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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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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칭하는 중동
G7에서 포함한 대(大)중동
사회정치적으로(종교, 문화 포함) 중동과 연결되는 지역[1]

1. 개요2. 명칭과 개념
2.1. 중동 개념의 탄생 및 확산 과정2.2. 중동의 명칭 변경에 대한 논쟁2.3. 대중동(大中東, Greater Middle East)
3. 지정학적 특성
3.1. 역사3.2. 국가 및 지역 목록3.3. 대중동(중근동) 권역
4. 대(大)중동인 목록
4.1. 국적별4.2. 민족별
5. 대(大)중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
5.1. 대개 사막 지역이다5.2. 종교가 이슬람만 있다5.3. 중동인은 아랍인이다5.4. 대중동인은 유색인종이다5.5. 중동 국가들은 모두 금요일이 휴일이다5.6. 중동 국가들은 비만율이 높다5.7. 중동은 유럽과 연관이 없다
6. 관련 문서
6.1. 중동을 모티브로 한 가상 매체에서의 집단

[clearfix]

1. 개요

中東 | 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캅카스 3국 제외)[2]를 칭하는 이름. 지도에서는 표시되어있지 않지만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러시아의 북카프카스 등도 넓게 보면 중동과 연결되는 지역으로 볼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가 5개 나라가 중동의 핵심 강국들이다. 각각 아랍, 튀르크, 페르시아, 유대, 이집트[3] 민족 및 문화의 종주국이다. 여기에 최근 아랍에미레이트가 이스라엘에 맞먹는 신흥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2. 명칭과 개념

2.1. 중동 개념의 탄생 및 확산 과정

서양에서 서아시아 서부를 부르던 이름은 여러가지 였다. 대표적으로 언어학적 문화권을 지칭하는 ' 아랍', 중동처럼 지리적 위치에 가까운 ' 근동(Near East)', 동양 전반까지 포함하는 ' 오리엔트 (Orient)' 등이 있었다.

그리고 "중동(동방의 가운데)"의 어원은 아랍어 الشرق الأوسط(Ashsharqul'awst/Asharq Al-Awsat) '앗샤르꿀 아으싸뜨/혹은 아으사뚜'에서 나왔다. 인도/ 페르시아 등을 포함하는 아라비아 동부 지방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영국인들이 유라시아 대륙 지도를 만들면서 이 단어를 번역하여 미들 이스트라고 불렀다. 이후 1902년 9월 미합중국 해군 제독 앨프리드 머핸(Alfred Thayer Mahan)의 " 페르시아 만과 국제 관계(The Persian Gulf and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글에서 미들 이스트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전세계에 퍼졌다.

사실 머핸이 정의한 중동은 지금의 의미보다 더 좁은, 페르시아 만을 끼고 있는 나라만을 의미하는 뜻이었다. 20세기 대영제국 러시아 제국의 "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 벌어지는 시대상 속에서, 머핸의 "중동"은 아라비아( 아랍, 근동)와 인도(영국령 인도 제국) 사이를 지칭하는 의미[4]였다. 이런 머핸의 표현이 한 달 뒤 타임지에서 "중동 문제"라고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중동이란 말이 이 지방을 대체하는 말이 되었다.

물론 "중동"의 범위는 아직 작았다. 영국과 머핸의 기준에서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포함) 및 일본 동쪽 끄트머리 지역 극동(Far East)이라 불렀고,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동유럽( 발칸반도)과 아나톨리아, 레반트 지역은 가까운 동방이라 하여 근동(Near East)이라 했다. 영국의 "중동"의 경우에는 위 아랍어의 '중동'처럼 오늘날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티베트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포괄했던 것으로 보인다.[5] 사실 인도와 이란은 원래 같은 아리아계이고 인도와 아라비아도 멀지 않고 아라비아 해로 마주 보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 등과는 한참을 떨어져 있어서[6] 원래는 이게 맞기도 하다.

