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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암군( 暗 君)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국가에 큰 해악을 끼친 임금을 일컫는 단어다.2. 유사 용어
혼군( 昏 君), 암주( 暗 主)와 동의어고, 사전에선 암군과 암주의 뜻을 「=혼군」이라고만 적기도 한다.암군은 폭군과는 따로 보는 게 합당하다. 폭군은 신하와 백성들을 폭압적으로 대하면서도 통치 자체는 잘 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대표적이고 신하들을 걸핏하면 숙청했던 홍무제나 영락제도 이런 부류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암군은 절망적일만큼 정치에 대해 무능해서 국가 막장 테크를 초래하는 행동 자체가 필수 요건이다. 이를테면 수양제는 폭군이면서도 암군이지만, 유선, 도광제처럼 암군이지만 폭군이 아닌 경우도 있다. 둘은 교집합이 있지만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는 아니다.
때로는 암군이 폭군보다는 비교적 나을 수도 있는데, 아랫사람이 유능한 경우 그럭저럭 나라를 유지할 수는 있어서이다. 물론, 성군에 비빌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폭군이 보이는 밑바닥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갈량 시절의 유선이 있다.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군주 본인은 어리석지만, 적어도 백성들에게는 온화하고 인자해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솝 우화의《 왕을 원한 개구리들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여기서 '암군'은 통나무, '폭군'은 천적인 두루미다[1].
물론 폭군은 그 문제점을 빠르게 인식하고 갈아치울 수는 있지만, 암군은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나라를 천천히 처치불능으로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암군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측도 있다.
3. 형성
세습제의 군주가 유능할지 무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투표로 가려 뽑은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들도 무능한 자들이 있는 마당에, 가만히 있어도 핏줄 잘 타고난 대가로 거저 먹는 왕이란 게 한 나라의 역사에서 항상 유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연히 당대에도 이런 점을 감안해서 어린 시절부터 각종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예술, 역사, 인문학, 종교, 철학에 인성 교육까지 빡세게 시키면서 능력을 키웠다.조선 왕조에선 경연이라고 해서 왕이 신하한테 꾸준히 재교육을 받았을 정도이다. 경연에서 오히려 신하들한테 재교육을 시킨 먼치킨들[2]도 있지만 그런 분들은 이 항목과는 거리가 머니 넘어가자. 이렇게 교육시켜서 최대한 왕의 능력을 키워서 능력에 책임감까지 갖추게 하려고 왕실과 신하들까지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해도 왕의 자질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로또인 데다가[3][4] 교육으로 능력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어도 인성이나 책임감은 어떻게 안된다. 궁전에서 차기 후계자로 태어나 곱게 자라난 왕조의 첫 번째 군주인 콤모두스와 연산군이 교과서적인 폭군이 되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5]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오냐오냐 해주면서 컸는데, 제아무리 세뇌에 가깝게 인성 교육을 시켜도 기본적으로 그냥 눈앞에 떡하니 있는 엄청난 권력을 자제시키면서 그에 따라오는 책임을 그냥 순순히 따르게 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현대에서도 재벌 2세나 3세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조그마한 완장만 차도 거들먹거리고 일은 대충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하물며 국가 지존의 자리인 왕이 되면 어떻겠는가?
그렇기에 어느 국가라도 왕정을 거쳤다면 거의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암군이 나타난다. 이는 후계자의 능력을 담보할 수 없는 왕정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근친상간이 성행한 유럽 왕실의 경우에는 왕으로서의 능력 정도가 아니라 카를로스 2세나 사마덕종처럼 아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장애를 가진 국왕도 가끔 즉위했다.
암군의 원인에는 노쇠도 있다. 보통 명군이었던 이도 말년이 되면서 매너리즘과 레임덕 등으로 암군의 진가를 드러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루이 14세와 양귀비에게 빠져 그간의 업적을 다 말아먹은 당현종, 청나라의 건륭제 등이 있다.
