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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m: The Album | From Illmatic To Stillmatic: The Remixes | Distant Relatives |
B Illmatic부터 Stillmatic까지의 리믹스 곡을 담은 EP.
C 데미언 말리와의 합작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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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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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53535,#101010><colcolor=#FFFFFF> Nas 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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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Nasir Bin Olu Dara Jones 나시어 빈 올루 다라 존스 |
출생 | 1973년 9월 14일 ([age(1973-09-14)]세) |
뉴욕 주 뉴욕시 브루클린 크라운 헤이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부모 |
아버지 올루 다라 존스(1941 - ) 어머니 파니 앤 존스(1941 - 2002) |
형제 | 동생 자바리 프렛 존스[1] |
배우자 | 켈리스(2005 - 2010)[2] |
자녀 |
장녀 데스티니 존스(1994년생) 장남 나이트 존스(2009년생) |
신체 | 173cm, 81kg |
종교 | 무종교[3] |
소속 | Mass Appeal Records[4] |
데뷔 |
1992년
10월 13일 싱글 (데뷔일로부터 [dday(1992-10-13)]일, [age(1992-10-13)]주년)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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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llmatic — "
N.Y. State Of Mind" 中
|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6] 래퍼.
2. 생애
2.1. 데뷔 전
|
나스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기로 유명한 미시시피 주 나체스 출신 뮤지션 올루 다라 존스[7][8]가 32세에 본 첫 자식으로, 올루 다라의 아버지 역시 뮤지션으로 올루 다라의 대부와 함께 Mellowderes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미국 전역에서 연주를 하였다. 나스는 이런 음악가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는다. 4년간의 해군 복무를 마친 올루 다라는 뉴욕 시에 정착하고 나스의 어머니 앤 존스를 만나 나시르 존스와 자바리 존스 두 아들을 보게 된다.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올루 다라는 유럽을 오가며 돈을 벌었고 남은 가족들은 나스가 성장한 슬럼가로 유명한 퀸스브릿지로 이사하게 된다.[9]
나스는 자신이 사는 그 동네가 불우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숙한 아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과 넉넉지 못한 수입에도 존스 부부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올루 다라는 음악을 연주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책장을 만들어 그곳에 다양한 인문 서적을 꽂아 넣었으며, 앤은 좋은 카펫을 깔고 불우한 환경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 훔치는 행위보다는 차라리 사주는 쪽을 선택했다.
나스와 자바리는 뮤지션 집안 혈통답게 어린 시절 해외 공연을 떠난 아버지의 빈 자리를 그가 남겨놓은 악기로 대신하였다. 어린 나이에 트럼펫을 부는 것이 입술을 망가뜨린다고 못 불게 하였고 7세가 되자 다시 불어보라고 했는데 나스는 뜬금없이 랩에 흥미를 느꼈다.
부모의 노력 아래서, 나쁜 길로 빠지는 대신 예술가 집안 혈통답게 어린 시절부터 가사를 만들어왔고 자바리 존스와 나시르의 친구, Ill Will이라 부르는 윌리엄 그레이엄[10][11] 과 함께 음악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마약의 광기가 퀸스를 덮치고 단지 불우하던 환경은 목숨이 위태로운 험악한 환경으로 변모하게 된다.
