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09: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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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체성3. 이집트인의 역사
3.1. 종교
4. 지역갈등5. 문화
5.1. 복식
6. 논란
6.1.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맞는가?6.2. 고대 이집트인은 흑인이었는가?6.3. 콥트 정교회 신자들이 박해당하는 이유는 이집트 무슬림의 본질적인 특징 때문이다?
7. 출신 인물
7.1. 고대7.2. 근현대
7.2.1. 남성7.2.2. 여성
8. 창작물에서9.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kmejbvukisspwysqiuig.jpg
이집트 축구팬

이집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한다.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1.04억 명 정도. 엄청나게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집단이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개의 정체성( 아랍인, 콥트인, 누비아인 등)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특성을 지닌 민족이기도 하다.

2. 정체성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으로의 정체성, 헬레니즘 시대의 중심지로서의 정체성, 콥트교도로의 정체성, 아랍인으로의 정체성 등인데 여기에 간혹 아프리카인, 지중해인으로의 정체성이라는 명분이 더 붙기도 한다. 일단 대부분의 현대 이집트인은 아랍인의 정체성이 제일 강하며 이집트인들은 자국의 장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1]

헬레니즘적 정체성은 먼 과거엔 그리스인들과 동화 된 소수의 일부 지배층들이 가지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기에 지배층 중 당시 대다수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이집트어를 할 줄 아는 것은 (통역관들을 제외하면) 마지막 통치자인 클레오파트라 7세 하나일 정도였다. 대부분 헬레니즘 사상을 가진 도시에서 과거 해외 식민지였던 폴리스의 연장선과 같이 살아 이집트인과 격리되다시피 살던 지배층 그리스인과 피지배층 이집트인들은 이질적인 성질을 유지했고 로마 제국 시기에는 소수의 칼케돈 정교도 청색당 그리스-로마인에 대항해서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단성론 녹색당 콥트 민족주의[2]를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발흥 이전 동로마의 오리엔트(시리아-이집트) 속주들을 대변하는 녹색당과 중앙의 그리스인을 대표하는 청색당의 갈등은 매우 심각해서 국정을 좌우 할 수준이었고 황제가 안정적으로 권력기반을 다지려면 한 당파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했다. 서기 642년 이슬람 제국에게 알렉산드리아가 점령당했을 때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거리를 나와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조차 있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다.

이슬람의 점령 이후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씨가 말라버렸다. 물론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그리스어가 학문 언어로 쓰이는 등 영향력 자체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색깔이 옅여진 건 사실이다. 콥트 문화는 이슬람 정복 이후에도 반천년 정도 대다수 문화의 자리를 차지했고 그 이후로도 질기게 살아남은 상황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현대에까지 그리스인들의 명맥은 이어져 왔고 근대에 그리스인들이 이집트로 많이 이주해와서 이집트 전체 인구의 2~3% 가량을 차지했고 많은 이들이 부유층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집트에서 그리스인들의 영향력이 격감한것은 1950년대의 일이었다. 나세르가 집권한 후 주요 산업부문에 대한 국유화조치를 단행한데다가 수에즈 운하 탈환으로 영국과 교역이 끊어지게 되자 많은 그리스인들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져 결국 그리스 본토로 귀국하거나 호주, 미국 등 해외로 대다수가 빠져나왔고 남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동화되었다.

현대 이집트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은 이슬람 문화라 콥트 정체성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콥트교도들은 무슬림으로의 정체성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주장은 어차피 콥트교인들도 무슬림 사회에 몸담은 지 오래라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다 보니 묵살되는 편이다. 정작 콥트 시대까지만 해도 고대 이집트 시대와 비교적 문화적 연속성이 강했던 것에 비해서 아랍 이슬람 시대는 (고대 이집트 시대와 많이 떨어져 있는 시대적 간극을 감안해도) 이질감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3. 이집트인의 역사

