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4:13:52

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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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가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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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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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대, 60대
클럽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하이
(1991~1994)
둥가
(1994~1998)
카푸
(1998~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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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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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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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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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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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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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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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축구 감독
파일:external/www4.pictures.zimbio.com/Brazilian+Football+Confederation+CBF+Unveils+XpUTkjdee5Ml.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둥가
Dunga
본명 카를루스 카이타누 블레도른 베히
Carlos Caetano Bledorn Verri
출생 1963년 10월 31일 ([age(1963-10-31)]세)
브라질 합중국 히우그란지두술주 이주이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1]
신체 176cm
직업 축구 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80~1984)
SC 코린치안스 (1984~1985)
산투스 FC (1985~1987)
CR 바스쿠 다 가마 (1987)
AC 피사 1909 (1987~1988)
ACF 피오렌티나 (1988~1992)
페스카라 칼치오 (1992~1993)
VfB 슈투트가르트 (1993~1995)
주빌로 이와타 (1995~1998)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99~2000)
감독 브라질 대표팀 (2006~2010)
브라질 U-23 대표팀 (2008)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12~2013)
브라질 대표팀 (2014~2016)
국가대표 91경기 6골 ( 브라질 / 1987~1998)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브라질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역 시절 대표팀에서 주장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카나리아 군단을 상징하는 선수였으며 은퇴 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까지 맡았으나 감독으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별명인 '둥가(Dunga)'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등장하는 난쟁이 중 가장 어린 난쟁이인 도피(Dopey)의 포르투갈어 번역에서 유래한다. 어린 시절 키가 작아서 그의 삼촌이 붙여준 별명이다. 또한 둥가의 아버지도 골키퍼를 했던 축구 선수였다.

특히 주장으로서 월드컵 우승[2]과 월드컵 준우승[3]을 경험한 4명 중 한 명이다.[4]

2. 선수 경력

2.1. 클럽

둥가는 로컬 클럽인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1980년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 4시즌 동안 10경기에 출장하였고, 이후 1984년 코린치안스로 옮겨 13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산투스 FC CR 바스쿠 다 가마를 거쳐 1987년 이탈리아의 AC 피사 1909로 이적, 23경기 2골을 기록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하였다.
파일:바티스투타와 둥가.png
바티스투타와 둥가
이후 1988년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여 4시즌동안 124경기 8골을 기록하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후 1992년 페스카라 칼치오로 옮겼다가 1993년 독일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였다.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2시즌을 보내고 일본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 옮겨 1997년 J리그 우승과 MVP에 선정 되는 등 4시즌 동안 활약하였고, 1999년 고향 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로 돌아와 2000년까지 20경기 3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및 올림픽 은메달 등 화려한 국가대표 경력과 달리, 클럽 시절 우승 경력은 미약한 편. 브라질에서는 4차례의 리우 데 자네이루 주별리그 우승경험이 있으나 정규리그에서는 우승한 경험이 없고 후에 이탈리아 세리에 A, 독일 분데스리가 등에서 활약했지만 정규리그 우승은 경험하지 못했다. 1997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J리그 우승이 둥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리그 우승.

2.2. 국가대표

1987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둥가는 1987년 코파 아메리카 엔트리에 들며 본격적인 국가대표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후 호마리우 - 베베투를 앞세운 브라질이 198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하면서 둥가도 첫 메이저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1년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카레카의 멀티골로 스웨덴을 2:1로 격파, 코스타리카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뮬레르의 골로 1:0 격파하여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의 16강 전에서 브라질은 숙명의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밀어붙이나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의 괴물같은 선방과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결국 16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브라질의 성적도 아쉬웠지만 둥가 본인도 다소 거친 플레이를 펼쳤기에 비난을 받게 되었다.[5]

