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19 20:23:58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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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Second Ragnarök Operation · 第2次ラグナロック作戦
날짜
우주력 799년, 신제국력 1년 표준력 11월 10일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6월 7일
장소
자유행성동맹령, 엘 파실 독립정부 이제르론 회랑
교전 당사자 파일:lion02_s.png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파일:lion02_s.png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자유행성동맹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엘 파실 독립정부
지휘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오스카 폰 로이엔탈
볼프강 미터마이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나이트하르트 뮐러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코르넬리우스 루츠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알렉산더 바르트하우저
폴커 악셀 폰 부로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롤프 오토 브라우히치
그로테볼
바겐자일
쿨리히
마이포허
오토 뵐러
자유행성동맹
조안 레벨로
록웰
알렉산드르 뷰코크
춘우 지엔
랄프 칼센
보포트
바운스골 †
데슈
엘 파실 독립정부
양 웬리
더스티 아텐보로
에드윈 피셔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마리노
발터 폰 쇤코프
병력 은하제국군
함선 192,410척, 장병 17,911,100명 이상[1]
자유행성동맹군
함선 20,000~22,000척, 장병 2,300,000~2,500,000명
엘 파실 혁명군
함선 28,840척, 장병 2,547,400명
피해 규모 함선 39,110척 이상 격침, 장병 3,791,100명 이상 전사
이제르론 요새 함락
자유행성동맹군 병력 80% 손실
엘 파실 혁명군 불명
결과
자유행성동맹 엘 파실 독립정부 멸망, 이제르론 공화정부 수립
은하제국 노이에란트 총독부 수립

1. 소개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제국군 출병4.2. 동맹의 대응4.3. 양 웬리의 선택4.4. 지구교의 부활4.5. 양 웬리의 준동과 동맹군의 최후4.6. 자유행성동맹의 멸망4.7. 회랑 전투4.8. 양 웬리의 죽음
5. 둘러보기
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지구교 본거지 토벌 작전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
라그나뢰크 작전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1. 소개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7권 <노도편> 1장 ~ 8권 <난리편> 7장
    • 은하영웅전설 OVA 67~82화
  • 시기 : 우주력 799년, 신제국력 1년 표준력 11월 10일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6월 7일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은하제국이 자유행성동맹을 완전 장악하기 위해 벌인 군사작전이다. 이름의 유래는 1차와 마찬가지로 라그나로크이며, 대친정(大親征)이라고도 불린다.

이 작전으로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하여 제국의 신영토(노이에란트)로 편입되었으며, 지구교도의 테러로 엘 파실 독립정부가 해체된다. 이로써 160년간의 기나긴 제국-동맹 전쟁은 종결되었다.

2. 주요 인물

3. 배경

우주력 799년 5월 체결된 바라트 화약으로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은하제국은 바라트 화약에 따라 고등판무관으로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을 파견하였고, 동맹정부는 제국으로 망명한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을 대신하여 조안 레벨로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재정위원장을 의장 대행으로 추대하였다.

레벨로 의장은 동맹의 독립과 존속을 최우선으로 삼고 반제국 활동을 탄압하는 '반평화활동방지법' 제정과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동맹헌장 제7조 유기한 정지, 재정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군인, 공무원의 급료 및 연금을 삭감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런데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두 차례나 양 웬리에게 패해 열등감에 빠진 렌넨캄프 판무관이 양 웬리의 체포를 '권고'하였고, 동맹의 존속을 위해 양 웬리를 희생하기로 결정한 레벨로의장은 반평화활동방지법 위반을 명분으로 양 웬리를 구속하였다.

그러나 양 웬리의 구속은 양의 옛 부하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로젠리터 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레벨로 의장과 렌넨캄프 판무관을 납치하였다. 렌넨캄프 판무관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고, 양 웬리는 동맹정부의 협조 아래 동료들과 함께 순항함 레다 II호를 타고 하이네센을 탈출하였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불의의 사태로 렌넨캄프가 사망하자 조안 레벨로 의장은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언론의 질타를 무시한 채 국민들에게 진실을 숨기고, 병력을 파견해 우주 어딘가로 숨은 양 웬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은하제국은 렌넨캄프의 사망으로 동맹정부를 공격할 좋은 명분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군사 행동을 벌이지 않았다.

