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5 13:05:35

존 콜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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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특별감사상 수상자(예술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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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7px;margin-bottom:-7px; margin-left:-11px; margin-right:-11px;"
1944년 1982년 1976년 1982년 1985년
쉴리 프뤼돔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스콧 조플린 밀턴 배빗 윌리엄 슈먼
1998년 1999년 2006년 2007년 2008년
조지 거슈윈 듀크 엘링턴 셀로니어스 멍크 레이 브래드버리
존 콜트레인
밥 딜런
2010년
행크 윌리엄스 }}}}}}
존 콜트레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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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Greatest jazz artist of all time
※ 2015년 BBC 라디오와 재즈 FM 청취자들이 투표 후 BBC 뮤직 재즈가 편찬했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마일스 데이비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존 콜트레인 엘라 피츠제럴드
6위 7위 8위 9위 10위
찰리 파커 빌리 홀리데이 셀로니어스 멍크 빌 에반스 오스카 피터슨
출처 }}}}}}

파일:external/www.brooklynvegan.com/grammy.jpg 그래미 평생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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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7px;margin-bottom:-7px; margin-left:-11px; margin-right:-11px;"
1963년 빙 크로스비
1965년 프랭크 시나트라
1966년 듀크 엘링턴
1967년 엘라 피츠제럴드
1968년 어빙 벌린
1971년 엘비스 프레슬리
1972년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1984년 척 베리, 찰리 파커
1985년 레너드 번스타인
1986년 베니 굿맨, 롤링 스톤스, 안드레스 세고비아
1987년 로이 에이커프, 베니 카터, 엔리코 카루소, 레이 찰스, 패츠 도미노, 우디 허먼, 빌리 홀리데이, 비비 킹, 아이작 스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행크 윌리엄스
1989년 프레드 아스테어, 파블로 카잘스, 디지 길레스피, 야샤 하이페츠, 리나 혼, 레온타인 프라이스, 베시 스미스, 아트 테이텀, 사라 본
1990년 냇 킹 콜, 마일스 데이비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폴 매카트니
1991년 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1992년 제임스 브라운, 존 콜트레인, 지미 헨드릭스, 머디 워터스
1993년 쳇 앳킨스, 리틀 리처드, 셀로니어스 멍크, 빌 먼로, 피트 시거, 패츠 월러
1994년 빌 에반스, 아레사 프랭클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995년 팻시 클라인, 페기 리, 헨리 맨시니, 커티스 메이필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96년 데이브 브루벡, 마빈 게이, 게오르그 솔티, 스티비 원더
1997년 바비 블랜드, 에벌리 브라더스, 주디 갈란드, 스테판 그라펠리, 버디 홀리, 찰스 밍거스, 오스카 피터슨, 프랭크 자파
1998년 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1999년 조니 캐쉬, 샘 쿡, 오티스 레딩, 스모키 로빈슨, 멜빈 토메
2000년 해리 벨라폰테, 우디 거스리, 존 리 후커, 미치 밀러, 윌리 넬슨
2001년 비치 보이스, 토니 베넷,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밥 말리, 더 후
2002년 카운트 베이시, 로즈메리 클루니, 페리 코모, 알 그린, 조니 미첼
2003년 에타 제임스, 조니 마티스, 글렌 밀러, 티토 푸엔테, 사이먼 앤 가펑클
2004년 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2005년 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더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튼,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2006년 데이비드 보위, 크림, 멀 해거드, 로버트 존슨, 제시 노먼, 리처드 프라이어, 더 위버스
2007년 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엠지 에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맨, 더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2008년 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2009년 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2010년 레너드 코헨, 보비 대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2011년 줄리 앤드루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2012년 올맨 브라더스 밴드, 글렌 캠벨,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조지 존스, 더 멤피스 혼즈, 다이애나 로스, 질 스콧 헤론
2013년 글렌 굴드, 찰리 헤이든, 라이트닝 홉킨스, 캐롤 킹, 패티 페이지, 템테이션스
2014년 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2015년 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2016년 루스 브라운, 셀리아 크루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허비 행콕, 제퍼슨 에어플레인, 린다 론스태드, Run-D.M.C.
2017년 셜리 시저, 아마드 자말, 찰리 프라이드, 지미 로저스, 니나 시몬, 슬라이 스톤, 벨벳 언더그라운드
2018년 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2019년 블랙 사바스, 조지 클린턴 / 팔리아먼트-펑카델릭, 빌리 엑스타인, 도니 해서웨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샘 & 데이브, 디온 워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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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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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2003년 등재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엘비스 프레슬리, <Sun Records sessions> (1954-1955)
마일스 데이비스, <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4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쉬,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 What's Going On>
브루스 스프링스틴, < Born to Run> (1975)
2005년 등재
존 콜트레인, <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 Pet Sounds> (1966)
존 윌리엄스, <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 Nevermind> (1991)
2006년 등재
뮤지컬 '쇼보트(Show Boat)' 앨범 (1932)
데이브 브루벡,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 앤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 Daydream Nation> (1988)
2007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Burnin'>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8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행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 Thriller> (1982)
2009년 등재
뮤지컬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7)
더 후, < My Generation> (1966)
2010년 등재
뮤지컬 ' 집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9)
빌 에반스 외,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7월 25일 녹음)
더 밴드, <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2011년 등재
캡틴 비프하트, <Trout Mask Replica> (1969)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2년 등재
부커 T.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 Purple Rain> (1984)
2013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핑크 플로이드,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 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1977)
2014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Volumes 1 and 2)> (1954)
본 미더, <The First Family> (1962)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79)
U2, < The Joshua Tree> (1987)
2015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더 도어스, <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6년 등재
존 콜트레인, <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Abraxas> (1970)
메탈리카, < Master of Puppets> (1986)
2017년 등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People> (1964)
데이비드 보위, <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 Remain in Light> (1980)
N.W.A, <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8년 등재
메를 트래비스, <Folk Songs of the Hills> (1946)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 Rumours> (1977)
Run-D.M.C., < Raising Hell> (1986)
2019년 등재
스탠 프렌버그, <Stan Freberg Present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ume One: The Early Years> (1961)
덱스터 고든, <Go> (1962)
커티스 메이필드, <Super Fly> (1972)
올라 벨 리드, <Ola Belle Reed> (1977)
신디 로퍼, <She's So Unusual> (1983)
스쿨 하우스 록 박스 세트 (1996)
JAY-Z, < The Blueprint>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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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coltraneportrait.jpg

