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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르네 황궁의 정의의 탑 ( 쉴레이만 1세 건설) | 1488년 바예지트 2세가 세운 모스크-마드라사 단지의 내부 |
튀르키예어 - Edirne
그리스어 - Ἁδριανούπολις 혹은 Aδριανούπολις[1]
라틴어 - Hadrianopolis
불가리아어, 마케도니아어 - Одрин
세르비아어 - Једрене
1. 개요
튀르키예 서북부의 도시. 이스탄불 서북쪽 180km 지점의 평지에 위치한다. 튀르키예 최서단 도시로, 서쪽 5km 지점의 그리스 국경과 접하고 북쪽 15km 지점의 불가리아 국경과 접한 국경도시이다. 인구는 약 19만 명으로, 튀르키예령 유럽 (루멜리아) 지역에서 이스탄불, 테키르다에 이은 제3의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트라키아 지방의 핵심 도시였고, 과거 지명인 아드리아노폴리스로 유명하다.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혼란기 때마다 수차례 전장이 되었다. 중세 시기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유럽으로 진출하는 서쪽 관문으로써 중시되었으며 1369년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되어 1453년까지 80여년간 그 수도로 번영하였고 그후로도 중부 유럽 원정의 거점으로써 자체 궁정이 유지되었다. 시내에는 셀리미예 모스크, 무라디예 모스크, 메리치 (마리차) & 툰자 강에 놓인 7개의 다리 등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
2. 역사
발칸 동남부의 젖줄인 마리차 강과 툰자 강의 합류 지점으로써 먼 옛날부터 인류가 정착하였다.2.1. 고대
로마 시대 성벽 유구
고대에는 트라키아인의 땅으로 우스쿠다마(Uskudama)로 불리다가 필리포스 2세의 마케도니아 왕국이 도시를 차지한 이후 그리스어 이름인 오레스티아스(Ὀρεστιάς)로 바뀌었다. 이후 기원전 2세기 경 로마에 합병되었고 로마 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발칸 반도 지배의 거점으로 대규모 요새와 도시를 새로 지었고, 황제의 이름을 따서 하드리아노폴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어에서 /h/ 발음이 사라져 아드리아노폴리스가 되었다. '아드리아노플'은 프랑스어, 영어식 명칭. 오늘날 쓰이는 에디르네라는 튀르키예어 명칭도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로도 발칸 반도의 중요 도시로서 기능해왔다. 378년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 황제 발렌스가 고트족과의 싸움에서 군단이 전멸당하고 자신도 전사하는 불운을 맞이했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의 쇠락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2.2. 중세
1402-14년간 세워진 에스키 자미 (옛 모스크). 비잔틴 양식의 기법이 적용되었다
거점도시로서의 아드리아노폴리스의 위상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이어져, 제국의 제2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2] 동로마 황제들이 즐겨 머물던 곳이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변고가 생겼을 경우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불안한 지역이 어떻게 동로마-오스만 양대 제국의 핵심 도시 역할을 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 들 만큼 이 지역에서는 전투가 잦았고, 함락당한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이유는 유럽 방면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를 함락시키거나 무력화할 필요성이 있으며, 동로마 제국 스스로도 아드리아노폴리스가 포함된 트라키아 지방 동남부 지역은 시작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3중성벽까지 제대로 방어하기 힘들 정도로 지형의 혜택을 못 받는다고 단언할 만큼 지형방어효과가 없는데, 그나마 방어거점으로 활약한 것이 아드리아노폴리스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 방면에서 아드리아노폴리스가 함락되면 다음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차례가 되므로 공격군이나 방어군이나 여기서 한번 거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성립된다. 그래서 21세기까지 대규모 전투만 해도 16번이나 벌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관문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엄청나게 싸움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는 역설적인 배경을 가지게 된게 이 때문이다.
2.3. 근세
툰자 강 건너편의 옛 의학 대학이던 바예지트 2세 단지
오스만 황궁 중 하나인 에디르네 사라이 터
1361년[3]에 오스만 베이국에 정복되었는데,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전까지 90여년간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4] 발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도에 있는 도시로서 매우 중요시되었다. 영어 위키에 나온 항목을 보면 동로마 제국이 불가리아 제국과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8세기부터 한세기마다 이곳에서 대대적인 전투를 두세 번 벌어지는, 소위 전설을 쌓는 과정이 막 보이다가 1362년 오스만의 점령 이후 갑자기 뚝 끊기면서 도시의 역사가 갑작스럽고 전례없는 500년의 평화를 맞게 되는 걸 볼 수 있다.[5]
메흐메트 2세가 에디르네에서 탄생하였고, 자주 유럽 원정에 나섰던 쉴레이만 1세의 에디르네에 곶잘 머물렀다. 따라서 위대한 세기 드라마에서도 '에디르네 사라이'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17세기 말엽 대튀르크 전쟁 시기 술탄들은 전장에서 비교적 가까운 에디르네에 머물며 전황을 주시하였고, 메흐메트 4세가 도중 사망하기도 하였다. 18세기에도 술탄들이 복잡한 수도를 떠나 종종 머물렀으며, 마흐무트 1세와 무스타파 3세가 에디르네 궁전에서 탄생하였다. 하지만 14-18세기의 수도 역할은 19세기 들어 중단되었고, 동시에 오스만 제국이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에디르네는 다시 한번 주기적으로 전쟁에 휩쓸리며 쇠퇴하게 되었다. 한때 10만이 넘던 인구는 20세기 초엽 3만명까지 줄어들었다.
