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4:00:23

지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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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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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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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마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 스코티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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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어 피터 그린 리처드 톰슨 스티브 크루퍼 캐리 브라운스타인
66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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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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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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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회사 깁슨에서 2010년 발표한 "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의 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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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1]
지미 페이지
Jimmy Page
파일:Jimmy Page Profile.jpg
<colcolor=#C0C0C0,#C0C0C0><colbgcolor=#B82647> 본명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2세
James Patrick Page II
출생 1944년 1월 9일 ([age(1944-01-09)]세)
잉글랜드 런던 하운슬로 헤스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타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소속 파일:야드버즈 로고.png (1965 – 1968)
(1968 – 1980)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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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0C0C0,#C0C0C0><colbgcolor=#000> 부모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1세
패트라샤 엘리자베스 페이지
배우자 패트리샤 에커 (1986 – 1995, 이혼)
지메나 고메즈 파랏차 (1995 – 2008, 이혼)
동거인 샬롯 마틴 (1971 – 1983)
스칼렛 새벗 (2014 – )
자녀 슬하 2남 3녀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3세, 어션 조선 페이지, 스칼렛 페이지, 자나 페이지, 조피아 자드 페이지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 (명예 박사)
종교 불명[2]
신체 180cm, 75kg[3]
활동 기간
1957년 – 1962년, 1963년 – 현재
사용 악기 기타, 베이스 기타, 테레민
장르 , 블루스, 블루스 록, 헤비 메탈, 하드 록, 포크 록
재산 약 1억 8천만 달러[4]
레이블 애틀랜틱, 게펜, 스완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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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음악적 성향과 유산
3.1. 기타 연주
3.1.1. 라이브 공연
3.1.1.1. 라이브 공연에서의 잔실수
3.1.2. 사용 장비
3.1.2.1. 기타3.1.2.2. 신디사이저3.1.2.3. 이펙터3.1.2.4. 엠프
3.2. 프로듀싱
4. 사생활
4.1. 마약 중독4.2. 여성 편력
5. 여담
5.1. 외모

[clearfix]

1. 개요

파일:Jimmy Page 전성기.jpg
영국 기타리스트이자 음악가.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창립자이자 리더, 기타리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쓰는 기타는 레스폴로, 이 기타의 상징격 인물이자 영국 하드 록, 헤비 메탈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또한 록 기타리스트 중에서는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 에릭 클랩튼, 에디 밴 헤일런 등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를 꼽는다면 아무리 저평가받아도 웬만해선 세 손가락 안에는 드는 기타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 중 하나이다.[5] 전성기 시절 영국 음악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영국 음악계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도 자주 꼽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지미 페이지/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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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적 성향과 유산

3.1. 기타 연주

▲ 1973년 MSG에서의 Boogie Chillun 연주
파일:페이지 더블넥.gif
Gibson EDS-1275를 연주하는 모습
파일:지미 페이지 레스폴.jpg
▲ 본인의 상징인 Gibson Les Paul을 연주하는 모습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1c1d1f>Jimmy Page is a bloody good guitarist.
존 레논 #||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들 중 하나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며[6], 따라서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의 기타를 상징하는 인물들 중 하나로도 반드시 꼽힐 정도이며, 따라서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는 사람은 레드 제플린을 몰라도 지미 페이지는 알고 있고 지미 페이지를 몰라도 Stairway to Heaven 솔로를 모르면 간첩 취급 당한다.

또한 예능 등의 방송에서도 록 기타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보통 지미 헨드릭스나 지미 페이지의 사진이 등장하는 등 지미 페이지를 모르더라도 그가 이 그려진 의상을 입고 레스폴을 연주하는 사진을 보여준다면 “아 이 사람~”이라며 아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서구권에 돌아다니는 농담이 " Smoke on the Water 영상에 싫어요 누른 사람들은 기타 배우는 학생의 학부모고, Stairway to Heaven 영상에 싫어요를 누른 사람은 기타 가게 주인이다"다(...).[7]

깁슨 레스폴 마샬 앰프의 조합이 얼마나 하드 록에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성배인지 보여준 엄청난 기타리스트로, 그의 모든 프레이즈와 사용 장비들이 아직도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연구되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의 사후 그의 플렉시 사운드를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원초적이며 청중을 압도하는 폭력적 사운드를 들려줄 뿐 아니라, 놀랍도록 우아하고 절제된 포크 연주와 사이키델릭의 진수를 보여주는 스페이스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레드 제플린을 진두지휘한 리더로서 굉장한 음악적 유산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흔히 80~90년대에 딥 퍼플 레드 제플린의 라이벌 쯤으로 잘못 생각하던 한국의 기타 취미인들은 지미 페이지의 위치를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는데, 리치 블랙모어에 비해 테크닉이나 라이브 실력이 한참 떨어지며 별볼일 없는 기타 실력을 프로듀싱 능력으로 커버한 경우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지미 페이지는 이런 우물안 개구리 중장년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평가와 음악적 위치를 갖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 기타리스트이다. 가장 대단한 점은 당대에도 높았던 평가가 21세기를 한참 지나서도 계속 유지되며 오히려 점점 더 높아지며 재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롤링 스톤이 2023년에 선정한 가장 최근의 위대한 기타리스트 250명 중에서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등을 제치고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에 이어 당당히 3위에 등록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보통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하드 록 기타리스트들의 최고 명장으로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지미 헨드릭스, 피트 타운젠드, 리치 블랙모어, 에디 밴 헤일런 등이 꼽히는데, 지미 페이지는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를 뺀 하드 록 기타리스트 순위에서는 항상 평가가 제일 높다. 하드 록에만 국한하지 않고 록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위의 인물들과 더불어서 에릭 클랩튼, 조지 해리슨, 제프 벡, 데이비드 길모어, 브라이언 메이 등이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꼽히는데, 여기에서도 지미 페이지는 아무리 저평가받아도 항상 다섯 손가락 내지 세 손가락 안에 빠지지 않고 무조건 꼽힌다.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고 에릭 클랩튼 등과 함께 2위로 꼽히는 일도 매우 잦다.[8]

