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송의 정치가이자 간신
송사(宋史)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
1·2·3권 「태조기(太祖紀)」 | 4·5권 「태종기(太宗紀)」 | 6·7·8권 「진종기(眞宗紀)」 | |
조광윤 | 조광의 | 조항 | ||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 13권 「영종기(英宗紀)」 |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 ||
조정(趙禎) | 조서 | 조욱 | ||
17·18권 「철종기(哲宗紀)」 |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 23권 「흠종기(欽宗紀)」 | ||
조후 | 조길 | 조환 | ||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 36권 「광종기(光宗紀)」 | ||
조구 | 조신 | 조돈 | ||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 |||
조확 | 조윤 | |||
46권 「도종기(度宗紀)」 |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 |||
조기(趙禥) |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4><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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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 전여조 → 이조 →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2e8b57><tablebgcolor=#2e8b57> ||
남송 6대 권신 | |||||
황잠선 | 진회 | 한탁주 | 사미원 | 정대전 | 가사도 |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남송의 권신 위국공(衛國公) 賈似道 | 가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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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가사도(賈似道)[1] |
자 | 사헌(師憲) |
공직기간 | 42년[2] |
최종직위 |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추대 |
정권 기간 | 16년 |
작위 | 위국공(衛國公) |
부친 | 가섭(賈涉) |
생몰 | 1213년 ~ 1275년(향년 62세) |
사인 | 독살 |
주군 |
송이종 송도종 송공종 |
국적 | 남송(南宋) |
1.1. 개요
남송의 정치가이자 군인. 남송의 대표적인 권신이자 간신으로 악명이 높다. 진회의 후배격인 인물인데 적어도 진회는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나 자신의 전공을 속이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 그의 행적이 재평가되면서 그가 과연 간신이 맞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그가 재상으로 재직하였던 동안, 반대파를 배척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취해진 타산법과 공전법 조치는 지배계급의 내부 갈등을 격화시켰고, 항몽 전쟁에서도 실수투성이가 되어 남송의 멸망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가 취한 일련의 조치는 남송 후기의 군정·재정 위기를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그의 항몽(抗蒙) 조치도 몽골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그는 사치스럽고 부패한 생활을 하며 진기한 보물을 수집하고 많은 법서 명화를 수집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왕희지쾌설시청첩》, 《구양문행서천자문권》, 《저수량기란정서첩》 등은 모두 가사도를 거쳐 소장되었다. 그가 저술한 《촉직경》은, 세계 최초의 귀뚜라미 연구 전문 저서이다.
한국어 관점에서 이름이 아주 쌈빡해서 가나다순으로 인물대백과사전 따위를 들추면 거의 첫 쪽에 나온다.[3]
1.2. 생애
1213년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인 가섭[4]은 전당현의 호씨라는 부녀자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그녀를 납치해서 첩으로 만들었다. 그 호씨가 낳은 아들이 바로 가사도이다. 후일 가섭이 승진하자 그는 호씨를 버리고 가사도만 데려간다. 가섭은 1223년 가사도가 10살일 때 사망했고, 가사도의 친모인 호씨는 석장에게 재가한다.[5] 그 뒤 가사도는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 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사암지에게서 비록 젊지만 그 재능은 매우 뛰어나서 국가를 위해 쓰일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당시 송나라 조정에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정이 하나 존재했는데 고위직이나 큰 공을 세운 관리의 자손에게는 일정한 관직을 수여하는 것이었다. 이를 은음(恩蔭= 음서)이라 불렀으며 가사도도 이 은음을 통해 관직을 받기는 했으나 현의 양식창고를 담당하는 미관말직이었다. 하지만 1245년 명장 맹공이 암투병 도중 가사도가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휘하인 이정지[6]에게 가사도를 소개한다. 이후 맹공은 남송의 황제 이종에게 가사도를 중용해 달라는 추천서를 보냈고 이종 황제는 가사도를 바로 고위직인 감찰어사로 임명했다. 이후 맹공이 죽자 가사도는 맹공의 후임 경호제치사가 된다.
또한 가사도의 누이도 이종의 후궁이 되면서 가사도는 본격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게다가 송대 고위관료의 필수요소인 예술품 수집광이기도 했기 때문에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던 이종과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한다.
