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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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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014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러시아전 · 알제리전 · 벨기에전) | ||
논란과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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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대 감독 홍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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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4a6><colcolor=white>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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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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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자철 |
계약 기간 |
2013년
6월 24일 ~
2014년
7월 10일[기존]
# (1년 1개월 / 382일)[2] |
계약 종료 (개인적 논란에 따른 자진 사퇴) | |
연봉 | 8억 원 (감독 / 추정치) # |
전술 스타일 |
점유율 중심의 선수비 후역습 ┗ 4-2-3-1 포메이션 |
성적 |
A매치 19전 5승 4무 10패 (승률 26.3%) 2013 EAFF 동아시안컵 (3위 / 4강 리그)[3]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7위 / 조별리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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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70대 감독 홍명보의 대표팀.2. 내용
2014 브라질 월드컵 32개국 본선을 앞두고 긴급하게 구성된 대표팀 체제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따낸 선수들이 당시 대표팀 주축 세대로 거듭나는 중이었고, 이들을 U-20 시절부터 이끌어온 홍명보 감독을 선임해 시너지를 노렸지만, 평가전에서의 연이은 부진과 나아지지 않는 경기력, 거기에 한없이 좁은 선수 풀을 스스로 자초하며 일명 의리 축구라는 불명예만 뒤집어 쓰고 만 대표팀이다.One team, One spirit, One goal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
우리나라 A급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인데,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보다 밑에 있다. 잘 하지만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와, 수준은 떨어져도 경기에 나가고 있는 선수가 있을 때 선수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 기자 회견 현장에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라는 본인이 세운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변명.[5]
홍명보 감독의 사퇴 기자 회견 현장에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라는 본인이 세운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변명.[5]
이후 홍명보 감독은 한동안 감독직이 아닌 대한축구협회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는 등 현장과 멀어졌다가 2021년 울산 현대의 감독직으로 뒤늦게나마 현장에 복귀해 명예 회복에 성공한다. 그리고 약 사퇴한지 10년 뒤..
조광래호에 이어 대한민국 축구 암흑기를 대표하는 시기의 대표팀이다.
3. 선임 과정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6002d>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임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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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대 최강희 |
→ |
제70대 홍명보 |
→ |
제71대 올리 슈틸리케 |
결국 우여곡절 끝에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고, 이후 축구협회는 홍명보, 김호곤, 셰놀 귀네슈와 마르셀로 비엘사로 추정되는 4인을 본선 최종 후보 운운하며 언론플레이를 시도했으나, 구체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다. 홍명보와 김호곤은 국대 감독을 맡기에는 성과가 부족하고, 외국인 감독들은 후술하겠지만 재정 압박으로 선임이 어려웠음을 고려해 볼 때, 아마 이 언플의 목적은 홍명보를 감독으로 앉히기 위함이 아니라 최강희 감독 연임이 진짜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처음 공언한 것처럼 월드컵 본선 진출 시키자마자 스스로 물러났다. 만약 호성적과 좋은 경기력으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본선에 진출했다면 축협에서는 찬양성 언플과 간청(?)으로 본선까지 맡기려 했겠으나, 당시 최강희호의 경기력도 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여 여론이 안 좋아서 설사 축협이 유임을 시키고 싶어도 불가능한 분위기였다.[7]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이영미 기자의 단독 기사에서 홍명보의 감독 내정 이야기가 나왔고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결국 6월 24일 홍명보의 월드컵 본선 감독 내정이 공표되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고, 현실적으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엉망진창이 된 대표팀을 다 잡고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는 일은 홍명보가 아니라 누가 와도 불가능한 임무로 보이기에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당장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8] 결국 축구협회는 기어이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다만, 축구협회의 재정 문제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반대하는 시각이 존재하기는 했다. 협회의 주요 수입 중 하나였던 토토 수익금이 정부 정책 변화로 반토막이 나면서[9] 안 그래도 예산이 빡빡해졌으므로 명장 선임은 불가능하다. 당장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만 해도 연봉이 250만 달러다. 사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조차 커리어를 망치고 실업자 신세일 때 헐값에 낚아 채온 것일 뿐, 대한축구협회 예산으로 지불 가능한 연봉은 100만 달러 정도가 한계다. 예산을 무시하고 영입했을 경우 다른 부분에서 당겨쓸 수밖에 없는데, 그만한 자금을 뽑아낼 수 있는 건 유소년 축구 예산 정도다. 다시 말해 당장 1년 후를 위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모두 내다버리는 선택이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계약 기간만 따지면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즉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거쳐서 2015 AFC 아시안컵 호주까지 맡게 될 예정이었다. 이 계약 기간은 홍명보 자신이 요청한 것이라 밝혔다. 축구협회는 장기 계약을 제안했지만, 장기 계약을 하면 자신이 나태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축협은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의 악몽을 보고도 바로 모가지 날리던 기존 행보와는 다르게 홍명보의 계약 기간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똑같이 현역 시절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으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무쌍난무를 보여줬던 차범근 전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0:5로 대패하고 바로 해임되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인데, 차붐은 현역 은퇴 이후에는 한국 축구계 기준으로 약간 아웃사이더끼가 있었던 레전드였지만, 홍명보는 한국에서 모든 엘리트 코스를 다 거치고 올라온 축협과 한국 축구의 적장자라서 감싸고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으로서 홍명보가 내건 모토는 'One Spirit, One Team, One Goal'.
