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20:31:30

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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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명 제11대 황제
세종 숙황제 | 世宗 肅皇帝
파일:Jiajing.jpg
출생 1507년 9월 16일
사망 1567년 1월 23일 (향년 59세)
능묘 영릉(永陵)
재위기간 제11대 황제
1521년 5월 27일 ~ 1567년 1월 23일
(45년 24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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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주(朱)
후총(厚熜)
부황 예종 헌황제
모후 자효헌황후(慈孝獻皇后)
황후 효결숙황후(孝潔肅皇后) 진씨(陳氏)
폐후 장씨(廢后 張氏)
효열황후(孝烈皇后) 방씨(方氏)
효각황태후(孝恪皇太后) 두씨(杜氏)
종교 도교
묘호 세종(世宗)
시호 흠천이도영의성신선문광무홍인대효숙황제
(欽天履道英毅聖神宣文廣武洪仁大孝肅皇帝)
연호 가정(嘉靖, 1522년 ~ 1566년) }}}}}}}}}
1. 개요2. 생애
2.1. 대례의 의2.2. 가정난치2.3. 북로남왜2.4. 해서 파관2.5. 장수와 사후
3. 여담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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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가정제/명세종.jpg
중국 명나라의 제11대 황제.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흠천이도영의성신선문광무홍인대효숙황제(欽天履道英毅聖神宣文廣武洪仁大孝肅皇帝). 휘는 후총(厚熜). 연호는 가정(嘉靖).

성화제의 4남이자 홍치제의 이복 동생이 되는 흥헌왕 주우원( 예종)의 차남이다. 그러니까 전임 황제인 정덕제에게는 사촌동생이다. 만력제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명군이 많기로 유명한 세종 묘호[1]를 받은 황제 가운데 몇 안되는 암군이다.

황족 방계로서 제위와 거리가 멀었으나 후사가 없던 전임 황제인 정덕제가 물에 빠져 죽어버리는 바람에[2] 순식간에 황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실 그가 즉위한 것도 단지 계승 자격이 있는 정덕제의 직계 친족 중 항렬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즉위 당시 겨우 15세.[3]

유교예법에 따르면, 황제의 자리는 아버지 → 아들, 그게 아니면 형 → 동생으로 계승되어야 한다.[4][5] 따라서 후사 없이 죽은 정덕제를 잇는 차기 황제는 당연히 정덕제와 같은 항렬, 또는 조카 중에 찾아야 한다. 만약 흥헌왕 주우원이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정덕제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홍치제의 바로 아랫 동생이기에 정덕제에게는 숙부가 되고, 조카 → 숙부로는 계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홍치제가 성화제의 3남이고 흥헌왕 주우원이 4남이니 홍치제의 아들인 정덕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가장 항렬 높은 황족은 주우원의 아들인 주후총, 즉 가정제뿐이었다.

1521년 즉위 당시에 가정제는 대신 양정화 등이 건의한 바를 따라 정덕제의 군인들을 처치하고 그 악정을 고침으로써 국가의 안정에 일신을 꾀했다. 당연히 새 황제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히 높았다.

2. 생애

안륙주 (현 중샹시)에서 흥왕 주우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일 황제에 오른 그는 고향 안륙주를 3경에 해당하는 승천부로 승격시키고 현의 이름을 상서로움이 모인다는 종상으로 명명하였다.

2.1. 대례의 의

파일:external/photo.hanyu.iciba.com/bk_92bb022f0e0524b1ce9210ae1f1be854_d2f9rW.jpg
명예종 주우원

그러나 가정제는 즉위 직후 커다란 문제에 부딪혔다. 그것이 중국판 예송논쟁인 '대례의 의(大禮議)'[6]이다. 문제의 중심은 가정제가 방계 황족으로서 들어와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로서는 누구의 뒤를 이었다고 해야 하는가? 또한 가정제의 친부 흥헌왕(興獻王) 주우원(朱祐杬, 1476 ~ 1519)[7]을 어떻게 처우해야 하는가?

