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0:48:28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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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스라엘/정치, 팔레스타인/정치
외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랍권 관계, 벨푸어 선언, 오슬로 협정
방안 일국 방안, 양국 방안, 삼국 방안, 영국 방안
사상 시오니즘, 반시오니즘,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즘, 반이스라엘주의, 반팔레스타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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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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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이스라엘
골다 메이어, 이츠하크 라빈, 아리엘 샤론, 베냐민 네타냐후
팔레스타인
야세르 아라파트, 마흐무드 압바스, 이스마일 하니예, 야히야 신와르
관련 사건 중동전쟁, 이스라엘 건국 전쟁, 나크바, 수에즈 전쟁, 6일 전쟁, 소모전(중동), 민항기 납치 및 테러( 엘알 426편, 엘알 253편, 엘알 432편, 트랜스 월드 840편, PFLP 동시다발 하이재킹 사건, 사베나 571편, 엔테베 작전), 검은 9월, 뮌헨 올림픽 참사, 1973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욤 키푸르 전쟁, 레바논 내전, 골란 고원 분쟁, 제1차 인티파다, 제2차 인티파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철수, 파타-하마스 분쟁, 가자 전쟁( 2008-2009, 2012, 2014, 2021), 2021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 2023년 알아크사 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기타 서동시집 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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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1948~1949
제1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 건국전쟁)
1956
제2차 중동 전쟁
(수에즈 전쟁)
1967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1973
제4차 중동 전쟁
(욤 키푸르 전쟁)
관련 문서: 소모전 | 레바논 내전 | 2차 레바논 전쟁 | 가자 전쟁 | 하마스 전쟁 | 3차 레바논 전쟁 | 이스라엘의 외교 | 다자관계 | 가자 지구 | PLO | 하마스 | 헤즈볼라

중동전쟁
中東戰爭 | Arab–Israeli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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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별 색상 내용
가자 지구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
아랍국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 국가
교전 및 지원국
아랍연맹[2]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예멘,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영국[3], 미국[4], 소련[5], 체코슬로바키아[6], 북한[7]
이스라엘 측 이스라엘, 영국[8], 프랑스[9], 소련[10], 체코슬로바키아[11], 미국[12]

1. 개요2. 1980년대 이전3. 4차 중동전쟁 이후
3.1. 1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1978)3.2.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전 개입 (1982)3.3. 제1차 인티파다 (1987 ~ 1993)3.4. 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1982 ~ 2000)3.5. 제2차 인티파다 (2000 ~ 2007)3.6. 2006년 가자-이스라엘 분쟁 (여름비 작전)3.7.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3.8. 제1차 가자 전쟁 (2008 ~ 2009)3.9. 이란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3.10. 제2차 가자 전쟁 (2012)3.11. 제3차 가자 전쟁 (2014)3.12. 제4차 가자 전쟁 (2021)3.13. 2023년 제닌 공습3.14. 제5차 가자 전쟁 (2023 ~)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이스라엘 아랍권 국가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서방 및 동구권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과 갈등에 대한 문서.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직후까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다스리던 영국이 1948년에 이 지역의 통치권을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무주공산의 영역을 누가 선착순으로 접수하느냐에 대한 충돌이 발생했다.

실제로는 1917년의 밸푸어 선언에 따라 영국이 주관하면서 유대인들의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방침을 약속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국이 1915년의 맥마흔 선언으로 해당 지역에 아랍인들의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구상을 약속했으며, 영국의 정리되지 않은 이중계약으로 인하여 해당 지역의 소유권에 대하여 아랍인 공동체들과 유대인 공동체들의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하였다.

UN이 이를 중재하고자 하였으나 UN의 중재안은 아랍인 공동체들과 유대인 공동체들에게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방안이었고,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영국의 약속과 다르게 유대인 민족국가의 건국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48년 5월 14일에 이르러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건국선언서를 발표하면서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곧이어 아랍 연맹의 회원국들은 이스라엘 임시정부에게 선전포고를 발표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중동전쟁의 시작이 되었다.

이윽고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 진영의 승리로 끝났으니, 이스라엘 외교사절단은 1949년에 유엔 총회의 원년 멤버로 가입했다. # # 이리하여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열강들의 수에즈 운하에 대한 사용권 및 소유권 문제와 미국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냉전을 따라 벌어지는 이해관계의 차이에 대한 대리전으로 변했으며, 오랜 시간이 흘러갈수록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점점 커지게 되었다.

