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3 23:35:59

튀르키예-유럽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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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남유럽 국가와의 관계
2.1. 이탈리아와의 관계2.2. 그리스와의 관계2.3. 키프로스와의 관계2.4. 북키프로스와의 관계2.5. 루마니아와의 관계2.6. 불가리아와의 관계2.7. 세르비아와의 관계2.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관계2.9. 알바니아와의 관계2.10. 코소보와의 관계
3. 동유럽, 캅카스 국가와의 관계
3.1.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3.2. 아르메니아와의 관계3.3. 러시아와의 관계3.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3.5. 벨라루스와의 관계3.6. 조지아와의 관계3.7. 몰도바와의 관계
4. 서유럽, 중부유럽 국가와의 관계
4.1. 영국과의 관계4.2. 프랑스와의 관계4.3. 독일과의 관계4.4. 네덜란드와의 관계4.5. 오스트리아와의 관계4.6. 폴란드와의 관계4.7. 헝가리와의 관계
5. 북유럽 국가와의 관계
5.1. 스웨덴과의 관계5.2. 리투아니아와의 관계
6. 관련 문서

1. 개요

튀르키예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2. 남유럽 국가와의 관계

2.1. 이탈리아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탈리아-튀르키예 관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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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리스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그리스-튀르키예 관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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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입장에서는 그리스는 원수다. 그리스 입장에서도 튀르키예는 마찬가지. 두 국가의 현재 국민들은 중세시대부터 워낙에 혼혈 및 상호교류가 많아 외관 및 문화적 차이가 적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위의 두 영상은 축구 국가대항전 A매치에서 국가를 부르는 영상들이다. 각각 튀르키예 홈경기일 때와 그리스 홈경기일 때 튀르키예 VS 그리스 상황에서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았다. 서로 야유를 하는 상황이다.

튀르키예 국가는 1921년 그리스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가 두쪽나기 직전에 작곡되었고 그리스 국가 역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던 시기에 작곡됐기 때문에 두 국가 모두 가사가 정말 살벌하다. 노래로까지 서로에게 야유를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들어서는 서로간의 경제, 문화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갈등이나 악감정은 많이 줄어든 편이다. 물론 연세 드신 분들은 반감을 심하게 보이지만. 그렇지만 미중갈등으로 도로 문제가 격화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군사적 갈등 상태이다. 심지어 둘 다 나토에 속한 국가이면서도 이래서 나토에서도 이들이 으르렁거릴때마다 긴장할 정도. 아예 서로를 적대국으로 상정하여 군사훈련을 하기도 한다. # # 양국 전투기는 수시로 에게해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도그파이트'(근접 추격)를 벌이며 튀르키예 국방부가 그리스 전투기를 몰아냈다며 자국 전투기가 그리스 전투기를 '록온'(조준)한 영상을 공식 트위터 계정에 게재하는등 도발을 하기도 했다. #

2.3. 키프로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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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북키프로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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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루마니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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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도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튀르키예와는 사이가 나쁘다. 다만, 문화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당시에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받은 것도 있다. 튀르키예 드라마는 루마니아에서 인기가 많다.

2.6. 불가리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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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세르비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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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세르비아는 튀르키예와 갈등이 존재한다. 다만, 갈등이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양국은 교류가 존재한다. 세르비아에서도 튀르키예 드라마가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일부 튀르키예어 화자들이 세르비아에도 거주하고 있다.