근동 개념의 경우 근대( 19세기) 유럽 외교가의 "동방 문제", 즉 유럽의 환자 취급받던 오스만 제국의 처리를 둘러싼 외교적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자연히 오스만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는 북아프리카-서아시아 일대의 이슬람 문화권을 한데 묶어 가리키는 중동 개념에 묻어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은 "근동"의 범위는 튀르키예와 동 지중해로 한정시키고, 북아프리카~아라비아 전역은 파키스탄에 위치한 중동지상군 사령부에서 지휘했다. 그래서 전쟁 내내 언론 등에서 이 지역을 중동이라 칭했고 그 표현이 굳어지게 되었다.

2.2. 중동의 명칭 변경에 대한 논쟁

일설에는 전쟁 이후 이 지역의 이름을 근동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영국 젊은이들이 그 곳을 중동이라 알고 죽어갔으므로 계속 중동이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중동이란 표현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일설에 따르면 "중동"이 근동의 범위까지 잡아먹은데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알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근동"지상군 사령부는 후세인 맥마흔 서한 이후 시리아 등을 다스리던 프랑스가 지휘했는데 얼마 후 프랑스가 나치에게 항복하면서( 비시 프랑스) 영국이 지휘권을 넘겨받았다는 것. 그런데 자존심 강한 프랑스군은 지휘권을 내주지 않았고 이로서 "중동"지상군 사령부가 그대로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동지상군 사령부가 북아프리카~아라비아 전역을 담당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파일:중동 가리키는 범위(스페인어).png 파일:중근동(독일어).png
스페인 왕립 학술원에서 가리키는 중동[7] 독일에서 가리키는 근동(Naher Osten) 범위
독일에서는 여전히 이 지역에 대해 "중동"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독일어로는 Naher Osten(근동, 나어 오스텐)이라고 하고 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미얀마, 그리고 가끔씩 이란를 포함하는 과거의 "중동" 개념을 그대로 이어써 이 지역을 "Mittlerer Osten(미틀러어 오스텐, 직역하면 중동)"이라고 부른다. 굳이 영미권이 의미하는 중동이라고 할 때는 "대 중동(Großraum Mittlerer Osten, 그로스라움 미틀러어 오스텐)"이라고 따로 부른다. 스페인에서도 독일과 비슷하게 보기도 하는데, 스페인 왕립 학술원에서는 스페인어 "Oriente Medio"라고 쓸 때 인도와 방글라데시까지 합쳐서 가리킬 때도 있다.

스페인어로 Oriente Medio로 부른다. 스페인에서 중동하면 이집트 서아시아를 가리키며, 스페인 왕립 학술원에 의하면 원래는 남아시아를 가리켰다.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로도 Médio Oriente(Medio Oriente)라고 비슷하게 부른다.

프랑스어로는 Moyen-Orient(모아이영-오히앙)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동양의 중앙, 중동이다.

러시아어에서도 Ближний Восток(블리지니 보스토크), 즉 근동을 사용하고 있다. Средний Восток(스례드니 보스토크, 중동)라는 표현도 있고 거의 비슷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기는 한데 근동이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쓴다.

튀르키예어로는 Orta Doğu (오르타 도우)라고 부르지만 튀르키예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다. 튀르키예는 공식적으로 유럽국가를 표방하고 중동국가들과 자신들을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오랜 문화적,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중동국가들, 특히 아랍국가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와 발칸 국가들을 통틀어 근동 (Yakın Doğu)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주로 오스만 제국을 다루는 역사학계에서 주로 보이는 표현이다.

한국과 일본에는 중동말고도 중양(中洋)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실제로 국립국어원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용어이다.

그 외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아시아 중서부에 있으니 중동이 아니라 '중서'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3. 대중동(大中東, Greater Middle East)

간혹 중근동(中近東)이라 할 때도 있다. 보통 서아시아를 가리키지만, 북아프리카 이집트 마그레브 지역, 소말리아, 파키스탄 등까지 포함해서 대중동(大中東, Greater Middle East)이라고도 한다.

유럽적 편견이든, 아니면 원래 있었던 이슬람권의 표현을 빌려온 것이든, "중동"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아시아의 중서쪽에 있다는 점에서 때때로 아스트랄한 기분이 드는 건 변함 없다. 중동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아랍권 사이에 있던 팔레스타인에 세웠고, 이곳에 있던 아랍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아랍보다는 중동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틀린 주장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스라엘이 나타나기 전부터 아랍계 출신 사람들만 살지는 않았다.