황실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양정화 등을 위시한 관료들은 가정제의 백부에 해당하는 효종( 홍치제)을 양부로 모셔서 황고(皇考)[8]라 하고 친부인 흥헌왕은 황숙부(皇叔父)라 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가정제는 이를 내키지 않았고, 부모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내세우며 친부를 황고, 홍치제는 황백부라 칭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리하여 황제파와 신하들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대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가정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양정화 등 예법파가 사직하고, 나머지 황제파를 중심으로 하여 황제의 뜻대로 결론을 지으며 흥헌왕을 예종 헌황제로 추존했다.[9]

대례의 의는 단순히 고루한 예법에 얽매여 치고 박고 싸운 것이 아니라, 실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가정제가 정덕제가 아니라 흥헌왕의 뒤를 이었다고 하면, 황제가 적장자를 우선으로 하는 정통 라인이 아니라 방계도 이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영락제 시기에 발생한 사안과 사실상 동일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황실의 방계라도 힘만 있으면 영락제처럼 황제가 되든가, 아니면 나중에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할 경우 누구라도 황실의 계승을 주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 것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훗날 정덕제처럼 후손이 끊긴 상황이 발생하면, 비록 방계 출신이지만 자신이 제2의 가정제가 되겠다고 나서는 황족이 나올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정화 등은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정제가 승리했다. 여기에는 가정제의 독단적인 똥고집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양명학처럼 절대적인 정통성 말고 누구라도 정종이 될 수 있다는 사상적인 뒷받침, 국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기보다는 유연하고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명대 중후기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된 결과다.

2.2. 가정난치

파일:external/static.jstv.com/201510291446060232412_8.jpg
이후 황제는 환관의 주선으로 할아버지 성화제처럼 도교를 신봉하여 스스로를 신선이라 칭하고 긴 도호를 붙이는가 하면, 월경혈과 아침 이슬 등으로 불사의 을 만든다고 궁녀들을 학대했다. 또 궁녀들이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사정없이 매를 쳤다.[10] 명나라 황제 가운데 즉위 후 가장 빨리 여색에 빠졌는데(3년), 이것도 도교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가정제가 총애하고 아꼈던 도사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그를 따랐으면 따랐지 이런 상황에서 흔하게 보이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11]

그가 얼마나 궁녀들을 혹사했는지, 가정 21년(1542) 황제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궁녀 16명이 애첩과 동침하던 황제를 목졸라 죽이려고 시도했다. 이 사태를 임인궁변(壬寅宮變)이라 한다. 궁녀들의 계획이 성공하여 가정제가 죽었다면 역사상 최악의 죽음을 당한 황제가 되었겠지만[12], 궁녀들이 긴장을 타서 매듭을 잘못 지은 바람에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비녀로 찔러댔지만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와중에 황제가 계속 죽지 않자 궁녀 중 한 명인 장금련(張金蓮)이 두려워서 황후한테 사태를 보고하였고, 황후가 사람을 이끌고 와서 황제를 구해주었다. 물론 장금련을 포함해 가정제 암살을 시도한 궁녀 16명은 전원이 저자거리에 끌려가 능지형을 당했다. 나머지 15명의 궁녀들의 이름은 양금영(楊金英), 형취련(刑翠蓮), 양옥향(楊玉香), 소천약(蘇川藥), 요숙고(姚淑皐), 왕괴향(王槐香), 관매수(關梅秀), 유묘련(劉妙蓮), 진국화(陳國花), 왕수란(王秀蘭), 서추화(徐秋花), 정금향(鄭金香), 황옥련(黃玉蓮), 양취영(楊翠英), 장춘경(張春景)이다.[13]