그의 연주는 동시대의 피터 그린, 데이비드 길모어, 에릭 클랩튼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릴때 그는 비비 킹 프레디 킹의 광팬이었고, 그에 따라 야드버즈 시절에도 블루스 록 계통의 음악을 한 편이었다. 그러나 전술한 사람 3명중 2명( 피터 그린,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또다른 한명( 데이비드 길모어)이 사이키델릭 록의 영향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방향으로 선회한것과는 달리, 지미 페이지는 블루스 록 특유의 기타 주법과 곡 구성 방식을 한층 더 발전시켜 블루스 록이 하드 록 성향으로 발전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이런 점에서 리치 블랙모어와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하드 록 스타일에서 제일 돋보이는건 바로 엄청나게 긴 기타솔로와 리프. 기타 솔로라는 개념 자체는 킹크스 You Really Got Me라는 곡에서 미리 시도한적도 있었고, 비틀즈나 롤링 스톤스 등 동료 록밴드들도 몇번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곡의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하드 록의 조상님격 되는 더 후의 노래들도 실제로 기타 솔로가 들어간건 많지 않다.[9]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기타 솔로라는 개념을 만들어놓은 것이 지미 헨드릭스고 그걸 대중화시킨게 지미 페이지다.

리프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데, 그가 작곡한 리프는 한번 듣고 단번에 귀에 박힐 정도로 짧고, 강렬한 훅 역할을 한다. Heartbreaker는 솔로도 솔로지만 처음부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엇박자 리프가 나온다. 리프의 패턴도 매우 다양해서 코드 스타일 리프, 싱글 라인 리프 등등 가리지 않고 항상 기억에 남는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Heartbreaker 솔로[10] In My Time of Dying 솔로[11]

지미 페이지가 거의 모든 곡에서 솔로를 앞에 내세운 레드 제플린의 곡들이 큰 히트를 치면서, 하드 록과 헤비 메탈에 있어서 기타 솔로는 하나의 필수 요소처럼 되었다. 앞의 전주가 나오고, 가사, 긴 기타 솔로, 가사 이런 식의 곡 구성이 널리 보편화 된 데에는 지미 페이지의 공이 큰 것이다. 물론 기타 솔로의 선구자인 지미 헨드릭스의 유산을 대중화시킨건 딥 퍼플이나 블랙 사바스의 공로도 크지만, 고전 메탈 3대 밴드중 가장 대중적이고 성공했던 레드 제플린의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이러한 기타 솔로를 곁들인 곡 구성을 거의 모든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퍼트린건 지미 페이지의 역할이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향력 뿐만이 아니라 기타 솔로를 하는 능력도 정말 뛰어나다. 기타 월드에서 꼽은 "최고의 기타 솔로곡" 1위를 한 곡이 Stairway to Heaven이다. 바로 아래인 2위가 에디 밴 헤일런의 Eruption, 4위가 데이비드 길모어 Comfortably Numb니까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정도다. 그 무거운 깁슨 레스폴을 가지고 엄청난 속도로 속주를 쳐댄다. 흔히 "최고의 기타 솔로 음악가"를 꼽을때 데이비드 길모어와 더불어 3위권 안에는 꼭 들어간다.
프레데리크 쇼팽 4번 전주곡 커버 All My Love (1979)
하드 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기타 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소프트 록이나 클래식 음악에서도 어울릴법한 기타 연주를 할 줄 안다. 특히 어쿠스틱 기타는 정말 잘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Led Zeppelin III의 언플러그드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어보면 지미 페이지가 일렉 기타 만큼이나 어쿠스틱 사운드에도 숙달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지미 헨드릭스와 더불어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현역 당시에는 제대로 된 연습 체계조차 등장하지 않은 시점이고,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이들의 업적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기본기가 부족한 기타리스트들을 비판하기로 유명한 잉베이 말름스틴도 지미 헨드릭스와 지미 페이지 만큼은 찬양할 지언정 비판하지 않았다.[12]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기타리스트로는 스코티 무어 제임스 버튼 그리고 피터 그린 등이 있다.

페이지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음악가로는 에어로스미스 조 페리, 프린스[13], 브라이언 메이, 주다스 프리스트 글렌 팁튼, 밴 헤일런 에디 밴 헤일런, 조 새트리아니, 메탈리카 커크 해밋, 본 조비 리치 샘보라, 메가데스 데이브 머스테인, 러시 알렉스 라이프슨, 산타나 카를로스 산타나, 알카트래즈 스티브 바이[14], 건즈 앤 로지스 슬래시[15]가 있으며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지미 페이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3.1.1. 라이브 공연

Whole Lotta Love 음원
(재생 시간 5:33)
Whole Lotta Love 라이브
(재생 시간 21:02)

음원과 라이브의 연주가 전혀 다른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물론 전체적인 틀 자체는 음원과 같지만, 곡 중간에 수많은 고전 아티스트들이나 본인들의 곡 메들리를 집어넣거나, 솔로를 아예 재창조를 해서 더 길게 연주하는 등 음원과 똑같이 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나 1970년대 초반 무려 30분으로 늘려서 연주했던 Dazed and Confused나, 곡 중반에 잼으로 수많은 메들리를 끼워 넣으면서 10~20분으로 늘려서 연주한 Whole Lotta Love가 대표적이다.
3.1.1.1. 라이브 공연에서의 잔실수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1c1d1f>Jimmy Page is an excellent producer. Led Zeppelin and Led Zeppelin II are classics. As a player, he's very good in the studio. I never saw him play well live. He's very sloppy. He plays like he's got a broken hand and he's two years old. But if you put out a good album and play like a two-year-old live. What's the purpose?
에디 밴 헤일런, 1981년[16]||