길게 잡으면 약 8천년 전부터 나카다 문명, 바다리 문명같은 식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으로 보이며 나르메르에 의한 상하 이집트의 통합 뒤 힉소스인, 누비아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 바다위인, 그리스인, 로마인, 터키인 등의 혈통이 섞여 현재의 이집트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집트/역사 항목을 볼 것.
전근대 민족국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경우, 최초의 대규모 국가인 고대 이집트보다 더 알맞은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 전후로 다져진 이집트는 수메르와 더불어 세계 최초의 문자 문명이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수메르와 달리 이집트는 아주 일찍부터 종족성을 공유한 하나의 뚜렷한 인족과 일치하는 통일국가로 등장했다. 국가와 인족, 그리고 양자 사이의 일치는 3천 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 주기적으로 레반트, 리비아, 누비아에서 온 외래 침입자들이 이 나라를 장악했을 때도 이집트의 정체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아가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사이의 소위 '중간기'에 중앙 집권이 해체될 때마다, 이 나라의 종족적 통일성과 이런 통일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식이 재통일을 촉진하곤 했다.
민족 / 아자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저

고대 이집트인 민족 정체성은 초기 형태의 민족주의 형태를 띄었다. 그러나 수천여년간 지속되어 온 이집트 민족주의는 고대 이집트의 헬레니즘화, 기독교 개종 및 중세 이슬람 개종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아랍-이집트 민족주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3.1. 종교

이집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 신앙이 있었으나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1세가 필레에 남아있던 마지막 신전을 폐쇄한 뒤 정상적인 형태로 남아있을 수 없어 사라진 종교가 되었다.[3] 하지만 이후 한동안 민간신앙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었다는 설은 있고 기독교화, 이슬람화를 연달아 겪은 지금에도 알게모르게 그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 수있다. 아랍인 중에서 성이 '아바후르(أباهور)', '바누브(بانوب)', '바유미(بيومى)' 같은 식이면 대부분 이집트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각각 ' 호루스의', ' 아누비스의', ' 바다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신앙 자체는 사멸했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대놓고 드러나는 정도는 아니고 이런 쪽으로 어느정도 공부를 해야 보이는 수준이다.

현대 이집트인들은 90% 가량이 이슬람을 믿으나 기독교를 믿는 이집트인도 의외로 많다. 통계에 의하면 10% 정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오리엔트 정교회의 분파인 콥트 정교회 신자이다. 10%라 함은 전체 인구에서 절대로 큰 비율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집트의 인구가 1억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수로는 결코 적지 않은 수라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슬람 제국 초기 시절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그동한 수세기 동안은 (적어도 피지배층 내에서는) 콥트교도들이 다수였지만 여러가지 불이익과 십자군 전쟁[4]으로 인해 13세기경 무슬림 인구에게 추월당해 17세기에는 그들이 사용한 콥트어는 전례어로만 남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콥트 정교회는 칼케돈 신경을 거부함으로써 가톨릭과 정교회로부터 단성론파라고 이단시되어 소외되었다. 신학적 이유 외에도 경제적 및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이 합성론을 믿고 있다고 하지, 단성론자라고 하는 것은 부정한다. 동로마 본국에서 표면상으로 신조를 따르지 않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집트의 콥트교도들 역시 이러한 시선을 불쾌하게 여겨서 독립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었서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이끄는 이슬람의 3천군사에게 사실상 자진하다시피 항복을 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이슬람 제국은 일종의 특별세금인 지즈야를 내면 피지배자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줬기 때문이었으며 이슬람 발흥 당시만 하더라도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 분파로 보아 호의적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집트를 점령한 이후에는 이슬람의 관용이 크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 또한 제도적인 차별은 없다 하더라도 사회적 천시와 냉대는 엄연히 존재하였기에 결국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5] 지금도 정국이 조금만 뒤숭숭해지면 얻어맞는 게 콥트교인들인데 이미 천년 넘게 핍박을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에서 마냥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집트는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인데, 군복무 기간이 고졸 이하는 3년, 대졸 이상 혹은 현 대학생의 경우 1년, 콥트교도, 형제가 없는 집의 남자아이는 군복무가 면제되며 이중국적자도 마찬가지로 면제된다. 또한 30세가 넘으면 징집 대상이 될 수 없다. 콥트교도들은 비무슬림 소수민족이라서 병역에서 배제한 것인데 사실 오히려 콥트교도들은 사회적 냉대를 피하기 위해 무슬림 행세를 하든가 아예 무슬림으로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콥트교도라도 갈 사람은 가게 되는 셈이다. 하다못해 이게 정말로 별 의미가 없는게, 이집트에서는 병역을 치르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할 정도인데다 사지 멀쩡한 남성이 군 면제를 받았다고 하면 '나 콥트교인이요'라고 대놓고 만천하에 광고를 하는 꼴이라 취직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어서 사실상 자영업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위에서 저런 조치를 취해도 받을 차별은 받는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1952년 혁명 때부터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했던 기간(2012-2013)을 제외하면 군부가 정권을 좌지우지 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의 영향력이 강한 것. 콥트교인들도 군대에 당당히 간다.