그런데 황후가 뒷처리를 하면서 아무 관련 없는 가정제의 애첩까지 죽여버린 것이 드러나자, 가정제는 황후한테 크게 화를 내었다. 물론 이 정도는 정상적이지만, 훗날 황후궁에 불이 나자 끄지 말라고 해서 그 황후가 불타 죽고 말았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야사에서 나오는 추측일 뿐이다. 황후 방씨는 가정제가 죽었을 때 유일하게 그의 무덤에 같이 묻힌 사람이다. 가정제는 황제가 되기 전에 있던 황후부터 융경제의 생모가 된 두 황후까지 황후가 모두 4명이 있었는데, 오직 방 황후만 가정제와 같이 묻힐 수 있었다. 현재 가정제의 무덤에는 황후 3명이 묻혔는데, 나머지 둘은 가정제가 죽은 다음 융경제가 생모를 부황의 곁에 합장시키는 와중에 같이 합장한 것이다. 합장이 안 된 나머지 한 명은 폐후였다. 상식적으로 자신이 죽인 다음 그 사람을 자신과 같이 무덤에 묻을 리가 없다. 사람을 죽인 다음 슬픈 척하면서 이런저런 제사를 거하게 올릴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저승에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곤녕궁의 화재로 방 황후가 목숨을 잃은 다음 사람들의 상상에서 비롯한 추측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정제는 점점 도교에 심취했다. 도교의 제문(祭文)을 청사(靑詞)라 부르는데, 급기야 청사를 잘 만드는 자가 재상으로 발탁되었단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청사를 잘 지어 출세하고 정권을 장악했다고 유명한 인물이 엄숭이다. 그는 도교를 광신하여 정치를 돌보지 않는 가정제를 대신해 국정을 전횡하기를, 전후 20년에 달했다. 그 동안 극도의 뇌물 수수 행위가 정치 전반에 만연했다. 환관 세력이 일시 후퇴했으나 그 대신 권신의 독직 정치가 왕조의 퇴락을 촉진시킨 것이다. 게다가 엄숭이 휘두른 권력의 배경은 환관 세력과의 적절한 타협에 있었다. 즉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고 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후퇴였다는 것.

명나라 황제들 중에서 도교를 믿은 황제는 원래 많았다. 예를 들어 명군으로 손꼽히는 홍치제도 도교를 믿었다. 엄숭은 도교의 제문을 잘 짓기로 유명했으며,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쫓겨난 다음 도교의 제문으로 황제의 신뢰를 회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청사재상이라고 비난했다.

엄숭이 간신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대학사였고 재상에까지 오른 인물이었으며 쥐뿔도 없는 인물이 청사 하나 잘 짓는다고 재상까지 오른 것이 결코 아니다.[14]

2.3. 북로남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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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제가 통치한 16세기 중엽은 북로남왜(北虜南倭), 즉 오이라트 왜구의 침공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였다.

북쪽으로는 토목의 변 굴욕을 겪은 지 101년 후인 1550년에 몽골 알탄 칸 베이징을 포위한 경술의 변이 일어났다.

남쪽으로는 왜구가 극성을 부려 혼란을 겪었다. 특히 가정제 시기의 왜구는 노략질이 워낙 심해서 당시의 왜구를 "가정 왜구"라 부르기도 했으며, 해상 밀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중국인 왕직이 왜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중국 남해안을 들쑤시고 다녔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때 명나라군이 얼마나 막장이였냐면 왜구가 가장 활개를 치던 1555년 명나라는 고작 72명의 왜구들을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900명이 전사하기도 했다.

다만 이 때 척계광이 1544년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기용이 늦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때 그는 겨우 16살이었고, 척계광이 일군을 지휘하는 사령관급으로 기용된 것이 1555년, 27살 때이니 이 때도 전혀 늦게 임명한 것이 아니다.

