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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Martin Sandberger 마르틴 잔트베르거 |
출생 | 1911년 8월 17일 |
독일 제국 베를린 | |
사망 | 2010년 3월 30일 (향년 98세) |
독일 슈투트가르트 | |
복무 | 친위대 (1936년 ~ 1945년) |
최종계급 | 친위대 아인자츠그루펜 A 대령 (연대지도자)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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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틴 잔트베르거 (Martin Sandberger) |
2. 초기 행적
베를린에서 태어난 잔트베르거는 당시 거대약품회사이던 이게파르벤의 사장의 아들로 부유하게 자라 뮌헨 대학교, 쾰른 대학교, 튜빙겐 대학교 등에서 법학을 공부했다.3. 나치당 입당
재학중인 20살 때, 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돌격대의 대원이 되었다. 튜빙겐 대학에서 나치당 학생조직의 지도자였던 잔트베르거는 1933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국가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의 직원이 되어 대학의 검사관이 되었다. 1936년에 친위대에 입대한 잔트베르거는 구스타프 아돌프 셸 사령관 아래에서 뷔텐베르크의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1938년에 친위대 소령으로 승진하여 1939년 10월 13일에 친위대 전국지도자인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북동이민중앙국의 국장으로 임명되어 새로 구획된 동부지배지역의 독일주민 이주사업에 종사했다.4.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이 발발한 후인 1941년 6월에 특공대 1a 부대의 지휘관이 되어 발트 3국 등에서 유대인 및 민간인의 대량학살을 지휘한 잔트베르거는 1941년 12월 3일에 에스토니아의 보안경찰 겸 친위대 지휘관도 겸직했다. 1944년 1월에는 국가보안본부 제6부의 첩보과장으로도 재직했다.5. 전후 재판과 행적
재판에 회부된 잔트베르거 |
전후 연합군에게 체포된 잔트베르거는 뉘른베르크 특수작전집단 재판에서 학살혐의로 교수형 판결을 받았지만 부자이던 아버지가 평소 친했던 테오도어 호이스를 통해 미국대사이던 제임스 코넌트에게 자식의 구명을 요청하여 관대한 처분을 탄원했기에 1951년에 미국정부는 잔트베르거의 사형을 취소하고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는데 1958년에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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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때의 잔트베르거 |
그 후 잔트베르거는 2010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