1259년(개경 원년) 쿠빌라이의 군대가 남송을 침략한다. 조어성에서의 몽골군은 몽케 칸이 죽자 철수했지만 쿠빌라이의 군대는 악주를 공격했다. 이때 악주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악주에서 오직 장승이 이끄는 군대만이 몽골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고 남송군 대부분은 사천 방면을 원조하고 있었다. 여문신[7]은 몽골군의 장영실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전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승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겠다고 한 뒤, 쿠빌라이가 군대를 물리자 장승은 민가를 철거하는 등 성의 방어를 견고히 했다. 이후 고달이 강릉에서 지원을 온 뒤 몽골군이 공격해 오지만, 역으로 고달이 계략으로 몽골군의 공언휘[8]를 주살하는 등 악주에서 몽골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해 9월 28일 송 이종은 가사도를 우승상으로 삼아 악주를 구원하게 하였고, 중경에 있던 여문덕의 군대[9]도 악주로 향하였다. 이날 이종은 가사도를 황주로 돌진시켜 작전을 총지휘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그는 7백 기수를 거느리고 손호신, 장세걸, 범문호를 대동하고 황주까지 진격시키는 데 성공하여, 송군은 사기를 크게 떨쳤다. 몽골군이 성을 에워싸는 동안 쿠빌라이는 장유[10]의 군대로 하여금 거위차를 만들고 굴을 파서 입성하라고 명하였다. 그는 악주[11]에서 방어전을 총 지휘하였고, 악주로 군사력을 집중시켰다.[12] 이 와중에 쿠빌라이에게 재능을 칭찬받았을 정도였다.[13]
이 와중 그는 고달에 의해 난처하게 되었다. 가사도는 고달이 맡고 있는 한양 전역을 찾아가 독전하던 중 고달이 그의 면전에서 비아냥거렸다.
외건 쓴 놈이 뭘 하겠습니까?
고달은 가사도가 성에서 독전하는 것을 보고 비웃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보내 가사도를 초청했고 가사도가 이를 거절하면 부하들을 지휘부에 보내 소란을 피우게 했다.이에 조세웅, 상사벽 등 다른 장수들도 강력하게 구경한 것은 물론 일상적인 군무조차 가사도에 보고하지 않다가 결국 강회 전구에서 가사도와 짝을 이뤘던 여문덕이 나서서 가사도의 지휘 부서에 부대를 보내 계엄을 선포하고 고달 등에게 호통쳤다.
선무가 여기 있는데 어찌 이러는가!
여문덕의 이같은 행동은 가사도를 감동시켰을 뿐 아니라 가사도는 다른 전선의 장수들에게 원한을 품었다.그러나 성 내 사상자가 1만 3천에 달하였고 악주 전투 초기에 맹활약했던 장승이 전사하는 등 대부분 전황이 남송군에 불리한 상황이 되었는지[14] 그는 독단적으로 쿠빌라이 칸에게 군대를 물리면 공물을 바칠 것이라는 밀서를 보냈고 쿠빌라이는 몽케 칸이 합주 조어성[15]을 공략하던 도중 병으로 급사하여 자신의 막내 동생인 아리크부카가 자신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사도와 밀약을 맺고 철수한다.[16] 가사도는 밀약대로 후퇴하는 쿠빌라이의 군대의 최후미 일부만 공격하는 시늉을 한 뒤[17] 이를 자신이 악주에서 쿠빌라이를 격퇴하여 장강( 양쯔강) 일대의 몽골군을 몰아냈다고 부풀려 보고를 했는데, 송 이종은 가사도의 장계를 믿었고 수도에 입성하여 화려한 열병식을 치르며 환대하였고 이후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며 칭송하며 그 공적으로 우승상으로 임명했다. 그는 《복화편》을 지어, 자신이 몽골군을 물리친 공을 칭송했다. 이후 12월에는 숙국공으로 봉해진다.