2.4. 해서 파관

이 황제 말년에 걸출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그 유명한 해서다. 해서는 가정제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강도 높은 비난 상소를 올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폐하의 연호인 도타울 가(嘉), 아름다울 정(靖)을 집 가(家)에 깨끗할 정(淨)이라고 바꿔 부르며[15] 가정(家淨)이라고 하면서 폐하를 원망합니다.
라고 황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 속담에도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 집안에 가구고 항아리고 식량이고 전혀 없어서 부숴먹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가정제가 격노하여 사형을 명하려 하였으나, 옆에 있던 환관이 "해서는 이미 상소를 올리기 전에 가족과 이별하고 을 짜놓았다'고 알려주자 '이 사람은 비간과 비견될만한 충신이지만 나는 주왕(과 같은 폭군)이 아니다.'라고 탄식하고는 결국 죽이려던 생각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걸 진짜로 죽여버리면 자신이 충신을 죽인 폭군으로 역사에 남을 게 뻔했기 때문. 그래서 해서를 고문만 하고 처형은 하지 않았다. 결국 당시 재상인 서계[16]가 말리기도 해서 처형이 늦어지다가 가정제가 죽고 그 다음에야 다시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먼 훗날 북경 부시장이었던 오함(吳晗)에 의해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이름의 희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서곡으로 역사에 남았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해서파관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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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장수와 사후

수은 중금속 가득한 선단을 그렇게 먹고도 오히려 총애하던 도사들보다 장수하여 환갑 직전에 사망하는 등 장수했다. 명나라에서 홍무제 주원장, 영락제 주체 다음으로 장수했고, 재위 기간으로는 만력제[17] 다음으로 긴 45년을 재위했다.

참고로 당시 중국인들은 수은을 신기한 힘을 가진 액으로 보고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18] 이 경우 지칭하는 수은은 주로 액체 수은이 아니라 그 원광이 되는 붉은 광물인 주사(朱砂, 경면 주사)를 의미하는데, 이는 HgS(황화제이수은, 적색 황화 수은)으로 인체 흡수율이나 위험성이 적은 무기 수은을 포함한 광물이다. 주사는 수비법이라 하여 상당히 오랜 시간 물에 띄워 걸러내는 방법으로 무기수은만 정제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증발한 수은 증기를 흡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물론 무기 수은 중독도 없진 않다. 수은도 한약재로서 따로 존재는 하나, 한의서에도 대한대독(大寒大毒)하여 절대 함부로 쓸 수 없는 한약재로 서술했다.

그런데 이런 암군이 세종(世宗)으로 추존됐다. 정덕제 이후 끊어진 황통을 가정제가 새로 이었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묘호를 받은 것이다.

가정제가 죽으면서 명나라의 재정난은 표면으로 떠올랐고, 결국 멸망 때까지 명나라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3. 여담

파일:attachment/image_174.jpg * 젊은 시절에 그린 초상화가 강호동을 닮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가정제대부터 만력대(萬曆代)에 걸친 경제 발전과 신사층 문화의 발달 속에서 문학·미술 부문에 많은 명품(名品)이 나왔다.
  • 1556년엔 산시 대지진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벌어젔다.
  • 가정제의 재위 기간은 조선 중종(재위 1506년 ~ 1544년) 후반기, 인종(재위 1544년 ~ 1545년), 명종(재위 1545년 ~ 1567년)의 재위 기간과 겹친다.
  • 명나라 황제 중 마지막 적자 황제이다. 이후에 재위한 5명의 황제는 모두 서자이다.
  • 조선의 홍경림이 외모를 평가한 기록이 있다.

    [중종실록60권] 중종23년 3월 25일 병신 3번째 기사
    "황제(皇帝)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가?"