2.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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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와는 달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튀르키예와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보니 양국은 종교적인 이유로 교류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정회원국이다. 튀르키예 내에는 수많은 보슈냐크계 튀르키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9. 알바니아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알바니아-튀르키예 관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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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서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튀르키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다만 종교적으로 가까운 관계이고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이고 튀르키예 내에는 수많은 알바니아계 튀르키예인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알바니아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당시에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2.10. 코소보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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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유럽, 캅카스 국가와의 관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헝가리 등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유럽 국가들에서 튀르키예는 그리스보다도 인식이 더 안 좋다. 튀르키예가 수백년동안 동유럽과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동유럽을 지배하면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은근히 차별을 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으로 차별하지는 않았고 근대화 개혁 이전까지 오스만 국법에 민족의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무슬림이냐 아니냐로 차별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진출하기 이전까지 동유럽인들 가운데 무슬림은 거의 없었다. (크림 반도 일대 제외) 다만 요즘은 세르비아를 제외하면 반튀르키예 감정은 많이 줄어든편이다.

특히나 오스만 제국이 잘 나가던 리즈 시절에는 좋든 싫든 지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16세기 후반 이후 오스만 체제가 흔들리면서 세금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하자 점차 불만이 생겨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반란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기는커녕 세르비아 정교의 창시자인 성 사바의 유골을 소각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1596년부터 1597년까지 세르비아인 가운데 일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한 이후,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겠답시고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성 사바는 세르비아의 성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윗자리라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기는커녕 일단 진압한 불씨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경제 악화 등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은 제국 내의 기독교도들이 몽땅 정부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결과 세르비아인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인, 알바니아인 등의 반란이 산발적으로 뒤따랐으며 그것들을 일일이 진압해야 했던 오스만 정부와 비(非)무슬림 국민들의 사이는 꾸준히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학살, 약탈, 고문, 강간까지 자행했으니 게다가 근대에 민족주의가 유입되면서부터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반란이 아니라 대규모 반란으로 확산되었으며, 반란을 이끄는 주체도 이전까지처럼 각지의 귀족이나 성직자로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이러니 이렇게 독립한 오늘날의 동유럽 국가들과 튀르키예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했던 중동처럼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종 강제가 상당히 많았다. 알바니아 지역이 오스만 제국에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아예 민족 전체에다 "너 임마? 개종할래, 죽을래?"라는 식으로 강제 개종을 시켰다고 한다.[1][2] 또한 개종자와 비개종자의 차별을 극심하게 두는 바람에 독립 이후에도 민족 갈등의 요소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코소보 등지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등,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의 뿌리도, 사실은 오스만 제국 시기 튀르키예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을 중간 관리자로 앞세워서 기독교도 슬라브인을 억압, 감시하는 등의 종교/민족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원수로 대하며 상호 학살을 벌인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이면에는 수백년간 내려온 튀르키예의 민족 분열정책의 후유증과 빚으로 인해 서로 간에 극심한 증오와 거부감이 존재한다.

북마케도니아는 튀르키예가 독립을 지지하고 그리스와 반목하게 되면서 많이 편을 들어주는 터라 외교적으로 사이가 괜찮은 편이다. 사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영토 및 나라 이름 문제로 그리스를 상당히 싫어하고 있다. 두 국가가 전쟁 위기 상태까지 있었을 정도이기에 불가리아와 같이 이웃 나라에서 무척 편들어주는 터에 튀르키예와 사이 나쁘게 굴일이 없다.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메니아가 튀르키예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의 영토였던 지금의 튀르키예 동부를 잠식했고, 결정적으로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튀르키예가 벌였던 아르메니아 학살이 컸다. 아르메니아의 원수 아제르바이잔을 튀르키예가 적극 지지하는 것도 반감의 원인.[3]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가장 친러적외교를 하는 나라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는 관계를 개선하는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는 중이다. #

캅카스 3개국들 중 아르메니아와는 대학살 문제와 아라라트 산 영토 문제로 나쁜것과 달리 조지아와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 조지아는 내부에 압하지야ㆍ남오세티야 문제 등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실질독립 상태인 미승인국 문제가 있어서, 러시아의 대항마로 튀르키예와 우호관계를 다지는 면이 있다. 다만 조지아는 바다 없는 내륙국인 아르메니아에게 바투미 등 흑해 항구의 사용권을 빌려주고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도 무척 신경을 쓴다.