그 후 1261년에는 공전법을 시행하고, 태학생들의 처우를 개선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송신같은 환관과 사씨 등 외척의 정치 개입을 막는 한편, 부패한 군인들을 처벌하는 타산법을 실행하는 등 개혁정책을 시행하였다.[18] 이 과정에서 항몽전쟁에서 공을 세운 상사벽과 조세웅은 죽고, 경호 전선에서 명성을 드날렸던 고달은 이전 악주 전투에서 가사도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가사도에게 배척당하고 말았다. 가사도는 송 이종에게 고달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는데, 송 이종은 고달의 공적을 알고 있어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19] 여기서 상사벽은 진사 출신의 무장이었다. 그는 왕견이 지키던 조어성이 몽골군의 공격을 받을 때, 사비를 털어 조어성을 지원하였고 이후 담주에서는 우량카다이의 군대를 악전고투 끝에 막아냈다. 그리고 유정이 몽골 제국에 투항하고 말았다. 그는 금나라 출신의 북방 한인으로, 이후에는 맹공과 이증백의 수하에서 전공을 쌓았다. 그러나 여문덕의 무시와 암해를 받은 뒤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유흥이 사천제치사로 임명되자 이에 불안을 느끼고 노주를 바쳐 몽골 제국에 투항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도는 이에 아무 조치가 없었다.[20]
1261년 정권 장악에 성공한 쿠빌라이가 사신을 보내 밀약에 따르라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쿠빌라이를 물러내기 위한 가짜 약속이었던 만큼 그럴 생각이 없던 가사도가 학경을 그대로 억류하였다.[21]
1263년 권신 정대전이 실각될까 봐 몽골 침공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 결재를 올렸는데 이것이 수리되었고 영웅이었던 그는 바로 재상에 임명되었다. 동시에 국경 수비대장의 지위도 유지되어 문관/무관을 전부 장악해 더 큰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해에는 양림을 보내 이전 몽골에 투항했던 양대연[22]을 남쪽으로 귀순하도록 유인했으나 양림이 양문안(楊文安)[23]에게 붙잡혀 죽고 만다.
1264년 이종이 승하하고 송도종이 즉위했는데 도종은 전임황제보다 더 멍청한 인물이라서[24] 가사도는 이 황제를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국정을 전횡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문천상과 같은 정적이 될만한 인물을 괴롭혔으며 애첩들과 함께 귀뚜라미 싸움을 붙이며 놀기 좋아하는 등 여러 놀이를 즐겼다.
이후 몽골이 본격적으로 쳐들어왔음에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장수[25]에게는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26]
변방에서 급보가 전해지자 가사도는 송 도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북쪽의 적은 이미 퇴각한 지 오래이옵니다. 폐하께옵서는 이를 누구에게 들으셨사옵니까?
송 도종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어느 궁녀가 그리 이야기했소.
가사도는 그 궁녀를 죽였다.또한 여문환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고달 등의 원군이 오는 것을 꺼렸다. 여문환은 고달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전황이 남송군에 불리해지자 남송 조정에서 고달로 이를 대체하는 것은 어떨지 논하였다. 그러나 가사도는 이를 거절했다.[27]
만약 고달을 기용한다면, 여씨 가문에게 어떻게 인계할 것이오?
이왕(李旺)이 주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여씨 가문이 안전하면 조씨 가문은 천하가 위험해지오.
이를 들은 여문환은 고달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양양 전선에서 승전을 거두고 있다고 허위 보고했다.[28] 공교롭게도 당시 양양 수비군이 몽골 보초기 몇 명을 포로로 잡자 여문환은 송 조정에 대첩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고달로 하여금 양양을 구원하게 하지만 사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가사도 역시 고달을 오지 못하게 하였다.1273년 양양 함락 후 악주 및 양라보까지 함락되는 데 이어 거기다가 장강 일대를 지키던 무장들 대다수[29]가 원에 투항하였고 이 투항한 이들이 맡던 지역 중 요충지였던 곳도 있었다.
이에 태학생들은 가사도가 전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가사도는 부득이하게 임안에 도독부를 설치했다. 그는 유정이 진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출전하기 꺼렸다. 그러나 유정이 죽자[30] 출전에 나서게 되었다. 가사도는 이에 기뻐했다.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이다.
그래서 표를 올려 출사하여 각지의 정예 병사를 불러모았는데, 금백의 치중을 실은 배는 머리와 꼬리가 100여 리에 달했다.안길에 도착하자, 가사도가 탄 배가 물보라에 좌초되었고, 유사용은 천 명을 이끌고 물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배로 갈아타고 떠났다.
