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前
국무총리. 전두광이 원칙을 어기고 국방부 장관의 승인 없이 정상화 참모총장의 연행 및 재수사에 대한 재가를 받으려는 것을 거부하며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3] 그러나 의도치 않게 전두광과 반란군이 더욱 폭주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재가를 받는데 실패한 전두광은 반란군 측의 장성들을 대거 동원해 반 협박을 해서 재가를 받으려 했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두광의 반란이 결국 성공하고, 하나회 전원과 국방부 장관까지 압박하자, 재가를 내어준다. 그러나 전두광이 가져가려는 서류를 다시 끌어와 결재 일자와 시각을 추가로 적어 '사후재가' 라며 읊조린다.[4]
최규하는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 사망하기 전까지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입을 닫는 등, 결국 신군부를 묵인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개인적인 면모를 보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고, 인품은 훌륭한 것으로 평가 받지만, 신군부를 막으려는 노력도 없었고, 이후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등, 소극적인 면이 많아서 대통령은 커녕 정치가 몸에 안 맞는 인물이라는 평이 많다.[5]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국방부 장관을 데려올 때까지 전두환의 재가를 거부한 것과 정승화의 체포 동의가 사후재가임을 명시한 것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이 점에서 최규하를 모티브로 한 최한규는 엄혹한 시대에서 최소한이나마 자신의 도리를 다한 '양심적인 대통령'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한편으론 최규하가 죽을때 까지 12.12 사태에 대해 어떠한 증언도 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사후재가에 대한 대사를 "군인들이 무력으로 행한 쿠데타이므로 나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라는 무책임한 행동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6]
정상호 총장이 하나회에 대한 인사 처리를 허락받기 위해 국무회의 직전에 만난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하나회 처리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캐묻자
전두광에게 뇌물을 받은 것을 실토하고[7] 정 총장 알아서 하라며 마지못해 인사권을 허락한다.[8]
전두광 휘하 병력의 총장 납치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총 소리를 듣자마자 일행과 함께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한미연합사령부로 달아난다.[9] 어줍잖은 영어[10][11]로 횡설수설하자 베컴 사령관에게 "우리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당신은 여기가 아닌 육본으로 가야 한다"고 일갈을 듣는다.
한편 오국상이 육군의 정보망이 닿지 않는 미군사령부로 도망가자 진압군과 반란군 모두 장관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육군본부에서는 당연히 최고책임자인 국방장관이 일절의 연락도 없이 사라졌으니 난리가 났다. 전두광은 정 총장 납치와 정 총장 체포 재가를 동시에 받아낼 계획이었는데, 의외로 최한규 대통령이 장관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재가를 거절해버리는 변수가 발생했다. 전두광 측 역시 '합법적'으로 정상호 총장을 체포해 끌어내리기 위해선 오국상 장관의 신변 확보가 필요했는데 정작 장관이 보안사의 정보망이 닿지 않는 미군쪽으로 달아나버려 행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
줄곧 어딘가를 떠돌다가 뒤늦게 육본에 나타나긴 했다. 전두광과 신사협정을 맺었다는 민성배에게 "그니까
진도개[12]는 왜 때렸어요? 말로 할 생각을 해야지⋯."라며 안일 그 자체의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이후 육본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로 도피할 것을 명령한다.[13] 정작 수경사 대피를 명령해놓고 가장 먼저 또 어디론가 사라져 민성배도 당황한다. 혼자 아무도 없는 국방부로 달아났다가 2공수[14]에게 끌려가고[15] 그 뒤로는 아예 반란군 편에 붙어 관객들의 혈압을 올린다. 끝까지 반란을 진압하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에게 회군 명령을 내렸지만 듣지 않자, 직권으로 직위해제까지 시켜버리며 반란 성공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이태신이 체포되자 반란군들과 함께 양주를 마시고 농담 따먹기를 하며 이게 진압군의 최고 지휘자가 맞나 싶은 뻔뻔함을 보여준다.
노태건이 술을 올리며 아까는 죄송했다고 말하자 "아이 괜찮아~ 나도 다 애국심에서 그런 거야~"라며 너스레까지 떤다. 이후 하나회 장성들과 함께 대통령에게 정상호 참모총장 체포 요구서를 제출하여 재가를 받으러 간다.
김의성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익살맞은 연기 덕분인지
개그 캐릭터로서 호평받고 존재감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무대인사를 다닐 때도 다른 배우들보다 나중에 등장하면서 명대사(?)인 "야, 나 많이 찾았냐?"를 시전하면 경악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이어 "Fine Thank You, and You"를 시전하며 반응을 즐기는 영상이 많다.
[ 실제 인물 ]
노재현은 사건 이틀 뒤인 12월 14일 사임했다. 이후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화학연구원 이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장 등 역임. 2019년 사망.
작중 노재현이 모티브가 된 오국상은 전혀 군인같아 보이지 않지만, 모티브가 된 실제인물 노재현은 육사 3기 출신으로 육사 5기인 정승화 총장보다도 선배 군인이다.
6.25 전쟁에도 소령 계급으로 참전[16]했고,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지내고 예편한 군 경력 끝판왕이었다.
노재현은 영화에서처럼 현장에서 장태완을 직위해제 시키거나, 반란군에 찰싹 붙지는 않았다. 관객들의 몰입도와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영화의 각색이다.
다만, 굉장히 답답한 행보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노재현 장관은 공관에 있다가 총소리가 나자마자 가족과 함께 부리나케 단국대 캠퍼스 안으로 달아났고[17], 미8군 사령부에 갔다가 실병력이 없는 국방부로 돌아왔으며, 반란군에게 잡힌 뒤 장태완에게 저항을 멈추게 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닌 것은 아니고 처음에 육본 벙커에 가서 상황을 보고 받은 뒤 미8군 사령관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야전부대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해 미군 사령부로 갔던 것이다. 문제는 사령관의 동의를 못 얻었으면 이후 안전한 미8군 사령부나 육본 B-2벙커에서 끝까지 버티며 시간을 벌기만 했어도 진압군에 유리해졌을 텐데 방어병력이 적은 국방부에 있다가 허무하게 체포되는 생각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따지고 보면 한미연합사에 야전부대 이동을 부탁한 것도 그리 뛰어난 판단이라 볼 순 없다. 미군 입장에선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이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세워지는 것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의 위협이 있는 와중에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믿고 부대 이동에 동의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리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인근에 있는 9공수여단(영화에선 8공수)를 즉시 출동시켰듯이 국방장관인 노재현이 가용할 수 있는 부대들을 바로 출동시키는 결단을 했다면[18] 진압군 측이 훨씬 유리해질 수 있었는데, 우물쭈물거리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국방부에 무작정 복귀하는 멍청한 짓까지 저질렀기에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리하면 반란군을 막으려 그 나름의 노력을 하긴 했으나,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장관까지 오른 베테랑 군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안일하고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여기에 각색을 더해 멍청한 데다 꼰대이고 양심까지 없는 악역으로 강화를 시킨 것.
전두광이 2차로 대통령 재가를 얻겠다고 찾아갔을 때 최 대통령과 같이 이야기를 하던 모습으로 첫 등장. 나름 상식인 포지션이라 참모총장의 체포 사건과 총격전을 언급하며 전두광을 추궁하나, 나중에 하나회의 군 장성들과 함께 다시 들어닥쳐 강압적으로 재가를 요구하는 전두광 앞에 할 말을 잃고 만다.
[ 실제 인물 ]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기 직전까지 국무총리로 재임하며 신군부의 권력을 견제했지만, 끝내 전두환에게 밀리며
5.17 내란 다음날 사임했다. 이후 삼성물산 회장 등 역임. 2007년 별세.
10.26 사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고, 작중 시점에서는 고문 수사를 당하고 있다. 이후 정 총장에게 전두광이 억지 혐의를 씌우려고 할때 보안사 인원들이 다시 김동규를 찾아가고, 고문당하며 괴로워하는 소리가 닫힌 문 너머로 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등장은 여기서 끝이지만 이 영화의 시작점이 된 인물.
[ 실제 인물 ]
1980년 5월 내란목적살인죄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전두환은 김재규의 부인과 동생에 대한 보충수사를 명령했고, 이들은 모진 고문을 견딘 끝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유가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사범위를 친인척과 지인까지 확대한다.
육군참모차장.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의 부재로 진압군 진영의 최고지휘권자가 되었다.[24][25] 직속상관인 참모총장 정상호의 납치 연행이 분명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못하고 어영부영한 모습을 보인다. 전두광을 체포하라는 이태신 소장의 명령을 위계와 계급으로 묵살했고[26] 김준엽 헌병감과 공수혁 특전사령관의 호소까지 날려버리며 전두광의 반란 성공에 일조한다. 또한
진돗개 경보를 빠르게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미적거리기까지 하며 신속한 대응을 내리지 못한다. 공수혁 특전사령관이 반란에 가담한 2공수를 원대복귀시키고,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박기홍의 8공수를 설득해 진압군으로 포섭하며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전두광의 거짓
신사협정 제안에 홀라당 넘어가 도로 8공수의 진입을 되돌리는 엄청난 트롤링을 벌이기까지 했다.[27]
심지어 나중에 합류한 오국상 국방부 장관이 육본을 버리고 수경사로 대피하자는 제안에도 조금의 반대 없이
육군본부와 B2 벙커를 포기하고 휘하 장성들과 병력을 모두 데리고 도망쳐버린다.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로 도망간 소식을 들은 반란군은 폭소를 터뜨리며 안도했다.[28] 전두광은 대한민국 최고의 요새인 육본 B2 벙커를 버린 민성배 등 진압군 지휘부를
똥별이라며 비웃었고 한영구는 도망치는 이들의 소식을 듣고는 하이고 븅신들~이라며 비꼬았다.
감독의 전작
아수라의 메인 빌런
박성배[29]와 이름이 같은 것을 보면, 감독이 이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평소 외모도 박성배와 스타일이 비슷한 데다,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비열한 면모도 판박이다.
[ 실제 인물 ]
윤성민은 사건 이후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등 반란군과 대척했던 진압군 측의 장성들이 대부분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것에 반해, 윤성민 중장은 신군부 측에 포섭되어 대장 진급에 성공했다.[30] 제1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겸 대간첩대책본부장,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사실상 신군부의 일원으로 행동했고
녹화사업 등을 진두지휘했다. 국방장관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대한방직협회장을 지냈으며,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12.12 군사쿠데타는 명백한 반란이었다고 증언해 신군부측 변호인에게 기회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다. 2017년 사망하여 현충원에 묻혔다.
전두광이 눈엣 가시로 여기는 3명의 장성 중 하나로 이태신, 김준엽과 함께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작전명 '생일집 잔치'에 의해 이태신, 김준엽과 함께 고급 요정에 전두광의 생일축하 명목으로 앉아 있었고, 이를 수상쩍게 여긴 이태신이 나가려는 걸 계속 기다리자고 하지만,[33][34] 정상호 총장이 납치되었음을 알고 깜짝 놀라 특전사령부로 긴급히 복귀한 후에는 진압군 측에서 적극적으로 반란군들을 진압하려 애쓴다. 2공수여단 이 대령에게 무전을 걸어 지금 서울로 쳐들어오면 그땐 진짜 전쟁이라며 바로 원대복귀를 한다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며 회유책을 던져 2공수를 원대복귀시킨다. 또한 민성배를 비롯해 답이 없는 육군본부 장성들을 향해 김준엽의 도움으로 스피커폰을 틀어 반란군들과 협상을 하려 들다니 제정신이냐며 일갈하기도 한다.[35][36]
마지막에는 김창세가 지휘하는 4공수여단 병력이 특전사령부로 쳐들어오자, 자신은 홀로 사령부를 지키고자 초연한 모습으로[37] 휘하 장교들을 전부 사령부 건물 바깥으로 내보내는데, 끝까지 곁에 남은
오진호 소령에게 '똑똑한 줄 알았더니 좀 모자란 데가 있는 거 같다'며 에둘러 감사와 신뢰의 뜻을 표한다. 이후 사령관실을 공격한 4공수와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어 쓰러진다. 자신을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한 오진호 소령을 향해 절규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38]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한 4공수여단장 김창세, 오진호를 죽인 박수종을 질타하는 강직함을 보여주지만, 김창세의 부하들에 의해 결국 연행된다. 에필로그에선 중상을 입어서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잠시 얼굴을 비춘다.
흰머리에 안경까지 쓴 덕분에 꽤나 중후하고 점잖은 이미지가 되면서[39] 악역이나 가벼운 감초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
정만식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 실제 인물 ]
1960년대 후반에 공수부대와 인연을 처음 맺었다가 70년대 중후반에는 대한민국 특전사의 대부격인 인물[40]이던
정병주 장군은 사건 직후 보안사에 가장 먼저 끌려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다 총격에 의한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를 일으켜 국군통합병원에 이송된다. 영화에서 연행 후 에필로그까진 해당 부분이 생략된 것. 이 후 치료를 받던 80년 1월에 강제 예편된 뒤 3월에 퇴원한다.[41], 이후 80년 6월까지 신군부의 감시를 받는다. 민간인 신분으로 신군부 집권에 지속적으로 항의하다가
노태우 정부 초기인 1988년 10월에 실종. 이듬해인 1989년 3월에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단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타살 의혹이 있었으나 자살로 사건 종결.
반란 진압 당시 장태완 장군이 가장 먼저 포섭한 장성으로, 연희동 요정을 나서던 그가 반란임을 직감하고 정병주 장군에게 "여보, 정 선배!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래요?"라고 하니 "이게 무슨 소리야? 생명을 같이하자!" 하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고 한다. 이후 병력 출동을 요청하는 장태완 장군에게 9공수 여단장 윤홍기 준장은 갑종 출신이라 하나회와 연이 없다며 출동시켰다.[42]
진압군 측에서 끝까지 이태신을 보좌한 몇 안 되는 참군인 중 한 명. 영화 첫 씬인 B2 벙커에서 당시 육군본부 소속 이태신 장군이 강동찬 대령에게 상황을 물어보면서 등장한다. 이후로 이태신이 수도경비사령관에 취임하고 본인의 휘하 지휘관들의 인사 기록과 신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다. 어떤 지휘관들이 하나회 소속인지, 유사 시에 사령관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있을지 이태신에게 가감없이 조언을 남긴다. 군사 반란이 일어난 이후에도
이태신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끝까지 보좌한다.