브라질 페드루 2세처럼 사실은 제대로 된 명군이 당대에는 암군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암군 또한 의외로 자질 자체는 명군 못지않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비정상적인 왕권 강화로 일시적으로는 왕권이 강화되나, 제도 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않고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점이다. 결국 그런 암군이 죽고 나면 구속력을 잃은 권력이 대체로 귀족이나 주변 왕족, 제후들에게로 넘어가버린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후반의 천황들은 조코(상황, 上皇)와 인세이 같은 비정상적 제도[6]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권한만 후지와라 가문을 거쳐 무사들에게 넘어가 버려 명목상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왕권 강화가 나중에 거대한 후폭풍으로 돌아와 나라를 뒤흔드는 사례는 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이 문제는 심지어 세도정치 혼란기의 원인을 제공한 조선 순조의 부왕 정조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일 수 있다. 보통 전근대 왕조 국가에서는 왕권의 강화가 개혁으로 인식되기는 하지만 이전보다 강화시켜놓은 왕권을 물려받은 후계자가 혼군이어서 총신들, 친인척들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대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예상보다는 빨리 죽은 경우가 다수인지라 암군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느정도는 후계자의 능력에 의해서도 선왕의 암군 여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는, 암군이 사후적 평가에 의해서만 좌우된다는 뜻은 아니다. 후계자 교육 또한 중요한 정치가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권력을 소유하고, 선정을 펼 기회가 주어졌는가도 중요한 전제요소이다. 암군이라고 평가되는 인물들은 충분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면서도 그 권력을 국가 발전을 위해 쓰지 않은 자들인데, 그래서 강한 신권이나 대리청정으로 인해 사실상 장식이나 꼭두각시에 가까운 인물[7]들은 보통 암군으로 여기진 않는다.
암군의 옆엔 항상 간신들이 붙어다니기 마련이다. 당 현종 말년의 이림보, 양국충, 안록산, 인조의 김자점 등이 있다. 다만 고려의 암군들은 간신보다는 자신의 이상이 좌절되는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많았는데 거듭되는 반란으로 지친 인종, 문벌귀족에게 좌절한 이후 술독에 빠진 의종과 무너져가는 나라를 되살려보려 노력했지만 평생의 반려이자 강력한 후원자인 노국공주가 사망하면서 실의에 빠져 결국 신돈에게 정국을 맡긴 공민왕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체로 이러한 암군들의 경우는 초기에는 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사를 멀리해 변해버린 왕들이 다수. 대체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암군들은 생각보다 흔했으며, 결국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암군이 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신라의 혜공왕 같이 단순히 실권이 없었던 군주를 암군이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이런 논리대로면 고구려의 보장왕, 고려 후기의 임금들, 조선의 정종, 단종, 헌종, 철종, 순종 등도 죄다 암군이다. 물론 통념을 따르자면 그들에게서도 모든 책임이 없다라고 말할 순 없다. 어쨌든 그들은 왕정국가에서 국가의 톱인 왕이었지 않은가? 실권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면책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다. 단지, 여기서 정의한 타입의 암군이 아닐 뿐이다. 아비뇽 유수 시절의 교황들도 실권 없기로는 다 마찬가지다. 다만, 정종과 나이 어렸던 단종 이외의 조선 국왕들은 결코 실권이 없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애당초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부터가 철저히 왕권에 기생한 것이었고 왕위의 향배에 따라서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것이었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정권 교체라든지 고종 즉위 이후 안동 김씨가 별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권력을 내놓은 것이 그 반증. 사실 그 시기 국왕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면 세도정치고 뭐고 바로 청산할 수도 있었을 만큼 조선의 왕권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것이었다.
