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0:17:47

헝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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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헝가리의 잡지 물트코르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마차시 1세 무명용사 어틸러 요제프 라코치 페렌츠 2세 센트죄르지 얼베르트
6위 7위 8위 9위
민트센티 요제프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라슬로 1세 코슈트 러요시 쾨뢰시 초마 샨도르
9위 10위
후녀디 야노시 퍼프 라슬로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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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3. 역사4. 분포5. 종교
5.1. 독일계 헝가리인5.2. 유대계 헝가리인
6. 문화7. 헝가리인 인물
7.1. 실존 인물7.2. 가상 인물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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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인은 중부유럽에 위치한 내륙국 헝가리의 주요 민족으로, 우랄 계통 민족 중에서는 가장 남쪽에 정착한 이들이다. 모어는 우랄어족 우그르어파에 속하는 헝가리어이다. 헝가리에 960만여 명,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 160만여 명, 슬로바키아에 45만여 명이 거주한다. 이 외에도 세르비아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25만여 명, 우크라이나 자카르파탸주에 15만여 명이 거주한다.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프레크무레(Prekmurje),[2] 오스트리아에서도 부르겐란트에서 헝가리어를 쓰는 헝가리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2. 기원

한때 헝가리인의 조상 마자르족 훈족과 같은 뿌리이며 헝가리인들도 훈족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3] 언어학, 고고학 연구 결과와 유전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헝가리인이 중부유럽 푸스타로 이주한 것은 서기 9세기 무렵으로 밝혀졌다.

헝가리인의 직계 조상은, 이전까지는 우랄어족을 사용한다는 것에 기반해 청동기 시대 안드로노보 문화권(BC 2000년 ~ BC 900년)에 속한 우랄계 원주민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여러 집단유전학 연구 결과 과거 판노니아 이주 시대의 마자르족이 핀-우랄계 제족들과 중요한 유전적 연관성을 그렇게까지 크게 보이지는 않으며[4], 오히려 부계로 볼가 타타르 바시키르인으로 대표되는 돈강- 볼가강 유역의 튀르크계 제부족들이 마자르인의 유전적 조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최초의 헝가리 왕조였던 아르파드 왕조의 경우 유전적으로 바시키르인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모계로는 포타포프카 문화를 비롯한 볼가-우랄 유역의 인도유럽계 민족들의 피를 이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마자르인이 우랄어족계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불명이다. 2022년의 연구에 따르면 마자르족 엘리트에 나름 유의미한 수준(최대 15%)의 훈족 유전체가 나타난다는 것이 드러나, 마자르족이 왜 훈족의 후손을 자처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도 어느정도 풀리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우랄계, 튀르크계, 인도유럽계(특히 스키타이계), 훈족 계통의 복잡한 혼혈이며, 이 중 엘리트 계급은 매우 높은 비율의 우랄계 및 튀르크계 혼혈과 4세기 이후에 유입된 소수의 훈족 계통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서기 4세기 무렵 이들은 우랄 산맥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볼가 강 유역[5]에 정착해 사르마티아인과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9세기 무렵에 서쪽으로 이동해오는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압력을 받아 다시 서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과 우크라이나 남서부 지역을 거쳐 다뉴브 강 중류의 푸스타 분지[6]에 정착하는데, 판노니아 일대를 정복한 마자르족과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자르화된 현지 민족[7]들을 오늘날 헝가리인의 직계 조상으로 본다.

3.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헝가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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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는 독일인( 오스트리아인)과 함께 주요 지배 민족을 구성했다. 또한 폴란드인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거진 형제애에 가까워서 전통적으로 혈맹 관계를 이루고 있다.[8]