|
어느 날 Def Flesh Crew의 멤버였던 록샌 샨테[12]는 퀸스의 아파트에서 랩을 하고 있는 나스를 발견하고 그 비범한 꼬마를 퀸스 파크에서 열리는 공연에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재능에도 아직 햇병아리였던 나스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감당할 수 없었고 크게 위축되어 랩다운 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좌절에도 불구하고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MC Shan, South Bronx, Boogie Down Productions 사이에서 일어난 퀸스브릿지 디스전 등을 들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절친이었던 Ill Will의 죽음이 그를 냉소적으로 바꿔놓았고, 나스는 당시 더이상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그가 참여한 Main Source의 곡 Live At The Barbeque에서의 피처링과 MC Serch의 데뷔 앨범 수록곡 Back To The Grill에서의 피처링을 통해 내제된 사회적 분노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며 이제까지 없던 엄청난 핵펀치라인을 선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When I was twelve, I went to hell for snuffin Jesus
열둘에, 난 예수를 죽이러 지옥에 갔어
Nasty Nas is a rebel to America
Nasty Nas[13]는 미국의 반역자
Police murderer, I'm causin hysteria
경찰 살인마, 히스테리를 일으켜
Kidnap the President's wife without a plan
영부인을 계획 없이 납치하고
And hangin niggaz like the Ku Klux Klan
KKK처럼 흑인들/이 자식들의 목을 매지
Main Source - Live At The Barbeque 中
열둘에, 난 예수를 죽이러 지옥에 갔어
Nasty Nas is a rebel to America
Nasty Nas[13]는 미국의 반역자
Police murderer, I'm causin hysteria
경찰 살인마, 히스테리를 일으켜
Kidnap the President's wife without a plan
영부인을 계획 없이 납치하고
And hangin niggaz like the Ku Klux Klan
KKK처럼 흑인들/이 자식들의 목을 매지
Main Source - Live At The Barbeque 中
I'm waving automatic guns at nuns
수녀들 앞에다 권총을 흔들어
Sticking up the preachers in the church, I'm a stone crook
교회에선 목사도 털어, 나는 약에 취한 범죄자
Serial killer, who works by the phone book
연쇄살인마야, 전화번호부로 타깃을 고르는
MC Serch - Back To The Grill 中
수녀들 앞에다 권총을 흔들어
Sticking up the preachers in the church, I'm a stone crook
교회에선 목사도 털어, 나는 약에 취한 범죄자
Serial killer, who works by the phone book
연쇄살인마야, 전화번호부로 타깃을 고르는
MC Serch - Back To The Grill 中
이러한 파격적인 가사로 주목을 받는 나스를 눈여겨본 컬럼비아 레코드의 페이스 뉴먼은 이내 나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2.2. 커리어
|
나스의 대척점인 웨스트코스트의 래퍼였지만 나스가 리스펙을 표했던 투팍과 함께[14] |
난 내 분노를 억누르던가, 아니면 그 분노를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이 훨씬 가치 있었고.
1994년 4월 발매한 정규 1집 앨범 Illmatic은 동부 힙합계의 거장( DJ 프리미어, Q-팁, 라지 프로페서, 피트 록)들의 대거 참여 + 나스 본인의 실력이 합쳐지면서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노토리어스 B.I.G.의 Ready to Die와 함께 동부 힙합의 바이블로 취급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수준의 압도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소스지에서 마이크 5개를 받으며, 판매 성적과는 상관없이 음악적인 면에서만은 힙합 역사상 최고의 음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1집 앨범 Illmatic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난 탓에, 앨범을 내는 족족 1집과 비교당하며,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눈물 나는 소포모어 징크스의 대명사급 인물이기도 하다.[15]
2집 It Was Written은 전작의 음악적 성공을 바탕으로 빌보드 200에 4주동안 1위에 머물렀고 400만장 이상 판매되는 대중적인 성공까지 잡아내며 나스를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이후 3집, 4집 또한 대중적으로 성공하나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16]
이후 제이지와의 디스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발매된 5집은 그동안의 비판을 싹다 날려버리는데 성공했으며 동시에 힙합 역사상 손꼽히는 디스 트랙인 Ether를 탄생시켰다. 6집 또한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의 성공을 거두는데 성공한다. 이쯤에서 제이지와의 디스전도 마무리되고 8집인 Hip Hop Is Dead부터는 제이지의 회사인 데프젬에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같은 뉴욕의 동부 뮤지션인 제이지와는 몇 년 동안 서로 디스하며 지내던 사이. 총격전이나 린치 같은 무력적 충돌 없이 음악적 충돌만 있었기에, 성공한 디스라고도 평가한다.[17] 둘이서 서로 앨범 팔아먹기 위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음모론까지 있을 정도. 결국 2005년 11월. 손을 맞잡으며 화해를 하였다.
또한 2010년 5월 데미안 말리와 콜라보레이션 앨범인 Distant Relatives를 발표. 이 앨범은 현재 레게와 힙합의 조화. 나아가 새로운 장르의 형성이라고까지 호평받고 있다.
2005년 R&B 가수인 켈리스와 결혼하였으나, 2010년 이혼하였고 이 이혼이 2012년 7월 발매한 Life Is Good 앨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앨범 자켓에 무릎 위에 얹은 드레스도 실제 결혼식 때 켈리스가 입었던 웨딩 드레스일 정도. 첫 트랙 No Introduction, 후반 트랙인 Bye Baby에 켈리스와의 이혼과 관련된 나스의 감정이 잘 묻어나 있다. 앨범 평은 Illmatic 이후로 최고의 앨범이라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2013년 7월, 하버드 대학교의 힙합 기록 및 연구소에서 나스의 업적에 대한 경의를 담아 '나시르 존스 힙합 펠로우십'을 만들었다고 한다. 힙합과 관련된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2008년에 내한 공연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바 있으며, 2013년 8월 지산 월드락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비영어권인 국가에서 진행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represent 후렴구를 연호한다던지, N.Y. state of mind의 'I never sleep, cuz sleep is cousin of death' 부분을 같이 따라부르는 등의 관람객들이 자기 노래를 알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스 본인도 N.Y. State Of Mind의 "N.Y. State Of Mind" 부분을 "Seoul State Of Mind"로 개사해서 부르는 등 센스가 돋보이는 호응을 해주었다.
