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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arl Friedrich Otto Wolff 카를 프리드리히 오토 볼프 |
출생 | 1900년 5월 13일,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
사망 | 1984년 7월 17일, 서독 로젠하임 |
신장 | 189cm |
복무 | 슈츠슈타펠 (1931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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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초기 행적
독일제국령 헤센 대공국의 다름슈타트에서 지방재판소의 재판관이던 부친아래 태어난 카를 볼프는 가톨릭 계열의 학교에서 수학 후 1917년 4월에 16세로 헤센 대공국군에 입대했다.유년사관학교에서 연수를 거쳐 1917년 9월에 제1차 세계 대전때 서부전선에 종군하여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상했다. 1918년에 17세로 육군 소위가 된 볼프는 전후 헤센의 의용군에도 참가했는데 이 때 전쟁공훈이 인정되어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3.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행적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군대보유가 제한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밀려난 그는 1920년 5월에 제대하여 프랑크푸르트에서 은행에 입사했다가 1922년에 프리더 폰 롬헤르트와 결혼했다. 1923년에 아내와 함께 뮌헨으로 이사한 볼프는 독일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24년 6월에 경제공황때 실직하고 말았다. 그 후 굉고회사에서 일한 볼프는 1925년 7월부터 자신이 직접 광고회사를 차려 독립개업했다.4. 나치당과 친위대 입대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10월 7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볼프는 다시 친위대에도 입대했다. 뮌헨에서 광고회사를 꾸려 나가면서도 뮌헨의 친위대 활동에 종사한 볼프는 1932년 2월에 친위대 소위가 되었다. 1933년에 나치당이 정권을 잡자 당무에 전념한 볼프는 친위대 대위로 승진해 나치당의 간부였던 프란츠 리터 폰 에프의 부관이 되어 독일 국방군과의 사이에서 연락장교의 역할을 맡았다. 얼마 후 하인리히 힘러의 눈에 든 볼프는 1933년 6월부터 힘러의 부관부서인 친위대 국가지도자 개인참모부의 장관이 되었다. 1937년에 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한 볼프는 1939년 8월부터 히틀러의 친위대 연락장교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볼프는 힘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 이어서 친위대 서열 3위로 올라앉게 되었다. 볼프의 친위대 국가지도자 참모부에는 친위대의 모든 서류 사본이 모아졌다.[1]5. 제2차 세계 대전
왼쪽이 아우구스트 폰 마이츠너 SS 중장, 카를 볼프, 오른쪽이 하인리히 힘러 SS 장관이다. |
6. 전후 행적
말년의 볼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