역대 성적을 보면 거스 히딩크 이후 역대 한국 국대 감독 중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이는 졸장이라 미친 듯이 까이던 조 본프레레, 경기장에서 야유가 터져나오던 핌 베어벡 등보다도 못하고, 허정무나 조광래, 최강희는 홍명보와 비교하면 희대의 명장으로 보일 정도이다. 허정무 이후의 국대 감독들이 팀의 장점을 살리기는 커녕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 및 포지션 파괴, 엉성한 전술[10] 등을 일삼으며 국대를 퇴보시킨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11]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나쁜 성적인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전술적인 시도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며, 경기 감각이 없다시피한 박주영을 강한 의지로 무리하게 기용했으며 이미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을 복귀시키기 위한 언플을 여러차례 시도했다.
월드컵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선수 기용 및 전술에 대한 기사보다도 박주영, 박지성에 대한 기사가 훨씬 더 많았음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선수 시절의 업적, 특히 월드컵 4강의 주역이라는 점으로 인한 호의적인 시선이 매우 많이 존재했기 때문에, 홍명보에 대한 비판 자체를 일절 거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존재했다.[12] 언론 또한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난에 가까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매우 호의적이고 희망적인 관측만을 반복했다. 쉽게 말하면 2002년 월드컵 이후 역대 최악의 전력을 가진 잉여 국대와 국대 잉여화의 장본인을 상대로 과분한 옹호를 해줬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격려를 해도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6월 24일 SBS 8 뉴스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무승 이유 중 사령탑의 고집 때문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박주영과 정성룡의 명예도 최악으로 떨어졌으며, 현재는 박주영은 어느 정도 명예는 회복하는 듯 하지만 정성룡은 여전히 비난을 받고 있다.
4. 코칭스태프 명단
감독 | 수석 코치 | 코치 | 골키퍼 코치 |
홍명보 | 김태영 | 박건하 | 김봉수 |
피지컬 코치 | 전력 분석관 | ||
이케다 세이고 |
안톤 두 샤트니에 |
<rowcolor=#f2013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호 1기 / 코칭스태프 |
|||
<colcolor=#fff><rowcolor=#ffffff> 직책 | 이름 | 국적 | 생년월일 |
<colbgcolor=#0054a6> 감독 |
홍명보 HONG Myungbo
|
1969년 2월 12일 (45세) | |
수석 코치 |
김태영 KIM Taeyoung
|
1970년 11월 8일 (43세) | |
코치 |
박건하 PARK Kunha
|
1971년 7월 25일 (42세) | |
골키퍼 코치 |
김봉수 KIM Bongsoo
|
1970년 12월 4일 (43세) | |
피지컬 코치 |
이케다 세이고 IKEDA Seigo
|
1960년 12월 16일 (53세) | |
전력 분석관 |
안톤 두 샤트니에 Antoon DU CHATINIER
|
1958년 1월 13일 (56세) | |
홍명보 감독 자진 사퇴 시점 (2014년 7월 10일) 기준 |
5. 활동
5.1. 2013년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성인 1기)/201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5.2. 2014년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성인 1기)/201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고하십시오.