2014년 나스의 데뷔작 Illmatic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인 Time Is Illmatic이 개봉되었다. 외국에서조차 당일치기 개봉 후 온라인으로 구입하여 볼 수 있는 형식을 취했기에 국내 상영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국내에서도 2015년 2월 7일부터 9일까지 일시적으로 개봉했다. 이후에도 몇몇 소규모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한다.
Life is Good 발매 이후로 방한도 하고 공연도 열심히 하나 정작 몇 년 동안 앨범을 내지 않아 팬들을 애타게 만들고 있다. 드디어 새로운 앨범이 6월에 나온다는 소식이다. 총괄 프로듀서는 카녜 웨스트.
2년이 지난 2020년 8월, 앨범이 하나 더 나온다고 한다. 한국 시간으로 19일 새벽에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으며, 21일에 발매된다고 한다. 이름은 King's Disease.
나스의 King's Disease가 그래미 최우수 랩 앨범 상을 받은 이후로 나스는 현재 제2의 전성기가 진행 중이다.
전성기를 증명하듯 2020년부터 그야말로 엄청난 허슬을 하고 있는데, 특히 2023년 Magic 2가 발매된 지 두 달만에 Magic 3의 발매를 확정지으며 3년간 무려 6개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24년 9월 23일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랩비트 페스티벌을 맞아 11년만에 내한했다.
3. 음반
3.1. 정규
정규 음반 | ||
앨범 아트 | 제목 | 발매 |
|
Illmatic[18] | 1994 |
|
It Was Written[19] | 1996 |
|
I Am...[20] | 1999 |
|
Nastradamus | |
|
Stillmatic[21] | 2001 |
|
God's Son | 2002 |
|
Street's Disciple | 2004 |
|
Hip Hop Is Dead | 2006 |
|
Untitled[22] | 2008 |
|
Life Is Good[23] | 2012 |
|
NASIR[24] | 2018 |
|
King's Disease | 2020 |
|
King's Disease II | 2021 |
|
Magic | |
|
King's Disease III | 2022 |
|
Magic 2 | 2023 |
|
Magic 3 |
3.2. 비정규
- From Illmatic To Stillmatic (2002)[25][26]
- The Lost Tapes (2002)[27]
- Illmatic (10th Anniversary Platinum Edition) (2004)[28]
- Greatest Hits (2007)[29]
- Illmatic XX (2014)[30]
- Coachella Nights (2014)[31]
- Illmatic : Live From The Kennedy Center (2018)[32]
- The Lost Tapes 2 (2019)[33]
3.3. 컬래버레이션
- The Firm - The Album (1997)[34]
- Nas & Ill Will Records Presents QB's Finest (2000.12.19)[35]
- Nas & Damian "Jr. Gong" Marley - Distant Relatives (2010)[36]
3.4. 싱글
3.4.1. 빌보드 핫 100 1 ~ 10위
- Hot Boyz (2000)5위[37]
- I'm Gonna Be Alright (Track Masters Remix) (2002)10위[38]
3.4.2. 빌보드 핫 100 11 ~ 40위
- Street Dreams (1996)22위
- Head over Heels (1997)35위[39]
- Did You Ever Think (1999)27위[40]
- Oochie Wally (2001)26위[41]
- Made You Look (2002)32위
- Thugz Mansion (2002)19위[42]
- I Can (2003)12위
- Rodeo (2020)22위[43]
- Sorry Not Sorry (2021)30위[44]
3.4.3.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 It Ain't Hard to Tell (1994)91위
- Fast Life (1995)74위[45]
- If I Ruled the World (Imagine That) (1996)53위
- Nas Is Like (1999)86위
- Hate Me Now (1999)62위
- Nastradamus (1999)92위
- You Owe Me (2000)59위
- Got Ur Self A... (2001)87위
- One Mic (2002)43위
- Bridging the Gap (2004)94위
- Hip Hop Is Dead (2006)41위
- Hero (2008)97위
- My President (2008)53위[46]
- Too Many Rappers (2009)93위[47]
- We Are (2015)88위[48]
- Cops Shot the Kid (2018)96위
- Spicy (2020)96위
- EPMD 2 (2021)79위
- Rare (2021)100위
4. 평가
|
동부 힙합의 왕인 The Notorious B.I.G.에 이어 대표를 거론할 때 JAY-Z, 라킴, 우-탱 클랜, 맙 딥 등과 더불어 언급되는 최고의 래퍼로, 힙합 그 자체 또는 힙합의 정석으로 평가받는 최고의 명반 Illmatic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투팍 샤커, 칸예 웨스트, 켄드릭 라마, JAY-Z, 에미넴 등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래퍼로 반드시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큰 공백기 없이 꾸준히 앨범을 내온 것으로도 유명하며 독보적인 힙합씬 롱런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King's Disease II, Magic, King's Disease III의 음악적 호평으로 2020년대, 50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제 3의 전성기를 맞았다.