이후 둥가는 4년 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며 팀을 이끈다.[6] 참고로 이때 둥가는 지나치게 수비 중심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으로 팀을 통솔했는데, 이에 대해 다른 팀원들이 불만을 가지면 베베투가 “짜증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저 놈을 따라가야 된다.”고 팀원들을 추슬렀다고 한다. 이후 브라질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러시아를 2:0 격파, 카메룬을 3:0으로 격파, 스웨덴과 1:1로 비기며 2승 1무로 16강에 진출했고 16강에서 개최국 미국을 1:0으로 격파하고 8강에서 네덜란드를 혈투끝에 3:2로 승리하며 준결승에 진출했고, 4강전에서 스웨덴과 재회하여 호마리우가 80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가 이끄는 이탈리아였고, 승부차기 끝에 바조의 실축으로 결국 브라질이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다. 이 기간 동안 둥가는 중앙에서 압박이면 압박, 패스면 패스, 태클이면 태클로 완벽한 경기운영을 선보였다. 실제로 브라질의 가장 위협적인 공격루트는 자기진영에서 베베투나 호마리우를 향해 단번에 연결되는 둥가의 패스였다. 물론 스포트라이트는 득점을 책임진 호마리우와 베베투가 가져갔지만 둥가도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며 브라질을 정상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파일:dcmcds7uqnnhiwgayj4l.jpg

그 후에도 둥가는 브라질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호나우두 - 호마리우의 활약으로 1997년 코파 아메리카, 199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호마리우가 부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악재가 발생했으나 베베투가 건재했고 히바우두도 있었으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자리잡은 호나우두도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물론 둥가 본인도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능력에서는 떨어졌지만, 승리에 대한 집착과 열정만큼은 필드위에서 가장 빛났었다. 역시 예상대로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를 2:1로 격파, 모로코를 3:0으로 격파하면서 브라질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조별리그 마지막 시합인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78분 베베투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83분에 토레 안드레 플로에게 동점골을 내주더니 89분에는 셰틸 레크달에게 페널티 킥 결승골을 내주며 2:1로 역전패 당하고 만다. 하지만 16강 전에서 칠레를 4:1로 대파하며 8강 진출, 8강에서 덴마크를 3:2로 격파하며 4강 진출, 4강전에서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호나우두의 선제골로 앞서가나 87분에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부차기까지 가게되는데 브라질은 호나우두, 히바우두, 에메르송이 다 성공한 것에 비해 네덜란드는 프랑크 더부르 데니스 베르캄프는 성공했으나 필립 코퀴 로날트 더부르가 연속으로 실축하였고 결국 둥가 본인이 마지막으로 성공하면서 브라질을 2회 연속으로 결승 진출을 이끈다.
파일:둥가 VS 지단.png
결승전 상대는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였다. 그런데 결승전이 열리기 전 호나우두가 발작으로 쓰러지면서 큰 위기에 빠지는데 호나우두는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승전에 출전하기는 했으나 세기의 대결이라 기대되던 경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프랑스가 브라질을 압도했고 전반 27분과 추가 시간 1분에 지네딘 지단에게 멀티골을 허용했고,[7] 후반 추가시간 3분에 에마뉘엘 프티에게 쐐기골을 허용하며 3:0으로 패해 결국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 2연패는 좌절되었다. 하지만 둥가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이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2회 연속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 둥가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둥가는 후배들을 들들 볶아 팀내에서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뛰어난 경기운영 능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절대적이면서 필요한 존재였다.

3. 플레이 스타일

둥가는 브라질리언 답지 않은 브라질리언이라는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플레이는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헌신적이고,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또 킥력도 좋아서 택배 크로스로 어시스트는 물론 중거리 슈팅으로 꽤 많은 골을 넣었다. 그러나 실리주의 플레이를 가장한 오버성 행동도 많은 편이었다. 브라질식 축구가 다 그렇지만 심판 눈을 속이는 반칙이나, 팀이 열세에 있을때 상대에 시비를 걸어 싸우면서 분위기 전환을 노린다건지, 약올리는 제스처를 한다던지 심리전을 많이 썼다.[8]

4. 지도자 경력

축구계 한정으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행보를 보여 왔는데 초반에는 괜찮은 평가를 받다가 나중에 몰락한 사례에 해당한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의 후임으로 2006년 7월 24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코치나 감독 경력도 없이 파격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것이었다. 이후 호비뉴, 시시뉴 등 신진 선수와 다니에우 카르발류, 바그너 로베 등 유럽 변방 리그 선수 및 자국 브라질 리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한 반면 베테랑 선수였던 에메르송, 제 호베르투, 호나우두 등은 소집하지 않았다. 전임 감독 파헤이라가 중용했던 아드리아누, 카카, 호나우지뉴, 호나우두로 구성된 소위 판타스틱 4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9] 자율성보다 규율을 준수하고 조직적인 수비 전술을 선호하여 브라질 전통의 삼바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실리축구를 구사하며 브라질 언론에서 이는 브라질 특유의 화려한 리듬과 폭발력의 축구가 아니라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2007 코파 아메리카 베네수엘라 우승[10],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우승도 견인하며 성과를 보여주면서 감독으로서의 카리스마와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브라질 U-23 대표팀 감독으로도 활동해 브라질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예선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원정에서 가볍게 3:1로 이기고 1위로 본선에 올랐다.