그러나 육군본부의 트롤링으로 인해 반란군들이 완전히 서울을 장악하게되면서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지게 되었고 이태신이 자살행위와도 다름없는 출동명령을 내리자
그에게 권총을 빼들어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 수 없다는 뜻을 보인다.[45] 그러나 이태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보고[46][47] 결국 완전무장한 채로 다시 나타나 비장하게 수경사 병력 104명의 결의를 다지고 출동시킨다.
[ 실제 인물 ]
박동원은 12.12 군사반란 이후 진압군 측에 선 것 때문에 바로 예편될 뻔 했으나,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후임으로 온 노태우의 도움으로 겨우 예편을 면했다. 그 뒤 보안사령관으로 영전한 노태우가 힘쓴 덕에 준장 진급에 성공했다. 그러나 2사단 부사단장(✯), 동원사단 훈련단장(✯) 등
한직만 전전하다 1987년 6월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2012년 별세.
유희종 대령
배우: 송영근
모티브: 구명회 대령
수도경비사령부 야전포병단장
보안사 문일평 대령이 이태신을 연희동 만찬에 초대하기 위해 수경사 야포단 포격훈련장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태신이 30, 33경비단 외에 하나회 소속 간부가 있는지 묻자 "한 마리도 없습니다. 야포단은 사령관님의 명령에만 따를 겁니다."라고 답하며 힘을 실어준다. 극 후반 이태신이 반란군 수뇌부들이 모인 30경비단 포격을 지시할 때 포격 범위로 인해 우려를 표하지만, 결국 지시에 따르게 된다. 다만 오국상 국방장관의 중지 명령으로 실제 포격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어 조명탄으로 시도했고, "죄송합니다. 사령관님의 명령을 이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무전으로 사령관에게 전달한다.
이태신이 반란군 동태를 확인하면서 반격을 꾀할 때 전차부대의 상황을 전달한다. 이후 이태신의 최후의 결전에도 함께한다.
[ 실제 인물 ]
제8보병사단 사단장(✯✯),
국군정보사령관(✯✯✯) 역임. 대한중석 사장 역임. 처음부터 끝까지 진압군과 함께하는 조지호 대령과 달리 실제 이진백은 신윤희 헌병단 부단장, 김진선 상황실장과 장태완 사령관 체포에 동참한다. 직책만 같을 뿐 캐릭터는 아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친형은 '군번줄 발언'으로 유명한 하나회 출신
이진삼 예비역 대장이다. 당시 육군 사격지도단장을 맡고 있어 반란군에 참여하진 않았다.[48] 이진삼은 반란 이듬해 진압군에 속했던 윤흥기의 뒤를 이어 9공수여단장을 맡았으며, 이후 노태우 라인을 따라가며 육군참모총장까지 오른다.
박기태 준장
배우: 이기훈
모티브: 김기택 준장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 실제 인물 ]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11기 동기지만 하나회 소속은 아니다보니 진압군 편에서 장태완 장군을 도우며 반란군 명단을 전달해주는 등의 역할을 했다. 다만 수경사 검문소를 지나는 반란군 1공수여단 병력의 통과를 방조했다는 비판도 있다. 반란 주역과 동기라는 이유 때문인지 쿠데타 주동자들이 함께한 기념촬영에도 등장하며,[49] 향후 소장까지 진급한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드라마
제4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제5공화국 등에서는 장태완 사령관을 보좌하는 핵심 참모로 나왔지만, 상술한 행보 등이 문제가 됐기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는 비중이 없어졌다. 대신 박동원 작전참모를 모티브로 하는 강동찬 대령이 그 포지션을 물려받았다.
이태신이 수경사에서 진압 작전을 계획할 때 나처럼 하나회 소속이 아닌
갑종 출신 지휘관이라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처음 언급한다.
2공수여단과 9보병사단이 수도 서울로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8공수여단이 서울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병력을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반란군 측이 군 내 하나회의 연줄을 이용해 반란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도록 수를 써놓은 상황이었고 박기홍 준장은 포섭되지는 않았으나[55] 다수의 공수여단이 이미 하나회 소속인 만큼 전세가 기울어졌다고 판단해 출동을 거절한다. 그럼에도 이태신의 계속되는 설득,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일깨워주는 진솔한 태도에 결국 8공수여단을 출동시킨다.
그러나 이태신의 노력과 박기홍의 결단이 무색하게 반란군이 서로의 공수부대를 함께 물리자고 제안한 거짓 신사협정에 육군본부가 속아넘어가면서 8공수에게 병력 복귀 명령을 내리는 최악의
트롤링을 저지르고 말았고, 박기홍은 서울을 코앞에 놔두고 좌절하는 장면으로 출연이 끝난다.
[ 실제 인물 ]
12·12 군사반란 직후강제예편은 면하고 소장으로 진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군부 세력에 의해 사단장은 해보지 못했고 1980년 육군 본부 교훈처장으로 근무하여 1983년 1월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차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에도 자신의 회군으로 인해 반란군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이후 1993년 7월 정승화 예비역 대장 등과 함께 전두환 등 12·12 주도세력 34명을 반란죄 등으로 고소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전립선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12·12 쿠데타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56] 2013년 별세.
공수혁 특전사령관을 잡기 위해 사령부를 습격한 반란군 4공수여단 병력에 맞서 공수혁과 단 둘이서 권총 한 자루로 끝까지 저항하다, 수류탄 폭발에 부상을 입고 총상을 입은 공수혁을 지키려다가 여러 발의 총상을 입으며 결국 처참하게
전사한다. 대치한 반란군 중에는 자신과 형동생하는 사이인 박수종 중령도 있었다.
배우 정해인은 감독이
D.P.를 보고 좋아하게 되어서 캐스팅했다고 한다.[64] 한준희 감독에게 부탁했고, 3회차를 찍게 됐다고.
담당 배우 정해인의 얼굴이 동안인지라 괴리감이 다소 느껴지지만 모티브가 된 실제인물
김오랑 중령이 전사했을 당시의 나이와 정해인의 개봉 시기의 나이가 똑같다.(촬영 당시에는 1살 차이)[65] 실제로 배우 정해인과 같은 연배의 장교들은 보통 2011년에 임관했으며 2023년 현재 진급 선두주자들은 소령이니 정해인의 비현실적인 동안 때문에 묻힌 사실일 뿐 군대 현실 및 고증 반영을 잘한 셈이다.
정작 실존 인물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정해인의 캐스팅은 나이차 부분을 제외하면 옳았다는 평이 많다.
대만 개봉 포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 위에 표기된 대표작은 DP시즌2.
[ 실제 인물 ]
실존인물
김오랑 소령은 영화에서처럼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곁을 혼자서 마지막까지 지켰으며,
제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의 지시를 받은
박종규 중령에게 저항하다가 그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전사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이 김오랑 소령과 박종규 중령은 딱 1기수 차이의 선후배 관계였고, 서로 공관 이웃으로 부인들끼리도 친하게 지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기에 더욱 충격을 주었다.
당시 상황을 잘못 파악한 육군 지휘부를 묘사하기 위한 무능한 장성들 중 하나이다. 신군부가 전방에서 병력을 빼오기 위해 시간을 끄는 와중에 도리어 '우리가 시간을 끌면 저놈들이 지칠 것'이라는 헛소리를 하는
발암캐다.[69] 이 소리를 듣다못한 김준엽 준장이 '초동 대처가 중요한데 시간을 끌면 어떡하냐'고 소리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도리어 "깜짝이야. 헌병감, 사람 옆에 두고 소리 지르면 내가 무안하잖아요"라고 타박을 준다.
육본 지휘부 중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더불어 반란군 무력진압을 주장했던 장성 중 한명이다. 다행히 예편당하지 않고 육군대학 총장을 거쳐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영전했으나, 1980년 5월 17일 열린 전군지휘관 회의에서 유일하게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반대하며 맞섰다. 정확하게는 회의 중 반발하였지만, 하나회 장성들이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비상계엄 확대 찬성'에 대한 백지(白紙) 의결서를 내밀자 다른 장군들처럼 수결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이 일로 신군부에 미운 털이 박혀 동년 8월 강제 전역조치됐다. 2002년 별세. 외손자가
김성회 국회의원이다.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차장을 필두로 장성급 장교들이 모두 도망친 상황에서 홀로 남아있던 김준엽 헌병감과 함께 육군본부를 지키고 있던 헌병대 병사 중 한 명. 장갑차를 몰고와 선제사격을 가하는 반란군들을 상대로 저항조차 못하던 다른 헌병대들과 달리 반란군들이 B2 벙커 문앞까지 당도한 상황에서 끝까지 총을 놓지 않고 저항하려 했으나 돌아온 건 반란군들의 총알 세례뿐이었고 결국 처참하게 전사하고 만다. 출연이 아주 짧지만,
병 계급 등장인물 중 작중 이름이 밝혀진 유일한 인물이다.
앞서 똑같이 반란군의 총격으로 전사한 김오랑 소령은 꽤 알려져 있던 일화였지만 정선엽 병장의 죽음은 몰랐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 더군다나 장성급 장교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영관급, 위관급 장교도 아니고, 하다못해 부사관조차 아닌 일개 병사의 신분으로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점,[77][78] 육군본부 내 장성들이 모두 도망치는 바람에 극소수의 헌병대만 남게된 전후 상황, 그들과 달리 도망치지 않고 본연의 임무를 지키려다가 전사했다.[79][80]
[ 실제 인물 ]
정선엽은 당시 국방부 제50헌병중대 소속으로,
김오랑 소령과 함께 진압군에서 나온 두 명의 전사자 중 한 명이다.[81]
실제 정선엽 병장은 "중대장의 지시 없이는 총을 놓을 수 없다"며 반란군 측의 무장해제 지시에 불응해 끝까지 저항했고, 몸싸움 끝에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게다가 원래 말년이라 보안실에 배치될 예정이었는데, 후임이 어려운 벙커 근무를 하게 될 것을 우려해 본인이 자원해 이곳에 배치된 것이다.
#[82] 12.12 당시 군생활 수십년 한 수많은 장성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배신하거나 멍청한 지휘로 트롤링을 하는 와중에[83], 의무복무중인 23세 어린 대학생이었던 정선엽 병장이 누구보다 훌륭한 군인정신을 보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조민범 병장이 벙커 초병 근무를 서다 반란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조선대학교 본관 지하 대피소인데, 실제 모델인 정선엽 병장이 바로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77학번 출신이다. 우연이지만 모델의 모교에서 비극적인 장면을 촬영한 셈이다. 그리고 정선엽 병장은 휴학계를 내고 군 복무를 하던 중 전사해 학업을 마치지 못했는데, 영화의 흥행으로 정 병장이 주목을 받게 되자 조선대 측에서 명예 졸업장 수여를 결정했다.
또한 김오랑 소령과 더불어 12.12 군사반란의 유이한 사망자임에도 김오랑 소령은 미디어화가 꽤 많았던 것과 달리 정선엽 병장은 해당 작품이 첫 미디어화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대장을 보좌하는 경호장교. 정 총장 납치 상황에서 총장을 납치하려는 전두광 병력들과 교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었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겨우 빠져나와 이태신 수경사령관에게 정 총장의 납치, 하나회가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 성공한다. 두 명의 실제인물을 모티브로 하였다. 외부에 총장 납치사실을 전하는 것은 반일부 준위(육군참모총장 공관 관리장교)에서 따왔으며 경호장교라는 직책과 체포조에 의해 부상을 입은 것은 김인선 대위(육군참모총장 공관 경호장교)에서 따왔다.
배우의 인지도에 비해 등장이 매우 짧은데, 이준혁이 이 작품에서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맡겠다고 요청해서 출연하게 되었고, 액션을 잘 소화해서 길게 찍은 장면도 있었지만 영화가 너무 길어져 결국 편집됐다. 김성수 감독이 미안해했지만 본인은 전혀 상관없다며 영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정상호 참모총장이 보안사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총소리가 나자 곧바로 출동한다. 이 과정에서 참모총장이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대응하려 하지만 하창수 대령의 기습 총격으로 인해 팔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이후 보안사 체포조와 총격전이 벌어지고 총장을 태운 차량이 도주하자 멈추라고 소리 치지만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반란 당시 류병현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서 진압군 측이였으나
신군부는 반이 주한미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건드리지 못했고 사건 이후 12월 18일, 류병현은 합동참모의장(✯✯✯✯)으로 임명되어 1981년 5월 15일에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미국과의 친선관계를 고려하던 전두환 정권에서 미국통이던 류병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첫 등장 시에는 전두광 패거리의 참모총장 납치가 명백한 군사 반란이라는 이태신의 전화를 받고 분개하며 26사단과 수기사를 즉시 출동시키기로 하나, 이후 23시 15분경 하나회 조직망을 가동해 공작을 펼치는 장면에서 하나회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총장님이 안전하다는게 확실한거냐는 질문을 한 이후, 휘하 지휘관들이 개입하기를 주저하며 2공수가 다시 온다고 이태신에게 알려주고 지휘관들과 다시 설득 할테니 너무 기대 하지 말라고 말한 뒤 이태신과 통화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등장이 끝난다.
당시 이건영의 전화 통화는 모두 보안사에 의해 도청됐으며, 이후 '월간조선'을 통해 녹취 내용이 공개됐다. 당시 그의 대응은 명령 없이 출동하지 말 것, 아군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혼란을 틈타 남침할 수 있는 북한군을 경계할 것[89] 등 충분히 FM 메뉴얼에 가까웠지만 결과적으로 반란군을 막을 병력 출동을 막는 상황을 야기했기에 안타까움이 있다.
대응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확실한 건 그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이 때문에 신군부에 체포당하고 대장 진급 예정자였음에도[90] 강제 예편당했다는 것이다.[91] 당시 반란군 측은 3군사령부 보안대장 김부연 대령과 하나회 회원인 헌병대장 조명기 대령에게 사령관 체포를 명하지만, 적전에서 사령관을 체포할 경우 3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 될 것을 우려해 명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이건영 장군을 보필한다. 이건영은 상황이 정리된 13일 아침 국방장관의 연락을 받고 국방부와 소환됐을 때 보안사에 의해 체포된다.[92] 이후 조명기 대령은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는 이유로 하나회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준장으로 예편한다.
처음엔 진압군 편에 있었으나 보안사에서 모든 현재 통신망을 감청중이며,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협박하자 반란군의 진입을 묵인하게 된다. 이후 30사단 90연대가 중앙청으로 출동하며 반란군으로 합류한다. 그러나 행주대교 초소 병력들은 2공수여단 병력과 충돌해 제압되고 말았다.