나스는 '랩의 정석', '랩의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걸맞을 정도로 정석적인 랩 스타일을 보여주는 래퍼 중 한 명이다. 기본에 충실한 스킬, 정박과 엇박을 매끄럽게 넘나드는 센스, 강력한 펀치라인과 발성, 풍부한 메타포로 듣는 이의 귀와 뇌를 자극한다. 최신 힙합에 익숙한 리스너들이 '나스는 어떤 래퍼임? 어떤 스타일의 랩을 하고 어떻게, 얼마나 잘함?'이라는 질문을 올리면 주로 '나스는 그냥 랩을 잘함.' 이라는 요지의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그저 랩을 잘한다는 평이 단순한 밈이 아니라 어찌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래퍼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Notorious B.I.G., 켄드릭 라마, JAY-Z, 에미넴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랩 스킬[49]을 보유한 래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나스는 특히 올드스쿨을 선호하는 래퍼와 리스너들에게 굉장한 리스펙트를 받는다. 에미넴처럼 넓은 음역대를 오가며 날카롭고 톡톡 튀는 플로우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고, 트래비스 스캇처럼 오토튠을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칸예 웨스트처럼 다양한 장르를 힙합에 녹여내여 새로운 음악을 내놓는 타입의 래퍼도 아니지만, 사기적인 랩과 뛰어난 작사 능력이라는 어찌보면 래퍼에게 가장 기본적인 스킬을 어필하는 것만으로 유행이 가장 빠르게 변하는 힙합 씬에서 살아남은 래퍼이기 때문이다.[50] 오죽하면 이센스가 은하계에서 랩을 제일 잘한다는 주접섞인 극찬을 했을까. 그런 랩 실력과는 반대로 비트초이스는 아쉽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6집 앨범 수록곡이자 나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I Can에서도 이러한 그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51]
뉴욕을 비롯한 이스트 코스트 힙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52] 그의 데뷔 앨범이자 힙합 역사상 최고의 앨범인 Illmatic에서 길거리의 배경과 삶을 녹여낸 가사를 느낄 수 있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뉴욕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거칠고 삭막한 거리를 풍부한 메타포로 정확하고 세심하게 표현하여 그는 힙합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래퍼이자 전설로 등극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 내에서 1500만장 이상, 전세계에서 30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이전 예명은 내스티 나스(Nasty Nas)였으나 후에 Nasty를 떼내어 랩 네임이 깔끔하게 '나스'가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한 때는 "King Of New York", "God's Son"이란 호칭으로도 불렸으며 별칭으로 이전 예명이었던 "Nasty Nas" 또는 "Nas Escobar"라고도 불린다. 또 다른 그를 칭하는 호칭으로는 "Rapper's rapper"가 있다. 말 그대로 "래퍼들의 래퍼"라는 말.