제4차 중동전쟁을 끝으로 이 지역에서 전쟁을 반복하는 것이 각 국가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 단순한 산유국의 위치에서 여러가지 산업을 고도화 시켜 다음 단계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려는 아랍지역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종전 이후 중동 국가간의 대대적인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 그럼에도 이 지역은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으며[13] 분쟁의 숫자로 볼 때 사실상 이제 N차 중동전쟁으로 분쟁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다툼이 잦은 지역이 되었다.

각 전쟁별 자세한 전황 및 결과는 각 문서를 참조한다.

2. 1980년대 이전

규모면에서 크며 시기적으로도 전쟁기간과 평화기간이 나누어지는 4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단, 평화기간이라고 해도 국경선에서의 교전 같은 작은 전투는 항시 있었다. 각각 문서 참고.

2.1. 제1차 중동전쟁 ( 이스라엘 건국전쟁, 19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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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차 중동전쟁 ( 수에즈 전쟁 / 위기,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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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3차 중동전쟁 ( 6일 전쟁,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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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막간: 아랍/이스라엘 소모전쟁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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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4차 중동전쟁 ( 욤 키푸르 전쟁 / 라마단 전쟁 / 10월 전쟁,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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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차 중동전쟁 이후

사실상 거의 매일 포탄과 미사일을 쏴대는 게 현실인지라 이후 중동전쟁사는 1~4차 중동전쟁처럼 딱딱 끊어서 정리하기란 매우 애매해 5차 중동전쟁이라는 칭호가 나오기 애매하다. 그래도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혈전이 종식된 후에는 n차 중동전쟁이라는 호칭은 쓰이지 않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이스라엘-요르단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레바논, 시리아와 지긋지긋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에는 이란 혁명을 일으켜 팔라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이스라엘과 서로 핵을 겨누는 사이가 되었으니, 중동에 항구적 평화가 찾아올 날은 더욱 요원하기만 하다. 이 뒤로도 끝이 없다. 여기에 쓰인 목록과 별개로 이스라엘의 선제 공습도 많이 있다.

3.1. 1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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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전 개입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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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1차 인티파다 (1987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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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1982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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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2차 인티파다 (2000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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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06년 가자-이스라엘 분쟁 (여름비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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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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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헤즈볼라 전쟁이라고도 한다.

2006년 레바논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헤즈볼라에게 납치되자 이스라엘은 자국군인 구출이란 명분으로 레바논에 침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 게릴라전에 휘말려 고전했고 이에 대한 분풀이로 백린탄을 비롯한 마구잡이 포격을 감행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적어도 레바논 전체의 분노 어린 반격을 우려하여 시아파 구역만 공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 덕분에 수니파 및 마론 기독교도 같은 다른 레바논 종교 구역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쟁은 소모전으로 변했다. 이스라엘은 목적이던 군인 2명을 구출하지도 못했고 국제적으로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알 자지라를 비롯한 언론에서 레바논 민간인들 피해 상황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은 알 자지라 중계팀을 공습하였고 이에 대한 분노 어린 알 자지라의 비난 보도로 미디어에서 완패했다. 열심히 미국 방송들이 실드를 쳐줬지만 결국 중립을 지키던 레바논 다른 종파 구역들도 이스라엘의 백린탄 및 여러 무기를 문제삼으면서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은 장기전에 염증이나 결국 150명이 넘는 전사자 및 다수의 피해를 입으며 굴욕적으로 철수해야 했다. 헤즈볼라에게 이렇게 두들겨 맞고 물러선 전쟁이라 이스라엘에겐 패배나 다를 바 없는 굴욕으로 남게 된다.

되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으며 선거에서 승리하여 레바논 집권 여당이 되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선거 승리에 기여한 공로자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납치된 군인 2명도 모두 사망한 상태라 협상 끝에 시체만 겨우 돌려받는데 그쳤다. 결국 자국 군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단 할루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3.8. 제1차 가자 전쟁 (2008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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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란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