물론 성공한 콥트교인들이 있고 개중에는 오라스콤처럼 재벌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 콥트교인들이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남아있는 차별과 높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신이교주의의 한 종류인 케메티즘이 고대 이집트 종교를 복원한 것인데, 주로 유럽에서 발견되고[6]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역시 이 사상에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몇몇 흑인 우월주의자들도 후술할 흑인 이집트설 때문에 신봉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이 고대부터 신앙을 간직해온 사람들일 리는 없고 현대에 들어서 갑자기 생겨난 세력이다.

4. 지역갈등

무지막지한 지역갈등도 문제이다. 고대시대부터 하이집트(카이로를 중심으로한 나일 델타지역) 사람들은 상이집트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무시했는데, 현재도 상이집트 사람들은 ' 사이디(صعيدى)'라고 불리며 촌놈 취급을 받는다[7](서독인이 동독을 까는 유머를 만들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들을 놀리는 유머도 있는데,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 사이디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물었다.
"무함마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러자 사이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길… "아! 무함마드였지!!!"[8]

2. 한 사이디가 밤에 나와 밭을 갈고 있었다. 삽을 들고 땅을 내리치는데, 어디선가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디는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또 한 삽 내리치는 순간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디는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지만 애써 진정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드디어 무서워진 사이디는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신발을 벗는 순간… 아뿔싸! 사이디의 오른쪽 발가락 세개가 없어져있는 것이 아닌가!!![9]

우습게도 상하이집트를 통합한 나르메르왕(혹은 메나왕)은 상이집트 출신이었는데 이는 하이집트가 권력의 중심이 계속 바뀌었던 반면 상이집트는 권력의 중심이 테베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의 남북 지역감정은 페피 2세 문서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유구한 역사이다.

5. 문화

5.1. 복식

파일:external/www.picz.ge/c781a4287c20.jpg

'이집트의 옷'이라고 하면 아직도 고대식으로 남자는 웃통을 벗고 통으로 된 치마와 바가지머리 가발에 여자는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드레스[10]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생머리에 황금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줄 아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뭐 이것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전통 의상이긴 하니 틀린말은 아니지만 지금도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적어도 이집트에는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쉽게 말해서 외국인이 한국인들의 의복문화를 생각하는데 조선시대 복식이 아닌 삼국시대 복식을 떠올리는 상황에 매치시켜 보면 이해가 빨리 갈 것이다.

이렇게 매체들에서 등장하는 고대의 복장들은 정확하게 복원되었다고 보기는 힘든데, 현대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이집트의 복식이 현대의 기준에서 상품화된 경향이 있으며, 원본인 벽화 자체가 매우 기호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여성의 복장으로, 이집트 벽화의 종교적인 특성 때문에 최대한 신체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벽화 자체가 기호적인 특징을 띄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11] 이를 (상업적 어필,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 등의 배경을 두고) 무비판적으로 복원에 적용시킨 것.

파일:external/www.bugbitten.com/Egypt_2004-161265.jpg

아랍화된 이후의 이집트 전통 복식은 ' 갈라베야(جلابية(jilabīyah), Jalabiya/Galabeya)'이다. 현대 그리스인들이 입는 ' 푸스타넬라'가 고대 그리스의 키톤의 양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데 비해 갈라베야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집트의 옷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할 법한 디자인이다.[12] 실제로도 토착 이집트 양식과는 관계가 없는 의복이고 베두인들의 ' 토브(ثَوْب, Thawb, thobe/tobe)'라는 의복을 수용한 것이다.[13] 만주족의 치파오를 중국인들이 입는다고 한들 치파오가 한푸와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대 이집트도 의복에 있어서 서양화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경우에는 일하거나 멋있게 차려입을 때 정장이나 티셔츠같은 서구 복식으로 차려입는 것이 보편적이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긴 해서 히잡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머리카락 정도만 히잡으로 가리고, 옷은 전형적인 서양식 복식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빈번하다.

