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해방(性解放, Sexual Liberation)은 성에 관한 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적 사상 및 운동들을 의미한다.그 자체로는 문화적 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문화적 해방운동'에 해당하며 좀 더 넓은 맥락에서의 정치적 성향에선 일반적으로는 자유주의로부터 급진사회주의와 아나키즘까지, 대체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경향과 친화적이지만 비교적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공명하는 편이다.
성해방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류 규범의 성적 억압이나 종교적 권위로부터 저항하여 인간의 성적 본능을 존중하며 성개방을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문화적 해방주의(Cultural liberation)의 한 갈래로 여겨진다. 주의해야 할 점은 마르크스주의나 라캉철학처럼 어떠한 특정한 단일 사상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라 성해방에 관한 일련의 유사한 이념들을 한 데 묶기 위해 쓰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성(Sexuality)에 관한 입장차를 정리하기 위해 편의상 만들어진 개념이다.[1] 성해방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사상은 흔히 성적 보수주의(Sexual conservatism)라고 일컬어지곤 한다. 성해방주의를 쾌락주의로 오해하고 반대 편에 금욕주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쾌락주의자로 볼 수 없는 성해방주의자들도 존재한다.[2]
성해방적 관점은 성적 자유주의(sexual liberalism)라고 칭해지기도 하며[3] 1960년대에 68운동으로 인해 시작되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성해방적 사회 운동이나 조류는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라고 불린다.
2. 상세
대체로 검열 권력을 부정하는 등 파쇼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경향이 강하며 문화적 해방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우파 해방주의가 아니라 좌파 해방주의로 취급된다.[4] 성[5]에 대한 억압을 위계 질서로 보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기존의 성적 고정관념과 관습을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보통 "성은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를 케이트 밀릿을 위시한 급진 페미니스트의 전유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성 정치의 개념은 빌헬름 라이히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오쇼 라즈니쉬[6], 다니엘 게랭[7], 휴 헤프너, 테라야마 슈지[8], 마광수[9], 허균 등이 대표적인 성해방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니나 하틀리[10] 등 성 긍정 페미니즘(Sex-positive feminism)이 존재한다. 흔히 성 긍정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성 긍정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퀴어 이론에 공헌한 게일 루빈. 물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중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성해방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성적 자기대상화가 오히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립스틱 페미니즘도 존재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사상을 접목해 성 해방과 성 정치를 주장했으며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성을 혐오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모두 비판했다. 라이히의 이론은 68세대 신좌파[11]에 계승되어 서구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고 진보적인 사회가 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나아가 이러한 성해방 움직임은 퀴어이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반면 공산권이나 제3세계에는 성해방주의의 물결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공산권이었던 세르비아의 영화감독 두샨 마카베예프(Dušan Makavejev)는 라이히의 성해방론에 입각해서 『WR: 유기체의 신비』(1971), 『스위트 무비』(1974)와 같은 걸작 영화들을 쏟아냈는데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성적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영화적으로 드러냈다.다만 최근에 들어서는 구 동독의 1960년대 이후 사회적 흐름에 대한 재평가 등을 통해 서구에 비해 덜 주목받아서 그렇지 일상생활 영역에선 서구에 비해서도 더 관용적, 개방적인 면도 적잖았다는 평가도 있다.[12]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Do Communists Have Better Sex?[13]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체제의 유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구권에서도 성해방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동성애가 범죄였고 강제 치료의 대상이었지만 이미 50년대 무렵부터 자유주의적인 의사 집단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연구를 근거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존재했으며 그 중 커트 프로인트(Kurt Freund)라는 의사는 자신의 연구 자료를 인용하며 전환 치료가 비과학적이며 비인도주의적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공산당에 차별 금지를 요구했다. 이후 성소수자를 범죄적이고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법률은 없어졌는데 이것은 당시 서구에 비해서도 빠른 편이었다. 이후 동구권의 자유주의적인 흐름에 불안감을 느낀 소련 공산당에서 체코를 침공하자 프로인트를 비롯하여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캐나다 등으로 탈출했다. 프로인트는 얼마 뒤에 벌어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 변화에서 자신의 연구를 인용하여 정신병 분류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 #
일본에서는 성해방주의의 영향을 받아 70~80년대 포르노 해방 움직임에 동참했으나 성에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개방적인 컨텐츠가 공존하는 기형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한편, 한국의 박정희 정권은 성해방주의의 흐름을 '서구의 퇴폐 사상'으로 취급하면서 통제하려고 했다. 80년대 3S 정책으로 일부 개방되긴 했지만 이것이 성해방으로 나가지는 못하였고 제한적으로 그쳤을 뿐이다.
