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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사냥꾼에서 넘어옴

1. 개요2. 어형3. 역사
3.1. 통상3.2. 군주의 사냥3.3. 현대
4. 현황
4.1. 한국4.2. 외국
5. 관점6. 종류7. 사냥꾼과 전쟁
7.1. 한국에서
8. 관련 인물
8.1. 전문 사냥꾼8.2. 사냥으로 유명한 사람
8.2.1. 한국8.2.2. 동양8.2.3. 서양
9. 동물의 사냥10. 창작물에서11. 여담12. 동음이의어13. 관련 문서

1. 개요

Hunt

이나 짐승 따위를 포획하는 일.

2. 어형

  • '사냥'이라는 말은 산행(山行)이 변해서 된 귀화어다.
  •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사냥꾼, 혹은 엽사(獵師)라 한다.
  • 사람이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수렵(狩獵)이라고도 한다.
  • 수렵과 채집을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집단을 수렵채집인이라고 한다.
  • 법에 정해진 규정을 벗어나 사냥을 하는 행위는 밀렵이라고 한다.
  • 영어에서 사냥으로써 얻은 동물 고기 game이라고 칭한다.
  • 영어로는 보물찾기도 'treasure hunting', 즉 '보물 사냥'이라고 한다.

3. 역사

3.1. 통상

파일:Mammoth_Hunters_F-AW_600.jpg
털매머드 사냥을 하는 원시인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채집인이었으므로 사냥꾼이란 인류 최초의 직업이라 할 수 있다.[1] 고대 벽화들을 보면 활 사냥 그림들과 접근전 사냥 그림들이 같은 벽과 시대에 그려져 있다. 특히 똑바르고 길다란 몽둥이의 끝부분을 잡고 내려찍는 모습도 보인다.[2] 또한 고고학적인 발견으로도 활이 발명된 이후의 시대에서도 창 등의 사냥 도구들이 계속 발굴된다.[3][4] 석기 시대는 물론, 이후 농경과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사냥은 고기, 가죽, , 한약재 등을 얻기 위한 인류의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사냥을 하려면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동물을 제압 및 제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과 끈기, 사냥감에 대한 충분한 정보, 극한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극도의 지식과 숙련도가 요구된다.[5] 하지만 아무리 전문적이라 하더라도 사냥을 실패하면 식량이 바로 모자라는 상황에 도달하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이 와중에 개를 가축으로 들임으로써 추적 성공률을 높인다거나 집단 사냥을 통해서 집단 운용 기술을 얻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영주나 나라에서는 사냥꾼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사냥꾼이 너무 많아지면 잡을 동물이 다 죽어버리는데, 이는 생태계도 생태계지만 유흥거리로 사냥을 하는 높으신 분들이 즐길 거리가 없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소수만 존재했고 그 외 나머지들은 본격적인 사냥보다는 토끼나 쥐, 족제비 같이 작은 유해조수들을 등으로 사냥했다. 이런 동물들은 개체수도 많고 농가에 폐를 끼쳐서 따로 금지하는 일은 없었다.

3.2. 군주의 사냥

사극이나 중세 시대를 다룬 소설이나 판타지에서 군주가 사냥을 가겠다고 하면 신하들이 대부분 단체로 입을 모아 결사반대를 외치거나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묘사가 많다. 현대인들이 볼 때는 쉽게 이해가 안 되지만, 고대나 중세시대에서 군주나 영주 등 정치 지도자들의 사냥은, 단순히 식량과 가죽을 조달하거나 스포츠를 위한 게 아닌, 큰 사치의 일종이자 중요한 정치적인 행사였기 때문이다.