이제 월드컵에서 진가를 보여줄 때가 되었는데,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북한에 다소 고전했지만 2:1로 승리, 이어서 디디에 드록바 코트디부아르를 3:1로 가볍게 이기고[11] 네덜란드에 이어 그 대회 2번째로 16강을 확정지었으며, 최종전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포르투갈과 0:0으로 비기며 조 1위로 16강을 통과했고,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칠레를 맞아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었으나, 여유 있게 3:0으로 이기며 그의 실리축구는 월드컵에서까지도 빛을 발하는가 했다. 그러나 8강에서 똑같은 실리축구, 아르연 로번을 앞세운 네덜란드에 1:2로 역전패하자 그간 브라질 전역에서 과거의 경기력과는 동떨어진 둥가의 실리축구 전술이 제대로 도마 위에 올랐고,[12] 결국 둥가는 8강 탈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13] 그래도 이 때까지가 둥가가 감독으로서 그나마 가장 잘 나가던 시기였다.

2년 후인 2012년 12월 12일, SC 인테르나시오나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3 리우데자네이루 주별 리그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으나, 정작 정규리그에서는 8위를 기록하며 2013년 10월 3일,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국민들의 염원이었던 홈 대회 우승이 사상 최악의 벨루오리존치 대참사로 끝나자 둥가의 실리축구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4년 7월 22일,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의 후임으로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스콜라리도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때까진 경기력이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14] 그리고 둥가도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실리축구 한답시고 소속팀에서 부진한 줄리우 밥티스타 펠리페 멜루를 중용하고 전문 풀백도 아닌 미셸 바스토스를 왼쪽 풀백으로 쓰다 로벤에게 안드로메다 관광가는 등 선수 기용이나 전술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실리축구니 공격축구니 하는 거보다는 결과가 계속 안 좋음에도 무조건 브라질 사람에게만 대표팀을 맡기는 세계에서 축구 제일 잘한다는 브라질 특유의 자부심이 제일 문제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러고도 재평가 운운하지만, 사실 둥가의 감독 경력은 레전드 이름값 앞세워 입성한 대표팀 경력을 빼면 일천하고, 오히려 스콜라리에 비하면 스콜라리가 굴욕을 느낄 수준이다.

이후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 네이마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8강에서 탈락하며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게 거의 없음을 드러냈다.

감독으로서의 특이점은 무협지에서 숨은 고수 찾듯이 실리축구 운운하며 클래스가 확실히 떨어지는 변방 리그 선수나[15] 빅리그에서 뛰어도 폼이 저하되어 있던 선수들을 실리 축구란 명분 아래 선발한다는 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누가 봐도 망한 폼이었던 멜루를 필두로 바스토스, 밥티스타 등을 뽑았고 이들은, 8강 탈락의 제1원흉이 되었다.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선 중국 슈퍼 리그에서 뛰는 타르델리와 UAE에서 뛰는 히베이루를 뽑았고, 아니나다를까 대차게 말아먹었다. 둥가의 탓은 아니지만 더 기가 차는 건 저 망한 타르델리와 히베이루보다 확실히 낫다고 할 만한 스트라이커가 브라질에 없다는 거다(...).

또한 이상할 정도로 치아구 시우바와 관계가 좋지 않다. 주장직도 회의도 없이 다짜고짜 박탈하고 거의 소집하지도 않는다. 시우바가 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으나, 둘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음은 확실하다.

