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30 11:01:43

조규(남송)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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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태조기(太祖紀)」 4·5권 「태종기(太宗紀)」 6·7·8권 「진종기(眞宗紀)」
조광윤 조광의 조항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13권 「영종기(英宗紀)」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조정(趙禎) 조서 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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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후 조길 조환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36권 「광종기(光宗紀)」
조구 조신 조돈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조확 조윤
46권 「도종기(度宗紀)」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조기(趙禥)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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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전여조 이조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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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남송의 명신
기충정공(冀忠靖公)
趙葵 | 조규
작호 기국공(冀國公)
시호 충정(忠靖)
조(趙)
이름 규(葵)
남중(南仲)
신암(信庵), 용재(庸齋)
생몰 1186년 9월 4일 ~ 1266년 12월 24일

1. 개요2. 생애
2.1. 집안 내력2.2. 초기 생애2.3. 항금전쟁2.4. 이전 토벌2.5. 단평의 입락2.6. 항몽전쟁2.7. 조정의 중신2.8.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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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송의 명신으로 조방(趙方)의 차남이며 조범(趙范)의 동생이다. 그 또한 아버지처럼 남송의 재상이 되었는데, 내정보다는 항(抗金), 항(抗蒙)전쟁에서 공적을 쌓은 인물이다.[1]

2. 생애

2.1. 집안 내력

조규는 담주(潭州) 형산현(衡山縣) 출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조규의 선조는 일을 공평무사하게 처리하여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북송의 명신 조변(趙抃)이었는데, 그는 조정에서 은퇴한 뒤 형산으로 집을 옮겨서 이후부터 그의 후손들이 형산현에 정착하게 되었다.
조규의 할아버지는 조상(趙棠)으로, 그는 조정에서 명성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뛰어나서 성리학자로 이름이 높던 호안국(胡安國), 호굉(胡宏) 부자 및 장식(張栻)[2] 등과 함께 호상학파(湖湘學派)를 창시하였다.
조규의 아버지 조방은 조상의 친우이자 동지인 장식의 제자가 되었으며, 남송의 대표적인 항금명신(抗金名臣)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인물이다.

2.2. 초기 생애

조규가 태어날 때 그의 모친은 남악신(南岳神)이 집안에 강림하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조방이 양양(襄陽)에 부임하고 있을때 집안에 명령을 내려 조범과 조규를 기르게 하고 자신은 아들들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조규가 크면서 그의 형 조범과 같이 나라에 출사하여 공을 세우려는 포부를 밝히자 조방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서 정청지(鄭淸之)와 전자재(全子才)를 초빙하여 조범 형제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또 조범 형제를 남강(南康)의 이번(李燔)에게 보내서 그에게 성리학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규는 조범과 마찬가지로 학자보다는 무장에 더욱 걸맞는 모습을 보였다. 외적이 침범하여 경보가 전해질 때마다 조규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조방 휘하의 다른 장수들과 함께 출전하였는데, 적을 만나면 적진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그런 조규의 모습을 본 다른 장수들은 제치사(制置使)의 아들[3]이 죽을까봐 두려워하였고, 그들도 조규를 구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적과 싸우니 조방의 군대는 싸울 때마다 이기고 적의 물품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방이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자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였다. 조규는 이때 나이가 12~13살 이었는데, 낌새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급히 군대로 달려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조정에서 포상을 내릴 것인데, 조정의 포상이 내려지면 본사(本司)[4]에서도 별도의 포상을 더해줄 것입니다!"
조규의 말에 어수선하던 군심이 진정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조규의 민첩함과 재치에 감탄하였다.

2.3. 항금전쟁

가정(嘉定) 10년(1217년), 금나라의 장수 출호고기(朮虎高琪)와 오고륜경수(烏古論慶壽)가 양양을 침범하여 조양(棗陽)[5]을 포위하였다. 이때 국경지대의 봉화들은 설치한 지 오래되어 불이 꺼졌으므로 금군이 불시에 들이닥치자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조방은 조범과 조규를 이끌고 금군과 싸워서 그들을 패배시켰다.