군주의 사냥은 단순히 레저가 아니라 거의 국가적 이벤트라 군주는 물론 신하들까지 사냥에 참가해야만 한다. 게다가 군신을 호위할 병력들도 동원하고, 그들이 쓸 물자들도 넉넉히 갖추는 건 필수다. 그리고 사냥이 하루 이틀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니 더더욱 소모될 물자는 말 안 해도 뻔한 노릇이다. 게다가 군주가 사냥을 갈 임지에 사는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도 하지 못하고 군주가 사냥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갖가지 부역에 시달려야 한다.[6] 당장 소모하는 물자도 물자지만 국가 경제로서도 장차 생산할 물자에 차질이 생기는 안 좋은 연쇄 효과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결정적으로 군주와 신하들이 나라를 안 돌보고 놀러나온거니 그동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괜히 군주가 사냥가는 것을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폭군 혹은 명군이 아닌 군주들 대부분 공통점이 사냥을 즐겼다고 나와있는 것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는 사냥을 하다가 맹수의 공격을 받거나, 자연재해를 만나거나, 적군이 매복을 해 군주가 크게 다치거나 납치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대의 사냥은 기본적으로 워크샵+군사훈련, 특히 야지에서의 기동훈련을 겸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왕이 주재하던 정기 무예 훈련인 강무(講武)가 사냥의 형태를 띄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가 폭군 내지는 암군들의 공통점이 사냥을 즐겼던 것이라고 했지만, 역사상 유능한 군주로 이름을 남긴 이들도 사냥을 즐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실 정치를 잘 할수록 오히려 나라 전체에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사냥을 포함한 각종 대규모 행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이유에서 전근대시절의 검소함은 되려 군주의 무능을 증명하는 걸로 간주되어[7] 리더십에 마이너스가 된다.

또한 사자나 호랑이, 곰처럼 위험한 동물의 경우, 이들을 사냥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했으며, 아예 이런 위험한 맹수들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집단도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사냥을 아예 안 한 군주도 매우 드물다. 고대 아시리아 왕의 사자 사냥, 헬레니즘 군주들, 중세 유럽의 왕들, 전쟁이 잦던 한국의 삼국시대와 같이 상무적인 국가의 왕은 군사훈련을 겸해 사냥을 행하였다. 사냥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군주가 자신의 무위를 과시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천명하는 필수적인 행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키아벨리 군주론에도 상술한 기동훈련 + 주변 지리 파악의 측면에서 대놓고 사냥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부분이 나온다. 요약하자면 군주의 사냥 자체는 군주 자신과 신하들의 무예를 기르기 위한 훈련이자 행사였지만, 백성들에게 극심한 부담을 주는 행사이기도 했기에 어디까지나 적당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같은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현대에도 고대 군주들이나 즐겼을 법한 초호화판 사냥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작자는 한술 더 떠서 해외에서 동물들을 수입해서 야생에 풀어놓고 잡았다.

3.3. 현대

본디 과거의 사냥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각종 도구[8]를 동원하는 현대 레포츠 헌터들에 이르러서는 예전만큼 어렵진 않게 되었다. 예로, 피딩 그라운드를 조성하면 뒷뜰에 앉아서 걸어들어온 사슴을 잡는 시대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날의 사냥은 주로 레저 사냥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사냥인 생존 사냥과는 구별된다. 생존 사냥의 경우 창, 몽둥이, 덫 같은 접근전 무기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무기들을 썼으며 활이 발명된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반면 취미형 사냥의 경우 무기가 거의 총과 활 정도밖에 없다. 사실 살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사냥을 해야 하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순전히 취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쉽게 잡을 수 있는 무기를 선호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직업적 사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축산업의 발달로 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냥은 더 이상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9] 일부 동물에서만 얻어지는 값비싼 부산물을 목적으로 한다. 코끼리 상아라던지, 악어 가죽이라던지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은 대개 국제법에서 생태계 보호를 위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밀렵이다.

여기에 더해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환경문제인 유해조수를 퇴치하기 위해 레저 사냥과는 별도의 현대 사냥 또한 발달했다. 생존 사냥과 목적은 다르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죽여야 한다는 점에선 비슷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 , 독극물 등을 적극 활용한다.

4. 현황

4.1. 한국

수렵면허시험 문제은행(다운로드주의). 정답까지 표기된 답안지 형태이기 때문에 국내의 법적 제약에서부터 수렵 전반, 산탄총 사격술이나 궁술 등에 대한 다양한 상식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이 어마무시하게 넒으며 다양한 크기의 동물들이 많은 나라도 아니고, 많은 야생동물들이 멸절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이런저런 규정도 많아서 대중적으로 즐기기는 힘들어진 스포츠다. 아무 곳에서나 사냥을 할 수도 없고 매년 동절기에 4개월간 사냥이 허용되는 기간과 지역이 명시된 공고가 나오며, 순환 수렵장이라고 하여 각 지방이 돌아가면서 개방을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사냥꾼들에게 면허세를 걷을 수 있고 자기 지역 내에 야생동물이 줄면 농작물 관련 민원도 줄며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경기도 좋아지고 관광 홍보도 되기 때문에 환영하나, 수렵장을 개설하려면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환경부 측에서는 자연보호의 측면을 중요시하므로 검토를 한 뒤에야 허가를 내준다.