성해방의 흐름은 68세대의 분열과 68운동의 퇴조, 히피의 몰락, 안티 포르노 운동의 대두, 80년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등으로 단절됐다. 안티 포르노 운동가들은 성해방주의를 '남성만의 성해방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해방주의가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시선에만 움직이는 여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해방주의 측에서는 성인 컨텐츠의 시선이 남성 편향적인 것은 "남성중심사회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남성중심사회로 인해 영향받은 결과물"이라는 근거로 반박한다. 즉, 성인물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결방법에 있어서 성문화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성문화를 확산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잠시 성 해방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크게 주목받은 인물이 마광수였으나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마광수는 주류 문학계와 교수 사회의 타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줄곧 내놓아 이미 원로 교수들 사이에서 찍혀 있는 인물이었으며 교수 출신이었던 현승종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지시하고 수사를 지휘하여 마광수가 강연 도중 현장에서 체포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 이후 마광수는 교수 사회에서 대놓고 따돌림을 받는 처지에 놓였으며 현재까지도 그저 변태나 마초이스트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14] 결국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 시선은 고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광수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2020년대 기준으로 한국에서 성해방주의의 움직임은 상당히 미약하다. 표창원이 포르노 합법화 얘기를 꺼냈다가 보수 기독교 단체들과 여성단체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걸 보면 성해방주의가 공론화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현재 한국에서는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대세가 된 상황이다. 그러한 표창원조차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이 들어간 여폭법에 앞장서는 등 페미니즘 옹호 성향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OECD에서 유일하게 여전히 포르노,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다. 그렇다고 성해방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성적 억압에 대한 불만이 크며 이것이 문제임을 주장하면서 성해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터라 계속해서 문제임을 주장하며 노력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성해방도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본다.[15][16]
3. 역사
3.1. 20세기 이전
서양의 성해방주의자들은 성적 보수주의가 유행하게 된 계기를 성욕을 금기시하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대중화되면서 일어난 일이고 고대엔 오히려 성적으로 개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동아시아는 유교가 대중화되면서 성적 보수주의가 유행하게 되었다.[17]대표적으로 고대 인도는 카마수트라를 저술하고 성적인 유적을 남겼을 정도로 성해방주의가 있었으며[18] 미노아 문명도 여성들이 유방을 노출하고 성적인 축제를 열었을 정도다.[19]
에트루리아 문화의 성적인 개방성에 대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역사가들의 여러 기록도 전해오기도 한다.
11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데콜타주가 있지만 당시 유방은 관능적인 의미로보단 여성스러움을 보여주는 의미로 작용하기 때문에 성적 개방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데콜타주가 가장 유행했던 것은 프랑스였고 나머지 동유럽이나 남유럽은 여성의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었으며 영국, 미국도 19세기 경에 개신교의 영향으로 성적 억압이 강화되어 데콜라주가 쇠퇴했다.
3.2. 20세기 초반
성해방주의자들은 20세기 이전까지 세계의 주류였던 성적 억압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에 따라 서구에서 유래가 없었던 일명 “성담론”이 오고 갔지만 성해방주의자들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은 집권 이후로 이런 시도를 모두 무산시켰고 과거의 성적 보수주의를 부활시켰다.당시 다음 인물들은 스스로를 성해방/성자유'주의(자)'로 여기진 않았지만, 이들의 행보가 후일 68운동에 영향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빌헬름 라이히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보수주의에 반대하여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결합하여 성해방주의 이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탄압당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욕이 사회악이라는 기독교적 규범에 반하는 이론을 전개했다.
- 알프레드 킨제이가 1948, 1953년 발간한 킨제이 보고서가 성을 과학화하는 장을 열었다. '여성도 성욕이 존재한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등을 증명했다.
- 이어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슨이 성의 과학화를 이어간다. 1956년 10월 ~ 1969년 8월에 걸쳐 성을 실험연구(!)도 한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2013~2016년 방영한 마스터즈 오브 섹스로, 오늘날엔 상식이 된 '여성이 폐경 이후에도 오르가즘이 존재', '오르가즘은 단계가 존재', '포경수술과 사정능력 무관', '오르가즘은 체력고갈이 아닌 신경피로' 등의 상식들을 과학화한다.
3.3. 현대의 성해방주의
현대적 의미에서의 성해방주의(Sexual Liberalism)는 1920년대에 이미 그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20] 급속한 도시화, 대중 언론의 확대,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흑인 시민권 운동,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21], 반전 운동, 사회적 정의 운동, 게이 인권 운동과 같은 사회 운동이 성해방 사회(sexual liberal society)가 도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미 연방 대법원은 One v. Package(1935), Griswold v. Connecticut(1965), Loving v. Virginia(1967), Roe v. Wade(1973) 등의 판례를 통해 성해방주의를 저해하던 법적 메커니즘을 약화시켰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없진 않았다. 도덕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국가주의적 수사여구(nationalized rhetoric)를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는 대체로 "결혼이나 출산과는 관계 없는 성적 표현"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1980년대 무렵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이 정권을 쥐었고 성해방주의는 정치,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 위축되었다. 20세기 말 기독교 근본주의가 성 해방, LGBT 인권, 2세대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벌인 새로운 백래시를 성해방주의자들은 '문화 전쟁'(culture wars)'이라고 부른다. 참조 링크
- 1970년대
- 68운동은 마르크스주의 세력에 의해 보수주의, 파시즘, 현실사회주의에 반발하여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성자유주의자들은 피임, 낙태, 포르노, 성매매, 혼전성교, 비삽입성교, 더 나아가 동성결혼의 합법화 및 동성부부에 대한 국가의 사법적 보호, 난교 등 기존에 이상성욕이라고 여겨지던 성적 행위들을 옹호했으며 이에 따라 질병이나 죄악으로 여겨졌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성해방은 곧 여성 해방이라고 주장했으며 피임, 낙태의 자유화를 주장했고 심지어 인공 자궁을 옹호했다. 그리고 남성 위주의 포르노에 반대하여 여성용 포르노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허슬러( 래리 플린트)라는 도색 기업도 성해방주의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22] 당시 기독교 우파 또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반대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과 싸우곤 했다.[23]