지미 페이지는 기타 연주력 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브에서의 연주는 마약에 취해 그리 완벽하지 않고 잔실수를 꽤 범하며 기타 피크를 자주 떨어뜨리기도 한다.[17] 무대에서 스카치 위스키로 병나발을 불고 연주하거나(…) 담배 꼬나물고 하는 건 예삿일. 당연히 연주 집중도는 떨어졌다. 후에 지미 페이지 스타일을 물려받은 슬래시도 이러한 라이브에서의 잔실수를 같이 물려받았는지 마찬가지로 라이브 공연에서 잔실수가 잦은 편이다.

이는 동시대에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딥 퍼플 리치 블랙모어와는 대조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때 마약을 많이 했었던 지미 페이지와는 다르게 리치 블랙모어는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최고의 라이브 연주를 위해 마약을 안 했고,[18] 스튜디오보다 라이브가 더 날카롭고 실수도 없으며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나는[19] 연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얼터너티브 록시대를 거치며 록 음악의 연주 기법이 칼같은 정확함과 완벽주의적 라이브보다는[20] 보다 원초적이고 블루지한 연주를 선호하게 되면서 록 기타리스트들의 원류이자 다양한 프로그레시브적 시도를 했던 지미 페이지는 리치 블랙모어를 완전히 압도하고 신세대부터 올드 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를 아우르는 명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이런 잔실수들은 현재 영미권에서 일종의 밈이 되어서, 지미 페이지를 커버하는 실력 있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의 영상에 “지미 페이지는 이렇게 깔끔하게 치지 않는다”는 댓글이 자주 달리기도 한다.

3.1.2. 사용 장비

파일:Gibson_Jimmy_Page_Les_Paul_Standard.jpg
<colbgcolor=#B82647><colcolor=#C0C0C0> 깁슨사의 지미 페이지 시그니쳐 레스폴
파일:Gibson_CS_CE_Jimmy_Page_Signature_EDS-1275.png
깁슨사의 지미 페이지 시그니쳐 EDS-1275
파일:JimmyPage_SigTele.png
야드버즈 시절에 쓰던 펜더 텔레캐스터
Gibson 기타를 주로 쓰는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라이브에서도 레스폴 아니면 EDS-1275 더블 넥[21]만 썼다. 특히나 상술했듯 레스폴과 마샬 앰프의 조합이 하드 록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준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이러한 취향은 슬래시가 이어받는다.

그러나 세션맨 시절과 야드버즈 시절에는 오히려 Fender Telecaster[22] 더 많이 사용했으며, 레드 제플린 초창기 앨범들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도 텔레캐스터로 녹음되었다.[23] 1969년 라이브에서도 텔레캐스터를 사용했다. 이 외에도 Kashmir에서는 댄일렉트로 '59 모델을 쓰기도 했다.
파일:페이지 스트랫.jpg

가끔씩은 펜더 Stratocaster을 쓰기도 했다. Ten Years Gone은 위 사진의 57년산 스트랫과 61년산 올림픽 화이트 스트랫으로 녹음 되었다. 주로 썼던 스트랫은 1964년산 레이크 플래시드 블루 스트랫으로, The Crunge 등의 펑크(Funk) 넘버나 여타 곡들을 녹음할 때 썼다. 레드 제플린 후기 라이브에서는 종종 스트랫을 들고 올라가기도 했다.

주로 쓰는 장비로 유명한 것은 로얄 앨버트 홀 라이브에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Hiwatt 앰프, 70년대 지미 페이지 사운드를 상징하는 마샬 플렉시 슈퍼리드, 레코딩에서의 비장의 무기였다는 Supro사의 Thunderbolt 앰프 등이 있다. 이펙터는 초기 텔레캐스터와 함께 애용한 톤 벤더(Tone Bender), VOX사의 Wah 페달, 테이프 딜레이 이펙터인 에코플렉스(EchoPlex), 허공에 마술을 부리듯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테레민을 즐겨 사용했으며, 이 외에도 마에스트로 퍼즈, 에코렉, 후기 앨범의 MXR 페이져 등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코딩에 있어서 좋은 톤을 만들기 위해 워낙 많은 것들을 시도해본지라 본인도 다 기억을 못할 정도며, 반대로 어떤 장비를 사용해도 지미 페이지가 쓰면 지미 페이지의 톤이 나온다. 보통 지미 페이지 톤의 절정으로 보는 시절의 라이브는 마샬 플렉시에 깁슨 레스폴 만으로 거의 모든 톤을 내고 솔로 시에 Wah 페달을 밟아주는 정도.
3.1.2.1. 기타
슬래시와 더불어 깁슨 Les Paul을 사용하는 사람중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 깁슨 1960 레스폴 커스텀[24]
  • 펜더 1959 텔레캐스터[25]
  • 펜더 1958 브라운 텔레캐스터[26]
  • 펜더 1966 텔레캐스터
  • 펜더 1957 선버스트 스트라토캐스터
  • 펜더 1961 올림픽 화이트 스트라토캐스터
  • 펜더 1967 스트라토캐스터
  • 펜더 1964 레이크 플래시드 블루 스트라토캐스터[27]
  • 펜더 1965 XII
  • 펜더 10현 800 페달 스틸 기타
  • 깁슨 1959 레스폴 스탠다드[28]
  • 깁슨 1959 레스폴 스탠다드[29]
  • 깁슨 1970 레스폴 디럭스[30]
  • 깁슨 1973 레스폴 스탠다드
  • 깁슨 RD 아티스트
  • 깁슨 EDS-1275
  • 깁슨 시그니처 기타
  • 깁슨 골든탑 레스폴 클래식 프리미엄 플러스
  • 깁슨 ES 350
  • 댄일렉트로 3021 기타[31]
  • 리켄베이커 12현 기타
  • Vox 팬텀 XII 12현 기타
  • 하모니 소버린 H1260 (어쿠스틱)[32]
  • 깁슨 J-200 (어쿠스틱)
  • 깁슨 에벌리 브라더스 (어쿠스틱)
  • 깁슨 파트 (어쿠스틱)
  • 마틴 D-28 (어쿠스틱)
  • 깁슨 1920 A2 (만돌린)
3.1.2.2. 신디사이저
  • 롤란드 GR-700 기타 신디
3.1.2.3. 이펙터
  • 마에스트로 에코 플렉스 테이프 딜레이[33]
  • 로저 메이어 퍼즈박스[34]
  • Boss SD-1
  • Boss CE-2 코러스
  • 디지텍 WH-1 와미
  • 토마스 오르간 크라이 베이비
  • Vox V847 와우
  • MXR 페이즈 90
3.1.2.4. 엠프
  • Vox AC30 Tube Amps
  • Orange Matamp
  • 마샬 1960 4X12 Cabinet