국내에서 법으로 지정된 수렵동물은 멧돼지, 고라니, (이것도 수컷인 장끼만 가능), 멧비둘기, 멧토끼, 쇠오리,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고방오리, 흰뺨검둥오리, 까치, 까마귀, 갈까마귀, 떼까마귀, 어치, 참새, 청설모로 총 17종이 있다. 수렵장마다 추가로 수렵 가능한 종을 따로 공시하는데 유해조수라든지, 너구리, 노루[10]라든지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수렵철이 따로 있으며, 총포소지허가와는 별개로 수렵면허를 따로 받아야 한다. 수렵면허는 1종 총기, 2종 총기 이외의 수렵도구로 나뉜다. 연 2회 실시되는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4시간의 강습을 받으면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지역마다 쿼터가 있기 때문에 수렵증 받으려는 경쟁도 제법 치열하다. 면허가 있다고 해서 무한정 사냥이 허용되지는 않으며 면허 1장당 잡을 수 있는 마릿수에도 제한이 있다. 단, 수렵기가 아니라고 해도 멧돼지가 도심에 나타나거나, 민가에 내려와 사람이나 농작물에 피해를 입혀 유해조수로 지정되는 일이 생기면 주변 지역의 사냥꾼들이 바로 귀신같이 소집된다. 이 경우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으로 보통 지칭한다. 부작용으로, 이들이 잡은 산짐승들이 식당 등지에 밀매되는데 이게 합법이 아니다. 그래서 2012년에는 지상파에서 이 문제를 크게 다루기도 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폭발물·극약·독약·농약·덫·창애·올무 또는 함정 등의 위험한 방법으로 짐승을 사냥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또 덫이나 올무 같은 엽구를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것도 불법이다.

2012년 11월에는 수렵 면허의 방식이 갑자기 바뀌어 엽사들에게 혼란을 주었었다. 미국 등지에서 발행하는 라이센스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야생동물 '태그'라는 것을 발행하여 각 동물 하나마다 태그를 사서 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이 태그 구매가 오직 인터넷에서만 된다는 것이다. 종전의 시스템은 수렵 면장을 발급받고 선착순으로 엽장 입장료를 입금하면 OK였지만 입장권 발행과 태그 구매가 전면적으로 인터넷 구매로 바뀌어 문제가 되었다. 엽사들 상당수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도 부실해서 걸핏하면 서버가 다운되고 시스템도 영 직관적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지자체에서 라이센스를 구입 가능하기에 이런 문제가 없다. 엽사들은 하나같이 지자체에게 해당 사무를 이관할 것을 요청했고 결국 2013년 사냥등록 업무가 지자체에게 이관되었다. 즉 종전처럼 엽사들이 선착순으로 입금하여 서류를 보내는 식으로 바뀐 것. 또한 야생동물 태그는 여전하지만 구매를 군청 가서 살 수 있다.

2015년 2월 연달아 터진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정부와 여당은 총도법을 개정하여, 모든 민간용 총기에 GPS 부착 의무화, 그간 개인보관이 가능하던 5.5mm 이하 공기총도 엽총과 마찬가지로 경찰서 영치가 의무화되고, 개인의 실탄 소지 전면 금지 조치 - 실탄은 수렵장에서 구매하고 탄이 남으면 경찰서에 반납해야 한다. - 등 규제를 초특급으로 강화하기로 결정하여, 기사 국내 수렵 여건은 더 악화되었다.

4.2.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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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널리 유지되고 있는 아웃도어 스포츠다. 등의 맹수를 사냥하는 것이 남자의 로망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특히 캐나다는 곰이 매우 많은지라 곰 사냥하기에 최고의 국가라고 봐도 무방하며, 광활한 대자연을 바탕으로 전세계 최고의 사냥터라고 불린다. 호주는 사람보다 야생동물의 머릿수가 더 많다(...). 3개 국가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면적이 저 중에서 가장 좁은 호주만 해도 한반도의 38배는 족히 넘을 정도로 광활한 대자연의 오스트레일리아/북미 대륙을 통째로 영토로서 지니고 있다는 것.