둥가는 거진 자국인 브라질에서만 감독 생활을 한 사람인데, 감독으로서 이 사람을 평가할 때 염두에 둬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축구 같은 것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세상에서 감독하기 가장 지랄맞은 나라가 브라질이라는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정말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다 축구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는 나라가 브라질이며, 수많은 언론들은 자국 대표팀이 1패라도 하면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된 것처럼 자극적으로 씹어댄다. 또한 이긴 경기조차도 경기 내용이 별로일 경우라면 또 오지게 씹어댄다. 심지어 현재 브라질 축구계의 명실상부한 큰어르신인 마리우 자갈루 감독조차도 1974 서독 월드컵 당시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대회를 4위로 마쳤다는 죄목 하나 때문에 축구팬들에게 본인 집을 습격당하는 것도 모자라 당시 유행했던 독감을 본인 이름을 딴 자갈루 독감이라고 불려지는 수모와 인격 모독을 당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국 국가대표팀에게 승리는 기본이요 아름다운 공격으로 대변되는 예술점수까지 요구하는 성격 진짜 이상한 국가가 바로 브라질이다. 사실 한국인들과 언론들도 평소엔 축구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도 대표팀이 A매치에서 패하거나 이겨도 경기력이 안 좋으면 신랄하게 까제끼는데, 브라질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축구계에서 사실 대세가 되는 의견은 브라질 축구가 엄청난 예술성을 보여주며 전성기를 구가하며 월드컵 우승을 거머쥘 때는 사실 철통수비가 기반이 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브라질 축구의 수많은 실패는 2016년 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2006 독일 월드컵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감독들 자신이 공격축구에 취하거나 언론과 국민의 압박에 못 이겨 이름값을 앞세운 화려한 축구를 지향하다가 강한 상대를 만나 박살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2006 독일 월드컵 때를 예로 들어보자면 당시 세계적인 대세는 무조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전술이었으나 브라질은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 카카로 대변되는 판타스틱 4를 가동한다. 감독이라고 이를 모르지는 않으나 국민과 언론 그리고 축구인들의 압박에 화려한 축구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사실상 브라질에서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할 만한 감독 중에서 언론, 국민, 축구인, 그리고 필드에서 직접 뛰는 축구선수들까지 이 모든 사람들의 반발을 씹을 만한 위상을 가진 감독은 드물며[16] 마리우 자갈루조차도 1974 FIFA 월드컵 서독에서 네덜란드한테 무기력하게 0 : 2로 털렸다는 죄목으로 본인 집이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는 수모를 겪었데, 실리축구를 할 만한 위상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2016년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4위까지 본선 티켓, 5위는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나서야 되는데, 둥가가 이끌고 있는 브라질 대표팀은 2016년 4월 1일 현재 6위에 머물고 있다. 대륙간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5위와의 격차는 승점 1점밖에 나지 않지만, 경기력이 굉장히 불안하다는 것이 문제다. 공격진은 여전히 네이마르에 의존하고 있고, 수비적인 축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가 굉장히 불안하다. 이에 치아구 시우바를 왜 소집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지만, 시우바와 사이가 좋지 않은 둥가 감독이 소집할 확률이...

그리고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 시우바는 물론 다비드 루이스 마르셀루조차 소집되지 못했다.[17] 네이마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 와일드카드로 나가기에 불참. 더하여 미들진의 페르난지뉴와 2선의 호베르투 피르미누도 제외. 저 선수들이 빅클럽 수준에서 뛰지만 부진한 상태라면 제외하는게 이상하지 않겠으나, 페르난지뉴는 2015-16 시즌 프리미어 리그 베스트급 폼을 보여줬고 피르미누는 클롭 부임 이후 살아나더니 후반기에는 필리페 쿠티뉴와 함께 리버풀 2선에서 맹활약했다. 또한 수비진의 대체멤버들이 루이스나 시우바 수준의 볼 배급 능력을 갖지 못한지라 기본적인 볼 배급과 운반부터 걱정되는 상태.

결국 걱정은 현실이 되어 브라질은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광탈한다. 에콰도르 무득점으로 비기고 약체 아이티에 7골을 폭격하고 이긴 대신, 페루와의 경기에서 졸전을 펼치다가 코파 아메리카 역사상 최악의 오심으로 손꼽히게 될 " 신의 손" 골에 허무하게 탈락했다. 물론 명백한 오심으로 인하여 대회에서 탈락했지만, 오심이 아니었어도 참담한 경기력 때문에 패했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며, 에콰도르전에서는 심판의 오심으로 보이는 판정 덕에 실점 하나를 없앤 걸 감안하면 퉁친 셈이 되므로 결과는 거기서 거기였을 거라는 게 중론. 안 그래도 선수 선발에서 논란을 자초했는데[18] 이런 비참한 결과가 나왔기에 엥간해서는 짤릴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현지 시간으로 2016년 6월 14일, 또 다시 국가대표팀 자리에서 해고되었다. 실력은 없고 고집만 센 사람이 감독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준 사례.