풀네임은 존 윌리엄 콜트레인 (John William Coltrane). 1926년 9월 23일 ~ 1967년 7월 17일.



1. 개요2. 생애3. 사생활과 대인 관계4. 사후의 영향력5. 음악
 

1. 개요

"뛰어난 즉흥 연주, 최고의 음악가 정신 및 재즈 역사의 상징적인 중심성"
퓰리처상, 2007년 특별감사상 선정 이유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뮤지션이자, 사상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중 하나이며, 제한없는 재즈의 선구자.''
― 올뮤직

미국 재즈 색소폰 연주자. 2차대전 이후의 모던 재즈신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본좌로 손꼽힌다.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등의 사이드맨으로 시작했지만 사망할 때 즈음엔 그들과 같이 모던재즈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인물이 되었다. '인생은 짧고 굵게!' 를 몸소 실천한 색소포니스트. '재즈의 성인(聖人)'이라 불리운다.

2. 생애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햄릿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색소폰과 클라리넷 등의 연주법을 익혔다. 1945년에는 해군 군악대 입대 하와이 소재 해군 빅 밴드에서 연주했고, 1946년 전역한 뒤 필라델피아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니스 샌돌에게 재즈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배웠다.

이후 이런저런 빅 밴드 등에서 연주 활동을 벌이다가 찰리 파커를 비롯한 신인 연주자들이 들고 나온 비밥에 푹 빠졌고, 이내 뉴욕을 거점으로 삼아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비롯한 초기 밥 연주자들과 여러 세션이나 공연, 녹음에 참가했다. 1950년 초기에는 실력이 소니롤린스보다 못해서 기가 죽어있었지만(마일스 자서전) 초인적인 연습량과 콜트레인만의 강한 캐릭터를 지닌 연주로 세기의 거인이 되었다.
파일:attachment/potpargilcol.jpg
당시 콜트레인의 존재감을 잘 설명해 주는 역사적인 사진.
왼쪽부터 토미 포터,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그리고 콜트레인이다.