이후 무호[31]에 이르러 송경을 사신으로 보내 바얀에게 거의 굴복에 가까운 화의를 요청하였으나, 바얀에게 거절당하고 몽골군과 맞서게 된다. 그는 손호신의 군대를 전방에 주둔시켰고, 자신은 하귀와 함께 후방에 주둔했다.[32]
여기서 하귀는 합비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합류하여 소매 속에서 편서를 꺼내 가사도에게 보여준다.
송의 역사가 320년 만에 끝난다.
가사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정가주(丁家洲)에서 두 군대가 맞붙었으나 가짜 전공으로 영웅이 되었던 가사도는 대참패하고 한방에 병력이 날아가, 남송의 최후가 사실상 결정되었다. 단, 송 멸망이 확정된 것은 이전 남송 최중요 전략거점이었던 양양 공방전에서 패배한 것이었다는 관점도 있다.[33]
전투 과정은 이렇다. 바얀이 남송군의 방어선이 견고한 것을 보고, 뗏목을 만들었다가 다시 태우는 등 송군의 방심을 유도했다. 남송군이 방심한 틈을 타 장강 양면에 군대를 배치하는 등 남송군을 격파하려고 했다. 원군이 포를 쏘고 또 심리전으로 송군을 혼란시키자, 이에 강재[34]가 전열을 정비하고 싸우던 도중 원나라군의 지속되는 교란작전과 송나라 장수들의 도주로 완전 붕괴되었고,[35] 가사도 본인은 군사들을 수습하지 못했다.
가사도의 군대가 하귀와 함께 노항에 주둔하던 중 2월 19일 밤 손호신이 송군의 패배를 보고하자, 가사도는 황급히 나타나 크게 외쳤다.
손호신이 패했다고?
그 뒤 하귀에게 의사 소집을 명하였다. 이후 손호신이 가사도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그 뒤 하귀는 가사도가 있는 곳으로 도망쳐서 어가를 보필하라고 한 뒤 회서 지역으로 도주했다.손호신: 저의 병사들은 명령을 따르는 자가 단 한명도 없었사옵니다.
가사도: 이를 어떻게 해야 하오?
하귀: 각 군이 이미 겁을 먹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당신은 양주에 가서 궤멸된 군사를 모집하고, 해상으로 황제를 보호하러 가십시오. 그래야 저는 회서를 사수할 수 있습니다.
가사도: 이를 어떻게 해야 하오?
하귀: 각 군이 이미 겁을 먹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당신은 양주에 가서 궤멸된 군사를 모집하고, 해상으로 황제를 보호하러 가십시오. 그래야 저는 회서를 사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사도는 손호신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양주로 달려갔다. 다음날 송나라의 패잔병이 강을 따라 내려가자 가사도는 사람을 해안으로 보내 깃발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지만 패잔병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가사도를 욕한다. 가사도는 각 군에 격문을 보내 해상으로 가서 황제를 보호하게 하고 천도를 청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각 군수는 모두 도망쳤고, 가사도는 양주로 들어갔다.[36]
결국 패전 뒤 강제로 조정에 소환된 다음, 승상 진의중이 탄핵을 주장하였고, 사태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신들이 찬성을 하여 공종은 진의중의 탄핵결재를 받아들였다. 가사도는 파직되어 유배길에 오르던 도중 장주 목회암에 이르렀을 때 회계 현위 정호신에게 독살당했다.
1.3. 평가
1.3.1. 부정적 평가
가사도는
아버지의 뜻을 조금도 받들지 않고 오히려 나라를 망치고 남송의 강산을 빼앗는 간악한 세대로 전락했다.
차길심(车吉心)
차길심(车吉心)
원대에 편찬되었던 《송사》는 가사도의 생애를 거의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간신전》에 그대로 수록하였다.
1.3.2. 긍정적 평가
송 이종이 가사도가 서호에서 노는 것을 보고, 사암지[37]에게 이를 훈계하라고 하였으나, 사암지는 이렇게 답하였다.가사도가 비록 소년 시절 풍류의 기질은 있사오나, 그 재능은 국가를 위해 크게 쓰일 것이옵니다.