3.2. 프로듀싱

파일:프로듀서 지미 페이지.jpg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1c1d1f>He stands alone as a conceptualizer of what rock band should sound like. And greatness of Zeppelin comes from him as a writer and a producer.
리치 블랙모어 ||

그의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35] 1964년경에 녹음된 영국 음악의 기타 연주 몇십퍼센트는 지미 페이지가 연주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많은 곡들에서 기타 세션 연주를 해주었고, 이런 풍부한 녹음 참여 경험이 그를 종합적인 음악적 통찰력을 지닌 아티스트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마이크는 어떻게 배치할 것이고, 악기의 톤은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이며, 녹음 장비의 노이즈는 어떻게 줄이고, 볼륨은 어떻게 조절해야 될 것인가 등 음악을 프로듀싱할 때 필요한 모든 전반적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달인급 음악인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리 화려한 속주와 테크닉도 음악에 맞지 않으면 그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식일 뿐이다. 지미 페이지는 각 음악에 딱 들어맞는 기타 멜로디를 보여주었고 그것을 알맞게 배치하였다. 레드 제플린의 멤버 하나 하나가 각 분야에서 역사상 최고를 두고 자웅을 겨루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아우르고 이끌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미 페이지의 이러한 능력 때문이었다. 괜히 지미 페이지의 별명이 위대한 레드 제플린의 위대한 선장인 것이 아니다.

프로듀서로서의 지미 페이지의 역량을 잘 알 수 있는 앨범이 How the West Was Won이다. 이 앨범의 대부분의 트랙은 부틀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지미 페이지의 환상적인 프로듀싱 능력으로 부틀렉 음원에 오버더빙을 함으로써 전혀 부틀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4. 사생활

4.1. 마약 중독

파일:jimmy page heroin.jpg
[36]

지미 페이지는 한때 마약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였다. 1960년대에는 사이키델릭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LSD를 복용했다. 1970년대에는 이런 것이 더욱 심해져 영국 음악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1970년대 중후반기 그의 마약 사용량은 키스 리처즈 루 리드, 에릭 클랩튼과 맞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라이브 공연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공연하기도 하였다.

당연하지만 지나친 마약 남용으로 인하여 목숨이 크게 위협받기도 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는 LSD와 마리화나 정도를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1970년대 중반경부터는 최악의 약물이라고 불리는 헤로인에 중독되고 말았다. 이것의 부작용으로 1970년대 후반 들어서는 살이 어마어마하게 빠져 버렸다.[37] Presence의 녹음 세션 당시에는 녹음을 할때조차 헤로인을 투약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후반에는 요절할 것 같은 록 스타 순위에서 키스 리처즈 등과 함께 빠지지 않던 사람이었다.

1980년 존 본햄이 사망하자 헤로인을 끊었지만, 이후 코카인에 중독되었고, 1982년과 1984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렇듯 마약 중독 때문에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의 지미 페이지의 공연 영상을 보면 기타를 제대로 연주하기는 커녕 들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공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은 에릭 클랩튼, 제프 벡과의 합동 공연인데, 에릭 클랩튼과 제프 벡이 평소와 같은 공연을 한 것에 비해 지미 페이지는 이 공연에서 살이 어마어마하게 빠진 상태여서 Stairway to Heaven, Layla 등을 연주할 때 비틀거리거나 삑사리를 내는 등 제대로 된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심각성을 본인도 깨닫고 1980년대 초중반부터 점차 마약 투여량을 줄여나가면서 몸관리를 하였고, 1988년경 완전히 마약을 끊었다.

키스 리처즈와는 같은 마약 공급업자에게서 헤로인과 코카인을 구매하였으며, 이 인연으로 에릭 클랩튼, 키스 리처즈와 함께 엄청난 양의 마약을 흡입하며 광란의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여러 그루피 소녀들도 공유해서 이 셋과 모두 얽혀있는 그루피들도 여럿이다. 이들의 마약 공급업자가 같다보니 지미가 헤로인에 빠지게 된 이유가 클랩튼에게 갔어야 할 헤로인이 우연히 지미에게 잘못 전달되었고 지미는 생각지도 못한 헤로인의 성능에 뿅가서 그대로 중독되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입지에 위협을 느낀 클랩튼이 두 명의 를 보내버린거라는 말도 있다.