코파 아메리카 조별예선 탈락의 여파 때문인지 경질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감독직도 코치직도 맡지 못하고 있고, 하다못해 행정가나 해설가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도 없을 정도로 근황도 안 잡히고 있다. 2016년 가을에는 베이징 궈안 감독 선임에 임박하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지만, 선임은 되지 못했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 브라질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8)

5.2.2. 개인 수상

  • IFFHS 세계 최우수 국가대표 감독: 2007

6. 여담

  • 박지성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바로 둥가라고 한다.
  • 브라질에서의 별명은 홀딩형 미드필더답게 트링쿠(trinco). 자물쇠라는 뜻이다.
  • 특이하게도 리오넬 메시가 출전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 2007 코파 아메리카 베네수엘라 결승전과 2014년 10월 11일 친선전에서 2:0으로 승리한 것을 포함해 통산 4승 1무 0패를 자랑한다. 게다가 저 5경기 동안 메시는 0골에 그쳤다. # 다만 A매치가 아닌 올림픽 준결승전에서는 3-0으로 메시의 아르헨티나에게 졌다. 물론 메시가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브라질판 홍명보라는 의미의 둥명보로 칭해지는데,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굉장히 많다. 선수로서는 당대를 풍미한 위대한 수비수/수비형 미드필더들 중 한 사람들이었으며,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갖춘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이끌며 훌륭한 성과(둥가는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홍명보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를 내는데 성공, 이어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호성적을 내는데도 성공(홍명보는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둥가는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8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21].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우승)했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선수 발탁 문제 및 기용과 일부 선수들과의 불화, 전술상의 문제 등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고, 국제 대회에서 참혹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홍명보 2014 브라질 월드컵 조 4위 광탈, 둥가는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조 3위 광탈) 결국 불명예스럽게 감독직을 내려놓아야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J리그에서 다년간 활약했다는 점(둥가는 주빌로 이와타, 홍명보 쇼난 벨마레 가시와 레이솔) 또한 같다. 다만 이러한 공통점이 예전부터 부각되었던 건 아니고,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브라질이 광탈당하며 둥가가 나노단위로 까이던 시기에 홍명보와 비교되는 무능(...)으로 비교되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둥가가 경질 이후 축구계와 거리를 두는 반면, 홍명보는 행정가로 전업해 좋은 평가를 받다가 울산 감독으로 현장에 재도전해 K리그1 우승까지 일궈내며 이러한 평행이론도 옛말이 됐다.
  •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에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하여 10톤 가량의 음식을 기부했다는 소식으로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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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계 브라질인이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그렇다. 어머니는 독일계 브라질인이다. [2] 1994 FIFA 월드컵 미국 [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4] 다른 세 명은 디에고 마라도나, 위고 요리스, 리오넬 메시. [5] 사실 둥가가 비난받은 제일 큰 이유는 브라질 사람들이 그동안 봐왔던 지쿠, 소크라치스 등 화려한 미드필더들에 비해 정 반대되는 플레이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6] 둥가 이전에 브라질 국가대표 주장은 소크라치스의 동생 하이였는데 하이가 조별리그에서 부진하면서 결국 둥가에게 주장 완장을 빼앗겼다. [7] 특히 2번째 골은 둥가가 지단을 마크하려 했지만, 몸싸움에서 밀린 실점이였다. [8] 사실 브라질에 이런 플레이가 고질적인건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의 수십년 장기집권이 한몫 했다. 심판들이 파울 콜에 있어서 유독 브라질에 후했던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젠 VAR까지 생긴 마당에 옛날 이야기지만... [9] 그도 그럴 게 판타스틱 4가 네임밸류로는 최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공수 밸런스가 전혀 안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넷 모두 공격적인 선수들이라 수비 가담이 좋지 않은 공통점들이 있다. 그나마 개인 능력으로 약팀들에게는 잘 통하겠지만... 결국 이것의 대책으로 프랑스가 압박축구로 나오자 프랑스에게 당하고 결국 8강에서 탈락했다. 