2.4. 근현대
1873년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부설의 일환으로 세워진 카라아아치 역사. 현재는 트라키아 대학의 부속 건물이다
1870년대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이 점령하였다. 1차대전의 직접적인 발단이자 전초전격이던 제1차 발칸 전쟁 당시 불가리아 왕국이 차지했고 제2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다시 차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이 패전한 이후 1920년 세브르 조약으로 그리스 왕국가 이스탄불을 제외한 동트라키아를 차지해 이름도 '아드리아노폴리스'로 되돌아갔으나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서 그리스군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군에게 패하여 아나톨리아에서 쫓겨난 후 그리스는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Νικόλαος Πλαστήρας) 대령을 위시로 한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역전의 명재상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까지 복귀시켜서 어떻게 해서든 동트라키아의 에디르네와 카라아아치(Karaağaç)만큼은 사수하려 했으나 결국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에디르네는 튀르키예 영토로 넘어갔다.
이후 그리스-튀르키예 국경은 메리치(에브로스), 툰자(톤조스)[6]강을 따라 설정되어 있는데, 에디르네 부근 카라아아치에서는 국경이 메리치 강을 벗어나 강 서안에 국경이 그려져있다. 로잔 조약에서 튀르키예가 그리스에게 요구한 전쟁배상금을 튀르키예가 포기하는 조건으로 카라아아치가 튀르키예에게 할양되었기 때문이다.[7]
오늘날에는 인구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튀르키예의 도시 중에서도 최전방중의 최전방이라 21세기 기준으로는 인구 14만의 소도시이다. 조금만 옆으로 이동하면 이스탄불이라는 대도시가 있어서 굳이 여기서 살 이유가 없기도 하고. 그래도 그리스와 접한 국경도시라는 이점을 살려서 예전만큼 국가의 중심도시 역할은 못 해도 이스탄불의 서쪽 육상 관문 및 검역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인구가 늘고 있다.
3. 교통
철도를 통해 그리스에서 불가리아로 가려면 에디르네 인근의 튀르키예령(카라아아치)을 지나야 했는데, 1971년에 우회철로가 개통되면서 그리스를 거쳐 불가리아로 바로 월경할 수 있게 되었다.
4. 이모저모
아무래도 현 튀르키예에서 가장 서방에 위치한 도시며,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에 따라 고대 로마,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8] 국경도시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겐 평범한 유럽 도시 같다는 인상이 많은 편이다.국경 건너 그리스인들이 쇼핑을 하러 에디르네를 자주 찾는다. 그리스 쪽 트라키아 지방은 진짜 한적한 깡촌이라 물건도 없고 물가도 비싸지만, 튀르키예 쪽은 물가가 싼 데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담배 3보루와 술 한 병을 면세로 들여올 수 있다. 참고로 말보로 담배가 튀르키예에서는 11.50리라 (약 1.90유로)지만 그리스에서는 5유로, 불가리아에서는 5.50레프(3유로)이며, 면세로 사면 당연히 더 싸다. 게다가 그리스인들은 튀르키예를 방문할 때 비자도 필요없다. 반대로 튀르키예인들은 그리스로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고, 그리스 쪽 국경 너머는 깡촌이라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불가리아를 찾는다. 불가리아도 EU소속이지만 국경 너머 불가리아 도시인 스벨린그라드, 하스코보, 커르잘리는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고[9] 에디르네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들은 상당수가 그리스, 불가리아에 연이 있기 때문에 이중국적자도 많다.
[1]
현대 그리스어로는 Αδριανούπολη
[2]
다만 경제적 측면이나 도시의 규모면에서의 제2의 도시는
테살로니키였다. 여기는 제국 말기가 되면 통치의 편의를 위해 말만 같은 나라지 그냥 따로 노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테살로니키가 오스만에 최종적으로 함락된건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22년 전인 1431년의 일이었지만.
[3]
다만 시기가 분명치 않아서, 가장 이르면 1361년이고 가장 늦게 보는 경우 1369년.
[4]
아나톨리아 반도의
부르사와 함께 공동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전까지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그 주변이 동로마 제국 영토인 관계로
국토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어, 수도를 에디르네와 부르사 두 군데에 두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
[5]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Adrianople_(disambiguation)
[6]
이 강 이름은
튀르키예어와
그리스어,
불가리아어가 모두 다르다. 튀르키예어로는 메리치 강은 불가리아어로는 마리차, 그리스어로는 에브로스라고 부르며, 튀르키예어로는 툰자 강은 불가리아어로도 툰자 강이지만 그리스어로는 톤조스이다.
[7]
로잔 조약 체결 이전 무다니아 휴전 협정을 체결하면서 협정 내용에 따라 메리치 강 동쪽의 동트라키아에서 그리스군이 철수하였는데 에디르네의 그리스인들이 튀르키예군의 보복을 피해 강 서쪽의 카라아아치로 피난을 갔다. 이들에게 카라아아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무르는 임시 피난처였으나 로잔 조약으로 동트라키아의 튀르키예 할양이 확정되었고 추가로 카라아아치 역시 튀르키예령으로 넘어가게 되자 그리스 정부는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을 위해 근처에 신도시를 건설하여 에디르네의 옛 이름인 오레스티아스에서 유래한 네아오레스티아스(Νέα Ὀρεστιάς)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도시가 바로 그리스 최북동단 도시인 오레스티아다(Ορεστιάδα)이다.
[8]
셀리미예 모스크 같은 경우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9]
하스코보와 커르잘리에서는 심지어 조그만 노점상조차도 튀르키예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