가정 13년(1220년), 조방은 조규를 도통(都統) 호재흥(扈再興)에게 보내서 그와 함께 고두(高頭)에 있는 금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고두는 금군이 활동하는 중요한 거점이었으므로 호재흥이 남송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금군 쪽에서도 경무장한 병사들이 반격해왔다. 조규는 남송군의 선봉장이 되어 선봉대를 이끌고 분격(奮擊)하였으며,호재흥이 그 뒤를 받쳐주며 진격하니 금군이 전멸하였다. 다음날, 조규가 등주(鄧州)[6]에 다다르자 금군이 비하(沘河)를 막으면서 항전하였다. 이번에도 조규가 선두에서 군대를 지휘하며 진격하고 양의(楊義) 등의 제장(諸將)들이 그 뒤를 받쳐주었는데, 금군 또한 대대적으로 출격하여 양군 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조규가 싸움 끝에 금군을 크게 쳐부수니 참획(斬獲)하거나 포로로 잡은 금군만 2만여 명에 달했으며, 항복한 금의 장수는 만호(萬戶) 이하로 10여 명이었고 노획한 군마(軍馬)는 8백 필(匹)이었다. 금군이 패주(敗走)하자 조규는 곧장 그들을 따라 북쪽으로 추격하여 성 아래에까지 이르렀다가 회군하였다.

가정 14년(1221년), 금군이 기주(蘄州)[7]를 침범해오자 조규는 조범과 함께 당주(唐州)와 등주를 공격하였다. 3월 2일, 당주에 도착한 조규는 성을 공격하기 위해 진을 쳤다. 금나라의 대장 아해(阿海)가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싸움을 걸어오자 조규는 정예기병을 이끌고 진격하였으며, 호재흥이 그 뒤를 따르니 금군을 크게 깨뜨렸다. 이번 싸움에서 얻은 금군의 수급(首級)들은 만여 개에 달했으며, 금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금군이 대규모로 모이자 조규는 조범, 호재흥과 군대를 합쳐서 금군을 공격하였고, 금군은 밤이 되자 군대를 해산하였다.

3월 5일, 남송군의 편성을 바꾸어 2개의 진으로 나누니 조범은 좌군, 호재흥은 우군을 이끌었으며, 조규는 별도로 돌기병(突騎)들을 이끌고 상황에 따라 호응하게 하였다. 산에 모여있던 금군이 조범의 군대를 공격하자 조규가 조범을 지원하여 반격하였고, 금군 수천여 명을 섬멸하였다. 남은 금군이 호재흥의 군대를 공격하자 조규가 이번에도 정예기병을 이끌고 금군을 측면에서 공격하였고, 금군은 그 공격에 허를 찔려서 당황하다가 서로 밟고 밟혀 주검이 된 자들이 많았다.

그날 밤, 조범 형제는 급하게 장교들을 소집하고 수천 명의 결사대를 편성하였으며, 날이 밝자 네 방향에서 일제히 금군을 공격해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얻은 금군의 머리가 수천 급(級)이었으며, 금의 부통군(副統軍)은 창을 내던지고 항복하였다. 또 금군이 납치했던 남송 사람들의 자녀 1만여 명을 되찾았고, 노획한 치중과 기계들은 그 양이 엄청나서 산을 이루는 것 같았다. 조규는 금군을 패배시킨 공으로 승무랑(承務郎), 지조양군(知棗陽軍)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해에 조방이 죽었다.

가정 15년(1222년), 조정에서는 조규에게 직비각(直祕閣)과 여주통판(廬州通判)의 관직을 맡게 하였으며, 이후 대리사직(大理司直), 회서안무참의관(淮西安撫參議官)으로 승진시켰다.

2.4. 이전 토벌

가정 17년(1224년), 금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홍오군(紅襖軍)의 수령 이전(李全)이 남송에 귀순할 의사를 밝히며 청주(青州)로 오자 회동제치사(淮東制置使) 허국(許國)은 조규에게 편지를 보내서 군대의 일에 대해 의논하려고 하였다. 조규는 이전의 야심을 경계하여 그를 죽이고 그가 거느린 무리들만 흡수할 것을 권했으나 허국은 이를 듣지 않았는데, 허국은 결국 이전에게 패망하였다.

보경(寶慶) 원(元)년(1225년),지양주(知揚州)가 된 조범은 조규가 강하고 용맹하니 그에게 웅변군(雄邊軍) 5천을 이끌고 보응(寶應)에 주둔시키면서 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이때 조규는 여주(廬州)에 있었는데, 그는 사비를 자주 들여서 장수들을 불러모아 공놀이나 활쏘기를 즐겨하였으며, 제치사와는 일찍부터 뜻이 맞지 않았으므로 그는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그러나 조정에서 조규의 이러한 행동을 탄핵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그는 결국 봉사(奉祠)의 일을 맡아서 수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보경 3년(1227년), 조규는 장작감승(將作監丞)으로 임명되어 다시 관직에 나아갔다.

소정(紹定) 원년(1228년), 지저주(知滁州)로 관직이 옮겨졌다.