이 시기 은하제국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사태의 책임을 자유행성동맹 정부에 물을 것인가, 아니면 도망친 양 웬리에게 물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적이 자멸하는 꼴을 지켜봐야 하는지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라트 화약을 맺어 전쟁은 끝낸지 불과 4~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 전쟁을 벌이기에는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황제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니 자연스럽게 제국군 장수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죽은 렌넨캄프는 죽음이 공표되지 않고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몇 달이나 계속된 황제의 고민을 끝낸 것은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이었다. 11월에 열린 어전회의에서 비텐펠트는 늘 그렇듯 주전론으로 가득찬 열변을 쏟아내면서 "폐하께서 이제까지 상승불패하실 수 있었던 까닭은 역사를 움직여셨기 때문입니다. 왜 이번에만 수수방관하신 채 역사가 움직이기를 기다리신단 말입니까?"라고 통렬한 한 마디를 날렸고 거기에 반응한 라인하르트는 우주의 통일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구구한 정당성 따위는 고민한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여 즉시 군사행동에 나섰다. 라인하르트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에게 제국군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우르바시에 있는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제독과 함께 현지의 치안을 관리하라고 명령했고, 황제 수석비서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에게 출병 선언문 초고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우주력 799년 11월 10일, 라인하르트는 직접 초광속통신 화면에 나타나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스스로의 잘못을 사죄하는 동시에 바라트 화약의 정신을 짖밟은 동맹 정부를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짐은 스스로 불민했음을, 아울러 제국 정부가 식견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이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며, 유능한 인재를 잃고 우주의 평온을 깬 데 단장,斷腸,의 염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략)
『그러나 동시에 짐은 동맹 정부의 무능함과 불성실함을 간과할 수 없다. 고 렌넨캄프 고등판무관이 양 원수의 체포를 요구하였던 것은 부당했다. 동맹 정부는 그 부당함을 짐에게 호소하여 동맹 최고의 공로자인 양 원수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했어야 하는데도, 강자에게 아첨하기 위해 스스로 규정한 법조차 어겼던 것이다. 게다가 그 책동이 실패하자 보복을 면하기 위해 고등판무관의 신병을 팔아넘길 줄이야!』
(중략)
『한순간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의 공로자도 팔아넘기고, 그 후에는 손바닥을 뒤집어 짐의 대리자를 팔아넘겼다. 공화정 체제의 긍지와 존재의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의가 땅에 떨어진 현실이 이러한 정치 체제의 존속을 방치해놓은 것이다. 바라트 화약의 정신은 이미 더럽혀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실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
(중략)
『양 원수에게 사태의 책임이 조금도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는 피해자이며 자신의 권리를 지켰을 뿐이다. 양 원수가 짐 앞으로 출두한다면 짐은 그와 그의 일당을 후히 우대하리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7권 <노도편>, 김완, 이타카(2011), p.85~86

4. 전개

4.1. 제국군 출병

우주력 799년 11월 10일, 황제의 선전포고와 함께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출동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국군의 진용은 다음과 같았다. 페잔에 잔류하여 군사업무를 수행하기로 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를 제외하면 제국군 주요 장수들이 모두 출동하는 작전이었고, 이만큼 중후한 포진을 완성했으니 동맹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군은 동맹군의 헛된 저항을 가볍게 격파하면서 동맹령 내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동맹령에 돌입한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제일 먼저 조우한 적은 10여척 쯤 되는 동맹군 소함대였다. 비텐펠트는 강대한 적을 상대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들의 접근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적은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이 지나자 다혈질인 비텐펠트는 즉시 적을 섬멸하라고 명령했고 함정 100여 척이 이들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공격 직전 통신이 연결되었다. 이들의 정체는 조안 레벨로 의장이 임명한 특사 윌리엄 오데츠를 호위하는 함대였다. 오데츠는 철군 교섭을 요구했지만 비텐펠트는 이들을 상대했다가는 진격이 느려진다고 생각하여 교섭 권한이 없으니 뒤따르는 미터마이어 원수와 대화하라고 답변한 뒤 구축함 한 척을 차출하여 특사 일행을 호위하라고 명령했다.