4.2. 여성 편력

플레이보이 부문의 본좌인 믹 재거에 버금가는 엄청난 바람기로 유명했는데, 당시의 록스타들이 그러했듯 지미 페이지 역시 수많은 그루피들 및 미녀들과 어울리며 쾌락적인 삶을 살았다. 70년대는 록계에서 그루피 문화가 절정에 달한 때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비주얼적으로 최정상급인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이 가장 많은 그루피 부대를 몰고 다녔던 밴드였다. 미녀 그루피 부대가 레드 제플린 멤버들이 투숙한 호텔방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중 일부는 레드 제플린이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아예 공항까지 따라가 레드 제플린의 전용기에까지 같이 타서 이동 중에도 같이 질펀하게 놀고 즐겼을 정도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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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에는 무려 14세의[39] 그루피와 사귄 적도 있다. 그 그루피의 이름은 로리 매덕스로, 심지어 이름도 로리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그루피 중 한 명이었다.[40] 그 밖에도 그루피 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파멜라 드 바레스, 베베 뷰엘[41] 등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루피들과의 관계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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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부터 1983년까지 약 10년 동안 샬롯 마틴[42]이라는 프랑스 모델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둘 사이에 낳은 딸 스칼렛 페이지(1971년생)는 현재 록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중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건 1986년에 패트리샤 에커라는 모델이 처음이다. 약 10년 동안 같이 산 후 이혼했고 둘 사이에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3세라는[43] 아들을 뒀다. 그 뒤에 지메나 고메즈 파랏차라는 브라질 여인과 결혼하여 두 자식을 뒀는데 역시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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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71세의 나이에 본인보다 46살 어린 25세의 여자친구와 연애한다. 상대는 프랑스인과 이란인의 혼혈인 영화배우이자 시인인 스칼렛 세벗. 하필이면 2015년 새해에 터진 터라 영국의 각종 찌라시 신문을 연초부터 요란하게 장식했다. 공교롭게도 지미의 딸과 동명이인인 스칼렛 세벗은 무려 지미의 딸보다 19세 연하다. 이 정도면 거의 손녀뻘과 연애하는 셈.[44]

이 둘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 미국의 유명 연애매체인 TMZ에서 올린 동영상에서 하는 말이, There's a girl, she is young. With a man, he is old. She's installing a chairlift to heaven.(...)[45]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스칼렛이 지미의 돈을 보고 사귄다는 것을 Stairway to Heaven 가사로 패러디 한 것. 그러나 스카렛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나 음악에 관한 트윗, 그리고 지미 페이지와 함께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예술 분야에서 종사하는 본인의 직업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미 페이지의 생일 축하 글에 쓴 문장들이나 함께 하는 사진 등을 보면 스칼렛이 단순한 골드 디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남들이 뭐라하든 두 사람은 2024년 현재까지도 진지하게 연애하고 있어보인다.

워낙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다 보니 지미 페이지의 성적 취향에 대한 많은 썰들이 있는데, 사실 그런 썰들의 사실 여부까지 대중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루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미 페이지는 가방 한 쪽에 채찍 등의 플레이 도구들을 항상 가지고 다녔으며, 사디즘 등 각종 변태 성향이 있어서 SM 플레이를 즐겼다고 한다. 반면에 어떤 그루피들은 그가 침대에서는 신사적이었다는 증언도 하는 등 상반되는 썰들도 많다.

