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본래 하나의 도시였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나누어진 도시를 말한다.각각 독립적으로 생겨나 하나의 도시처럼 된 쌍둥이 도시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쉽게 말해 국경이 먼저 있고 도시가 국경 근처에 붙어서 나란히 생기면 쌍둥이 도시, 도시가 먼저 생겨나고 나중에 생긴 국경이 도시를 나누면 분단 도시이다. 그리고 양 도시가 국경으로 나뉘어지므로 모든 분단 도시들은 국경도시이다.[1]
쌍둥이 도시와 달리 한 국가 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의 도시를 굳이 다른 상위 행정구역으로 나누는 경우도 많지 않거니와[2] 그런 일이 있다 해도 한 국가 내에서는 이동이 자유로우므로 별 문제는 없다. 분단 도시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한 국가였을 때 도시가 그렇게 행정구역상으로만 나뉘어있다가 이후 다른 나라에 국토가 할양되거나 각각의 행정구역들이 별개의 국가로 독립해서이다.
본래 하나의 도시였으므로 대개 명칭도 동일할 때가 많다. 동일한 명칭을 자국어화한 정도의 차이만이 날 뿐이다. 다만 정확히 이름이 똑같으면 상대편 도시와 구별이 안 되기 때문에 국명 등을 동음이의어 구분자로 추가하기도 한다. 동/서베를린처럼 동서남북 식의 방위성 표현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아예 전혀 다른 이름으로 개명을 할 때도 종종 있다.
역사적으로 제일 유명한 분단 도시는 독일의 베를린이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후 연합군에게 점령되면서 베를린 역시 양대 진영으로 분단되었다. 이미 지하철까지 지어진 상태로 분단되어서[3] 베를린 S반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했다.[4] 특히 서베를린은 동독 한복판에 있었던 이른바 "육지의 섬"이었기에 더욱 이질적이었다.[5] 동서 베를린을 오갈 수 있는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는 세계를 양분한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처럼 국가 간의 행정력이 뒤엉킨 곳에서는[6] 도시 내의 분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2. 상호 교류
보통 분단 도시는 오데르-나이세 선처럼 대부분 강을 경계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시는 강을 끼고 발달하는 경우가 많고 강 자체가 자연적인 경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경을 정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로 삼을 만한 자연지형도 없는 경우는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월경지, 위요지인 곳도 존재한다. 이탈리아 고리치아 -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에는 집은 이탈리아, 정원은 슬로베니아인 곳도 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벨기에의 바를러 같은 곳은 한 가게 안에서 국경이 나뉘는 곳도 있다는 모양이다. 대체로는 그런 세세한 경우에 불편을 줄이기 위해 적당한 구획 수정 절차를 거친다.[7] 하지만 어떻게 나누든간에 원래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도시가 나누어지는 것이기에 생활과 이동에 상당한 불편이 발생하며 도시의 발전은 저해된다.[8]본래 하나였던 곳을 정치적 이유로 분할한 것이기 때문에 통합은 요원한 편이다. 통합할 만큼 사이가 좋은 지역이었으면 애초에 분단이나 할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솅겐 협정처럼 통행이 자유로워지면 일반인들의 생활권 측면에서는 다시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할 수는 있으나[9] 그렇다 해도 국가가 다르고 대부분은 언어조차 다른 만큼 생활에 자잘한 번거로움은 있다.[10] 특히 국가간 영토 조정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통합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분단국가인 경우에는 통합을 바라는 여론도 어느 정도 발생하는데 독일 재통일 여론에 있어서도 분단 도시 서베를린의 존재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분단국가는 아니더라도 분할 과정에서 양국보다는 외세의 영향이 강한 경우 상대 도시에 다소 온정적인 정서를 띠기도 한다.