- 1980년대
- 로널드 레이건와 마거릿 대처 등의 신우파, 안티페미니즘 정권이 집권하면서 성해방주의가 약화되었으며 포르노, 성매매, LGBT를 탄압했다. 그리고 1980년대로 넘어오며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도 래디컬 계열 페미니스트 특히 그 중에서도 반 포르노 성향인 페미니스트[24]들을 주축으로 한 포르노그라피 반대 운동 등을 필두로[25] 1960-70년대에 부상한 성해방, 성혁명 흐름과 그 유산에 대해 사실상 반기를 드는 입장[26]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 사실 엄밀히 말하면 실제로는 페미니즘 진영, 특히 안티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1960-70년대에도 성해방주의에 대해 비토에 가까운 불편한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좌파 운동의 전성기이자 한편에서는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다른 한편에선 히피와 반문화가 사회적 흐름을 주도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미 성해방/성혁명의 흐름을 불편하게 여기던 그들의 주장은 그냥 묻혀 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1960-70년대에는 특히 당시 젊은 세대의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도 다수가 성에 대해 침묵과 금기로 일관되어 온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에 환영하던 상황이었으며 나아가 피임과 낙태의 문제 등 그동안 여성들에게 중대했던 문제들의 해결에 성해방의 흐름은 매우 유익한 환경 혹은 동맹자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해방에 대한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의 사실상 부정적 혹은 심지어 적대적인 입장은 (말하자면 여러모로 '여성해방운동'에 조차도 도움이 안 될 것이었으므로...) 조명받거나 표면화되기 힘들었다고, 달리 말해 대놓고 전면에서 디스하기는 어려웠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다소 아이러니컬하게도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신좌파와 반문화의 기세가 꺾이고 사회적으로 신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거꾸로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도리어 그동안 대세에 파묻혀 주목받지 못하던 자기들 고유의 주장을 드디어 전면에 내걸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역설적으로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은 사실은 1980년대의 소위 백래시의 피해자가 아니라 일종의 수혜자였다는 것이다.
- 1990년대 이후
- 이러한 양상의 결과로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조차 성적 자유의 문제를 놓고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일으켰고 그 후로도 이는 해소되지 못했다. 한편에서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을 비롯한 현재 보다 주류화된 입장에서는 이를테면 포르노그라피 뿐 아니라 성매매/성노동 문제로도 확산되어 한편에서는 성매매/성노동 자체를 '일종의 성폭력이나 다름 없는 강제된 성착취'로 규정하고 불법화 및 성노동 종사자들의 '탈 성매매 및 전직'을 공권력을 통한 강제와 회유를 동원해서라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27] 반대로 다른 이들은 성노동을 비범죄화해서 성노동 종사자들의 정상적 노동권을 보장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립스틱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성긍정 페미니즘을 제외한 분파의 페미니스트들 상당수에도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성해방주의는 성적 행동에 대한 형식적 자유를 빙자한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라는 식으로 성해방, 성혁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입장이 광범하게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성적 행동과 성 향유의 문화적 재현/표현에 대한 '공적규제'를 행하고 규제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 그들 사이에서 주류를 점하게 되었다.
- 빌헬름 라이히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후유증이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라이히는 1930년대에 유행했던 파시즘을 분석하면서 성적 억압이 파시즘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실제로 이는 2010년대에 사실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예가 바로 대안 우파의 성행이다. 혹자는 이것이 기독교 우파의 결집력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과 겹쳐서 일어난 게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성부정 페미니즘과 그에 크게 영향받은 소위 SJW류의 공격과 폄하는, 알고 보면 애초에 신장된 성적 자유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이 우파였음에도, 거꾸로 우파들이 성 억압과 검열에 대항하는 투사로 기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어, 인터넷을 매개로 대안 우파의 성장에 - 본의든 아니든 - 적잖은 공헌을 해 준 것으로 본다.
- 이념을 막론하고 성해방에 적대적인(혹은 선택적으로 적대적인)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성해방을 인간의 평등한 자유나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이념이나 이해관계의 수단으로 바라본다는 점,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성적 근거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4. 관련 개념
4.1. 성과학
Sexology[28][29]성해방주의와 성과학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온 공생관계에 가깝다. 성적 억압의 상당수가 전통적인 관습이나 종교적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습 등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성을 정신분석학- 마르크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해방주의로 이어지곤 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성적 욕망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물론 프로이트는 도덕적 금욕주의에 따라 본능의 포기를 교육할 것을 주장했지만 성적 욕망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능으로 봤다는 점에서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프로이트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성과학자들 중에서는 훗날 성해방주의자로 평가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앞서 서술한 빌헬름 라이히[30]이며 알프레드 킨제이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양자는 별개의 개념이다. 성과학은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성기능이나 성 역학, 성 의학 등을 연구하는 것이고 성해방주의는 성에 관하여 해방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일련의 사회사상들을 포괄하여 특칭한 개념이다.
4.2. 자유연애
자유연애(Free love)는 사회의 강제력이나 관습에 구속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성해방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자유연애'는 대체로 성해방을 포함하며 그것을 동반하는 주장이지만, '자유연애'는 단지 좁은 의미의 성적행동, 성적관계를 넘어 성애 및 애정과 연관된 개인간의 관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31][32]
그동안 역사에서 성과 성애에 연관된 관계에 대한 금기와 억압이 존재해 온 만큼 당연히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다양한 수준과 형태로 그에 대해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에 따른 자유로운 사랑과 결합의 권리를 역설한 다양한 주장도 존재해 왔다. 자유연애 사상이 전통적 혼인 및 가족관계와 그것만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도덕적 규제를 비판하며, 다른 개인간의 관계 형태를 주창하는 만큼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유토피아적, 사회비판적 사상과 연관되어 오기도 했다.