6. 재신임과 자진 사퇴
6.1. 재신임 결정
대한축구협회는 원칙론에 따라 홍명보 감독 유임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홍명보의 퇴진은 자진 사퇴가 아닌 방법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아시안컵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아 새로운 감독으로 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 같은 아시안컵에 출장하는 일본과 이란이 모두 감독을 교체한다는 사실과 4년 전 조광래가 월드컵 후 6개월 사이에 팀 컬러까지 대대적으로 바꾸면서도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4강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감독이 꾸준히 대표팀을 이끌어 틀이 잡혀 있던 그때랑 4년 간 3명의 감독이 거쳐갔고 이제 감독이 된지 1년을 갓 넘긴 홍명보호를 일본, 이란, 조광래호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당시 허정무 감독은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도 성공하고 대표팀 사기도 올라와 있었다.물론 전방위적으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홍명보를 계속 쓰더라도 문제가 있다. 2007년 9월 19일, 일본과의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3위 결정전(승부차기 6:5 승)에서 퇴장당한 홍명보 당시 코치에게 AFC가 8경기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확정하였는데, 이 징계는 AFC가 주관하는 아시안컵 예선·본선과 AFC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적용되므로 홍명보는 아시안컵 본선 첫 2경기에서 감독석에 앉을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7월 3일, 홍명보 감독의 거취를 결정하여 발표하기로 했다. 홍명보의 유임을 공식화하려는 요식행위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아침 뜬금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7월 3일, 축구협회 허정무 전 부회장의 기자 회견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유임이 확정되었다. 홍명보가 사퇴를 표명했으나 그마저도 반려했다고 했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성적 부진으로 조별리그 중에 조건없이 바로 해고시켰던 차범근과는 정반대로 똑같이 외국에서 열렸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적부진을 보였던 홍명보는 계속 남게 되었던 것. 이에 격분한 차두리가 트위터에 아버지 차범근을 대신하여 " 1998년에는 왜...?"라는 트윗을 남겼는데, 여기. 사실상 본인 아버지는 가차없이 자르고 똑같이 부진했던 홍명보에 대해서는 그대로 남으라는 것에 대한 축협을 향한 돌직구적인 성격이 짙었다. 즉, 1무 2패라는 성적에 있어서 아버지나 홍 감독이나 똑같은데 내 아버지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모가지를 잘랐더니 오히려 홍명보에 대해서는 달래는 식으로 그대로 남아라는 식이었으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자기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던 축협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추정된다.[13]
축협은 1998년 당시 "차범근 전 감독의 전술은 이미 실패작 수준이었고 선수 기용도 도저히 이해 못할 고집스런 수준이었다."라는 이유로 차범근을 중도 경질했다. 정작 저 당시에는 이번 홍명보호와 비교했을 때 축구 강국들과의 객관적인 전력차도 컸고, 조편성은 그야말로 죽음의 조 그 자체. 평가전 황선홍의 부상, 첫 경기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과 같은 불운도 있었다. 반면 홍명보호는 조별리그부터가 역대급 꿀조였는데다가 러시아 골키퍼가 손에 기름을 묻히고, 벨기에가 주전 체력 안배하려다 퇴장까지 당했는데도 전술과 엔트리 구성, 용병술 때문에 이기거나 비길 가능성이 있던 경기를 싹 말아먹었다.[14] 월드컵 주장이자 선배였던 홍명보에 대한 감정과 별도로 차두리가 협회의 전근대적 행정과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로 홍명보 감독에 대한 거취가 논란이 되었지만, 결국 축구협회는 애당초 계약한대로 아시안컵까지 홍명보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유임 직후에 알려지기로는 2007년 아시안컵 때 코치로 받았던 8경기 징계가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대한축구협회의 답변에 따르면 징계가 대회 종료 후 3경기로 경감되어 현재 출장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6.2. 자진 사퇴
유임이 결정된 이후 홍명보가 최종 엔트리 발표 전후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위치한 토지를 매입하러 돌아다녔다는 내용의 기사가 이투데이의 보도 #를 통해 나왔고, 이후 SBS 뉴스토리가 보도를 이어나가자 홍명보의 입지가 위태롭게 되었다.7월 10일, 오전 10시에 거취 발표를 하겠다고 알렸는데, 7월 9일부터 MBN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홍명보가 사퇴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사(MBN), 기사(스포츠서울). 결국 홍명보는 기자 회견을 통해 자진 사퇴를 선언한다. 공식 발표.
YTN에서는 사퇴 기자 회견을 생중계하면서 덧붙여 벨기에전 종료 후 현지 회식 동영상을 일간스포츠로부터 받아서 방영하였는데, 폭탄주를 말아먹고 여자를 끼고 노래를 하는 모습들이 모자이크 처리로 방송이 되었다. 1무 2패로 예선탈락했을 때 그들은 쳐진 분위기를 띄운다고 브라질 현지에서 폭탄주를 말아먹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15]
이 회식을 취재한 김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사퇴 기자 회견 전날에 축협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기사를 올리겠다고.[16] 그런데 그날 오후 8시에 갑자기 축협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 내용은 "내일 홍 감독의 사퇴 기자 회견이 열릴 것이다." 실제로 당일 오후 8, 9시경부터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홍명보', '축협 기자 회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즉 홍명보와 축협은 계약 기간 끝까지 버텨서 아시안컵에서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찾으려 했으나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과 결정타로 폭탄주 회식 기사까지 더해질까 봐 전날에야 부랴부랴 사퇴를 결정했다는 것이 된다.