1955년에 스승인 샌돌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5중주단)에서 소니 롤린스가 탈퇴한 뒤 새로운 색소포니스트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콜트레인을 추천했다. 당시 마일스는 헤로인에 쩔었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하드밥의 유행에 맞추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는데, 아직 젊고 이론에도 꽤 빠삭했던 콜트레인을 적임자로 여겨 멤버로 영입했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연주한 기간은 1957년 까지로 3년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이 그룹의 최고 명반들이자 하드밥의 전설적인 결과물로 손꼽히는 '~in' 시리즈' 인 Cookin', Relaxin', Workin', Steamin' 네 장의 음반 등이 프레스티지에서 출반되었고 메이저 음반사였던 컬럼비아와 계약 후 처음 내놓은 'Round About Midnight'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콜트레인도 마약으로 헤롱대던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클럽 공연 도중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는 등(...) 상당한 막장 행보를 보여주었다. 마일스는 참다 못해 1957년 4월 중순에 콜트레인을 그룹에서 짤라버렸고, 동시에 마일스 퀸텟 1기의 역사도 끝나 버렸다.

방출 직후 필라델피아에 있던 친가에 틀어박혀 힘들게 마약을 끊은 뒤, 5월 말 뉴욕으로 돌아와 마일스 퀸텟 시절 음반사인 프레스티지에 자신의 첫 리더작 Coltrane을 취입했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블루노트 레이블과 녹음한 첫 앨범이자 두 번째 리더작인 Blue Train으로 생애 첫 대박을 쳤다. 한국 팬들의 경우 이 Blue Train 앨범을 통해 콜트레인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다. 또 버드 파웰을 통해 약에 헤롱대던 천재삘 나는 연주자들의 행보에 본의 아니게 꽤나 익숙해있던 셀로니우스 몽크의 쿼텟(4중주단)과도 잠시 어울려 연주했고, 이들이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실황으로 제작된 음반도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후에도 프레스티지와 블루노트에서 번갈아 가며 녹음을 했는데, 프레스티지에서는 아직 블루노트 만큼의 성과가 없다고 여겼는지 후속작으로는 1958년에 Soultrane를 정발하는데 그쳤다. 대신 계속 녹음은 하되 테이프를 음반화하지 않고 자료실에 짱박아 놓았다가, 콜트레인이 확실히 유명해진 1960년대 초반에야 이들 녹음을 무단으로 발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리더작들이 Dakar, The Last Trane, Lush Life, Settin' the Pace, Standard Coltrane, Stardust 등으로, 완성도는 좀 들쭉날쭉하지만 하드밥 시절 콜트레인이 보여준 실험과 시행착오가 담겨 있는 귀중한 앨범들이다.

1958년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새로 결성한 섹스텟(6중주단)에 다시 합류했는데, 이번에 마일스가 들고 나온 아이디어는 선법(Mode)에 기반한 모달 재즈(Modal Jazz)였다. 섹스텟이 낸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인 Milestones와 Kind of Blue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후자는 '재즈 팬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하는 음반' 으로까지 회자될 정도로 지금까지 유명하다.

마일스 섹스텟 후반기였던 1959년에는 애틀랜틱과 계약해 완전히 자작곡으로만 구성된 앨범인 Giant Steps를 발매했다. 타이틀 곡에서는 어지러울 정도로 잦은 코드 변화를 구사해 비밥의 극단을 추구했고, 반대로 자신의 첫 번째 아내에게 헌정한 곡인 Naima라는 곡에서는 느리고 명상적인 모달 재즈를 보여주는 등 상반된 요소가 혼합된 논쟁작이었는데, 이후 콜트레인이 추구하는 방향을 제대로 암시한 것은 후자였다.

다만 앨범 녹음 직후 틀니를 하고 취주법을 새로 익히기 위해 약 반 년 가량 공백기를 가져야 했고, 1960년 10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녹음과 공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활동 재개 직후 Coltrane Jazz를 통해 이후 자신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쿼텟 멤버가 되는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 드러머 엘빈 존스와 첫 녹음을 취입했고, 또 프리 재즈 초창기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에릭 돌피, 오넷 콜먼, 돈 체리 등의 뮤지션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전위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색소폰과 플루트, 클라리넷 등 다양한 관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던 돌피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이 시기를 전후해 종래의 테너색소폰 외에도 소프라노색소폰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따금 플루트도 연주했다.