4. 분포

주로 중부유럽 동유럽을 중심으로 거주한다. 과거 헝가리 왕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헝가리보다 넓었고 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전역과 루마니아 서부 영토에 해당하는 트란실바니아, 세르비아 북부의 보이보디나 자치주, 우크라이나 서남부 영토에 해당하는 트란스카르파티아 역시 헝가리인들의 거주지역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루마니아에는 약 1백만여 명 이상에 달하는 헝가리인이 거주하며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 거주하는 헝가리인 인구도 적지 않다. 헝가리계 루마니아인, 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 문서 등 참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면서 제국이 공중분해될 당시 트란실바니아처럼 헝가리인이 기득권 지주, 여타 민족이 인구 대다수 소작농을 구성하던 지역들은 거의 다 잘려나갔다.[9] 인구 대다수가 헝가리인이었던 지역만 오늘날의 헝가리 영토로 남은 셈이다. 그런 연유로 헝가리에서는 지금까지도 자국의 영토를 잘라간 트리아농 조약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유럽 외에도 미국 헝가리계 미국인 140만여 명이 거주하며 캐나다에도 31만여 명이 거주한다. 이스라엘에는 헝가리계 유대인들이 20만여 명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에도 일부 헝가리인들이 거주하기도 하며, 소련 시절에는 일부 내지 소수가 중앙아시아 일대[10]로 이주하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역시 오스만 제국령이던 이집트 수단 공화국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헝가리인이 정착하기도 하였는데, 이들을 현지의 누비아어로 헝가리인을 뜻하는 마자라브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우랄어족 계통 민족으로선 유일하게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이들로서, 오늘날에도 이집트와 수단 양국에 7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지만, 현재는 상당수가 현지의 아랍인에게 동화되었다[11].

구 공산권 붕괴 이후 90년대에는 헝가리 마피아의 국제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렸으나, 2000년대 들어 헝가리 경제가 복구되면서 다행히 인신매매가 대폭 감소한 상황이다.

5. 종교

주로 가톨릭을 믿고 있다. 일부는 개신교를 믿고 있는데 개신교 인구는 주로 헝가리 동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오스만 헝가리 에르데이 공국 시절 상당수의 헝가리인들이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영향이다.[12] 현재도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와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탸에 거주하는 헝가리인들은 개신교 비율이 강하다. 체코의 개신교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장기 지배를 거치며 약화된 것과 대조적으로 트란실바니아와 자카르파탸 일대의 헝가리인들은 과거 정교회를 믿는 루마니아인, 동방 가톨릭[13]을 믿는 루신인들 위에 군림하는 지주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신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 헝가리 개신교 신자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기원이 되는 대타협 당시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유럽에 거주하는 개신교 소수 종파 유니테리언[14] 신도 대다수가 헝가리인으로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유니테리언 교회는 유럽 내 최대 유니테리언 교회 커뮤니티 중 하나이기도 하다.

5.1. 독일계 헝가리인

헝가리에 독일인 상인과 광부들이 정착한 시점은 서기 10~12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독일인들이 본격적으로 헝가리에 대거 정착한 시점은 17~18세기 이후이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만 제국과의 대튀르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오스만 헝가리 에르데이 공국을 접수하면서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황폐화된 헝가리를 복구하고 시시때때로 반항하는 헝가리인들을 견제할 겸 헝가리 영토로 독일인의 이주를 장려했다. 특히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크로아티아 여왕으로 즉위한 후, 독일인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명령하였는데 1740년부터 1790년까지 10만여 명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헝가리 왕국 각지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해서 헝가리로 이주한 독일인들이 주로 정착한 지역은 수도 부더 일대와 벌러톤 호 북쪽의 버코니(Bakony)와 베르테시(Vértes) 산지, 헝가리 남부 도나우강 계곡 일대[15], 그리고 파사로비츠 조약으로 획득한 바나트 지역으로 당시 식민지 건설을 허락받고 정착한 독일인들은 대개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 출신의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때문에 헝가리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도나우 슈바벤인(Donauschwaben, 헝가리어로 Dunai svábok)이라고도 한다.

당시 중유럽과 동유럽의 주요 교역 언어는 독일어였고, 헝가리에 정착한 독일인들은 특히 상공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헝가리로 이주해온 사람들 중에는 독일인만 있던 것이 아니라 체코인, 슬로바키아인도 많았지만 이들도 역시 외지에서 상공업을 하면서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게 되면서 결국 상당수가 독일인과 동화되었다. 예외도 있었는데 로렌 지방에서 온 독일인들의 경우 헝가리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였다.