아무 때나 사냥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개인 사냥이 합법인 국가라고 해도 수렵 가능 기간이 따로 있으며 자격증별로 수렵 가능한 동물의 종류와 수량에 제한이 주어진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2010년 경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호그(Hog)[11]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 아예 차에 기관총 달고 갈겨버린다거나 소형 헬리콥까지 동원해 저공비행을 하며 보이는 족족 사살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Hog Hunting으로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주로 AR-15 계열 자동소총을 이용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적외선 장치와 대물 저격총까지 동원되며 헬기 간의 데이터 링크를 통해 몰이사냥을 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하는 상당한 고급 스포츠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물론 영국 사냥꾼들이 전부 귀족이라는 소린 아니다. 영국에도 평범하게 스포츠로 사냥하는 헌터들이 많이 있다. 더블 배럴 샷건이 영국에선 장인이 사용자의 몸에 맞게 정성을 들여 만들어 천만 원대(...) 가격으로 팔린다고… 뭐 미국에서도 건스미스들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구형 콜트 싱글 액션 아미 같은 게 리볼버 슈터들에게 10000달러씩에 팔리기도 하니, 무엇이든 사람 정성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비싸지나 보다.[12]

5. 관점

위에서 보듯 영미권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아웃도어 스포츠이다.

오늘날의 사냥은 생존 사냥이라기보다는 레저 사냥이 대부분이기에, "재미로 동물을 죽인다"라는 면에서 동물권 옹호자들에게 비판을 사곤 한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의 사자 세실 도륙 사건과 기린을 도륙한 사냥꾼은 전세계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한국 같이 사냥이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서는 동물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굳이 재밌으려고 생명을 죽일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사냥은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나 북미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미국에서는 총기 소지 권리 옹호자들도 많아 강력한 규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더 나아가 '사냥 관광' 같은 것도 생겨났고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약 하루 이틀 정도 총기 교육을 받고 총기, 위장복 등을 대여 받은후 교관 겸 관측수, 호위병, 경우에 따라서는 몰이꾼과 함께 보트 혹은 헬기로 이동,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사냥을 즐기는 것. 당연히 이들이 사냥감을 탐지해주고 목표물과의 거리가 얼마고 측풍이 어떻게 되니 조준선의 어디에 맞춰서 어느 부분을 노려라 하는것까지 코치해준다. 이러는 동안 사진 및 동영상 촬영까지 해주며 일부 업체는 추가금을 내면 사냥감을 싣고가 박제 제작에 요리, 육포제작까지 해준다. 유튜브에서도 홍보하므로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사냥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에서도 총을 주로 사용하는 스포츠니만큼 위험한 것은 사실이라 종종 이슈를 일으킨다. 조지 W. 부시 시절의 미국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가 사냥을 나갔는데 같이 나간 애먼 노변호사 친구한테 잘못 쏘는 바람에 큰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매우 웃긴게 총을 쏜 당사자인 체니가 사과한게 아니라 도리어 총을 맞은 친구가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라며 사과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든지 사냥은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사냥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인가가 가까운 일부 지역에서는 사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큰 라이플 금지라든지 제한이 있다.

6.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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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도구를 쓰지 않던 초기 인류는 그냥 맨몸으로 쫓아가 사냥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에 문명화 이후로는 대부분 , , , 등의 도구, , 처럼 훈련시킨 짐승을 사용한다. 맨손으로 짐승을 때려잡은 일화도 있긴 하나 신뢰성이 의심가는 야사에나 있는 내용이다.[13]

7. 사냥꾼과 전쟁

사냥꾼은 대체로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을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먼 과거부터 사냥에 쓰인 , 함정 등은 사람을 잡는 데에도 요긴하다. 이나 숲 같은 험한 지형을 일상적으로 다니면서 동물을 추적하는 데에 능하기 때문에 정찰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주로 험한 지형을 정찰하는 경보병이나 경기병 산병 역할을[14] 수행했다.

이 발명된 이후에는 그나마 일반인들도 쉽게 강한 전투력을 얻게 되었지만 사냥꾼의 전투적 우위는 여전했다. 일반인들은 전쟁터에서만 총을 쏘지만 사냥꾼은 언제나 총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사냥꾼이 총기에 있어 우위를 보이는 것은 조준사격 방면으로, 조준과 빠른 장전이 어려웠던 머스킷 시대에도 맹수들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그러한 능력에 숙달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보다 사용이 간편한 총기가 보편화된 후에도 사냥꾼은 조준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저격수로서 대활약했다. 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활동하던 대부분의 저격수사냥꾼 출신이었다.[15] 애초에 '저격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나이퍼'(Sniper) 자체가 원래 '스나이프(Snipe)라는 자그마한 도요새도 쏴서 잡는 사냥꾼'이라서 '명사수'라는 말로 쓰인 것이다.