소정 2년(1229년), 이전이 절서(浙西)로 들어와서 곡식을 구매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실상은 그를 핑계로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남송의 경기(畿甸) 지역을 엿보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전은 싸움에서 자신이 붙잡은 금나라의 포로를 바치니 조정에서는 이전에게 절월(節鉞)을 내려주어 그에게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주었는데, 조규는 이전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예측하여 사미원(史彌遠)에게 이전에 대해 경고하는 글을 보냈지만 사미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8]

조규가 명령에 따라 저주(滁州)로 부임하였는데 저주는 금나라와의 국경지대이면서 이전의 위협에 노출된 지역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양회(兩淮)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조규는 저주에 부임하자마자 성벽을 수리하고 해자를 깊게 팠으며,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또한 조규는 그의 부장(部將) 진희(秦喜)에게 청평(青平)을 지키도록 하고, 조필승(趙必勝)에게는 만산(萬山)을 지키도록 하여 삼엄하게 방비하였다.
그러나 이때 조규의 모친이 위독하였는데, 조규는 저주를 방비하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결국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전이 배를 만드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자 이전의 반란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한 조규는 사미원에게 위태로움을 알리는 글을 보냈다. 정작 사미원은 토벌군을 일으키려는 생각이 없었지만 당시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있던 정청지가 조규의 의견에 찬성하여 이전의 토벌이 결정되었다. 조규에게는 직보장각(直寶章閣), 회동제점형옥(淮東提點刑獄)의 관직이 더해졌으며, 조규는 형 조범과 함께 웅승군(雄胜軍), 영회군(寧淮軍), 무정군(武定軍), 강용군(强勇軍)의 네 부대에서 장사(將士) 1만 4천여 명을 차출하여 토벌군을 편성하였다.

소정 3년(1230년) 11월, 이전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서 양주(揚州)를 향해 진격해왔다.

소정 4년(1231년) 1월, 이전이 양주성의 동쪽 성문을 공격하자 조규는 밤중에 조범과 함께 이전을 기습하여 반란군을 크게 깨뜨렸다. 그 이후로 이전은 더 이상 병사를 내어 양주성을 공격하지 않고 포위하기만 하였는데, 조규는 조범과 함께 모의하여 복병을 설치하고 이전을 유인하려 하였다. 조범이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이전을 도발하자 이전이 그 꾀에 걸려들었고, 조규가 다른 장수들과 함께 복병을 이끌고 이전을 측면에서 습격하니 이전이 또 패배하였다. 한편 다른 갈래의 반란군이 이전을 지원하러 오자 조범 형제는 세 갈래로 군대를 나누어 반란군을 협공하였고, 그들을 패배시켰다.

이전은 패배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용력을 믿으면서 남송군을 업신여겼는데, 그는 급기야 연회를 열어 반란군을 모아놓고 술을 마셨다. 이에 조범 형제는 반란군의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군대를 움직였다. 이전이 조범의 군대를 공격하자 조규가 병사들의 앞장을 서서 반란군을 분격하였고, 남송군의 병사들도 힘을 다해 싸우니 이전이 당해내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이전이 얼마 남지 않은 무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달아나자 조규가 제용군(制勇軍)을 이끌고 이전을 추격하였는데, 이전과 그의 무리들은 모두 늪에 빠져서 달아나지 못했다. 조규는 병사들과 함께 장창(長槍)으로 반란군들을 도륙하고 이전을 찔러 죽이니 이때가 1월 15일[9]이었다.

5월, 조범 형제는 육군 10만을 이끌고 이전의 잔당들을 공격하여 염성(鹽城)과 회안(淮安)의 다섯 성을 모두 함락시켰다. 얼마 뒤에 이전의 처 양묘진(楊妙眞)은 강을 건너 달아났으며, 이전의 잔당들이 모두 항복하니 마침내 이전의 반란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조정에서는 이전을 토벌한 공을 논하여 조규를 복주관찰사(福州觀察使), 좌효위상장군(左驍衛上將軍)으로 승진시켰지만 조규가 사양하여 관직을 받지 않았다. 이 해 8월, 황제가 조서(詔)를 내려서 조규를 추밀원품의(樞密院稟議), 보장각대제(寶章閣待制), 추밀부도승지(樞密副都承旨)에 임명하고 옛 관직과 복식도 돌려주었으며, 병부시랑(兵部侍郎)의 관직까지 더해주었다.