5. 여담

파일:지미 페이지 드래곤 수트.jpg * 용이 그려진 수트를 입고 깁슨 레스폴 혹은 EDS-1275를 치는 모습은 지미 페이지의 상징이다. 또한 이 모습은 각종 미디어에서 기타리스트의 대표적인 예시로 자주 등장한 사진이기에, 지미 페이지를 몰라도 이런 사진들은 아는 경우가 많다.
  • 자신의 대중적 대외 이미지 관리에 철저했던 뮤지션이다. 팬들에게 언제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평소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이나 흐트러진 모습은 절대 공개를 안했다. 레드 제플린 시절에 다른 멤버들은 무대 뒤, 대기실, 호텔, 이동 중의 비행기 등에서의 스스럼 없는 모습이 영상, 사진에 다 나와도 지미 페이지만은 안 나온다. 자신의 모습은 오직 전속 사진사에 의해 무대 위 공연 중에서나 프로모션용 촬영 등에서 간지나게 찍힌 사진들 중에서만 엄선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 다만 이는 젊었던 시절의 얘기이고, 노년이 된 200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신비주의 유지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미디어 노출을 통해서 친근한 모습도 큰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편이다. 즉 젊은 시절엔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신비스러운 어둠의 왕자같은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지금은 인자하고 여유로운 현명한 중국노인같은 이미지이다.
    •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영화감독 마이클 위너가 런던의 고급 주택가로 이사왔는데 마침 이웃집이 지미 페이지가 살고 있던 저택이었고 둘은 친분을 맺게 된다.[46] 어느 날 위너 감독이 아침에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하고 있던 지미 페이지를 보게 됐는데, 지미는 "내가 조깅한다는 걸 남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 그런게 널리 알려지면 내가 쌓아온 록스타로서의 신비스런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다"라며 부탁했다고 한다.[47]
  • 흑마술, 신비주의, 인도 사상 등에 심취했었고,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를 찬양하며 그의 집을 구매하는 등 오컬트와 흑마술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러나 존 본햄이 자기 집에서 급사했을 때 워낙 간절한 마음에 그를 되살리기 위한 흑마술 주문을 외우는 등 노력을 했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뒤로는 관심을 점차 끊었다고 한다.
  • Led Zeppelin III 발매 이후 언론과 평론가들이 밴드와 앨범을 가루가 되도록 무차별 디스하자 이에 큰 상처를 받아 무려 18개월동안 기레기언론과의 인터뷰를 전부 거절했던 적이 있다.[48]
  • 대중적인 인지도와 능력에 비해 1969년 레드 제플린의 데뷔로 상업적 성공을 했으며, 다른 동년배들에 비해 꽤 늦은 나이에 했다. 당장 1965년 말에 상업적 성공을 맞은 밴드인 더 후의 최연장자이자 친구인 로저 달트리보다 연장자이다.[49]
  • 키는 180cm로 180대 후반들이 즐비하던 록씬에서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으나, 비율이 좋기에 여성 팬들이 환장했다고 한다.
파일:페이지옹과 메이옹.jpg * 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와 매우 절친한 사이인데,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또한 이 둘은 에릭 클랩튼과 함께 현재 영국 뮤지션들 중에서 기사 작위 수여자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50] 다만 페이지가 현재 2020년대 기준으로 SNS 포스팅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대외활동이 많지 않은 편이기는 하다.
  • 억만장자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좀처럼 안 쓰는 짠돌이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인색함에 불만을 가진 스태프 등 주변 사람들이 뒤에서 지미의 뒷담화를 할 때 그의 구두쇠적인 면을 비꼬는 의미에서 '납 지갑'(le(a)d wallet)이란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심지어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이자 지미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피터 그랜트마저도 "지미 페이지를 죽이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지미가 보는 앞에서) 달리는 런던 버스 앞에다 2펜스만 던져놓으면 된다."[51]라는 농담으로 지미의 돈 밝히는 성향을 풍자했을 정도다.
파일:지미 페이지 슈츠슈타펠 스톰트루퍼.jpg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레드 제플린 활동 시절에는 엄청난 나치 덕후였다.[52] 공연에서 나치 제복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다녔으며, 지미 페이지와 동침을 여러번 한 그루피의 말에 따르면 지미 페이지는 나치 제복 등 나치 관련된 물품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서 더 나갔으면 네오나치로 찍힐 사안이었지만, 다행히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던 지미 페이지의 개인 성향 때문에 흔한 밀덕질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파일:720A037E-CD7D-4809-B9E8-BE844A5A1AAF.jpg * 2005년에 본인의 친구들이자 마찬가지로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인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했다. 영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지만, 에릭 클랩튼과 함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못 알아보는 굴욕(?)을 당했다(…).
브라이언 메이 : 에릭 클랩튼, 기타리스트입니다. 주빌리 행사에서 기타 쳤던 사람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 그렇군. 옆에 서 있는 자네(…)도 기타리스트인가? ???: 이 할매가
  • It Might Get Loud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서로 다른 세대의 기타리스트 후배인 U2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와 싱어송라이터인 잭 화이트와 같이 출연하면서 서로 무슨 장비를 사용하며 어떤 성향인지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54] 지금처럼 다양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시절 때는 순수 테크닉이 전부였다고 토하기도 하였다. 그 이외에 상징과도 같은 더블 넥 SG 기타의 사용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멋져서"(...)라고 하기도 했다.[55] 그 이외에 다양한 이펙터를 사용하는 디 에지와 기타에 내장형 확성기를 설치하는 잭 화이트의 장비들을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 봉준호 감독이 팬이라고 한다. 최후의 만찬에 초대하고 싶은 손님 5인 중 한명으로, 고등학교 시절 지미 페이지가 자신의 우상이라 레드 제플린 앨범도 다 모았다고 한다. #

5.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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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immy Page 196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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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에는 잘생긴 외모로 로버트 플랜트와 함께 그루피 부대를 끌고 다녔다. 전형적인 서양 미남 마스크인 로버트 플랜트와는 달리 동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어서 영국에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미 페이지의 가족 중에 몽골인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57]

허나 생긴 게 딱 보면 혼혈 느낌이 있어서인지 한국이나 영어권 인터넷에선 아직도 지미 페이지가 몽골 계통 아니냐는 말이 종종 나온다. 이는 지미 페이지의 외모가 일반적인 백인처럼 눈썹뼈가 튀어나온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평평하게 생기고 눈과 눈썹 사이가 먼 것도[58] 한 원인이다. 현대에는 후지이 카제가 지미 페이지의 리즈 시절 외모를 닮았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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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될 수록 눈위의 지방이 늘어나서 쌍꺼풀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서 인종이 바뀐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59] 그래서 국내에서는 2020년대의 모습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말도 제법 나오며, 이와 관련하여 훠이지라는 별명이 있고 각종 드립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실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국적인 느낌이 더욱 강해져, 서양인 좀 닮은 동아시아인 할아버지 느낌도 나기에 국내외에서는 흑마법으로(...) 본인의 인종을 바꿔 버렸다는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60]

신해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올 것 같은 금발의 플랜트와,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외모와 스타일[61]을 한 페이지가 극명한 대조를 주면서 가뜩이나 하늘을 찌르던 레드 제플린의 인기가 대기권을 돌파하고 우주로 향한 요인이 되었다고 평했다.

실제 전성기 시절 로버트 플랜트가 남성적인 미남형인데 반해, 지미 페이지의 외모는 살짝 여성스러워 이쁘장한 면이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아주 여성스러운 것도 아닌 묘한 매력을 지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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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미 페이지의 원래 머리는 로버트 플랜트 시절만큼 곱슬이 아니었다. 야드버즈 시절 때까지는 위 사진처럼 살짝 샤기컷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나, 레드 제플린 결성 후 본인이 영입한 로버트 플랜트의 풍성한 금발 곱슬머리가 부러웠는지 일부러 머리를 풍성하게 기르고 곱슬머리로 하고 다녔다. 원래 곱슬이 아니었던 것을 어떻게든 간지나는 곱슬로 만들기 위해서 고데기를 사용했는데, 이 당시 그는 고데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그루피의 증언에 의하면 머리에서 탄내가 났다고 한다(...).