3. 유사 개념
명시적으로 행정구역이 나뉘는 것은 아니나 도시의 각 부분이 특정 민족이나 신분,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가 있다. 고대 도시에는 '~ 민족 구역'으로 특정 민족의 거주 구역이 아예 행정구역처럼 명시된 경우도 흔했고,[11] 유대인의 게토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이주민들이 동향 사람들끼리의 협력을 위해 특정 구역에 모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기도 한다(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 등). 계급에 따른 거주 지역 차이는 근현대 도시에도 흔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구별은 종종 도시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거나 노고존 등의 위험 지역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그 결과 실제 행정구역 분할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국가 분리가 일어나는 경우 도시도 거주민 특성에 따라 분리되기도 한다.[12]4. 목록
4.1. 아시아
-
대한민국/
북한
군사분계선 지역
6.25 전쟁을 통해 대체로 방어에 편리한 산, 강을 통과하여 휴전선이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휴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가 형성되어 민간인의 거주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파괴된 시가지가 버려진 폐허가 되어 버렸지 시가지 자체가 통째로 갈라져 버린 경우는 없다시피하다. 삼팔선은 그런 경우가 좀 있었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흐 - 이집트 라파흐: 1982년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도시 한가운데 국경이 그어져 분단되었다. 이집트쪽 라파흐의 경우 국경과 인접한 시가지가 완충지대 조성을 위해 철거된 상태다.
- 이란- 아제르바이잔 국경의 도시들: 1828년 튀르크멘차이 조약으로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분단되었다.
- 이란 졸파 - 아제르바이잔 줄파
- 이란 아스타라 - 아제르바이잔 아스타라
- 튀르키예- 시리아 도시: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당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가 프랑스와 맺은 1921년 앙카라 조약에서 튀르키예와 프랑스령 시리아와의 경계를 획정할 때 오스만 제국이 독일 제국의 지원으로 건설한 이스탄불-바그다드 철도를 경계로 정하면서[13] 철도가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도시들이 튀르키예쪽 도시와 시리아쪽 도시로 분단되었다.
- 튀르키예 사르프 - 조지아 사르피: 사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양쪽 다 오스만 제국 소속이었고, 그후에도 러시아 제국 소속이었지만 1917년 소련과 체결한 조약 이후로 마을이 반으로 갈라져서 국경이 되어버렸다. 본래 라즈인들이 살던 마을이었으며 현재도 마을을 반 갈라서 국경이 세워져있다. 냉전시기에는 상호왕복도 불가능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튀르키예와 조지아가 상호간 국경을 개방하면서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4.2. 유럽
유럽은 근세부터 전쟁에 따른 자잘한 국경선 변동이 많았기에 유독 분단 도시가 많은 편이다.4.2.1. 서유럽
4.2.2. 중부유럽~동유럽
4.2.3. 북유럽
- 에스토니아 발가 - 라트비아 발카: 원래는 발크(Walk)라는 한 마을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갈라졌다. 오늘날 양국 모두 솅겐 협정의 가입국으로, 경계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몇몇 설치되어있기는 하지만 장벽 같은 것이 설치되어있지는 않고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다. #
- 에스토니아 나르바 - 러시아 이반고로드: 이반고로드는 원래 나르바의 일부였으나 에스토니아를 합병한 소련이 러시아 SFSR과 에스토니아 SSR 간 경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 스웨덴 하파란다 - 핀란드 토르니오: 원래 토르니오로 같은 마을이었으나 나폴레옹 전쟁 중 벌어진 핀란드 전쟁에서 스웨덴이 러시아 제국에게 패배하면서 핀란드를 할양할 때 토르니오 강이 경계가 되면서 분단되었다.
4.2.4. 남유럽
- 키프로스 니코시아 - 북키프로스 레프코샤: 북키프로스와 키프로스가 각각 도시를 차지하고 있으며 두 국가 모두 니코시아를 수도로 두고 있어 2020년대 시점에서 유일한 분단 수도이다. 양측 모두 서로의 구역을 형식적인 검문만 거치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사라예보/ 스릅스카 공화국 동사라예보: 보스니아 내전을 겪으면서 스릅스카 공화국이 동남부 일부를 차지했다. 본래 민족 구성은 현 사라예보나 동사라예보나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내전 중의 대규모 인구 이동과 학살로 인해 두 지역의 민족 구성은 매우 판이해졌다. 두 지역은 일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구성국을 함께 이루고 있긴 하지만 사이가 썩 좋진 않아서 사라예보의 대중교통 시설은 동사라예보 일대를 지나지 않는다.