[ 실제 인물 ]
박희모는 갑종 9기 출신으로 서울 인근 충정부대였던 30사단장이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박희모는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라는 육본의 지시를 받았으며 또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부터 '1공수가 행주대교를 통해 서울에 진입할 우려가 있으니 30사단이 이를 차단해줄 것', '반란군인 보안사령관 전두환이나 직속상관 제1군단장 황영시의 지시를 받지 말 것' 등의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도청한 보안사령부에서 박희모를 회유하였다. 결국 30사단은 1공수의 행주대교 통과를 방관하였고 1공수여단은 서울에 무혈입성하여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해버린다. 이후 박희모는 아예 1군단장 황영시의 지시에 따라 30사단 90연대를 고려대학교로 출동시키며 반란군에 가담하였다.[93]
이 공로로 박희모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합동참모본부장을 지냈고 1985년에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1987년에서 1991년까지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산업기지개발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20년 별세
사단장인 모상돈 소장이 보안사의 협박에 넘어가 반란군 진입을 묵인하지만 초소에 있던 30사단의 병력들은 2공수여단의 진입을 막으면서 충돌이 발생한다. 물론 초소 병력이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다보니 2공수에게 행주대교를 손쉽게 장악당한다. 제압 과정에서 총을 꺼내들어 맞서지만 힘없이 빼앗기고 제압된다.
군인 신분임에도 자기들끼리 "형님, 형님" 하거나[98]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각 잡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고 반존댓말을 사용하는 모습이 군인보다는 마치
조폭이나
정치깡패들을 연상케 한다. 초반 전두광과 무리들이 육본 복도에서 걸어오는 장면에서는 맨 뒤의 탁재오 준장이 대놓고 보행하며 흡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상당히 껄렁껄렁한 폼으로 디렉팅되어 진짜 조폭 무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중 가장 선임인 전두광과 노태건은 같은 소장이지만 이태신보다 후배고, 다른 인물들은 전부 이태신보다 하급자들인데 마주 걸어오는 이태신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99]
이를 돌려서 비판하기 위해, 두 번째 재가를 얻으러 최한규 대통령을 찾아간 전두광이 국무총리를 협박조로 다그치는 한영구에게 너스레 떨듯이 "우리가 깡패가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대사를 치기도 한다. 대통령에게 당장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내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반란군이 진압군과 전쟁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협박하는 것이냐고 항의하자 "말귀 못 알아들으시네 정말..."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도 물론이고, 모든 군은 원칙적으로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국무위원의 수장격인 총리에게 이런 식으로 무례를 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하극상이다.
하나회를 후원하는 장성으로 선배 장성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 모티브가 된
황영시가 권위 의식이 매우 강했다는 점을 반영했는지, 전두광의 연희동 자택에서 열린 술자리에서 뒤늦게 합류했는데, 자리에 있던 소장 이하 하나회 회원들[101] 모두가 일어나서 예의를 표한다. 높은 계급과 기수 차이를 이용해 전두광에게 이리저리 딴지를 걸거나 신경질을 내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만[102] 정작 사건이 터지자 반란을 주도한 전두광에게 내내 끌려다니며 다른 선배 장성들처럼 전황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계획에 여러 차례 위기가 발생하고 그럴 때마다 중도에 이탈하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최종적으로 반란 계획에 큰 트롤링은 일으키지 않았고[103] 결국 반란 성공 후 주요 보직을 꿰차게 된다.
[ 실제 인물 ]
황영시는 영화에서는 전두광에게 끌려다니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두환과 의기투합하여 반란을 기획하고 작전 지시를 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황영시는 12.12 군사반란 이전부터 이미 전두환, 김윤호와 군 개혁방안을 두고 논의했었고 선배 장성들 중에서 정승화 체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사전에 전달받은건 황영시 밖에 없었다. 또한 사건 당시 제1군단장 황영시는 선배 장성들 중 유일하게 병력을 동원하는데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104], 수도군단장 차규헌[105]과 달리 1군단 예하 9사단, 30사단, 2기갑여단 등의 부대 출동을 직접 지시·관여하였다.[106]
사실 12.12에 가담한 전두환(육사 11기)의 선배 장성들인 황영시(육사 10기), 유학성(정훈 1기), 차규헌(육사 8기) 등은 하나회 회원이 아니다. 하나회는 처음으로 정규 4년제 교육을 받은 11기 기수에서 시작된 비밀 사조직으로 그 이하의 기수부터 가입이 가능했다. 즉 11기보다 윗 기수 선배들은 하나회의 후원자들이었지 일원은 아니었다.[107] 황영시는 당시 전두환보다 상급자였던 중장 3인방(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중 가장 연장자이지만 가장 후배였다.[108] 드라마 제5공화국에선 기수 선배지만 나이는 1살 어린 유학성과 기수 후배지만 나이는 1살 많은 황영시가 상호 존대하는 것으로 묘사됐다.[109] 본작에서는 보다 단순하게 나이=계급으로 하기 위해서 한영구가 배송학에게 "형님, 이렇게 될 거라고 했죠"라고 하는 식으로 후배면서 나이도 아래인 것으로 나왔다.
황영시는 사건 직후 육군참모차장(✯✯✯)에 임명되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경 진압을 이끌었으며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3야전군사령관(✯✯✯✯)을 거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제11-12대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반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고 사면되었다. 2022년 사망했다.
한영구와 마찬가지로 하나회를 후원하는 장성 중 한 명으로 직급은 국방부 군수차관보.[111] 한영구에 가려져서 그렇지 여기도 만만찮은 쫄보였다. 기수도 높고 중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중얼거리며 쭈굴대는게 특기다. 이태신과의 통화 장면에서도 도희철에게 떠밀려서 억지로 수화기를 잡지만,
이태신의 기에 눌려 "이기 위아래도 없냐?"는 대사를 중얼거리기만 하고, 야포 협박 때도 화장실 핑계로 내빼려는 등 도움이라고는 1도 안되는 인물로 묘사된다.[112] 이 영화의 반란군 캐릭터들이 으레 그렇듯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모양인지, 반란 성공 이후 오국상 국방장관에게 억지로 양주를 먹이기도 한다. 참고로 실제 모티브가 된 유학성은 정훈사관 1기지만 여기서는 육사 8기라고 나온다.[113][114]
배우
염동헌이 실제 인물
유학성과 빼다 박은 수준의 외모 싱크로율을 보여주어서 캐릭터컷이 공개되었을 당시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배우 염동헌은 2022년 12월 2일
간경화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이 작품이 유작이 되었다. 그래서 영화 엔딩 크레딧에 그를 추모하는 문구가 올라왔다.
[ 실제 인물 ]
유학성은 하나회를 후원한 중장들 중에서도 가장
한직에 머물던 인물이었고, 별 일 없으면 전역할 운명이었지만[115], 쿠데타 성공 이후로는 경기도권 전방부대를 책임지는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되고,
전두환의 추천 덕분에 대장으로 예편하고 제11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어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된 이후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에는 제12,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반란혐의로 재판을 받던 도중인 1997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하나회의 후원자 중 한명으로 반란군 수뇌부 중 기수가 가장 높은 인물이다. 한영구, 배송학과 더불어 줏대없는 인물로 그려지며 위기상황마다 전두광에게 징징거리는 역할이나, 한편으로는 위 대사처럼 반란에 노태건 다음으로 가장 먼저 지지 의사를 밝혀, 다른 하나회 회원들도 가담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 실제 인물 ]
차규헌은 육사 8기로 기수도 가장 높았던 데다가
5.16 군사정변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어 사건 당시에도 전두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건 직후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그걸 거절했는데 동기인
김종필,
김형욱 등이 중정부장을 하는 걸 보고 이골이라도 났는지 고사했다는 이야기와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 세력이 중정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고자 차규헌의 중앙정보부장 임명을 불허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육군사관학교장(✯✯✯)이 되었다가 육군참모차장(✯✯✯)이 되었고,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야전군사령관(✯✯✯✯)을 지냈다. 이후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 사망.
2공수여단장. 한영구가 선배 장성들의 구심점이라면 이쪽은 후배 장성들 중에서 목소리가 큰 편이다. 꽤나 과격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는데, 정 총장이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며 정치에 관심가지지 말라고 발언하자,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냐며 대놓고 이야기 할 정도다.[118]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이 "네가 1공수를 출동시켜 육본과 국방부를 장악해줘야 내가 마음이 편하겠다"는 지시를 받자 두 말 없이 전화해 출동시키는 등 믿음직한 충견의 모습을 보인 것과 반대로, 여기서는 노태건에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전화를 망설이자 노태건이 "형이 해줄까?"라는 은근히 독촉하자 그제서야 전화를 한다. 이태신의 패기에 밀린 2공수가 부대 복귀를 하고, 이에 전두광이 자신을 쏘라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2공수를 다시 출동시키라고 명령하자[119] 여기에 주눅들어 명령에 따르는데, 2공수에게 서둘러 가는 도중 운전병에게 전두광 형님이 시켜서 빨리 가야한다고 징징거린다.[120] 심지어 전두광의 '명령을 안 들을 거면 날 쏴라' 퍼포먼스가 인상이 깊었는지 이 대령을 보자마자 매우 어설프게 따라하는데, 좌중을 휘어잡기는커녕 웃기고 하찮게 연출된다. 전두광 말투를 따라하며 이 대령에게 "웃어?"라고 하는데, 정작 이 대령은 웃지도 않았기에 당황하며[121] "예? 아닙니다. 저 안 웃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전두광과는 비교되게 도희철은 이 대령에게서 권총을 빼앗을 때 "형님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좀!!" 소리를 들으면서 간신히 빼앗는다. 전형적인 조무래기 악당처럼 그려졌다.
[ 실제 인물 ]
박희도는 무장공비 침투를 막지 못했기에 진급이 누락당해 소장이던 육사 12기 동기들[122]보다 뒤쳐져 있었다. 군복을 벗을 뻔 했지만
정병주의 도움으로 간신히 직을 유지했다. 은인이자 12.12 당시엔 직속상관이었던 정병주에게 항명하고 반란에 동참하면서 그가 체포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반란 직후 소장으로 진급하며 충정부대인 제26보병사단장(✯✯), 이후 군사정권의 요직인 육군특수전사령관(✯✯✯),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지내고 1985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차기 대통령이 될 노태우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1년 더 유임까지 되었다. 이후 노태우가 5공 청산 여론을 등에 업고 하나회 내 전두환계 숙청에 들어가면서 보직해임되어 전역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12·12 군사 반란 가담자를 처벌하려 하자, 미국으로 도피한다. 1997년 12월 22일 12·12 군사 반란 가담자들이 사면된 뒤, 1998년 한국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조약이 발효되기 직전 귀국해 자수했고, 군인 연금이 박탈당했다. 현재는 극우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령관실 오진호 소령이 친구라고? 개인적인 유감은 없는 거니까, 군인답게 명령만 수행하면 돼.
사령관님께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위생병 안오면 니들이 모셔가라고 새끼들아!
4공수여단장. 도희철이 촐싹거리는 느낌이라면 이쪽은 배우의 이미지 덕분에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극중 초반 하나회의 회동에서 요란하게 경례를 붙이며[125] 나타난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공수혁 체포작전으로 전환되면서 등장한다.
작중에서는 박수종에게도 "사령관이 아니라 진압 대상자"라며 빨리 진압하라고 강요하는 등 공수혁을 마치 적처럼 대했고[126] 자신을 향해 널 자식처럼 아꼈다면서 전두광이 똘마니짓 하니 좋으냐며 일갈하는 공수혁에게 냉혹한 얼굴로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라고 조롱하듯이 말하는 오국상 못지 않는 악마같은 모습을 보였다. 진압 이후에도 공수혁의 부상이 심해 위생병이 오기 전까지 주저하는 부하들에게 "위생병이 없으면 니들이 모시라고!"하면서 옮기게 했다. 또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오진호는 신경도 안 쓰고 특전사령관실로 걸려온 이태신의 전화를 받고는 '특전사령관님은 방금 체포 되었고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 졌으니 수경사령관님 께서 불필요한 희생이 없도록 부탁드립니다'고 말하며 쓰러져 있는 오진호를 냉소적인 모습으로 쳐다본다. 오진호의 모티브인 김오랑 소령이 사건 직후 뒷산에 암매장 당했다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소름돋는 장면이다. 게다가
내년에 발생할
그날을 생각하면 더더욱 섬뜩할 것이다.
인간성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배우의 전작인
아저씨의
종석이 떠올랐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인물 최세창이 5.18을 직접 무력진압 했다는 의혹도 있는 만큼, 감독이 작정하고 전두광 못지 않은 악역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127] 여담으로 배우가 가진 인지도나 무게감에 비해 분량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평도 있었다.
[ 실제 인물 ]
최세창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까지 제3공수여단장(✯)을 맡고 있다가 제20보병사단장(✯✯) 임명 이후 군사정권의 요직인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고 제1군단장(✯✯✯),육군참모차장(✯✯✯)을 거쳐 제3야전군사령관(✯✯✯✯)까지 되었으나, 1기수 선배 박희도의 육군참모총장 유임으로
합동참모의장(✯✯✯✯)에 올랐다. 예편 후 대한태권도협회장, 대한광업진흥공사장을 역임하였고 노태우 정권 후반기 전두환계와의 화해차원에서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김영삼 정권 시절 12.12 군사반란 가담과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12월 22일 사면됐다.
처음 소개될 때부터 강동찬 대령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골수 하나회라고 언급된다. 역시나 반란 발생 직후 직속 상관인 이태신을 배신한다. 화가 난 이태신은 전화를 통해 수도사령부가 위치한 필동으로 복귀를 지시했으나 다른 장군들에게 전화를 떠넘긴다. 이후 이태신이 분노해 사살 대상자로 명령한다. 이태신이 30경비단 쪽으로 넘어오자 자신이 사살 명령 당한것 처럼 이태신을 사살 명령을 내리면서 저격총으로 그를 조준하지만 노태건이 보는 눈이 너무 많다며 제지한다.