덧붙여 둥가가 부임한 2006년 이후 카카를 제외한 나머지 셋의 폼은 수직 하락해서 대표팀으로 뽑을 이유도 없었다. [10]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났는데, 당시 카카 대신에 줄리우 밥티스타 정도의 선수를 뽑던 브라질에 비해서 이때 아르헨티나는 역대 최강의 멤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는데, 그 아르헨티나를 밥티스타의 활약 등을 앞세워 3:0으로 이겼다. [11] 다만, 루이스 파비아누가 기록했던 두 골중 한 골은 핸들링 오심이었다. [12] 사실 네덜란드 전도 전반전까지는 가둬놓고 팰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13] 둥가 지도 하에 브라질은 42승 12무 6패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남겼으나, 그 마지막 1패의 패배와 좋지 않은 경기력의 타격이 컸다. [14] 사실 스콜라리도 2002 한일 월드컵 때 실리축구에 가까운 전술을 쓰긴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승을 하긴 했지만, 이 당시 스콜라리 감독은 백업 선수들로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너무나도 클래스가 차이가 나는 선수들인 루이장과 에디우손이라는 선수들을 뽑았다. 물론 지오반니 에우베르와 아모로수가 남미 지역예선에서 기회를 줘도 부진했고, 루이장과 에디우손은 기회를 줬을 때 알짜배기 활약을 해서 그랬겠지만, 만약 호나우두와 히바우두가 도중에 부상이나 경고 누적, 퇴장 등의 변수가 생겼을 때 이들을 가지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지 알 수가 없다. 사실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우승 경쟁 후보들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일찍 떨어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덕분에 결승까지 가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정도를 빼면 브라질에 위협적인 팀들이 없기도 했다. [15] 본인이 J리그에서 뛰었던 탓에 좋게 말하면 빅리그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기회를 주면서 진흙 속에 진주를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선수들을 대표팀에 뽑은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 선수 때도 J리그 출신 선수를 대표팀 감독에게 추천해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 중 대표적인 선수로 세자르 삼파이우가 있었다. 다만 이 때 브라질 감독이 마리우 자갈루로 둥가의 말에 휘둘릴만한 만만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고, 삼파이우는 실제로 대표팀에서 괜찮게 활약했으니 실제로 실력이 있어서 뽑혔던 건 맞다. 문제는 정작 본인이 감독이 되어 뽑은 변방리그 선수들 수준은 저 삼파이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 [16]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심지어 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한테 호마리우를 뽑으라고 부탁한다. 사실 말이 좋아서 부탁이지 나쁘게 보면 압력 혹은 협박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스콜라리는 대통령의 부탁에도 호마리우를 뽑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호마리우가 대표팀에 뛰려고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움직이게 만든 해프닝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 권력자가 축구계에 개입해서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는 사례다. 브라질 축구의 퇴보는 어쩌면 이런 일들과 그 외의 부정비리가 보이지 않게 움직여서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17] 문제는 치아구 시우바, 마르셀루 비에이라, 다비드 루이스는 브라질의 최정예 수비수라는 거다. 다시 말하면 브라질 수비진의 주력 수비수는 다니 아우베스만 있는 상태란 거. 게다가 네이마르가 올림픽만 나가라고 바르샤에서 지침을 받은 상태라 코파 아메리카는 틀렸고, 한 마디로 말하면 공격진도 수비진도 망한 총체적 난국인 것. [18] 그가 제외한 주요 선수들 중 치아구 시우바, 마르셀루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이다. 세간에선 둥가가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의 선수들을 상당히 싫어하여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고 경쟁 도시인 상파울루 출신의 선수들을 중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그리고 브라질 리그에서 잘해서 중국 슈퍼 리그로 이적한 거긴 하지만 중국에서 뛰는 지우를 주전 수비수로 쓰며 중용했는데, 한국의 일부 축구팬들은 지우가 치아구 시우바, 다비드 루이스를 제치고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뛸 정도로 그렇게 잘 하는 선수라면 그 지우가 있는 산둥 루넝 타이산 AFC 챔피언스 리그 원정에서 두골을 넣으며 4:1로 터는데 일조한 FC 서울 아드리아노는 왜 대표팀에 안 뽑았냐고 비웃기도 하였다. [19] 이때는 A매치로 인정받는 대회였다. [20]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친선경기대회 [21] 다만 둥가호의 동메달은 브라질 국민과 팬들에게는 불만스러운 성적이었고 특히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0:3으로 졌기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다. 다만 당시 아르헨티나 스쿼드는 리오넬 메시, 앙헬 디마리아, 세르히오 아구에로, 후안 로만 리켈메 등이 포함된 역대급 스쿼드였고, 이 시기 뛰었던 대다수의 선수들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 당시 주축 멤버로 포함되었을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변호의 여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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