6. 논란

6.1.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맞는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말하는 '후손'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다.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과 관계가 없고 단절되었다는 주장은 학술이라기보단 다분히 정치적, 종교적 입장에 따른 유사역사학이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 및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의 서구인들이 찬란한 고대 이집트를 아랍+이슬람화된 현대 이집트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많이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중 일부도 여기에 동조한다. 오늘날 무슬림 형제단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브파 선교 자금을 지원받는 알누르당 같은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의 경우는 고대 이집트의 후예라는 점을 이슬람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부정하며 고대 이집트 문화 유산조차 우상숭배라고 파괴하자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사대부 일부가 중국인 기자의 가르침이 야만스런 동이족을 교화시켜 그때부터 한민족 역사가 출발했다 여겼다고 해서 현대 한국인이 고대 한국인과 계승의식이 없으며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극렬 이슬람주의자가 뭐라고 하건 이집트 정부와 대다수 국민의 입장은 언제나 한결같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이집트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콥트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더라도 세속주의자일 경우에는 파라오 모세, 예수, 무함마드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경우조차 적지 않다. 자신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집트 콥트 기독교 보수파는 모세가 콥트교인이었노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기독교는 기원 후에 성립되었고 모세 이야기의 원전이 되었을 사건은 기원전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다시피 전설 속에서 모세는 파라오와 척을 졌다. 따라서 이러한 모세를 콥트교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콥트교 보수파들에게 있어 고대 이집트의 후예라는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치 않음을 보여준다.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에 비해 더 많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과 많은 조상을 공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고대 이집트인은 아라비아, 북동아프리카, 소아시아, 발칸 등 근동(Near East) 지역 고대인과 더 가까웠다. 이집트로의 인구, 유전자 유입이 지난 1500년 사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보다 8% 많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물론, 역사가 진행되고 교류의 폭이 확장되며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문화적으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헬레니즘화 이후 이집트 및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이집트, 이슬람 정복 후 이슬람화 이집트의 차이[14]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과연 현대 이집트인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가 맞을까?'하는 의문이 자주 제기되며 이집트학 관계자들이나 이집토마니아들이 일반인들에게 자주 듣는 고대 이집트 관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사실 기원전 332년,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된 이래로 90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헬레니즘 왕조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파라오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이집트 고유의 신앙도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페니키아인, 유대인, 그리스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자리 잡게 되었고 이집트 상형문자 그리스 문자로 대체되는 등 고유의 색채는 희미해져 갔다.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한 무슬림 라쉬둔 왕조 페르시아도 같이 정복하고 나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아랍의 영향도 같이 받게 되어 광범위한 문화 혼합 현상이 일어났고 언어도 점차적으로 콥트어에서 아랍어로 대체되어갔기에 자연히 고대 이집트와는 중세 이후의 이집트 간의 차이가 현격하게 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수많은 문화 요소들이 대체되는 와중에도, 요리만큼은 고대의 식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걸레빵이라 불리우는 '아에시'와 맥주 고대 이집트로부터 내려오는 식문화로 확인이 된다. 돼지고기 역시 이슬람 도래 이전부터 터부시했기 때문에 이쪽으로 충돌할 여지도 없었다.[15]

유전자는 상술한 것처럼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에는 8%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나, 반만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이집트인과 오늘날의 이집트인 간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현대 이집트인과 고대 이집트인의 차이보다 어떻게 해서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 고왕국과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가 어떻게 3천년이나 된 간격을 두고도 공통된 이집트 문화와 이집트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에 관련하여 이집트사 학자인 아서 골드슈미트는 이집트인의 계승 논란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는데, '고대 근동의 수많은 민족들 중 오직 이집트인들만이 살던 곳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언어[16] 한 번 바꾸고 종교를 두 번[17] 바꾸었을 뿐이다.'

정리해서, 역사가 진행되며 외부혈통, 외부문화가 유입되고 섞이는 건 만국공통의 역사이며 문화와 종교도 시대가 흐르며 바뀔 수 있는 것 역시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집트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정체성이 심지어 보수적이고 이슬람화된 이집트 아랍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문화적, 인종적 단절은커녕 오히려 이집트 문화가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에게까지 역사적 영향력을 가감없이 끼치고있다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6.2. 고대 이집트인은 흑인이었는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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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이 흑인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은, 서로 관계가 없고 상충되기까지 하는 여러 의견들이 모여서 나온 혼종의 결과물이다. 우선 ' 아프리카니까 흑인이겠지?' 하고 현실을 재현하지 않은 할리우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무지, 서양우월주의자들의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타자화와 비하의식[18], 전 문단에서도 다루었던 이슬람 이후 이집트와 그 전의 이집트를 분리하고자 하는 이슬라모포비아적 의도는 물론이고, 미국 흑인들의 아프로센트리즘과 극단적 정치적 올바름까지 연관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가 흑인들의 나라라는것은 현대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가 흑인의 인구가 어느정도 있고, 일부는 고위층으로 진출했다고 해서 흑인들의 나라라고 주장하는것과 비슷하다.