3.1.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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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 중 유일하게 친한 정도를 넘어 거의 형제 관계 수준으로 절친한 관계다. 튀르키예의 각종 시위 현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축제 현장에서 튀르키예 국기와 함께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양국은 튀르크 문화 국제기구,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은 여기서 파키스탄까지 서로 형제국으로 여기고 있다.

3.2.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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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러시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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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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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벨라루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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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조지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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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몰도바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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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유럽, 중부유럽 국가와의 관계

튀르키예는 유럽에서 사실상 반쯤 왕따당하는 나라다. 그래서 "튀르키예가 어째서 유럽이냐? 중동국가 아니야?"라면서 대놓고 적대시하는 유럽인들도 많다. 알바니아, 보스니아등을 제외한 유럽 국가의 종교는 크리스트교인데 튀르키예는 이슬람교라서 비슷한 공통점도 없고, 생활문화권도 전혀 다른데다, 역사적으로도 심한 적대관계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웃국가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고 민족으로도 상당한 이질적인 정서를 갖고 있어서 항상 따로 노는 국가이다보니 거리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지속적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UEFA 유로를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유럽 국가가 튀르키예를 별로 편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국가를 편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연합 가입도 받아주지 않는데, 이것은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반서방 노선을 정해서 그런 것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튀르키예의 직계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멸망할 때까지만 해도 유럽 세계에서 '유럽'으로 인정했다. 발칸반도를 정복한 이후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쪽 방면보다는 유럽쪽 정세에 개입하는 일이 더 잦았고, 18세기부터는 유럽 각국에 공사를 파견하면서 유럽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나폴레옹 전쟁에도 잠깐이지만 참전했으며 '유럽의 질서'를 조율하는 빈 회의에도 참관국으로 참여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영토가 엄청 많았기 때문에 유럽 국가라고 해도 어색할 게 없었다.[4] 본토인 아나톨리아 역시 본래는 유럽인인 그리스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튀르키예는 산업화된 유럽의 열강들에 비해 점차 뒤쳐지고 19세기 그리스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의 나라가 대거 독립하면서 유럽 영토도 거의 남지 않는다. 19세기 중후반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나란히 독립하며 20세기까지 유지한 유럽 식민지는 알바니아뿐이다. 그래도 튀르키예는 여전히 유럽 국가로 취급하고 별명도 '유럽의 환자'[5]였다. 20세기에 와서도 각국의 외교부문에서 오스만 제국은 여전히 유럽 국가로 구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엄연히 유럽 국가로 동맹국인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패전국이 되었을 때도 식민지가 된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처럼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피지배 민족을 독립시키고 독일 제국처럼 일부 영토를 빼앗았다.근데 남은 영토가 아나톨리아 북쪽 끄트머리다.

물론 이는 외교적, 거시적인 부분에서고 민간, 미시적인 관점에서 튀르키예를 아시아 취급하기도 했다. 외모야 유전자가 99.96% 그리스인과 똑같은[6]튀르키예인이 구분될 리가 없었지만(...) 이슬람 국가였던 튀르키예는 문화적으로는 유럽과 많이 이질적이라 튀르크리가 유행했던 것도 시누아즈리 자포네스크랑 비슷하게 신비롭고 조금은 덜 개발된 이질적인 동방의 나라라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튀르키예는 국토의 대부분이 아시아지만 아시아 국가를 자처한 적도 없고 스스로 유럽 국가라고 여긴다. 서유럽 측에서도 유럽 전체를 놓고 통계를 작성할 때 튀르키예를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유럽국가로 넣는다.