어원적 특성 때문에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서아시아-북아프리카라는 단어가 너무 길고 준말 만들기도 마땅찮아 중동이라는 단어만 계속 쓰이고 있다. "아랍"[8], " 이슬람권"[9]이란 말도 부정확하긴 마찬가지기 때문. 같은 어원을 가진 극동이란 단어가 21세기 들어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대신 " 동아시아"나 " 동북아" 따위의 단어로 대체된 것과 비교된다.

1993 대전 엑스포에서 알제리, 모리타니, 수단 공화국, 요르단이 중동공동관에 참가했는데 거기서의 중동이 넓은 의미의 중동, 즉 대중동이라고 보면 된다. 2011년 튀니지 혁명을 중동발 재스민 혁명이라고 불렀던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단 남수단의 경우는 대다수가 흑인계이며, 아랍어보단 영어와 여러 부족 간의 토속어의 비율이 높고 종교도 토착종교와 기독교이기 때문에 중동권에는 속하지 않는다.

3. 지정학적 특성

You can't make war in the Middle East without Egypt and you can't make peace without Syria.
당신은 중동에서 이집트 없이 전쟁을 시작할 수 없고 시리아 없이 평화를 이룰 수도 없다.
- 헨리 키신저[10]
대표적인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로, 전략적, 경제적(= 석유 등의 천연자원)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면서도, 각종 종교와 사상, 인종의 충돌장소가 된 지 오래라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험악한 사건( 테러라든가 등등)의 발단은 대부분 중동 관련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래서 현대에 있어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실제로 20세기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전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런 연유로 종종 '신이 버린 땅'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세계 최대 종교의 뿌리이자 중심지였던 역사를 생각해 보면 꽤나 아이러니하다.

흔히 이슬람 관련 문화를 보고 중동 문화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슬람=중동은 아니다. 북아프리카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지역, 유럽의 발칸반도 일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 중앙아시아, 중국의 북서부(신장 위구르 자치주)와 러시아의 북카프카스(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도 이슬람 문화권이다. 다만 근동과 중동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중동과 아랍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동 지역은 크게 아랍계, 튀르크계, 페르시아계, 유대인계로 나뉘며, 넷은 언어, 인종부터 시작해서 차이점이 많다. 물론 한 군데서 오래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서로 섞이고 동화된 부분이 있는 점도 사실이지만, 아직 서로를 명확히 구분할 정도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고 사이도 많이 안 좋은 편이다.

중동 국가이긴 하지만 아랍 국가가 아닌 나라들로는 이스라엘(유대계), 이란(페르시아계), 튀르키예(튀르크계), 키프로스(그리스계) 등이 있다.