소정 6년(1233년) 11월, 조규는 회동제치사 겸 지양주로 승진하였고, 입궐하여 황제를 알현하니 황제가 그를 지극히 칭찬하였다.
"경(卿)은 경의 부친, 형제와 함께 나라를 위해 힘쓴 일이 대단히 많소. 경은 전투에 임할때 능히 병사들의 앞장을 서서 싸우고 나라에 헌신하였는데, 이는 유신(儒臣)으로서 더욱이 하기 어려운 일이오. 경이 그런 일을 해내니 짐(朕)이 매우 기쁘오."
조규가 머리를 조아리고 사례하며 말했다.
"신(臣)은 아첨하지 않고 충성과 효도를 행하는 것에 뜻을 두어 일찍부터 군자의 가르침을 받들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집안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게 되니, 마땅히 이 한 몸 바쳐서 폐하께 보답하겠습니다."

2.5. 단평의 입락

단평(端平) 원년(1234년), 금나라가 망하자 남송 조정에서는 3경(京)[10]을 수복할 일을 논의하였다. 조규는 주전파의 대표격인 인물로서 황제에게 상소하여 자신을 출전시켜달라고 요청하니 황제가 기뻐하며 그에게 권병부상서(權兵部尚書), 경하제치사(京河制置使), 지응천부(知應天府), 남경유수(南京留守)의 관직을 더해주었다. 그러나 이때 날씨가 너무 더웠던데다 변량(汴梁)[11]의 제방이 파괴되어 있었는데, 폭우가 내리자 강물이 범람하게 되어 군량을 수송하는데 큰 곤란을 겪게 되었다. 또한 남송군이 점령하려는 3경은 모두 텅 빈 성이어서 식량을 얻을 수가 없었으므로 남송군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오래지않아 몽골군이 강을 건너와서 변량의 수문(水閘)을 열어버리자 남송군 쪽에서 익사자가 많이 발생하였고, 결국 3경을 수복하기 위해 출전했던 군대는 몽골군의 공격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귀환하게 된다.

단평의 입락이 실패로 끝나자 원래부터 3경 수복을 반대하여 동생과 뜻을 달리했던 조범은 조규를 탄핵하였고, 조정에서는 전자재와 조규의 관직을 강등시켰다. 이에 조규는 병부시랑과 회동제치사를 제외한 모든 관직을 잃게 되었으며, 부임지가 사주(泗州)로 바뀌어서 그곳을 다스리게 되었다.

2.6. 항몽전쟁

가희(嘉熙) 원년(1237년),조정에서 조규를 보장각학사(寶章閣學士)로 임명하고 지양주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이 해 겨울, 몽골 제국의 종왕(宗王) 구온불화(口溫不花)가 안풍(安豊)[12]을 침입해오자 조규는 관군을 이끌고 안풍으로 가서 두고(杜杲)와 여개(余玠)를 지원하였고, 몽골군을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 다음 해에 몽골군이 물러가자 조규는 형부상서(刑部尚書),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로 승진하여 집정(執政)대신이 되었고, 본로둔전사(本路屯田使)를 겸직하였다.
조규는 1238년을 기준으로 전후 8년 동안 양주에 머물렀는데, 그는 밭을 개간하고 병사를 다스리니 양주 방면의 국경지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방비가 굳건해졌다.

2.7. 조정의 중신

순우(淳祐) 2년(1242년), 조규는 대학사(大學士)로 승진하였으며, 지담주(知潭州), 호남안무사(湖南安撫使)로 관직이 고쳐져 복주(福州)에 부임하였다.

순우 4년(1244년), 황제가 조규를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제수(除授)하였다. 또한 그 해 12월에 조규를 특별히 승진시키니 조규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와 참지정사를 겸임하게 되었으며, 강(江), 회(淮), 경서(京西), 호북(湖北) 지역의 군대를 모두 감독하는 권한도 가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장사군공(長沙郡公)의 작위와 지건강부(知建康府), 행궁유수(行宮留守), 강동안무사(江東安撫使)의 관직이 더해졌다.

순우 9년(1253년), 광록대부(光祿大夫), 우승상(右丞相), 추밀사(樞密使)의 관직이 더해지고 신국공(信國公)에 봉(封)해졌다. 조규는 그 이후에도 특진(特進)하여 판담주(判潭州), 호남안무사(湖南安撫使)의 관직을 추가로 받았다.

보우(寶祐) 2년(1254년), 조규는 광서선무사(廣西宣撫使)에 임명되었다. 그 다음해에 부임지가 형호(荊湖) 지역으로 바뀌게 되자 조규가 그곳으로 부임하여 형문(荊門), 영주(郢州)의 두 성을 축조하였다.