[ 실제 인물 ]
장세동은 사건 이후 전두환의 심복이 되어
5공화국 출범에 기여했다.[128] 육군특수전사령부 작전참모(❁❁❁), 제3공수특전여단장(✯), 대통령경호실장(✯✯)(✯✯✯)[129],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하며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평화의 댐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 등 굵직한 범죄를 진두지휘했다. 실존인물의 네임벨류에 비해 영화에서의 비중은 적은데, 이는 장세동이 본격적으로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가 쓰리 허 멤버 중 허화평과 허삼수가 몰락한 이후였기 때문에 5공 출범 전의 시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는 비중이 낮을 수 밖에 없다.[130]
실제 역사대로 정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보안사령부 정보처장을 사칭하고 공관에 진입한다.[131] 나름 예의를 갖추고 총장을 녹음이 가능한 공간으로 모실 필요가 있다고 정 총장을 설득하려 하지만 일찍이 육군방첩부대장을 역임한 정 총장이 그 공간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는 바람에 무혈 체포는 물거품이 되어 공관 내 병력들과 총격전을 벌여 총장을 억지로 납치해 서빙고 분실로 데려간다. 이후 전두광은 수경사 야포단에 의해 전멸 당할 위기가 처하자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오국상 장관을 30경비단으로 모셔왔다.
하창수의 모티브가 된 허삼수는 허화평, 김진영과 육사 동기이고 동갑내기인 장세동보다 한 기수 후배인데, 담당배우인 홍서준은 전두광 역의 황정민보다 2살 연상이고, 배송학 역의 염동헌보다도 생일이 한 달 빠르다. 심지어 육사 선배인 장민기 역의 안세호와는 13살의 차이가 난다.
[ 실제 인물 ]
허삼수는 전두환 정부 초기 핵심멤버 쓰리 허(
허삼수 ·
허화평 ·
허문도) 중 한 명으로, 사건 이후 준장으로 예편한 뒤, 사정수석비서관,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허화평, 이학봉과 함께 이른바 보안사 3인방 중 1명이기도 하며, 전두환 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삼청교육대를 설계하고 관리한 인물이다. 허화평과 함께 2024년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신군부 인물이며, 보수논객으로 변신해 방송, 인터뷰 등으로 언론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허화평과는 달리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시는 여러 장군님들께서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사단장[132]님의 현명하신 결정, 제가 계속
청취하겠습니다.
본작의 신 스틸러 중 한 명이자 전두광 못지 않은 악인. 말끔하게 가르마를 타고 빗어넘긴 머리에 반듯한 근무복 차림으로
도청기를 들고 전화를 돌리며 진압군 측 장성들을 협박, "저희는 모든 걸 다 알 수가 있습니다~"라며 마치 놀리는 듯한 말투로 상대방을 회유하는 모습이나 진압군 측 통화를 도청하며 사악하게 웃는 장면이 그야말로 백미다. 특히 전화 내용을 감청 중일 때는 통화 중인 양자 사이에 한컷 차지해서 나오는 식으로 있다가 통화가 끝나면 컷이 넓어지며 화면이 전환되는 연출이 압권이었다.
모티브가 된 인물처럼 극중에서도 전두광의 오른팔로 움직인다. 총장 납치를 위해
자신들과 대립하는 장교들을 묶어두어야 했는데, 이를 문일평에게 직접 맡긴 것으로 보인다. 전두광의 송별연을 빌미로 이태신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나 전두광을 견제하던 이태신은 이를 완고하게 거절하는데, 이후 (이태신이 송별연에)확실하게 오는 것이냐는 전두광의 질문에 불확실한 태도로 대답을 하자 '문일평이가 이래 자신이 없나'라며 그를 얼마나 신임하는가와 함께 이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다. 물론 그 즉시 100% 오게끔 만들겠다는 대답을 하며 결국 이태신을 식사 자리까지 참석시키는 등 전두광의 최측근다운 면모를 보인다.
반란 상황 이외에는 전두광을 형님이라 부르면서 아부를 떨거나 거울을 비춰주고 담뱃불을 붙여주는 등 약삭빠른 모습을 보이며, 반란 성공 후 축하파티에서는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흥을 돋우기까지 한다. 마치 협박 전화를 하는 유괴범을 연상시키는 상당한 다크포스를 보여주던 전반부에 비해 마지막에 딸랑거리는 모습이 꽤나 괴리감이 크다. 결과적으로 반란군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청씬들의 임팩트가 강해서 그런지 배우 박훈은 무대인사를 나갈 때마다 '도청해서 죄송하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작중에선 보여준 연기와는 별개로 대령 치고는 너무 젊은 배우를 캐스팅 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으나, 실제 모티브가 된
허화평이 반란 당시의 나이와 배우 박훈의 나이가 같기 때문에 적절한 캐스팅이다.[133] 박훈은
10.26 사건 이후를 다룬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는 정진후(정승화) 대장을 보좌하는 김오룡(이재천) 중령을 맡았는데, 워낙 서울의 봄 때의 도청 연기가 강렬했기 때문에 언제 정진후를 배신하는지만 영화 내내 체크했었다는 후기가 종종 있다.
[ 실제 인물 ]
허화평 역시 전두환 정부 초기 핵심 멤버 쓰리 허 중 한 명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허삼수와 같이 준장으로 예편한 뒤,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이 된다.[134] 청와대의 다른 보좌진들은 별도의 건물에서 근무하는 반면, 허화평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5공화국 초기 그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정무제1수석비서관, 제14, 15대[135] 국회의원을 지냈다. 허삼수, 이학봉과 함께 전두환 휘하 보안사 3인방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의 눈 밖에 나면서 사실상
토사구팽 당한다.
5공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인물답게 김영삼 정부에서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법정에 세웠을 당시 모르쇠로 일관한 다른 5공 인사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항변하기도 했다. 조용히 말년을 보내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80대 후반이 다 된 나이에도 보수 논객으로 활동하며 종편이나 유튜브 채널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이태신의 수도경비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사열을 받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며 반란군 수뇌들이 최한규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으러 갈 때 경비단 병력과 함께 총리공관을 장악한다. 반란이 성공한 이후 기뻐하다가 이태신의 일갈을 듣고 착잡해진 전두광에게 "웃지 마라"고 한소리 듣는다.
[ 실제 인물 ]
김진영은 반란 당시 전두환 못지 않게 바쁘게 움직였던 인물 중 하나다. 한남동 공관에서 벌어진 총격전 상황을 확인하러 가면서 신윤희 수경사 헌병단장을 포섭했으며, 이후 자신이 속한 33경비단의 전차부대가 반란군이 모여있는 30경비단을 장악하러 오자 온몸으로 막아 설득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쿠데타 이후 출세가도를 달리며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육군3사관학교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교육사령관(✯✯✯),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하나회
숙군과정에서 가장 먼저 숙청됐다. 1997년 4월 12.12 군사 반란 가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김영삼에 의해 특별 사면되었다. 이후 안보 분야 연구와 기독교 선교활동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란군 측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인물. 고문 수사를 전담하고 있으며, 전두광을 태운 채 차량 도주를 할 때도 한 역할을 한다.
[ 실제 인물 ]
이학봉은 보안사 대공처장인
남웅종 준장의 직속부하 였으며
김재규,
정승화,
장태완 등을 고문하여 결국 자백하게 함으로써
5공화국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보안사령부 대공처장(❁❁❁)을 지내다 준장으로 예편 후
민정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역임하며,
김종필,
김대중 등에 대한 수사를 기획 및 지휘했고 제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허화평, 허삼수와 함께 전두환 휘하 이른바 보안사 3인방 중 한 명이었으며, 허화평, 허삼수가 전두환의 눈 밖에 나면서 쫒겨날 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4년 사망했다.
백운택은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육사 11기로, 다른 동기들에 비해 뒤쳐저서 동기들이 소장 2차 보직을 역임할 때도 본인은 아직 준장인[137]데다
한직인 71방위사단장으로 있었기에 힘은 없지만, 반란에 상당히 진심이었던 인물이다. 반란 이후 마침내 소장에 진급하였고, 노태우가 수경사령관이 되면서 공석이 된
요직 제9보병사단장(✯✯)직을 차지하였다. 이후 1982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요직인 제1군단장(✯✯✯)에 보임되어 재직하였으나, 재직 중 향년 49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5공 정권 시기에 군직 복무 중 사망했기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일찍 사망해버린 덕에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서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 되었다.
전두광의 집에서 반란을 모의할 때부터 절차를 강조하며 정상호 총장 체포 작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후 공수부대를 투입하려 하자 가장 먼저 반대 입장을 드러내지만 결국 두광에 동조하고 만다.
[ 실제 인물 ]
박준병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거친 후, 국군보안사령관(✯✯✯)을 재임하며
녹화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차기 육군참모총장을 두고
박희도와 경쟁했으나, 총선을 위해 차출되어 참모총장 직은 포기했다.[138] 제12,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 단, 박준병의 경우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의 병력 동원 요구를 거부했다는 것이 정상 참작되어 군인연금 등 예우를 박탈당하지 않았다. 이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후
1998년 재보궐선거와
16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2016년 사망한 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되었다.
영화에서는 노태건, 배송학, 한영구 등 다른 핵심멤버들과 더불어 반란 계획을 미리 전달받았다고 나오지만 실제 박준병은 반란 계획에 대해 모르고 경복궁에 모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20사단을 서울로 출동시키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거부한 점을 들어 쿠데타에 크게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12.12 군사반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물론 설령 처음 모일 때 몰랐더라도 사건이 끝날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니 그가 반란에 가담한 것은 분명하다.[139]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이후 초기에는 그와 12기 동기 박세직이 전두환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른 인물이자 3박의 또 다른 인물인 박희도보다도 앞서나갔다. 실제로 둘은 준장에 머문 박희도와 달리 군사반란 당시 이미 소장 진급에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 박세직이 전두환에 찍혀 나가리된 이후 위에 언급된 것처럼 박희도가 12기에서 육군 참모총장에 오르고, 박준병은 대장으로 명예진급된 후 정치권으로 차출된다.[140]
개봉 전 예고편에서 전두환,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백운택과 총리 공관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와
박희도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추정됐으나, 박희도, 최세창과 이름이 비슷한 '도희철'과 '김창세'라는 배역이 나오면서 장기오로 확정됐다.
[ 실제 인물 ]
사건 이후 육군교육사령관(✯✯)에 보임되어 신입 장교에 대한 교육을 총괄했고
군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총무처 장관에 임명되었다. 1987년 중장으로 전역한 뒤 김영삼 정부가 12.12 군사반란 가담자를 처벌할 것을 눈치채고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1998년 귀국해 자수했다. 이후 군인연금을 포함한 전직 장성 예우를 박탈당했다.
한남동 공관에서 정상호 납치 공작이 벌어지는 동안 대통령 재가를 받으러 온 전두광을 먼 길 오셨다고 반기며 인사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하나회' 소속이지만 쿠데타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전두광을 보좌하는 임학주 중령의 이상한 행동에 그를 닥달해 진실을 알아내고 전두광을 피신시키는 등 반란에 가담하게 된다.
[ 실제 인물 ]
정동호는 당시 장관급이었던 대통령경호실장의 직무를 고작 준장[143]이 수행중인 이례적인 상태인데[144], 당시 정동호는 경호실 상황실장으로 서열 4위였으나
차지철 경호실장 사망 후 경호실 차장
이재전 중장이 직무유기 혐의로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다가 예편되고,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김복동 소장까지 좌천되면서 직무대리를 맡게 됐다.
영화에선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몰랐다고 묘사되지만,[145] 사실 정동호는 반란군의 일원으로 부하인 작전과장
고명승 대령(마찬가지로 하나회)과 함께 경호실 병력을 이끌고 헌병들을 제압, 최규하 대통령을 사실상 감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영화에선 전두광과 노태우가 반란 전 하나회 소속 장성들과 주요 영관급들을 불러 계획을 설명하는데, 준장으로 최한규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고 있던 강 실장이라면 이때 같이 브리핑을 받았어야 정상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가 처음부터 전두광 편이라 헌병들을 제압했다면 전두광이 정문 앞에서 공관 헌병들에게 체포당할 뻔한 장면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육사 13기(하나회)라는 자막은 실제 정동호와 맞다.[146]
사건 이후 정식 경호실장(✯✯)이 되었다가 제5군단장(✯✯✯), 육군참모차장(✯✯✯)을 역임했다. 잘 나가던 중,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 때 행동이 문제되며 강제 예편당한다.
노태건 사단장의 병력 출동 지시에 "전방 병력을 서울로 빼는게 맞습니까?"라고 반문하지만 노태건의 완곡한 명령에 결국 병력을 출동시킨다.
[ 실제 인물 ]
구창회는 노태우의 명령으로 9사단 29연대, 30연대를 출동시켰다. 작중에선 생략됐지만 30연대가 삼송리[148]까지 출동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건영 사령관은 9사단에 급하게 연락했지만 구창회는 연대 출동 명령이 없다고 거짓 보고까지 한 후 그대로 부대를 출동시켰다. 쿠데타 이후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 당시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수도방위사령관(✯✯✯), 3군사령관(✯✯✯✯) 등 요직을 역임했다. 차기 육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됐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나회 일원이라는 이유로 예편당하고 만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전두광의 위로연이 열린 연희동 요정에 와있는 바람에 이태신에게 "넌 여기 왜 있어?"라는 꾸지람을 듣는다. 이후 위로연의 주최자인 전두광을 계속 찾는 이태신의 추궁에 시달리며 이리저리 요정 내를 돌아다니다가 반란군 측과 몰래 통화하는 모습을 들키고, 마저 이태신에게 추궁당하려던 찰나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이태신이 듣자 그 자리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사라지며 스리슬쩍 반란군이 모인 30경비단으로 복귀했다. 반란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보안사령부 위로 파티에서 다시 등장한다.
[ 실제 인물 ]
조홍은 반란 상황이 정리된 이후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병과장인 김진기 헌병감을 체포해 연행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이후 육군 헌병감(✯)으로 진급하여 고문 수사를 지휘했다. 예편 뒤에는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 대한손해보험협회장을 지내며 호의호식하지만
문민정부가 출범한 후 하나회를 숙청하자 미국으로 도주해 은둔생활을 했다. 도피 생활을 계속하던 중 2018년 캐나다에서 사망했다. 사망 이후 국방부가 도피생활 중인 조홍에게 꾸준히 군인연금을 지급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실제 연희동 요정에는 조홍 말고도 보안사 참모장인 우국일 준장도 있었다. 총리공관에 가 있는 전두환을 대신해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접대했지만 영화에서는 아예 존재가 사라져버렸다. 우국일은 하나회 출신이 아니다보니 쿠데타 계획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승화 총장 납치가 알려지며 모임이 파하자 함께 원대복귀를 했고, 그 뒤로는 별다른 행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안사가 반란을 주도한 탓에 쿠데타 이후 참모장 신분으로 기념사진은 찍었지만 더이상의 진급 없이 예편했다. 이후 1995년 12.12 군사반란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 체포조 중 한명으로 한남동 공관 병력을 무장해제 시키고 반란군으로 장악했다. 이어 전두광이 최한규 대통령에게 2차 재가를 받으러 갈 때 진영도와 함께 삼청동 총리 공관도 장악한다. 총장공관 권형진 준위와 마찬가지로 두 인물을 믹스한 캐릭터로 계급은 성환옥과 같으며, 수경사 33헌병대장이라는 직책은 최석립과 같다.
