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2:09:21

스티브 바이

<colbgcolor=#000><colcolor=#fff> 스티브 바이
Steve Vai
파일:Steve_Vai_Profile.png
본명 스티븐 시로 바이
Steven Siro Vai
출생 1960년 6월 6일 ([age(1960-06-06)]세)
미국 뉴욕주 나소 카운티 칼 플레이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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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타리스트
활동 1978년 ~ 현재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
2.1. 유년 시절2.2. 음악 활동2.3. 솔로 활동
3. 음악성
3.1. 연주 스타일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4.1.1. JEM4.1.2. PIA4.1.3. 그 외
4.2. 기타 앰프4.3. 이펙터4.4. 그 외
5. 디스코그래피6. 사건사고 및 논란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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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록 음악 기타리스트. 본격 기타한테 말을 시키는 남자.[1] 혹은 기타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남자. 한때 유명했던 일본의 '지옥의 메커니컬 기타 트레이닝' 시리즈에서는 대놓고 변태라고 부를정도. 혁신적인 기타 플레이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한 록 기타계 최고의 거장 중 하나이다.

2. 생애

2.1. 유년 시절

스티브 바이는 1960년 6월 6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6살때 오르간을 배워 기초이론을 익혀갔다. 그러다가 9세 때 우드스탁 라이브 영화에 나오는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고 강한 충격을 받고, 12살 때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접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이 시절 조 새트리아니에게 기타를 배웠고[2], 조새트리아니 의 레슨은 지판 싹 외워라 였고 스티브의 마음속 대답은 그걸 한주 안에 어떻게해요 였다고. 많이 혼좀 났다고 한다. 본인이 sh**라는 욕설도 들었다고[3] 즉 이 양반도 못할때가 있었다.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브라이언 메이, 앨런 홀즈워스, 제프 벡 등에게 영향 받았다고 한다.

2.2. 음악 활동

그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며 실력을 연마해 맨하탄 익스프레스(Manhattan Express), 레인지(Range), 서커스(Circus) 등의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이 무렵인 14세 때 스퀘어(Square)의 기타리스트였던 조 새트리아니를 알게 돼 그로부터 얼마 간 기타교습을 받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보다 깊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 78년 9월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 음악 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4] 그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프랭크 자파의 난곡 중 하나인 <Black Page>를 완전 채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그 실력으로 이후 '기타 플레이어(Guitar Player)'지의 채보를 맡기도 했다.

80년 6월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게 되었고 81년에는『Tinsel Town Rebellion』앨범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Them Of Us』등 몇 장의 진귀한 앨범 제작을 함께하였다. 84년 잉베이 말름스틴의 후임으로 알카트라즈에 가입해 이들의 3번째 앨범『디스터빙 더 피스(Disturbing The Peace, 1985)』를 공동제작 했다. 스티브 바이는 이 앨범 수록곡 전부를 어레인지하여 음악적 감각의 우수성을 입증 받았고, 태핑과 아밍 기술에 의한 기상천외한 주법으로 잉베이 이후의 알카트래즈 사운드 공백을 메웠다. 일본공연에서 그는 인트로부터 오버네크의 태핑솔로를 연주하여 잉베이의 애드립을 완전 카피한 뒤, 그것을 태핑으로 여유있게 연주하기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는데, 스티브 바이가 잉베이 말름스틴 수준의 피킹을 구사하지 못 해 자신의 장기인 태핑으로 연주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물론 잉베이 역시 바이와 같은 트리키한 태핑 연주는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실력은 엇비슷하지만 스타일 차이로 인해 주법을 바꿨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 뒤 LA의 한 언더그라운드 바에서 데이비드 리 로스를 만나 서로 뜻이 통하자 스티브는 그의 그룹에 가입하게 된다. 데이빗 리 로스 밴드에서 스티브는『잇 엄 앤 스마일(Eat' Em And Smile, 1986)』,『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 1988)』등 2장의 앨범에 참여, 그의 눈부신 트리키 기타 플레이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이 밴드에서도 오래있지 못하고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에 가입해 1989년『슬립오브 더 텅(Slip Of The Tongue)』앨범을 통해 뛰어난 테크닉의 기타 실력을 남겼다.