말끔한 모습에 익숙하지만, 서양인답게(?) 수염이 많이 난다. 1970년대 초에는 수염을 뻑뻑하게 기르고 다녔다. 머리까지 장발이었기에 어떤 사진은 거의 예수가 기타 치는 것처럼 보일 지경. # 지금은 그냥 기타 치는 문재인이다.


[1] 4등급 OBE 왕실 훈장 수여자. 에릭 클랩튼과 함께 음악가들 중에서 기사 작위를 받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2] 로버트 플랜트와 마찬가지로 명확히 종교를 밝힌 적이 없다. 젊었을 때는 흑마법에 심취했는데, 이 때문에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 유명한 조지 해리슨과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3] 현재 기준. 1970년대 말 헤로인에 중독되었을 당시에는 탈수 증세로 인하여 이보다 훨씬 적게 나갔다. [4] 한화 약 2천억원. 로버트 플랜트보다 재산이 2천만 달러 정도 적다. [5] 다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에서 거의 고정 1위 평가를 받는 지미 헨드릭스가 있기 때문에 1위는 받는 일은 많지 않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장르 따지지 않고 현대적인 일렉트릭 기타의 주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독 인물이기 때문에 고정 1위인 것이고, 그 이외의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로는 블루스 록에서 에릭 클랩튼, 리듬 기타 부문의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 등과 함께 하드 록에서는 최고의 인물로 거의 항상 선정되므로 명예로 보자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임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6] 보통 기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준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지미 헨드릭스로 항상 꼽으며, 블루스 록에서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가 에릭 클랩튼이고, 리듬 기타계의 전설은 최고의 리프를 선사한 키스 리처즈로 꼽는데, 지미 페이지는 하드 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7] 전주 부분이 엄청나게 유명하면서도 쉬운 Smoke on the Water를 기타 초보자들이 주로 배우는 것과, 어느정도 기타를 치는 것이 숙달되면 속주 솔로의 상징이면서도 연주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은 Stairway to Heaven의 특징에서 따온 농담이다. [8] 1위는 지미 헨드릭스 고정이어서 사실상 0위이므로 지미 헨드릭스 제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도 자주 꼽히는 정도이다. [9] 더 후는 기타 솔로 대신 베이스 속주 솔로를 주로 추구하던 밴드이다. [10] 이 곡의 솔로는 녹음 당시 스튜디오에서 지미 페이지가 그냥 꼴리는대로(…) 연주한 부분이며, 라이브에서도 의식의 흐름대로 자주 연주한다. 참고로 이 솔로는 에디 밴 헤일런의 태핑 기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11] 4분40초 부터 [12] 무려 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리치 블랙모어에게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말했던 제프 벡 같은 기타리스트들이 무시무시한 것이다. [13]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프린스는 레드 제플린의 팬이었다. [14] 이분은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지미 페이지다. [15] 특히 슬래시는 지미 페이지 스타일의 블루스 록에 깊게 심취했었다. 그래서 키스 리처즈 스타일의 보다 미니멀한 로큰롤을 추구한 이지 스트래들린과 큰 갈등이 있었다. [16] 라이브 평가는 이렇게 했지만 레드 제플린의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에디 본인도 광팬이다보니 레드 제플린의 곡을 공연에서 커버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17] 라이브 에이드에서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할 때에도 피크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18] 멤버들도 약쟁이가 거의 없었고 몇 안 되는 약 하던 멤버는 있던 기간이 짧았다. [19] 때론 개성이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고 키보드, 기타, 보컬이 서로 자기가 더 잘 한다고 극한까지 역량을 짜내 가면서 싸워댄다. 딥 퍼플의 드러머 이안 페이스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 때 나는 드럼셋 뒤에서 그렇게들 겨루는 걸 즐겁게 지켜봤다"라고 했지만, 정작 이안 페이스 본인도 괴물급의 실력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것이 함정. [20] 거의 실수가 없는 라이브 실력을 자랑하는 뮤즈의 평가가 어째서 특정 리스너들에게 낮게 평가되는지 생각해보자. [21]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라이브 무대에서 12현 기타와 6현 기타를 동시에 써야 하는 경우에 사용하였다. 대표적으로 The Song Remains the Same Stairway to Heaven. [22] 야드버즈 시절 제프 벡에게서 물려받은 기타로 지미 페이지가 직접 용을 그려넣었다. 레드 제플린 결성 당시 제프 벡이 축하 선물로 줬다고.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던 친구에게 지미 페이지가 이 기타를 맡기고 여행을 다녀온 사이, 친구란 인간이 선물이랍시고 그림을 다시 그려주다 화가 난 지미 페이지가 이 전설의 명기를 박살냈다. [23] Stairway to Heaven 같은 곡들도 이 텔레캐스터로 녹음했으며, 레스폴로 녹음한 최초의 곡은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이다. [24] 세션 시절부터 사용하던 기타로 1970년 로열 앨버트 홀 공연에도 사용했던 기타다. 1970년대 초에 공항을 통과하다 세관원이 훔쳐가 광고까지 내서 수소문 했지만 찾지 못하다 2000년대 후반 기적적으로 친구가 발견했고 돌려받은 이후 복원하여 다시 소유중이다. 이런 일 외에도 시리얼 넘버상 당시 마지막으로 생산된 커스텀 모델이기까지 해 엄청난 가치가 있는 기타다. [25] 제프 벡이 준 그 텔레캐스터. 1집 녹음과 Stairway to Heaven의 솔로부분에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지가 박살낸 이후 이 기타의 넥을 다른 텔레캐스터에 장착했다. [26] B벤더가 장착되어 있으며 라이브에서 주로 쓰였다 [27] 가장 자주 쓰인 스트랫으로 1979년 넵워스 라이브에서 쓰인 것이 대표적이다. [28] 통칭 No.1, 조 월쉬로부터 구매하였고 시리얼 넘버가 지워져있다. [29] 통칭 No.2, 처음에는 넘버 원의 스페어 였으며 상대적으로 넥이 두꺼워 직접 깎았다고 한다. 