이런 이집트인이 흑인이었다는 떡밥은 미국 흑인 사이에서 가장 심한데, 미국 흑인들의 미국 사회에서의 미묘한 위치에서 나온 열망으로 보기도 한다.[19] 작가가 백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서도 그냥 대놓고 흑인[20]으로 묘사했다.

물론 이집트에 오랜 역사를 거쳐 흑인들이 다수 유입된 것은 사실이라서 현대 수단 아랍인들의 조상쯤 되는 누비아인들을 용병으로 썼고 백년 정도이긴 하지만 피예와 샤바코 등 쿠시 왕국 출신 흑인 혼혈 파라오도 있었고,[21]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 일대와도 교역이 잦았기때문에 흑인의 유입이 다수 있었다.[22][23] 이집트인의 기준을 이집트 문화권 안에 속하던 사람으로 하자면 고대부터 이집트 문화권 안에 들었던 누비아인-이집트인 혼혈인들이 이집트 남부와 수단 북부에 현존하기 때문에 흑인이 다수인 문명은 아닐지라도 흑인이 소수 집단을 차지하고 있는 문명인 것은 맞다. 현대의 미국, 브라질, 멕시코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외에 고대에 제작된 그림이나 부조, 조각 등에서 검은 피부와 넓적한 코처럼 흑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흑인이 아니었나하는 설도 있긴 하지만 검은 피부는 어디까지나 예술적 표현의 하나였고[24] 대부분 남자는 검붉은 피부(밖에서 일을 하니까 살이 타므로), 여자는 누런 피부로 표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또한 조각의 코는 원래 넓적했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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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리비아인( 베르베르인), 누비아인, 서남아시아인(셈족), 이집트인을 표현한 그림으로, 위에서 알 수 있듯 이집트인들은 분명히 스스로를 흑인과 다른 피부색으로 구분지어 그려놓았다.

또다른 주장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스스로의 나라 이름을 검은 땅이라는 뜻의 ' 케메트'[25]라고 불렀다는 것에 착안하여 '지금도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듯 고대 이집트인들도 흑인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게 아니냐'는 설도 있는데 신빙성이 떨어지며, 그렇게 따지면 흑해 문화권의 주민들도 흑인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땅'은 주민이 흑인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게 아니라 나일강이 범람하고 나면 남는 시커먼 흙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기에 '검은 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황하라는 이름이 노란 피부의 동양인들이 살아서 그런게 아니라 강물에 황토가 많아서 붙은 이름인 것과 같은 이치이며, 위와 일맥상통하는 이유로 흑토라고도 불리는 체르노젬 역시 러시아어로 검은 땅이라는 뜻의 단어인 체르노좀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식토가 거름하고 비슷한 검은 색을 가져서 붙은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고대 이집트어에서 사막은 붉은 땅이라는 뜻의 '데슈레트'이므로 사막 거주민들은 홍인(紅人)이 되어야 한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이 링크의 의견도 참조할 것. 최소한 어느 한 인종'만'으로 구성되어 있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 학계의 의견이다. 실제로 현재도 이집트 남부지역은 수단 지역과의 교역이 잦았기에 이 지역 주민들의 피부색이 북부 지역 주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검은 편이기는 하다. 아무튼 현재 주류 학계에서는 백인인지 흑인인지 피부색과 관련된 주장을 무시하며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하라 인근 지역과 유전자풀이 일치하는 비율이 높다 하는 식으로 분석 중이다.

사실 피부색을 백인/흑인 식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과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다분히 작위적인 것에 불과하다. 고대인을 특정 인종으로 분류한 뒤 그것을 현대의 인종국민주의나 우월주의로 연결한다는 것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일 뿐이다.