1961년에 애틀랜틱에서 임펄스로 소속 음반사를 옮긴 뒤 11월에 뉴욕의 유명 재즈 클럽인 빌리지 뱅가드에서 가진 공연에서 베이시스트 지미 개리슨이 합류하면서 쿼텟 멤버가 완전히 확정되었고, 이 공연의 라이브 앨범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 셀프 타이틀 앨범인 Coltrane, Ballads, Impressions, Live at Birdland, Crescent 등 중요한 앨범은 거의 모두 이 멤버들로 녹음되었다. 이들의 연주력과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해서, 3년 뒤 결성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세컨드 퀸텟과도 곧잘 비교된다. 특히 마일스 퀸텟같은 경우 모던 재즈에서 퓨전 재즈로 넘어가는 그룹으로 자주 언급된다면, 콜트레인 쿼텟의 경우 모던 재즈에서 프리 재즈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상징하는 그룹의 대명사로 취급된다.

물론 콜트레인 쿼텟은 프리 재즈로 넘어가는 동안 상당히 괴팍하고 과격한 형태의 음악을 보여주며 비평가와 청중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지만, 반대로 듀크 엘링턴 같은 구시대 거장이나 조니 하트먼 같은 재즈 발라드 가수와 협연하기도 하고 기존 발라드를 새롭게 편곡해 재창조하는 유연함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했다. 콜트레인의 팬들이 후기 음악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 열광하는 이유도, 극단적으로 보이는 음악 가운데에서 길고 매력적으로 뽑아내는 발라드 감성의 선율미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1964년 녹음해 이듬해 내놓은 A Love Supreme을 통해 콜트레인은 완전히 프리 재즈에 귀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의 아들의 탄생에 대한 축복에 기인한다는 내용의 대규모 모음곡이었는데, 비록 라이브로 연주한 기록은 단 한 번 뿐이지만 지금도 호평을 받는 명작이다.

하지만 1965년 이후로 자신의 밴드에 대한 통제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색소포니스트 파로아 샌더스나 드러머 라시드 알리 같은 극단적인 프리 계통 연주자들을 집어넣으면서 기존 멤버들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켰다. 특히 이들 멤버의 경우 영입 과정에서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의문 혹은 비판을 받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일본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기자들로부터 '파로아 샌더스 같은 애들을 왜 끌고 다님?'이라는 꽤 노골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Ascension을 냈을 때까지는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모습이었지만, 리더로 보여준 우유부단함과 새로운 뮤지션들과의 부조화 등에 못이겨 1965년 11월에 Meditations 앨범 녹음 직후 타이너와 존스가 탈퇴했다. 타이너의 후임으로는 자신의 부인 앨리스 콜트레인이 들어왔고, 드럼은 계속 알리 혼자 연주했다.

만년에는 점점 더 몽상적이고 Interstellar Space와 같은 우주 지향적인 음악을 추구했고, 아시아 아프리카 민속 음악의 영향을 받아 그 지방의 전통 타악기 연주자를 게스트로 맞아들여 공연과 녹음을 하기도 했다. 1967년 3월과 4월에 각각 생애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 녹음을 남겼고, 5월 7일 볼티모어에서 공연한 직후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롱아일랜드의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간암 판정을 받고 그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향년 40세로 타계했고 [1], 유해는 파밍데일의 파인론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사생활과 대인 관계

요구 사항을 똑부러지게 이야기 못하고 에둘러 말하거나, 고민 거리가 있어도 혼자 간직하고 있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탓에 '내성적 인간' 그 자체였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중평이다. 다만 음반사나 클럽과 전속 혹은 출연 계약을 맺을 때만은 공격적이고 까탈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이는 초짜 시절 프레스티지와 애틀랜틱 같은 음반사들이 녹음은 있는 대로 해간 뒤 나중에 자신이 유명해지자 아무 동의 없이 그걸로 음반을 마구 찍어내던 행태에 상당히 자주 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밴드 리더로 보여준 리더십은 마일스처럼 가히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와는 거의 정반대였는데, 리허설 때는 물론이고 공연 중에도 밴드 멤버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서 벌어지는 키배설전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다소 다혈질적이었던 드러머 엘빈 존스의 경우에는 밴드 멤버와 불안정한 협주가 끝난 후 리더의 우유부단함에 빡친 나머지 콜트레인의 자가용을 개발살내기도 했는데, 그 때도 화를 내기는커녕 '차야 다시 사면 되지만 엘빈 존스같은 뛰어난 드러머는 없다'라면서 엘빈을 달랬다고 한다.