기자 회견에서 홍명보는 "비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사퇴하지 않았다", " 충무공의 정신을 가지고 임했다."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발언을 날림으로써 그동안에 그나마 홍명보를 지지해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게 되었다. 다음 발언으로 논란과 연속이었던 행보를 역시 또다른 어그로로 마침표 찍게 된다. "국내선수들과 전지훈련을 했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비교를 했다.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한다. 결국에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분명 실력차는 존재하고 앞으로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때 선수들에 대해서 등급별로 나누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단 참조.
엔트리 논란에 대해 "월드컵을 나가는 감독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데려가는 감독은 없다. 철저하게 검증을 했고 냉정하게 판단을 했다. 100% 자신 있게 '엔트으리'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 좋지 않게 비춰졌던 것은 제 실수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논란이 된 토지 구입에 대해서도 "땅 문제는 개인적인 것,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라며 입을 털었는데 이에 대해 영국 축구 칼럼리스트인 존 듀어든은 "자신에 대한 비난이 사생활까지 퍼져 나가자 사퇴한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17] 다른 언론들 또한 여론이 가라 앉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언론이 사생활 문제를 끄집어내자 그제서야 사퇴를 한 것이라고 깠다. 부동산 구입 건에 대한 홍명보의 해명은 비유하자면 숙제도 안하고 어딜 놀러다니느냐는 꾸지람에 아들이 '어머니 저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격인데, 뭘 잘못 알아들은 건지 변명이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허정무 전 부회장도 사퇴를 발표하였다. 언론에선 황보관도 사퇴했다고 발표했으나 곧 정정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 사퇴 이후에 일명 2012 런던 올림픽 출신의 선수들[18]이 SNS에서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면서 파벌놀이 관련 논란은 가속화. #
7. 이후
7.1. 해임의 여파
홍명보 감독은 사퇴했지만, 실력있는 외국인 감독이 온다고 한들 여러가지로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아 아시안컵 역시 낙관하기 힘들다.뭔가 변화를 꾀하려고 해도 새 선수들을 뽑고 새 전술을 실험하기엔 7개월 남은 기간은 너무 짧다. 아시안컵까지 많아봤자 두세 차례 평가전을 치르는 게 다라고 보면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홍명보 감독을 해임하고 새로운 감독을 찾아도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 오카다 다케시가 월드컵 끝난 후 사임하여 맡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1년 만에 일본을 다시 AFC 아시안컵 우승팀으로 만든 사례도 있지만, 이는 오카다 아래에서 오랫동안 팀이 만들어진 것을 바탕으로 차케로니가 우승시킨 것이다. 2014년의 한국 대표팀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다고 브라질 월드컵 전술과 멤버들 그대로 가자니, 경기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고민이 있다. 브라질 월드컵은 전술의 실패 이전에 전술에 맞춰 뽑은 선수들이 전혀 전술에 맞게 움직이지 못해서 망한 것인데, 남은 7개월동안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야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폼이 바닥까지 떨어진 박주영, 지동원 등이 2년 전 런던 올림픽 때 몸상태로 돌아가서 주전경쟁을 이겨내야 하고,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변해버린 구자철, 김보경 등이 예전 스타일로 회귀해야 한다. 이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시안컵을 버리자는 얘기도 들려오는데, 좀만 깊게 생각하면 이것도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부터 대회 규정이 크게 바뀐다. 참가국이 현행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된다. 즉, 대한민국의 오랜 숙원인 아시안컵 우승을 향한 여정이 더욱 험난해지는만큼 이번 대회를 멋대로 포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2019년 대회부터는 아예 아시안컵 예선까지 월드컵 예선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숙원 이런 문제가 아니라 이번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다음에 여러가지로 어려워질 수 있다.
일단 아시안컵 전에 확정된 A매치는 11월의 요르단 원정이지만, 일본 언론에서 9월 한일전 추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축구협회는 사전에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만약 한일전이 성사되고 여기서 패하면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특히 국민정서상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일전에서 패한다면 축협은 또 국민들에게 욕만 무진장 먹을 것이다.
헬게이트를 두려워했는지 축구협회는 9월 한일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9월 A매치는 9월 5일 베네수엘라, 9월 9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이 확정되었다.