그 중 현대의 "Free Love" 이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성해방론 일반과 대체로 궤를 같이 하며)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자유주의(일부), 아나키즘, 사회주의/공산주의 (일부)등 당대의 사회 비판적 사상들 및 여성해방론[33] 등과 연관되어 발전한 주장들 나아가 2차 대전 이후 이런 유산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집약한 비트닉, 히피 무브먼트 등 반문화 운동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기본적으로 성애와 그에 기반한 개인간의 결합, 유대관계에 대한 (법 혹은 관습적 도덕 등에 의한) 일체의 외적 간섭과 규제에 반대하며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에 따른 성애와 그와 연관된 인간관계를 추구한다. 따라서 개인간의 성애적 관계의 형태는 오직 참여하는 개인들의 선택(과 합의)에만 맡겨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잘 요약하는 말 중의 하나가 캐나다 총리였던 피에르 트뤼도가 1967년, 동성애 등에 대한 법적 규제의 철폐를 주창하며 했던 "개인의 침실에 국가의 영역은 없다 There is no place for the state in the bedrooms of the nation"는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때문에 자유연애 주창자들은 성과 성애적 관계에 연관된 외적 구속들 - 결혼과 이혼, 낙태, 피임, 혼전 및 혼외 관계, 비혼 동거, 동성애를 비롯한 '비전형적' 성애관계에 대한 억압과 규제, 매체와 문화에서의 성의 표현에 등등 대한 금기와 규제 등등 - 대부분에 대해 반대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 중 적잖은 이들은 성매매에 대한 범죄화도 반대하거나 나아가 성인들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미성년자의 성적, 성애적관계에 대한 자유 및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경우도 적잖았다.[34]
자유연애론자들은 제도화된 혼인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경우가 많았으며 제도화된 결혼관계 대신 '자유결합'의 이념을 주창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관계 내에서의 개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사회적으로 무시되어 온 것에 대해서 - 이를테면 부부 강간이 혼인관계 밖에서의 강간죄에 비해 가볍게 다뤄졌던 등에 대해 - 강하게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나아가 성애적 관계에 대한 외부의 간섭과 규제 뿐 아니라 개인들의 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외적 억압과 그것이 내면화된 결과인) 구속적, 억압적, 소유적 관계는 지양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수의 자유연애 주창자들은 '성적충실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배타적, 독점적, 폐쇄적 관계형태'보다는, 오픈 릴레이션십이나 " 비독점적 다자연애" 등의 보다 개방적, 관용적인 관계형태를 주창하거나 그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35]
4.3. 성적 자기결정권
자기결정권 개념이 성(性)에 있어서도 적용된다는 개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70년대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여성의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뀔 수 있었다.4.4. 성소외자
성해방 운동으로 인해 성욕을 충족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쟁취로 여겨지고 있고, 이에 따라 성욕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집단의 권리 투쟁도 당연시되고 있다.5. 관점
5.1. 자유주의
허균은 남녀의 욕망은 하늘이 준 것이고 윤리와 기강은 성인이 가르친 것인데 하늘이 성인보다 더 높으니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더라도 하늘이 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균을 연구한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허경진은 전술한 허균의 주장에 대해 "성인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 사회인 조선의 제도였고, 구속이었다. 이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대로 살려 했던 허균이었기에, 그의 앞길은 계속 어렵기만 했다."라고 해석했다.[36]
마광수는 모두가 귀족이 되는 상향평준화와 원시와 문명이 결합되는 세상을 주장했다.[37] 그는 진화심리학을 수용[38]하여 인간의 본성을 긍정하고 본성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고 주장했다.[39] 육체적 사랑이 진정하며 정신적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형이상학에 머물고 그 것 자체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파처럼 성적 절제와 이성애를 강조하거나 좌파처럼 열등한 외모와 타인종도 사랑하고 강조하는 것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모든 인류를 인간의 본성에 맞는 육체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쇼 라즈니쉬는 주류 종교가 억압해 온[40] 여성성을 옹호하면서 여성성이 가부정적인 산물이라는 이유로 이를 버리려는 당시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했다. 라즈니쉬는 피임, 낙태를 옹호했으며 여성성을 가진 여성을 주도로 하는 성해방주의를 주장했다.