5. 명가사
When I was twelve, I went to hell for snuffin Jesus
열둘에, 난 예수를 죽이러 지옥에 갔어
Nasty Nas is a rebel to America
Nasty Nas는 미국의 반역자
Police murderer, I'm causin hysteria
경찰 살인자,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Kidnap the President's wife without a plan
계획없이 영부인을 납치하고
And hangin niggaz like the Ku Klux Klan
쿠 클럭스 클랜처럼 이놈들(흑인들)을 매달지
Main Source - Live at the BBQ 中
열둘에, 난 예수를 죽이러 지옥에 갔어
Nasty Nas is a rebel to America
Nasty Nas는 미국의 반역자
Police murderer, I'm causin hysteria
경찰 살인자,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Kidnap the President's wife without a plan
계획없이 영부인을 납치하고
And hangin niggaz like the Ku Klux Klan
쿠 클럭스 클랜처럼 이놈들(흑인들)을 매달지
Main Source - Live at the BBQ 中
I Never Sleep, Cause Sleep is The Cousin of Death
난 절대 잠들지 않아, 잠은 죽음의 사촌이니까
N.Y. State of Mind
난 절대 잠들지 않아, 잠은 죽음의 사촌이니까
N.Y. State of Mind
Nasty Nas has to rise cause I'm wise
Nasty Nas는 현명하기에 위로 올라가야 해
This is exercise 'til the microphone dies
이것은 마이크로폰이 죽을 때까지의 활동[53]
Halftime
Nasty Nas는 현명하기에 위로 올라가야 해
This is exercise 'til the microphone dies
이것은 마이크로폰이 죽을 때까지의 활동[53]
Halftime
There's one love, one life, So there can only be one king
사랑도 하나, 삶도 하나이므로 오직 한 명의 왕만 존재할 수 있지
The Message
사랑도 하나, 삶도 하나이므로 오직 한 명의 왕만 존재할 수 있지
The Message
I'm out for dead presidents to represent me
난 날 나타내기 위해 죽은 대통령(지폐)들에 매달려
I trip, we box up crazy bitches aiming guns in all my baby pictures
내 환각에선, 우린 내 어릴 적 사진에 총을 겨누는 미친 년들을 가둬 놓고
Beef with housing police, release scriptures that's maybe Hitler's
저소득층 단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히틀러의 것일지도 모르는 인용구를 쓰지
The World is yours
난 날 나타내기 위해 죽은 대통령(지폐)들에 매달려
I trip, we box up crazy bitches aiming guns in all my baby pictures
내 환각에선, 우린 내 어릴 적 사진에 총을 겨누는 미친 년들을 가둬 놓고
Beef with housing police, release scriptures that's maybe Hitler's
저소득층 단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히틀러의 것일지도 모르는 인용구를 쓰지
The World is yours
Heaven and hell rap legend, presence is felt
존재가 느껴지는, 천국과 지옥의 랩 전설
And of course N - A - S are the letters that spell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세 글자는 당연히 - NAS
Nas is Like
존재가 느껴지는, 천국과 지옥의 랩 전설
And of course N - A - S are the letters that spell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세 글자는 당연히 - NAS
Nas is Like
6. 여담
- 에미넴보다 한 살 어리다. 에미넴은 1972년 10월 17일, 나스는 1973년 9월 14일생. 나스는 20세에 벌써 Illmatic으로 충격적 데뷔를 하였고 에미넴은 무려 26세가 되어서 데뷔를 했기 때문에 나스의 전성기와 에미넴의 전성기가 다르다. 물론 이 둘 모두 지금까지 활동하며 최고의 인기를 얻는 90년대~2000년대 래퍼이다.
- 2013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서브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로 내한하였다. 많은 해외 뮤지션들이 첫 내한 공연을 할 때 반응처럼 큰 기대 없이 처음 온 곳에서 의외의 열광적 반응에 놀랐는지 상당히 만족한 모양이다.[54] 공연 후기는 힙합LE 게시물 참조: 후기 1 후기 2
* 상당히 동안이다. 50대 중년임에도 유해진 느낌을 주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이 리즈 시절이랑 차이가 나질 않는다.
- 하버드 대학교에서 ' W. E. B. Du Bois Medal'[55]을 수여받았다. 문화, 인권, 아프리칸 및 아프리칸 아메리칸 공동체에 대한 예술적 기여'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 비트 초이스에 있어서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전설적인 데뷔 앨범 Illmatic을 제외하고는 비트를 고르는 데 있어 엄청난 네임밸류에 비해 영 맞지 않는다는 평이 있다. 물론 랩 실력과 작사 능력이 워낙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보니 커리어에 있어서 큰 지장을 주는 부분은 아니지만 비트 초이스도 좋았으면 완벽했을 것이라고 느끼는 팬들이 꽤나 있는 편. 사실 4집을 제외하면 비트 초이스가 실망스러웠던 적은 없으나, 라이벌 제이지의 비트 초이스 능력이 워낙 탁월했고 카녜 웨스트를 발굴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제이지와 비교되면서 이러한 이미지가 더 심해진 면이 있는 듯 하다.