[ 실제 인물 ]
반란 이후 두 사람 모두 육군 헌병 병과 최고 보직인 헌병감(✯)을 지냈다. 이후 성환옥은 대통령경호실 차장과 감사원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최석립은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경호실장 자리에 올랐다.
도희철의 지시로 2공수여단을 인솔해 서울로 가던 중 참모차장의 군법회의에 넘기기 전에 당장 부대로 복귀하라는 상반된 지시를 받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무전기를 꺼버린 채 진격한다. 그러다 행주대교를 단신으로 막아선 이태신을 차마 치지는 못하고 차를 세운 채[155], 이러다 정말 군법회의에 넘겨질 수 있으니 상황을 좀 알아보자는 변 소령의 의견대로 다시 무전기를 켜는데, 마침 특전사령관의 즉시 자대로 복귀하면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이고 서울로 진입하는 순간 즉시 전쟁으로 간주한다는 무전이 흘러나오자 여단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이후 여단 정문까지 찾아온 도희철의 협박에 밀려 다시 서울로 진격한다.
실제 모습대로 특전사령관 전속부관인 오진호 소령의 절친한 친우이자 간부숙소도 윗집 아랫집으로 쓰는 막역한 사이로 등장한다. 특전사령부 진압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만 '친한 친구가 저기 있어서 주저되는 건 이해하지만 군인이면 군인답게 명령을 수행하면 된다.'는 김창세 준장의 말에 결국 사령부로 진입한다. 사령관실 진압 직전까지도 오진호 소령과 공수혁 사령관을 어떻게든 회유하여 빼내보려 했지만 김창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발포하고 만다.
[ 실제 인물 ]
박종규는 이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를 향해 직접 권총을 발포하기도 했으며, 제30보병사단 91연대장(❁❁❁)을 거쳐 제56보병사단장(✯✯)을 역임하던 중 문민정부의 하나회 숙청으로 전역하게 된다.[162] 이후 신군부 내란죄 등의 혐의와 관련해 수사를 받은 끝에 1997년 대법원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사면됐다.
사면 이후 모든 예우를 박탈당해 부인이 동대문 시장에 옷가게를 차려 근근히 살아갔다. 말년에는 식도암에 걸리는 등 병고에 시달렸는데, 이때 김오랑추모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병은
김오랑 중령을 사살한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이라고 전하는 등 자신의 과오를 후회했다. 2010년 사망했다.
이태신의 명령으로 총격전이 벌어진 한남동 공관으로 출동해 이태신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이후 반란군에 포섭됐는지 극 후반 이태신을 체포하는 역할을 맡는다. 영화 마지막에 하나회 단체 사진에서도 등장한다.
[ 실제 인물 ]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한남동 공관 총격전 상황을 확인하러 간 반란군 측
김진영 대령에 의해 포섭돼 사령관 체포에 가담하게 된다. 신윤희는 육군 헌병감(✯)을 거쳐 육군본부 헌병참모부장(✯✯)으로 영전했고, 1992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1997년 12.12 군사반란 가담으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됐다. 이후 군인 연금 등 예우를 박탈당했다. 2012년 '12.12는 군사반란인가'라는 자서전을 출판해 자신의 행적을 변명하고 장태완 장군을 비방해 온갖 비난을 받았다.
M16 소총을 장전하고 정 총장 체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 이후 참모총장 공관에서 소총을 들고 창문 너머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내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소총을 난사해 총장 전속부관에게 총상을 입힌다.
[ 실제 인물 ]
실제 역사에서는 10.26 사건 이후 김재규를 체포해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까지 압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중간에 일어난 압송차량 전복사고 등으로 김재규에게 정이 꽤나 들었고, 실제로도 보안사령관이었던 김재규에게 표창도 받은 경력이 있었기에 그에게 손을 대기 꺼렸으나 '당신이 데리고 왔으니 책임지고 수사하시오'라는 이학봉 수사과장의 지시를 듣고 본격적으로 김재규에게 폭행을 동반한 취조를 시작한다.
위 사진은 삭제장면 스틸컷이다 아마 오국상처럼 전두광을 좋은면으로 보는 사람으로 추정되며 또 진압군 편도 아니고 반란에 가담하지도 않은 오직 하나회 후원자로 추정.
나왔으면 더욱 흥미롭겠지만 아쉽게도 그의 분량은 모두 편집되었다.
[ 실제 인물 ]
진종채 중장은 육사 8기, 당시 제2야전군사령관이며 반란에 가담하진 않고 오직 하나회 후원자란 점과 5.18 민주화운동에 진압군이었단 점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불기소처분으로 처리되었다. 전두환 후원자라서 군사령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사령관이다.
정호용 소장은 육사 11기, 전두환,노태우와 동급생이며 당시 대구에 있는
제50보병사단의 사단장이다. 사단과 육본에서 거리는 매우 멀었고, 반란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다고 한다. 반란 이후 12월 13일, 정병주가 체포되어 특전사령관이 짤린후, 바로 정호용이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오르게 된다.
5.18 민주화운동때 광주와 서울 이 먼거리를 왔다갔다를 계속하여 공수부대의 현상 상황을 확인하였다.
정호용이 전두환과 같은 하나회여도 군인의 명분을 중요시 하는지
정병주를 지키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이 자기 동료들에게서 암매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군인이 당연한 일을 하다 죽었는데 어떻게 암매장을 할 수 있나"라고 강력히 항의해서 김오랑 소령은 1980년 2월 28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전두광 보안사령관의 부인. 비중은 거의 없고 자택에서 몇 차례 출연하는데, 극중 외모가 관객들로부터 실제 인물과 꽤나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순자 특유의
주걱턱이 싱크로율이 좋다. 사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실제 배우는 주걱턱이 아닌데, 전두환의 대머리와 마찬가지로 이순자의 외모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므로 특수분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부인, 집에 못들어가는 남편을 위해 사령부로 찾아와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자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이 있다.[183]
[ 실제 인물 ]
남편인 장태완 장군이 별세한 뒤 채 2년도 안 된 2012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주변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태완 장군 별세 후 우울증이 극심해져 여러차례 자살시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급된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 역시 실존인물로,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했으나 1982년 4월 인동 장씨 재실 근처인 칠곡군의 낙동강변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차지철 - 전두광이 10.26 사건에 대해 발표할 때
김동규가 죽였다고 나온 경호실장으로 언급된다.
박근혜 -
10.26 사건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발견한 9억원 중 6억원을 '큰 영애에게 건냈다'는 대사로 언급된다.
김일성 - 작중 공수부대와 전방 병력인 9사단을 동원하려다가 '이러다 김일성이 내려오면 어쩌냐' 식으로 여러번 언급된다.
신유경 - 실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부인이다.
체포조가 정상호를 속이고 면담을 하려하는 중에 정상호 가 '내가 집사람하고 외출을 나가야되서, 서두릅시다' 와 공관에서 총격이 터진 후 사실을 알게된 민성배가 급히 지휘부로 이동 중에 부관에게 총격 사실을 전달받자 숨차면서 '그래서 총장님 부인이..' 식으로 언급된다.
33경비단 전차부대장[185] - 이태신이 30경비단으로 보낼 전차부대장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조지호 대령은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차부대장이
진영도 쫄따구라 말을 안 듣는다 한다.
이태신의 아들 - 이태신이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던 중 강동찬이 "육본에 장군님들도 이건 아니라 하고, 이제 사령관님 혼자 남았습니다."라고 말리다가, "봄 되면 아드님 대학 입학식 때 꽃다발 들고 가셔야죠."라고 말할 때 언급된다.[186]
엄재민, 전대규 - 전두광이 문일평과 군 개편안은 짜는 장면에서 전두광이 "엄재민, 전대규 이 새끼들 아웃"이라고 언급된다. 직책과 계급은 언급된 바 없어서 실존인물은 불명이다. 하지만 하나회 멤버라고 추측 가능하다.[187]
원래
안성기가 배역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안성기가
혈액암 투병 중이었기에 취소되고 초반부에 영정사진[188], 영화 중간중간 전두광과 함께 찍은 사진[189]으로 등장한다.
비중은 잠깐 언급되는 것 외엔 없다시피하지만 실제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전두광이 굉장히 존경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작중에서 전두광은 노태건에게 "난 각하의 위대한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사무실에도 박정희와 둘이 찍은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였다. 박정희의 장례식 당시 전두광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 실제 인물 ]
실제로 당시 하나회는 군 내에서 박정희의 친위대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조직이었고, 박정희 역시 이들을 은밀히 비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수장인 전두환을 노골적으로 총애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 직후 육사 생도들의 지지 행진을 주도한게 바로 전두환으로, 그는 박정희의 가족 식사 자리에도 종종 초대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 당시 방만한 근무 태도로[190] 상관들에게 찍혀 준장 특별진급이 미뤄진 그를 계속해서 보호하고 특혜를 준 것이 박정희였다.
[1]
한편 다른 작품에서는 주조연 내지 메인 악역까지도 담당하는 경력 많은 배우들이 조, 단역으로 소비될 정도로 캐스팅 규모가 엄청나다. 정해인과 이준혁은 특별출연이니 그렇다 쳐도 김성오는 거의 단역 수준으로 소비된다. 다만 출연시간은 적어도 극적인 장면에 주요 악역으로 나오는 임팩트는 상당히 강렬하다.
[2]
정동환은
월남전 참전 용사며
전두환,
장태완 등을 비롯한 12.12 군사반란과 관련된 인물들과 함께 참전했다.
[3]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의 행동은 반란군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상황에 반전을 기대할 수 있게끔 하는 효과를 야기했다.
레드 테이프의 역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면.
[4]
이것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1심에서 12.12 사건이 반란수괴였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 전두환에게 사형이 내려진다.
[5]
애초에 최규하는 평생을 관료로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정치를 잘하길 기대하기 힘든 인물이다. 군인 출신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러나 관료로써의 최규하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6]
사실 이는 실존인물 최규하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조치이기도 했다. 최규하는 온화하며 검소하며, 결제 서류 하나도 꼼꼼히 챙기고 구내 식당비로 빌린 500원조차 철저히 갚을 정도로 청렴하고 관료로서는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다. 또한 고위 공직자임에도 인맥을 만들지 않아 처신에서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반면 공무원처럼 주어진 일은 철저히 신중하게 처리하지만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서는 우유부단하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 때문에 붙은 멸칭이 '최 주사'. 최규하가 사후재가를 요구하는 전두환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원칙주의자로서 신념을 지킨 그의 면모 덕분이지만, 국방장관을 끌고와 절차상 문제를 해결하자 대통령임에도 그대로 통과시킨 것은 그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7]
자기 딴에는 거절하려고 했는데 자꾸 주머니에 넣기에 어쩔 수 없이 받은 뒤 어디 던져놨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8]
사실 군 인사권은 각군 참모총장의 고유권한이다. 더군다나 당시 정 총장이 계엄령 하의 계엄사령관임을 감안하면 사실 장관에게 인사에 관해 보고하고 상의는 할 수 있어도 장관이 그걸 막을 근거는 없다. 아마도 만약 신군부가 폭주할 때 자기를 도와 같이 막아달라는 뜻도 들어간 듯하다.
[9]
보안사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한미연합사로 달아난 것 때문에 전두광도 오국상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며 뜻하지 않게 시간을 끌어줬다. 물론 본인과 민성배가 벌어준 시간값을 못하고 다 말아먹었지만.
[10]
여기서 나온 대사가 영어회화 초보를 상징하는 문장인 "Yes, I'm fine. And you?". 그 마저도 점점 갈수록 영어에서 그냥 한국어가 되어간다. 이후 대사는 "If this is 쿠테타, 노오스 커뮤니스트, 걔네가 롸잇 나우 하고 도발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자막: 이게 쿠데타가 맞다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이때다 하고 도발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미 대사가 한국어가 능숙한 인물이었기에 그나마 말은 통한다.
[11]
막상 이 배역을 맡은
김의성은
서울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이며,
할리우드 드라마에도 출연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유창하다.
[12]
표준어 상 진돗개가 맞지만 군 공식으로 진도개라 칭한다.
[13]
여기서 벙커를 끝까지 사수하자고 사정하는 헌병감
김준엽 준장에게 "어디 별 하나짜리가 장관한테 말 대답이야!"라고 호통을 치며 꼰대질까지 작렬했다. 사실 모티브가 된 노재현 국방부 장관 또한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며 대장전역을 했기 때문에 원 스타와 계급 차이가 크긴 하다.
[14]
실제 역사에서 국방부를 점령한 것은 1공수여단이지만 극중에서는 2공수로 각색되었다.
[15]
불과 몇십 분 전에 김준엽 준장한테 꼰대질을 하던 그가 일개 병사에게 손을 들고 "국방장관이야, 임마⋯."했다가 "알았으니까 나와!"라고 반말을 듣고, 심지어는 "오국상 국방장관입니다" 라고 존댓말을 하는 굴욕을 당한다.
[16]
실제로 50.6.25~26 고랑포 전투, 50.7.22~8.9 영덕-강구 전투 등에서 활약
[17]
국방부 장관의 공관이 소재한 곳은
한남동 공관촌으로 단국대학교 구 서울 캠퍼스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붙어있었다. 당시는 용인시 죽전동으로 캠퍼스 이전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이후 2007년, 단국대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으로 캠퍼스를 옮기며 그 부지를
금호건설 컨소시엄에 넘겼다. 현재는 그 자리에
한남더힐이 들어와 있다.
방탄소년단이 숙소로 쓴다는 그 호화아파트 단지 맞다.
[18]
작중 이태신이나 현실의 장태완은 다른 장군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열심히 설득을 해야 했는데, 국방장관이 직접 움직였다면 골수 하나회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장성들이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실제로 1공수여단(영화에서 2공수)은 특전사령부와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한번 회군하긴 했다. (여단장
박희도가 직접 찾아가 다시 출동시킴) 만약 국방장관의 지시라면 최소한 몇몇 부대의 행보는 달라졌을 것이며, 하나회가 지시하는 부대들 역시 일부는 동요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별 두 개 밖에 안되는 장태완 소장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윗선인 인물들을 설득하려 죽어라 움직이는 와중에 한참 선임이자 6.25 전쟁에도 참전한 국방장관이 이런 시도도 안 했다는 건 너무나 한심해보일 수 밖에 없다.