비밥 시대의 여느 재즈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마약에 탐닉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특히 트럼페터 리 모건이랑은 이래저래 약으로 같이 맺어진 사이.), 마일스의 퀸텟에서 잘린 뒤에는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는지 방에 틀어박혀 며칠이고 물만 마시며 금단 현상을 이겨내는 근성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도 이 때 완전히 끊었고, 아주 가끔씩 담배 피우는 것 외에는 일체의 기호품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채식주의 식습관도 이 때 시작되었다).[2] 사실 마약에 빠진건 이 시대 다른 재즈 음악가들과 다를바 없었으나, 그보다 더 기본적인 인성 측면에서 그냥 쓰레기였던 찰리 파커나 쳇 베이커, 독선적이고 항상 주변에 화가 나 있었던 마일즈 데이비스 등과 달리 바탕이 되는 성격은 내성적이면서도 온화하고, 사색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약 대신 중독성을 보여준 것이 과자 탄산음료를 비롯한 단 음식들이었는데, 덕분에 치아 상태는 그야말로 개막장이 돼서 1960년대 이후로는 틀니를 끼우고 살아야 했을 정도였다. 체중도 들쑥날쑥이어서, 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뚱뚱해질 때와 날채소와 과일, 물만 먹는 극단적인 감량법으로 날씬해질 때를 대비해 두 벌의 옷이 필요했다니 흠좀무. 트레인의 폭식은 마약 중독 금단 증상도 있었지만, 저 전설의 카인드 오브 블루를 비롯해 다른 엘범 몇몇을 함께 녹음하며 친분이 생겼던 캐논볼 애덜리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다른 재즈 뮤지션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교육자 중산층 집안에서 나고 자라 중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으로도 오래 일했던 캐논볼 애덜리는 그 시절 기준으로는 굉장히 특이하다면 특이하게 (...) 술담배 빼고는 일체의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대신 엄청난 폭식과 비만이라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3]. 마일스를 통해 캐논볼과 협업하면서 사적으로도 깔끔했던 캐논볼에게 비결을 물었고, 마약을 끊는 대신 자신 처럼 밥을 든든히 잘 먹을 것, 즉 일반인의 기준에선 폭식을 할것(...)을 권유하여 콜트레인의 식단도 같이 망가져버렸다 한다.

악기 연습도 거의 중독 또는 집착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혹독하게 했는데, 탈진 직전까지 연습한 후 색소폰을 물고 잠들기도 했고 손님이 왔을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와서 연습을 했을 정도였다. 그 결과 당시 색소폰의 거의 모든 연주 기교를 마스터할 수 있었고, 프리 재즈 시대에도 어려움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Love Supreme 앨범에서 보듯 신앙심도 상당히 깊었는데, 다만 개신교를 비롯한 서양의 특정 종교에 귀의한 것은 아니었고 이슬람교 힌두교를 비롯한 동양의 종교/철학에 특히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인도 음악에 심취했던 파로아 샌더스나 라시드 알리를 밴드에 기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듯 하다(그러나 그의 종교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말이 많다). 말년에는 자신이 죽으면 메시아가 될 거라고까지 이야기했는데, 메시아는 아니더라도 재즈 계의 본좌 위치는 확실히 하고 갔다.

4. 사후의 영향력

워낙 리더 경력이 늦게 시작된 탓에 다른 재즈 아티스트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리더 앨범들을 남겼을 뿐이지만, 대부분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윗 항목에 소개한 앨범들 외에는 My Favorite Things도 모달 재즈와 소울, 펑크 등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명작으로 일컬어진다.