2.3. 솔로 활동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 탈퇴하고 솔로 기타리스트로 독립 한 후 자신의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앨범이 첫 솔로 데뷔작『플렉스-에이블(Flex-Able, 1984)』이다. 여기에는 <The Attitude Song>, <Call It Sleep> 같은 획기적인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80년대 락 기타 연주의 새 장을 여는데 일조했다.

1990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 'Passion and Warfare'는 당시 록 기타계에 잉베이 말름스틴의 'Rising Force' 이후 최대의 충격을 준 기타 솔로 앨범으로, 현재까지도 그의 최고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사운드트랙, 컴필레이션 앨범 등 매우 활발한 커리어를 쌓았으며, 특히 1996년 시작된 G3 콘서트 투어의 고정 멤버로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그를 동경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또 2011년에는 버클리 음악대학의 온라인 기타 강좌를 개설했는데, 최대 규모의 온라인 기타 강좌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3. 음악성

3.1. 연주 스타일

For The Love Of God Tender Surrender[5]
The Attitude Song Teeth of the Hydra[6]
이론적 기반과 테크닉이 매우 확실한데, 이를 바탕으로 한 각종 실험적이고 변칙적인 플레이가 장기이며 기묘한 멜로디 진행과 화음, 트레몰로 암[7]과 와우 페달의 독창적인 활용으로 특유의 4차원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반 헤일런을 잇는 라이트 핸드 탭핑 주법의 계승자로도 평가받는다[8]. 더블, 트리플넥이나 7현 기타를 활용한 실험적인 시도 또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 한마디로 유니크함과 개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가장 독보적인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다.

지나치게 연주 감각이 개성적이여서 듣고 커버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파악하기 힘들고, 강의나 타브 보고 치자니 리듬과 타이밍이 기묘해서 손이 꼬이고, 파악 다 했다고 하고 막상 쳐보면 그 특유의 느낌이 전혀 없는 등 끝판왕급의 난이도로 기타쟁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한편 비상식적인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동시대의 슈퍼 기타리스트인 잉베이 말름스틴의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잉베이에게 '이놈 청각장애인 것 같다'라며 까이기도 했다. 뭐 나중에 G3 공연도 같이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인터뷰에서 스티브 바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스티브 바이더러 "그놈의 아이바네즈와 험버커 픽업 좀 버리면 참 좋을 텐데."같은 말은 곧 죽어도 꼭 한다. 잉베이가 정말 싫어하는게 플로이드 로즈와 하이 게인 험버커 픽업인데 하필 스티브가 그 두개를 다 쓰니...[9]

스티브의 곡들이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이유는 모드 스케일에 있다. 스티브가 주로 사용하는 모드는 리디안, 도리안인데, 이는 스티브만의 독창적인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한다.

자기 스타일이 아니면 까고 보는 잉베이 말름스틴[10]과 달리 다른 유형의 음악을 매우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심지어 3코드 펑크 기타리스트인 그린데이 빌리 조 암스트롱을 . '팝적인 코드 진행 감각이 엄청나다' 라며 극찬하기도 했다.[11]또한 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밴드 또한 '내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어봐서 아는데, 이렇게 만들기 진짜 어렵다'라면서 높이 평가하기도. 해당영상

속주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진 않지만[12] 아이바네즈에 시그니쳐 기타를 사용한다. 아이바네즈 기타를 쓰는 주된 이유는 과격한 암질에 버틸 만큼 브릿지가 튼튼해서 트레몰로 암이 빠루인 줄 아는그의 스타일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그니쳐인 JEM 시리즈는 일반적인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를 단 슈퍼스트렛들과 다르게 바디 뒤쪽으로도 엄청나게 라우팅을 해 암업을 하기 적합한 바디를 가지고 있다. JEM 시리즈를 여러개 들고 다니는데, 프론트 험버커에 핫레일 픽업을 하나 혹은 두개 박아서 주로 사용한다.[13]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현재는 아이바네즈라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아이바네즈와 계약하기 전, 그리고 계약한 후로도 생각보다 다양한 브랜드의 악기들을 사용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스티브의 거의 모든 기타는 HSH 픽업 조합을 가지고 있다. 그의 두 시그니쳐 모델(JEM, PIA) 모두 아이바네즈의 RG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하이프렛에 스캘럽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