3.1. 역사

중동이라는 말에서 흔히 사막을 연상하지만,[11]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도 불리는 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일찍이 문명이 발생하였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각종 도시와 국가가 성립되어 수많은 세력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일단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며, 이후 고대 이집트,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히타이트, 이스라엘 왕국 유대 왕국 등이 주요 국가이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경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비옥한 초승달 지대 전역이 통일되었다. 그 후 200년 동안 안정되어있다가 기원전 4세기 경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하면서 이 지역을 지배하는 듯 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은 마케도니아 왕국,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으로 분열되었다. 이 때 그리스 문화가 중동에 유입되었다. 그 후 기원전 1세기~ 기원 후 1세기 경 로마 제국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을 지배하면서 로마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로마 점령 기간에 시리아 지역에 유대교를 뿌리로 한 새 종교 기독교가 등장하였고, 기독교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럽, 중동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이란 지역에는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가 세워져 로마와 대립하며 조로아스터교 등의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7세기에 접어들자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이 발흥하여 동로마로부터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여 중동 대부분 지역이 아랍-이슬람 문화권이 되었다.[12] 아랍인들은 동로마와 페르시아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었지만 정복지의 제도와 문화적 유산들을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8~11세기 동안 중동 지역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통틀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다.[13]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던 압바스 왕조의 통제력이 약해져 지방 군벌 세력들이 난립하고, 용병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유목민 튀르크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중동 지역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상황에 빠졌다. 이에 더해 11세기 말에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13세기 초에는 몽골이 쳐들어오는 외우내환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럽 십자군 세력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이슬람 세계가 정치적 통일성을 되찾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격퇴되었으나, 이란을 중심으로 한 동부 이슬람 세계는 튀르크인 도래 이후의 오랜 정치적 혼란에 뒤이은 몽골의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로 인해 황폐화되었다. 게다가 중동 지역 대부분은 사막 혹은 건조 기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많지 않았는데,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관개 시스템 역시 수천 년에 이르는 집약적 농업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14]와 관개 시설의 파괴, 사막화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13세기 이후 중동 지역은 인구-생산력 측면에서 유럽 지역에 비해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고, 곧 문화-기술적 측면도 유럽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따라잡히게 되었다. 그나마 비단길, 바닷길을 이용한 아시아-유럽 간 중계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지만, 이 역시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막히게 되었다. 또 중동권 역시 흑사병에 의해 유럽 못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중동 일대를 석권한 오스만 제국 15세기~ 16세기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뒤쳐졌다. 3개 대륙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을 압도하던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조차 인구 수로 따지면 유럽 전체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15] 그 결과 오스만 제국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전쟁 수행 능력조차 쉴레이만 1세 사후 유럽 국가들에게 급속히 따라잡혔고[16], 1683년 2차 빈 포위의 실패를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은 점차 "유럽의 환자"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양의 은화가 유입되는 가운데,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엉망이 되었던 반면, 좀 더 건실한 경제구조를 가졌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영국에서는 가격 혁명이 외려 해당국 경제에 순 영향을 주었다. 오스만 외의 다른 이슬람 국가인 사파비 왕조 역시 유럽에 비하면 국력이 상대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져서, 19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 이후 중동 지역은 유럽 제국들의 압도적인 군사력 아래 제국주의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대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나마 강대국이던 오스만 제국과 오만, 이란 역시 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경험 때문에 오늘날 중동 지역 사람들은 강한 반(反) 서방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패배함에 따라 완전히 해체되고 지역별로 아랍 독립국가들이 성립되어 오늘날 중동의 국경선이 대략적으로 그어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해체는 이슬람과 중동의 위상이 추락함을 의미했다.

20세기 이후 석유 자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그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되었지만, 국내 사회와 경제 기반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기 때문에 심각한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 지역/종족/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 등 각종 문제가 빈발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속주의, 아랍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들이 등장하였지만, 대개 독재 정치로 흐르거나 제대로 실현이 안 되는 등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에 갈수록 강력해지고 발전하는 서방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냉전으로 인한 미국 소련(러시아) 등의 지나친 간섭도 중동의 정세를 한층 복잡하고 극단적으로 만들었다.[17] 지금도 여전히 중동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에게서 군사, 기술, 경제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종속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나마 걸프만 국가들은 부유해서 암울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국가들도 왕정이다. 그 결과 중동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좌절감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고, 익숙한 종교적 메시지와 널리 퍼진 이슬람교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그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급격한 인구 증가[18]와 도시화[19]로 인해 수자원의 고갈이 심해지면서 극심한 식량 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이는 중동의 미래[20]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같이 부유한 나라들은 담수화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있지만 담수화하는데에도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한계가 있다.

오죽하면 독일의 마인츠 시 연구원들이 이대로 간다면 중동은 곧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발표할 정도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조차 중동은 사막화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어 늦게 잡아도 80년 뒤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렇게 개막장인 환경이 된다면 중동의 국가들은 몰락할 것이 분명하고 떠나는 난민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한 일[21]이라서 세계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22]

미국으로서도 골치 아픈게 자국 경제 및 정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70년에 걸쳐 이스라엘을 일으킨 유대인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도무지 답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렇듯 암울해보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해결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순까지 오일 쇼크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값 폭등으로 호황을 누리자 각종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한국 건설업체들이 빠른 공사속도와 값싼 공사비용, 그럼에도 괜찮은 품질을 내세워서 건설 사업 다수를 수주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고임금[23]을 노리고, 중동에서 열심히 노동하면서 한국으로 돈을 보냈다. 당시 아싸라비아도 그런 개념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래서 한때는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의 85% 가량이 중동으로부터 흘러왔을 정도[24]이며, 이러한 자금을 통해서 오일쇼크의 여파를 땜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한국 건설업 역시 중동에 참여하지만 단순 노동이 아닌 설계, 시공 기술 위주로 참여한다. 단순노동은 인도인, 파키스탄인, 네팔인, 스리랑카인, 방글라데시인이 담당한다.

