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8:01:40

주자(철학자)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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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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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태조기(太祖紀)」 4·5권 「태종기(太宗紀)」 6·7·8권 「진종기(眞宗紀)」
조광윤 조광의 조항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13권 「영종기(英宗紀)」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조정(趙禎) 조서 조욱
17·18권 「철종기(哲宗紀)」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23권 「흠종기(欽宗紀)」
조후 조길 조환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36권 「광종기(光宗紀)」
조구 조신 조돈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조확 조윤
46권 「도종기(度宗紀)」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조기(趙禥)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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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전여조 이조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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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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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유학자
문공(文公)
주희
朱熹| Zhu X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Zhu_xi.jpg
본명 주희 (朱熹)
원회 (元晦)/중회(仲晦)
회암 (晦庵)
시호 문 (文)
작위 휘국공 (徽國公)
출생 1130년 10월 18일
사망 1200년 4월 23일 (향년 69세[1])
출신 남송 휘주(徽州) 무원현(婺源縣)[2]
부친 주송(朱松)
국적 남송
분야 철학 ( 유학(학문))
활동 성리학 집대성자
주역본의 저술
사서장구집주 저술

1. 개요2. 학문
2.1. 경세론
3. 저작4. 명언5. 여담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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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송 철학자. 세부 분야는 유학, 특히 성리학의 창시자 쯤으로 알려져있다. 사실 창시보다는 집대성자에 가깝지만,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딴 주자학[3]이라는 말마따나 창시자로 여겨지는 편이다.[4]

본명은 주희(朱熹).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號)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5]등 여러가지가 있다. 본가인 신안 주씨(新安 朱氏)는 남송 휘주가 본거지이며 주희의 아버지 주송 역시 휘주 출신이다. 그러나 주희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현재의 중국 복건성 우계(尤溪)에서 출생하였으며 생에 대부분의 시간을 복건에서 보냈다.[6]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사후 영종에게 문공(文公)이란 시호를 받고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추봉되었다.

2. 학문

주희는 일생을 바쳐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춘추전국시기의 유교는 소박하고 실천적인 성격을 띠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고도로 발달한 불교 형이상학의 영향을 받아 송대에 이르러 이론적으로 심화되었다.

사서(四書)[7]에 모두 주석을 단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보통 읽는 사서( 논어, 맹자, 예기의 일부인 대학, 중용)는 주희가 자신의 해석과 종전의 여러 주석을 모두 모아 정리한 버전인 <사서장구집주>이다. 논어와 맹자의 주석서는 '집주'라 하지만 대학과 중용의 주석서는 '장구'라고 한다. 대학과 중용은 본래 텍스트가 장과 절로 분리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경전을 주해하려면 장절의 분리작업(分章)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주희는 특히 대학에는 원문에 손을 대서 자구를 바꾸었고, 심지어 소실된 구절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자신이 글을 지어 넣기도 했다. 제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죽기 며칠 전, 인생 최후의 작업이 대학장구의 한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남송 시절에는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사후 주희의 사상은 학계에서 주류적 위치를 점해, 이후 성리학은 , , 조선, 심지어 에도막부에서도 관학의 지위를 얻게 된다. 특히 양명학 등이 인기라도 얻은 명, 에도막부와는 달리 조선은 거의 시대 내내 성리학이 주류 학설로서 사회를 지배하다시피 했다.[8] 한편, 청나라는 공식적으로는 국학을 성리학에 근거했다[9]. 주희의 학문이 처음으로 공인된 원나라와 관학으로 군림한 청나라가 모두 비한족 정권이라는 것은 그의 사상체계 안에 보편성이 내재해있음을 잘 시사해준다. 중화문명을 계승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성을 잘 실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 사람이 굳이 한족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희 이전의 유학이 상상한 중화문명의 구성요소에 다양한 문예전통(유려한 문예, 아름다운 서예, 시가, 역사교양, 기타등등)이 포함되어 있어 외래인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장벽을 느꼈던 것과 비교해볼 만하다.

주희는 당대 불교 도교 를 격렬하게 비판했지만 정작 그의 사상은 불교와 도가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본질적인 원리원칙을 지시하는 글자로 리(理)를 채택한 것도 화엄학의 영향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참 재미있는 상황에 놓였다고 볼 수도 있다. 성리학을 앞세워 불교를 비판했지만 정작 그 성리학은 유교를 베이스로 하여 불교+도교를 섞은 것이니 말이다.