- 2016년 여름, DJ Khaled " Major Key" 라는 앨범의 "Nas Album Done" (나스 앨범 완성) 이란 노래에 피처링을 하면서, "My album done niggas, Wait and see" (내 앨범 완성됐어, 자식들아. 닥치고 기다려) 라는 멋있는 구절을 뱉었는데, 아직까지 앨범은 안 나오고있다. 현재 본인의 레이블인 Def Jam과의 계약이 끝날 때, 앨범을 낸다는 소문이다. 그리고 2년 뒤 NASIR가 발매되었다.
- 칸예 웨스트가 트위터로 2018년 6월 15일날 나스의 앨범을 예고했다.
- 한때 인터뷰로 MF DOOM과의 작업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성사되었다면 힙합계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흐지부지되었고, MF DOOM이 세상을 떠나면서 성사될 수 없게 되었다.
- 한창 투팍이 동부를 싸잡아서 디스했을 시절에 나스도 투팍에게 디스를 당했었다. 다만, 디스를 당한 이후에도 나스는 투팍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고, 투팍이 죽기 전에는 둘이 실제로 대면한 적이 있어서 이에 대해 얘기를 통해 풀었다고 나스가 직접 밝힌 적이 있다.[57] 투팍 사망했을 당시, 나스는 라이브 공연중이었는데, 투팍의 부고 소식을 알리기 위해 잠시 라이브를 멈췄었다. 무슨 중대 발표일지 기대하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다가 조용해지는 것에서 당시 부고 소식의 충격성을 알 수 있다. 나스 본인도 갑자기 뉴스를 접한지라 계속 고개를 숙이며 방향성 없이 무대를 좌우로 왔다 갔다하는 것은 덤. *
- 2013년 내한 공연이 상당히 즐거웠는지 Illmatic 30주년 기념으로 2024년 9월 21일에 내한한다는 공지를 인스타에 개시했다. #
6.1. Nas의 팬인 국내 인물
- E SENS - 힙합엘이와의 인터뷰에서 힙합씬의 레전드이자 킹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감스트 합방에서는 본인의 '랩 아부지'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 양홍원
- 딥플로우 -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 특히 그의 최고 걸작 Illmatic을 좋아하며 Illmatic을 안 들어본 래퍼를 존중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할 정도.
- 라임어택
- 타블로 - 네이버 프로필에서 좋아하는 가수로 나스를 적었었다. 이후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만들어준 음악(the music that made me)으로 나스의 Illmatic과 누자베스의 Modal Soul의 LP를 올리기도 했고, 나스의 Illmatic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Time Is Illmatic의 국내 번역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 데드피 - 롤 모델로 Nas, The Notorious B.I.G., Kool G Rap을 꼽았다.
- 코드 쿤스트 - Nas의 곡들 중 Doo Rags'를 듣고 힙합에 빠지게 되었다.
[1]
Jungle이라는 예명을 사용 중이며, 힙합 그룹 Bravehearts의 멤버이다.
[2]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남편 못지 않게 꽤 알아주는
R&B 가수이다. 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기복없이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녀의 이혼은 나스의 앨범
Life Is Good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3]
한 때 이름 때문에
무슬림 집안 출신이라는 루머가 꽤 있었으나, 미국의 한 뉴스기사에 따르면, 집안은
개신교 집안이지만 본인은 종교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4]
Def Jam과는 계약이 끝난 뒤,
2014년에 직접 창립한 레이블이다. Fashawn, De La Soul, Mannie Fresh,
DJ Shadow, Black Milk, N.O.R.E., Statik Selektah 등이 소속되어 있다.
[5]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당시
뉴욕의 밝은 환상과 달리 뉴욕
슬럼가에 살던 나스가
인종차별,
총기와 함께한 자신의 뉴욕을 '어둠의 도시'로 묘사한 곡이다. 곡 제목도 '뉴욕에 대한 나의 정신상태' 라는 의미.
[6]
하술하듯
퀸스로 이주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래서 자타공인 퀸스 출신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퀸스에 대한 샤라웃이 많다.
[7]
Olu Dara. 1941년생으로 이름은 '신은 좋은 분이다'는 뜻이다.
기타와
코넷을 연주했으며 보컬리스트이기도 했다.
[8]
훗날 나스가 성공하고
나스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기도 한걸 보면 지금도 아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보인다.
[9]
퀸스브릿지는 사실상 백인 중산층을 위해 흑인을 수용, 격리하기 위한 주택정책이었다.
[10]
Illmatic에 수도 없이 언급되는 그 Ill Will.
[11]
그 유명한 디스곡 ether를 들어보면 "Ill Will, Rest in peace"("일 윌, 명복을 빈다") 라는 구절도 나온다.
