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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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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Computer[1]

1. 개요2. 정의
2.1. 넓은 의미의 정의2.2. 좁은 의미의 정의2.3. 마이크로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
3. 역사4. 용도5. 위기?6. 관련 회사
6.1. 부품 분야6.2. 컴퓨터 브랜드
6.2.1. 메인프레임6.2.2. 슈퍼컴퓨터6.2.3. PC6.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
6.3. 사라진 브랜드

[clearfix]

1. 개요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주로 'PC'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업, 기관 및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컴퓨터라는 도구를 일반 대중의 손에 전해줌으로써 정보화 사회의 기틀을 마련해준 극히 중요한 발명이다.

1970년대 중반의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자가 부품을 직접 조립해 쓰는 키트 방식이었으나,[2] 1970년대 후반에 Apple II, 코모도어 PET 2001, TRS-80을 필두로 완성품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며 사용자 기반도 급속히 확산, '한 가정에 컴퓨터 한 대'라 지칭되는 퍼스널 컴퓨팅의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컴퓨터 사용 저변 인구가 확대됨에 따라 1990년대에 인터넷이 개발·보급되었으며, 이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모바일 컴퓨팅의 전성기로 이어진다. 정보화 사회는 개인용 컴퓨터 덕분에 현실화된 것이다.

2. 정의

2.1. 넓은 의미의 정의

넓은 의미로는 개인용 컴퓨터 전반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다. 21세기 기준으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용이 아닌 컴퓨터가 뭐지? 회사나 학교에서 쓰는 사무용 컴퓨터를 말하나?" 싶겠지만, 사실 컴퓨터 한 대를 사용자 한 명이 독점해 이용하는 방식이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60년대까지 컴퓨터는 메인프레임 아니면 그 하위 등급인 미니컴퓨터( 미니 PC 아님)가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21세기의 일반인이 상상하는 슈퍼컴퓨터와 비슷하다.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중앙 컴퓨터가 있고, 개개인은 네트워크 끝단에 있는 입출력 전용장치인 단말기들을 사용해 컴퓨터에 접속해 사용했다. 그렇다고 하나의 컴퓨터에 키보드 모니터 여럿 달아놓고 쓰는 아비규환이 벌어진 것은 아니고, 메인프레임 안에서 각 단말기마다의 고유한 환경이 돌아가면서 0.1초~0.01초마다 전환되는 식이었다. 전환 주기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온전히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 메인프레임 미니컴퓨터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기보다는 규모와 부피의 차이를 일컫는 말에 가까웠고, 이는 미니컴퓨터보다 더 작은 컴퓨터를 일컫는 마이크로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방 하나의 크기를 가득 채우는 괴물같은 크기의 컴퓨터는 메인프레임이고, 관물대 한 칸 정도로 줄어들면 미니컴퓨터고, 그거보다 더 작으면 마이크로컴퓨터인 셈. 그런데 1970년대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탑재하여 개인이 온전한 컴퓨터 한 대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마침 이름도 비슷하니 이러한 컴퓨터를 일컫는 말로 마이크로컴퓨터가 정착되었다. 한편 이런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개인이 혼자서 온전히 소유하고 사용하므로 개인용 컴퓨터라 하여 Personal Computer라고도 불렀던 것이고. 물론 이 당시의 PC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는 결코 아니었다. 1970년대 초창기에는 아직은 표준화가 거의 되지 않아 사용자가 직접 납땜하고 조립해야 하는 키트 형태로 판매되기도 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이른바 8비트 PC 전성시대에는 지금과 비슷한 완성품 PC들이 많이 등장했으나, 당연 그런 PC들 사이에 호환성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고 제각각 중구난방인 시대에, 일반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도 되지 않은, IT 매니아들 만의 전유물이였다.

즉, 요약하면 개인용 컴퓨터는 기존의 시분할 방식 메인프레임과 달리 아래의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 다른 사용자들과 타임 셰어링을 통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할 필요가 없으며,
  • 따라서 단말기와 컴퓨터의 구분이 없이 사용자가 조작하는 부분이 곧 컴퓨터이고,
  • 컴퓨터를 직접 조작하는 엔지니어/관리자와 조작을 요청하고 결과물을 받아보는 엔드유저/최종사용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의 차이가 위와 같은 탓에, 프로세서의 소형화가 이루어진 현대에는 딱히 크기에 따라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를 구분하지는 않는다. UNIX 같은 멀티유저/멀티태스팅 OS를 쓰며 콘솔 자체는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은 중대형 컴퓨터이고, 그것을 모두 독립한 장치, Windows나 macOS 같은 싱글 유저 OS로 하면 개인용 컴퓨터이다. 데스크탑 몇 대를 병렬로 연결하거나 서버용 랙에 설치해서 소형 슈퍼컴퓨터 비슷하게 만들어도 개인이 사용하면 개인용 컴퓨터이고, 데스크탑 컴퓨터 케이스에 어떻게든 부품을 쑤셔넣어서 여러 명이 콘솔로 접속해서 사용하게 만들면 중대형 컴퓨터인 것이다. 이런 탓에 UNIX 기기들의 전유물이었던 서버용 컴퓨터 시장에 좁은 의미의 PC가 처음 진입하던 과도기에는 절대 개인용이 아닌 서버를 PC서버라고 부르는 흥미로운 표현법도 있었다.[3]

그 정 반대로, UNIX 기기를 개인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버급 장비와 동일한 아키텍처와 CPU를 장착하고 특정 과학기술 계산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UNIX 기기들의 경우다. 당연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고 외부에서 다수가 터미널로 연결하지 않으며 콘솔을 조작하는 것은 단 한 명 이기 때문. 주로 SUN의 ultra 시리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을 PC라고 부르지 않는데, 이런 기기들이 전성기였을 시절에는 PC의 성능이 보잘 것 없었고, 이후에는 아래 좁은 의미의 PC가 PC라는 명칭을 사실상 독점함에 따라 나름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다. 당시 이런 기기들의 명칭은 마이크로 컴퓨터도, 퍼스널 컴퓨터도 아닌 그냥 워크스테이션[4]이라고 불렀다.[5]

흥미로운 사실은,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에 의미가 없어진 단말기와 엔드유저라는 용어가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조작하며 입출력을 받는 기기는 그 자체로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더라도 단말기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프로그램 등을 설치할 때 흔히 등장하는 EULA라는 약관은 End-User License Agreement, 즉 최종사용자 라이선스 협약이라는 뜻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 관습으로 정착된 단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2.2. 좁은 의미의 정의