자유의지주의 같은 경우 개인자유의 관점에서 성해방주의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5.2. 보수주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성적 자유주의가 애착관계의 잦은 변동을 유발해 청년층(특히 여성)의 우울증을 조장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저하시켜 저출산 현상 및 미혼모 현상을 가속시킨다고 비판한다. 또 낙태를 옹호하여 생명 경시 풍조가 가속화되었다고 주장한다.대안 우파 온건파는 성적 자유주의를 조장하면 조장할수록 남녀의 선천적인 성욕 차이로 인해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섹스를 대가로 명품 가방이나 비싼 음식 같은 경제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되며 따라서 연애시장에서 여성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이러한 경우 여성의 몸값이 적절히 올라갔을 때에 다시금 성적 보수주의를 조장하기만 하면 몸값이 올라간 여성계층 전반에 대한 보호심리를 자극하는 기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5.3. 페미니즘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하는 일,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격적 특질이 가치 절하를 받아왔기 때문에 분노했다. 또한 우리는 여성의 행동에 가해진 제약에 분노했다. 여성은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됐다. 차를 수리하고, 섹스를하고, 바이크를 타고, 스포츠를 즐기고, 박사학위를 따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사회의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여성 운동의 지지를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남성으로 식별된 것은 여성이 여성 억압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남성이라고 규정된다는 용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남성성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제 남성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들은 가정, 교회 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에서도 남성을 흉내낸다고 비난을 받게되었다. 현대 페미니스트 이념의 대부분은 여성의 모든 것(인물, 활동, 가치관)은 좋은 것인 반면 남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악이라고 말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페미니즘의 과제는 남성의 가치를 여성의 가치로 바꾸고, 남성의 문화를 여성의 문화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성이 남성의 활동, 특권, 영역에 접근하도록 장려하지 않는다. 대신에 훌륭한 페미니스트는 "남성"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여성다움에 대한 찬양은 성역할과 정당한 여성의 행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반발했던 성역할 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정당한 여성이 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여성운동에 참여한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이름이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것은 여성성주의(femininism)이다.
여성성주의는 특히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문제에 있어서 강해졌는데 놀랍지 않게도 둘을 연결한다.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행동과 가치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는 섹스를 착하고 정당한 여성이라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 관점에서는 섹스는 여성의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아니다. 여성은 섹스를 친밀감의 표현으로 여기지만, 오르가즘은 남성의 목표로 여겨진다. 섹슈얼리티를 대부분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섹스를 폭력과 동일시 하고, 섹스를 강간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내가 자라면서 배운 성에 대한 이론이었다. 여성 운동이 이런 이론을 내 목구멍에 쑤셔 넣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성은 본능이고 여성은 순결하다는 생각은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지 페미니즘의 것이 아니다.
-게일 루빈, 일탈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성적 자유주의가 여성에게 옭아매는 족쇄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고 직업의 접근기회를 넓힌다고 여기기며
포르노, 자발적
성매매,
미인대회 등을 인정하고 있다. 여성의 의지와 상관없이 촬영, 유포되거나 강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 열렬히 반대한다.1980년대에 이르러서 남성이라고 규정된다는 용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남성성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제 남성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들은 가정, 교회 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에서도 남성을 흉내낸다고 비난을 받게되었다. 현대 페미니스트 이념의 대부분은 여성의 모든 것(인물, 활동, 가치관)은 좋은 것인 반면 남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악이라고 말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페미니즘의 과제는 남성의 가치를 여성의 가치로 바꾸고, 남성의 문화를 여성의 문화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성이 남성의 활동, 특권, 영역에 접근하도록 장려하지 않는다. 대신에 훌륭한 페미니스트는 "남성"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여성다움에 대한 찬양은 성역할과 정당한 여성의 행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반발했던 성역할 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정당한 여성이 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여성운동에 참여한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이름이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것은 여성성주의(femininism)이다.
여성성주의는 특히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문제에 있어서 강해졌는데 놀랍지 않게도 둘을 연결한다.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행동과 가치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는 섹스를 착하고 정당한 여성이라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 관점에서는 섹스는 여성의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아니다. 여성은 섹스를 친밀감의 표현으로 여기지만, 오르가즘은 남성의 목표로 여겨진다. 섹슈얼리티를 대부분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섹스를 폭력과 동일시 하고, 섹스를 강간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내가 자라면서 배운 성에 대한 이론이었다. 여성 운동이 이런 이론을 내 목구멍에 쑤셔 넣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성은 본능이고 여성은 순결하다는 생각은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지 페미니즘의 것이 아니다.
-게일 루빈, 일탈
래디컬 페미니즘은 초기와 현재의 시각이 많이 다르다. 초기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히피와 68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성적 절제는 여성을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고 순결 코르셋을 강요하는 악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시민연합을 통한 다자혼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그들의 이론을 발전시켰다.[41]
하지만 히피 문화가 몰락하고 68운동도 사그라든 후 곧 변화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성적 자유주의는 여성해방이 아니라 여성혐오이며, 성적 대상화를 통해 여성차별을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성상품화를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세뇌당해서 그런 것이고 실은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낙태는 여성의 명백한 권리로 여기기에 찬성하지만 포르노, 자발적 성매매, 미인대회는 반대하고 있다.