퇴짜를 맞은 오데츠는 비텐펠트 보다 미터마이어가 더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길을 안내하는 제국군 구축함을 따라가 사흘 뒤 미터마이어 원수를 만났다. 미터마이어도 비텐펠트의 속셈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기 때문에 기함 베어볼프에서 철군 교섭을 시작하였다. 오데츠는 바라트 화약의 주권보장조항을 근거로 제국군의 철군과 외교를 통한 해결을 요구했지만,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을 비롯한 제국군 장수들은 화약의 정신을 저버리고 렌넨캄프를 살해한 것은 동맹정부라고 맞받아쳤다. 몇 차례 설전이 벌어즌 중 오데츠는 무심코 라인하르트는 모욕하는 발언을 해버렸고, 분노한 장수들에게 사살당할 뻔 했다가 미터마이어 덕에 목숨을 부지했다. 미터마이어는 오데츠의 주장을 논박한 뒤에 철군 요청을 거부했고, 오데츠는 페잔으로 가서 라인하르트를 만나려고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12월 2일, 첫 교전이 일어났다. 미터마이어는 전진 코스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비텐펠트가 무시하고 지나간 동맹군의 조병창 행성 루지아나를 공격했다. 제국군의 공격으로 루지아나의 공장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장관 바울스골 기술중장은 전사했지만, 동맹군이 건조하던 구축함과 순항함의 절반 가량이 살아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데슈 준장의 지휘 아래 병력과 물자를 모으고 50일간 항행하여 엘 파실 혁명군에 합류하였다.

제국군 최선두에서 전진하던 비텐펠트는 동맹군 보포트 준장이 벌인 게릴라전에 의해 진격이 지체되었지만, 마침내 보포트를 근거지째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보포트는 홀몸으로 도주했고 포로가 잡혔는데, 그의 증언으로 죽었다던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가 사실 살아있고 양 웬리가 엘 파실 독립정부에 투신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러자 모두들 죽은 렌넨캄프가 진실을 얻었다고 경탄했다.

4.2. 동맹의 대응

황제의 선전포고가 떨어지자 동맹사회는 극도로 동요하였다. 조안 레벨로 의장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시민들은 싸우자는 사람, 항복하자는 사람, 산간지대로 도망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며 공황에 빠졌으며, 폐쇄된 우주항 게이트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천 단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할 때, 바라트 화약 체결 이후 퇴역한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11월 12일을 기해 현역으로 복귀했다. 그전까지 사령장관 대리를 맡고 있던[2] 춘우 지엔 대장은 뷰코크가 복귀하자 바로 사령장관에서 물러나 총참모장으로 돌아왔다.

복귀한 뷰코크를 보고 레벨로 의장은 "양 웬리와 못 싸우겠다는 사람이 라인하르트가 상대라면 싸우겠다는 말인가?"고 비아냥거렸지만 춘우 지엔 순 수울 등 옛 부하들은 기뻐하였다. 뷰코크는 어른들의 파티라는 이유로 30세 미만은 참전하지 못하도록 하고 폐인이 된 레벨로와 마비된 통합작전본부를 대신해 제국군을 맞을 준비를 했다. 춘우 지엔은 변방에 있어서 양 웬리를 따라가지 못한 에드윈 피셔, 무라이, 표도르 파트리체프에게 함정 5,560척을 양 웬리에게 양도할 테니 상품을 운반해달라고 요구했다. 세 사람은 즉시 수도를 떠나 양 웬리가 있는 엘 파실로 합류하였다.

그렇게 우주함대의 1/5를 양도한 뷰코크와 춘우 지엔은 동맹군 최후의 전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병력은 함정 2만~2만 2천 척, 장병 230만~250만 명이었다. 비록 몰락할대로 몰락한 동맹이었지만 무수한 장병들이 뷰코크를 '동맹의 상징'으로 보고 자진하여 전쟁에 참여했으며, 주력함 자침이 어쩡쩡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전력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10만 척이 넘는 제국군 함대에 비하면 역부족이었고 전쟁을 지휘해야 할 동맹 정부와 통합작전본부는 이미 기능을 잃고 마비되었다. 어쨌든 모든 준비를 마친 뷰코크는 결전장이 될 마르 아데타 성역으로 출격했다.