스트랩은 디마지오의 스트랩을 사용한다. 스트랩 락처럼 버클로 장착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기타헤드 쪽에도 피크를 꽃을 수 있는 특수한 파츠가 있는데, 'Vai tech'라는 스티브의 회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나, 따로 소비자들 대상으로 판매는 하고 있지 않다. 다만 쫄대 파일로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다.
Reverb에서 공개된 그의 기타 컬렉션. 아이바네즈만 쓴다는 인식이 있는 것과 달리 생각보다 다양한 다양한 기타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장 영상에 나온 것만 해도 펜더 깁슨같은 빈티지 성향 브랜드들은 물론이거니와 뮤직맨이나 잭슨같은 모던/메탈성향 악기들, 동료 기타리스트들이 선물해준 시그니처 모델[14], 심지어는 팬이 만들어준 전세계에 하나뿐인 기타들도 볼 수 있다.

4.1.1. JEM

파일:Ibanez_JEM7V_W.png
하얀색 아이바네즈 JEM은 그를 상징하는 기타이다. 위의 모델명은 JEM7V로, JEM 시리즈 중 가장 전형적인 사양들을 갖춘 스탠다드한 모델이다. 바디에 뚫어놓은 운반용 구멍인 '몽키그립'과, 장미 줄기 모양의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 인레이[15][16], 그리고 하이프렛 일부에 스캘럽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생김새가 예쁘고 가격도 하이엔드 기타 치고는 지나치게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특히나 인기가 매우 많았던 악기이다.

브릿지 뒷쪽으로 라우팅된 곳을 보면 가늘게 원통형으로 깎여있는데 Lion's claw라고 불린다. 과거 풀 플로팅 브릿지가 아니던 시절에 생산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들은 길게 튀어나온 6개의 긴 나사가 바디에 걸리기 때문에 암 업 주법 사용시 음을 올리는 반경에 한계가 있었는데, 스티브 바이는 암 업을 할 때 이 나사들에 간섭되는 바디의 일부분을 원통형으로 파내어 브릿지의 가동 범위가 넓어지도록 고안하였고, 이것이 그의 시그니처 모델인 JEM에도 적용되어 그의 상징처럼 굳어진 것이다.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더욱 개량되고, 과거에는 바디에 간섭되던 그 스크류들이 더욱 짧아져 현재는 더 이상 암 업 반경을 위해 이런식의 개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나, 여전히 현행 생산되는 JEM 모델들에는 이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대단히 오랫동안 스티브 바이의 시그니처 모델로 활약하던 제품군이라 당연히 여러 파생 모델들이 발매되었고, 스티브 본인 또한 온갖 기상천외한 JEM 모델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아래의 PIA 시리즈가 나오면서 JEM 시리즈 중 가장 고사양을 가지고 있던 JEM7V 모델은 단종되었고, 아이바네즈 인도네시아 등 저가형 라인업에서 나오는 JEMJR같은 염가형 파생 모델들만이 생산되고 있다.
  • JEM EVO
    스티브 바이가 가장 오랫동안 메인 기타로 사용해왔던 JEM 개체. 본래 아이바네즈측에서 보내준 4대의 JEM7 프로토타입 모델들 중 하나였는데, 이 네 대 중 스티브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개체였다. EVO라는 이름은 비슷한 시기 스티브가 픽업 제조사인 디마지오와의 협업으로 개발했던 네 종류의 픽업[17] 중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에볼루션이라는 픽업에서 앞글자를 따와서 붙인 이름이다. 스티브 바이 본인이 페이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일단 스펙상으로는 EVO와 다른 양산형 JEM들 사이에는 어떠한 사양적 차이도 없었으나, 연주를 해보자마자 이 개체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즉 뽑기가 잘 되었다는 얘기다