- 코소보 미트로비차 - 북코소보 북미트로비차: 도시 중앙의 이바르(Ibar) 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세르비아인이, 남쪽은 알바니아인이 지배적이다. # 일단 국경선상으로는 코소보가 도시 전체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코소보의 통치권이 이바르강 이북까지 잘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
구
유고슬라비아 내부
국경도시들
유고슬라비아 전쟁 결과 나뉘었고 오늘날에도 도시 이름은 동일한 경우가 많다. 특히 평야에 하천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사이에는 Šamac - Slavonski Šamac, Brod - Slavonski Brod, Gradiška - Stara Gradiška,[14] Kozarska Dubica - Hrvatska Dubica, Kostajnica - Hrvatska Kostajnica 등의 쌍이 자주 발견된다. 대개 크로아티아 측 도시에만 수식어가 붙어있는데, 원래는 보스니아 쪽에도 '보스니아'(bosanska)가 붙어있었으나 이 일대를 통치하게 된 세르비아인 계열의 스릅스카 공화국이 'bosanska'를 떼어버린 영향이다. #
4.3. 아메리카
-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의 수많은 도시들
미국-멕시코 전쟁의 여파로 나누어진 도시들이 많다. 대개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한다. 이제 나눠진 지 200년을 바라보고 있어 이들 도시가 원래 한 도시였다는 인식은 거의 사라졌으며 평범한 쌍둥이 도시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4.4. 과거의 분단 도시
- 독일 베를린 -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서독이 서베를린을 다스렸고, 동독이 동베를린을 다스렸다.
- 예루살렘 -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이스라엘이 서예루살렘을 다스렸고, 요르단이 동예루살렘을 다스렸다.
5. 여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서부 역병지대의 중심 도시 안돌할이 대격변 시기에 스컬지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얼라이언스( 인간)와 호드( 포세이큰) 세력으로 분단되었다. 결국에 퀘스트라인을 통해 포세이큰이 안돌할을 온전히 차지하게 된다. 그밖에 WoW의 대도시들 중에는 달라란, 샤트라스 등 도시 내부가 두 세력으로 나뉘어 냉전 비슷한 상태에 있는 곳들이 좀 있다. 보통 이런 대도시들은 서로 적대하긴 하지만 도시에서 PvP를 벌이면 난장판이 될 것이므로 전투가 금지된 성역으로 지정되어있다.페이퍼 플리즈의 작중 배경도 서 그레스틴(콜레치아)와 동 그레스틴(아스토츠카)의 경계선상에 존재하는 그레스틴 검문소이다. 오리지널 버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런 특징 때문에 가장 먼저 외워지는 이름 중 하나. 해당 두 국가간의 분쟁의 뒤끝이 남은 것을 암시하는 이벤트가 플레이타임 내내 보인다.
한국 영화 만남의 광장은 휴전선으로 분단된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땅굴을 이용해 몰래 교류한다는 배경 설정의 이야기이다. 단,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제 휴전선은 대다수가 격전지로서 지리적 경계를 따라 나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을은 없다.
미국-캐나다 국경 도시 중에는 하나의 도시 같아보이면서도 국경이 지나는 예가 있다. 다만 미국-캐나다 국경은 인구 희박 지역이 대부분이고 대다수 도시는 19세기에 국경 획정 후 건설되었기 때문에 분단 도시의 예는 아니다. 다만 미국-캐나다 관계가 매우 양호하고, 국경도시의 건설 과정에서도 양국 주민들의 왕래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몇몇 지역에서는 도시의 형태가 국경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곳이 있다. 일단 양국이 국경에 딱히 장벽을 세운 것은 아니기에 출입문은 미국이고 집은 캐나다 쪽으로 좀 들어가있다거나 혹은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벨몬트 더비 라인 - 캐나다 스탠스테드가 대표적이다.