그리고 맹공과 쿠빌라이에게는 평가가 좋았다. 먼저 송사 <맹공전>에 의하면 맹공이 죽기 한 해 전인 1245년 연강제치부사, 지강주 겸 강서안무사 가사도가 회서 지역에 성을 축조해 공적이 현저하고 명성을 드날렸다. 이를 들은 맹공에 의해 추천을 받았다. 그 뒤 맹공은 가사도를 송 이종에게 자신의 후임 경호제치사로 추천하였고 자기 수하인 이정지를 가사도에게 추천했다. 또한 1259년 벌어진 악주 전투에서는 가사도의 재능이 쿠빌라이에게도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38]
나는 어찌하면 가사도 같은 자를 얻어 장수로 쓸 수 있겠는가?
저 성을 지키는 자가 오직 가 제치 하나이니, 너는 십만 군중을 다 이길 수 없고, 사람 수를 다 죽이면 달도 뽑을 수 없으니, 너희들 죄가 어찌 남의 죄가 되겠느냐!
아이러니하게도 적국인 원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는데, 후일 염희헌이 1259년 악주 전투를 회상할 당시 쿠빌라이 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폐하께옵서 악주를 공격할 때, 신료들에게 "나는 어찌하면 가사도 같은 자를 장수로 얻어 쓸 수 있겠는가?" 라고 하셨사옵니다.
또한 자신이 탄압했던 문천상에게도 악주 전투 당시 용맹을 떨쳤던 모습을 칭찬받았다고 한다.
그 악주 전투에서는 어찌 용맹하였고, 노항의 도주는 어찌 슬픈가!(己未鄂州之战何勇也,鲁港之遁何哀也!)
진의중이 가사도를 처형하라고 하자 사태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사도는 삼조[39]를 위해 부지런히 일했는데 어찌 일조의 죄로 대신을 대하는 예법을 잃으리오.
뒷날 쿠빌라이 칸은 송나라에서 원나라로 항복한 무장들에게 "너희는 어찌 그리 쉽게 항복했느냐?"라고 묻자 이 무장들은 "가사도가 우리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가사도가 문인들을 중용하고, 저희들은 홀대하였사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쿠빌라이 칸은 그들에게 "그래. 너희를 무시한 것은 가사도다. 송나라 황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너희는 송나라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구나. 가사도가 너희를 무시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라고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40]
가사도는 몹시 재능이 있다.
곽염홍(郭艳红)
곽염홍(郭艳红)
1.3.3. 종합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 시도가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 재정과 화폐제도를 정비하고, 부패한 군인과 관리들을 처벌하며 학자들을 등용하는 등 내정 면에서는 나름 괜찮은 성과를 냈다. 이 덕에 송나라 백성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되려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것 때문에 후대에 간신으로 폄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개혁을 진행하면서 반대파 사대부들이나 지주 계층과 격렬하게 대립했고, 결과적으로는 송이 멸망했으니 가사도를 싫어한 사대부들이 그를 음해하기 위해서 일부러 기록을 나쁘게 했을 가능성이 한편에선 제기되고 있는데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남송 멸망 뒤, 가사도의 개혁으로 인해 피해를 본 관료들이 가사도를 악인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타산법[41]으로 인해 피해를 본 남송 무장들 대다수가 가사도에게 반감을 가졌고, 이들은 대부분 원에 투항하고 말았다. 또한 가사도는 자신의 개혁 내용에 걸맞게 자신의 토지를 반납하는 참관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도 송 관료 스테레오타입?맹공이 죽기 1년 전 가사도가 자신의 후임 경호제치사[42]로 추천받았던 것과, 쿠빌라이에게 악주 전투에서 그 재능을 칭찬받았던 것, 염희헌의 악주 전투 회상, 쿠빌라이가 가사도 때문에 투항했다고 하였던 남송 항장들에게 오히려 가사도를 치켜세웠던 것은 가사도가 선인은 아닐지라도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찌질한 모습들로 볼 때 실제로 도종 시대에 국가원수나 다를 바 없었던 그에게 송 멸망의 최종 책임이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가 좀더 잘했더라도 남송의 멸망을 막을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의 실책들이 남송의 멸망으로 직결된 이상 까일 만 하다.
