문서들 [11] 우선, 일제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겪은 한국이나 중국, 카미카제 공격으로 직접 피해를 겪은 미국 등이 카미카제 관련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허락할 리 만무하다. [12] 통이란 대개 독립된 편지나 문서 또는 증서를 셀 때 쓰는 단위다. 2014년에 교토 부립 종합 자료관에서 24,067통의 문서를 모두 이미지화해서 웹으로 공개했는데 칼럼 형식의 해설문와 가타카나를 사용한 고문서를 읽는 방법 등을 첨가해 총 8만페이지가 나왔다. 1통당 대략 3페이지 내지 4페이지 짜리 문서다. [13] 얼핏 보기에는 그냥 손만 많이 그려져 있는 바위에 불과하지만 선사시대의 미술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자원이다. [14] 최초로 등재된 영상물이다. [15] 과학, 수학과 관련된 기념물과 신학, 연금술과 관련된 기록물이 따로 등재됨. [16] 오스만제국 이전인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터키 이스탄불의 칸딜리 관측소에서 편찬한 지진, 자연재해, 천문현상, 점성술, 농사력 등 기상현상에 대해 기록한 581권 1339점의 문서들로 2001년에 등재되었으며 현재 이스탄불 보아지치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이 시대 이슬람 천문학과 과학기술에 대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7] 2017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총 4건을 신청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그 중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에 가장 큰 지원을 했다. KBS 동년 10월 31일에 위안부 기록물을 뺀 3건이 등재되었다. 현재 일본이 2017년 위안부 등재를 막기 위하여 유네스코를 압박, 제도개혁안을 채택시킨 상황이다. ##, ## [18] 논쟁 문단에 나오듯 1997년에 등재 시도를 한 만큼 오랫동안 말이 많은데, 제작 시기가 불확실하고 중국 측에서 반발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 2024년 들어서 '한국의 고조리서'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이다. # 따라서 나중에 타 조리서도 함께 올리는 가능성이 있는 듯. [20] 16만3천여 조선 왕실, 사대부 도서 중 등재 추진할만한 왕실족보류, 종묘기록류, 군영등록류 자료 선별 중 # [21] 용비어천가, 대동여지도, 동궁일기, 내각일력 등 30만여점의 조선시대 고지도와 왕실 문서, 왕실 족보, 정부기록물 중 등재 추진할만한 자료 선별 중 [22] 각각 보물 제878호, 보물 제1008호 # [23] 4.3 사건 당시의 기록 뿐만 아니라 후대의 진상규명, 상생·화해의 기록도 등재 대상이다. [24] 핼리혜성을 포함한 3건의 혜성 관측 사료. 관상감 총 35명의 천문 관료가 25일간 핼리혜성을 관측해 핼리혜성의 이동 경로, 위치, 밝기 등을 기록했다. [25] 포항 냉수리, 중성리 등이 추진된다. 참고로 일본 비석이 등재된 것만 봐도 알겠지만 비석도 등재 가능. # ## [논란] 히로시마 원폭은 일본 제국의 전쟁 행각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있고, 조조지 성전도 중국, 한국의 대장경 인쇄물을 전란때 모아서 가져간 거라서 말이 나왔다. 사실 그 나라가 만든 것이 아니라도 등재는 되지만, 한국의 동학 기록 등재 때 일본 정부 기록이 끼어 들어간 것을 문제삼은 전적이 있어서 이건 내로남불이란 것. # 앞서 조조지 건은 2021년 신청하고 2023년 반려됐다. #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