좁은 의미의 PC는 1981년에 출시된 ' IBM PC'라는 상표명을 지닌 상품은 물론이고, 그것과 호환되는 IBM PC 호환기종(특히 Windows가 탑재된)들을 뜻한다. 상술했다시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달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처음 태동하던 시기에는 이런 컴퓨터를 지칭할 용어 자체가 뚜렷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미니컴퓨터보다 작은데다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쓰니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고,[6] 개인용이니 개인용 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에 IBM이 이를 자사 상표로 등록한 것이다.
파일:IMB_PC-IMG_7271.jpg
'퍼스널 컴퓨터'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IBM PC 5150
이 당시는 아직 개인용 컴퓨터가 필수 가전 제품이 아니던 시절이라 사실상 표준을 가질 만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고, 제조사마다 별도의 규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술했다시피 개인용 컴퓨터라고 팔리는 것이 기판에 납땜해서 직접 만드는 키트였던 시대다. 따라서 IBM이 PC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한 컴퓨터에도 당연히 전용 규격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규격은 완전히 독자적인 하드웨어가 아닌 소매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사용했고, 따라서 당시 기준으로는 호환성이 높은 편이었다. 높은 호환성을 바탕으로 IBM PC는 불티나게 팔렸고, 심지어 다른 기업들에서도 해당 규격과 호환되는 컴퓨터를 역설계해서 제작 및 판매할 정도였다. 엉겁결에 IBM PC는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지위가 되었고, IBM 제품이 아니지만 PC 규격과 호환되는 기종들은 "PC Clone" 또는 "PC Compatible"이라고 불렸으며 자체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품군이 나무위키에는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문서명으로 작성되어 있지만, 사실 IBM은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것도 아니고, 호환 규격이라는 것을 제정한 것도 아니었다. 워낙 가성비가 좋고 호환성이 좋다보니 짝퉁이 넘쳐났는데 그게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린 것에 가깝다. 게다가 다른 메이커가 IBM PC 아키텍처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IBM에게 로열티를 내는 방식이 아니었기에(즉 오픈 아키텍처 방식이었기에), IBM PC 표준의 대흥행에 이득을 본 것은 IBM이 아니라 IBM PC에 사용된 운영체제인 MS-DOS를 개발한 Microsoft x86 CPU를 개발한 인텔이었고 이 두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윽고 이 둘은 윈텔이라 불리며 해당 생태계를 주도하게 되었고, IBM은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고[7] 결국 2005년에 개인용 컴퓨터 사업부를 Lenovo에게 매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친 만큼,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PC 호환"이라는 생태계에 속한 제품인가였지, 'IBM'인가 아닌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이를 생략하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1980년대에의 주요한 관심사는 "이거 PC 호환되나요?"였고,[8] 1990년대에는 " PC랑 호환 안 되는 것도 컴퓨터임?"이 되었다가, 200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PC 호환 규격을 제외한 제품들( Mac, PC-98 등)이 한국에서 사실상 멸종되면서 "PC가 컴퓨터지 무슨 소리임?"에 이르게 되었다. 이 흐름이 이어져 Mac조차도 2006년부터 인텔 CPU를 쓰게 되었고 Windows 설치가 가능해지는 등 IBM PC 호환기종이 될 지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PC와 구별해서 불린 것은 내부 규격과 별개로 매킨토시의 역사에 비추어 윈텔 진영과 뚜렷이 분류되는 제품군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컴퓨터=PC"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역사를 모르는 21세기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 스마트폰도, 태블릿 컴퓨터도, 노트북도, 데스크톱 컴퓨터도 다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인데(≒인터넷이 되는데) 왜 특정 아키텍처를 쓰는 데스크탑 컴퓨터만 PC라고 부르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2.3. 마이크로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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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