이 기타는 58인지 59인지 약간의 논란이 있다. 깁슨에서 시그니쳐 모델을 발매할 때는 59로 발매되었다. [30] 통칭 No.3, 원래 69년 혹은 70년도의 골드탑 디럭스 모델이었으나 풀사이즈 험버커를 달고 빨간색으로 칠했다. 후에 B벤더가 달렸고 2007년 라이브에서 Kashmir를 연주하는 데 쓰였다. [31] 페이지는 브릿지를 교체해서 썼고, 후에 같은 기타를 하나 더 샀다. 라이브 영상들을 유심히 보면 같은 기타임에도 브릿지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댄일렉트로는 똑같이 브릿지를 바꾼 모델을 59DC Modified Spec이란 이름으로 출시했고 후에 창고에서 발견했던 픽업을 낀 59M NOS+모델도 브릿지를 바꿔 출시했다. [32] Stairway to Heaven의 어쿠스틱 파트에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중저가형 기타였지만 페이지는 이 기타를 대충 녹음해도 정말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극찬했고 지금도 소유중이다. [33] 레드 제플린 시절 지미 페이지 특유의 착색감있는 소리의 비밀이다. [34] 지미 헨드릭스가 영국에 오기 전, 세션맨인 지미 페이지에게 프로토타입격의 퍼즈박스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35] 기타리스트로서의 전설적인 명성에 비해 프로듀서로의 천재성이 가려진 부분이 있다 [36] 한때 헤로인으로 인해 살이 빠진 지미 페이지의 모습. 위의 평상시 사진과 비교해보자. [37] 헤로인의 금단 증상이 조금이라도 투약량을 줄일 시 끝 없는 설사와 구토로 체내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체중히 급격히 주는 것이다. 비슷하게 마약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음악가 커트 코베인 역시 자살을 결심한 원인중 하나가 끔찍한 헤로인 금단 증상으로 인한 자괴감 때문인 것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38] 이는 당시 신문에서도 자주 다루어졌으며, 후에 이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던 엘비스 프레슬리 로버트 플랜트에게 그루피들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9] 한국 나이로는 15세로, 중학교 2학년에 불과하다. 레드 제플린의 괴상한 성적 취향은 이미 영국 음악계에서 유명했다. [40] 로리 매덕스는 데이비드 보위와도 사귀게 된다. [41] 플레이보이 모델로, 원래는 패션모델을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진로를 변경했다.. 배우 리브 타일러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42] 살롯 마틴은 에릭 클랩튼과도 잠시 사귄 적이 있다. [43] 약칭은 지미 페이지 3세가 된다. [44] 이외에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유명인 커플로는 36살 연하남과 교제하는 마돈나, 46살 어린 25세의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지미 페이지, 무려 53세 연하인 22살의 영화 제작자 노어 알파라와 열애 중인 믹 재거, 53세 연하녀(29세)와 교제하는 알파치노가 있다. [45] 어린 여자가 있어요. 늙은 남자와 함께죠. 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휠체어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고 해요. [46] 이 인연으로 찰스 브론슨이 주연으로 나온 1982년작 영화 '데스 위시 2'의 삽입곡을 지미 페이지가 맡게 된다. [47] 이 에피소드는 이로부터 한참 후인 2008년에야 이 감독이 Uncut지와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참고로 이 당시 80년대 초의 지미 페이지는 존 본햄의 사망과 레드 제플린 해체 후 한동안 칩거만 하고 있다가, 마약을 끊고 운동도 시작하며 건강을 다시 추스리고 있었던 때였다. [48] 반면 로버트 플랜트는 그런 디스들이 오히려 조잡하다고 그냥 신경쓰지도 않았다고. [49] 출생년도는 같으나 지미 페이지가 생일이 2개월 가량 빠르다. [50]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브라이언 메이가 2023년 기사 작위를 먼저 수여받았다. 록 팬들은 에릭 클랩튼마냥 뻘짓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지미 페이지도 무난하게 수여받을 것이라고 추측 중이다. [51] 돈에 눈이 멀어 무작정 돈을 주으러 버스앞으로 뛰어들어서 교통사고를 당할 거라는 뜻. [52] 비슷한 뮤지션으론 모터헤드 레미 킬미스터가 있다. [53] 리오나의 보컬은 라이브였지만 지미의 연주는 핸드싱크이다. [54] 어쩌면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미: 60년대 후반-~70년대/디 에지: 8~90년대/잭 화이트: 2000년대) [55] 사실은 Stairway to Heaven등의 노래를 녹음할 때 6현 기타 뿐만 아니라 12현 기타도 사용하였는데, 라이브 공연에서는 기타를 교체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더블 넥 기타를 사용한 것이다. [56] 재밌게도, 비슷한 시기 에릭 클랩튼은 본인이 저스틴 비버에 빠졌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57] 동양인 중에서도 이혁처럼 서양인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서양인 중에서도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생각보다 있다. 애초에 인류의 역사가 이민, 혼종의 역사인데 수만년 이어지다보면 뒤섞이지 말란 법도 없다. 다만 지미 페이지는 유명 인사다보니 이런 점이 더 부각된 것뿐이다. [58] 사실 유럽인과 동아시아인 외모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기도 하다. 실제 눈 가리면 피부톤도 비슷할 경우 동서양 구분 안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59] 주로 아일랜드인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으며, 아일랜드인 기타리스트의 대명사인 로리 갤러거도 지미 페이지와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지미 페이지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다. [60]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등 각종 아시아 국가들의 네이티브라는 드립들이 많이 나온다. [61] 흑발, 용이 그려진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