이러한 강력함 덕에 서구에서 엘리트 총병들은 '사냥꾼'이라는 명사로 호칭되고는 하였고, 더 나아가 '정예병'이라는 뜻이 추가되어 사격능력과 무관한 병종에 대해서도 사용되고는 했는데, 이러한 병종들은 보통 한국어로는 "엽병"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정예 부대에 주로 붙이는 ' 샤쇠르'나 독일의 ' 예거'도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특수부대라는 뜻의 영단어 commando도 19세기 말 영국과 보어인 간 보어 전쟁에서 보어군의 소부대를 뜻하는 단어였는데, 보어군은 국민 대부분이 사냥에 익숙한 까닭에 이들의 사격 실력에 힘입은 저격과 소규모 부대의 매복 기습은 밀집대형을 하고 다니는 영국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쪽은 현대전의 전술을 제대로 보여준 스승으로서 대우받는 단어.

미국인들의 사냥 덕후 기질은 미군의 보병교리와 무기개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원체 총기에 익숙한 입영자원이 많다 보니 개별 병력의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교리가 정립되었고, 자연스럽게 M1 개런드 같은 반자동소총이 제식으로 채택되어 전면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 반면 징집병들에게 이런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독일군은 MG42로 대표되는 기관총 전력에 보병분대의 전투력을 몰빵하는 교리를 채택해야 했다.

7.1. 한국에서

한반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 포수는 전시에 징집되며 우수한 병사로 평가되었고, 조선시대엔 이러한 병사들을 모아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조총으로 병장기를 바꾸는 와중에 모은 조총부대가 유명했으며 나선정벌 당시 형편없는 명중률이 상식이었던 당시 총기를 사용해 상식을 뛰어넘는 명중률로 큰 전과를 세운 적이 있다.[16] 이 점이 유용했는지 개화기 때도 흥선 대원군이 포수를 모아서 정예 부대를 만든 기록도 있다. 평안도, 함경도 등의 북방지역과 경상도, 강원도 등의 산간지역은 척박한 환경 탓에 옛부터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조선왕조 500년 내내 특히 북방 병사들은 항상 조선 최정예로 취급되었다. 조선과 이웃한 여진족 또한 수렵이 생존에 필수였기에 생활 자체가 군사훈련이나 다름없었고 중국이나 한반도의 왕조들이 그들의 전투력을 두려워했다.

근현대에 와서도 이런 부분이 남아있는데 안중근이 구월산에서 사냥꾼 일을 하기도 했었다. 김구도 안중근을 기억할 때 구월산의 총 잘 쏘는 친구로 기억했다.[17]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은 동학전쟁 때 동네 포수들과 장정들을 모아서 동학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이 가속화되자 일어난 의병들 중에서도 포수 집단은 최정예 취급을 받았고[18], 실제로도 수많은 공적을 세웠다. 대표적인 예가 홍범도.

실제 조선 말기 병인양요 당시에는 정규군을 동원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금 사정 때문에 총기 사격의 대가들이었던 사냥꾼들의 사격술을 믿고 호랑이 사냥꾼들로 구성된 호포군을 동원해 프랑스 해군 육전대와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 쪽이 너무 방심해버린 탓도 있지만, 그래도 이때의 전투종족 이미지가 서양 열강들에게 상당히 쇼크로 남았던 건지 신미양요 즈음에는 조선에 대한 부족한 정보도 한몫해서 조선군이 빌헬름 텔처럼 총을 잘 쏘며 머리 둘레가 장난 아니게 크며 헤라클레스 수준의 괴력을 보유한 초인 집단이라는 소문이 미군 병사들에게 돌기도 했었다. 나선 정벌이나 임진왜란 시절 조선군에 대한 이야기라도 섞여들어간 건지. 다만 신미양요 때는 기술력의 차이로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8. 관련 인물