    이름처럼 브릿지 나사 부근에 EVO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으로, 다른 JEM 개체들이 엄청난 개조를 거친 것과 달리, EVO는 그 자체만으로 스티브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마모되거나 파손된 하드웨어를 고치는 정도를 제외하면 어떠한 개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정도였냐면, 과거 넥 픽업에 문제가 생겨 스티브의 테크 담당이 이 픽업을 버리고 같은 모델의 다른 픽업으로 교체해버리자, 이를 라이브에서의 사운드 위화감만으로 알아차린 스티브가 라이브가 끝난 후 투어 크루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오리지널 픽업을 겨우 찾아내어 재장착한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스티브 바이의 메인 기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주었고, 그로 인해 유튜브 등에 올라온 스티브 바이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JEM 개체이다. 이 오랜 라이브와 세션, 등 여러 활동으로 인해 닳을대로 닳아서 현재는 신품이었을 시절의 새하얀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PIA가 나오면서 메인 기타 자리에서도 은퇴했다.
  • JEM FLO
    마찬가지로 위의 EVO가 포함되어 있던 4대의 JEM7 프로토타입 중 하나로, 마찬가지로 EVO의 스페어 기타 겸 두 번째 메인 기타로 주로 사용되었다. EVO와는 달리 꽤 본격적인 개조들이 이루어졌는데, 일단 픽업이 페르난데스의 서스테이너 픽업 세트로 교체되었으며, 스티브는 이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서스테이너 픽업 장착 이후에는 위의 EVO보다 이 개체를 더욱 많이 사용했다. 본인이 밝히기로는 EVO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운드를 내야 할 때 이 FLO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현재는 넥도 일반적인 넥이 아닌, 트루 템프라먼트(True Temperament)프렛[18]이 적용된 넥으로 교체하여 자세히 보면 프렛이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 휘어진 모양이다.

    FLO라는 애칭은 한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스티브 본인이 따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밝히지는 않아 정확히 누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지는 불명이다. EVO와 마찬가지로 브릿지 나사 근처에 FLO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JEM FLO III
    일반 FLO와 마찬가지로 서스테이너 픽업이 장착된 JEM으로, 이쪽은 오리지널 FLO와 달리 여전히 올곧은 프렛이 박혀있다. 처음에는 말그대로 메인 기타 3정도의 위치였으나, 서스테이너 픽업의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EVO와 오리지널 FLO를 제치더니 PIA 출시 전까지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JEM이 되었다고 한다. 이쪽도 브릿지 나사 부근에 FLO III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입지가 애매하거나 발매하기 곤란해서 발매되지 않은 기타 또한 수두룩 하다. 대표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도료를 사용한 JEM이 있는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반타블랙의 사용권을 아예 구입해버린 인물 때문에 발매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원본조차 반타블랙 사용이 어려워 최대한 비슷한 색상을 찾아서 도색했다고 한다.
  • 실험적인 곡들이나 연주방식처럼 기이한 기타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끝판왕이 바로 2000년에 생산된 JEM DNA. 이름 그래도 기타 도료에 스티브의 DNA (혈액)이 포함되어있다.
  • JEM중에 브릿지가 두 개로 갈라져서 따로 움직이는 기타가 있다. 6개의 새들중 가운데 두 개는 고정, 위 2개와 아래 2개의 새들이 각각 하나의 암으로 움직인다.
  • JEM시리즈를 잘 정리해놓은 블로그 글.(단 2010년까지의 자료로, 그 이후에 나온 파생 모델들에 대한 내용이 없다.) #

4.1.2. PIA

파일:Ibanez_PIA3761_XB.png
2020년 1월, 뜬금없이 아이바네즈에서 몇십 년동안 팔던 그의 시그니처 모델 JEM 시리즈를 단종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스티브 바이를 상징하는 기타이니만큼 사람들은 스티브 바이가 아이바네즈를 떠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지만, 이내 그의 새로운 시그니쳐 모델 시리즈인 PIA 제품군을 선보이면서 이러한 걱정은 잠식된다.

