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5:36:36

니코(가수)

<colbgcolor=#000><colcolor=#fff> 니코
Nico
파일:니코(가수).jpg
본명 Christa Päffgen
크리스타 페프겐
출생 1938년 10월 16일

[[나치 독일|]][[틀:국기|]][[틀:국기|]] 쾰른
사망 1988년 7월 18일 (향년 49세)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이비사
국적
[[나치 독일|]][[틀:국기|]][[틀:국기|]](1938~1945)
(1945~1949)

[[독일|]][[틀:국기|]][[틀:국기|]](1949~1988)
직업 싱어송라이터, 패션 모델, 영화 배우
데뷔 1954년(모델)
1967년 싱글 I'm Not Saying/The Last Mile(음악)

1. 개요2. 생애3. 디스코그래피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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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출신의 모델이자 가수. 본명은 크리스타 페프겐(Christa Päffgen).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에 보컬로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938년 독일 쾰른에서 출생했다. 니코의 아버지는 독일 국방군에서 복무하다 1942년 경 전사했다. 니코의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피해 슈프레발트로 이주했다 전쟁 이후 베를린에 정착했다. 베를린 시내의 카데베(KaDeWe) 백화점에서 란제리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던 니코는 큰 키와 분위기 있는 외모로 1954년부터 사진작가 헤르베르트 토비아스(Herbert Tobias)에게 발굴되어 모델을 시작했다. 모델 시작 이후 파리로 이주한 니코는 보그, 엘르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였다. 토비아스는 이비자 섬에서 화보를 촬영하던 크리스타 파프겐에게 자신의 지인인 사진작가 니코 파파타키스(Nico Papatikis) [1] 이름을 따 니코라는 예명을 제안하였고, 크리스타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니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7살 되던 해에 니코는 코코 샤넬의 콜라보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뉴욕으로 떠나 빌 에반스의 앨범 커버 모델을 맡았다.

모델 일에 싫증을 느끼던 니코는 1960년대 뉴욕에서 롤링 스톤스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음악 분야에도 발을 들였다. 롤링 스톤스 멤버였던 브라이언 존스는 니코와의 만남에 큰 끌림을 느꼈지만 니코에게 브라이언 존스는 음악계 진출을 위해 만난 좋은 친구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1967년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인 앤드류 올드햄이 작사한 I'm Not Saying/The Last Mile이 니코의 데뷔 싱글이었다. 작곡과 편곡은 당시 영국 음악계에서 마당발로 불리던 지미 페이지였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활동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앤디 워홀와 교류하면서 만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의 협업은 니코의 음악 커리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 적극적으로 활동하려 한 니코와 달리 멤버들은 얼굴 마담으로 들어온 그녀를 멤버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음치라고 깠지만, 협업했던 시절에 맺은 인연으로 솔로 활동에 루 리드 존 케일이 음악을 제작해주는 등 교류는 활발했다. Chelsea Girl, Desertshore 등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다. 하지만 마약 문제와 아들간의 관계 문제로 여러모로 힘든 삶을 보냈다. 아들에게 마약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고.[2]

그래도 음악 활동엔 여전히 의지가 있었고 말년엔 마약을 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988년 스페인의 이비사에서 아들과 휴가를 보내던 도중 자전거를 타다가[3] 넘어져 뇌진탕에 걸려 정신을 잃었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지나가던 택시 기사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시간이 지체된데다 병원에서도 초진을 열사병으로 잘못 내리는 바람에 치료가 더 늦어져 결국은 당일 오후 8시에 사망했다.

3. 디스코그래피

  • Chelsea Girl (1967)
  • The Marble Index (1968)
  • Desertshore (1970)
  • The End... (1974)
  • Drama of Exile (1981)
  • Camera Obscura (1985)

4. 기타

  • 알랭 들롱과 교제하여 1962년 아들 크리스티앙 아론 볼로뉴(약칭 아리)를 두기도 했으나 들롱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친자 소송까지 벌어졌는데 알랭 승소로 끝났음에도 '저 얼굴로 친아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다'이라는 평이 대다수일 정도로 닮았다. 들롱의 완벽한 외면으로 인해 니코는 어렵게 아리를 낳았지만, 정작 아리가 크고 나서는 들롱의 부모가 대신 돌봐 줬다고 한다. 그들은 아들이랑 다르게 친손자라 인정하고 아예 데려다 키웠고, 니코는 가끔 방문이나 했다고 한다. 알랭의 친모, 계부, 동생 모두 친자로 인정했지만 들롱은 지금껏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말만 하면서 니코의 이름만 나와도 듣지도 않을 정도라 한다. 그가 거쳐간 수많은 여자들 중 이렇게 혐오 수준을 보이는 사람은 니코 밖에 없다고.
한편 그녀의 아들 아리는 사진가 작가로 활동하며 결혼을 해 두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2023년 5월 20일, 헤로인 중독으로 인해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사망했다.[4] 향년 60세.[5]
  • 이외 영화 감독 필립 가렐하고도 사귀었는데, 가렐의 초기작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 발표한 Desertshore는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 삽입곡이 들어있으며, 앨범 커버 역시 해당 영화 스틸샷을 쓰고 있다. 가렐은 니코 사망 후 '더 이상 기타소리가 들리지 않아'로 니코에게 헌정했다.
  • 키가 무려 178cm인데, 현재로 쳐도 여자치고 매우 큰 키[6]이며 키가 평균 160 초반이였던 그 당시치고는 거인급이었다.
  • 네오나치 의혹이 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인증된 것만 꼽으면 유대인이었던 대니 필즈과 대화하면서 유대인 비하 발언을 했다던가, 흑인 여성에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싸웠다는 얘기 등. 하지만 니코의 사망 이후 주변인들은 그런 의혹을 일축했다.

[1] 존 카사베츠 그림자들 제작을 맡기도 했으며, 훗날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2] 니코, 1988은 이런 엉망이 되어 버린 말년의 니코를 다루고 있다. 덴마크 배우 트란 디어홈이 니코 역을 맡았다. [3] 아들 아리가 회고하길, 대마초를 얻으러 시내에 가야한다고 나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4] 들롱은 1년 후에 사망했다 [5] 이복 형제들끼리는 사이가 좋았던지, 알랭 들롱의 장남인 안토니 들롱이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6] 현재 평균 외국 여성 모델 키가 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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