파일:Lushan_White_Lotus_Grotto_Academy.jpg
장시성 주장시의 루산에 위치한 백록동 서원

주희는 성리학의 상징과도 같은 서원 문화를 재정립하여 신사 계층의 형성에 기초를 놓았다. 서원 자체는 당말~북송 대에도 있었지만 11세기 후반에 초심을 잃고 과거 시험을 위한 입시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게다가 북송 말의 당쟁과 정강의 변의 혼란 속에 여러 서원이 버려지고 말았다. 서원의 관학화와 세속화에 거부감을 느낀 주자는 명망이 자자했으나 폐철되었던 백록동 서원을 재건하였고 백록동 게시를 적었다. 이는 후대의 서원들과 16세기 조선의 서원 건립에 큰 영향을 주며 우리가 흔히 아는 서원의 모습과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근대 이후에는 주로 비판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여 비주류 신세를 면치 못한 적도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다시 이전보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황 같이 성리학의 계보를 충실히 이어받은 학자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성리학의 재발견 때문이다.

2.1. 경세론

주자는 무조건적인 복고주의나 통제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 토지론만 봐도 그러한데 주자의 토지론이란 간단하게, '부의 불평등을 막고 자발적인 경제 주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낮은 세율과 공평하게 나뉘어진 토지가 필수이다, 그렇지만 토지는 적고 사람은 많은 현실에서는 이걸 진짜 하려면 국가 개입이 지나쳐지고, 그럼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일단의 토지 국유화 대신 토지 간 경계를 확실하게 규정하고 토지의 거래와 양도를 일정 정도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라는 것이다.[10]

주희는 삼대의 이상 통치를 찬양했지만, 남송의 현실에서 정전제의 복원을 주장하는 과격한 복고주의에 매몰되진 않았다. 그는 남송대의 현실에서 정전제의 복원은 이미 불가능해졌으며, 토지의 재분배를 위해 국가가 무리하게 경제에 개입할 경우 예기치 못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또한 정전제의 복원을 위해선 농지의 압류와 재분배가 불가피하므로 황무지는 광활하고 인구가 희소했던 서한 초기나 동한의 중흥기가 마지막 기회였다는 주장이다. 또한 그는 맹자의 왕도를 논하면서 철저한 토지 조사에 근거한 공정한 징세와 투명한 재정 지출만이 정전제의 이상에 수렴해가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임을 역설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남송의 현실에선 부민과의 타협 속에서 점진적 개선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정전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했던 것이다.

한편 상앙의 천맥제와 양염 양세법에 대한 주희의 비판적 입장과 결부시켜 보면, 그는 과세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국가 주도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듯하다. 주희는 기본적으로 경작지의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공공 부문과 사적 영역이 동시에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지 겸병과 불법 점유는 판적의 혼돈과 전세의 불균등을 야기했고, 그 결과 불평등의 심화 및 조세 정의의 실패가 발생했다고 보았다. "땅이 없는 빈민이 세금을 내고, 땅을 가진 부빈은 조세를 회피하는" 부조리가 생겨난 것이다. 주희는 이를 모두 경계가 부정한 결과라 판단했다. 주희는 백성의 직업적 안정성, 직능의 분화, 토지 매매의 금지 및 황무지 개간의 장려를 통한 자영 농민 계층의 육성이 농촌 경제의 기초라 생각했다. 그는 고대의 정전제를 모방해 "호구의 숫자에 따른 토지 점유의 원칙" 아래 "일부가 100무의 전지를 점하는" 이른바 '수전지제'의 재도입을 경계법 시행의 기본 전제로 주장한다.