[1]
다만 반대로 모든 국경도시가 분단 도시는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국경이 맞닿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다만 특정 도시가
독립시로 승격될 때 범위를 한없이 늘릴 순 없으니 어느 지점에서 시가지를 끊고 일부만 독립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3]
이런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대다수의 도시 분단은 늦어도
제2차 세계 대전 종결과 함께 일어난 반면,
지하철로 대표되는 대규모
도시철도는 대개 2차대전 후 현대에 많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분단 도시들은 대개 외곽의 중소도시가 많아 도시철도가 있을 만큼의 규모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베를린은 사실 서독-동독의 국경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수도를 별도로 분단한 케이스라 대도시임에도 분단된 것이다. 독일은 서유럽의 오랜 공업국이므로 지하철 건설 역사(
베를린 지하철)가 1902년으로 매우 이르기도 했다.
[4]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유령역이다. 양측 도시민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역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뿐이었다.
[5]
때문에 서베를린은 서방 진영의 안보적 약점이었고
흐루쇼프는 서베를린을 두고 "서방의
고환"이라고까지 비유한 바 있다.
[6]
언뜻 보기에는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전체가
팔레스타인의 영토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슬로 협정에서 규정된 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경찰권 및 행정권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영토의 3%인 A지구 뿐이며 72%에 이르는 C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이 경찰권 및 행정권을 수행한다. 때문에 이스라엘인이 서안 지구에
정착촌을 짓고 이스라엘이 장벽을 지어 팔레스타인인 구역과 이스라엘인 구역을 분단시키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7]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강을 경계로 국경을 설정하더라도 강을 낀 도시가 있을 때에는 강을 무시하고 도시 전체를 어느 한쪽 영토로 넣을 때가 많다. 가령
독일과
스위스의 경계는 대체로
라인강이지만
바젤,
샤프하우젠은 라인강을 낀 양쪽이 모두 스위스 영토로 되어있다.
튀르키예의
에디르네도 한 좋은 예.
[8]
베를린은 분단과 고립으로 오랜 수도로서의 위세를 잃어버렸다.
노바고리차의 경우 본래 도심 기능이 이탈리아
고리치아 쪽에 있는 교외 지역이었기에 분단 후 새로 도심을 구성해야 했다.
[9]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분단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데르) -
폴란드 스우비체 사이에는 상대국의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을 정도이다.
#
[10]
하다못해 같은
대한민국에서 시나
구가 다르면
종량제 봉투를 구별해야 한다든지 특정 서비스의 이용이 어렵다든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 국가가 다르면 아무리 오가기 편해졌어도 생활상의 번거로움은 있기 마련이다.
[11]
예루살렘 구 시가지는 지금도 무슬림/아르메니아인/유대인/기독교인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물론 현대 국가들은
거주의 자유가 있으므로 그런 구역이라 해도 외부인이 거주하는 것은 가능하다.
[12]
다만 도시의 분할은 서로 불편하기에 원치 않고 인종청소, 대규모 추방 등의 사태가 일어날 때가 많다. 국가 규모에서는 학살이나 추방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지만 도시 규모에서는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제일 평화적이면서도 도시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방법은 도시를 나누지 않고 어우러져 사는 것이지만 그런 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국가 분리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13]
정확하게는 철도 노선 노반의
시리아쪽 사면을 두 나라의 경계로 정하면서 철도 자체는 튀르키예가 관할하게 되었다.
[14]
이 'stara'는 '오래된'이라는 뜻인데, 북동쪽 크로아티아 지역에 '새로운'(Nova)이 붙은 Nova Gradiška가 있다.
보스니아의 Gradiška와 크로아티아의 Stara Gradiška 일대가 모두 '오래된 그라디슈카'인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