7.2. 차기 감독 선임
자세한 내용은 슈틸리케호/선임 과정 문서 참고하십시오.8. 논란과 평가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성인 1기)/논란과 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9. 총평
이 흑역사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막장 행정 능력을 보여준 축구협회, 의리의 엔트리라고 비난과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강경했던 잘못된 선수 기용, 지나치게 짧은 준비 기간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일부 옹호자들은 최강희호에서 이미 경기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최강희호의 잘못으로 먼저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최강희호의 특수한 상황은 홍명보호에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홍명보호가 더 상황이 안 좋다. 최강희호는 조광래호부터 시작된 해외파-국내파의 파벌로 갈라진 한국 국가대표팀을 경쟁 체제로 돌리는 원칙을 세우고 봉합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예선을 통과했다고 최강희를 옹호한다면, 그거야 말로 잘못된 말이다. 이에 조광래호로부터 해외파 우대에 젖어 불만을 가지고 팀이 흔들리고 선수들 장악에 실패했다. 그리고 선수가 감독을 뒷담화해서 팀 분위기가 개판이기라도 했지, 홍명보호에 어디 그런 게 있었는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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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암흑기의 절정 |
2002년부터 2002 월드컵 4위, 2006 월드컵 첫 원정 1승 및 대회 준우승 팀 프랑스를 상대로 무승부 승점 1점(월드컵 17위), 2010 월드컵 첫 원정 2라운드 16강 15위, 2018 월드컵 피파 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월드컵 우승 감독 독일 상대 2:0 승리(월드컵 19위), 2022 월드컵 16강 진출(16위) 등 숱한 업적을 남긴 우리나라에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역대 최악의 시련이며 흑역사이다.
사실 홍명보 감독도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3위) 때까지는 분위기와 평가가 나름 좋았다. 물론 올림픽이랑 월드컵이랑 레벨이 다르지만 홍명보는 런던올림픽 이후로 선수파악도 없었고 감독경력이 전혀 없었다. 이미 월드컵 전 A매치서부터 점점 불안감을 노출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들어서서는 위의 모든 문제점들이 합해진 모습으로 1998년 이전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호는 끝까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부지 매입 논란이야 월드컵 시작 이전에 약속이 잡혀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곤 하지만, 대표팀의 음주 회식 논란, 이구아수 폭포 파벌[21] 등은 옹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사퇴하게 되었고, 사퇴 기자 회견에서마저도 좋지 못한 인터뷰 자세를 보이면서 홍명보호는 완전히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더군다나 홍명보 감독 사퇴 이후 감독 선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신태용 임시 감독으로 펼쳐진 베네수엘라와의 A매치에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때 선발하지 않았던 이명주, 이동국의 골에 힘입어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그 능력이 더 한심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여기에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비록 0:1로 패하기는 했지만 이게 브라질 월드컵 때 처참하게 박살난 팀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더더욱 홍명보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졌다.[22]
그리고 그가 그렇게 비하했던 B급 리그라고 불렸던 K리그, 그리고 그 2부인 K리그 챌린지에서 활동하는 임창우[23]와, 끝내 자신이 외면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김승대, 전남 드래곤즈의 이종호, 울산 현대의 김신욱 같은 K리그 선수들의 활약으로 28년 만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홍명보의 명예는 더더욱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가 외면했던 선수들이 스스로 한국 축구의 상처를 치유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의 상당수가 현재 해외 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또한 슈틸리케호는 2015년 1월 17일 부로 신태용 대행전을 제외하고도 6승을 달성함에 따라 홍명보호 1년의 승리 기록을 3개월여만에 그냥 뛰어넘었다.
그리고 1월 31일 기준으로 슈틸리케호는 A매치 11전 8승 3패에, 6연승에 아시안컵 결승 진출에 치열한 명승부 끝에 준우승이라는 뛰어난 결과를 기록하고 있어, 전임 감독인 홍명보는 자기가 가진 전력보다 더 약화된 데다 조직까지 완성되지 않은[24] 팀을 이끌어야 했던 슈틸리케와 비교당하며 커뮤니티에서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 1년의 재임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패배를 당하고 겨우 5승을 거뒀던 홍명보호의 승수를 신태용 감독대행시기를 빼도 4개월만에, 그것도 연승으로 추월해 버렸다. 게다가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이라는 훌륭한 공격수 자원까지 발굴해내며 시간과 선수 부족을 핑계로 삼던 홍명보를 부관참시했다. 만일 홍명보가 감독직을 유지하여 2015년 아시안컵에 참가하였다면 결승 진출이라는 큰 성과는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거나, 만에 하나 결승에 진출했다고 쳐도 그 과정이 좋다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25]
결과적으로, 홍명보호는 한국 축구에 길이 남을 흑역사와 커다란 실책 덩어리를 잔뜩 만들어 놓았다. 다행인 것은 오히려 이 덕분에 해이해졌던 한국 축구계가 부활할 방향과 기회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 만큼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시기의 최악의 실책들을 극복한다면 한국 축구계는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선임된 울리 슈틸리케는 기대를 져 버리고 오히려 홍명보보다 더한 실책을 저지르고 경질되는데...