4.3. 양 웬리의 선택

수도를 탈출한 양 웬리는 부유 보급기지 다얀 칸에서 수백 척에 달하는 '양 비정규함대'와 함께 숨어 있었다. 더스티 아텐보로, 발터 폰 쇤코프 같은 부하들은 양 웬리에게 막 독립을 선언한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하기를 권했지만 양 웬리는 아직 동맹 정부가 자신을 부를 수 있다고 거부했다. 그러나 동맹 정부는 끝까지 양을 부르지 않았고, 그 사이 라인하르트가 전쟁을 선포하여 양 웬리가 복귀할 길을 차단해버렸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활동 자금까지 떨어지자 양 웬리는 차선책으로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했다.

독립정부 수반 프란체스크 롬스키는 양 웬리의 합류가 독립정부의 정통성과 군사력을 강화해준다고 보아 합류를 환영했고, 엘 파실 지역언론들은 일제히 양 웬리의 귀환을 보도했다. 양 웬리는 롬스키와 논의하여 비정규함대를 ' 엘 파실 혁명군'으로 재조직하고 부하들은 신설된 간부직에 임명했다. 그리고 12월 11일 지구로 떠났던 율리안 민츠 일행이 합류했다.

엘 파실 혁명군 사령관이 된 양 웬리는 대략 5년 이상 기다리면서 제국을 타도한다는 종래의 계획을 폐기하고, 은하제국의 패권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보존하려고 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페잔 자치령처럼 광범위한 내정자치권을 가진 민주주의 자치령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러면 싸움을 바라는 황제와 한 번 싸워야 했는데, 양은 제국군이 장악한 이제르론 요새를 탈취한 다음 이를 근거지로 제국군과 대항하고, 최종적으로는 라인하르트를 협상장으로 끌어낸다는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는 코르넬리우스 루츠 함대는 양 웬리가 가진 전력의 10배에 달했다.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었지만 양 웬리는 1년 전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하면서 놀라운 함정을 설치해두었기에 요새를 재탈취하는 작전을 짤 수 있었다. 그런데 양 웬리가 이제르론 요새 재탈취 작전을 입안하자 독립정부 요인들은 양 웬리가 없는 사이 반혁명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반대했으며, 메르카츠가 대신 남을거라고 하자 메르카츠를 믿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결국 양은 분을 삭히면서 자신이 후방에 남고, 메르카츠가 탈취 작전을 지휘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4.4. 지구교의 부활

당초 지구교는 큄멜 사건에서 라인하르트를 죽이고 자신들이 신 은하제국의 황제 노릇을 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지구를 은하계의 중심으로 되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황제 암살은 욥 트뤼니히트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지구교는 반제국 세력으로 찍혀 제국군에게 토벌당했다. 지구교 신도들은 부족한 무기와 훈련도에도 광신 하나만 믿고 처절하게 싸웠지만 결국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다. 패배가 다가오자 지구교 총대주교는 도망치지 않고 지구교 총본산을 폭파하여 신도들과 함께 땅 속에 묻혔다.

그러나 지구교 총서기대리를 맡고 있던 드 빌리에 대주교는 같이 죽지 않고 몰래 총본산을 탈출하였다. 그는 총대주교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남아 있는 교단 조직을 비밀리에 재건하였다. 그리고 방식을 바꾸어 라인하르트를 폭군으로 만들고, 지구교가 제국의 폭정에 대항하는 유일한 이념이 되어 신 은하제국을 타도한 뒤 자신이 신정제국의 황제 노릇을 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화주의 세력과 제국이 화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드 빌리에는 비밀리에 어떠한 음모를 준비했다.

4.5. 양 웬리의 준동과 동맹군의 최후

우주력 800년 날이 밝자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엘 파실 혁명군이었다. 엘 파실 혁명군은 1월 2일부터 끊임없이 가짜 지령을 보내어 제국군이 혼동을 일으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출격과 위치 고수를 명령하는 상반된 명령에 혼란스러워하던 루츠는 결국 라인하르트가 보낸 진짜 출격명령을 무시하고 말았다.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는 루츠에 분노한 라인하르트는 폭발 직전이었지만 힐다가 달래서 겨우 분을 풀었다.