이름의 출처는 스티브의 아내 피아 바이이며, 출시된지 26년이나 되었던 기존 JEM 시리즈와 비교해 확실히 모던한 방향으로 개선된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덩굴 인레이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되었으며, 기존의 몽키 그립은 PIA의 디자인을 전반적으로 꿰뚫고 있는 Vine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업그레이드를 선보였는데, 특히 바디 뒷쪽 트레몰로 커버를 기존에 (거의 모든 기타가 사용하던) 나사로 조이던 방식을 자석으로 쉽게 탈부착할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특징이다.

문서 최상단 프로필 사진 및 위 사진에는 검은 색 PIA 모델만이 나와있으나, 기존의 JEM에서 볼 수 있던 흰색 피니쉬 또한 준비되어 있다. 다만 구형 시그니처 모델인 JEM의 그늘에서 탈피하려는 시도인지 라이브 등 공식석상에서는 흰색 외 보다 다양한 색상의 PIA 모델들을 사용하는 걸 자주 보이고 있다.[20]

4.1.3. 그 외

파일:Stevevai’sstrat.jpg
1976년에 생산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16살에 어머니의 돈으로 구입했다고 한다.[21] 이 기타를 구입한 이유로는 트레몰로 암이 장착된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서,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가 네추럴 색상 스트라토캐스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것이 가장 컸었다고 하며, 고등학교를 거쳐 버클리 음대에 진학했을 때, 그리고 프랭크 자파 밴드에 들어갔을 때 까지 사용하는 등, 기타리스트로서 스티브 바이의 커리어 중 가장 앞쪽에 있는 악기라고 볼 수 있다.

프랭크 자파 특유의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싱글 코일 픽업 험버커 픽업으로 교체하는 비교적 간단한 개조를 시작으로 프리앰프 장착, 기존에 달려있던 싱크로나이즈드 트레몰로 브릿지를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로 교체하는 등 완전히 마개조를 하여 사용하였으나, 알카트라즈에 들어간 이후로는 음색이 너무 밝다는 생각에 아래 나올 그린 미니 기타로 교체한다. 쓸 기타가 많아진현재는 곱게 보관중이다.
파일:Steve_Vai_Green_Meanie.jpg
프랭크 자파 밴드에 들어오고나서는 켈러 브릿지가 장착된 잭슨의 솔로이스트 모델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특히 샤벨/ 잭슨의 사장이었던 그로버 잭슨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그린 미니(Green Meanie)라는 애칭의 샤벨 커스텀 기타를 자주 빌려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개발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장착된 해당 모델은 스티브의 마음에 꼭 들었는지, 이후 해당 악기를 그로버 잭슨으로부터 아예 양도받아서(!) 여러 레코딩에 사용한다. 이 기타는 본래 선버스트 색상 피니쉬였으나, 양도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초록색으로 리피니쉬되었고, 곧 그린 미니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 기타에 장착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와 여러 특징들은 이후 스티브 바이가 아이바네즈와 협력하여 제작하는 시그니처 모델 JEM에도 반영된다.
  • Hydra
파일:vai_hydra.jpg
스티브 바이의 구상으로, 아이바네즈에서 5년 간 개발하고 2022년 발표된 3넥 기타. 일부는 프렛이 있고 일부는 프렛리스인 12현 기타, 트레몰로 암과 코일탭이 있는 7현 기타, 4현 숏스케일 헤드리스 베이스 기타, 13현 공명 하프의 4종류 악기가 합쳐져 있다. 스티브 바이의 10번째 앨범인 Inviolate의 수록곡, 'Teeth of the Hydra'에 사용되었다.

퍼포먼스적인 효과가 굉장해서 하이드라의 등장 연출은 라이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크기와 모양 때문에 메고 연주하지는 못하고, 전용 스탠드에 놓고 연주한다. 4종의 악기 외에도 스위치를 누르면 기묘한 효과음이 재생되는 등 여러가지 이스터 에그가 탑재되어 있다.