현재도 그 인연 덕택에 중동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개신교 선교사 문제만 빼면 좋은 편이고, 현재도 중동권과 경제적인 교류는 활발하다. 그렇기 때문에 1970~80년대에 만들어지거나 배경으로 삼고있는 작품들을 보면 중동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달려라 하니 택시운전사, 꺼벙이을 예를 들수있다. 이 때 업체에서는 관련 서류에 노동자들의 종교를 전부 불교로 기재했다고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무신론자를 매우 나쁘게 보기 때문에 무종교로 적지는 않았고, 교리상으로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다른 이교도보다 좋게 보지만 이 두 종교와는 오랜 역사적 갈등으로 감정이 좋지 않기에 대충 중동이랑 별 인연이 없는 불교로 적은 것.

21세기 들어서는 중동에서 금요일에 쉬는 국가들이 금요일과 함께 쉬는 주말 휴일을 목요일에서 토요일로 바꿨다.

3.2. 국가 및 지역 목록

3.3. 대중동(중근동) 권역

여기 나열된 국가 및 지역은 중동의 범위를 확장했을 때[26] 중동에 포함되는 지역들이다. 이 중에서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은 중동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 아랍어권 이슬람 국가라서 인종, 언어, 종교,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며, 역사적 공통점도 있으므로 넓은 의미의 중동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4. 대(大)중동인 목록

4.1. 국적별

4.2. 민족별

5. 대(大)중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

5.1. 대개 사막 지역이다

건조기후 사막을 구분하지 않는 편견이다. 대중동의 위도가 25도~35도이고 대륙 서안이기 때문에 건조해질 수 밖에 없지만 지중해 주변은 지중해성 기후를 지니고 있고 나일강,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주변은 숲이 있다. 또한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유역은 늪지로, 이 지역의 주민들은 수상 생활을 한다. 이란 카스피해 주변은 기후가 습윤하다. 레바논 시리아의 고산 지대는 겨울마다 눈이 온다.

5.2. 종교가 이슬람만 있다

이슬람이 대중적이라는 의미이지 전반적인 것이 아니다. 중동은 기독교, 유대교, 바하이 신앙을 포함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탄생지이고 예수의 탄생지이며 조로아스터교, 힌두교[28]도 존재한다. 다만 이슬람 근본주의로 인해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을 뿐이다.

5.3. 중동인은 아랍인이다

아랍인은 대중동 서부에 치중해 있으며 쿠르드인, 페르시아인, 파슈툰인같은 이란계 민족들과 펀자브인, 신드인같은 인도계 민족들도 있으며 이들의 인구는 아랍인 전체의 인구와 맞먹는다. 또한 대중동 서부에 유대인, 아시리아인, 콥트인, 베르베르인, 투아레그인같은 소수민족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튀르키예인처럼 투르크화된 그리스인도 8,000만명 정도가 있다.[29]

5.4. 대중동인은 유색인종이다

서양, 동아시아 대중매체에서는 대중동인을 흑발갈안, 짙은 눈섭, 갈색 피부, 메부리코로 묘사하고 의상이 사우디인, 걸프 아랍인, 오만인, 수단 아랍인처럼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뉴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대중동인들은 유럽인보다 생활수준이 낮아 신체 상태가 좋지 않고 수염 관리가 안되어있어 유럽인과 다른 인종으로 보이고 있다.