21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가 사회에 큰 문제로 부각하며 EU 가맹국에서 이슬람 국가에 가까운 튀르키예를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매우 커진다. EU에 가입하면 이주 및 취업이 자유로워지니까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많이 이주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오죽하면 EU 가맹국 사이에서 위험한 이슬람 테러리즘 국가인 튀르키예를 받아들이느니 대신 EU에 가입하지 못한 유럽 국가인 세르비아 같은 나라를 가입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EU의 신규국 가입을 이 나라의 정회원국 가입을 끝으로 중단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 나라 중 옛날에 프랑스, 20세기 이후로는 독일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와 16세기부터 지속되어 온 우호적 관계에 힘입어서 대다수의 유럽문화를 받는다. 기독교 유럽 나라 중 오스만과 통상조약이 아니라 군사 동맹을 처음으로 맺은 게 바로 프랑스고 오스만이 한창 잘 나가던 16세기나 17세기에는 오스만의 문화가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에 퍼져 튀르크리라는 문화 현상을 일으킨다. 19세기의 기록을 봐도 이스탄불에서 목좋은 곳에 가게를 연다든지 우대권을 받은 외국인 중 프랑스인이 많다.

이는 16세기 중엽 당시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등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황가가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가 먼저 오스만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고 오스만이 이를 받아들여 몇 번인가 합동작전을 벌였다. 지중해 쪽에서는 프랑스가 하이르 앗 딘에게 항구도시들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양해해주는 대신 오스만도 무차별 약탈의 대상에서 프랑스 선박은 조금이나마 봐준다거나, 프랑스가 서쪽에서 신성로마제국을 공격하면 오스만은 동쪽에서 합스부르크령 헝가리를 공격하는 형식. 한편 프랑스의 포병대가 오스만에 파견되거나[7] 프랑스가 파견한 콘스탄티노플 주재 대사가 전장에 동행하며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이와 같은 이치로 합스부르크는 사파비 왕조와 우호관계를 맺으며 서로 우대권을 공유했으나, 오스만-프랑스와는 달리 상호 연락이 어려운 탓에 합동작전까지 벌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과 우호적으로 지내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과 동맹국이고 근대화에서 독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나치에 반대하는 독일 학자가 튀르키예로 이민을 많이 가서 튀르키예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많이 했다. 또 튀르키예는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으며 방공협정에도 가입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친추축국이었다.[8]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는 튀르키예의 노동자가 전후 경제 복구를 위해서 독일로 많이 이민을 힌다.

물론 독일 내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악감정도 상당하긴 하지만... 독일에서 무려 400만명이 넘는 튀르키예인이 살며 베를린에 갈라타사라이 자매팀인 베를린 갈라사타라이 창단까지 논의되기도 했다. 결국 UEFA에서 거부하여 이뤄지지 못했으나 논란이 되었는데 AFC 아약스 남아공에 케이프 타운 아약스같은 팀이 있고 레드불은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비롯하여 레드불 축구단이 미국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경우는 유럽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당연히 아마추어 팀으로 튀르키예인 축구팀도 많다. 더불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가장 많은 외국인 선수에 튀르키예인 선수가 많은데 2015~16시즌만 해도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 터키 국적 선수는 11명이 뛰고 있으며 3부리그까지 합치면 35명이 소속되어 있다. 더불어 독일인이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으로 2014년만 해도 554만명이 튀르키예로 왔을 정도다.

그 외에는 17세기까지 동지중해를 두고 치고박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들 수 있겠지만, 현재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탈리아에 흡수된 상태라 국민적 감정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래도 베네치아 주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의 지배에 맞서 기독교의 방패로 활약한 과거를 은근히 자랑스러워 한다.