8.1. 전문 사냥꾼

  • 짐 코벳 대령: 영국 육군 장교로, 자연보호가이자 식인동물 사냥꾼. 그가 인도에서 사살한 식인동물들이 잡아먹은 인간의 수만 2천에 달하다보니 힌두교에서 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 시모 해위해: 저격수로 유명하지만, 그 사격 실력을 사냥으로 습득했다.
  • 어니스트 시튼: 자연보호가이자 동물학자, 커럼포의 왕 로보를 잡았다. 본래도 매우 노련한 늑대 사냥꾼이었다.
  • 바실리 자이체프: 역시 저격수로 유명하지만, 소련 해군 입대 전에는 사슴 사냥 경험이 있다.
  • 홍범도: 독립운동가로 유명하지만 본래 직업은 화승총으로 사냥하는 포수였다.
  • 베어 그릴스

8.2. 사냥으로 유명한 사람

8.2.1. 한국

8.2.2. 동양

8.2.3. 서양

9. 동물의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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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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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담

  • 잡는 대상을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꾼 인간 사냥이라는 미친 짓도 있다. CSI 마이애미에서 불법 밀입국자들을 납치해 부자들의 인간 헌팅 게임용 사냥감으로 사용하는 것을 조사해서 체포하는 편수도 있었다.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 물고기를 잡는 것은 낚시라고 부르며 대체로 사냥과는 별개로 구분한다. 다만 강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천렵(川獵)이라 부르고, 버섯이나 야생초 등 재배가 불가능한 식물을 사냥하듯 돌아다니면서 채취하는 것을 채렵이라 부르면서 사냥의 일종이라는 어감을 담아 칭하기도 한다. "어렵(漁獵)"이라고 으로 물고기를 사냥하거나 활과 화살로도 사냥하는 경우도 있다. 작살이나 창으로 던지는 낚시는 작살낚시, 투창낚시(창낚시)로 불리며, 활로 화살을 쏘아 물고기를 낚시하는 건 활낚시라고 부른다. 어업도 낚시의 사례처럼 사냥의 일부에 분류하지는 않는다.
  • 보물찾기도 영어로는 보물 사냥(treasure hunting)이라고 하는데, 보물은 달아나지 않기 때문에 본문에서 주로 다루는 동물 사냥과는 특징이 매우 다르다.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 역시 마찬가지이다.
  • 과거에는 생태학자들도 사냥에 능했다. 어쨌거나 표본이 필요하고, 심지어는 산채로 포획하는 것도 필요하니 잡는 목적이 다를 뿐 사냥이 필요하다. 지금도 동물보호를 위해서 마취총을 들고 다니며 사냥하는 생태학자들이 많다.
    반대로 전문 사냥꾼 중 생태학자나 생태 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게 사냥꾼이므로, 그 과정에서 생태학 자체를 연구하여 생태 보호 운동을 하는 계기가 되거나, 사냥을 하다보니 누구보다도 동물 개체수가 줄어드는것이 체감되기에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져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것. 위 목록 중 짐 코벳이 이런 유형이다.
    • 말년까지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생태보호 운동가였다.
    • 1930년대 초반, 스웨덴의 생태학자 스텐 베리만이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긁고 내려오면서 조선의 생태조사를 하기 위해서 많은 동물들을 사냥했던 일화가 있다. 어느 정도냐면, 하루에 을 120마리 정도 잡아내고 멧돼지는 150kg 미만은 멧돼지 취급도 안 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그조차도 백두산 호랑이를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한 3번인가 시도해봤지만 다 실패했다. 혹시라도 웹에서 옛 사진 중에 콧수염 있는 외국 사냥꾼이 한국 비슷한 곳에서 동물 잡고 포즈 취하고 있는 사진을 본다면 일단 베리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링크, 기사