흑발갈안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같은 남유럽에서도 대중적이고 금발벽안 갈발 녹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레반트지역,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이란, 파키스탄, 북아프리카 북서부에도 존재한다. 나무위키의 튀르키예인, 아랍인, 이란인, 아프가니스탄인, 파키스탄인 문서에서 그런 특징을 지닌 사람들의 문서링크가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중동에 거주하지만 이스라엘인은 서양, 동아시아 대중매체에서조차 위 특징으로 묘사되지 않고 유럽인처럼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미국 유대인 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인 아슈케나짐 동유럽인들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어 이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30]

5.5. 중동 국가들은 모두 금요일이 휴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금요일 토요일이 주말 휴일이지만[31], 레바논, 튀르키예 등은 오히려 금요일이 평일이고 토요일 일요일이 휴일이다. 중동 대부분의 국가가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기 쉽도록 금요일을 휴일로 한 것에서 생긴 오해이다. 아랍에미리트는 2022년부터 토요일, 일요일 전휴, 금요일 반휴 제도를 도입했다.

5.6. 중동 국가들은 비만율이 높다

예멘은 내전으로 인해 비만율이 낮아졌고,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비만율이 높은 이유는 아랍 전통 음식이 지방 칼로리가 높은 메뉴가 대부분이고, 단맛이 강한 디저트 문화도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운 기후와 자동차 중심의 생활도 비만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5.7. 중동은 유럽과 연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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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 서양 백인우월주의, 오리엔탈리즘 유럽 문명의 원천을 고대 그리스라고 정의하고 외부의 영향없이 독자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20세기 중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이집트이 남긴 유물, 유적, 기록들이 발견되고 시오니즘이 성행하자 서양 문명의 원천은 수메르으로 앞당겨졌다.[32]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현재까지도 정계는 아직까지도 중동과 유럽이 둘 다 기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33][34]

신우파 사관으로 영향으로 이슬람때문에 찬란한 고대 중동 문화가 사라졌고 이슬람이 유럽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낭설들이 성행하고 있지만 와하비즘, 살라피즘 이슬람주의적 현상을 과거에 대입시키는 오류이다. 놈 촘스키, 로버트 드레이퍼스는 현재 이슬람의 모습이 영미권의 신우파가 종교근본주의를 확산시켜 이에 영향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 이슬람주의적 모습을 세계적으로 홍보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영미권의 영향의 아니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던 현상이고 역사적으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영국의 도움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영국을 이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구입함으로써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을 수가 있었다.[35] 이는 21세기 현재까지도 중동과 유럽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계되면서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현재 서양인들은 중동보다 동아시아에 친숙하지만 동아시아와 겨우 교류를 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대항해시대부터 대규모 교류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이다.[36] 그러나 중동과 교류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되고 그 이전인 신석기 시대에 중동인들이 농경으로 따른 인구 증가로 아나톨리아, 발칸반도, 남유럽까지 퍼져있었다. 유럽은 유전적으로도 동아시아보다 중동에 가까우며 고대부터 시작된 중동의 영향으로 지금의 유럽이 생겨난 것이다. 신항로 개척 전까지 유럽 측에서 외세라고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과 중동이 대부분이었고 이교도라고 충돌해 온 숙적이자 교류도 많이 해 온 이웃이었다.