참고로 어느 점에서 보면 아직도 성적 자유주의와 성적 절제를 타파하려는 성향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각과 다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생각하는 성적 자유주의는 소위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도 사랑받고 여성이 외모가 평가받지 않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 인한 취업에 대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단지 외모가 추하다는 이유로 배척하면 안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시각을 바꾸도록 강요를 할 수 없다. 이런 점은 못생기고 키도 작으면서 재능도 없는 남성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한다면 여성들의 기분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시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페미니즘 운동은 못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성이 사랑받지 못함에 분노해서 만든 몸부림이라는 고정관념이 퍼지고 그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확산되는 악순환을 낳게 되었다.[42] 즉, 자신들이 원했던 성적 자유주의도 안 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물론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도 성적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성은 젠더 권력에서 여성보다 상위에 있고 여성의 생사여탈권을 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시각에서 남성은 지배계층 혹은 자본가이고 여성은 노예 혹은 노동자다. 실상 래디컬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이론적 가정 자체가 성해방주의와 '호환성'이 낮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 이들의 본원적 사고방식 자체가 성차별을 경제체제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의 산물이 아닌 여성 차별로 환원하는 사고로 빠져들기 매우 쉬운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43] 그래서 래디컬 페미니즘이 최초로 제시한 사회적 대안이라는 것은 이른바 '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었다. 특히 그 가장 극단적 혹은 일관된 논자들에 의하면 애초 '강요된 이성애'라는 관념, 즉 여성이 가지는 이성애 자체에 남성지배에 의해 여성에게 강요된 이성애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주장이었다. [44] 아무튼, 이러한 이론적 바탕을 지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사실 1960-70년대에 분출한 성해방/성혁명의 흐름이 -당시의 분위기에서 당장 대놓고 디스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사실 성해방 시기에 이들은 여성도 더 많은, 그때까지 남성들만이 누려오던 자유를 여성도 누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 반대로 여성들이 다른 방식으로 (혹은 더 심각하게)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는 식으로 인지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들은 성상품화의 초점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성소수자, 유색인종, 장애인, 난민에게도 맞추고 있는데 1970년대 성적 자유주의는 성억압을 탈피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강화시켰을 뿐이고 이 과정에서 타자는 배제되었다고 주장했다.[45] 그등은 핑크자본주의[46]를 비판하는데 핑크자본주의는 성소수자 해방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성상품화하고 그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기업의 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퀴어축제가 핑크자본주의 때문에 상업화되고 원래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이들은 래디컬 페미니즘과 달리 모델, 포르노 등을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렇다고 성적 자유주의라고 하기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래디컬보단 유하고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혹은 성적 자유주의보단 억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들은 기독교 우파의 성적 보수주의를 질색하면서 이슬람주의자의 성적 보수주의에 수긍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독교 우파의 성적 보수주의를 질색하는 것 자체엔 모순이 없지만 문제는 이와 맞먹는 이슬람주의의 성적 보수주의를 수긍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슬람주의자들이 히잡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히잡은 여성을 성적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의미입니다."[47]라고 주장하고 있고[48] 문화상대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퇴행적 좌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친이슬람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성적 대상화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World Hijab Day에 참가하기도 했다.
5.4. 종교계
기독교[49] 근본주의자들은 결혼한 사람끼리의 성욕/성관계가 아닌 다른 성적 관계와 자위행위를 죄악시한다.[50] 특히 성소수자,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격렬한 반대 운동을 하면서 포르노, 모델, 성매매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독교계도 원론적으로는 포르노, 성매매, 모델, 성상품화를 비판하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저 의제들과 연관된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새로운 시민운동을 조직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슬람주의자들은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고 있고 서구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이 히잡을 정당화하려고 온갖 프로파간다를 벌이고 있는데 이 프로파간다를 유지하기 위해 서양의 성적 자유주의를 타락한 문화로 선전하면서 페미니즘도 탄압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극단주의로 경도되면 히잡을 안 썼다고 사형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케이스의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알샤바브, 보코 하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이다.[51]
여담으로 똑같이 이슬람주의가 상당히 세가 있는 경우라도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억압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대표적으로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이 종교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빈곤하거나 내전이 일어나서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는 이슬람주의의 수준이 극우 파시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저렇게 빈곤한 저개발국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은 이슬람주의가 강세이긴 해도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지만 속에 란제리를 입는 것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물론 튀르키예 같이 이슬람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세속주의가 강하다면 히잡조차도 안 쓰는 경우도 있다.
6. 대표 인물
7. 관련 어록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준 것이고, 윤리와 기강을 분별하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은 성인보다 높으니, 차리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준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
- 허균, 《순암집》 순암선생문집 제17권 / 잡저(雜著) 천학문답(天學問答) #
- 허균, 《순암집》 순암선생문집 제17권 / 잡저(雜著) 천학문답(天學問答) #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성적 쾌락 추구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민주적 사회 분위기와 개개인의 인권 역시 차츰 보장돼 간 것이 문화적 선진국들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 마광수, 「에로스를 옹호함」, 2011[54]
- 마광수, 「에로스를 옹호함」, 2011[54]
8. 기타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1980)의 마지막 장인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Who Speaks for Earth?"의 내용 중에도 "육체적 애정이 낳는 평화"라는 절을 통해 한편으로 반핵, 평화주의의 메시지와 당대의 성해방론에 대해 공감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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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자유주의와 관련된 다른 틀 ( 사회민주주의 · 신자유주의 · 자유지상주의 · 진보주의) ※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 단체; 각각 자유지상주의, 진보주의에 속한다. |
[1]
마르크스,
로버트 오언, 또는 페이비언의 사상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로 한 데 묶을 수 있다. 이처럼 성해방주의도 저마다 사상가나 운동가들마다 입장의 차이가 몹시 크지만 성해방주의라는 개념에 포괄하여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념화된다.
[2]
페미니즘도 후술하듯 성해방주의에 속하는 페미니즘과 성적 보수주의에 속하는 페미니즘으로 나누어볼 수 있지만 기존의 성해방주의나 성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면모가 있다고 해석하는 성해방주의자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성해방주의자들의 교재에서는 해방주의나 보수주의로 묶을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으로 묶곤 한다. 페미니즘 등의 경우와는 또 다르게 성해방주의자들은 단지 성적 추구 등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주장하는 것 뿐 아니라 성적 추구에 대한 억압이나 성적 충족에 대한 (사회적으로) 강제된 박탈이 사회, 문화, 개인에 미치는 왜곡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도 적잖기 때문에 단순한 의미에서의 쾌락주의의 프레임으로 모두 담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성적억압과 파시즘의 관계에 대한 빌헬름 라이히의 고찰 등이다.
