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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rich Priebke 에리히 프리프케 |
출생 | 1913년 7월 29일 |
독일국 헤니히스도르프 | |
사망 | 2013년 10월 11일 (향년 100세) |
이탈리아 로마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6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대위 (최상급돌격지도자)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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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의 친위대 대위.2. 초기 행적
독일 제국의 브란덴부르크 헤니히스도르프에서 태어난 프리프케는 1933년에 나치당에 입당해 1935년부터 유럽 각지의 호텔업에 종사하다가 1936년에 독일로 귀국한 후 게슈타포의 이탈리아어 통역반에서 일했다.3. 제2차 세계 대전
1941년 2월부터는 이탈리아의 독일대사관에서 일했는데 그는 이탈리아 경찰과의 사이에서 연락장교로 일했다. 1944년 3월 23일에 이탈리아인 빨치산에 의해 독일친위대원과 경찰관 33명이 살해당하자 히틀러는 보복을 지시했다. 로마의 게슈타포 장관이던 헤르베르트 카플러 친위대 중령은 급히 320명의 총살대상자를 작성하여 프리프케에 이를 위임해 총살형을 집행했다.프리프케는 이 명령을 따라 1944년 3월 24일 아르디아티네 동굴에 이탈리아 시민 335명을 몰아넣고 살해했다. 학살 피해자 중에는 어린이, 노인, 환자, 정치범도 있었으며, 유대인도 70명 이상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프리프케 본인도 민간인 사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
4. 전후 행적
독일의 패전 후 카플러는 체포되어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프리프케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아르헨티나로 달아났다. 이후 50년 가까이 본명을 숨기지 않은 채 아르헨티나에서 기거하며 안데스 인근 휴양지 마을에서 식품 가게를 운영하고 독일-아르헨티나 문화협회를 이끌며 지역의 명망 있는 유지로 통하던 프리프케는 1994년에 정체가 탄로나 아르헨티나 정부에 체포되어 1995년에 이탈리아 정부로 신병이 인도되었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고령의 나이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2013년 10월 11일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의 매장을 거부하였다.5. 기타
- 1980년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의 로마, 소렌토, 라팔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