초창기 슈틸리케호는 사실상 신태용 수석 코치가[26] 초창기 새로운 자원을 발굴, 기용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성찰로 인하여 아시안컵에서 전승준을 달성하고 2진급으로 참여한 동아시안컵에서도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월드컵 예선에서도 무실점 전승으로 순항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가능성과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하게 되었으나, 2016년~2017년 오히려 월드컵 32개국 본선 진출 실패 위기까지 몰아가버리면서[27] 홍명보호보다 더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고 경질당했다. 울리 슈틸리케의 행적에 대해서는 슈틸리케호 문서에서 참조 할 것.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흑역사를 극복한 게 2018년 신태용이었고, 현임인 파울루 벤투가 보다 체계적으로 다듬으면서 지금은 경기력이 매우 좋아졌다.
한편, 2016년에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출신 둥가가 홍명보와 똑같은 행보를 보이다가 해임당했고, 2018년에 들어서는 요아힘 뢰프가 홍명보를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외모도 정말 비슷해서 더더욱 그렇다. 결국 독일은 러시아 월드컵에서 멕시코전 0:1 패, 스웨덴전 2:1 승, 대한민국전 0:2 패로 조 최하위 22등으로 탈락하는 망신을 당하고 감독이 바뀐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16강 문턱에서 일본에게 패전하고 스페인에게 비기고 코스타리카를 이기긴 했으나 성과 없이 독일팀은 17위에서 탈락했으니 8년이나 흑역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홍명보는 장기적으로 팀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어서 축협의 책임이 더 크다는 변이 있다. 중국 프로 리그에서도 실패하면서 이 의견에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많았으나, 울산 현대 감독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하면서 현재는 축협의 책임이란 의견이 대세다.
홍명보호가 반면교사가 되어 2000년대부터 2014년까지 정말 시끄러웠던 해외파/국내파 논란은 끝이 났다. 어찌 됐건 원팀으로 기능하지 않는 팀은 성공할 수 없으며, 특히 한국은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축구 팬들의 대국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렇게까지 강하게 맞아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쨌건 강하게 얻어맞은 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반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선수의 클래스보다 현재의 폼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도 남겼다.
10. 경기 결과
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28] |
<rowcolor=#ffffff> 19 | 5 | 4 | 10 | 18 | 28 | 26.3% |
일시 / 장소 | 상대국 | 결과 | 대회 | 득점 | 비고 |
2013년 | |||||
2013년
7월 20일 ( 서울) |
호주 |
0 : 0 무 |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 ||
2013년
7월 24일 ( 화성) |
중국 |
0 : 0 무 |
|||
2013년
7월 28일 ( 서울(잠실)) |
일본 |
1 : 2 패 |
윤일록 |
2무 1패 대회 3위 |
|
2013년
8월 14일 ( 수원) |
페루 |
0 : 0 무 |
친선 경기 | ||
2013년
9월 6일 ( 인천) |
아이티 |
4 : 1 승 |
손흥민(2골) 이근호, 구자철 |
||
2013년
9월 10일 ( 전주) |
크로아티아 |
1 : 2 패 |
이근호 | ||
2013년
10월 12일 ( 서울) |
브라질 |
0 : 2 패 |
|||
2013년
10월 15일 ( 천안) |
말리 |
3 : 1 승 |
구자철,
손흥민 김보경 |
||
2013년
11월 15일 ( 서울) |
스위스 |
2 : 1 승 |
홍정호, 이청용 | ||
2013년
11월 19일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러시아 |
1 : 2 패 |
김신욱 | ||
2014년 | |||||
2014년
1월 25일 ( 미국, 로스앤젤레스) |
코스타리카 |
1 : 0 승 |
친선 경기 | 김신욱 | |
2014년
1월 29일 (미국, 샌안토니오) |
멕시코 |
0 : 4 패 |
|||
2014년
2월 1일 (미국, 카슨) |
미국 |
0 : 2 패 |
|||
2014년
3월 5일 ( 그리스, 아테네) |
그리스 |
2 : 0 승 |
박주영, 손흥민 | ||
2014년
5월 28일 ( 서울) |
튀니지 |
0 : 1 패 |
|||
2014년
6월 9일 (미국, 마이애미) |
가나 |
0 : 4 패 |
|||
2014년
6월 17일 (브라질, 쿠이아바) |
러시아 |
1 : 1 무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2강 본선 조별리그 H조 |
이근호 | |
2014년
6월 22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
알제리 |
2 : 4 패 |
손흥민, 구자철 | 알제리 쇼크 | |
2014년
6월 26일 (브라질, 상파울루) |
벨기에 |
0 : 1 패 |
1무 2패 월드컵 27위 |
[기존]
당초 계약 기간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끝나고
2014년
7월 31일까지였으나,
2014년
7월 3일에 성적 부진에도 유임이 결정되어
2015 AFC 아시안컵 호주가 끝나는
2015년
1월 31일까지 계약 기간이 연장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의 토지를 구매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되면서 결국 자진 사퇴했다.