튀르키예의 경제문제는 안정된 직장의 수는 적은데 젊은층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대표적으로 튀르키예인들이 많이 마시는 차이만 해도 차이잎, 농장이 넘쳐나는 상황임에도 한동안 싼 인건비로 서아시아 및 조지아 같은 곳의 노동인력을 쓰다가 일자리 부족을 빌미로 2007년 법으로 금지하고 튀르키예인 인력으로 대체하게 했지만 차이값이 더 오르고 부작용이 더 심해졌다. 특히, 돈도 적게 벌고 몸도 힘든 3D 직종인지라 튀르키예 청년들이 일하길 거부하는 중이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다 똑같다. 애초부터 부모들도 힘들고 보수가 적은 3D 직종을 싫어하며 자식들이 그 직종에서 일하는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튀르키예는 1인당 GDP가 10,000달러에 육박하면서도[9] 청년실업률이 농촌에서 최대 40%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알아서 튀르키예 내 청년층을 해외로 내보내며 이것이 EU 회원국과 잠재적인 일자리 문제로 갈등을 초래한다. 특히 튀르키예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8천만 터키인 중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금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입국하며 문화 자체가 유럽과 다른 이슬람에 동화도 잘 안해 튀르키예인이 자기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배타적으로 산다.

무엇보다 튀르키예는 공식적으로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지만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실질적으로 종교국가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굉장히 탄압하는데 유럽에서는 이런 탄압이 명백한 범죄다.

물론 이슬람 이민자가 죄다 문제만 일으키는 건 아니다. 이들도 부유층이 있고 세속주의자와 기독교인도 있어 현지인과 동화해 잘사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유대인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서 중동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고 여겨 유럽 여러 나라 사회투자와 금융 및 자원개발에 나서 이젠 다른 유럽인도 무작정 예전처럼 튀르키예인을 가난한 이슬람 출신 노동자라고 깔볼 수도 없다. 그래서 튀르키예의 EU 가입에 EU 회원국도 아니면서, 그런데 마찬가지로 회원국이 아닌 미국도 튀르키예를 가입시키라고 EU에 요구하고 있다 아랍권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가 꽤 지지해 유럽에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튀르키예를 계속 마다하면 이슬람권에 대한 도전이니 반발이니 하면서 자원 문제로 심하게 다투어 서로간의 손해가 발생한다. EU vs 아랍+튀르키예(혹은 이슬람)가 되면 좋을게 없다. 하지만 유럽권의 反 이슬람 감정이 워낙 심한 데다가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 비해 튀르키예는 겉으로만 민주주의지 실질적으로 전혀 민주적이지 않아 서유럽 언론에서도 심심하면 이 점을 두들겨 패 튀르키예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심하다.

많은 튀르키예인이 서유럽 국가에서 정착하고 살지만 동유럽에 비해서도 훨씬 문화가 다르며 세속국가를 표방한다고 해도 이슬람권이다. 민족성에 대한 평가도 유쾌하고 잘 융화된다는 평인 반면 튀르키예인만의 커뮤니티로 배타적인 면도 보인다. 또한 서유럽권에서는 튀르키예인은 장사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이민자 범죄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서유럽의 EU 가입 반발은 역사적, 지리적인 문제를 떠나 현재 튀르키예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반영한 결과다.

덧붙여서 최근 아랍권의 혼란스런 정국과 이민자, 테러 문제와 맞물려서 완화될 조짐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2016년 터키 쿠데타 미수사건의 후폭풍 때문에 EU-튀르키예 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 2016년 11월 EU 의회는 튀르키예의 가입 잠정중단 안건을 압도적 가결시켰고, 에르도안은 EU 말고도 다른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한편 가입 협상이 중단되면 300만의 난민을 유럽에 풀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유럽은 튀르키예의 협박을 무시하고 튀르키예의 EU 가입 협상 중단 여부를 표결에 부쳐 찬성 479표, 반대 37표, 기권 107표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개헌 집회를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서 불허한 일로 인해 튀르키예와 다른 EU 회원국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 또한, EU는 튀르키예의 인권탄압과 법치훼손 등을 문제로 튀르키예의 EU 가입 논의를 중단하는 결의안을 다수결로 체택하자 튀르키예 측은 반발했다. #