PC 이전의 컴퓨터 역사는 항목 참고, 노트북의 초기 역사는 항목 참고, 보다 덜 알려지고 세세한 역사는 각 부품의 역사 (e.g. 케이스 역사) 참고.
  • 1972년 4월, 미국에서 8비트 CPU인 인텔 8008이 출시되었다.
  • 1974년 12월, ' 알테어 8800' 컴퓨터가 출시되었다. 출시 당시에는 광고 문구에 미니컴퓨터 키트로 소개되었고, 리뷰에서는 마이크로컴퓨터 키트로 취급되었지만, 후대에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이자 PC로 인정되고 있으며, 'Personal Computer'라는 표현 역시 이 제품을 만든 제작자가 최초로 언급했다고 한다.
  • 1977년
  • 1978년 6월, 미국에서 16비트 x86 CPU인 인텔 8086이 출시되었다.
  • 1981년
    • 1월, 삼보컴퓨터에서 한국 최초 상용 컴퓨터 SE-8001( 8비트)가 출시된다. 이후 1983년 '정보산업의 해' 정책의 일환으로 금성 패미콤, SPC-1000, 트라이젬 30( 애플 II 호환) 등이 보급된다.
    • 8월, IBM에서 16비트 컴퓨터 ' IBM PC (5150)'이 출시되었다. 이 제품 출시부터 PC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PC라는 것은 IBM에서 개발한 수많은 업무용 컴퓨터용 아키텍처 중 하나에 불과했었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용으로 회사와 정부기관에 이 제품을 마구마구 공급하는 동시에, 해당 아키텍처를 다른 회사에게도 공개하는 시장 전략을 취했다. 이에 따라 많은 서드파티 회사가 이를 지원하고, 또 수많은 IBM PC 호환기종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PC업계의 표준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PC) =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공식( 상표의 보통명사화)이 성립돼버렸다.[11] 또한, 확장 카드 인터페이스도 알테어 8800에 사용된 S-100 버스가 아닌 ISA로 채택되었다.
  • 1982년
    • 2월, 미국에서 인텔 80286이 출시되었다.
    • 10월, 일본의 16비트 컴퓨터 PC98이 출시되었다. 이 기종은 IBM 호환 PC가 아닌 대표적인 컴퓨터 중 하나이며[12], 후술할 각종 고전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등)이 386 PC 이후 PC98 게임에서 IBM 호환 PC 게임으로 이식되어 재발매되는데 영향을 끼친다.
  • 1983년
    • 3월, 인텔 8088이 탑재된 IBM PC XT가 출시되었다.
    • 5월, 한국에서 정부 주도 하에 교육용 8비트 PC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드웨어 보급에만 주력했을 뿐, 소프트웨어는 국내에 제조사도 유통사도 없었으며 하드웨어 제조사들(삼성전자, 금성전자, 삼보컴퓨터 등)이 몇몇 타이틀을 제작해 하드웨어와 함께 보급했을 뿐이다. 이 때부터 한동안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시장은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의 유료 판매[13]라는 특이한 형태를 유지하게 되며, 1980년대 중반부터 일부 소프트웨어 수입사들(아프로만, 토피아 등)이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의 근절을 위해 노력해보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1980년대 말에 소프트웨어 저장 매체가 CD-ROM으로 전환되고(당시엔 CD-ROM 복제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1987년 중순부터[14] 한국 정부 차원에서 저작권 보호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면서야 서서히 불법 복제와 적법한 유통이 공존하게 되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적법한 유통이 불법 복제를 압도하게 되는 것은 21세기부터다.
  • 1984년 8월, 80286이 탑재된 IBM PC AT가 출시되었다.
  • 1985년 10월, 미국에서 32비트 x86 CPU인 인텔 80386이 출시되었다.
  • 1987년
    • 4월, IBM PS/2 시리즈의 최초 모델들인 PS/2 Model 30, 50, 60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PS/2 Model 50, 60 한정으로 [age(1987-04-02)]년이 지난 지금도 쓰이는 VGA 규격이 처음 도입되었다.
    • 7월, 용산전자상가가 개장, 청계천상가( 세운상가)로부터 이전되었다. 7월 1일에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제정되며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도용을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20여년간 소위 와레즈[15]로 지칭되는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의 창궐은 근절되지 않았지만, 이 법의 제정 전에는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복사해 쓰는 것이었으며 불법이란 의식 자체가 없었다. 단적으로 와레즈는 개인이 인터넷 등을 통해 무료로 다룬로드받는 불법 소프트웨어지만, 이 법 제정 전에는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소매상들이 돈 받고 팔았다. 용산전자상가와 청계천 전자상가의 결정적인 차이도 이것으로, 청계천 시대에는 컴퓨터 소매상들의 주력 사업이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매매였으나 용산 시대에는 정품의 판매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주력 사업으로 삼았다.
  • 1989년
  • 1990년
  • 1992년
    • 7월, ᄒᆞᆫ글 2.0이 출시되었고, 한컴 2바이트 코드 덕분에 옛한글을 쓸 수 있었으므로, 훗날 MS Word가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도 반 필수적인 워드프로세서로 살아남게 된다. 조합형 완성형 논쟁은 당시 중요한 이슈였다.
    • 8월, 세진컴퓨터랜드가 설립되었고, 1996년경까지 전국구로 확장하면서 컴퓨터매장의 맹위를 떨쳤다. 486 컴퓨터는 1990년에 현대 엑셀 가격이었으나, 1992년 대기업에서는 286 사무용, 386 고성능, 486은 최고급옵션으로 '구매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 10월, IBM의 PS/ValuePoint 시리즈와 ThinkPad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 11월, 인텔의 420TX 칩셋부터 PCI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 1993년
  • 1994년
    • 7월, 삼성 매직스테이션 브랜드가 런칭되었다. 이 전후로 PC 보급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으며(200~400만원), 매직스테이션 외에도 LG 심포니·대우 코러스·현대 멀티캡·삼보 드림시스·세진 세종대왕 등의 브랜드가 있었고( 조선컴 참고), 당대 최고 유명 연예인들을 섭외하여 광고를 하였다.
    • 9월, 삼성 SENS 브랜드의 전신 노트북인 SPC-5800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IBM PC Aptiva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 10월, IBM PC Series의 최초 모델인 PC Series 300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조립 컴퓨터에 대한 기사가 주요 언론에 게재되었다. (1994년 #1, #2,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1, #2, #3, 1999년 #) IBM 호환 PC들의 태생이 조립 컴퓨터임을 감안하면 색다를게 없는 이야기이지만, (1987년 전후의 청계천/용산) 컴덕이 아닌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조립 컴퓨터를 해야 할 수요가 발생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19]
  • 1995년
    • 1월, 인텔의 430FX 칩셋부터 PIIX 사우스브리지가 탑재되어, ISA, MCA, EISA, VLB → PCI 과도기가 끝나고 PCI가 주류 인터페이스로 전환되었다.
    • 7월, 인텔의 ATX 규격이 발표되었다.
    • 8월, Windows 95가 출시되었다. 이전에 비하면 PC 사용이 훨씬 쉬워졌고( CLI GUI), PC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 (가격하락 지속) PC의 주도권이 기존의 IBM( IBM PC AT)에서 윈텔로 전환된 상징이기도 하다.
  • 1996년
    • 2월, 인텔 430HX, 430VX 칩셋부터 USB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ATX 규격에 대응된 보드 및 케이스가 출시되었다.
    • 3월, 한동안 인텔의 세컨드 소스,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알려졌던 AMD K5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인텔과 완전히 다른 자체 마이크로아키텍처로 갈아타게 되었다.
  • 1997년
  • 1999년
  • 2000년
    • 3월, 닷컴 버블의 고점을 찍었다. 1995년부터 IT 관련 벤처기업들을 비롯한 업계가 폭풍 성장을 이루고 있었으나, 2000년 3월에 고점을 찍은 뒤에 얼마 못 가고 급락되기 시작하여 줄줄이 몰락하게 되었고, 2002년 10월 즈음에 거품이 완전히 꺼졌다. PC 제조업계도 영향을 많이받았으며, 과거 IBM PC 호환 기종 업계의 선두 주자였던 컴팩의 명맥이 끊어지고(2001년 9월 HP Inc.에 피인수), Dell이 부상하였다.
    • 5월, IBM의 PC용 NetVista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 10월, DDR SDRAM을 지원하는 AMD 760 칩셋이 출시되었다. 1년 먼저 출시된 RDRAM과 경합 끝에 2002년 5월에 845 칩셋이 출시된 이후부터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 2001년 3월, "미니노트북"으로서 후지쯔 라이프북 P 시리즈 P-1000이 출시되었다. 980g이라는 무게가 인상깊었다.[24]
  • 2002년
  • 2003년
    • 2월, Dell이 자사 데스크탑 제품군인 Dimension 시리즈에서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FDD)를 탑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CD( DVD[27]), USB 메모리, SD카드(2010년대 이후에는 microSD)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 3월, 인텔 센트리노 플랫폼이 제정되었고, 노트북 전용 CPU인 펜티엄 M이 출시되었다. 이 기점으로 노트북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와 함께 Wi-Fi 무선랜(KT 네스팟 2002, 802.11g 2003)도 보급되기 시작한다.[28]