한편 루츠는 바그다슈가 보낸 강경한 어조로 출격을 요구하는 가짜 지령을 보고 다시 한 번 고민했다. 결국 루츠는 양 웬리가 자신이 없는 사이 이제르론 요새를 탈취할 거라고 보고 유인책에 낚인 듯 출격한 뒤 반전하여 요새와 함께 양 함대를 격멸한다는 작전을 생각해냈다. 예상대로 1월 12일 루츠가 출격하자 혁명군은 1월 13일 모습을 드러내어 요새 진입을 시도했다. 그런데 혁명군이 접근하면서 "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후 한 잔의 홍차"라는 통신문을 보내자 이제르론 요새의 모든 기능이 멈춰버렸고 제국군은 맥없이 양 함대의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양 웬리가 남긴 함정이었다.

숫적으로는 혁명군이 열세였지만 제플 입자로 화기를 봉쇄하고 로젠리터의 용맹 덕에 제국군의 저항을 격파하며 내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제국군은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80만 km 밖에서 돌아오고 있는 주둔함대와 합류하면 혁명군을 격파할 수 있다고 여겨 백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율리안 민츠 일행은 중앙지령실 대신 제4예비관제실을 점거한 뒤 컴퓨터에 "러시안 티를 한 잔. 잼도 마멀레이드도 아니고 벌꿀을 넣어서."라는 문장을 입력했고 그러자 요새의 모든 권한이 제4예비관제실로 넘어갔다. 권한을 손에 넣은 혁명군은 즉시 토르 하머를 발사했고 제국군 루츠 함대는 1,500척이 격침당하고 1,500척이 손상당했다. 요새 내부의 제국군도 사기가 꺾여버렸고 요새방어를 담당한 오토 뵐러 중장은 부하들의 안전한 퇴거를 요구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하여 이제르론 요새는 어이없게 혁명군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코르넬리우스 루츠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했으며 곧바로 슈타인메츠 제독이 있는 간다르바 성계로 이동했다. 엘 파실 독립정부는 이 승리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며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승리를 축하했다.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면서 엘 파실과 이제르론을 잇는 '해방회랑'이 완성되었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한편 동맹군은 최대한 방해전파를 뿌려 제국군의 통신을 차단하고, 본대는 험준하기 그지없는 마르 아데타 성역에 집결하여 결전을 신청했다. 제국군의 병력은 동맹군을 압도했고, 마르 아데타가 꼭 점령해야 하는 성계도 아니었으므로 라인하르트는 일부 병력만 남겨둔 채로 진격할 수 있었지만 노장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를 신청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전에 돌입했다.

우주력 800년 1월 16일 시작된 전투에서 동맹군은 회랑의 좁은 지형을 이용하여 제국군 선봉 그릴파르처와 크납슈타인을 쫓아내고, 후방에도 랄프 칼센의 함대를 매복시켜 배후로 접근하는 파렌하이트 함대를 격퇴했다. 그리고 뷰코크는 배후를 칠 가능성이 있는 크납슈타인 함대를 기뢰 시차폭파 전법으로 교란시킨 뒤 즉시 라인하르트의 본대로 돌진했다. 그러나 첫 번째 돌격은 뮐러의 방어에 막히고, 두 번째 돌격은 미터마이어의 방어에 막혀버렸다. 그 사이 통신이 끊겼던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전장에 합류하여 전황은 동맹군의 패배로 기울었다.

무너지는 동맹군은 칼센 제독과 병력의 80%를 잃었지만 뷰코크는 마지막까지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하였다. 그 모습을 본 라인하르트는 힐다의 진언에 따라 미터마이어를 통해 항복을 권유했지만, 뷰코크는 "민주주의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친구를 만드는 사상"이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제국군의 포격으로 동맹군 기함 리오그란데가 격침당하면서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는 소멸하였으며, 라인하르트는 대함경례로 소멸한 강적에 경의를 표했다. 승리를 거둔 제국군은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지만 세 시간 뒤 이제르론 요새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혁명군도 뷰코크 제독의 부고를 듣고 사흘 간 상복을 입어 조의를 표했다.(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4.6. 자유행성동맹의 멸망

동맹군 최후의 우주함대가 사라지면서 자유행성동맹의 멸망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은하제국 고등판무관부 수석보좌관 우드 디터 훔멜은 통합작전본부장 록웰 대장에게 조안 레벨로 의장을 암살하라고 권유했다. 보신을 위해 의장을 팔아넘길 생각이었던 록웰 대장은 부하들과 함께 2월 2일 레벨로를 사살한 뒤 제국군에게 항복했다.