의외로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암군이 아닌 경우도 꽤 된다. 오히려 왕조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자들도 있으며,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마지막 군주가 명군, 더 나아가 성군으로 평가받는 극단적인 케이스도 있다.[8] 예를 들어 후한의 헌제는 아예 실권이 없어 나라를 망치건 뭐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실권을 되찾기 위해 조조 암살을 계획하는 등 최후의 발악이나마 했다. 명나라의 숭정제는 원숭환 처형 같은 실책도 있으나 쇠퇴해가는 명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황제였다. 그가 마지막 황제가 된 것도 후계 가운데 총명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경순왕 역시 주적 후백제에는 있는대로 저항했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고려에 항복해 신라 백성 및 귀족을 지켰다는 평을 받으며, 고려의 공양왕도 고려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분석이 많다. 심지어 선정을 펼친 성군이었던 페드루 2세는 노예 해방에 대한 대지주의 불만으로 퇴위당했고 이후 왕정이 폐지되었는데, 쿠데타를 벌인 지배층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2천년 이상 존속해온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자질과 능력은 굉장히 훌륭했으나,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국력을 버티지 못하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본인도 꽤나 뛰어난 군주였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최후가 비장했기에 당시에도 많은 전설이 있었고 현대시대에도 회자되고는 한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정상적인 계승이 힘들어 구원투수 형식으로 방계의 비교적 유능한 인물들이 왕위에 올랐고, 가능한 한 최후의 발악이라도 했지만 이미 대세를 뒤엎을 수 없던 상태였다. 왕은 아니지만[9]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재능은 있는데 실권이 없어 막부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고생했다. 심지어 브라질의 마지막 황제인 페드루 2세는 퇴위하는 날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성군으로 칭송받았고,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군주인 무함마드 자히르 샤는 아프간에서는 국부로 칭송 받는다. 다만 이러한 경우 거의 무조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높은 확률로 전대나 전전대 임금이 암군이다.[10] 이러한 사례들은 군주로서의 능력은 떨어지지 않았으나 왕조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군주 한 사람이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것으로 명군이나 암군에 의해 역사가 좌지우지된다고 보는 영웅사관에 대한 반례로서 자주 제시된다.
통념은 암군이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재평가 시도가 나타나는 암군들도 적지 않다. "실은 유능했는데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이 가해졌다."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식 평가나 "결과는 안 좋았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졌지만 잘 싸웠다식의 평가로 나뉘는데,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루이 16세, 일본의 도쿠가와 츠나요시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역사학자들의 논쟁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역사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키배가 벌어지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마저도 옹호가 안 된다면 " 그래도 성격은 좋다."라는 동정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능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심지어 송양공, 건문제처럼 도를 넘은 선함으로 적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다가 망해버린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에는 그 착한 인성도 무능함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이는 현대의 재해석만이 아니라 전근대에도 제왕학을 연구하면서 지적하던 부분이며, 송양공의 행적을 가리켜 송양지인이란 말이 나오는게 그 때문이다. 해당 군주 입장에선 그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이 사치를 즐긴 군주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던[11] 과거에 비하면 성격은 착했지만 무능한 게 문제였던 군주라는 평가가 차라리 덜 억울할지도 모른다.
4. 부류
크게 보자면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예 나라를 운영하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충분하고 의욕적인데 능력이 못 따라오거나 능력은 있으나 국가 상황이 너무 어려운 경우. 전자의 암군들은 주로 노는 일이나 취미생활에 전념하면서 국정은 신하들에 떠넘기는 등 아예 국정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추구하려던 일이나 업적이랄 게 아예 없다. 반면 후자의 암군들은 무언가 의욕적으로 국정을 하려고는 하는데 군주 자신의 능력 부족, 혹은 시대적,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삽질이 되거나 망하는 결과가 나와 암군이라고 불리게 된다.가끔 이 두 가지 경우가 합쳐진 최악이 역사에 나타나기도 한다. 단순히 놀고먹는 걸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황음무도하여 매우 열심히(?) 노느라 국력이 크게 소모되는데, 정작 통치 자체도 열심히 하기만 하지 실정의 연속인지라 국력이 더욱 소모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이다. 대표적으로 수양제를 들 수 있다.
