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7 21:38:10

강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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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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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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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江灌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도군(道群). 예주 진군 어현 출신. 상서랑 강몽(江瞢)의 아들. 태상 강유의 사촌동생. 어사중승 강적의 아버지.

2. 생애

젊었을 적 명성을 얻었으나, 재주와 식견은 사촌형 강유만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주(州)에 징소되어 주부로 임관했다가, 수재로 천거받고 치중(治中), 별가, 사도부의 속관, 북중랑장의 장사, 영진릉태수(領晉陵太守)를 역임했다. 이후 어린 목황제 사마담의 보정을 맡고 있던 무군대장군, 회계왕 사마욱의 눈에 들어, 그의 종사중랑으로 배속되었다가 이부랑으로 승진했다. 당시 상서를 지내던 사혁은 그 해의 실적이 좋지 않아 강관에게 청탁을 시도했는데, 강관은 매번 공정을 강조하면서 따르지 않았다. 결국 사혁의 원망을 사게 된 강관은 다른 일로 면직되었으나, 그는 이에 관해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사마욱이 다시 그를 불러 사마로 삼고 이전보다 예우를 더했다.

얼마 후, 어사중승으로 승진했다가 오흥태수로 옮겨졌다. 강관은 성정이 바르고 점잖아 권세를 보고도 아첨하는 법이 없었고, 귀인이라도 올바른 이가 아니라 생각하면 멸시했다. 그의 이런 성격으로 인해 대사마 환온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강관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시중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돌아가니, 환온은 강관이 재직 중 공무에 실수를 저질렀다는 트집을 잡아 면직시켰다. 이후 조정에서 강관을 비서랑으로 삼았지만 또다시 면직당했다. 조정은 강관을 등용하고 싶어했으나, 환온이 권력을 잡고 있어 여러 해 동안 임용할 수 없었다.

환온이 3차례의 북벌과 황위 찬탈에 모두 실패하고 고숙(姑孰)에 눌러 앉자, 그토록 미워하던 강관을 불러 자신의 자의참군으로 삼았다. 환온이 사망한 후, 강관은 상서, 중호군, 오군태수를 차례로 역임했다. 조정에서 녹봉을 2,000석으로 올리려 했지만 강관은 사양했고,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