    하매, 경림이 아뢰기를,

    "천제(天祭)를 끝낸 다음 환궁(還宮)할 때 신이 궐정(闕庭)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거가(車駕)가 지나는 곳이 매우 가까와서 자세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황제가 탄 연(輦)은 모양이 둥글고 바깥에는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그 앞면과 양쪽은 열어 젖혀 놓았습니다. 마침 소신(小臣)이 서 있는 곳에 이르므로 신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바, 깡마른 얼굴에 뾰족한 턱과 튀어나온 광대뼈에 긴 코를 하고 있었고, 눈꼬리는 위로 찢어져 별다른 풍채가 없었습니다."
  • 후대왕조인 청나라에서는 가정제를 암군이긴 해도 만력제 천계제보다는 낫다고 평하였다.[19] 후대에도 명나라 멸망의 원인을 만력제 시절부터 찾고 가정제에게 찾는 경우는 드물다.

4. 대중매체에서

  •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세계관에서는 템플 기사단의 후원 덕에 황제 자리에 오른 것으로 나오고 막장성이 실제 역사보다 한층 강해졌다. 소녀 암살단원 샤오 윤이 정덕제의 첩이었던 시절 친구들을 고문하고 끔살했고, 암살단 중국 지부도 자근자근 짓밟아 버렸다. 이후 샤오 윤과 그녀의 스승이 도피하려하자 자객들을 파견했고, 스승을 죽인 걸로도 모자라 기어이 피렌체까지 그녀를 쫒아왔다. 이 이야기는 단편 애니메이션 어쌔신 크리드: 엠버즈에서 묘사된다. 그리고 어쌔신 크리드 크로니클즈 차이나 편의 결말 부분에서 샤오 윤은 중국 암살단을 재건한 이후인 1567년에 마침내 가정제를 독살함으로써 비로소 복수를 완벽하게 달성하는 데에 성공한다.
  • 코에이의 게임 대항해시대 3에서도 등장한다. 중국 발견 후 개항 협상 이벤트를 진행하면 자금성에서 협상할 때 등장해서 오문이란 조그만 항구를 내준다. 조건이 까다로워서 이벤트 자체를 보기가 힘들고[20] 능력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헥스 에디터 같은 수단을 썼을 때 확인할 수 있다. 직업은 군인, 혈액형은 B형. 능력치는 체력 46, 지력 66, 무력 46, 매력 61로 후한 편이다.
  • 가정제 시대를 다룬 2007년 드라마 대명왕조 1566이 있다. 가정제 역은 진보국이 맡았다.
  • 2019년 드라마 <금의지하>가 가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근육조선에선 변함없이 도교에 심취하여 수은으로 만든 백분과 단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사용하고 있다. 50대임에도 백분을 바른 피부에 기미가 비쳐보이고 피부가 뻣뻣한게 다 보일 정도. 그럼에도 백분의 위험성을 논하는 조선 사신단에게 몸을 키우는 너희에게는 몸을 쇠하게 하는 독일지 몰라도 군살이 빠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약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답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조선의 요구대로 백분의 수출 금지와 조제법 공개 요구를 들어주는 걸로 퇴장한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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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귀비
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영안공주 · 귀선공주 · 가선공주 · 봉래공주 · 태화공주 · 수양공주 · 영령공주 · 서안공주 · 연경공주 · 영창공주 · 수녕공주 · 정락공주 · 운화공주 · 운몽공주 · 영구공주 · 선거공주 · 태순공주 · 향산공주 · 천대공주 · 회숙공주 · 영덕공주 · 수평공주 · 낙안공주 · 곤의공주 · 장평공주 · 소인공주
122권 「곽자흥등전(郭子興等傳)」 123권 「진우량등전(陳友諒等傳)」 124권 「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
곽자흥 · 한림아 진우량 · 장사성 · 방국진 · 명옥진 확곽첩목아 · 진우정 · 파잡라와이밀
125권 「서달등전(徐達等傳)」 126권 「이문충등전(李文忠等傳)」 127권 「이선장등전(李善長等傳)」
서달 · 상우춘 이문충 · 등유 · 탕화 · 목영 이선장 · 왕광양
128권 「유기등전(劉基等傳)」 129권 「풍승등전(馮勝等傳)」
유기 · 송렴 · 엽침 · 장일 풍승 · 부우덕 · 요영충 · 양경 · 호미