1.4. 후세의 기념
- 민간에서는 가사도의 죽음이 백화 단편소설 '목면암 정호신의 복수'로 각색돼 유세명언 제22권에 수록됐다.
- 청나라 건륭제 때 용계지현의 원본렴(元本濂)은 또 하나의 비석으로 위에서 언급하였던 이 열 개의 큰 글자를 다시 한 번 서술하였다. 옆에는 1936년 제기(諸暨) 진기(陳琪)가 글을 짓고, 한수인 주희(朱熙)가 쓴 목면정기(木棉亭記) 비각이 있다.
1.5. 논란
1.5.1. 충간
가사도는 집권 후 대내적으로는 이기를 제거하여 국가와 백성들에게 재앙을 불러일으켰고 대외적으로는 전공을 속이고 비굴하게 굴다가 결국 남송을 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학자 정명겸은 가사도가 간신 취급을 받는 것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간신이라는 죄를 덮어 씌운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집권 당시는 남송이 쇠퇴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가 집권하였을 당시 행하였던 정책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그가 집행하였던 공전법은 당시 지배층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였던 것이었고, 가사도는 그들에 의해 간신이라는 오명이 남게 되었다. 또한 가사도는 타산법을 실행하여 부패한 군인들을 처벌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장수들의 불만을 샀고 이 장수들은 나중에 원에 투항하고 말았다. 정명겸은 가사도에게 간신이라는 오명이 남은 것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며 역사의 오해라고 주장하였다.1.5.2. 악주 화약
가사도의 최대 오점인 악주 화약에는 현재 사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사도가 군사에 관한 건 전혀 모르는 데다가 악주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굴욕적으로 화의를 요청하였고, 몽골군이 후퇴한 뒤 굴욕적인 조건으로 화약을 제안한 것은 숨기고 이를 승전했다고 허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44] 그러나 현재 역사계 주류에서는 악주 의화는 있었지만 끝내 체결되지 못하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어떤 사학자는 악주 화약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고 악주 화약은 남송을 공격할 구실 및 여론을 조성하고, 남송을 이간질할 뿐 아니라 악주 전투 당시 몽골군의 책임을 벗어날 방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어떤 사학자는 악주 화약을 허구라고 주장하는데, 몽골군이 악주를 전력으로 공격했으나 허사였고 쿠빌라이가 자신의 통치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퇴병한 이유를 남송의 타협으로 항복해 패배를 감추려고 했다고 주장한다.1.6. 대중매체에서
1.6.1. 게임
징기스칸 4에서도 등장. 남송을 대표하는 간신인데도 쓸데없이(?) 능력치가 뛰어나다. 정치 66, 전투 54, 지모 74에 병과적성은 보병, 궁병, 기병, 수군 순으로 각각 B, B, C, D다. 삼국지 시리즈로 치면 '에이 이게 뭐야' 수준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이만하면 B급 장수이며[45] 더욱이 문관형 인재가 많은 남송 장수진 가운데 병과 적성이 뛰어난 편이라 무작정 몰인정하게 대하기는 거시기하다. 그래도 남송은 문화치를 높이기가 쉬워서 가사도보다 좋은 가공장수들을 얼마든지 찍어낸다. 더욱이 플스판에서는 정치 71, 지모 84로 올라가서 사용이 더더욱 편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나마 몽골군을 격퇴했고 행정 면에서는 나름 성과를 낸 만큼 꼭 부풀렸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서인지 전투 특기는 하나도 없다.시나리오 1과 시나리오 2, 시나리오 3 모두 나오는데, 시나리오 2에서는 전형적인 간신배 역으로 나타나는 데다가 남송 최후의 재상인 문천상, 장세걸이라는 더 뛰어난 장수가 있어서 가사도에 대한 대접이 변변찮겠지만 특기로 농업과 건설이 있어서 내정에는 도움을 준다. 또한 높은 수치의 지모를 활용하여 간첩으로 기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더욱이 영토가 넓어져서 유럽, 아랍 방면으로 도시들을 점령하게 되면 서쪽의 도시 중에 한 곳으로 데려와 영주로 세우면 도시 방어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1.6.2. 드라마
미드 마르코 폴로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이종의 황후인 누이와 그 딸도 자기의 장기말로 생각하는 소시오패스이지만 카리스마적인 악당으로, 건장한 군인을 맨손으로 죽일 정도의 당랑권의 달인으로 나온다. 배우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마피아의 회계사로 출연한 진 한.2. 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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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 (加沙島)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한 섬으로, 스님들이 입는 가사(加沙)와 섬 모양이 비슷하다고 가사도란 이름이 붙었다.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2012년 첫 에너지 자립섬으로 지정된 섬이기도 하며, 금광과 고령토 광산이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렴한 땅 중 하나이다. 1제곱미터당 약 150원.