주희는 그러나 당초의 균전제와 같은 토지의 국유화 및 국가 권력에 의한 토지의 균등 재분배 등 파격적 주장의 실효성을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부 관료와 공신들에게 할양되었던 공전의 경우, 법적 재정비를 통해 침탈, 매매 및 대여 등의 불법 행위를 엄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는 일반 지주 및 자영농 계층의 사적 소유권을 상당 부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상사, 세습, 혼인, 매매 등의 형식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토지의 사용과 처분에 있어 대여, 매매, 교환 등을 일정 정도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주희가 이 정도의 토지 사유권을 인정하고 있음은 도학의 경세 담론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표면적으로 정전제는 토지의 국유화를 전제하고 있지만, 결국 경자유전의 원칙에 입각한 자영 농민층 육성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정전제의 이상에 따라 토지는 원칙적으로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지만, 사용 및 처분을 포함하는 실질적인 소유권은 결국 백성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면 과격한 복고주의자의 수사를 차용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주희는 적어도 토지의 소유와 분배의 문제에 관해선 오늘날로 치면 온건한 중도 좌파 정도의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사료된다.[11]

이외에 번잡하고 과도한 예법을 실정에 맞게 간소화하고, 기존의 미신에 가까운 천인감응 사상을 타파한 것도 큰 공로라 할 수 있다.

3. 저작

파일:주자어류.jpg
모두 140권 1만 4200여 조목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희가 쓴 것은 아니고 주희의 강의를 제자들이 받아적은 필기노트를 종합해서 주제별로 분류한 것이다.

약 50% 정도가 한국어 혹은 일본어로 번역된 듯하다 #
주희의 문집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문공집(文公集) 등 여러 이명이 있으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서양으로 따지면 전집같은 것으로, 그 사람의 글을 모두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전통적인 문집의 체제에 따라 여러 장르의 운문과 산문을 모았지만 단독저서(경서에 대한 주석서 등등)는 빠져있다. 또한 주희 제자의 노트필기이지 주희 본인의 글이라고 할 수 없는 주자어류 또한 빠졌다.
주자와 여동래가 집필한 책으로, 주돈이 등 전시대의 여러 성리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 후 이에 대해 논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주자 공인 성리학 입문서이다.
  • 사서집주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사서에 주석을 단 것으로, 성리학과 그것을 따르는 조선에서는 표준적인 주석서였고 학문적 의의도 크다.
  • 사서혹문+논맹정의
사서집주와는 별개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사서를 해설한 저서이다. 논맹정의는 논맹혹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논어와 맹자에 대한 모든 주석들을 총망라한 저서이다.
  • 주역본의, 역학계몽
주역에 대한 주석서로, 우리나라에는 정자의 주역전의가 주로 쓰여서 다소 콩라인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많이 쓰였다. 역학계몽은 역학 전반에 대한 입문서로, 주역본의 이전에 역학에 입문하는 초학자를 위해 쓴 저서이다.
  • 시집전
시경에 대한 주석서. 다른 주석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표본 시경 주석서로 쓰였다. 담헌 홍대용이 청나라에 갔다가 청나라 유학자들이 시집전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말을 듣고 크나큰 깨달음[12]을 얻게 해준 저서이기도 하다.
본래 주자가례는 의례경전통해의 한 편으로, 의례경전통해는 유교 경전 의례를 주석한 책이다. 주자 생전에 완성되지 못하고 제자들이 완성했다.
  • 태극도설해, 태극본의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해설한 책으로, 조선시대 태극론 이해에 핵심적인 책이었다.
  • 통서주
주돈이의 저서 통서를 해설한 책.
  • 연평답문
주자와 스승 연평 이동과 학문에 대해 토론한 편지를 모은 것.
  • 주자대전(성리대전)
생전에 쓴 책은 아니고 명나라 시대에 간행된 책으로, 주자를 비롯해 모든 성리학의 학설과 내용, 주장을 모조리 담은 성리학 저서의 결정체이다. 조선에도 수용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둘다 어린이용 교재이자 수신서.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학이 압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상해고적출판사와 안휘교육출판사가 2002년에 함께 내놓은 컴필레이션으로, 주희와 관련된 텍스트의 완성판 총집편 같은 서적이다. 현재 업계에서 주희의 글을 인용할 적에 표준으로 사용한다. 현대 하드커버 장정으로 모두 27권이고 수록 저작은 다음과 같다.

1、 주역본의, 역학계몽, 시집전
2—5、의례경전통해
6、사서장구집주, 사서혹문
7、논맹정의
8—11、자치통감강목
12、팔조명신언행록, 이락연원록
13、소희주현석전의도, 태극도설해, 통서주, 서명해, 근사록, 연평답문, 동몽수지, 소학, 음부경주주역참동계고이
14—18、주자어류
19、초사집주, 창려선생집고이
20—25、회암선생주문공문집(이게 회암집이다)
26、주자일문집록
27、부록

4. 명언

공부에 대한 명언도 많이 했다.
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일도 하사불성) -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13]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순간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14]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수험생 책상에 자주 붙여놓기도 했다. 권학문 참조.