5. 해악
암군은 보통 무능하거나 어리석거나 삽질을 저질러 막장을 초래한다. 군주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암군의 치세에는 나라가 망하거나, 망하기 직전이 된다. 반대로 능력은 부족하면서 쓸데없이 부지런하고 독선적이서 사단을 벌이는 왕도 암군에 속한다. 특히 왕조가 쇠퇴기에 접어드는 시기의 왕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전임자가 잘나거나 나라가 튼튼하면 대충 버티므로 여기에 포함시키지는 않는 편이다. 중국의 사서나 역사소설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야, 이 혼군아!"라고 욕하기 시작하면 갈 데까지 간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정시대에 왕에게 욕을 한 신하는 보통 끔살당한다.그래서 " 명군 같은 암군이 더 위험하다."[12]란 말도 있다. 암군 재위 기간동안 국가적 모순이나 위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누적된 문제가 재위 말년이나, 사후가 되어서야 거대한 위협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막상 눈에 띄어 해결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능력자조차 해결할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6. 목록
자세한 내용은 암군/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7. 관련 문서
[1]
실존인물로서의 이런 선량한 암군이라면, 상술한
유선 이외에는
고려의
목종의 사례가 있다.
[2]
세종,
정조가 그 예시며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태종 또한 과거 장원 출신으로 대단한 학식을 보유해서 경연관들을 당황시키는 모습을 여럿 보였다.
[3]
똑똑한 것과 리더의 자질은 일단 별개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을 다루는 정치력이라는 건 아무리 공부로 능력을 채워넣는다고 한들 결국은 재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대표적인 예시로 고구려
미천왕이 있는데, 어린 시절 이후로 평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소금장수로 살아오다가 혈통 하나만으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낙랑군을 축출하고 후대에 이어지는 고구려 전성기의 토대를 닦은 명군으로 분류된다.
[4]
또한 모든 암군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차라리 군주가 아니라 아예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오히려 유능했을 암군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후한 영제(장사꾼 또는 사업가),
송휘종(예술가),
천계제(목수),
네로(전차 경기 선수),
콤모두스(검투사),
루이 16세(학자) 등이 있다.
[5]
심지어 이 두 명은
성군으로 칭송받는 선왕을 아버지로 두었고, 초반에는 본인의 능력도 결코 무능하지 않았고 심지어 각각 12년의 재위기간 전반기에는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했으나 후반에는 그 정치력을 대규모 숙청에 활용하고는 군왕의 책임감을 망각하고 제멋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비가역적인 폐해를 남기고 물러나게 된다. 이들은
숙청과 황음으로 국가의
전성기를 끊어놓은, 궁궐에서 태어난 첫 후계자라는 점에서
평행이론 수준으로 전형적인 사례다.
[6]
퇴위한 상황이 금상 천황의 후계자 결정에 개입하여 천황의 사망 이후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자기 아들을 차차기 천황으로 삼으면서도 기존 천황의 후손들이 그대로 계승권을 갖는 등의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천황직 계승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누가 천황으로 즉위하든지
정통성에
컴플렉스가 생기는 정말 개나소나
권신 등 외부 세력의 지지를 받으면 왕위 계승을 주장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남북조시대의 싹이 이미 그 이전 시대에 자라고 있었던 것. 심지어 나중에
남북조로 나눠지는 두 계통이 10년씩 번갈아가면서 천황직을 계승하는 등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7]
고려의
고종,
조선
철종 등이 있다.
[8]
대표적인 케이스가 후술할 페드루 2세와 콘스탄티노스 11세, 무함마드 자히르 샤다.
[9]
일본의 왕은 엄연히
천황이었다. 하지만 천황이 워낙 허수아비라서 실질적인 일본의 왕은
막부의 장군(=
쇼군)이나 다름없었다.
[10]
예를 들자면
후한의 환제와 영제,
고려의 우왕,
명나라의 만력제. 다만 자히르 샤의 경우는 딱히 전대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쫓겨났고, 이후
나지불라의 독재 및
탈레반의 만행으로 나라가
왕정복고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것이다.
[11]
암군을 무조건 만악의 근원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성 같은 것은 재발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2]
이 표현은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에서
사마휘와
방덕공이
유표를 평하면서 한 말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나
당나라의
현종이나
청나라의
건륭제,
조선 세조 역시 명군 같은 암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