기사(스포츠조선)
기사(헤럴드경제)
[2]
계약 만료일 기준.
[3]
4개 진출팀 중 3위 기록.
[4]
32개 진출팀 중 27위 기록.
[5]
네이버 기사 댓글에는 역시나 '솔직히 사실 아니냐.'는 투의 허언이 많은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되면서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물론 유럽 (주요) 리그 수준이 국내 K리그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선수 개개인의 역량과는 다른 얘기이다. 해외파가 처음부터 해외파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유럽 구단에 소속되면 이름값은 높아지겠으나 실력이 한순간에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차근차근 실력과 경험을 쌓고 두각을 보여 K리그, 나아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활약상을 보여 세계의 눈도장을 받고 유럽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 국내외의 인재들을 분석하고 선발해서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를 부여하여 짧게는 월드컵에서의 호성적을 받고, 길게는 한국 선수들에게 명문 구단과 계약하고 빅리그에 진출하여 대성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의 업무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물론 유럽 구단의 러브콜을 받아 유럽에 진출한 선수가 진출 당시에는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고 활약을 보여서 간 것은 사실이나, 유럽 진출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경기의 폼을 잃은 벤치워머들이 현재 K리그 주전 선수들보다 언제나 클래스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논리라면 해외파 선수, 특히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23명 이상이 되면 월드컵 엔트리에 K리그 선수를 하나도 뽑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홍명보와 반대되는 훌륭한 예가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이다. 그는 K리그에서 활동하던
부산 아이콘스의 수비수
송종국을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하여 세계적으로 이름난 선수였던
루이스 피구를 지워버렸고, 이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송종국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게 되며, 불발되었지만
아스날 FC에서도 제안을 받을 정도가 된다. 이후
2020년
12월 홍명보가 직전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사람들은 이 발언을 재조명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홍명보 감독님, 'B급 발언' 해명하셨나요?
[6]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이것이 과연 간청이었을지, 그 간청을 버텨낼 사람이 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7]
그래서 아시아 예선 마지막 3연전을
개판으로 치른 게 오죽하면 최강희가 일부러 그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물론 결론을 말하자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때문에 축구인 인생을 망칠 뻔 했다.
관련 기사 참고.
[8]
그래도 딕 아드보카트는 원정 첫 승,
지네딘 지단이 있던
프랑스와 비기고
승점을 무려 4점이나 따냈다. 절대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9]
그동안 축협에 주던 해외 축구 토토 수익금을 비인기 종목으로 돌려버렸다.
[10]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서 무전술이라는 말을 쓰지만 엉성한 전술이라면 몰라도 무전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줄알았지만 2024년에
누군가 와서 보여주었다.
[11]
그나마
조광래호의 경우에는 월드컵이 3년 남은 만큼 여러 가지 전술적인 시도를 하다가 삿포로와 레바논에서의 대참사로 인한 여론 악화로 인해
경질된 사례고,
최강희호는 월드컵 본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아시아 예선 통과만을 목표로 삼아서 해외파의 항명 파동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 자체에는
성공했다. 반면 홍명보호는 단기간에 맞춰서 당장 뽑아 갈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뽑은 것도 아니고, 전술적 시도 자체도
박주영 같이 소속팀에서 매우 부진한 해외파들을 기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퇴보 운운하는 것은 전임 감독 둘에게 실례에 가까운 행위라고까지 볼 수 있다.