[19]
성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두광, 이태신이 실존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걸 보면 성씨가 신씨일 확률이 높다.
[20]
성우 겸 배우.
[21]
10.26 사태 이후 체포되면서 중정 부장직에서는 내려온 상태였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육군참모차장이였던
이희성 중장이 부장 서리를 맡고 있었다. 이희성의 빈 자리는 민성배의 모티브가 되는
윤성민 3군단장이 채운다.
[22]
10.26 사건 전후 육군참모차장은
이희성 중장이었지만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으로 밝혀지며 중정부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자 1979년 10월 30일, 이희성이 현역 군인 신분으로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됐다. 대신 3군단장 윤성민이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였으며, 제3군단장에는 장태완의 전임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전성각 소장(육사 8기)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임명된다.
[23]
전두광한테 지가 왕인 줄 안다고 비꼬는 말이지만, 정작 전두광을
제왕적 대통령제하의
왕이 되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은 본인이다.
[24]
작중 내내 반란군이 좋아할 짓만 골라하다 보니 사실 하나회 소속이 아니냐는 의심도 많았으나
그냥 무능한 아군 지휘관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했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25]
최고 군령권, 군정권 기관인
합동참모본부는 1963년 설립이 되었으나 현재와 같이 합동참모의장이 3군 통제를 할 수 있었던 때는 1990년 이후였다. 육군 중심의 전력으로 해공군보다 많이 치우쳐 있었던지라 사실 상 육군 참모총장이 곧 군 통수권자였고 그래서 계엄법도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 직을 맡게된다.
[26]
체포 명령을 막은 것도
왜 수경사가 본인의 허락 없이 명령을 함부로 내리느냐는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평시였다면 민성배 중장의 대처가 합당하나, 당시는 군사 반란이 벌어진 비상사태였다. 현장의 이태신과 본부의 김준엽 등 휘하 장군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건의했기에 이를 묵살하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한 민성배의 트롤링이 더욱 부각된다. 현실에서는 이 시점에 아직 하나회의 행적이란 게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나마 정상참작의 여지가 어느 정도는 있으나, 여기서는 김진기와 이태신이 보안사 병력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답답한 태도를 보였다.
[27]
그나마 진입만 되돌리고 잠시 바깥에서 대기시켰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완전히 원대복귀시키는 바람에 망해버린다. 전두광이 2공수를 몰래 침투시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재투입했다면 전두광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28]
이는 육군본부 내 B2 벙커가 워낙 견고해 반란군 입장에서도 쉽게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요새였음을 반증한다. 군생활동안 벙커에 들어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입구부터가 콘크리트와 강철 등을 견고하게 덧대어, 반란군의 화기인 기관총 따위로는 진입할 수 없다. 중화기를 작정하고 동원해야 겨우 뚫을 수 있을 정도. 어떻게든 입구를 뚫었다고는 해도 규모가 큰 벙커는 구조가 미로처럼 되어있어 진압군 측에서 문 걸어잠그고 방어에만 치중했어도 시간을 벌며 주한미군, 또는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은 다른 사단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서울에 인접한 충정부대인 수도기계화사단과 26사단을 보면 보안부대장들의 활동에 의해 사단장들이 회유되거나 무력화되었고, 또다른 충정부대인 20사단 같은 경우에는
사단장이 그냥 경복궁 30경비단 본부에 앉아 반란에 가담해있었다. 거기다가 사단 보안부대장들을 말고도 보안사령부 자체가 군 전체의 정보를 통제하기에 육본의 명령을 미리 탐지하여 30사단 같이 그냥 회유될 수도 있었다.
[29]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는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이다.
[30]
12.12 사건 직후 신군부는 6인 위원회(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를 결성하여 진압군에 대한 숙청과 회유, 신군부의 논공행상을 위한 군 인사를 단행한다. 이러한 군 인사를 두고 6인 위원회 안에서 여러 주장들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대표적으로 육사 9기의 선두주자이자 진압군 측이었던 육군참모차장 윤성민과 합동참모본부장 문홍구, 둘 중 누구를 보내고 누구를 살릴지에 대한 것이었다. 유학성과 노태우는 문홍구를 살려 1군사령관에 임명할 것을 주장했으나 황영시와 김윤호는 윤성민을 살려 1군사령관으로 임명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사건 당시 진압군 최고지휘관으로서 반란군 측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준 점과 출신지가 호남이라는 지역안배의 명목까지 더해져 윤성민 중장이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영전하고 문홍구 중장은 예편당한다.
[31]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이름을 통째로 바꾼 몇 안 되는 경우다. 이는 특전사가 '공수부대'로 통칭되는 것, 그리고 담당배우 정만식이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묘하게 공씨 성 공무원 캐릭터를 자주 맡은 것(
부당거래 공 수사관,
모가디슈 공수철)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출연]
[33]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아는 관객들에게
발암스러운 모습이긴 하나 초대자가 늦는다고 그냥 가버리는 것은 당연히 예의가 아니기에 공수혁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늦는 이유가 무려 대통령의 호출인데 손님맞이로 지체하는 건 상식상 말이 안되기도 하고. 다만 이태신은 전두광에 갖고 있는 반감이 엄청났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한 것이다. 당시
전두광의 행보는 같은 하나회 멤버들조차 초기에는 대부분 무모하다며 반대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태신이 처음에 초대를 거부한 것도 그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지 그의 의도를 의심해서는 아니었다.
[34]
실제 역사에서도 그 자리에 초대된 누구도 전두환이 뭔가 꾸미고 있단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장태완 소장조차도 전두환이 늦는다고만 여기고 술을 한잔 하며 기다리자고 할 정도였으니.
[35]
하지만 민성배는 다 듣지도 않고 짜증섞인 얼굴로 통신을 끊어버린다.
[36]
여기서 도희철을 배은망덕한 개자식이라고 한다. 도희철이 공수여단 사령관이라는 것을 보면 상관을 배신했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인물들로 대입해 보면 1975년 박희도가 준장 진급과 1공수여단장이 된 것부터가 전두환의 힘이 컸지만, 정병주 사령관의 추천도 있었다. 거기다가 78년 북한 무장공비가 1공수의 위수지역인 서산 앞바다를 돌아다니면서 군사 기밀을 캐낸 후 안전히 임진강을 건너 복귀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실상 군복 벗을 위기에 빠졌으나, 정병주 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대장에게 적극 변호하여 겨우 막아주었다.
[37]
이전에 이태신이 "걔들 다 하나횝니다, 절대 믿으시면 안되요"라고 할 때 공수혁이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는데, 공수혁이 휘하 여단장들과 찍은 사진들, 김창세와 둘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웃으며 도희철에게 계급장을 달아주는 사진 등이 걸려있다. 자신이 아끼던 부하들이 반란군의 개가 되어 자신을 잡으러 왔으니 얼마나 씁쓸한 심정인지 짐작할 수 있다.
[38]
정병주 사령관은 가족들에게 자신을 지키다가 전사한
김오랑 소령의 묘에 계속 참배하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한다.
[39]
마치 선배 배우인 노주현을 연상시킨다.
[40]
67년 8월 ~ 71년 4월 제1공수여단장[191], 74년 12월 ~ 79년 12월 특전사령관
[41]
군복을 벗을 상황이 될 때마다 싹싹 빌면서까지 자리를 보전시켜준
박희도는 정작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의 직속부하임에도
정병주의 명령을 거부했고 정병주의 예편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 후 정병주의 구명따윈 신경쓰지 않으며 전두환에 충성을 다하는 극우인사로 살아가고 있다.
[42]
영화에서도 공수혁은 이태신의 든든한 우군으로 묘사되나, 이태신이 8공수 박기홍 준장이 자신과 같은 갑종 출신이라 하나회가 아니라며 공수혁 소장에게 출동을 요청하고, 나중에 중과부적으로 난색을 표하는 박 준장을 직접 설득해 출동시킨 것으로 나온다.
[43]
배우이자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의 아들이다. 본명은 유대식.
[44]
마지막 출동 직전 이태신을 만류하는 모습은 실제 12.12 당시 장태완의 출동을 말렸던 수도경비사령관 비서실장 김수탁 중령에게서 가져왔다.
[45]
내내 이태신을 걱정하던 태도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쏠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고 협박이라도 해서 이태신을 살리려던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46]
이태신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건지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평상시 부하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쏠 거면 빨리 쏘고 안 쏠 거면 밖으로 나와라."고 했다. 실제 장태완도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라고 말 했었다.
[47]
사실
장태완 장군도 이 시점에서 저항을 포기했다. 야포로 반란군 기지를 폭격하는 것은 민간인 희생이 너무 크기에 애초에 위협 이상이 될 수 없었고, 이 시점에서 싸워봤자 휘하 부하들만 개죽음시키는 꼴이기 때문. 다만 영화는 좀 더 극적인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이태신의 일갈을 보여주기 위해 한발 더 나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참군인캐릳터인인 강동찬은 현실의 장태완과 마찬가지로 반란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좌절하게 된 현실적인 모습이고, 이태신의 마지막 행보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관객들과 제작자의 개탄과 울분을 대변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속 이태신은 끝까지 가는 이유를 나라가 이 꼴이 났는데 끝까지 저항하는 군인이 한명도 없는게 화 나서 그렇다는 식으로 대사를 한다.
[48]
육군 사격지도단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창설되어 사격 국제대회에 출전, 수상을 할 수 있도록 군에서 선수를 길러내는 역할을 맡았다.
[49]
단, 기념촬영하였다고 모두 쿠데타 주동자라거나 지원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보안사 참모장이던 우국일 준장의 경우에는 기념촬영에 함께하지만 하나회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용당하던 사람이였다.
[50]
실제 작전보좌관 겸 상황실장담당 장교였던 김진선은 당시 계급은 중령이었다. 상황장교지만 내용에 중요하진 않아서 엑스트라로 등장시킬 겸 소령으로 설정한 듯.
[51]
KBS 성우극회 32기 성우. 성우가 되기 전에 뮤지컬 & 연극 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도 간간히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다. 대표작은
나는 자연인이다 내레이션. 장인어른이 전두환 전문 배우로 유명했던 배우
박용식인데 5공화국 시절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었다는 기묘한 인연이 있다.
[52]
입사 동기 성우인
남도형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푼 썰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 배역에 캐스팅된 건 아니었다고 한다. 맨 처음엔
하나회 소속의 엑스트라급 군 간부 배역으로 캐스팅이 되었는데, 이런저런 내부 사정으로 야포단장 유희종 대령으로 바뀌었고, 이때 그의 연기력을 좋게 봤는지 김성수 감독이 직접 전화를 해 박기홍 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 최종 배역이 결정된 케이스라고.
[A]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부대이다. 당시 특전사 공수특전여단은 1부터 13까지 홀수 번호로만 편성했다. 5공수여단이
국제평화지원단으로, 13공수여단이
제13특수임무여단으로 이름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지금도 홀수 편성을 유지하고 있다.
[54]
실제 인물인 윤흥기는 제9공수특전여단장이었다.
[55]
작중 전화 받아보시라는 부관의 말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보안사 애들이냐고 묻는다.
[56]
참고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이였다가 21일 교체되는
윤흥정 중장의 동생이다. 윤흥정은 사건 초기에 휘하 장성들에게 공수부대 투입 지시를 하긴 했으나 (정웅 31사단장은 투입을 거부하다 해임됐다) 이후 발포 허용 요청을 거부하고 강경 진압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가 전두환의 미움을 사 보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청문회에서도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 증언했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진압작전 이후 시민들의 항의 전화를 받고서 부끄러움을 느껴 대책 회의에서 강경진압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적극적인 저항은 하지 못했을지언정 동생과 마찬가지로 군인으로서 양심은 저버리지 않은 인물이었던 셈.
[57]
당시
제9공수특전여단 참모장, 참모장 포지션이지만 액스트라라서 소령 부관으로 나온듯
[A]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부대이다. 당시 특전사 공수특전여단은 1부터 13까지 홀수 번호로만 편성했다. 5공수여단이
국제평화지원단으로, 13공수여단이
제13특수임무여단으로 이름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지금도 홀수 편성을 유지하고 있다.
[59]
스틸컷에 흐리게 '민'씨이다. '미'씨로 보일 수 있지만 명찰 밑에 영어로 Min으로 시작되어 있다. 또한 이태신처럼 다른 'ㅣ' 자로 시작하는 명찰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난다.
[60]
당시 특전사령부 보안반장, 보안사에서 파견온 참모이고 끝까지 남는다는 오진호(김오랑)을 걱정하고 조금이나마 만류하는건 김충립 소령에서 따왔다
[61]
엑스트라 겸 1계급으로 낮춘듯
[특별출연]
[63]
사후 중령 추서
[64]
D.P.의 또 다른 주역 중 하나인 김성균이 이 작품에서도 D.P.에서와 같이 개념 찬 군인 역할을 소화한 것을 보면 감독이 D.P.를 꽤 감명깊게 본 듯하다.
[65]
이는 개봉 약 4달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D.P. 2에서 주인공인 일병
안준호를 맡았던 것이 크다. 또한 1979년 당시와 2023년 현재 35세가 주는 느낌이 큰 것도 영향이 있다. 대한민국 남자 초혼연령은 공식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0년만 해도 평균 27.8세, 2022년에는 33.7세로 많은 차이가 있고 조혼인율도 세배 가까이 높았으며 1979년에는 26세 정도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당시 35세 정도면 가정을 이미 꾸리고 애도 둘 정도는 딸린 아저씨일 나이고(김오랑 소령은 자식이 없었지만 이건 배우자 백영옥의 건강(시력) 문제 때문으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현재 35세면 평균적으로 아직 신혼이거나 첫 자녀를 얻는 나이다. 현재는 35세도 청년이지만 1979년의 35세는 현재의 40대 중반 정도의 중년의 나이다. 게다가 정해인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20대로 보이니 79년에 35세였던 인물과는 외관 차이가 20살 정도 나서 상당히 크다. 다른 배역들의 경우 실제인물과 배우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5~10살 정도 많지만 큰 차이 없어보인다. 일례로 70년대가 배경인 알 포인트에서도, 당시에 20대 초중반이었을 상,병장 계급의 인물들도 전원 당시 기준 30대 초중반의 배우들로 캐스팅하여 리얼함을 살렸다. 다만 설정상 10대였던 인물은 당시에 20대 초반의 배우가 캐스팅되어 다른 인물들과 확연히 차이를 두었다.