5. 여담

주희의 후손은 남송 말에 고려로 망명하여 오늘날에도 신안 주씨로서 남아있다. 주(성씨) 문서 참고.

참고로 고려 열전에 나오는 주열은 주잠의 아들인 주여경의 아들이 아니라 주경여의 아들이다.

현대중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소학교에서 주희의 작품 2개를 배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인 윤리와 사상에서 으레 킬러 파트로 출제된다. 동아시아사에서도 어쩌다 한 번 선지나 지문으로 어렵게 나온다 카더라.

유교 도통론을 정립한 사람이다. 도통은 유교의 도가 전승된 계보인데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으로 이어진다. 주공 이후로 끊어진 성인의 계보를 이은 게 공자, 공자의 후계자 맹자, 맹자 이후 다시 오래도록 끊어진 계보를 이은 것이 북송의 주돈이, 주돈이의 제자 정호와 정이, 그리고 정호와 정이의 4전제자가 주희가 된다.

보통 삼국지연의 매니아들은 유비의 촉한(蜀)을 정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주희 역시 촉한 정통론(蜀漢正統論)을 지지했다. 이전까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 조위(魏)를 정통으로 보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모두 정통으로 보지 않는 무통설이 대세를 이루었으나[15] 주희가 자치통감을 보완한 자치통감강목을 펴내면서 촉한 정통론을 주장한 이후 이쪽에 무게가 실렸고, 지금의 삼국지연의에서 볼 수 있는 국가상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립되었다. 다만 촉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미 송나라 이전부터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딱히 주희 혼자서 주장해 이렇게 대세가 된 것은 아니다. 이미 북송 연간부터 관우만 해도 공적, 사적인 차원에서 신으로 숭배받았다. 촉한 정통론 역시 상기했듯 동진 시대부터 정치적인 이유기는 했지만 이미 등장해 있었다.

주희가 촉한 정통론을 내세운건 본인이 제갈량의 광팬이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제갈량에 대해 " 왕을 보좌할 만한 뛰어난 재주가 있고 유학자의 기상이 있으니, 이윤 강태공에 비길 만하고 관중 악의보다 낫도다."라는 평을 할 정도로 제갈량을 높이 평가했다. 아예 와룡암이라는 암자까지 지어서 기거했을 정도고, 심지어는 "맹자 이후 인물로는 오로지 장량과 제갈량, 이 두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신릉군 빨던 유방이 생각난다

대학자라는 인상과 별개로, 비구니 둘을 유혹해 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다. 그러나 해당 의혹은 주희가 반도학파에게 위당으로 몰리고 있던 시기에 나온 것으로, 반도학파는 주희를 탄핵하기 위해서 이 의혹을 제기했다. 그래서 이 의혹이 사실인지 아니면 반도학파의 루머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주희를 위학으로 몰기 위해 이 의혹을 제기한 심계조는 정작 이 의혹을 핵심적인 죄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수징난은 주희가 지방관 시절 비구니를 환속시킨 일이 있는데, 이 일이 와전되어 반도학파에게 이용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지막으로 주희가 이 사건을 자신이 한 일로 인정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깐깐한 성격 때문인지 정적이 많았고 특히 자신과 학풍이 다른 당중우와 대립하여 1182년에 6차례에 걸쳐 당중우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릴 정도였다. 탄핵 내용 중에 당중우가 기녀 엄예와 놀아나 음행을 일삼았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엄예를 체포해 1개월 넘게 옥사에 가둔 후 태장과 협곤[16] 등 가혹한 고문을 가하기도 했으나 결국 증거를 얻는데는 실패해 이 사건 자체가 주희 인생의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필생의 논적인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1139 ~ 1193)[17]이 사망하자, 그를 조문하고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 일도 있다.
"애석하다. 나의 고자(告子)가 죽었다."
여기서 고자 맹자의 논적으로, 성무선악설을 주장한 그 사람 맞다. 저 발언은 《주자어류(朱子語類)》의 한 대목인데, 이 충격적인 한 마디 이후로 어떤 부연설명도 없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는 해석하기 나름. 《맹자》에서 맹자는 고자와 논쟁을 벌이면서 "천하 사람들을 선동하여 인의(仁義)를 깨부수는 것은 바로 선생의 말씀일 것이오!"하고 고자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고자는 일찍이 나보다 먼저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이르렀다."하며 그를 인정하기도 했다. 즉, 주자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일생일대의 라이벌의 죽음을 허탈한 마음으로 한탄한 것일 수도 있고, 육구연이 끝내 자기 학설에 동의 안 하고 이단으로서 죽었음을 비아냥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6. 대중매체에서