19세기 헝가리인이 헝가리인 민족주의를 각성하고 1867년 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출범하면서 헝가리 영토 내의 독일인들은 새로 출범한 헝가리 정부에 의해 적극적인 마자르화 정책의 대상이 되었는데 의외인 점은 헝가리 내 독일인들이 마자르화 정책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마자르화 정책을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경우 1850년에는 도시 인구의 56%가 독일인이고, 헝가리인은 33%에 불과했던 반면, 60년 후인 1910년에는 무려 90%에 달하는 주민들이 자신을 헝가리인이라고 간주했다. 물론 이는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 현상에 따라 주변 지역에서 헝가리인들이 이주해 온 영향도 있겠지만 마자르화 정책에 의해 부다페스트의 독일인들과 유대인들이 헝가리인으로 동화된 영향도 상당했다. 이렇게 독일인들이 순순히 마자르화를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기존에 독일인들이 헝가리 내에서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더욱 놀라온 것은 수백 년동안 헝가리 영토 내에서 살아왔던 독일인 뿐만 아니라 대타협 이후 헝가리로 이주하여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독일인 이주민들 역시 마자르화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파일:Germans in Ukraine, Zakarpattia.jpg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고 공중분해되는 과정에서 헝가리 왕국과 그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은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게 되는데, 오스트리아로부터 새로 독립한 지역에서 현지인 민족주의자들과 독일인들 사이의 충돌이 격화된 것은 물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독일계에서 주어졌던 여러 특권들이 폐지되었던 것이다. 상당수의 독일계 헝가리인들 역시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였고, 잔류한 독일인들 중 상당수는 이후 2차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이 쳐들어올 때 환영했다가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양차대전을 거치며 헝가리 내 독일인 인구는 추방이나 동화로 인해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한 때 1백만여 명에 달했던 독일계 헝가리인 인구는 2016년 기준 18만여 명 정도만 남아있다.

5.2. 유대계 헝가리인

데니스 가보르, 존 폰 노이만, 에르되시 팔, 앤드류 그로브 등 공학기술과 자연과학 분야에서 활약한 유대계 헝가리인들이 잘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부다페스트 주민 상당수가 유대인이었으나 헝가리 국민단결정부 치하에서의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대부분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영국 등으로 이민간 상태이다.

비교하자면 이웃한 폴란드와 다르게 중세 헝가리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불관용 정책을 고수하던 편이었다. 중세 흑사병 시대 이후부터 헝가리 왕국의 유대인 박해는 더욱 극심해졌고 16세기 초반 무렵에는 헝가리 내 유대인 인구가 2천여 명 정도만 남았을 정도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정복하면서 유대인들이 헝가리에 대거 정착하게 되는데, 이는 오스만 제국 유럽 영토에 부임한 관료들이 현지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보다는 유대인들을 통역으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헝가리를 접수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대인 정책은 북쪽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에 비해 빡빡한 편이었다. 제2차 빈 공방전 이후 헝가리를 다시 접수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이 유대인들에게 지즈야를 매겼던 것과 비슷하게 유대인들에게 다양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였다. 요제프 2세 시대가 되어서야 여러가지 반유대인 정책이 철폐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가 폴란드 분할 과정에서 유대인 인구가 상당수 거주하는 폴란드 남부 지역을 점거하면서 헝가리의 유대인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16] 1848년 헝가리 봉기 당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헝가리인들과 함께 봉기에 동참하였고 이후 등장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체제 내에서는 유대인들의 입지가 급격히 개선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기준으로 헝가리의 유대인 인구 중 4분의 3 가량은 이디시어가 아닌 헝가리어를 모어로 구사했다.

동유럽 내에서도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헝가리에는 유대인이 손꼽힐 정도로 많아, 오스트리아의 수도 의 시장이었던 카를 루에거(Karl Lueger)는 부다페스트를 유다페스트(Judapest)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참고로 루에거는 유대인을 매우 싫어했고 가톨릭 원리주의자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히틀러 다음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반유대주의자로 불릴 정도. 실제로 그의 가치관은 훗날 아돌프 히틀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헝가리는 엄청난 양의 영토를 이웃 국가에 떼어주게 되면서 헝가리 민족주의는 과거보다 더 폭력적인 형태를 띄게 되었다. 1920년 헝가리 정부는 유대인 인구가 헝가리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유대인 입학생 비율을 5%를 넘지 못하도록 입시 정책을 손보았으며, 1938년부로 뉘른베르크 법을 모방하여 여러가지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38년 새로 재정된 법에서 유대인들이 법조인, 의료인, 언론인 등 고학력 전문직이 되는 것을 입학사정관제 비슷한 방식으로 전체에서 2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였으며, 1941년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통혼을 법적으로 금지하였다. 1943년 헝가리는 나치 독일이 자국인 유대인들을 상대로 홀로코스트를 하는 것을 묵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루마니아인[17]과 더불어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헝가리계 미국인 헝가리계 캐나다인 상당수가 유대계이며 이외에도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인구 중 20~25만여 명 정도가 헝가리 출신이라고 한다.2000년도 추정치 통계

