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2:02:58

아르시노에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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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14대 파라오
아르시노에 4세
Arsinoe IV
파일:Arsinoe-IV.webp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아르시노에 4세
Ἀρσινόη | Arsinoë
출생 기원전 68년-63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리아
사망 기원전 41년 (향년 22-27세)
로마 공화국 에페소스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48년 ~ 기원전 47년[1] (약 1년)
부모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종교 이집트 다신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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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4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클레오파트라 7세가 대립할 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파라오를 자칭하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찾아와서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연합하여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를 공격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패배한 뒤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에 전시되었고, 이후 이오니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요청을 받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처형되었다.

2. 생애

기원전 69년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로 출생했다.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복 형제로 베레니케 4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두었고, 동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두었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붕어했다. 그는 죽기 전에 로마 공화국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공동 통치를 보장해줄 걸 부탁하는 한편,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키프로스에서 공동 통치자를 맡기를 희망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키프로스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있었기에,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는 별다른 영지를 가지지 못했다. 기원전 48년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내전을 벌일 때, 그녀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파라오를 자칭했다.

기원전 48년 말 폼페이우스를 추격하러 이집트로 향했다가 그의 수급을 전달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분쟁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유언대로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공동 통치를 행사하고,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는 키프로스를 통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가신들이 반발하여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을 선동해 봉기를 일으키면서, 알렉산드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왕궁에서 로마군에 억류되었다. 그러다 고문 가니메데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가신 아킬라스와 접촉했다. 그 후 그녀는 파라오로 공식 인정받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파라오로 추대되었다.

아르시노에 4세는 알렉산드리아 공방전을 지켜보다가 아킬라스가 무능하다고 판단하고, 가니메데스에게 아킬라스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권력은 약해졌고, 그녀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녀는 군대의 통제권을 가니메데스에게 넘겼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봉쇄하고 벽을 쌓아서 로마군을 도시의 한 구역에 가두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마군이 먹는 식수에 바닷물을 붓게 했다. 로마군은 우물을 파는 것으로 맞섰지만, 이 정도로는 임시방편에 불과했기에, 카이사르는 신선한 물을 구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해상 봉쇄를 뚫으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역공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갑옷과 보라색 망토를 벗고 바다에 몸을 던져서 근처의 로마 함선으로 헤엄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가니메데스는 끝내 카이사르를 굴복시키지 못했고, 이집트의 주요 장교들은 카이사르에게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교환하겠다고 제안했다. 카이사르는 상황을 호전시킬 기회라고 여기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반란군을 찾아가서 잘 타일러서 반란을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카이사르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카이사르가 거듭 부탁하자 그 말대로 하겠다고 맹세하며 떠났다. 그러나 정작 반란군에 가담한 뒤에는 태도를 싹 바꾸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향한 공세를 강화시켰다. 하지만 온갖 곤경을 헤쳐온 카이사르와 장병들은 끝까지 버텼고, 기원전 47년 1월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가 파견한 구원군이 도착하면서 숨통을 돌릴 수 있었다. 그 후 그해 2월 나일 강 전투에서 이집트군이 참패했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달아나던 중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다.

그리하여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공동 파라오로 선임하였고, 아르시노에 4세를 로마로 이송시켰다. 기원전 46년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개선식이 열렸을 때,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불타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 뒤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갔다. 군중은 연약한 여인이 쇠사슬에 질질 끌리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꼈고, 카이사르의 잔인함을 은근히 비판했다. 개선식이 끝난 뒤, 카이사르는 이러한 여론을 파악하고 그녀를 살려주기로 하고, 이오니아의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조용히 살게 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녀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인식했다. 기원전 4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청탁을 받아들여 아르시노에 4세를 신전에서 붙잡아 처형했다.


[1] (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클레오파트라 7세와 협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