파일:attachment/주자/주희.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KOEI 게임 징기스칸 원조비사, 징기스칸 4에도 나온다. 징기스칸4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 남송 장수로 나온다. 무력(23)이나 지모(53)는 낮지만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답게 정치는 94로 최고 수준이다.

Why? 인문고전시리즈 <<대학·중용>>편에서는 다른세계에서 이름높은 학자였으나 도술에 휩쓸려 무림에 오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며 힘만 추구하는 무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연구한 학문을 가르치다가 무림연합을 이끌어 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무림교에서 성리학을 가르치게 된다.

[1]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매우 장수했다. [2] 중국 쟝시성 우위엔현 [3] 다만, 발원지 중국에서는 '정주학(程朱學)'이나 '리학(理學)'을 더 즐겨 쓴다. 정주학의 경우는 주희의 철학에 큰 영향을 준 북송대의 유학자인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를 주희와 아울러 이르는 것이고 리학은 심학(心學)과 대조하여 쓰는 말이다. [4] 주희가 생각하는 창시자는 주돈이(周敦頤)이나 실질적인 창시자는 정호&정이 형제이다. [5] 돈옹으로도 읽는다. 遯자는 강희자전, 설문해자 등에 '둔'과 '돈'의 발음 모두를 갖고 있고, 주역전의대전에 의하면 둘 모두 '은둔'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 왜 주역전의대전이 전거가 되는고 하니, 주역의 33번째 괘 이름인데 그 자체가 은둔의 의미를 갖는다. '遯翁'이란 말은 역시 '은둔한 노인'이라는 뜻이다. 김장생, 김집 부자가 강학하던 곳에 세워진 돈암서원 또한 같은 의미이다. [6] 이런 이유로 제자들이 그와의 대화를 받아적어서 만든 주자어류를 보면 당시 복건사투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7] 역사서가 아니고 사서삼경의 사서다. [8] 유가도 불교, 도교처럼 이미 삼국시대에 들어왔지만 문제는 삼국시대부터 대중적으로 번성한 불교와는 달리 유가는 사회적으로는 조선시대 중엽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강해진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유학자라면 대부분은 성리학자니 당연히 조선에선 유교란 곧 성리학일 수밖에 없었다. [9] 다수인 한족을 지배하는 만주족 입장에서는 문명의 정통성을 혈통으로부터 분리하는 편이 유리했다. 그래서 만주족이건 한족이건 중화문명의 핵심인 성리학만 잘하면 그놈이 곧 계승자라는 프로파간다를 곧잘 써먹었다. [10] 요약하면 부의 불평등을 없애려면 국가가 지나치게 경제에 간섭해야하는데, 이러면 본말전도니까 적어도 국가가 간섭할 수 있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경제활동을 허락하자는 것이다. [11] 송재윤, "전부의 공공 철학 - 토지의 소유와 분배에 관한 12~13세기 중국의 경세 담론". [12] 즉 주자의 학설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 [13] 주자어류 8:71 [14] 주희의 시로 알려져있지만 확인가능한 가장 오래된 출처는 명심보감이다. 명심보감은 주희사후 200여년 뒤에 출간된 명문 컴필레이션. 주희의 문집에서는 이 시를 확인할 수 없다. [15] 동진 시대의 습착치가 한진춘추를 저술하면서 촉한정통론을 내세운 사례가 있긴 하다. [16] 나무 막대기 세 개를 평행하게 줄로 이은 후 이 사이에 죄인의 발목을 넣고 조르는 고문으로 바로 이 고문 방식이 훗날 조선에 유입되어 주리틀기로 변모한다. [17] 훗날의 분류법에 따르면 심학(心學)파로 꼽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다. 당시에는 육구연이나 주희나 모두 스스로를 도학(道學)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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