보우 5년(1257년), 소보(少保), 영원군절도사(寧遠軍節度使)로 승진하고 위국공(魏國公)에 진봉(進封)되었으며, 예천관사 겸 시독(醴泉觀使兼侍讀)의 관직이 더해졌다. 이때 나이가 일흔을 넘은 조규는 임명된 관직을 사양하고 네 차례나 은퇴를 요청하였지만 황제가 들어주지 않았다.

개경(開慶) 원년(1259년), 판경원부(判慶元府), 연해제치사(沿海制置使), 연강강동선무사(沿江江東宣撫使)에 제수되어 건강부(建康府)에 관청을 두고 그곳에 부임하였으며, 신(信), 원(袁), 임강(臨江), 무(撫), 길(吉), 융흥(隆興) 지역의 관리와 군민들을 임의대로 절제(節制)하였다.

2.8. 말년

경정(景定) 원년(1260년), 조규는 양회선무사(兩淮宣撫使), 판양주(判揚州)에 제수되고 노국공(魯國公)에 진봉되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남송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 가사도(賈似道)가 타산법(打算法)을 시행하여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른 장수들을 처벌하려 하였는데, 조규도 타산법을 빌미로 가사도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

조규는 지건강부 마광조(馬光祖)와 사이가 나빴는데, 조규는 개경 연간에 관청의 돈 3만 전(錢)을 술자리에 사용했던 일이 있었으므로 마광조가 이를 가사도에게 고발하였다. 그러나 이 술자리는 조규가 사사로이 벌인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주관한 잔치였던지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한 병부가각(兵部架閣) 사방득(谢枋得)은 조규가 민병대를 모집하기 위해 그의 재산 1만 전을 사용했었던 과거의 일을 들면서 조규를 변호하였다. 그러나 가사도는 조규가 군비를 사용했던 일들을 계속해서 집요하게 조사하였고, 이에 질린 조규는 관직을 버리고 조정을 떠나버렸다.[13]

함순(咸淳) 원년(1265년),기존의 황제이던 이종이 죽고 도종이 그 뒤를 이어 새 황제로 즉위하자 조정에서 조규를 우승상 겸 추밀사(右丞相兼樞密使)로 임명하고 소보(少傅)의 관직을 더해주었다.

그 다음 해가 되자 조규가 은퇴를 청하니 황제가 특별히 그에게 소사(少師), 무안군절도사(武安軍節度使)의 관직을 더해주고 기국공(冀國公)으로 진봉시킨 후에 은퇴시켰다. 조규는 은퇴한 뒤 배를 타고 유람하였는데, 11월 27일[14]에 조규는 소고산(小孤山)[15]을 유람하다가 배 위에서 죽으니 향년 81세였다.

조규가 죽은 뒤 남송 조정에서는 그에게 태부(太傅)의 관직을 추증(追贈)하였다. 시호(諡號)는 충정(忠靖)이다.


[1] 다만 항몽전쟁보다는 항금전쟁에서 올린 공적이 더 많은 편이다. [2] 남송의 명신 장준(張俊)의 아들이다. [3] 이때 조방은 형(荊), 호(湖) 지역의 군대를 모두 통솔하는 경호제치사(京湖制置使)의 관직을 맡고 있었으므로 조범과 조규는 '제치사의 아들'로 칭해지며 조방의 부대 내에서 떠받들어졌다. [4] 조방이 수장으로 있던 경호제치사(京河制置司)를 의미한다. [5] 오늘날의 후베이성(湖北省) 짜오양시(棗陽市) [6]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 덩저우시(鄧州市) [7] 오늘날의 후베이성 황강시(黄岡市) 치춘현(蘄春縣) [8] 그 까닭은 조정을 대표하여 이전에게 장수의 권한을 내려준 당사자가 사미원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사미원은 이전이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여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게 된다. [9] 양력 2월 18일 [10] 북송의 수도였던 동경(東京), 서경(西京), 남경(南京)을 일컫는다. [11] 원래 이름은 개봉(開封)이었으나 북송이 망한 후 명칭이 바뀌었다. [12] 여주(廬州)의 다른 이름이다. [13] 조규는 황제의 비호 아래 문관과 무관의 최고직을 두루 역임한 남송의 거물급 인사였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조규와 같이 조사받게 된 남송의 대장(大將) 상사벽(向士璧)과 조세웅(曹世雄)은 항몽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가사도의 가혹한 타산법 추진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가사도의 엄격함은 나라의 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함이었겠으나 그를 두려워한 유정(劉整)이 남송을 배신하고 몽골 제국에 투항해버리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남송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4] 양력 12월 24일 [15] 안후이성(安徽省) 안칭시(安慶市) 쑤쑹현(宿松縣)에 있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