    • 4월, 소니 쇼크 사태가 있었다. 전자제품 전반에서 일본의 주도권이 약해졌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5월, IBM의 ThinkCentre 시리즈가 출시되었으며, Lenovo가 PC 사업부를 인수하기 전에 출시된 마지막 IBM표 데스크탑 PC용 제품군이었다.
  • 2004년
    • 2월, 인텔 펜티엄4 시리즈의 프레스캇 CPU가 출시되면서 4 GHz의 벽을 느끼게 되었다.[29]
    • 6월, 인텔의 915P 칩셋부터 PCI Express 인터페이스가 도입되었고, 그것과 동시에 CPU 소켓이 일반 데스크탑용 보드에도 PGA → LGA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 11월, 삼성 SENS Q30이 출시되었다. 센트리노, 팬리스, ODD 미탑재의 1.08kg 초경량 노트북이었다.
    • 12월, Lenovo가 IBM PC사업부 인수를 발표하였다. 많은 LG IBM ThinkPad 유저들은 절규하였고, LG전자는 XNOTE, XPION 브랜딩을 시작하였다.[30]
  • 2005년
    • 7월, UEFI 포럼이 발족되었다. 바이오스 대신 UEFI가 적용되며 부팅 설정이 달라졌고, 16비트에서 64비트로 넘어가 각종 제약에서 자유로워졌으며, 하드웨어 호환성이 좋아졌다( MBR 참고).
    • 9월, 소니는 1.1kg의 초경량 노트북 VAIO TX 시리즈를 출시하였다.[31]
  • 2006년
  • 2007년
    • 1월, 현주컴퓨터가 폐업하였다. 이 회사의 부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시기 즈음 완제품 데스크톱 컴퓨터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조립 컴퓨터 아니면 노트북 컴퓨터로 사용자가 갈리게 되었다.
    • 6월 23일, CUDA SDK 정식판이 배포되었다. GPGPU가 발전하였고, 게임용 그래픽 카드는 NVIDIA라는 인식에 확실한 못을 박게 되었다.[34]
    • 6월 29일, iPhone이 출시되었다. 이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애플 2 IBM PC를 능가하는 파급력을 가져올 사건이었지만 당시엔 아무도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당시 그럭저럭 유행하던 PDA들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iPhone은 모바일 컴퓨팅 시대의 여명을 열며 향후 10여년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다.
      10월에 ASUS에서 Eee PC를 출시하였고, 넷북이 유행하였다. 싸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노트북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 이 시기에는 반도체 치킨 게임이 한창이라서 DRAM 가격이 폭락하였다. PC의 RAM 단위가 MB에서 GB로 바뀌게 되었다. 치킨 게임의 끝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대침체)로 종료되었다. 독일 반도체, 일본 엘피다 메모리가 휘청였고, 삼성전자가 승자가 되었다.
  • 2008년
    • 1월, MacBook Air가 출시되었다. 서류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 4월, 인텔 아톰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넷북, 넷탑의 전성기였다. 서브노트북이라는 데스크톱 외 하나 더 구입하는 컴퓨터의 개념이 보편화되었다.
    • 12월, 구글의 웹 브라우저 Chrome이 정식 출시되었다. 조금 시일이 더 걸리긴 했지만, 느리고 느린 Internet Explorer 강점기가 끝나가게 된다.[35]
  • 2009년
    • 1월, 소니 VAIO P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컴퓨터라는 희망사항을 보여주었다.
    • 10월 22일, Windows 7이 출시되었고, 64비트 운영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시기 4GB RAM 장착이 보편화 되었는데, 32비트 운영체제로는 RAM을 최대 3.2GB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RAM/주소할당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환성을 걱정하여 32비트 운영체제를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1+1+1GB 트리플채널을 지원하는 마더보드도 있었고, 잉여로운 RAM을 사용하고자 램 디스크를 설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XNOTE T380을 필두로 Windows 7이 탑재된 울트라 씬 노트북(→ 2011년 울트라북)들이 출시되었다.
  • 2010년 10월, MacBook Air( 2010 late)와 그 대항마 울트라 씬 노트북(→ 2011년 울트라북)들이 출시된다. 이 과정에서 SSD가 널리 보급되었으며[36], HDD C 드라이브에서 밀려나게 되며 멀티부스트, 외장 HDD, NAS 속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잃은 ODD는 종말을 고했다. 노트북 배터리는 2cm 두께 18650 원통형 규격( 파나소닉)에서 벗어나 얇은 리튬이온/리튬폴리머 파우치형 배터리(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ATL)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 2011년 1월, 인텔 샌디브릿지 기반의 2세대 코어 i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인텔 퀵 싱크 비디오가 탑재되었고[37], 장수만세 CPU가 되었다. 그리고 삼성 센스 시리즈 9이 출시된다. 삼성 울트라북 계보의 첫 주자가 되며, 후속 아티브 북 9(2012)으로 이어지며 이 기점부터 삼성 시리즈, 삼성 아티브(2013)라는 새 PC 브랜드 전략이 시작된다. 즉 삼성 SENS 매직스테이션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다. LG에는 xNote P210이라는 울트라 씬 노트북이 출시되었다.[38] 그보다 컴덕들에게 널리 알려진 제품으로는 인민에어(2012)가 있다(...)
  • 2012년
    • 8월, 리사 수가 AMD 총괄 부사장으로 취임하고, 짐 켈러도 AMD에 합류한다. 이들은 AMD 부활을 위해 노력한다. 라는 말은 이 시점의 AMD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 10월, Windows 8 Surface RT가 출시되었고 망했어요. 메트로UI가 특징인데, MS는 폰/태블릿 환경의 윈도우 제품을 적극 시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스마트폰(아이폰)과 태블릿(아이패드)이 기존 IBM PC 호환기종 제품들에게 서서히 위협이 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2013년
    • 5월, 브라이언 크르자니치가 인텔 CEO로 취임한다. 여기까지가 인텔의 황금기였고, 곧 R&D( 14++)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2018년 해임)
    • 6월, 연탄맥이 출시되었다.
    • 12월, 반면 LG는 뚝심있게 초경량 노트북 LG PC gram을 출시하였다. 이후 LG gram이 되어 가벼운 노트북의 대명사가 된다.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3월 : AMD RYZEN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이에 기반이 되는 ZEN 아키텍처가 불타올랐던 불도저~엑스카베이터 대비 인상적인 성능 향상으로 유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41] AMD는 재도약을 시작했고,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그래픽 카드 채굴 대란이 있었다. 2015년 즈음부터 암호화폐 채굴 붐이 일어나 이 시점에서 그래픽카드 수요/공급이 문제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 즈음에서 수랭 이야기도 많이 나오곤 했다. PC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12월,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on ARM OS가 출시되었다. x86(x64) CPU 외 다른 CPU(AP)에서 구동되는 비 IBM PC 호환기종 윈도우 제품 중 과거보다는 쓸만한 제품이 나오게 된다.[42] 이런 시도를 해야 했을만큼, 각종 윈도우 태블릿들이 망할 만큼, 인텔 CPU는 전력을 많이 먹고 많이 뜨거웠다.
  • 2018년, 초미세공정 EUV가 회자된다. 계기는 차세대 반도체라인 기공식에서 현수막이 거꾸로(...)[43]
    이쯤에서 PC 제조사들은 태블릿 컴퓨터의 성장세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노트북 시장이 의외로 견고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2019년 12월, 갤럭시 북 Ion/ Flex가 출시되며 삼성은 다시 PC에 힘을 싣기 시작한다.[44] LG도 LG gram(2019)[45] 출시로 "gram" 브랜딩을 강화하였다.
  • 2020년
  • 2021년 11월, 인텔 12세대가 출시되며 서로 다른 두 마이크로아키텍처가 탑재된 하이브리드 프로세서가 처음 적용되었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였다.[48]
  • 2022년
    • 4월, RYZEN 7 3D Cache가 출시되었다. 수직으로 CPU 위에 캐시 메모리를 얹어 한정된 면적에도 불구하고 대용량의 캐시 메모리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 성능 향상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49]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CPU/메모리/GPU 구조/구성이 서로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하게 되었다.[50]
    • 6월, 데스크탑용 인텔 Arc 그래픽카드가 출시되었다. 암호화폐로 촉발된 그래픽카드 수요급증의 물살을 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부터 부동소수점연산, 행렬연산 등의 컴퓨팅 성능에 GPGPU/ NPU 같은 하드웨어 가속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투자의 필요성은 높았던 상황이었다.[51]
    • 때마침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공지능 가속기(NPU)의 관심이 커졌다.[52] 4월에 출시된 DALL·E 2 + 8월에 출시된 Stable Diffusion + 10월에 출시된 NovelAI로 촉발된 그림 인공지능 대유쾌 마운틴, 그리고 11월 말에 출시된 ChatGPT 대화형 인공지능 등의 이슈들이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인텔이 아니라 엔비디아의 주가가 폭증했다.