12. 동음이의어

13. 관련 문서



[1]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이 시작된지 시기는 대략 기원전 1만년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문명의 시작을 농업혁명으로 보기 때문에, 사냥꾼과 어부, 채집인보다 먼저 등장한 직업은 없다. 그 밖의 오래된 직업은 다른 인간과의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군인, 남이 모아둔 식량을 훔치는 도둑, 성행위를 수입 창출 수단으로 삼는 매춘부 정도일 것이다. [2] Korean bow & melee hunting [3] Excavation of melee hunting weapons after bows were invented [4] Bronze Age wine-bowl depicting hunting [5] 수렵인들은 물론 지금도 매우 전문적이다. 총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사냥꾼이 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사냥 동물의 종류에 따라 추적 방식이나 필요 도구 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 매사냥 등 전통 방식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아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6] 사냥터까지의 이동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대체로 사냥터가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관을 통해 필요한 갖가지 물자들을 조달받았다. 또한 사냥을 와서 짐승을 많이 잡지 못하면 흥이 안나기 때문에(...) 휘하 군사 및 지역 백성들을 동원해 동물들을 몰아오는 몰이사냥을 했고, 때문에 군사들과 백성들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보다 악질은 이른 추수다. 사냥하러 가는데 농작물 속에 동물이 숨거나 혹은 숨어있던 동물 때문에 말이 놀라 낙마할 수 있으니 채 자라지도 않은 작물을 억지로 수확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백성들 입장에서는 한해 농사를 거진 망친 꼴이다. [7] 그래서 군주가 행하는 사치의 본질은 '폭군의 악행'이 아닌, 전근대시절에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국력 및 군주 본인의 입지를 증명하는 행위이자 국가 구성원들에게 유무형의 이익을 배분해주는 요소였다. 주는 거 없이 형이상학적인 철학만을 내세워 봐야 국가 구성원들이 따라줄 리 만무하고 주변국들도 얕잡아 볼 게 뻔하니까. 괜히 조선 저평가 받는 게 아니다. [8] 훨씬 성능이 우수해진 총과 덫, 야시경, 사냥개, 유인용 떡밥과 냄새제거 스프레이, 길리수트 등 [9] 이는 일부분만이 양식이고 대다수 비율은 자연산인 어업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양식이 지배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어종은 매우 제한적이다. [10] 노루는 수렵 가능한 수렵장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 노루가 수렵 금지 대상이었으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2013년부터 수렵 대상이 되었다. 2014년 6월 현재 추정 개체수는 최대 2만 마리. [11] 집돼지와 멧돼지의 교배종으로, 덩치가 크고 식욕도 왕성하며 무엇보다 공격성이 강하다. 거기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많게는 100마리 가까이 몰려다니기도 해서 농장주들의 최대 천적이 되었다. [12] 디스커버리 채널, 다큐멘터리 " 건스모크 패밀리" 에서 한 목사 겸 리볼버 슈터에게 커스텀 SAA 리볼버를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때 총포상 사장은 목사에게 1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사장의 아내가 왜 이렇게 싸게 파냐고 화내서 부부싸움까지 했다. 물론 목사가 "끝내주는 커스텀 건 제작회사가 있다."라고 총포사를 광고해준 덕분에 잘 풀리긴 했지만... [13] 사실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해도 정말 맨손이었다는 소리가 아니고, 단신으로 몽둥이나 죽창 등을 들고 대적한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다. [14] 험한 지형을 다니는 데에는 경무장이 적합하다. [15] 머스킷이 퇴출된 이후 시대 사례이기는 하지만, 유명한 저격수 시모 해위해도 전쟁 이전에는 본업이 농부이자 사냥꾼이었다. [16] 그 당시 화력은 강하지만 명중률이 낮은 총기의 단점을 일반 병사들은 화망, 즉 물량으로 커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평소 조선에서 호랑이 등 맹수들을 상대하는 포수들의 경우, 한 발 빗나가는 것이 곧 사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높은 명중률이 필수적이었다. [17] '진사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맏아들은 중근으로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틀었고 자색 명주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돔방총을 메고 노인당과 신상동으로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중근은 영기가 넘치고 여러 군인들 중에서도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재주가 있었다. 태건 씨와 숙질이 늘 동행했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 노루 고라니 등을 여러 마리 잡아와 그것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 백범일지 [18] 책 보는 게 직업이던 유생들. 농사짓는 게 직업이던 농부들. 총 쏘는 게 직업이던 포수들. 당연히 포수 집단의 전투력은 타 출신 의병에 비해 넘사벽일 수밖에 없었다. [19]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사냥만큼은 절제하지 못하고 여러 핑계를 대서라도 기어이 다녀왔다.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야 친형 정종과 같이 제대로 다니게 되었다. [20] 마을을 통채로 밀어버리고 사냥터를 조성한 경력이 있다. [21] 사냥꾼 활동을 하다가 의병이 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22] 어떤 신하가 사냥을 자제하라고 상소를 보냈다가 조비에게 처형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23] 심지어는 호랑이와 육박전까지 벌였단다. [24] 칭기즈 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몽골 민족의 종특인데 척박한 환경에서 단순 유목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우니 사냥을 하며 고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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