이러한 떡밥은 이미 제국주의 시절부터 흔해왔고 2020년대에도 유튜브 등지에서 문명 시리즈, 미이라 시리즈처럼 고대 이집트인이 백인으로 묘사되는 작품의 리뷰나 플레이 영상이 업로드되기만 하면 아직도 몇몇 유저들이 '고대 이집트인들 흑인이었다고!! 너네들 현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 후손도 아냐!!'라는 악플을 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26] 한술 더 떠서 간혹 박물관 같은 곳에서 이집트 유물을 전시할 때면 흑인들이 고대 이집트 문명은 흑인이 세운 문명이었으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명권의 전시물과 가까이에 배치해달라는 식의 농성을 부리기도 할 정도다.

흑인 이집트설이라는 것이 서구권에서는 꽤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오는 건지 각종 서브컬처에서도 고대 이집트인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금보다 크다거나 아예 흑인들로만 구성되어있는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예컨대 이집트 왕자에 등장하는 히브리인 노예들은 전형적인 유대인, 아랍인스러운 셈족 백인상을 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의 대부분은 인종을 가늠하기 힘든 외모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대놓고 흑인에 가깝게 그렸을 정도. 주인공에 반대하는 세력의 인물들을 흑인으로 묘사한 셈이지만 말그대로 애매한 외모라서 그런 건지 고대 이집트 문명을 간지나게 묘사해서 대범하게 넘어간 건지는 몰라도 이것과 관련해서 크게 문제가 된 사례는 없는 듯하다.

리들리 스콧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도 개봉 훨씬 이전부터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을 다루면서 백인 배우들을 기용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92년에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곡 'Remember the time'도 고대 이집트 왕실이 배경인데, 여기서는 아예 파라오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흑인들로 캐스팅되어있다. 파라오로 에디 머피가 나온다.

아스테릭스 같은 작품에서도 높은 확률로 흑인이 한두명 정도는 등장한다. 다만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고 허드렛일을 하거나 시종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중 있는 역할은 현대 이집트인과 비슷한 큰 코에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흑인은 소수다. 이 경우는 현실을 잘 반영한 셈이다. 다만 여기선 그리스계 이집트인인 클레오파트라까지 같은 모습으로 그리긴 했는데 피부색만 이집트 느낌을 주기 위해 갈색일 뿐 백인처럼 뾰족한 콧대를 가지고 있다.

2023년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에서 다시금 이집트인 흑인설을 강변하여 이집트인들의 많은 항의를 받았다.

6.3. 콥트 정교회 신자들이 박해당하는 이유는 이집트 무슬림의 본질적인 특징 때문이다?

비이슬람권의 이슬람혐오자들은 콥트교인의 현실을 인용하여 이슬람은 광신적이고 비인간적이다.라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 있는데 이는 겉만 보고 원인을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이집트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콥트교도와 무슬림들이 서로 영국의 식민지배에 대항하여 적극 협력하는 관계였다.

오늘날 이집트는 군대 이외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게 별로 없는 나라인데 콥트 기독교인 대상으로 병역을 면제한다. 한국 기준으로는 금메달 딴 것도 아닌데 병역을 면제 받으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이집트에서는 특정 종교 신자들이 무상으로 병역을 면제받는다는데 대한 반감 + 이집트의 경제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군대와의 유리 등으로 콥트교 신자들의 입지가 훨씬 더 불리해졌다. 이 때문에 무슬림으로 위장하고 병역을 이행하는 콥트교 신자들도 꽤 많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극적 우대조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차별을 더 심화시키는 정책이 되는 상황이다. 무슬림 형제단, 알누르당 같은 극우 이슬람주의 정당에 반발하는 세속적인 이집트인들조차 콥트교인을 차별하는 것이 이러한 연유이다.

현재 이집트는 군사 독재 정권과 무슬림 형제단이 공통적으로 우민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빈곤이 만성화되었고,[27] 빈곤 문제에 절망한 무슬림들은 강약약강으로 만만한 콥트교인을 종교 핑계, 실상은 병역 면제 핑계로 박해하게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인들이 흑사병같은 혼란이 생겼을 때 당시 사회적 소수자였던 유대인을 박해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집트가 지리적으로 이슬람권의 주적 취급받는 이스라엘과 가깝다보니 사이드 쿠틉 같은 극우 성향의 인사들도 반이스라엘 프로파간다만 내세우면 아무리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워도 용인 받기 쉽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가장 가깝기 때문에 이슬람주의자들이 홍해만 건너면 손쉽게 이집트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주의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이집트의 열악한 현실에 이슬람주의가 쉽게 확산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부정부패가 심각하기 때문에 친정부 성직자들도 무척 성의가 없거나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서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가 없고, 빈곤 퇴치는 손 놓고 콥트교인을 대상으로 표면적인 적극적 우대조치만을 하는 무능한 행정만을 시행하고 있다.