튀르키예가 키프로스, 그리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지중해 석유시추를 강행할려고 하자 EU측은 튀르키예 제재 움직임을 보였다. # 그리고 EU는 튀르키예 제재를 결의했다. # EU가 키프로스 부근 해역에서 튀르키예 석유시추와 관련된 건으로 제재를 가하자 튀르키예 측은 반발했다. #

튀르키예가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시리아 북부의 로자바를 공격하자 EU는 튀르키예를 다시 제재할 방침을 보였다. #

2019년 11월 7일에 튀르키예는 난민에 대한 유럽의 추가지원이 없으면 튀르키예 내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 가도록 문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

유럽연합 이사회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입국 제한 해제 국가에서 튀르키예를 제외한 데 대해 튀르키예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2020년 7월에 튀르키예 행정법원이 그동안 박물관으로 이용했던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환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모스크 환원명령에 서명하자 EU는 튀르키예를 비판했다. #

유럽연합에서 튀르키예에 대한 제재를 다시 추진하자 튀르키예는 반발했다. #

2020년 4월 6일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U와 터키 간 정상회담에서 튀르키예 측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자리만을 준비한 것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여성이라고 무시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

4.1. 영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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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튀르키예와 영국은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영국내에도 튀르키예계 영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3년 11월 20일에 이스탄불의 영국영사관 주변에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했다. #

보리스 존슨이 총리에 당선되자 에르도안은 트위터로 축하했다. #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영국은 튀르키예에 무기수출을 중단시켰다. #

12월 27일에 리즈 트루스 영국 통상장관은 튀르키예와 FTA를 체결한다고 밝혔다. #

4.2. 프랑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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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한때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동맹 관계였다.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프랑스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프랑스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튀르키예의 세속주의정책도 프랑스의 라이시떼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양국은 그리스와 더불어서 관계 중에서는 최악의 원수이다.

4.3. 독일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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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말기였던 19세기말에 프로이센과 오스만 제국이 수교한 이후, 에르도안의 집권 이전까지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집권 이후, 양국은 갈등을 빚고 있다. 독일내에는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많은 편이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 프로이센의 법률과 문화, 제도를 받아들였다.

4.4. 네덜란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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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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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폴란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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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헝가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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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유럽 국가와의 관계

직접적으로 치고받은 역사가 거의 없다 보니 그나마 사이가 좋은 편이다. 특히 스웨덴은 과거 북방전쟁으로 러시아와 대립하던 시절 오스만 제국과 협력하기도 했고 국왕인 칼 12세가 오스만 제국에 망명하기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5.1. 스웨덴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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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리투아니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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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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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상 일제 신사참배 수준이다. [2] 그래서 알바니아는 보스니아와 함께 유럽에서 드문 양대 이슬람 다수 국가가 되었다. 다만 이둘은 튀르크계 이슬람이였고 공산주의를 겪은 국가들이라 그런지 이슬람 색채는 약한편이며 세속주의 성향도 튀르키예보다도 강하다. [3] 다만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인들을 학살한 호잘리 대학살 때문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해당 사건 때문에 현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는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의 관계보다도 더욱 험악해진 상황이다. 만약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서로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면 아제르바이잔은 친튀르키예 성향과 별개로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4] 대략 40%에 가까운 영토가 유럽 영토였는데,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이었던 오스만의 영토를 보면 엄청 큰 거다. [5]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튀르키예를 유럽으로 여겼던 당시 유럽인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여담으로 '아시아의 환자'는 청나라다. [6] 참고로 중국인과 한국인도 99.96% 일치한다. 피부색이 다른 인종은 99.6% 같다. [7] 러시아-튀르크 전쟁 등에서 오스만이 패전했을때 오스만군에 합류해 참전한 프랑스인들이 포로가 되는 일이 여럿 있었다. # [8] 물론 추축국에 가담하진 않았으며 결국 전쟁 말엽에 연합국 측으로 참전한다. [9] 다만 현재는 경제난으로 인해 터키의 1인당 GDP가 8천달러로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