4. 용도

오늘날 PC의 용도는 무궁무진하지만, 특히 다음 용도로 널리 이용된다.
  • 각종 생성 작업: 응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업무 수행.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대표적이지만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종류의 응용 소프트웨어가 있으며, PC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 역시 부지기수이다. 과거에는 전용 워크스테이션이 필요했던 작업들도(예: 컴퓨터 그래픽, 미니탭) 오늘날엔 PC로 할 수 있다.
  • 각종 정보 검색: 즉 인터넷 브라우징.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모바일 기기가 지금처럼 성능이 좋아지기 전에는 대개 인터넷 브라우징은 PC로 했다. 모바일 기기는 화면도 작고 처리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대개 인터넷은 모바일로 브라우징하는 이들이 많다.
  • 여가 선용: 즉 컴퓨터 게임. 전용 게임기 대신 PC로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컴퓨터 게임은 PC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며, PC 성능 향상에 중요한 원동력을 제공했다. 특히 화면에 표시되는 영상을 처리하는 GPU(그래픽 처리 유닛)는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반면 슈퍼컴퓨터처럼 각종 고차원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거나(예를 들어 일기예보) 네트워크 서버 임베디드 시스템처럼 딱 한 가지 업무만을 맡아 계속 수행하는 특화된 컴퓨터도 많다. PC의 특징은 이들과 달리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작업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범용성이다. 오늘날에는 모바일 기기의 성능이 크게 발전헤 그 중 상당 부분의 셰어를 가져갔지만(예: 모바일 인터넷, 모바일 게임), 업무 수행용으로는 여전히 키보드 모니터, 마우스가 달린 PC가 표준 장비로 애용된다. 심지어 게임조차도 모바일 기기의 스크린의 버튼을 눌러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싫어 전용 게임기나 컴퓨터를 쓰는 이들도 많다.

“최초의 PC는 무슨 용도로 쓰였나?”라는 질문이 종종 온라인에서 보이는데, 애플 1, 알테어 8800같은 초창기 PC(당시 명칭은 마이크로컴퓨터)가 나왔을 때는 인터넷은 커녕 상용 프로그램이란 게 아예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갖고 뭘 했느냐는 것.

이는 “최초의 승용차는 무슨 용도로 쓰였나? 포장 도로도 주유소도 없던 시절인데”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최초로 자동차를 만들어 탄 이들이 자동차란 물건을 운전하는 것 자체를 즐겼듯, 최초의 PC 사용자들은 컴퓨터란 물건을 조작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조차 없어 어셈블러나 내장 BASIC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하드 디스크는 커녕 플로피 디스크도 없어 카세트 테이프에 프로그램을 저장하며 밤을 지새던 이들이다. 즉, 최초의 PC들의 용도는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행위 그 자체”였으며 그 외에 실용적인 용도는 별로 없었다.[53]

허나 머지 않아 저런 PC 사용자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짜보다가 ”이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싶은 수준의 물건들을 만들고, 동네 컴퓨터 가게나 우편 판매를 통해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판매하며 상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생겨나고 급속히 확대된다. 빌 게이츠가 트래포데이터(교통량 측정 프로그램)를 만들어 판 돈으로 세운 마이크로소프트, 댄 브래클린이 비지캘크(원조 스프레드시트)를 팔기 위해 세운 비지코어, 리처드 개리엇이 아칼라베스( 울티마 시리즈의 전신인 컴퓨터 RPG)를 판 돈으로 세운 오리진 시스템즈 등이 유명한 예지만,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IT 기업들이 PC 사용자들의 손으로 설립되고 키워졌다. 자동차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도로가 닦이고 자동차 메이커들이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PC 사용자들이 늘어나며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가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5. 위기?

스마트폰 태블릿 등 고성능 휴대용 기기들의 등장으로 크고 무거운 기존의 PC[54]는 점점 사장될 것이란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PC 시장은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이는 PC를 사용해야만 가능했던 작업들 중 상당수가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가능해졌기에 '컴퓨터를 사용한 작업'이라는 시장을 이전처럼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위기론은 신흥 산업인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으레 따라오는 마케팅적 수사인 측면도 크다. 팬택이 2010년 베가 X를 출시하면서 PC가 5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P의 법칙이라 명명하며 마케팅에 크게 활용한 것이 그 예시이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은, 그동안 PC가 누려왔던 대체불가능한 독보적인 지위가 약해지는 것이지 PC가 비교열위나 절대열위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55] 모바일 디바이스는 PC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PC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모바일 디바이스는 휴대성을 위해 특정한 형태의 입출력장치와 일체형의 소형화된 폼팩터를 가져야 하는데,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들이 PC의 일부 기능과 상충되어 가능한 작업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탓이다.

컴퓨터의 발전은 곧 소형화와 고성능화의 역사이므로, 휴대용 컴퓨터가 충분히 고성능화되었음에도 휴대하지 못할 크기와 조작방법을 고수하는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휴대를 포기할 만큼의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적인 키보드, 마우스 등의 입력기기와 대형 출력장치를 사용하는 컴퓨터는 장시간 작업에서의 생산성이 압도적이며, 휴대용 기기보다 물리적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로워 성능의 한계폭이 높기 때문에 그래픽 작업이나 고성능 게임에서는 아예 대체 불가능할 정도의 우위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충관계는 PC와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제품군의 본질적인 요소에서 오기에 기술이 계속 발전해도 한 제품군이 다른 제품군을 완전지배하기란 요원하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성능이 PC만큼 높아진다면, 해당 기술을 모바일 다바이스의 폼팩터에 우겨넣는 대신 데스크탑 PC의 부피에 배치하고 전원에 직접 연결하여 압도적인 열관리와 전력량을 제공할 경우 PC의 성능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모바일 디바이스에 키보드와 마우스 이상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갖춘 입력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입력장치를 PC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는 마치 PC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 소형화되고 일체화되더라도 휴대성이라는 면에서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압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은 다른 분야에서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다른 만큼,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장을 구축한 형태를 보인다. 두 시장이 하나로 합쳐져 PC가 모바일 디바이스를 잡아먹는 것도, 모바일 디바이스가 PC를 도태시키는 것도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다. 태블릿 컴퓨터가 시장에 등장할 당시 스마트폰의 휴대성 및 편의성과 노트북 컴퓨터의 생산성 모두를 잡는 강력한 폼팩터로 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아직은 휴대성과 생산성을 양립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오히려 고전적인 의미의 데스크탑 컴퓨터, 즉 표준화된 크기의 케이스 안에 표준화된 폼팩터의 하드웨어를 임의로 조립해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시장을 침범하는 것은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노트북 컴퓨터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시즈모드용 겜트북이 그것인데, USB Type-C를 통해 USB 3.0 썬더볼트 등의 초고속 전송이 가능해지고 USB PD를 통해 충전까지 가능해져 고정된 작업장소에서는 USB 허브 또는 썬더볼트 독에 연결된 케이블 하나만 연결해서 간편하게 데스크탑 수준의 입출력장치와 전원을 연결할 수 있고, 이동해야 할 경우는 케이블 하나만 분리하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데스크탑 수준의 성능을 쑤셔넣었기 때문에 이동이 가능하다뿐이지 휴대성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고정된 자리에서만 사용할 것이라면 같은 성능의 데스크탑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하기 때문에, 데스크탑에 준하는 성능을 여러 장소를 오가며 사용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유용하므로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경쟁관계가 더욱 직접적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다룬 주제 외에도 PC 위기론에는 여러 관점의 주장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윈텔로 대표되는 데스크탑 환경에서 성장한 거대기업들이 구글 등 모바일 환경에서 급성장하는 거대기업에게 패권을 넘겨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인텔로 상징되는 고성능 데스크탑 프로세서가 Arm 등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을 펼친다. 각각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해보면, 만약 기존의 PC가 퇴출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효용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해볼 수 있다.