[1]
현대
한어병음으로는 'Jiǎ Sìdào(자쓰다오)'.
[2]
음서를 통해 20살때 부터 관직을 받았다.
[3]
다만 이 분야의 일인자는
가가린이다.
[4]
맹종정,
호재흥과 함께 항금명장 중 하나였고 회동 지역에서 금군을 막아냈으며, 산동의 충의군과 연계하여 중원 수복을 노리기도 했다.
[5]
나중에 가사도가 이를 빌미삼아 석장을 죽인다(...).
[6]
양회 전선에서 이단의 군대를 막고, 양양을 구원하고자 하나 실패하였으며, 이후 양주 지역에서 장렬한 전투를 벌인다.
[7]
여문덕의 아우로, 1275년 원의 군대와 맞서다 죽었던 여문신과 동명이인이다.
[8]
장유의 부장이었다.
[9]
조어성 전투 때 조어성을 구하기 위해 조어성으로 향했으나,
사천택에 의해 가로막혀 중경으로 되돌아왔다.
[10]
장홍범의 아버지로, 1차
몽송전쟁 때 송군과 싸웠다.
[11]
오늘날
후베이성
우한시 우창구
[12]
악주는 남송에 있어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였다. 몽골군이 이 곳을 점령하면 남송을 동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악주는 서쪽으로는 사천, 북쪽으로는 경호 방면, 동쪽으로는 양회 전선을 지원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일전에도
악비의 악가군이 중원을 회복하기 위해 이 곳에 주둔하였던 적이 있었다.
[13]
하루아침에 악주성 주위에 목책을 쌓았다.
[14]
하지만 몽골군도 역병과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15]
오늘날 충칭시 허촨구
[16]
악주 화약에 대해서는 중국 측 사학자들도 논쟁이 많은데, 가사도가 화의를 제안하였고 가사도의 재능을 인정했던 쿠빌라이가 이를 수락했던 것인지 아니면 대칸 승계 문제로 철수해야 했던 쿠빌라이가 철군하는 도중이라도 공격을 덜 받기 위해 제시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한다. 진순신의 저서인 "이야기 중국사"에서는, 가사도가 매국적인 거래를 했을 리가 없고 쿠빌라이가 철군 도중이라도 공격을 덜 받게 하기 위해 수많은 골동품으로 가사도를 매수했다고 주장한다.
[17]
170개의 수급을 얻었다고 한다.
[18]
가사도 자신이
악주 전투에서 부패한 장병들을 목격하였는지, 국경의 실태를 잘 파악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사도가 실행한 개혁정책은 당시 지배층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어서 남송이 망한 뒤, 그들은 가사도를 졸장, 간신으로 매도했다.
[19]
사람들이 공을 논할 때 여문덕이 1위, 고달이 2위라고 하였다.
[20]
1262년
여문덕이 재빨리 반격을 가해 노주를 수복하지만 유정의 투항은 남송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몽골군이 이를 계기로 수군을 육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
진주에 억류되었고, 학경은 가사도가
정가주에서 대패하는 1275년에 풀려나나 그 해 죽고 만다. 여기서 학경을 실질적으로 억류한 것은 나중에
원나라의 군사들과 장렬한 투쟁을 벌인
이정지였다는 설이 있다.
[22]
본래는 사천 지역을 수비하고 있었지만 1259년 몽케 칸의 침공 시기 몽골에 투항했고 몽골군의 사천성 지역 공격에 일조한다.
[23]
양대연의 조카이다.