다른 한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집트 콥트교 역시 근본주의 문제가 없지 않아 있다. 일부 콥트교 근본주의 성직자들은 심지어 콥트교 박멸을 주장하는 알누르당 같은 극우 이슬람주의 정당들과 함께 여성 할례 존치 목소리를 내는 수준인데, 여성 할례는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에서 미개하다고 혐오하는 풍습이다. 즉 이집트의 콥트교와 이슬람 간의 심각한 갈등은 우민화 정책으로 비롯된 사회 전반의 미성숙한 시민 의식이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7. 출신 인물

7.1. 고대

7.2. 근현대

※ 이집트의 콥트교인도 포함

7.2.1. 남성

7.2.2. 여성

8. 창작물에서

이집트인 캐릭터 문서 참조.

9. 관련 문서

  • 밀라드 한나 저 <이집트를 떠받치고 있는 일곱 기둥>[31]


[1] 물론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역대 파라오의 계보를 줄줄줄 외운다거나 하는것은 전문 역사가나 역사매니아들이나 그렇고 대다수는 주요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의 업적에 대해 아는 수준이기는 하다 . [2] 근현대의 내셔널리즘과 동일한 수준의 민족주의다. 그리스어 배척, 반 헬레니즘을 공식적으로 내걸었다. [3] 사실 이집트인이 자주적으로 통치했을 당시에도 신앙의 형태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는 이집트 전통 신앙이 처음부터 통일된 형태를 띤 것이 아니라 헬리오폴리스 신앙, 멤피스 신앙 하는 식으로 각 주(州)마다 다른 형태를 띠었으나 이집트가 점차 하나의 통일 국가로 발전되면서 내용이 첨삭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우티 지방(지금의 아시우트, 그리스인들은 뤼코폴리스라고 불렀음)의 토속 신이었던 늑대사신 웨프와웨트가 마찬가지로 다른 지방의 늑대사신이자 역할마저 비슷했던 아누비스에게 합쳐진 일이라든가 초기에 최고신의 지위가 언제는 라였다가 아문으로 바뀌고 일신교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문으로 돌아갔다가 라랑 합쳐졌다 하는 식이다. 더욱이 그리스와 로마에게 점령당할시 그들의 신앙과 결합되기도 해서 이 문제는 산으로 간다. 더구나 점령당시만 해도 그리스든 로마든 다신교이었기에 수용하기도 쉬웠다. 이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해서 그렇지 [4]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은 십자군을 반겼으나 가톨릭 십자군 눈에는 유대 이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단으로 판단되어 2등 시민으로 취급당하고 경우에 따라 학살당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은 투르코폴레스로 참전한 경우마저 유럽 출신 가톨릭 기사들과 식사 때 겸상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으며, 이후 맘루크 왕조가 십자군 잔당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같은 기독교인들이라는 이유로 상당수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이집트의 경우 십자군에게 이집트 전체가 정복되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 시절 경험으로 이들에게 좀 더 냉정한 편이었다. [5] 사실 이집트에서 최초의 박해가 시작된 것은 괴짜 군주로 유명한 알 하킴(996~1021, 파티마 왕조 제6대 칼리프) 때의 일이다(1007년~1012년). 하지만 5년만에 박해는 취소되고 교회 재산을 돌려주었다니 그야말로 괴짜 군주의 변덕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재위는 홀연히 나귀를 타고 궁성을 나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끝났다. 수색을 해 보았지만 나귀와 피 묻은 옷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이외에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콥트교인들에 대한 대우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등 항상 대우가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6] 서양 문화의 근원이다보니 서양인들도 종종 자신들과 매우 친숙한 역사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로마가 미국의 역사는 아니지만 미국의 매체에서도 로마를 아무 거리낌없이 등장시키듯. 