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7:14:10

람세스 1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 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퍼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초대 파라오
람세스 1세
Ramesses I
파일:af6053991d61349df0ba4c6aaac87e41.jpg
람세스 1세의 무덤 KV16에 그려진 벽화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람세스 1세(Ramesses I)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90년/1294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292년/1295년 ~ 기원전 1290년/1294년
(약 1년)
전임자 호렘헤브
후임자 세티 1세
배우자 시트레
자녀 세티 1세
무덤 왕가의 계곡 KV16

1. 개요2. 통치

[clearfix]

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초대 파라오. 신왕국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제19왕조를 개창한 파라오이지만, 재위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왕조 교체기에 흔들리던 이집트를 안정화하려 애쓴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업적도 없다. '람세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파라오이며, 그의 뒤를 이어 명군인 세티 1세 람세스 2세가 연달아 즉위하며 고대 이집트는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2. 통치

람세스 1세가 등장하기 이전, 이집트 신왕국 하트셉수트 여왕, 정복군주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3세 등 명군들이 연달아 재위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멘호테프 3세 이후 즉위한 아케나텐 시대에 이집트는 격랑에 직면한다. 아케나텐은 기존의 아문 신앙을 부정하고 태양신이자 유일신 아톤 종교를 새로운 국교로 삼았다. 당연히 신관층과 기득권층은 엄청나게 반발했고, 아케나텐 시대의 이집트는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결국 아케나텐이 죽자 아톤 신앙은 버려지고 그가 지은 수도 아케타텐은 버려졌다. 아케나텐 사후 즉위한 투탕카멘, 아이의 시대에 아케나텐은 마치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것처럼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다. 이미 즉위할 때부터 고령이던 아이가 짧은 시간 후 죽자 군사령관 호렘헤브가 왕위에 올랐고, 호렘헤브는 강력한 리더십과 군권을 이용해 한창 뒤숭숭한 이집트를 다잡았다. 덕분에 이집트는 아케나텐 사후의 혼란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다.

군사령관 출신인 호렘헤브는 파라오가 된 이후 군대 시절의 측근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이때 많은 군 장교들이 궁정으로 건너왔는데, 훗날 람세스 1세가 되는 파람세스도 이때 높은 관직을 얻었다. 람세스 1세는 왕족은 아니지만 상당히 유력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세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대 장교였고, 삼촌 카엠와세트 역시 군 장교였고 쿠시 총독의 친척과 결혼했다. 람세스 1세도 가풍을 이어 군대에 입대했고, 이후 뛰어난 능력으로 호렘헤브의 총애를 얻었다. 호렘헤브는 파라오가 된 이후 람세스 1세를 특별히 재상 겸 세트 대신관으로 임명했다. 람세스 1세는 세트 대신관으로서 기존 종교를 숭상하고 아톤 신앙을 배척하는데 앞장서며 신관층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호렘헤브가 14여 년 정도의 통치를 마치고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재상이었던 람세스 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를 제19왕조의 시작이라 본다.

람세스 1세는 이미 즉위할 때부터 고령이었다. 그는 대관식을 치르고 대략 16~17개월 후에 그대로 사망했다. 재위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기에 특별한 원정을 떠났다거나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지도 못했다. 람세스 1세는 기원전 1290/1294년 즈음에 사망했고, 그의 미라는 대충 급조된 무덤에 안장되었다.[1] 람세스 1세가 죽은 후 명군 세티 1세, 람세스 2세 등이 연달아 즉위했고, 이집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그의 미라는 130년만에 진짜 정체가 밝혀져 이집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람세스 1세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당대에 이미 도굴당했고, 이집트 제3중간기인 제21왕조 때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었던 피네젬 2세가 파라오 시아문의 명령을 받아 왕가의 계곡을 돌며 옛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미라를 수습해 붕대를 다시 감고 염하여 자기 자신과 가까운 가족들을 위해 조성했던 가족묘였던 데이르 엘 바하리 위쪽의 TT320 무덤에 다른 파라오들의 미라와 함께 재안장했다. 그러나 1860년 경에 지역 주민인 압드 알 라술 가족이 우연히 무덤을 발견했고, 안으로 들어간 이가 몇몇 관에 있던 우라에우스를 보고 왕실 무덤이라는 걸 알아내 몇몇 부장품을 도굴해 팔았는데 람세스 1세의 미라도 이 가문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총독 대리에게 팔렸다. 총독 대리는 이 미라를 미국인 제임스 더글라스에게 다시 팔았는데, 더글라스는 친구인 시드니 바렛을 대신해 이집트 골동품을 구매하던 이여서, 람세스 1세의 미라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나이애가라 폭포 박물관에서 '이집트의 왕자'라는 설명이 붙은 채 그곳에서 전시되었다. 그러다가 주인이 박물관을 정리하면서 전시품을 윌리엄 제이미슨이라는 사업가에게 매각했는데, 이 사람이 이집트학자의 도움을 받아 미라의 정체가 람세스 1세라는 것이 밝혀냈고, 전시품 전체를 1999년에 2백만 달러로 애틀랜타의 에모리 대학 박물관에 매각했다. 그 후 에모리 대학교에서 이집트에 무상으로 반환하여 마침내 2003년 10월 24일에 다시 이집트 돌아왔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국가원수에 준하는 의전으로 람세스 1세를 맞았다.
[1] 세티 1세는 나중에 아비도스 등지에 아버지를 기리는 작은 사당을 세웠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