2011년 11월, 이스라엘은 이란의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을 밝혔으나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고 이란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엄포 등으로 분석되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건 어렵다고 하여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핵개발 의혹이 있던 오시라크 발전소를 공습해 성공한 적이 있지만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진 못했다. 사담 후세인이 이 발전소를 재건한다 뭐다 이스라엘은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오시라크 발전소는 걸프 전쟁 때 미군이 스텔스 전투기와 여러 폭격기, 호위기를 엄청나게 동원한 끝에 비로소 아주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나 이란은 이라크와 차원이 다른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당장 면적만 이라크의 5배에 달한다. 이라크(34만 제곱킬로미터)와 아프가니스탄(52만 제곱킬로미터) 전 면적을 합쳐도 이란은 164만 제곱킬로미터로 그 2배를 웃돈다. 덤으로 평야지대가 아닌 산악지대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오시라크 공습을 교훈삼아서 전역에 위장용 가짜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 인공위성으로 봐도 잘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지하 곳곳에 시설을 장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을 사와서 대공망을 갖춰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 많은 시설을 한 번에 폭격하자면 공중급유기도 엄청 필요하며 엄청난 장비와 여러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게다가,그렇게 엄청난 돈과 준비를 하여 공습을 했다고 해도 위장용 가짜 시설을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 헛수고만 할지 모를 일이다.

공습계획과 때를 같이하여 이란에서 핵관련 과학자 몇몇이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란에선 이스라엘 모사드나 반이란 세력이 손 잡고 배후공작을 꾸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죽은 과학자들은 대다수가 30대 초반 과학자들이고 핵심 두뇌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란 핵연구의 핵심 과학자들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3.10. 제2차 가자 전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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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제3차 가자 전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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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제4차 가자 전쟁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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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2023년 제닌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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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제5차 가자 전쟁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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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육군이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국경까지 넘었으며, 규모면에서 사실상 5차 중동전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국제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

3.14.1. 이스라엘-이란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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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2. 2024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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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 2024년 이스라엘의 시리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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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위 지도는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의 지도라서 남수단이 수단에 포함되어있다. [2] 교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싸우는 교전국에 의용병을 보내거나 물자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늬만 비교전국인 국가가 많다. [3] 1차 중동전 이전 및 1차 중동전 시기에 아랍편을 도움. 영국군은 이 지역에서 물러나며 소화기부터 전차까지 남아있던 병기들을 대놓고 죄다 아랍군에게만 가져다 넘겨줬고 이 무기들이 그대로 1차 중동전에서 아랍군의 제식병기로 쓰이게 되었다. [4] 2차 중동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과 상의없이 이집트를 침공했다가 소련의 핵 협박을 받게 되었는데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 때문에 소련과 핵전쟁을 하기 싫었던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경제 제재까지 줘가면서 소련과 함께 실질적으로 이집트 편을 들어서 영국과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패전시키고 이집트의 전략적 승리라는 결과를 만들어주었다. [5] 1차 중동전 당시에는 이스라엘측의 후원자였으나 팀을 바꾸고는 아랍연맹쪽에 군사고문관 파견 및 다량의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6] 소련의 허가 하에 T-34나 SD-100(SU-100의 라이센스 차량) 같은 차량들을 중동에 판매, 그 중에는 2차대전 후 자국에 남아있던 4호 전차를 재생한 T-40/75 같은 전차도 있었다. [7] 이집트, 시리아에 군사지원을 했다. [8] 제2차 중동전쟁에만 참전. [9] 1차 중동전에서는 영국에게 한방 먹이려는 계산 하에 이스라엘의 물주를 했고 제2차 중동전쟁에는 직접 참전했다. [10] 1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 편을 들었으며 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2차대전에서 노획했던 장비나 전간기 장비를 이스라엘에게 제공하여 이스라엘이 1차 중동전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는 중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으나 이후 더 강력해보이고 규모도 큰 아랍연맹쪽으로 편을 바꾸게 되었다. [11] 소련의 동의를 받은 뒤에 1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했다. 소련의 영향력을 제외하고서도 나치에게 점령된 적이 있었던 국가인지라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이념에 공조한 것도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Bf109 개량형인 아비아 S-199와 Kar98k로 무장한 유대인들이 영국제, 미제 장비로 무장한 아랍군과 싸워 이기는 1차 중동전의 이야기는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 [12] 2차 중동전 당시에는 실질적으로 이집트편을 들어 이집트가 외교적으로 승리하게 도와줬으나, 이후에는 확고한 이스라엘측의 후원국이 되어 직접 군대를 개입시키는 것 빼고는 나머지 지원을 모두 해주었다. 제4차 중동전쟁만 따져봐도 현용 미군 장비를 포함한 막대한 군수물자 원조를 이스라엘측에 일방적으로 했으며 해당 지원이 승패를 가를 수준이었다.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잃고 냉전시대때 중동에서 소련이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아랍국가들에 영향력을 키우게 되면서 제3,4차 중동전쟁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되었다. [13] 팔레스타인 난민, 자살테러 같은 분쟁요소 모두 중동전쟁으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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