[12]
현재는 많이 잊혀진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여성 래퍼계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1세대 여성 래퍼다. 그녀가 Juice Crew 소속일때 Boogie Down Production과 Juice Crew의 중심인물을 기준으로 디스전을 벌인적이 있다. 즉, 랩 역사에 빠질 수 없는 리빙 레전드 KRS-One과 디스전을 벌인 몇 안되는 래퍼 중 1명.
[13]
그 당시 Nas의 랩네임
[14]
오른쪽의 인물은 또다른 동부 힙합의 거목 중 한 명인
Redman.
[15]
하지만 5집
Stillmatic은
Illmatic 이후로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인식이 박힌 나스를 다시 한번 원점으로, 그리고 정점에 올려놓는 앨범이 되었다. 다만
Nastradamus의 영향인지, 메타크리틱 점수는 69점에 그친다. 그러나 대중적 성적은 몰라도 음악적으로 50이 다 되어가는 2020년대부터 KD 3부작과 Magic 3부작을 발매했는데,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빠른 발매 텀을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앨범이 수작 이상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이제 나스가 비트 못 고르는 래퍼라는 말도 완전히 옛말이 되었다.
[16]
최근 들어 평이 나아지고 있으며
Illmatic만큼은 아니지만 명반으로 칭송받는 편이다.
[17]
다만 제이지가 나스의 동료인
맙 딥의 프로디지의 발레리나 시절 사진을 공개하고 Supa Ugly라는 프리스타일 곡으로 나스의 전 부인 카르멘 브라이언이 앨런 아이버슨 그리고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걸 까발리고 사진까지 보여주는 등 찌질한 면도 있었다. 결국 제이지는 이 사실을 안 어머니한테 죽도록 혼나고(제이지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는 넌 이제 필요 없다고 아예 노래를 만들어서 깠지만, 어머니와는 굉장히 사이가 좋다. 제이지를 포함한 네명의 아이를 낳아 길러낸 그녀를 늘 존경했고 자랑스러워했고, 그녀는 늘 멋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을 정도. 제이지에게 이 정도의 존경을 받는 어머니가 혼냈으니 제이지도 어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제이지도 디스전을 벌이는 도중임에도 결국 나스에게 사과해야 했다.
[18]
나스를 대표하는, 본토의 정통 이스트 코스트 힙합을 대표하는 명작중의 명작.
[19]
이쯤부터 이름을 Nasty Nas에서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에서 따온 Nas Escobar로 바꾼다.
[20]
나스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중 하나인 'Nas is like' 가 수록돼 있다.
[21]
JAY-Z의 디스곡
Takeover의 맞디스곡인
Ether가 수록되어 있으며 나스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앨범이다.
[22]
기존 제목은 Nigger였지만 제목에 대한 미국 내의 강한 부정적 여론에 Nas로 수정하였다가 결국엔 제목이 없는 채로(Untitled) 발매되었는데, 전작 Hip Hop Is Dead도 비슷하게 원래 Nigga나 Hip Hop Is Dead... The N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하려고 시도했었다. 앨범 커버의 채찍질 흉터가 N을 나타내는 것은 인종차별, 그리고 어떻게 노예가 고문당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나스는 음반명이 무제로 확정된 뒤에도 "사람들은 이 앨범의 진짜 이름이 뭔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겁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 앨범은 아이튠즈(애플 뮤직)와 스포티파이같은 몇몇 스트리밍 서비스들 한정으로 Nas라고 되어 있다.
[23]
랩 스킬, 프로듀싱 면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명반으로 칭송받는 앨범. 커버는 Nas와 이혼한 Kelis의 웨딩드레스이다.
[24]
Kanye West가 전곡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25]
Nas가 5집을 낸 후, 1집부터 5집까지의 히트송을 모아, 리믹스한 EP로, 몇몇 곡은 이후에 나올 Illmatic 10주년, 20주년 앨범에 두번째 CD에 들어가있다.
[26]
Edited 버전이라, 중간중간 비속어들이 모자이크 된다.
[27]
3, 4집 발매시기에 녹음된 작품들을 수록했다. 해당 곡들은 상업적 어필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레이블에서 빼길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수록된 곡들은 3, 4집의 여타 트랙보다 훨씬 상태가 좋고 역대급 명곡인 Doo Rags나 Purple같은 곡들도 포함되어 있다.
[28]
Nas의 1집이자, 힙합 최고의 앨범 Illmatic의 발매 10주년을 기념하는 2CD앨범이다. 1CD는 Illmatic의 구성 그대로 돼있고, 2CD에는 새로운 트랙과, Illmatic 트랙들의 리믹스 버전들이 있다.