[3]
다만 주로 성적 보수주의(Sexual conservatism)에 대조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성해방은 빌헬름 라이히 같은 급진좌파를 보아하듯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좌파 자유지상주의와도 연관 있는 개념이라 자유주의로 퉁치기 힘든 지점이 있다.
[4]
반면에 성해방을 지향하는 우파 사상은 Sexual Libertarianism이라고 한다. 번역하자면 '성적
자유지상주의'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성적 자유지상주의'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이 역시 '성해방주의'로 번역되고 있다. 대부분의 문서에서 이러한 개념 정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들어가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보인다. 대만에서 출간된 『매음적 윤리학 탐구(賣淫的倫理學探究)』(2009, 甯應斌 저)에서만 '성적 자유주의자(性的自由主義派)' 개념에 자유주의자(自由主義派) 뿐만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자(自由至上派, libertarian)를 포함하고 있다고 정확히 개념을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5]
여기서 성(性)이란 생물학적 성별(Sex)이나 젠더(Gend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말한다.
[6]
60년대 미국 히피에게 프리 섹스, 프리 러브의 개념을 전파한 인물. 성적 자유주의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자유로운 사랑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로 파악했다.
[7]
Daniel Guerin(1904~1988).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로서 아나키즘에 근간하여 성해방론을 주장했으며, 이후 퀴어 이론과 게이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랭의 역저 『라이히와 킨제이 이후의 성혁명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a révolution sexuelle après Reich et Kinsey)』(1963)는 한국에 '성자유'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8]
성(性) 해방에 관한 에세이를 상당수 저술했다. 그는 전통 가정 내에서의 권위주의적 억압이 성에 대한 금기를 만들어냈다면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는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자에상의 성생활(サザエさんの性生活)』(1970)에서는 만화
사자에상에서의 거세된 에로티시즘을 비판적으로 논평하였다. 사자에상에서 부부 간의 성생활이 등장하지 않거나 감춰지고 있는 배경에는 가부장제 성윤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9]
1995년 연세대 국문과 학부.대학원생 50여명이 출간한 『마광수는 옳다』에서는 마광수 교수를 권위주의의 위선을 비판하고 진보주의와 성해방주의를 접목한 인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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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포르노 배우 겸 감독이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전직 간호사였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기반하여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제작하고 있으며 남녀평등과 남녀간의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둔 성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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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에리히 프롬이 라이히의 이론을 상당수 그대로 수용했다. 마르쿠제는 『Eros and Civilization』(1955)에서 성적 억압을 제거하는 문제를 재검토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급진주의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오늘날 마르쿠제는 '신좌파의 아버지(Father of the New Left)'라고도 불린다. 다만,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 이후에는 성해방이 오히려 체제를 유지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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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냉전 후기 동독에선 60년대 이후 서구의 상황에 자극받아 국영 방송의 심야 편성에 성 관련 상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성평등과) 성적 영역에서의 개방성 등에 대해서도 서독과 일종의 '체제경쟁'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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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1세기 서구의 '진보적 미디어'의 분위기가 그렇듯 이 문제를 다소 단순하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즉, 당시 시점에서 구 사회주의권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서방'보다 좀 더 나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경제적 일상생활 영역에서의 경쟁의 압력을 덜 받는다거나 그와 연관된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 등의 다른 사회적 요인들도 개개인들이 성적인 문제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 대해서는 약간은 간과하거나 축소하는 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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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몇몇 발언에서 남성 우월주의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광수 교수는 상당히 성별에 대해 차별 없이 사람을 대했다고 한다. 일례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담배를 허락했던 마 교수의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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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방이 이루어지고 성적으로 개방된 유럽권조차 과거에는 성에 대해 금기로 여기고 억압적이었다. 프랑스만 해도 현재는 성에 개방적이지만 과거에는 포르노가 불법이었으며
마광수처럼 성해방을 추구하는
사드 후작이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부와 사회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렸고 나중에는 아예 정부가 음란물 유포 혐의를 적용해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저술 활동까지 금지시키는
국가 폭력을 저질렀다. 유럽이 성에 대해 관대해지고 개방적으로 탈바꿈한 것은 끊임없이 성적 억압을 문제로 여기며 이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고 세대교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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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많은 유럽권 국가보다 민주화가 늦게 진행되었고 민주화 운동에서 "민주"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자유", "평등"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영향도 있다. 무엇보다 1987년까지 군사정권 시절에는 겉으로만 민주주의지 실제로는 인권 탄압이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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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려 멸망 이후
삼강오륜을 강조하고
성리학을 국교로 하면서 성적 보수화된
조선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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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ual Liberalism in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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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Minoan 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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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문단은 2012년에 출간된 『Documenting Intimate Matters: Primary Sources for a History of Sexuality in America』(Thomas A. Foster 저) 127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번역,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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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긍정 래디컬 페미니즘과 성해방주의는 피임과 낙태의 권리를 확장시키려고 함께 노력했다는 점에서 상호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으며 전통 가부장제가 강요하던 임신, 출산의 의무를 형해화시키길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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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물에 성기가 표현되는 것은 외설이 아니라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판례를 따 내어,
포르노가 산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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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성긍정 페미니즘은 성해방을 옹호했지만 플레이보이 같은 잡지는 성해방이 아닌 여성을 수동적인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다고 반대하곤 했다. 리버럴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당시
바니걸로 위장취업하면서 바니걸의 억압적인 실태를 폭로한 적이 있었다. 이는 성긍정 페미니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980년대 이후에 그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수용해
성 긍정 개념을 창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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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앤드리아 드워킨, 캐서린 매캐넌,
실라 제프리스, 저메인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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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주장을 가장 간단하고 또 명료하게 요악한 것이 바로 '포르노그라피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다'라는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의 슬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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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1980년대 초반 반포르노 페미니즘의 정치적 동맹 세력 중에는 그 즈음 신보수주의와 함께 급부상하던 기독교 우파의 이른바 '도덕적 다수파' 운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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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들은 이를테면