130권 「오량등전(吳良等傳)」
오량 · 강무재 · 정덕흥 · 경병문 · 곽영 · 화운룡 · 한정 · 구성 · 장룡 · 오복 · 호해 · 장혁 · 화고 · 장전 · 하진
131권 「고시등전(顧時等傳)」
고시 · 오정 · 설현 · 곽흥 · 진덕 · 왕지 · 매사조 · 김조흥 · 당승종 · 육중형 · 비취 · 육취 · 정우춘 · 황빈 · 엽승
132권 「주량조등전(朱亮祖等傳)」
주량조 · 주덕흥 · 왕필 · 남옥 · 사성 · 이신
133권 「요영안등전(廖永安等傳)」
요영안 · 유통해 · 호대해 · 경재성 · 장덕승 · 조덕승 · 상세걸 · 모성 · 호심 · 손흥조 · 조량신 · 복영
134권 「하문휘등전(何文輝等傳)」
하문휘 · 엽왕 · 무대형 · 채천 · 왕명 · 영정 · 김흥왕 · 화무 · 정옥 · 곽운
135권 「진우등전(陳遇等傳)」 136권 「도안등전(陶安等傳)」
진우 · 엽태 · 범상 · 송사안 · 곽경상 · 양원호 · 원홍도 · 공극인 도안 · 첨동 · 주승 · 최량 · 도개 · 증로 · 임앙 · 이원명 · 악소봉
137권 「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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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 묘호는 그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명군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2] 정확히는 폐에 물이 차서 염증이 생기는 익수 사고로 죽었다. 심지어 죽었을 당시 아들은커녕 남동생인 울도왕 주후위마저 죽어버린 상황이였던지라 대가 끊겨버린 상황이였다. [3] 물론 전근대 중국에서는 16세 이상이면 성인으로 보았기 때문에 당시 기준에서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고 즉위하면 곧바로 친정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승 서열을 거스르고 즉위한 것은 아니었기에 즉위 과정 자체도 일단 문제는 없었다. [4] 아버지가 아들에게, 형이 동생에게 제사를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웃한 조선의 예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5] 단 이러한 불문율이 몇번 깨진 적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당나라의 무종(조카) → 선종(숙부)의 사례와, 금나라의 장종(조카) → 위소왕(숙부) → 선종(장종의 이복형), 고려의 헌종(조카) → 숙종(숙부), 조선의 헌종(조카) → 철종(숙부)의 계승이 있다. 단 당나라는 국정을 환관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환관 세력이 즉위시킨 경우였고, 금나라는 이후에 선종이 되는 완안오도보가 서자라 계승권이 없었던 데다가 장종의 다른 동생이나 후계자가 없던 상황이였으며, 고려의 경우에는 반강제적인 양위, 조선 철종의 경우에는 항렬 상 헌종의 숙부이지만 나이가 어린데다가 왕통이 귀해서 가장 가까운 왕족인 철종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은 후 다음 왕이 철종과 17촌이었다. [6] 혹은 '대례의분의'라고도 한다. [7] 성화제의 4남이자 홍치제의 이복동생이다. [8] '고(考)'는 망부(亡父), 즉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의미다. [9] 이는 조선시대에도 영향을 크게 끼쳤다. 흥미롭게도 인조가 자신의 생부인 정원대원군을 추숭하려고 어거지를 쓴 추숭 논쟁과 매우 닮았다. [10] 중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로 인해 죽은 궁녀가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1] 세계사는 가볼것도 없이 당장 중국사만 봐도 십상시 왕현충같이 황제의 총애를 받던 이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다가 말아먹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 [12] 이렇게 죽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동진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 효무제는 애첩한테 "네 나이도 이제 30살이구나. 더 젊은 여자를 찾아야겠다."