[29]
Nas의 히트송 모음집.
[30]
Illmatic 20주년을 맞아 발매된 기념비와도 같은 상징적인 2CD 앨범. 10주년 앨범과 마찬가지로, 1CD는 Ilmatic의 구성, 2CD는 새로운 트랙과, Illmatic 트랙들의 리믹스 버전들이 있다.
[31]
Nas가 Coachella Nights라는 콘서트에서 공연할 당시의 라이브를 녹음한 앨범으로써, 기본적으로 Illmatic 트랙들 라이브가 들어가있고, Nas의 히트 송, Made You Look, Hate Me Now, One Mic, If I Ruled The World와, 중간중간 JAY-Z와 Damian "Jr. Gong" Marley 노래의 라이브까지 있다.
[32]
Illmatic 발매 25주년을 기념하여 케네디 센터에서 오케스트라 버젼으로 편곡하여 부른 라이브 앨범.
[33]
미공개곡이 너무 많아 3, 4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직접 언급했다.
[34]
Nas,
AZ, Foxy Brown, Nature가 랩하고,
Dr. Dre가 메인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 해당 팀은 나스 2집의 Affirmative Action라는 곡에서 처음 선보인 그룹이며, 원래는 Nature 대신 Cormega라는 래퍼가 멤버였으나 빠졌고, Nature가 빈자리를 메꾸었다.
[35]
Nas가 중심이 되어, QB(Nas가 자란 Queens Bridge)의 래퍼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
[36]
데미안 말리와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앨범.
[37]
Missy Elliott의 싱글을 EVE,
Q-Tip과 함께 피쳐링
[38]
Jennifer Lopez의 싱글을 피쳐링
[39]
Allure의 곡을 피쳐링
[40]
R. Kelly의 곡을 피쳐링
[41]
with Bravehearts
[42]
2Pac의 곡을 J. Phoenix와 함께 피쳐링
[43]
Lil Nas X의 곡을 피쳐링
[44]
DJ Khaled의 곡을
Jay-Z와 James Fauntleroy와 함께 피쳐링
[45]
Kool G Rap의 곡을 피쳐링
[46]
Young Jeezy의 곡을 피쳐링
[47]
Beastie Boys의 곡을 피쳐링
[48]
Justin Bieber의 곡을 피쳐링
[49]
커리어의 성공 자체로 보자면 나스 이상의 성공을 한 래퍼들이 어느 정도 있으나 단순히 '랩 실력'으로만 보자면 현존하는 모든 래퍼들을 통틀어서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비기와 다른 래퍼들을 비교할 때 비기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래퍼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비기보다 랩 자체를 더 잘한 래퍼는 전무하다는 말과 같은 내용.
[50]
다른 래퍼들이 기본기가 약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 나스가 기괴할만큼 '정석적인 방식'에 통달해 있다는 평이다.
[51]
I Can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겨서 계몽적이고 희망차게 만들었다고 한다.
[52]
덕분에 같은 뉴욕 래퍼
제이지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제이지가 비기 사후 뉴욕의 왕이라는 칭호를 이어받았지만 나스를 최고로 보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대중적으로는 제이지가 빌보드 차트 성적 등에서 한참 앞서지만 가사의 깊이, Illmatic의 상징성 등 때문에 힙합 올드팬들은 나스를 더 선호하는 편.
[53]
<Nasty Nas> <has to rise> <cause I'm wise> <This is exercise> <'til the microphone dies>로 Halftime의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맥스로 라임으로 가득 채워 Nas의 작사실력을 알 수 있으며 타이트하게 랩을 해서 Nas의 랩 실력은 뛰어남을 알 수 있음을 물론 명가사이다.
[54]
영상의 2분 11초 부분에 When I’m in a New york state of mind에서 New york 부분을 Seoul로 개사해서 부르는 팬서비스를 보여주는 모습이 나온다.
[55]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초의 박사학위를 얻은 흑인 박사이자 190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의 구심점인
NAACP를 설립한 사람이다.
[56]
그때 나스는
로스앤젤레스에 살았었고, 니키 미나즈는
마이애미에 살았었다.
[57]
나스는 투팍을 보고 "팍, 난 널 사랑해"라고 말했고 투팍이 "곧 있으면 앨범이 나오는데 너가 정말로 날 사랑한다면 (널 디스한 것에 대해서) 대응하지 마."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눕 독 역시 그 자리에 있어서 이에 대한 썰을 종종 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