국제앰네스티 같은 기구에서 그동안 각국의 성매매 정책에 대한 검토한 결과 '성매매/성노동의 포괄적 비범죄화' (즉, '판매'와 '구매' 모두를 비범죄화 해야한다는) 결의한 것에 대해서도 극렬하게 반대한 바 있다. 심지어 이러한 류의 페미니스트들의 영향력이 큰 일부 국가 앰네스티 지부들은 국제엠네스티의 결의 사항이 '성노동 포괄적 비범죄화'라는 사실 자체를 한국 지부를 포함해서 그냥 씹고 넘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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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成果)학이 아니라 성(性)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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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 1859~1939)가 이 분야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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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라이히의 오르가즘 이론은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사과학으로 치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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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동성간 성행위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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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한국에서는 한동안 "Free love"의 번역어인 '자유연애'라는 단어가 (그 개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던 시기에 굳어진 당시의 주된 이해방식과 관념에 따라) 종종 단순히 '보호자에 의해 결혼상대가 결정되는 전통적 혼인관계가 아닌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할 권리' 정도로 (즉, 말하자면 '연애결혼'이나 별반 다른 뜻이 아니게) 좁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연히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성애적 관계에 대한 자유를 포괄하고 의미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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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용어법으로는 말하자면 '성 긍정 페미니즘(Sex-positive feminism)'에 해당하는 조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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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80년대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 속에서 이 부분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 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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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도 대부분 일반적인 의미의 '외도' 혹은 '불륜'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조를 지키라'는 혹은 '(일부일처제적)도덕률의 위반'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외도 혹은 불륜'이 의미하는 것이, 상대에 알리지 않고 기만하며 이뤄지는 관계라는 부분에서 개인간의 신의의 문제라는 측면에 대한 - 나아가 간혹 자신은 다른 상대를 만나면서, 상대의 '외도'에는 불관용하는 문자그대로
내로남불한
이중잣대를 보이기도 한다는 측면에 대한 - 비판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상호 합의하의 개방된 관계'인 것이다. 즉 남자고 여자고 늘 한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 (당연히 자유연애론자의 대부분은 언제나 한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이 자연스런 인지상정,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는 편이다) 서로를 기만하거나 내로남불 이중잣대를 쓰지 말고 차라리 서로 솔직하게 합의하고 서로 공평하게 개방된 관계를 맺는 게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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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평전> 돌베개 발행, p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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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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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진화심리학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하며 부정적이고 우파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관념에 끼워맞춰 진화심리학의 자료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우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관념이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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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는
데즈먼드 모리스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모리스는 여성의 육체 자체가 성적 대상이 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미스 코리아> 경연 대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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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가 활동했던 인도에서는
자이나교가 금욕을 추구했고
힌두교,
이슬람교는 여성과 여성성을 비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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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위키백과 시민결합 항목. 대한민국에도 80년대를 전후로 하여 PD계열의 페미니즘 운동권에 히피문화의 시민결합 체제가 소개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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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메갈리아의 탄생 이후 전혀 상관없는 뚱뚱한 여성이 누군가에게 메갈리안이라고 욕 먹고 억울해 하는 글이 네이트판에 올라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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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을 지닌 이들이 '성의 보편적, 일반적 자유'는 '남성이 여성/약자의 성을 착취할 기회를 늘려줄 뿐'이라 폄하한다 해도 역시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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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 하는 페미들은 삽입섹스 자체가 성착취이고 남성 동성애가 탑과 바텀으로 포지션이 나뉘는 것도 성차별 문화른 따라하는 것이라면서 게이도 여성혐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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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품화 ― 성의 자유인가 여성 차별인가? 비록
노동자연대의 논설이지만 이들의 관점은 상호교차 페미니스트의 관점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의 시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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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돈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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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까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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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히잡도 훌륭한 성적 대상화의 사례이며 이슬람풍
코르셋인 만큼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라도 반대하는 경우는 왕왕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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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천주교 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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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가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청소년간의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이유임을 생각해도 된다. 자세한 건
학생인권조례/논쟁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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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상류층의 부패가 특정 종교만의 현상이 아닌 견제와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적 공간에서 인간의 원죄가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상류층 혹은 상층부의 성적으로 문란한 사생활이라던지, 낮은 성범죄 신고율, 비일비재한 성폭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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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성에 대한 위선을 비판함과 동시에 여성에게 지나치게 성적 정숙을 요구하는 사회를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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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노출을 이끌어 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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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formks.tistory.com/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