[66]
오구민 소장과 안종훈 소장의 경우 작전일지 영상을 통해 직책이 확인되었다.
[67]
반란군에 맞서다 총탄에 맞고 부상을 당하는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은 아예 출연하지 않았다. 하소곤 소장의 부상 장면은 드라마에선 거의 빠지지 않고 묘사됐지만, 영화의 경우 장태완(이태신) 수경사령관의 마지막 체포 장면이 크게 각색돼 이 부분을 뺄 수 밖에 없었다.
[68]
영화감독겸 배우로
부당거래의 국선변호사로 유명하다.
[69]
사실 원론적으로 보면 정말 계속해서 시간을 끌 수 있다면야 상황을(대통령 감금, 육군참모총장의 위법적 체포) 파악한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란군은 그 전에 육본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미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서울로 들이닥친 이들의 병력을 제어하면서 시간을 끈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즉 빠른 초동 대처로 지휘관들의 배신을 막고 병력 이동을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반대로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을 동원해 반란군을 막으면서 시간을 끌어야하는데,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최고 지휘관들이 다들 우리 편이니 그냥 기다리면 될 것이다"란 헛소리인 것. 실제로 수경사령관인 장태완은 휘하 전투 부대가 거의 배신해 동원가능한 직속 병력이 백명 남짓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즉 저 말은 반란의 수괴들과 모든 지휘관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상식적인 인간들이었으면 애초에 반란을 일으켰을 리도 없다.
[70]
12.12 군사반란 관련 창작물 출연이 두번째로,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 8화에서 수경사 30경비단에 있는 반란군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33경비단 전차부대장 역으로 출연해 부대장인
김진영 대령(
김영석 분)과 대치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반란군에 맞서는 진압군 역이다.
탱크몰고 반란군 잡으러 가는 33경비단 전차부대장(최민)
[71]
실제 육군 포병 준장 출신이다. 예편 이후에는 연기자로 변신해 활동 중인데 이 영화에서는 출연 뿐만 아니라 자문 역할도 맡아 실제 155mm 곡사포의 사격 모습을 지도했다고 한다.
#
[72]
만나는 영화마다 군복을 입는다
[73]
직책은 헌병특별 부경호대장으로 추정
[74]
헌병특별경호대는 구정길 중령만 이름이 알려져 있어 실제 어떤 인물을 모티브로 했는지 불명이다.
[75]
전두광 차량 내부 수색에 손규원 대위 다음으로 태도가 적극적으로, 헌병특별경호대의 분대장으로 추정된다
[76]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2에서 안준호에게 멱살 잡힌
김일석을 연기했다. D.P 시리즈에서는 내무부조리에 적극 가담하는 악질 선임을 연기했지만 본 작품에선 분량은 적어도 책임감과 희생 정신이 투철한 선역이다.
[77]
주요 인물인 장교들은 스스로 자진해서 군에 발을 들인 자들이지만 병사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실상 강제로 입대를 하게 된다. 모병제 국가였다면 군인이 될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을 인물이므로 훨씬 억울한 죽음인 셈이었다.
[78]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선엽은 원래 사관학교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권유로 공대에 입학한 것이라고 하며 원래부터 애국심과 의협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려 친구들이 휴가 나온 그를 보고 '선엽 장군'이라고 장난삼아 불렀을 정도였다고. 결국 권력을 탐하는 정치군인들에 의해 장교와 병사에서 나오는 참군인들이 살해당하는 비극을 묘사하는 것.
[79]
정선엽 병장은 당시 전역이 3개월 가량 남은, 소위 말하는 '
말년병장'이었다. 그의 전사가 더욱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심지어 자신의 원래 근무시간이 아니었으며 피곤해하는 후임을 배려하기 위해 근무 시간을 바꿔 그 대신 근무하다가 이런 변을 당했다.
[80]
그다지 영화에서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고 짧게 다뤄진 인물이지만 이 때문에 더더욱 군필자와 군인의 부모 관객에서 와닿은 인물이기도 하다. 특별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처럼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감될 수 밖에 없다.
[81]
반란군 측
박윤관 일병까지 총 3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82]
영화에선 육본 벙커를 지키던 것으로 묘사됐지만 실제로 그는 국방부 청사 내 벙커를 지키고 있었다. 반란군을 막기 위한 그의 죽음은 신군부의 조작으로 인해 총기 오발로 인한 순직으로 조작되었다.
[83]
저들 중 가장 선임은 육군 대장 출신 국방장관 노재현인데, 상황과 맞지 않는 판단을 계속 내리다가 반란군에 잡혀 전두환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공대 내부의 적급 트롤링을 했다.
[84]
총장을 보좌하는 참모와 경호병력이 여기 포함된다.
[특별출연]
[86]
한규원,
안세호 등과 함께 출연했다.
[87]
당시 이재천은 참모총장의 전속 부관이었다. 영화상에서는 비서로 나오지만 정상호가 부관이라고도 부른다. 정승화 총장이 연행될 당시 김인선 대위와 함께 보안사 체포조의 총격을 받은 부상자이기도 하다.
[88]
류병현의 영어 명찰로 성은 LEW지만 류명석의 영어 명찰에 성은 RYU이다.
[89]
당시 북한의 국력은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던 시기였다.
[90]
1군 및 3군사령관과, 이 둘이 통합된
지상작전사령관 그리고 2군사령관과 그 후신인 2작사령관은 현재는 대장이 보임되지만, 이 당시엔 중장급 보직이었다. 다만 그냥 중장은 아니고 대장 진급이 확실시되는 이른바 대장(진)을 보임했다. 그래서 대장 진급 예정자라 한 것이다.
[91]
그러나 12.12 당시 1군사령관으로 진압군쪽에 의사표명을 할 필요도 없었던
김학원 중장 역시 자리에서 쫓겨났던 것을 보면 이건영 중장이 어떻게 했던지 간에 반드시 쫓아낼 인물 중 한 명이었다.
[92]
이는 반란군이 이건영 사령관 체포를 위해 노재현 장관을 통해 국방부로 유인한 것이었다. 최세창 여단장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 하는데 실패 하거나 신윤희 헌병 부단장은 장태완 사령관을 체포 하라는 조홍, 전두환의 명령을 따르기 않고 장태완 장군을 끝까지 보필 했어도 보안사들이 이건영 장군이 체포 당한 것 처럼 장태완, 정병주를 체포할 목적으로 국방장관을 통해 국방부로 유인 했을 것이다. 다만 장태완 소장은 하나회측이 수경사의 실질적인 병력(30/33/헌병단)은 장악하였음에도 직위의 위치상 신속하게 제거할 필요성이 있고, 정병주 소장은 그보다 더 빨리 제거해야 하는 것이 9공수의 회군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인데다가 지방의 다른 공수부대 출동을 명령할 위치였다. 하나회측이 12.12와 5.18 당시 공수부대를 주력으로 활용한 것이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특전사는 주한미군사령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93]
당시 30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있었으므로 황영시의 직속 부하이기도 했다. 박희모 본인은 하나회도 아니므로 처음부터 반란군에 속하진 않았지만, 회유된 이후에 반란군에 가담하게 된 셈. 영화에서 반란에 대해 처음에 모르다가 반란군에 가담하게 된 강 실장과 비슷한 포지션인 셈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모상돈이 휘하부대를 반란군의 지시에 따라 출동시키는 장면이 안 나왔고, 실제 역사상에선 강 실장의 모티브가 된 정동호 준장은 처음부터 반란군의 일원으로 경호실 병력을 움직여 대통령을 경호하는 헌병들을 제압해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94]
실제론 존재하지않는 검문소이다. 강북검문소는 북단검문소를 모티브한 것이며 실제 북단검문소는 당시 행주대교에 있던 검문소였다. 실제 1공수가 행주대교 진입과정 중 북단검문소 헌병들을 무장해제했다.
[95]
실제 배정도 소장은 제26보병사단장이다.
[96]
계급은 대령이라 참모장이나 출동 예정인 연대의 연대장으로 추정된다
[97]
당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98]
다만 이 호칭은 진압군인 이태신도 더러 쓰는 호칭이긴 하다.
[99]
본작은 장성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상호존대를 하는 것으로 나온 대신 상급자나 선배는 반말을 섞어하거나 하급자에게 님자를 붙히지 않고 ~장군이라 지칭하고, 하급자나 후배는 ~장군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그런데 전두광은 처음에 선배인 이태신에게 "아이고, 이 장군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했다가 저렇게 몰려다니는게 보기 좋지 않다는 충고에 기분이 상하자 "이 장군. 난 말입니다. 우리 둘이 친해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좀 있어요"라고 미묘하게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나온다. 심지어 후배에게 담배를 가져오게 해 피우는데, 당시는 실내흡연이 당연시되던 시절이라고 해도 (선배가 먼저 허락하거나 둘이 원래부터 친하지 않은 이상) 허락도 없이 후배가 선배 면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없는 행위였다. 담배를 피우더라도 연기가 얼굴로 바로 가지 않게 거리를 좀 두거나 돌아서 피워야하는데, 전두광은 이태신에게 바싹 붙어 담배를 피운다.
[100]
정작 배우 본인은 연세대 재학 시절이던 1988년 광주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까지 설치했던 강경파
운동권 출신이다. 학생운동 동지였던 배우
우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우상호와 매우 절친한데, 우현이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치안본부장인
강민창 역으로 출연했던 것처럼 아이러니하면서도 절묘한 배우개그를 보여준다. 우상호 의원은 우현이 강민창 역으로 출연한데 이어 안내상이 황영시 역으로 출연하자 '얘네들은 왜 이런 역할만 하는거야? 좋은 역할은 안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01]
상석에 앉은 배송학과 현치성은 그와 같은 계급이자 선배들이었기에 당연히 일어서지 않는다.
[102]
임학주가 12.12 계획을 설명하려고 하자 "넌 닥치고 당신(전두광)이 말해야지"라며 초장부터 말을 끊어먹으며 전두광을 몰아세우고 이후에는 국무총리를 무시하고, 최한규 대통령의 면전에 대놓고 체포를 재가하라고 겁박하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상대로 하극상을 벌인다. 임학주가 아닌 전두광에게 브리핑을 시킨 것도 선배인 자신들 앞에서 후배에게 시키지 말고, 직접 하라고 한 것으로 작중 내내 전두광을 은근히 압박을 한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중장(한영구) 앞에서 소장(전두광) 놔두고 별도 못 단 중령(임학주) 이 브리핑하는 게 맞는 행동은 아니다. 심지어 그냥 작전 브리핑도 아니고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반란에 대한 브리핑인데, 전두광의 이런 태도를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103]
반란군 지휘관들과 진압군 지휘관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반란군이 최종 승리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란군들은 초반에 반발과 이탈 시도가 있었어도 결국 전두광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그 과정에서 트롤링이 될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일례로 반란군이 위기에 몰려 우왕좌왕하자 전두광이 문을 열고 가실 분들은 가시라고 하는데 한영구가 나서서 조용히 문을 닫고 우리가 뭘 해주면 되겠냐고 물으면서 지지를 표해 상황을 종료시킨다. 반면 진압군들은 이들과 맞서는 이태신을 적극 지원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짓만을 했고 특히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차장의 하드 트롤링 때문에 진압의 기회를 전부 놓쳐버리고 말았다.
[104]
국방장관의 군수참모직으로 예하 병력이 아예 없었다.
[105]
수도군단 예하 부대들은 한강 이남, 수도권 남부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106]
9사단 노태우 소장이 거리낌없이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던 것도 황영시의 비호 덕분이며, 갑종 출신으로 반란군이 아니던 30사단장 박희모 소장 역시 처음에는 장태완 소장으로부터 1공수를 막을 것을 부탁받았으나, 보안사의 회유로 이를 포기한 이후 황영시의 명령에 따라 90연대를 출동시켜 반란에 가담하게 된다. 군사반란 당시 노태우와 더불어 전두환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 중 하나였으며, 영화에서는 이런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한영구가 가장 먼저 마치 나갈 듯 문으로 다가가자 현치성은 담배를 끄고 그를 유심히 보고 "가실 분은 가시라"고 했던 전두광은 눈이 커지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107]
육사 1~9기까지는 군경력자들이 입교하여 단기 교육을 받고 임관했으며, 1949년 10기(생도 1기)부터 정규과정으로 2년제 교육 실시 방침을 세웠으나, 장교 수급 문제로 1년으로 단축되었다. 허나 6.25 전쟁으로 인해 임관 직전에 있던 육사 10기는 생도 2기와 함께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그들 중 생환한 생도 1기생들만이 1950년 7월 10일 대전시에서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51년이 되어서야 육군사관학교에서 다시 생도들을 모집하였는데 비로소 이때 정규 4년제 교육이 안착하였다. 왜냐하면 그 기수부터는 이전 기수들과 달리 전장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후방에서 안전하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1951년 입학한 기수는 처음으로 4년간의 정규 교육을 완료하여 1955년 임관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전두환, 노태우의 육사 11기다.
[108]
황영시(육사 10기), 유학성(정훈 1기, 육사 8기와 임관 동기), 차규헌(육사 8기)
[109]
장태완 소장의 경우 나이는 황영시보다 훨씬 아래지만 군경력은 비슷했는데, 반란군 중장들에게 일갈하던 부분의 회고록을 보면 유학성의 경우 선배님이라고 지칭하고 황영시에게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들의 검은 속셈을 확인한 후부턴 욕설을 퍼부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인다.
[110]
2011년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한빛회의 수괴 정 장군 역할로 출연했다.
[111]
개정된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으로 중장급 군수차관보에서 문민 차관보인 고위공무원 가급(1급) 보직으로 개편되었다.
[112]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해당 장면에서 장태완에게 소리도 지르지만, 이 영화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이태신에게 욕만 먹는다.
[113]
유학성은 황영시보다 선배지만 나이가 아래고, 육사 8기인 차규헌과 동기 취급이지만 차규헌이 하나회의 육사 직속 선배인데다 5.16 쿠데타 가담자였던 반면 유학성은 한직에 머물고 있었기에 굳이 따지면 중장급 중 중요도가 가장 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관계를 보다 단순화하기 위해서인지 육사 8기이자 한영구보다 연장자로 각색되었고, 이 때문에 하나회 비밀모임에서도 가장 상석에 앉아있다.