2월 9일 하이네센에 무혈입성한 라인하르트는 가장 먼저 죽은 레벨로의 묘를 참배하고, 부하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하달하는 한편 항복한 록웰과 그에 동조한 장교들을 모조리 총살형에 처했다. 라인하르트는 2월 10일 구 동맹군의 전사자 유족과 부상병을 후히 우대하겠으니 불만이나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하라고 포고했고, 라인하르트의 관대함에 충격을 받은 동맹 고관들은 줄줄이 전향했다. 하지만 하급 관료나 무명 군인들은 아직까지 공화제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고 제국군의 점령 작업에 협조하지 않거나 충성 서약을 거부하는 등 저항을 이어갔다. 제국군은 협조하지 않는 관료들을 투옥했지만 라인하르트는 그들이 낮은 지위에 머물렀기에 동맹이 망한 것이라며 투옥당한 관료들을 석방하고, 제국군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자들을 등용하여 업무를 맡겼다.

2월 20일 라인하르트는 겨울장미원에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선포하여 은하제국을 우주 유일의 정치체제라고 선포하였다. 또한 동맹의 멸망을 선언하되, 어디까지나 과거의 존재로서 동맹의 존재를 공인하였다.( 겨울장미원의 칙령)

2월 21일 라인하르트는 어전회의에서 직접 나서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고 양 웬리를 무릎꿇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볼프강 미터마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등 측근들은 굳이 카이저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아 만류했다. 그런데 갑자기 페잔에서 온 보고서가 친정 계획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게 만들었다.

라인하르트가 친정을 떠났을 무렵 문전박대당한 윌리엄 오데츠 아드리안 루빈스키와 접촉하여 로이엔탈이 반역을 저지르려 한다고 떠들고 다녔다. 여기에 군부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은 사법상서 브룩도르프와 언젠가 로이엔탈을 끌어내기로 싶어한 내국안전보장국장 하이드리히 랑이 달려들면서 사태가 확대되었다. 로이엔탈의 사저에는 라인하르트 암살교사 혐의로 멸족당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의 조카딸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가 있었고 그녀는 로이엔탈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로이엔탈은 이 소식을 듣자 축복하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하이드리히 랑은 이러한 증언을 근거로 브룩도르프의 이름을 빌려 로이엔탈을 탄핵했다.

보고서가 올라오자 로이엔탈은 통수본부총장의 업무를 중단하고 근신에 처해졌으며,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뮐러의 심문을 받은 로이엔탈은 정식으로 황제 앞에서 해명하려고 했고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의 해명을 믿어 당장 처벌을 결정하려 들지 않았다.( 로이엔탈 원수 탄핵사건)

3월 1일, 갑자기 하이네센 시가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5천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동맹 시민들은 누군가의 방화로 추측했지만 제국군이 조사해보니 이 화재의 원인은 동맹 멸망 이후 관리되지 않은 제플 입자 발생장치에 불꽃이 튀어서 생긴 실화(失火)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민심이 안 좋았기 때문에 제국군은 우국기사단에게 방화 혐의를 뒤집어씌워 숙청하였다.( 하이네센 대화재)

3월 19일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하고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로이엔탈은 크납슈타인, 그릴파르처의 함대와 자신의 함대를 합쳐 5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노이에란트 치안군'이라는 이름으로 지휘하게 되었으며 지위는 상서와 동급이 되었다. 텅 빈 통수본부총장은 그대로 사라졌고 황제가 통수본부를 총괄하며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이 초대 참모총감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이 모든 인사조치는 양 웬리 일당을 무릎꿇린 다음에 이루어질 것이며, 양 웬리를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오딘이나 페잔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4.7. 회랑 전투