앨범에 대한 높은 평가 외에 자작곡들도 지금은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고정되어 애주되고 있고, 기존 레퍼토리를 완전히 새롭게 개작한 경우에도 '콜트레인 버전'이라고 독자적으로 취급될 정도다. 만년에 그룹 활동을 같이 했던 파로아 샌더스 외에도 앨버트 에일러 아치 셰프를 비롯한 후배 색소포니스트들도 콜트레인과 작업하면서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색소포니스트들 외에 다른 악기를 다루는 모던 재즈 아티스트들도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마일스의 경우 콜트레인의 마약 습관이나 프리 재즈를 향한 방향 전환은 대단히 못마땅하게 바라보았지만, 음악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박식함은 확실히 높이 샀다. 프리나 아방가르드 재즈, 에스닉 성향의 후배 뮤지션들에게는 그야말로 태양으로 여겨졌을 정도. 소니 롤린스의 경우에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한동안 잠수를 탔다.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들 중에도 콜트레인의 솔로를 따서 분석한 뒤 작곡에 응용한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찰리 파커를 따라 비밥을 마스터하고 (Giant Step) 마일스 데이비스를 따라 하드밥을 마스터하고 (Blue Train) 거기에 당시 신개척지인 프리재즈에서도 정점을 찍은 (Love Supreme) 인물이다. 게다가 이런 현란한 연주 못지 않게 발라드에도 정통한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발매한 발라드 앨범이 불티나게 팔려나가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을 정도. 하여튼 저런 모던재즈를 완전히 섭렵하는 업적을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고 사망한 덕분에 현재까지도 재즈음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밴드는 콜트레인의 사후 미망인 앨리스 콜트레인이 리더 자리를 넘겨받아 몇 년간 지속되었고, 앨리스가 2007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들인 라비 콜트레인이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그의 직계 가족 외에도 조카인 스티븐 엘리슨 역시 플라잉 로터스(소속 레이블은 Warp Records)라는 이름으로 음악 생활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J Dilla의 영향을 짙게 받아 일렉트로닉 힙합을 위주로 했으나 피는 못 속이는 법. 2010년 발표한 앨범 Cosmogramma에서는 삼촌 라비 콜트레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등을 게스트로 맞이해 프리 재즈와의 결합을 적극 시도한 바 있다. 또한 GTA 5에서는 자신의 명의로 된 작중의 라디오 채널을 냈다.

미국 샌 프란시스코에는 St. John Coltrane Church라는 교회가 있다. 매주 일요일 잼 세션이 열린다고 한다. 홈페이지

5. 음악

프리재즈에 빠진 시기의 콜트레인의 음악은 매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친듯이 정확한 리듬을 탄탄하게 쏟아내는 리듬섹션이 중심을 다잡고 있기 때문에 왠지 재즈같지 않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오넷 콜맨과의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의 존 콜트레인은 최고의 하드밥 테너 주자였다.

존 콜트레인의 연주 스타일로 가장 유명한 것이 Sheets of Sound이다. 각 음표와 음표사이의 빈틈을 모두 소리로 채워넣겠다는 것....쉽게 말해서...빠바밤~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빠빠빠 바바바 바바바바밤 하는 식의 연주. Russian Lullaby같은 미드템포 이상의 곡만이 아니라 Someday My Prince Will Come같은 느린 곡도 이렇게 연주한다. 특히 마일즈 데이비스가 리드하는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의 후반부에서 콜트레인의 색소폰이 등장하는 대목은 재즈팬이라면 전율할 대목.

하지만 강박적일 정도로 소리의 틈을 없애는 스타일과는 달리 색소폰의 톤은 매우 응집되어 있으며 따듯한 온기가 있다. 따라서 발라드 연주에서도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자니 하트만의 온기 넘치는 저음과 잘 어울리는 "John Coltrane and JohnnyHartmann(여러분들이 자주 듣는 색소폰 소리 들어간 My One & Only Love는 거의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이나 "Ballads"같은 음반은 이지 리스닝으로서 자주 추천된다.

구조적인 완성도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리듬 섹션이 탄탄한 것도 특징이다. 특히 맥코이 타이너와 앨빈 존스가 쏟아내는 탄탄하고 명징한 리듬은 가히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렵다는 오해가 많지만 A Love Supreme, Impression, Ascension같은 작품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재즈팬 들도 콜트레인의 초중기작을 더 즐겨 듣는다.


[1] 언덕길의 아폴론을 보면 당시 콜트레인의 타계가 재즈 팬들에게 얼마나 충격이였는지 알 수 있다. [2] 다만 콜트레인이 1965년부터 은밀하게 LSD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대로라면 점차 몽상적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것도 저 약물의 영향이라는 것이 된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진위 여부는 계속 논쟁 중이다. [3]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선배격인 찰리 파커의 명성에는 조금 못 미치나 캐논볼 또한 수많은 재즈 애호가들이 바로 그 파커 이후 최고의 알토 색소포니스트로 꼽았던 거장이었다. 긴 가방끈에서 나오는 풍부한 교양과 세련된 무대 매너를 자랑했던 캐논볼 애덜리는 이런 건강 문제 때문에 다른 뮤지션들과 달리 마약한번 안 빨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대에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