6. 관련 문서

6.1. 중동을 모티브로 한 가상 매체에서의 집단


[1] 지도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인도의 파키스탄 인접 지역과 중국 서북부도 여기에 포함된다. [2] 유럽으로 보기도 하며, 드물게 캅카스도 중동으로 보기도 한다. [3] 이집트의 위상은 다소 독특하다. 나일강의 부양력으로 인구수 1억을 돌파했고 사회 전반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면모가 약해 아랍권 내에서 보기 드물게 영화, 드라마 등의 문화산업이 발달했지만, 수천년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콥트교로 대변되는 그리스-로마 문명의 흔적 때문에 아랍권 내 대표성 및 상징성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밀리기 때문이다. [4] 이 점에서 머핸의 "중동"은 최초로 인도를 제외하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글을 쓰면서도 본인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이라고 단서를 붙여두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5] 출저: #. [6] 그나마 붙어있는 중국과는 히말라야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 등이라는 자연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 등은 동남아시아가 아니고 인종부터 백인종으로 확 달라진다. [7] 밝은 파란색이 원래 중동을 가리키는 단어였으며, 녹색 계열들은 현재 많은 학자들이 가리키는 중동 범위이다. [8] 민족명으로서 똑같이 중동에 거주하는 페르시아계, 쿠르드계, 베르베르계, 튀르크계, 인도계, 유대인 등의 민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9] 이슬람권 국가는 소위 "중동"에만 있는게 아니라 동남아 등까지 매우 넓다. [10] 복잡한 중동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에 대해서 키신저가 남긴 격언. [11] 단순히 면적으로만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막'이라고만 단편적으로 파악하면 중동 인문지리에 대한 이해를 망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한반도의 절반 이상이 산지라고 해서 한국인들이 산속에서 사는건 아니듯이, 중동 사람들 역시도 살기 좋은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서 산다. [12] 이슬람 발흥 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 문화권, 이란은 조로아스터 문화권이었다. [13] 이 시기에 극동의 신라까지 아랍, 페르시아 상인들이 진출했으며, 신라가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이드리시의 지도도 이 시기에 나왔다. [14] 비가 내리지 않는 땅에 지하수를 퍼서 농사를 지었는데, 비가 안 와서 토양의 염분이 씻겨져 나가지 않고, 대신 지하수의 염분이 표토층에 누적되는 이유로 토양에 염분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현상 [15] 사실 중동은 유럽과 달리 땅이 척박해서 농경지가 많지 않다 보니 인구가 늘어날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옛날부터 중동의 인구는 유럽보다 훨씬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중동의 인구가 현대에 들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것은 석유의 발견과 오일 머니로 벌어들인 돈빨로 인프라를 충족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 [16] 애초에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 유럽 국가들의 국가 체계가 봉건제 때문에 부실했고 내부 단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대항해 시대를 지나면서 급속히 발전하면서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내부가 단합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능가하게 된다. 결국 유럽이 끝내 국민개병제를 실시한 후부터는 오스만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동원력과 전쟁 수행 능력 또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17] 지금도 중동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게 세다. 중동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신경 써야 할 지경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게 미국. 중동의 대부분 나라들이 일반 국민들의 반미 감정과는 별개로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 예외라면 이슬람 혁명 이후 현재의 이란 정도지만, 이쪽도 자신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맞서지 않는다. [18] 2017년 기준으로 서아시아는 2억 6,000만명, 북아프리카는 2억 3,000만명으로 1950년대에 각각 5,800만명, 5,500만명 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밖에도 현재 아프리카 다음으로 세계에서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이 추세대로 계속가면 2100년에는 중동지역의 인구가 동아시아지역과 맞먹게 된다. [19]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중동의 국가들은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하여 도시화가 굉장히 높다. 특히 사막화로 인해 농촌들이 파산하면서 농촌 인구가 계속 도시로 몰리고 있어 도시화가 심해지고 있다. [20] 특히 중동 국가들은 국토가 척박하고 산업이 빈약해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해 쓰다 보니 물가가 세계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그나마 국가에서 보조금으로 안정시켰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경제난이 심해져 보조금이 축소되면서 물가가 급증하고 있어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각해지고 있다. [21] 실제로 중동에서는 부자와 서민 관계 없이 매년 수십만 명이나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유럽으로 떠나는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유럽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이 유럽행이 위험하며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서로 가려고 한다. 