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트 달루게의 주요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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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슈츠슈타펠 최상급집단지도자 쿠르트 달루게 Kurt Dalue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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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urt Max Franz Daluege 쿠르트 막스 프란츠 달루게 |
출생 | 1897년 9월 15일 |
독일국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 크로이츠부르크[1] | |
사망 | 1946년 10월 24일 (향년 49세) |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프라하 | |
신체 | 190cm |
복무 | 슈츠슈타펠 (1930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투름압타일룽
중장 (집단지도자) 슈츠슈타펠 상급대장 (최상급집단지도자) 질서경찰 상급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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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르트 달루게 (Kurt Daluege) |
2. 초기 행적
프로이센 왕국의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달루게는 1916년에 프로이센 군대에 입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종군했고,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후 장애 판정을 받았다. 장교 교육을 받고 부사관 대우의 장교 후보생으로 복무를 마쳤고, 전후 1918년부터 1921년까지는 실레시아 지역 특수경찰로 일했다.3. 나치당에서의 행적
왼쪽부터 쿠르트 달루게, 베니토 무솔리니,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하인리히 힘러, 카를 볼프이다. |
4. 제2차 세계 대전
쿠르트 달루게는 1941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과 민스크 학살 사건에도 관여했다.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의 유대인들을 리가와 민스크로 추방하는 명령에도 서명했다. 1942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당하자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부총독으로 부임했다. 히틀러는 달루게가 슈츠슈타펠의 고위 관료이자, 당시 프라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체코 총독으로 임명했다고 하지만, 원래는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무장친위대 대장을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SS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는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가 동부전선에서 바쁘기 때문에 총독에 임명되지 않도록 히틀러를 설득했다. 체코 총독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가 명목상 총독이었으나 1941년 권한을 박탈당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달루게가 총독의 역할을 수행했다. 1942년 6월 SS 대장 카를 헤르만 프랑크를 비롯한 다른 슈츠슈타펠 장교들과 함께 리디체와 레자키에서의 학살을 명령했다. 두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1943년 5월 달루게는 심근경색으로 중병에 걸렸다. 결국 8월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고, 독일 북부 포메른에서 남은 전쟁 기간을 보냈다.5. 전후 전범 재판과 처형
법정에서의 달루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