4월 19일 페잔에서 전선에서 물러나 페잔 방위 사령관으로 임명된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을 위로하고, 전선으로 떠나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과 작별하는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는 바렌과 루츠츷 비롯해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 공부상서 브루노 폰 질버베르히, 페잔 대리총독 니콜라스 볼텍 등이 참석했는데, 폭탄테러가 일어나 질버베르히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바렌은 일주일 간 범인을 수사하다가 황제의 명으로 페잔을 떠났고, 루츠가 페잔 방위와 사건 처리를 도맡았다.( 페잔 폭탄테러사건)

라인하르트는 휘하 전 병력을 이끌고 이제르론 회랑에 있는 양 웬리와 결전을 시도한다. 병력차는 10:1로 엘 파실 혁명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지만 양은 장기인 속임수와 유인책을 적극 활용하여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우선 허장성세로 배후를 칠 가능성이 있는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함대를 제국령 방면으로 쫓아내고,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가 지휘하는 제국군 선봉대를 유인한 뒤 회랑의 좁은 지세와 우월한 함대 운용으로 격파하였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와 파렌하이트 함대는 모두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파렌하이트 제독은 아군의 후퇴를 엄호하다 기함이 피격되어 전사했다.

이후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가 지휘하는 제국군 본대와도 대등한 승부를 펼쳐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제독을 전사시켰지만, 제국군이 소모전으로 전법을 바꾸자 위기에 몰린다. 특히 함대 운용을 담당하는 에드윈 피셔 중장이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최악의 위기에 처하지만 때마침 라인하르트의 열병이 재발했고, 꿈속에서 화해를 권하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환상을 본 라인하르트가 마음을 바꿔 군대를 물리고 회담을 제의하면서 전투는 종료되었다.( 회랑 전투)

4.8. 양 웬리의 죽음

라인하르트의 제의를 수락한 양 웬리와 엘 파실 독립정부 수뇌부들은 순항함 레다 II호를 타고 회담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세력과 전제주의 세력의 화친을 원하지 않던 지구교의 수장 드 빌리에 앤드류 포크를 꼬드기고 제국군 내부의 신도들을 통해 양 웬리를 암살하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회담장으로 가던 자신을 공격하던 앤드류 포크를 구해준 제국군 구축함에게 접현을 허가했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은 제국군이 아니라 지구교도였다.

지구교도는 가장 먼저 프란체스크 롬스키 의장을 살해하고 레다 II호 내부를 헤집어 양 웬리를 찾아다녔다. 양 웬리는 표도르 파트리체프, 순 수울, 라이너 블룸하르트의 희생으로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지만,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지구교도에게 피살당했다. 뒤늦게 발터 폰 쇤코프, 카스퍼 린츠, 율리안 민츠가 전함 율리시스를 타고 달려왔지만 그들은 죽은 양 제독의 시신만 수습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구교도가 점령한 레다 II호를 포기하고 양 제독과 블룸하르트의 유체 및 생존자들을 신속히 수습한 뒤 이제르론 요새로 복귀하였다.

양 제독의 부고가 공표되자 기둥을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잔존 정부위원들의 결의로 해산되었고, 이제르론의 내부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혁명군 간부들은 누구보다 양 웬리의 후광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정치지도자에 프레데리카 그린힐, 군사지도자로 율리안 민츠를 추대했지만 다른 간부들보다 경력도 나이도 딸리는 율리안이 군 사령관이 된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자 무라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혁명군을 이탈, 불평분자들과 함께 이제르론을 떠났다. 100만 명에 달하는 이탈자들이 이제르론을 빠져나가 제국군이 점령한 하이네센으로 돌아갔다.

한편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의 비명횡사에 격분하면서도 나이트하르트 뮐러 상급대장을 조문단으로 파견하여 조의를 표했다. 회담은 무산되었고 양 웬리 없는 양 함대에 흥미를 잃은 라인하르트는 더 이상의 협상이나 전투 없이 페잔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되어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은 종료되었다.(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 역사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을 거쳐 노이에란트 전역으로 이어진다.

5. 둘러보기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의 에피소드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겨울장미원의 칙령
로이엔탈 원수 탄핵사건 하이네센 대화재 페잔 폭탄테러사건
회랑 전투 양 웬리 암살사건

[1] 회랑 전투 기준 [2] 양 웬리가 아니면 사령장관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끝까지 대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