6. 관련 회사

대부분의 업체들은 문어발식으로 부품도 만들고, 완제품도 만들고 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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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부품 분야

6.1.1. CPU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CPU의 99% ARM 계열이다.[56]

6.1.2. RAM

6.1.3. 메인보드

6.1.4. 그래픽 카드

  • NVIDIA
  • AMD: ATI였는데 AMD에 인수합병됨
  • 인텔 - 오랫동안 그래픽카드 생산에서 손 뗐지만 칩 점유율 세계 1위로서 2위인 엔비디아보다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는 그래픽 카드 직접판매보단 내장 그래픽 때문에 높은 것이다. 인텔은 사실상 CPU, 메인보드 칩만 생산중이다. 2022년 기준 상반기 노트북 GPU를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데스크탑용 GPU인 인텔 Arc를 출시하면서 그래픽카드 시장에 복귀했다.
  • 매트록스
  • 3dfx

6.1.5. 컴퓨터 쿨러

6.1.6. HDD

6.1.7. SSD

6.1.8. 파워 서플라이

퍼스널 컴퓨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모듈이다.

6.1.9. 수입 유통사이자 제조 업체

6.1.10. 완제품 회사

  • Lenovo - IBM이 2004년에 자사의 PC 사업부를 Lenovo에 매각하였다. 전세계 완제품 컴퓨터 업체 중 세계 1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 HP Inc.
  • Dell - 완제품으로 쓰기에 가장 좋다.
  • Apple - 2009년에 팹리스 반도체 회사를 인수해서 자사의 사업부문으로 만들었다. 그래픽, 예술 분야의 점유율이 높다.
  • 삼성전자 - 한국 한정으로 비중이 가장 높다.
  • LG전자
  • 한성컴퓨터
  • 삼보컴퓨터
  • 주연테크
  • NEC
  • 도시바
  • 후지츠
  • 파나소닉
  • VAIO - 소니가 PC사업부를 분리했다.
  • 안랩 - V3가 포함되어있다. 포장상자와 본체에 V3 표시가 있다.
  • 와콤 - 원래는 태블릿 스타일러스 펜 제조업체지만 태블릿 PC인 신티크 컴패니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 폭스콘 - 대표적인 대만의 OEM 회사.
  • ECS
  • 오코스모스 - 태블릿 컴퓨터 전문 회사.[58]
  • 엠티스 - 한국에서 특수 산업용, 선박용 컴퓨터, 주문형 컴퓨터등 개발 생산한다. 2016년 10월 선박용 컴퓨터 신제품에 대하여 DNV GL 선급 인증을 받았다.

6.2. 컴퓨터 브랜드

6.2.1. 메인프레임

6.2.2. 슈퍼컴퓨터

6.2.3. PC

6.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

6.3. 사라진 브랜드


파일:external/www.etobang.com/bb2425276497982431ac5ef4226e29d6_jXXdblDqEwdOW39i7VPAP2eqXa3n.gif
  • 뉴텍컴퓨터: 그동안 흰색 아니면 누런색(?)이던 컴퓨터 몸체를 한국 처음으로 컬러 몸체를 내놓았던 곳 중소기업으로 공룡 캐릭터를 내세우는등 아기자기한 비주얼 마케팅으로 1990년초중반 신문 및 방송광고를 많이 하던 업체. 1987년에 설립되었다. 그런데 과장광고로 경고를 먹기도 하고 부품 저작권 침해로 사장이 불구속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신문 광고로 크게 가격대반란~이라면서 5.16 군사정변 당시 사진을 붙였다가 '반란'이라는 표현에 피꺼솟한 일부 계층의 분노어린 반발을 받기도 했으며 한국논단에선 친북 운운거리기도 했다. 중소기업으로 떠오르나 했더니 결국 IMF 이후 소리소문없이 부도( 1997년 12월 22일)나 사라졌다. 덤으로 이 업체도 별별 문어발 사업 확대 투자로 나서서 종말을 부채질했다.
  • 렉스텍
  • 매직스테이션: 삼성전자의 데스크탑 컴퓨터 브랜드. 2013년 아티브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사라졌다. 기업용의 경우 사후관리가 양호해 업무용 워크스테이션으로 쓰는 기업이 많았다.
  • 삼성 알라딘: 삼성전자 최초의 16비트 컴퓨터 브랜드( SPC-1000 등 8비트 시절에는 그냥 삼성전자 컴퓨터였으며 별도 브랜드명이 없었다). 오늘날엔 잊혀졌으나 당대(1990~1994) 우리나라 PC 시장 점유율 1위의 메이저 브랜드였다. 위의 매직스테이션도 원래는 알라딘의 제품명 중 하나였다가 아예 브랜드명이 되었다.
  • IBM ThinkPad: 1995~2005년에 걸쳐 이름을 날린 노트북 컴퓨터 브랜드. 2005년에 IBM이 PC 시장에서 발을 빼면서, 중국 기업인 레노버가 브랜드를 인수해 비슷한 느낌의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IBM 시절 씽크패드는 오늘날 Mac 노트북을 쌈싸먹는 초고가 최고급 컴퓨터였으며, 소위 ‘감성’으로 승부하는 Mac과 달리 전문가용 초고성능 노트북으로 만인이 탐냈다. 레노버가 인수한 후에는 이름만 씽크패드이며 다른 회사 노트북들과 엇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그 대신 가격이 확 싸졌다.
  • IPC: 완제품업체로 한국IPC는 1989년 회사 창립 후 신용카드 단말기 프린터 공급업체로 이름을 알렸다가 1996년 데스크탑 PC시장에 진출하면서 `마이지니`와 `헬리우스`란 PC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동남아시아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앞세우며(당시 한국지사장의 컴퓨터잡지 인터뷰를 보면 동남아시아 PC판매 업체 1위였다고)한국에 Tv광고도 했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알아준다고 한국에서 알아줄 리가… 게다가 제품이 윈도우 95가 잦은 에러를 일으킨다는 게 드러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자 발매 1년도 안 가 초특가라며 떨이로 마구잡이로 팔면서 그야말로 철저하게 파묻혔고 결국 이 기사가 나온지 2달도 안 돼 진출 2년도 안 가 1997년 1월 29일, 한국지사가 문 닫았다. 이때 어음 보증을 하던 유통사 멀티그램도 덩달아 부도가 나버려서 멀티그램이 배급을 맡은 많은 PC게임 발매사까지 덩달아 타격을 받았다. 이 무렵, 용산에서 CPU와 메모리가 없는 엉터리 마이지니 제품을 50만원에 파는 똥배짱 사기극까지 벌어지면서 이 업체 이름은 흑역사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 모뉴엘 - 2004년에 설립된 한국의 PC/소형 가전 제조회사였다. 주로 판매하던 제품으로 Home Theatre Personal Computer(HTPC)를 판매했으며 게다가 쿨링계에서 실험 좋아하는 회사로 이름 높은 잘만테크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잘만테크는 2011년 7월 모뉴엘에 인수되었다. 이후 2014년 모뉴엘 사기 대출 사건으로 자회사였던 잘만테크도 피해를 입었으며 모회사때문에 자회사였던 잘만테크는 2017년 6월이 돼서야 겨우 회생 절차를 졸업했다.
  • 컴팩 - 한때 미국 국민컴퓨터로 과 치열히 경쟁했으나 2001년 휴렛패커드에 인수된 후 브랜드가 소멸되었다.