[114]
하지만 하나회 중장 3인방 배우들의 실제 나이로 비교해보면 안내상(한영구 역)이 64년생으로 가장 맏형이 된다. 전진기(현치성 역)는 빠른 66년생이며 염동헌은 68년생으로 가장 막내이다.
[115]
군대 지휘권이 없는 직책인 한직에 머물렀다. 유학성은 중장으로서 12.12.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였는데 이 직책은 이후 군수본부장으로 소장급, 현재는 고위공무원 나급 보직으로 현 관리관은 예비역 준장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육본 교육참모부장이나 그토록 전두광이 가기 싫어했던 동해안경비사령관 등 같은 계급 중에서는 가장 선호도가 떨어지는 직책들을 주로 맡았다.
[A]
[117]
실제 인물인 박희도는 제1공수특전여단장이었다.
[118]
실제로 이 발언을 정 총장이 듣기라도 했으면 도희철은 영창에 쳐박혀도 할말 없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그 전두광이 도희철의 이 말을 듣고 "거 조용히 좀 하지" 라며 주의를 줬을 정도. 실제로 70년대에 전두환의 손아랫동서인 김상구 중령으로 당시 수경사 방공포병대대장이 수경사 참모장이였던
장태완 준장에게 이딴 소리를 했다가 영창에 끌려가서 전역서를 썼던 일이 있었다. 발언 수위 자체는 김상구가 더 쌨다. "내가 당신보다는 군사학을 더 많이 배우고 임관했소." 장태완 장군은 참전용사다. 그나마 이것도 하나회의 후원자 중 한 명이였던
진종채 사령관이 기합만 주고 덮으려던 것을 장태완 준장이 본인과 김상구 둘 중 한 명을 택하라는 압박으로 겨우 받아낸 것이였다. 다만 자신의 안위를 끔찍히도 생각하는 모양인지 전두광이 2공수 출동명령을 내리자 미쳤냐며 잡아떼기도 하고 여단 본부에 전화를 걸 때도 망설이는 등 새가슴을 가진 인물로 그려냈다. 또한 전형적인 강약약강스러운 인물이기도 한데 전두광에게는 꼼짝못하다가도 운전병이나 참모장인 이 대령에게는 징징거리거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는 등 똥별, 꼰대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119]
그 전에 30경비단 본부를 떠나거나 전두광의 손을 뿌리치는 등 손절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이 시점에서 손절하고 부대 복귀해봤자 죄를 피할 방법은 없다. 이미 휘하 병력이 본인 명령에 따라 반란군 세력을 위해 움직였다는게 진압군에 파악됐는데, 손절해봤자 쿠데타 가담으로 재판받을 운명이다. 차라리 한영구가 그런 것처럼 맘에 안 들어도 끝까지 함께하는 수 밖에 없다.
[120]
"빨리 가라고! 빨리 가서 애들 데려 오라고 안 그러나 시키야!! 전두광 형님이 내보고! 하필 내보고!!!"하면서 비유가 아니라 정말 떼를 쓰는 말투로 징징대며 아들뻘 밖에 되지 않을 운전병을 닥달한다.
[121]
이게 뭔소린가라는 듯 운전병과 서로 마주보고 당황스러워한다.
[122]
20사단장 박준병, 3사단장 박세직
[A]
[124]
실제 인물인 최세창은 제3공수특전여단장이었다.
[125]
차가 빵꾸나서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126]
실제인물 최세창도 십수년간 모신 직속상관을 배신했지만, 최소한 정병주 사령관에게 쿠데타에 가담하라고 설득하는 시도는 했었다.
[127]
물론 장성이고 여단장이라는 캐릭터 특성상 종석처럼 정신나간 모습은 아니지만, 배우가 실제인물과의 싱크로율을 감안한 모양인지 증량을 하고 특유의 목소리톤까지 더해져서 꽤나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연출해냈다.
[128]
그러나 사실 장세동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을때, 9사단 29연대장으로 이미 파병되었던 전두환과 인연을 맺었다. 귀국 후 전두환이 1공수여단장 할 때에 그 밑에서 3대대장으로 있었으며, 12.12 당시 30경비단장으로 있었던 것 자체가 전두환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문재인이 과거 특전사 1공수여단 3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두환 여단장, 장세동 대대장이 직속상관이었다.
[129]
군인신분으로 임명되었고 이때 소장으로 진급하며, 중장까지 진급, 특히나 경호실장 임명 때에 전두환이 선서한 것으로 유명
[130]
다만 비중은 낮을지언정 반란군이 난관에 부딫힐 때 원경이나 도희철 등 다른 후배들이 전두광에게 크고 작게 반감을 표한 것과 대비되게(원경은 대사는 없지만 인상을 찌뿌리며 전두광을 노려보는 묘사가 있다) 한번도 전두광에게 토를 달지 않고 충직하게 그의 명령을 따른다. 실제 장세동이 전두환이 죽을 때까지 충성을 바친 것이 반영된 듯.
[131]
실제 역사에서도 보안사의 실세 중 한명이자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허삼수가 갑자기 찾아간다고 하면 의심을 받을 것이 뻔했기에 정보처장이었던 권정달 대령을 사칭하고 공관에 들어갔다.
[132]
박희모 소장을 모델로 한 모상돈 30사단장이다.
[133]
이것은 단지 1979년 당시의 40대 초반과 현재의 40대 초반의 외모가 차이가 커서 그런 것이다.
[134]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은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는 없었던 직책이었다. 전두환이 허화평만을 위해서 만든 직책이다.
[135]
의원직 박탈
[136]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 임학주가 그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이나마 믹스한듯하다. 극중 임학주가 고문 및 수사를 전부 담당하고 있긴하다.
[137]
게다가 제1공수특전여단장 자리를 놓고 1년 후배
박희도와 경쟁까지 했고 그것마저 경쟁에서 밀렸다.
[138]
대신 전임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노태우처럼 대장으로 명예진급하여 전역했다.
[139]
또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20사단을 지휘해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을 짓밟은 이력이 있다.
[140]
박준병이 홀대받은 것은 아니고 전두환이 총선 전략을 위해 자기 사람을 대장으로 명예예편시켜준 이후 정치권에 박아넣은 것이다. 다만 전두환이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12.12 당시에도 공을 세운 박희도를 크게 신임해 박준병보다 먼저 대장진급을 시켜주는 등 군 내에서 입지가 미묘하게 역전된 것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박준병을 홀대했다기보단 박희도를 아주 이뻐한 것. 박희도는 전두환 사후에도 그를 찬양하고 온갖 개소리를 하는 등 그의 충견 노릇을 충실히 했다.
[A]
[142]
실제 인물인 장기오는
제5공수특전여단장이었다.
[143]
위로 차장이 중장, 차장보가 소장이다.
[144]
군사정권 당시엔 현역 내지 예비역 장성들이 맡았고 장관급 인사가 수장으로 있는 독립기관이었으나 이명박 정권 때 대통령실 산하 차관급 인사가 맡는 산하기관으로 격하, 박근혜 정권에서 잠시 장관급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권부터 다시 차관급으로 내려왔다. 이 무렵 경호실장은 위세가 높았고 특히 전임 실장들인 박종규와 차지철은 절대권력자인 박정희의 비호 아래 한때 사실상 2인자에 가까운 위치였던 적도 있었다. 정동호 본인도 전두환 정권에서 존재감이 높은 인물이었고, 전두환의 오른팔인 장세동 역시 경호실장을 지냈다.
[145]
청와대와 거리상 매우 가까운 30경비단에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146]
영화에 보면 처음에는 강 실장이 전두환에게 "오셨습니까, 형님"이라고 할 때는 자막이 나오지 않고 있다가 그가 임 중령에게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나한테 똑바로 말해"라고 할 때가 되어서야 "육사 13기/하나회"란 자막이 뜨며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147]
부사단장은 준장 보직이나 실제 구창회는 당시 대령 보직인 사단 참모장을 맡고 있었다. 다만 부사단장도 통상 1계급 낮춰 대령이 보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48]
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149]
영화감독 겸 배우로, 영화
신체모음.zip에서 '토막'이라는 에피소드를 연출했으며, 김성수 감독의 전작인
아수라에서 파국의 시발점이 되는 이민섭 역을 맡았다.
[150]
엔딩 크레딧에는 '대통령 경호과장'으로만 나왔다.
[151]
당시 성환옥은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었다.
[152]
오징어 게임에서
덕수패1을 맡은 그 배우다.
[A]
[154]
실제 인물인 이기룡은
제1공수특전여단 소속이었다.
[155]
운전병인 변 소령에게 그냥 밀어버리라고 하긴 했다. 만일 명령대로 했다면 이태신 사령관은
차에 치어
사망하여 육본, 국방부 점령하여 육본에 있는 육본 지휘부들을 반군들의 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수경 사령관 사망으로 인해 수경사 전체가 반군에 의해 조기적으로 장악 했을 것이고 전두광, 노태건을 비롯한 반란군 간부들은 이태신이 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156]
당시 1공수여단 작전참모
[157]
당시 1공수여단 헌병대장
[158]
실제 권대포, 백남석 모두 이기룡 대령과 같은 차에 동승했다는 걸 넣으려고 운전병으로 나온 듯하다.
[159]
2공수 참모장 이 대령.
[A]
[161]
실제 인물인 박종규는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이었다.
[162]
박종규는 하나회 회원은 아니었지만, 직속상관의 불법적인 지시를 받고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것도 모자라 사상자까지 낸 이상 당연한 조치였다.
[163]
당시 1공수여단 1대대장
[164]
당시 1공수여단 5대대장
[165]
어쩌면 김경일과 박덕화를 믹스한 인물로 추정된다. 실제 1대대는 육본 B2벙커를, 5대대는 국방부를 장악하는 임무이고, B2벙커는 국방부 바로 밑에 붙어있는 걸로 나오기 때문이다.
[A]
[167]
실제 행주대교 초소를 점령한 부대는 제1공수특전여단이었다.
[168]
실제로는 특수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1공수 병력은 그냥 회군 없이 행주대교를 건너 초소를 장악했다.
[169]
초소를 지키던 장교가 총을 들이미는데도 태연하게 "총 내려. 쏠거 아니잖아?"하고 한 마디하고 여유있게 총을 잡아 내리는 장면을 통해 2공수여단이 막강한 전투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170]
실제 정승화 참모총장 납치를 가담했던 보안사의 수사관들이다. 신동기, 양일근 외, 이장석 준위, 김덕수 준위도 가담했다
[171]
수경사 소속인지 보안사 소속인지는 확신 미상이다. 하지만 33헌병대가 체포조 지원 병력이고 공관내부에 들어간 체포조는 4명이라 모티브는 박원철 상사가 아닌 수경사 소속 체포조 운전병으로 추정된다.
[172]
보안사 요원 배역 배우들이 여러명이라 '전두광 운전병' 배역인 노경섭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173]
실제 김용휴는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다.
[174]
당시 노재현의 부관이었다.
[175]
의외로 하나회 멤버들 중에서는 반란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인물들도 상당히 있었는데, 당연히 이들 중 지방에 배치된 이들도 많았기에 현실적으로 서울에 전부 불러들이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두환은 황영시나 노태우 등 핵심 멤버들에게만 계획을 일러주었기에 경복궁에 모인 지휘관들 중 박준병 같은 이들은 모르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2.12재판에서 무죄를 받긴 했지만, 박준병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기에 직접적인 가담자가 맞다고 널리 여겨진다) 반란군의 계획은 정승화 총장을 납치함과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해 재가를 얻어내 일사분란하게 사태를 마무리짓는 것이었기에 애초에 대규모의 군사적 충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실제로 계획이 틀어졌음에도 일부 부대 사이에서 소규모 충돌만 일어났다) 육사 12기 중 군사반란 당시 소장 계급이었던 박세직 역시 철원 소재 3사단장으로 반란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하나회 소속으로 전두환 정권 초기에 잘나갔었지만, 본인의 권력욕으로 전두환에게 찍혀 출세가도에서 밀려나게 된다.
[176]
진종채 중장은 당시 제2야전군사령관이다.
[177]
정호용 소장은 당시 제50보병사단장이다.
[178]
영화가 개봉하고 5개월 뒤인 2024년 5월 11일, 향년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79]
이 영화의 몇년 후를 배경으로 한
헌트에서도 CIA 한국지부장을 연기한 바 있으며, 헌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연기를 선보였다.
[180]
실제 민 마담의 본명은 최영자였다.
[181]
이 3명이 수도권 방위의 중책을 맡은 책임자들인 만큼 반란군은 전두광의 생일을 기념해 식사를 대접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한곳에 묶어놨다. 그 사이 전두광은 정상호 총장을 체포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려고 했으나 일이 꼬이면서 위로연은 막을 내렸다.
[182]
제5공화국에서
박근영을 연기했다.
[183]
이태신의 실존인물인
장태완 장군 역시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이 있었다.
[184]
오국상은 사태를 파악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택시를 불러 도주하고 이후 미8군 사령관과 주한 미국 대사에게 차를 대접받으며 여기 왜 오셨냐고 질문 받는 모습으로 재등장. 모티브가 된 노재현 장관은 이때 단국대로 튀었다가 이후 미8군 사령부로 간다. 진압군 입장에서 결정적인 패착이 된 그의 발암적 행보에 대해서는 위의 오국상 부분에 서술되어있다.
[185]
김달연 소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달연 소령은 12.12 당시 33경비단 전차부대장이 아닌 33경비단 작전주임이었다.
[186]
실제 이태신의 모티브, 장태완의 아들의 이름은 장성호였다. 반란 이후 아버지가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도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한 수재였으나 야산에서 안구를 포함한 모든 인체 구멍에 얼음으로 찬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87]
공식이 아닌 편집자의 추측이지만 엄재민은 몰라도 전대규는 이름을 보면 육군본부 보안부대장 변규수 준장을 모티브로 하여 언급한 것 으로 추정된다. 실제 반란에 가담했으며 전두광이 30경비단으로 모일 장성들 군 개편안 중에서 전대규를 제외한 듯 하다
[188]
장례식 당시의 영상을 사용했다
[189]
대역의 몸과 얼굴 사진을 편집했다. 크레딧에 박 대통령 대역이라는 배역이 나온다.
[190]
사병들은 마실 식수도 없는데 그는 온수로 샤워하고 테니스나 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기도 했으며, 허위로 군공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그가 복귀한 이후 직속상관인 9사단장 조천성을 포함해 모든 상관들이 그에 대한 훈장 수여를 반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