[24]
기록을 보면
사마충 정도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지적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5]
고달,
이정지 등
[26]
사실 가사도 본인도 원군을 보내기는 했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고, 무엇보다 가사도가 보냈던
범문호가 술만 마시고 여자들과 놀았으며, 이로 인해 이정지와 불화를 빚으며 입으로만 충성을 외치는 등
양양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다. 그 전 이정지가 경호제치사로 임명되자, 전전부지휘사로 있었던 범문호 본인이 몽골군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하였고, 가사도는 범문호에게 이정지의 명을 무시해도 좋다고 하였다.
[27]
1259년
악주 전투 당시 가사도는 고달 등 다른 장수들과 서로 불화했다. 특히 고달은 악주 전투 시기 자신의 무용을 믿고 가사도를 업신여겼다.
[28]
여문환과 고달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29]
대부분이 여씨 문중이라,
여문환을 본 것과 여문환의 권유로 투항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일부 유튜버나 학자들은 이들이 여문환이 그렇게 지원을 외쳤으나 중앙정부가 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분노로 그냥 투항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튼 대표적인 인물이
여문덕의 아들
여사기, 여문덕의 사위
범문호,
정붕비, 진혁, 여문복 등이다.
[30]
바얀이 악주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안휘성 무위 지역에서 분사했다.
[31]
오늘날
안휘성
무호시
[32]
하귀는
정가주 전투 이전,
양라보에서
아술의 군대에게 패했고, 악주에서도 원나라의 군대에게 패하였다.
[33]
그도 그럴 것이 유정의 주장대로 양양-번성 라인을 먹기만 하면 굳이 송이 막대한 재정을 투자해 구축한 방어라인을 진격할 이유도 없었고 더욱이 수도로 바로 진격이 가능하였기에 몽골제국군이 아무런 이유없이 제4차
양양 공방전에 무려 4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공방을 벌였을 이유가 없다.
[34]
나중에 양주에서 이정지와 함께 순국하는 장수이다.
[35]
당시 원나라군은 "송군이 무너졌다!"라고 외치면서 남송군을 교란시켰고, 손호신이 자신의 애첩을 데리고 도망가는 등 자중지란이 계속되었다.
[36]
정가주 전투에서 애첩을 데리고 도망간 손호신은 전투 이후 초산에서
장세걸과 함께 원군과 싸웠으나 패하고 그 해 9월 사망한다. 또한 하귀는 1276년 남송 조정이 투항한 뒤 회서를 바치고 원에 투항한다.
[37]
사숭지의 아우이다.
[38]
가사도는 악주에 도착하여 악주성 주위에 목책을 하루 만에 건설했다.
[39]
송 이종과 송 도종, 송 공제
[40]
악주 전투에서 쿠빌라이에게 극찬받았던 것 덕분일 수도 있다.
악주 전투 당시 가사도가 악주에서 쿠빌라이 군대를 모두 막아내었고, 쿠빌라이가 어떻게 하면 가사도 같은 자를 얻어 장수로 삼을 수 있겠느냐면서 가사도를 극찬하였다.
[41]
부패한 군인들을 처벌했다.
[42]
형호 방어를 주관하는 사령관 직책
[43]
가사도 이외에도,
춘추전국시대의 간신
백비, 도안고(
조씨고아의 악역.),
진나라의
조고,
후한의
화흠,
수나라의
양소,
당나라의 내준신,
송나라의
반미,
진회,
명나라의
엄숭,
청나라의
허션, 민국시기의
왕징웨이 등 총 12명의 형상이 있다. 그러나 중국사를 보면
왕망이나
동탁,
이임보와
채경,
위충현 등 나라를 뒤흔든 더 심한 간신이나 역적들도 많은데다가 형상이 있는 인물 중 도안고는 고전소설 조씨고아에 나오는 실체 불분명한 인물이며 반미 역시 소설
양가장에서 부풀려진 악역이기에 선정 기준에서 의문이 생긴다. 또한 화흠은 정사에서는 청렴한 인물이었는데
삼국연의에서 악인으로 묘사되었다.
[44]
대부분 사서에서는 가사도가 적극적인 싸움은 하지 않고 송경을 밀사로 보내 매년 세폐를 바치고, 장강을 국경으로 삼겠다는 등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제안을 하였고, 이후 1261년
학경이 악주 화약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남송으로 파견되나 진주에서 억류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45]
삼국지 시리즈로 따지면 통솔 73 무력71, 지력 86, 정치 81 이 정도 수준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