게다가 이 기후난민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난민들은 유럽에 정착하길 원해서 살기 어려운 중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는 인구 증가로 인한 사막화와 수자원 고갈도 문제이지만, 국외로 계속 떠나는 인구 때문에 골머리를 않고 있다. 유럽 역시 몰려드는 중동인들로 인해 골치가 아픈 상황. 중동 뿐만 아니라 똑같이 사막화로 환경이 나빠지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유럽으로 난민이 쏟아져 오는 판국이다. [22] 그러다 보니 미디어물에서 항상 등장하는게 중동의 환경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 것과 이 지역 나라들의 몰락이다. 농담이 아니라 여기 나라들의 개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렇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미래를 암시한다. [23] 1970년대 후반 당시에는 중동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몇배는 벌 수 있었다. [24]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이 최첨단 전자 제품 + 반도체, 건설용 기계, 철도차량, 선박, 석유화학제품, 철강, 이차전지, 산업용 설비 및 제조장비와 부품,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큰 수익을 벌여들었던 나라가 아니었으며, 전자제품이 알려졌다해도 싼 맛에 소비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점을 생각해야된다. [25]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는 1인당 GDP도 이스라엘보다 높지만, 이슬람 특유의 검열과 정치 부정부패가 굉장히 심한 편인데다 삶의 질은 거의 바닥인 경우가 많아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26] 베트남을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한국과 같은 동북아로 분류하는 수준으로 확장했을 때를 말하는 수준임을 주의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포함되는 경우는 아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딱 하나 빼면 일반적인 중동 지역과는 역사,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그 공통점이라는 종교도 소련시기를 거치며 할랄 보드카니 할랄 돼지고기니 하는 것들이 언급될만큼 세속화 정도의 차이가 심한 지역이라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까지 중동에 포함하는 것은 무슨 말레이시아에 화교 많다고 말레이시아를 동북아로 넣는 수준까지 가버리는 과도한 확장이니 주의. [27] 유대인은 원래 종교집단 명칭이다. [28] 파키스탄에 있고 인도인 이민자들이 있는 아랍에미리트, 오만에도 있다. [29] 아나톨리아는 11세기까지 그리스어가 대중적이었다. 아나톨리아 전체가 그리스어를 버리고 튀르키예어를 모어로 삼게 된 것도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 때문이다. [30] 좌파 성향인 노동시오니즘들과 극우 성향인 신시오니즘은 자신들의 기원인 중동지역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아랍인과 유사한 외모를 강조한다. 그러나 특히 신시오니즘은 무슬림, 아랍어 사용자는 유대인과 인종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백인우월주의를 배운 수정시오니즘은 유대인은 백인이고 아랍인은 유색인종이라고 생각하며 유대인을 유럽 백인으로 묘사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리고 종교시오니즘은 외모보다는 유대교 여부를 강조하고 자유시오니즘은 유대인의 특징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31] 민간 사업장은 금요일만 휴무인 곳도 있음. 옛날에는 목요일 금요일이 주말이었다. [32] 당시 시오니스트들은 전근대까지 종교집단 명칭인 유대인을 민족 개념으로 곡해하고 유대인이 수메르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33] 서양의 대중매체에서는 고대 중동 문명을 서양과 연관있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이슬람 대중화 이후 중세 이후 중동은 서양과 차이가 두드러지게 묘사하고 있다. [34] 중동과 유럽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리버럴 진영이 있지만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 진영과 좌파 리버럴에 비해 우파적이다. 특히 영미권 주류 리버럴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영미권이 우파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SJW은 중동관은 대안우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이는 영미권의 정치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35] 이슬람주의자들은 반서방 성향때문에 이슬람 문화는 신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타종교, 타문명의 영향을 부정하고 이슬람과 아랍을 일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도 19세기 후반 독일, 러시아에서 시작된 옥시덴탈리즘과 20세기 후반 영미권의 기독교 우파 사상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36] 실크로드가 있었지만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중국은 직접적으로 중동이 아닌 중앙아시아와 교류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도 한나라, 당나라, 원나라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37] 단, 현재는 이집트인도 아랍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적으로 분류할때 이집트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경우를 제외하면 유대인, 튀르키예인, 페르시아인처럼 따로 부르는 경우는 드문 편. 당장에 이집트의 공식 명칭부터가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며 언어도 고유의 언어를 쓰는 튀르키예인, 유대인, 페르시아인과 달리 아랍어를 쓴다. [38] 사우전드 선의 기본적인 모티브는 이집트지만 아젝 아흐리만이 작중에서 지구(작 중에서는 홀리 테라)의 이란 출신(작 중에서는 아케메네스 왕국으로 나온다.)이었다는 것과 이스칸다르 카욘의 이스칸다르가 알렉산더의 아랍식 표기이자 중동권 남성의 이름인 것인 만큼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도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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