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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왕조 First Dynasty of Egy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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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왕조의 강역 | |||||
기원전 3150년 ~ 기원전 2890년 | |||||
위치 | 이집트 | ||||
수도 | 멤피스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 ||||
국가 원수 | 파라오 | ||||
주요 파라오 |
나르메르[1] 덴[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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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고대 이집트어 | ||||
종교 | 고대 이집트 종교 | ||||
주요 사건 |
기원전 3150년 제1왕조 상•하이집트 통일 기원전 2890년 제1왕조 해체, 제2왕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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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 이집트 선왕조 | ||||
멸망 이후 | 이집트 제2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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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150년부터 기원전 2890년까지 지속된 고대 이집트의 시대 구분이다.나일 강 유역은 예로부터 정기적인 강물의 범람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등장한 장소들 중 하나였다. 점차 마을들이 생겨나 거대한 도시 성읍들로 발전했고, 이 도시들은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쪽에 위치한 하이집트, 그리고 나일 강 상류쪽에 자리한 상이집트, 이렇게 크게 2개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이 시대를 이집트 선왕조 시대라고 부른다. 상•하이집트를 통일한 인물은 상이집트의 군주였던 나르메르로, 하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최초의 파라오로 군림하며 훗날 3,000여 년 동안 지속될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세웠다. 나르메르 이후 제1왕조의 파라오들은 꾸준하게 상•하이집트를 융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제5대 파라오였던 덴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을 합쳐 '프셴트'라 불리는 이중관을 만들기도 했다.
2. 역사
나르메르 팔레트[3]
기원전 3600년쯤 신석기 시대가 끝나가면서 이집트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진보된 농경 사회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레반트 지역에서 도자기가 들어오기도 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일반적인 건축법이었던 햇볕에 말린 벽돌로 건물을 짓는 방법이 이집트 내로 유입되면서 이전의 단순한 움집이나 오두막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한 건축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제대로 된 문명의 기틀을 잡아나가게 되었다. 사회가 발전하자 대도시들이 생겨났고, 이 도시들은 각각 나일 강 상류를 중심으로 하는 상이집트와 비옥한 나일 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한 하이집트 지방, 이렇게 두 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졌다. 결국 기원전 3150년 상이집트의 군주였던 나르메르[4]가 하이집트를 정복하고, 최초의 파라오로 즉위하여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제1왕조가 열렸다.[5] 고고학계에서는 사료가 지나치게 부족한 제1왕조와 제2왕조를 합쳐서 이집트의 초기 왕조 시대라고 따로 구분해서 부른다.
이집트의 초대 파라오로 즉위한 나르메르는 워낙 오래된 사람이라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6] 그나마 나르메르의 팔레트 등 일부 유물들과 극소수의 관련 기록들을 통해서 그에 대한 사실들이 조금만 남아 전해 내려오는 실정인데, 나르메르는 상이집트의 지도자로서 하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하고 조세체계를 통일하는 등 이집트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정도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통일 이집트를 처음으로 세웠다는 크나큰 업적 덕분에 수많은 파라오들 중 인지도는 꽤나 있는 편이다.
나르메르 사후 파라오가 된 호르아하는 네이트의 신전을 자주 방문하는 등 종교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외적으로는 누비아를 정벌했다.
제1왕조의 제3대 파라오인 제르는 4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재위했으며, 제4대 파라오인 제트[7]와 제5대 파라오인 덴은 무역 장려를 통해 이집트의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덴은 처음으로 '상•하 이집트의 군주'라는 칭호를 썼으며, 상이집트의 상징인 백색 왕관과 하이집트의 상징인 붉은 왕관을 합쳐서 '프센트'라고 부르는 이중관을 만들어 썼다고 알려져 있다.[8]
덴 사후 아네지브가 재위했는데, 이때부터 1왕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30년에 한번씩 하는 세드 축제의 룰을 깨고, 갑자기 세드 축제를 개최하여 민란을 어느정도 잠재웠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재위기간이 10년도 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아네지브 사후 세메르케트가 즉위했는데, 선왕 아네지브가 만들어놓은 평화는 자연재해로 인해 다시 깨지게 되었다. 이후 나라가 다시 혼란해진 상태에서 세메르케트는 8년 만에 죽었다.
이후 즉위한 파라오는 카아였는데, 당시 흔들리는 이집트를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또한 장기 집권하여 세드 축제도 개최했고, 집권한 지 33년 만에 사망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1왕조는 계속 더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스네페르카와 호루스 바 사이의 왕위 계승 문제로 내전이 발발했고, 이를 보다못한 헤텝세켐위가 두 명을 모두 제압하면서 1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
이집트의 초대 파라오. 상•하이집트를 처음으로 통일했다.
[2]
'상•하이집트의 군주'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과 상이집트의 하얀 왕관을 합쳐 '프셴트'라 불리는 이중관을 발명했다.
[3]
좌측이 앞면이고, 우측이 뒷면이다. 이집트의 초대 파라오 나르메르가 적들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묘사했다.
[4]
학자에 따라서는 메네스라고도 한다. 그러나 유명한 유물인 '
나르메르의 팔레트' 때문에 보통 나르메르로 더 많이 불리는 편이다.
[5]
원래는 기원전 3400년 무렵이라는 것이 통설이었는데, 중간기에 존재했던 여러 왕국들이 같은 시기에 공존하기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300년이 늦어졌다.
[6]
전갈 모양 표식 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왕—스콜피온 킹—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나르메르와 메네스는 오늘날 이집트 역사가들에게 동일 인물로 거의 확정받고 있으나, 나르메르와 메네스가 부자지간이었다는 설도 있다. 즉 스콜피온 킹(혹은 카) - 나르메르 - 메네스(=호르아하) 이런 식의 계보가 이어지는 순, 혹은 스콜피온 킹 - 나르메르(=메네스) 이런 식의 계보가 이어지는 순인데 현대 이집트 역사가들은 후자쪽을 더 신뢰하고 있다.
[7]
제트(Djet)는 구리 확보를 위해 시나이 반도로 원정을 떠나는 등 왕국의 체계를 갖추었다.
[8]
또한 덴의 재위기에 처음으로
화강암 등의 암석으로 신전 등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