6. 문화

파일:neprajz-lex-1-421a.jpg
  • 오스만 제국 복식에서 영향을 받은 망토인 치프러쉬르(cifraszűr)를 입은 헝가리인 남성들

문화적인 면에서는 유럽의 아시아라고 불릴 정도로 아시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르게 이들은 성 다음에 이름이 오는 작명 방식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풀네임이 세 가지로 구성되는 경우 ' 너이먼 야노시 러요시(Neumann János Lajos)'와 같이 성 하나와 이름 둘일 수도 있지만, '촌트바리 코스트커 티버더르(Csontváry Kosztka Tivadar)'나 '유하스 너지 샨도르(Juhász Nagy Sándor)'와 같이 성 둘이 이름 앞에 올 수도 있다. 다만 헝가리가 아니라 이름-성 작명 방식을 사용하는 주변 국가들에 사는 헝가리계는 주변 국가들의 작명 방식을 따라 이름-성 순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날짜도 서구권과 다르게 연월일 순으로 기재한다. 예를 들어서 영어( 영국 영어)로는 '2024년 1월 1일'을 '1st January 2024'라고 하지만 헝가리어로는 '2024. Január 1.'라고 한다.

이들의 조상 마자르족의 복장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영향으로 고대 아시아 유목민의 복장과 흡사하며, 헝가리어는 교착어여서 아직도 모음조화, 구개음화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고 명사의 남성형, 여성형 구분이 없다. 헝가리어 어휘의 21% 정도는 우랄어족 언어, 9.5% 정도는 튀르크어족 언어의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슬라브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은 편으로 헝가리어의 20% 정도가 슬라브어계 어휘, 11% 정도는 게르만어계 어휘에 기원을 두고 있다.[18]

7. 헝가리인 인물

7.1. 실존 인물

7.2. 가상 인물

8. 관련 문서


[1] Magyar(머저르)는 나라 이름(헝가리), ok는 사람을 뜻한다. [2] 헝가리어로는 무러비데크(Muravidék). 슬로베니아가 주 단위 행정구역을 폐지했기 때문에 공식 행정 구역은 아니다. 트리아농 조약으로 헝가리가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할양한 슬로베니아인이 많이 거주한 지역이다. [3] 다만 훈족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전혀 무관하진 않다. [4]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며, 부계로 우랄계 민족의 유전자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자르족은 우랄계 부족이다'라고 할 만큼 많지는 않다는 뜻이다. [5] 정확히는 오늘날의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페름 일대. [6] 고대 로마 제국의 판노니아 속주가 있던 지역이다. [7] 마자르족들의 도래 이전 판노니아 지역에는 슬라브족의 이동을 통해 눌러앉은 슬라브족을 중심으로 게르만족, 일리리아족, 켈트족, 라틴족, 아바르족 등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8] 폴란드어 헝가리어에 친구끼리의 깊은 우정을 폴란드-헝가리 관계에 빗댄 관용어구가 있을 정도다. [9] 자세한 정황은 트리아농 조약 문서 참조 [10] 주로 카자흐스탄에 거주했고, 극소수는 타지키스탄에도 있었다. 2010년에 조사한 타지키스탄 정부의 소수민족 인구 통계에 따르면 헝가리인이 1명 있었다고 나왔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으로선 어떤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은 없을 수도 있다. [11] 외양 상으로도 현지의 누비아인들이나 아랍인들과의 혼혈이 잦아서 피부가 까무잡잡하다. 때문에 마자라브인들은 헝가리 핀란드에 정착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제외하면, 우랄어족 계통 민족 유일의 흑인계 민족이다. [12] 당시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가톨릭 신자들보다 개신교 신자들이 대화가 더 잘 통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여러 종파로 분열되면 봉기를 일으키더라도 단합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개신교 개종을 용인하였다. [13]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되 정교회 전례를 유지하는 기독교 종파로 실질적으로는 정교회 신자들 못지 않게 차별받았다. [14] 아리우스파 신학을 계승한 기독교 소수종파. [15] 이 지역은 슈바벤 튀르키예(Schwäbische Türkei)라고 해서 오스만과의 전쟁으로 주민이 아예 사라져버렸다고 할 정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다. [16] 1815년부터 1840년 사이 헝가리 내 유대인 인구는 80% 가까이 증가하였다. [17] 특히,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루마니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학살당했다. [18] 이유는 독일어권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400여년 가까이 동군연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헝가리어는 몰라도 독일어 좀 한다면 헝가리 여행의 난이도는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