[1] 상단 사진은 HP Pavilion 24-CA1014NS, 하단 사진은 Apple iMac 24(2024년)이다. [2] 오늘날의 조립컴같은 게 아니라, 납땜 인두를 들고 회로 기판과 각종 마이크로칩을 조립하는 물건이다. 당시에는 회로 조립이 청소년들의 흔한 취미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Apple I 같은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 [3] 아래 좁은 의미의 PC에서 유래된, 즉 x86 아키텍처에 Windows NT를 돌릴 수 있는 기계를 그렇게 불렀다. 간혹 NT 대신 Linux나 x86 버전 UNIX(솔라리스 등)를 돌려서 서버 역할을 하기도 했다. [4] ‘작업대‘라는 의미. 즉 업무용 컴퓨터란 뜻으로, 취미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퍼스널 컴퓨터(PC)와는 차별화되는 성능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내비치는 명칭이다. 오늘날엔 워크스테이션이란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데, 당대에 워크스테이션을 빗대 “놀이대“, 즉 놀이용 컴퓨터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5] 지금은 PC의 발달로 인해 이 분야는 수퍼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고도의 연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PC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SUN은 오라클에 팔렸다. [6] 본격적인 퍼스널 컴퓨팅 시대를 촉발했다고 평가받는 애플 2조차도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불렀을 정도다. [7] IBM이 윈텔에게서 주도권을 되찾아보려고 만든 것이 IBM PS/2인데,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운영체제인 OS2나 연결단자인 PS/2 포트가 더 유명했다. [8] 컴퓨터를 구매할 때 이런 질문을 해야 했다는 것은 당시 시장이 PC 호환기종+맥킨토시로 양분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야 맥을 제외하고 어느 회사 컴퓨터 제품을 사더라도 윈도가 깔려있는 PC 호환기종인 것이 당연하지만, 1980년대는 수많은 회사들이 PC 표준의 아성에 도전하던 전국시대였다. 미국에서만도 아타리, 코모도어, 왕, 싱클레어, 애플(맥이 아니라) 등등 다양한 컴퓨터들이 개인용 및 업무용으로 출시되어 경쟁하였으며, 일본에선 교육용으로는 MSX, 업무용으로는 PC가 주류였지만 이는 IBM PC가 아니라 NEC PC라는 전혀 다른 컴퓨터였다( PC-8801 등). 한국도 삼성전자의 SPC-1000, 금성 패미컴, 삼보 트라이젬(애플 II 클론), MSX 등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들이 서로 경쟁했고 IBM PC는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독자적인 OS를 탑재하고 있어 서로 응용 프로그램 호환성이 없을 뿐더러, OS 명령어(GUI 방식이 아니었다)도 전부 달라 사용법을 별도로 배워야 했다. [9] 대한민국에서의 애플II 항목 참고 [10] 공개 자체는 1977년 1월 CES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코모도어 PET 2001, 그 다음이 4월 West Coast Computer Faire에서 공개된 Apple II, 마지막으로 8월에 TRS-80이 공개되었다. [11] 당시 관공서나 기업에서 쓰던 DOS를 탑재한 IBM 호환 PC는 100% 독립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데이터베이스나 수식 계산을 할 때엔 서버에 연결해서 프로그램을 돌리고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는 PC가 아닌 3270 호환 기종 단말기로 쓰인다. [12] 당시의 16비트 IBM 컴퓨터로는 한자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IBM 호환 PC와는 지향점이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시작된다. [13] 소매상들이 상용 소프트웨어를 무단 복제해, 이를 소비자에게 유료로 판매하는 행위. 물론 정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헐값으로 판매했다(당시 화폐가치로 타이틀당 1000~2000원 정도, 플로피 디스크 가격은 별도). [14] 1987년 7월 1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정. [15] Warez, 웨어즈의 오독. [16]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레포트 작성용, 사무용이라면 컴퓨터가 좋은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PC 스피커 참고. 농담이 아니라 (16비트) IBM 호환 PC의 사무용이란 컨셉은 기존의 8비트 컴퓨터와 16비트 컴퓨터의 지향하는 방향성에서 비롯된 차이점이었고, 사운드 뿐만이 아니라 그래픽에서도 당시 전환기에 XT는 320×200 해상도( CGA) 그래픽을 출력하여, MSX( 스프라이트)보다 나은 해상도를 얻고 색상을 잃었다(MSX 256색 vs IBM 흑백~16색). 게임용 그래픽( 도트 노가다참고)으로 쓰기에는 무리였지만, IBM은 사무에만 관심이 있지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십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IBM 호환 PC가 멀티미디어 기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7] 4~5년 전만 하더라도 UNIX 터미널을 통해 컴퓨터를 다뤘다. 대학 선후배 간 세대차가 컸다(...) [18] Mdir 이전에는 PC는 공부하지 않으면 쓸 수 없었던 그저 까만바탕의 화면이었으나, Mdir을 실행할 줄만 알면 이후로는 화살표와 엔터키 만으로 컴맹도 원하는 게임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좀 더 원활히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 PC를 조금 더 공부하여 autoexec.bat, himem.sys mouse.com등을 다뤄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19] 그 당시에도 조금이나마 더 저렴했다. [20] 1998년 3월에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민속놀이가 되었으며, 1998년 9월에 정식 서비스된 리니지와 함께 PC방의 전국적인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21] 정확히는 쿨러는 486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폼팩터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기존 공간 구조상 쿨러가 내부 부품과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므로 ATX와 쿨러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22] 2004년에 삼성 소니의 S-LCD 설립된 후, 2005년부터 LCD가 명백한 대세가 된다. [23] 여담으로, 집에 PC가 여러 대 있으면 인터넷 연결에 추가금을 받았다.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해도 다를 바 없었다. 가정용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의 길은 요원해 보였으나,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의 보급(2010년대) 이후로 통신사의 회선당 추가금을 받는 기조는 멈추게 되었다. [24] 2003년에 출시된 1kg 초반의 P5010 제품은 보다 널리 팔렸다. [25] 역사적인게 어느정도냐면, 20년 후 2022년 ThinkPad, VAIO, 후지쯔, NEC 다 스러져간 와중에 옛모습 그대로 출시, 이유(...). 레거시 포트를 모두 갖춘 초경량 노트북이라서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보면 된다. [26] 한국에서는 DVD 판매/대여점도 성공하지 못할 판이었다. 