[12]
사실 무조건적으로 홍명보를 옹호하는 빠들도 많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정 축구 팬이라기보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만 축구를 보는 "조건부 축구 팬"이란 한국 축구판의 특성도 작용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평상시 대표팀이나 선수들에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때만 관심을 갖는데, 홍명보가
듣보잡인 (어디까지나 이들 시점에서)
2013 EAFF 동아시안컵에서 부진한 것보다는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대업적을 거둔 것, 그리고 과거 선수로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 팀을 잘 이끈 것에만 집중을 한 것. 게다가 이런 조건부 축구 팬들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큰 대회에서 잘하면 됐지!"라는 심정으로 응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진을 하며 이들도 다 등을 돌렸다.
[13]
당시
10대였던 차두리는 자신의 영웅이었으며 전 국민의 영웅이었던 아버지 차범근이 월드컵의 결과로 인해 한 순간에 대역죄인 취급받고
중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것이 굉장히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고 한 다큐멘터리에서 회고한 적이 있다. 실제로 차두리는 언론인을 꿈꾸고 있었으나, 언론이 아버지에게 매장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학을 떼고 축구선수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14]
기술위의 분석력 여부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진위는 어찌됐건 기술위 측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조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긴 하다.
[15]
근데 이건 원래 비밀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스케줄에 있던 것이다. 국민들을 속였다는 식으로
기레기들이 뻥 튀긴 면도 무시할 수 없다.
[16]
축협의 허락을 맡기 위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통보. "이러이러한 기사를 내일 내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와 같은 것.
[17]
평소에 최강희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고, 박주영이나 홍명보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
[18]
홍정호는 런던 올림픽에서 십자인대 부상으로 출전하진 못했으나, 그 전부터 올림픽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다.
[19]
1992년 AFC 아시안컵 예선 탈락,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8강,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3위,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8강, 2007년 3위, 2011년 3위.
[20]
최강희가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시간적으로 볼 때 기성용의
SNS 파벌 놀이는 이미 최강희호 최종 예선 첫 경기부터 시작했다. 기성용은 아주 내가 못하기만을 바라시겠네라며 희한한 피해 의식을 표출했으나, 최강희는 기성용이 파벌을 짓고 뒷담화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꾸준히 출장시켰다. 기성용은 시작부터 최강희에게 불만을 가지고 시작했으며, 이미 일종의 파벌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불씨는 조광래가 만들어 놓았고, 최강희가 수습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첫 경기 교체 출전시켰다고 반감을 가지고 대드는 선수를 다스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대부분의 팀에서는 축출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21]
어디까지나 이구아수 폭포 구경은 문제로 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명소를 구경 가는 것을 남들이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게다가 숙소에서 폭포와 상당히 거리가 가까웠다고 한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이구아수 폭포를 구경간 사람들이 대부분 비런던파였기 때문. 당시
울산 현대 소속들인
김승규,
김신욱,
이근호(당시에는
군인이라
상주 임대 중) 등을 볼 수 있다.
[22]
실제로
신태용 전 코치는 베네수엘라 전에서 승리 후 "
내가 알제리전 지휘했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며 홍명보를 간접적으로
디스했다. 또한 이 당시의 베네수엘라라던가 우루과이를 보면,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비교해서 결코 못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9월 평가전처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를 치렀으면 훨씬 선전했을 것이다. 그나마도 후반 종료 직전 심판이 선언한 PK도 우루과이 선수들이 하도 항의해서 그냥 넘어가 버린 거였다.
[23]
게다가 임창우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대회 첫 골과 결승전 결승골을 넣어 아시안 게임 우승에 매우 큰 공을 세웠다.
[24]
이게
이청용 결장과 더불어 결승전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25]
그런데 2019년 현재 본다면 슈틸리케가 결승까지 간 것도 사실 탄탄한 수비력을 가지고 답답한 공격력에도 1:0 등의 신승으로 올라가
늪 축구라는 말을 들었다.
[26]
이게 틀린 말이 아닌게, 슈틸리케호가 성적이 좋았을 때는 신태용이 수석 코치를 하던 시절이다. 2016년 신태용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A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슈틸리케호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27]
2017년 중국전에서 지고, 시리아전을 간신히 이겼으며, 카타르전에서 패배하면서 경질된다. 그리고 이 당시 심지어 홍명보호를 능가할 정도로 대표팀이 망가져 있었다. 그 참상은
슈틸리케호/2017년 참고.
[28]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
[29]
이후 근 4년 동안 랭킹이 지지부진했다가
신태용호의
카잔의 기적과
벤투호의 4년간의 꾸준한 성적 덕분에 다시 20위권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