일례로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에서도 고대 이집트를 주제로 삼은 에피소드가 꼭 하나씩은 나온다. [7] '사이디 아랍어'이라는 방언이 별도로 존재할 정도. [8] 즉, 자기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던 거다. [9] 그러니까 자기가 발가락을 삽으로 찍고 비명을 지른 거였다. [10] 이를 로인클로스(Loincloth)라고 한다. [11] 일례로 벽화의 인물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가슴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12] 사실 이슬람교에서는 과도한 신체 노출을 좋지 않게 여기니 특성상 노출이 많았던 고대 전통 복식이 이슬람화된 이후로 유지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13] 실제로 현대 이집트 복식보다는 엉뚱하게도 베르베르인이 결혼식 등 특별한 행사 때 여성들이 주로 입는 타크시타(تَكْشِيْطَة, takchita)라는 복식이 토착 이집트 영향을 받았다. [14] 그 중에서도 특히 의복 문화나 미술 및 건축 같은 분야. [15] 때문에 이러한 돼지고기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어찌저찌하여 서남아시아로 흘러가 코셔 푸드 할랄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교리로 정착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돼지고기 문서 참고. [16] 고대 이집트인의 언어는 콥트 정교회의 예배 언어인 콥트어로 남아있다. [17] 첫 번째는 콥트 정교회, 두 번째는 이슬람 [18] 흑인이라는 것 자체는 당연히 비하당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구우월주의자들은 흑인이라고 규정하는 방식을 통해 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타자화와 비하의식을 표출한다. [19] 실제로 서구 흑인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설이라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다룬 위인전에서도 토착 아프리카인인 루오족의 후예인 오바마가 어린 시절 급우들 앞에서 스스로를 파라오의 후예 정도로 떠벌리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알고 보니 별 볼일 없는 소수민족임을 알고 데꿀멍. 그러나 이 다음 시점에서 오바마의 친아버지가 오바마의 급우들 앞에서 루오족에 대해서 한껏 어필하여 역으로 급우들을 데꿀멍 시킨다고 나온다. [20] 힉소스인이 이집트를 점령하는 장면에서 토착 이집트인들이 '참내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야!'라고 불평하는 컷이 그려져 있다. [21] 단 쿠시족은 원래 흑인 계열 민족이 아닌 코카소이드(백인) 계열 민족이다. 계통적으로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하며 근연 민족은 셈족(아랍인과 페니키아-히브리인), 베르베르인, 고대 이집트인이다. 참고로 쿠시족은 오늘날 소말리아, 수단인들과 가까우며 이들은 예멘에서 기원하여 아프리카로 이주해 현지 피지배계층 흑인과 혼혈화된 것이다. [22] 대부분 노예로 유입되거나 에티오피아인, 소말리아인, 수단인 처럼 흑인과 혼혈된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23] 그래서 이집트 안에서도 수단 국경과 가까운 상이집트 쪽은 수단 아랍인과 유사한 흑백혼혈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24] 그러니까 흔히 인터넷 사이트에서 '먼 미래의 후손들은 현대에 만들어진 미소녀 피규어를 보고 고대 일본인들은 눈이 매우 크고 코는 작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같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현대에는 사진 등 실사매체도 많지만. [25] 이집트어를 계승한 콥트어에 그 잔재가 남아 현대 콥트어로 이집트는 Χⲏⲙⲓ(키메)이다. [26] 정작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현대 이집트인들을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양쪽에서 난리 [27] 이슬람주의가 판치는 나라들은 대개 문맹률이 높다. 이집트 역시 의무 교육을 도입했지만 현대에도 문맹률이 20% 내외를 오가는 수준이다. [28] 이집트 왕족 출신이었다는 설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모세 항목이나 출애굽기 항목을 볼 것. 한국에서는 이윤기 덕택에 이 설이 유명해졌다. 설은 논외로 치고, 성경 내용상으로 자라나기는 이집트의 고관대작 출신으로 자라난 것이 맞는다. [29] 그리스인 혈통이지만 이집트인은 맞다. [30] 다만 그의 정체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항목 참조. [31] 근데 비약이 좀 심한 책이다. 일례로 이슬람 이집트인이나 콥트 이집트인이나 같은 민족이기에 서로 차별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되도않는 헛소리가 적혀있다거나 콥트인들은 파라오의 후손이 아니라는 식의 개소리가 종종 나오는 편인데 차별이 없었다느니 운운하는 부분은 당장 콥트 정교회 문서만 봐도 반박할 수 있는 사실이며(시대에 따라 콥트인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고대 이집트 시절의 문화요소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인 콥트인들이 파라오의 후손이 아니라면 이슬람 이집트인들도 파라오 후손이 아니라는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콥트인들 중에는 아랍인으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점은 지들이 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니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32] 이쪽은 이집트가 아니라 인도계다. 다만 이집트에서도 일부 살고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