소리바다와 불법클론 프루나(...)로 대표되는 불법복제 때문에 망했다만 TV로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는 용도로 쓰이기는 했다. 너무 마이너해서 문제였지.. [27] DVD 개발과 공급의 시간차가 있으며, PlayStation 2와 함께 DVD가 보편화된다. [28] 하지만 무선랜이 진짜 실질적으로 가정마다 보급되는 것은 2009년에 표준화된 Wi-Fi 4가 지원되는 스마트폰부터이다. [29] 이후 멀티코어 프로세서(2005 펜티엄D, 2006 코어, 코어2)로 개발방향이 전환되게 된다. 특히 2007 코어2 쿼드는 켄츠할배라 불리며 장수만세를 외쳤다. [30] LG의 X같은 브랜딩이 한창일 시기였다. [31] 더 나아가 이듬해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노트북 VAIO SZ/Z 시리즈를 출시하였다. 소니 VAIO는 2023년 기준 노트북계의 애플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32] Mac mini 등에도 인텔 CPU가 탑재되었다. [33] 다만, 관습상 Mac을 PC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34] 참고로 과거(2000년)에도 3D는 엔비디아, 2D는 매트록스, 인텔은 그래픽 감속기라는 밈이 있었다. [35] 아울러 웹 표준 HTML5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웹 표준 준수 분위기가 일어나게 된다. [36] 이후 SSD는 TLC, 3D V-NAND 기술 덕분에 확실한 대세가 되었다. [37] 다시 한번 그래픽 감속기 소리를 들었지만, 훗날 관점에서 QSV 역사를 보면 상전벽해. [38] 유리창에 스카치테이프로 노트북을 붙이는 TV광고를 하였다. [39] 이듬해 Surface Book 출시로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었다. [40] 인텔 QSV와 라데온 Graphics Core Next 이후의 2012년 짤, 오버워치 광고 즈음부터 2015년 짤 # [41] 암레발 짤방 중 마동석 짤방이 꽤 유명하다. # [42] PPC 시절부터 비 인텔CPU에서 구동되는 윈도우 제품을 만들어 왔었고, 많은 실패를 해 왔었다. 인텔 CPU 성능 향상의 정체기 및 x86특허 만료로 인해서 다시 시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43] 이런 모양(...) EUV를 도입하고 안정화 되기까지 한번씩 절뚝거리는 앞날을 묘사한다 카더라(...) 단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게, 현재 인텔은 공정미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인텔을 따라잡을 기회이므로 발빠른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PC CPU와 스마트폰 AP는 다른 물건이지만, 시장이 겹치고, AMD는 파운드리에서 제조되고 있으며 TSMC의 공정향상에 힘입어 인텔을 위협하고 있었다. [44] 갤럭시 북 시리즈는 2017년 태블릿 PC 브랜드로 당시 프론티어 내지는 비주력 브랜드였다. [45] 이름이 단순해졌다. [46] 2020.11, 성능비교 [47] 시작은 2017년 AMD Epyc AMD RYZEN Threadripper가 있고, 훨씬 앞선 2005년에 출시된 인텔 펜티엄D 시리즈(첫 듀얼코어)에서 사용되었던 기술이다. [48] 스레드 스케줄링을 잘못하면 고성능 고전력용인 P-코어가 일하지 못 하고, 저성능 고효율용인 E-코어만 일하는 성능 나쁜 CPU가 되어버린다. 게이머들 사이에 E-코어 끄는 법이 공유되었다. [49] 한 번 데이터를 캐시메 모리에 올려두고 이를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작업에 최적화 되었고, 게임 맵 로딩 후 이 안을 돌아다니는데 최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코딩의 경우 계속 새 데이터를 얹고 연산한 후 내려놓는 과정이 반복되니, 이 CPU로 인코딩 성능 향상은 미미했다. [50] 애플 M1이 CPU와 GPU의 메모리를 공유함으로써 데이터를 CPU에서 GPU로 옮기는 과정을 생략해 극적인 성능향상을 이룬 것과 유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51] 때마침 내장GPU는 핫스웰(2012)부터 이어져 온 뜨거운 CPU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으니 이를 어찌 해결해봐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외주업체에 GPU를 주문생산하여 포베로스라는 MCM 방식으로 CPU에 조립하는 방식(메테오레이크)을 도입하는 중이다. [52] 앞서 2016년 알파고 시점부터 예상되어졌던 일이며, 2017년 Face ID, 2020년 딥페이크, 2021년 달고리즘 등의 이슈들이 있어왔다. [53] 기업이나 대학, 정부기관 등이 메인프레임이나. 미니컴퓨터로 수행하는 작업들(시뮬레이션, 통계분석 등)은 당시 PC로는 수행하기 어려웠다. CPU 성능도 낮았지만 애당초 그런 대량의 데이터를 입력할 방법이 없었다. 주기억장치가 수십 킬로바이트 수준이었으며 보조기억장치는 잘 해야 카세트 테이프 드라이브 정도밖에 없었다. 때문에 당시 PC를 사서 조립하는 사용자들은 그냥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싶은 취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용적인 게인용 컴퓨터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애플 2가 나오고 나서 시작되었다. [54] 여기서 말하는 PC는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로 정의한다. [55] 애초에 대체재보다 비교열위를 갖는 상품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것은 쉽지 않다. 샤프가 발명되었다고 연필이 퇴출되던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제품들은 대체제에 의한 완전지배를 당하는 제품들이다. 즉, 다른 제품이 이 제품의 효용을 완전히 포함할 때 퇴출되는 것이다. [56] 칩 형태로 판매하기 보다는, 코어를 디자인한 다음 그 디자인 자체를 온갖 업체에게 라이센싱해서 팔아 치운다. 해당 업체는 그 코어에 기능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여 자신들만의 커스텀 칩을 만들어 사용한다. 엑시노스, 테그라 등 스마트폰 AP의 이름은 모두 다르더라도 CPU 코어는 죄다 ARM이다. [57] 1996년 설립돼서 CPU 쿨러로 시작해서 그래픽카드, 컴퓨터 팬, 파워서플라이 등의 여러 분야에도 진출했지만 모회사때문에 고난을 겪고 이후 2017년 6월에 겨우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58] 다른 사업으로는 계열사인 오코스프렌즈라는 회사가 했던 오존이라는 이름의 멀티방이 있었는데 오코스프렌즈 자체가 폐업해서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 회사 연혁에는 없고 오존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도메인이라 나오고, 트위터에 있던 계정도 없어졌다. 오모스 블랙홀, 오존 UCC라는 곳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의 계열사 소개 남아있는 카페와 직원이었던 듯한 사람의 블로그 서현점 블로그에 흔적만 남아있다.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11일 기사에선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 자진취소 명단에 올랐었다. 자진 취소를 신청했었다고 하니 이미 폐업하려고 했던 거 같다. 온게임넷의 켠김에 왕까지 41, 42회에 나온 적이 있다. 지금은 없는 1호점의 흔적, 역시 지금은 없는 서현점의 흔적, 목표로 했다는 100호점은 저 멀리 날아갔다. 멀티방이 네 군데(대전 은행점, 둔산점, 성남 서현점, 서울 강남점)만 있었던 거로 추정된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는 주주들에게 알리는 글만 가끔 올라오고 별다른 게 없으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이 있었지만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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