라고 말했다가 질식사 당했다. [13] 한편 조선 중종은 이 일을 전해듣고 놀라, "어찌 궁녀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필시 주모자가 있을 것이다" 라면서 추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14] 기실 명나라의 재상이라고 말하는 내각 대학사는 원래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하던 정5품정도의 관직이였으나, 홍무제 시기 승상직이 폐지되면서 중요해졌고, 가정제 시기 예우(禮遇)를 1품관인 육부상서(六部尙書)의 상위에 두면서 사실상 재상이 되었다. [15] 집안이 깨끗하다. 집이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 됐다는 뜻이 아니라, 집안에 아예 아무 것도 없다. 즉, 아무 것도 없이 가난하다는 말이다.(한자사전에는 안 나오지만, 중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중국어로는 淨이 '텅 비다'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어 독음만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도 嘉靖과 家淨은 둘 다 jiajing으로 같다. 현대의 중국어 발음과 달랐던 명나라 시대의 중국어 발음으로도 두 단어의 발음이 같았던 모양이다. 홍무정운에서도 家는 嘉운에 속하고 靖은 淨운에 속하는 동음 글자로 나온다. [16] 서계는 간신이 아니다. 황제 앞에서 사바사바해서 오래 자리를 보전했다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명재상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한 명나라 말기의 대표적인 명재상으로 꼽히는 장거정을 키운 인물이기도 하다. 일종의 멘토인 셈이다. 물론 장거정도 일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비리 정치인이었지만. [17] 참고로 가정제는 만력제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18] 수은 같은 중금속은 인체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복용하여 몸에 축적되면 신경이 파괴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19] "지난해에 황제가 칙지를 내리기를 '짐이 탕산(湯山)에 행차하여 명나라의 여러 능(陵)에 제사를 지냈는데, 여러 능들이 많이 무너진 것을 보고 개탄하였다. 명나라 중엽 이후로 국사가 폐이(廢弛)하였고, 말년에는 유구(流寇)가 소요를 일으켜도 지킬 사람이 없어서 무너지게 되었다. 지금 국가가 하나로 통일이 된 지 이미 1백여 년이 되었으니, 전 왕조의 능침(陵寢)을 수리해야 하겠다. 명나라 세종(世宗)에 대해서는 일찍이 윤전가(尹銓嘉)의 아룀으로 인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으나 다만 명나라가 숭정(崇禎) 때 망하지 않고 만력(萬曆)과 천계(天啓) 때에 망하였기 때문에 역대의 제왕 사당 안에는 그 위패(位牌)를 없앴지만 능침에는 그냥 제사를 지내었다. 세종이 비록 재초(齋醮)에 뜻이 빠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만력과 천계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그 능침에도 일체로 제사를 지냄으로써 공명 정대하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리하는 등의 공력(工力)에 있어서는 비록 백만의 내탕고 금을 풀게 되더라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이부 상서 유용(劉𤨭), 예부 상서 덕보(德保), 공부 상서 김간(金簡), 시랑 조문식(曺文植) 덕성(德成)을 파견하여 완공하게 하라. 지방관이 마음을 다하여 수호하여 땔나무를 하거나 짐승을 기르지 못하게 엄히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적(考績)하는 법은, 3년에 1고(考)하게 되었는데, 그 조목은 여섯이었습니다. 첫째는 신중히 하지 않은 것, 둘째는 무능한 사람은 모두 파직할 것, 셋째는 재력(材力)이 미치지 못한 것, 넷째는 경망한 사람은 모두 등급을 내릴 것, 다섯째는 병이 난 것, 여섯째는 늙은 사람을 모두 벼슬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적할 때 이름을 점검하며 예를 행하면 연로한 사람은 흔히 수염에 물들인다고 합니다." [20] 중국을 플레이어가 아닌 경쟁자가 발견해야 하고(게임상으로는 바스코 다 가마가 발견) 자금성도 스폰서와의 계약으로 발견해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