4.2. 기타 앰프

줄곧 카빈의 앰프만 사용해왔다. 스티브의 시그니쳐 앰프인 레거시 앰프 헤드와 캐비넷은 스티브의 톤 메이킹에 큰 기여를 한다. 많은 스타일리시한 솔로 지향 기타리스트들이 마샬의 기타 앰프를 사용하는데 반면, 스티브는 본인만의 독창적이고 색다른 사운드를 중요시해서 이런 특이한 선택을 한 것 같다.

4.3. 이펙터

기타 기상천외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페달도 많이 사용한다. 디지텍의 피치 쉬프터, 몰리의 와우 페달 등등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듯.

4.4. 그 외

줄은 과격한 플레이에 맞는 어니볼의 9-46 paradigm을 사용한다.

5. 디스코그래피

스티브의 솔로앨범만 등재합니다. (밴드소속으로 활동한 앨범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정규 앨범

Flex-Able (1984)
1번 트랙
1. Little Green Men
2. Viv Woman
3. Lovers Are Crazy
4. Salamanders in the Sun
5. The Boy/Girl Song

2번 트랙
1. The Attitude Song
2. Call It Sleep
3. Junkie
4. Bill's Private Parts
5. Next Stop Earth
6. There's Something Dead in Here

Passion and Warfare (1990)
1. Liberty
2. Erotic Nightmares
3. The Animals
4. Answers
5. The Riddle
6. Ballerina 12/24
7. For the Love of God
명불허전 스티브 바이의 최고 명곡이다. 바이 본인을 제외하더라도 기타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명곡. 평소 스티브 바이는 exotic하고 unique한 사운드를 중요시하는데 그런 성향이 이곡에 그대로 녹아있다. Sitar로 녹음된 백킹과 바이가 즐겨 쓰는 lydian 스케일이 바로 그 열쇠이다. 리프는 이미 모든 락키드들이 쳐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중간에 나오는 미친 레가토와 스윕피킹은 지금 들어봐도 정말 기타가 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노래의 제목 그대로 이곡은 종교에 관한 것인데, 스티브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어떤일도 마다하지않는 신도들의 굳은 의지를 위해 만들었다고. 이런 종교적 표현은 제목에서도 있지만 가사에서도 나오는데 스튜디오 버전에는 "Walking the fine line between Pagan and Christian"과 리마스터 버젼에는 "We may be human, but we're stil animals"라는 아웃트로 가사가 들어가있다. 스티브 바이는 이 곡을 처음 작곡할 때 이상하고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늦은 밤 스튜디오에 어쿠스틱 기타가 하나 있었고, 무언가가 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녹음을 시작했고, 지금의 시타르 배킹트랙을 완성하였다. 더나아가 본인의 목소리로 멜로디 라인을 잡고 그렇게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8. The Audience Is Listening
9. I Would Love To
10. Blue Powder
11. Greasy Kid's Stuff
12. Alien Water Kiss
13. Sisters
14. Love Secrets

Sex & Religion (1993)
1. An Earth Dweller's Return
2. Here & Now
3. In My Dreams With You
4. Still My Bleeding Heart
5. Sex & Religion
6. Dirty Black Hole
7. Touching Tongues
8. State of Grace
9. Survive
10. Pig
11. The Road to Mt. Calvary
12. Down Deep into the Pain
13.Rescue Me or Bury Me

Fire Garden (1996)
1번 트랙
1. There's a Fire in the House
2. The Crying Machine
3. Dyin' Day
4. Whookam
5. Blowfish
6. The Mysterious Murder of Christian Tiera's Lover
7. Hand on Heart
8. Bangkok
9. Fire Garden Suite

2번 트랙
1. Deepness
2. Little Alligator
3. All About Eve
4. Aching Hunger
5. Brother
6. Damn You
7. When I Was a Little Boy
8. Genocide
9. Warm Regards

Flex-Able Leftovers (1998)
1. #?@! Yourself
2. So Happy
3. Bledsoe Blvd
4. Natural Born Boy
5. Details at 10
6. Massacre
7. Burnin' Down the Mountain
8. Little Pieces of Seaweed
9. San Sebastian
10. The Beast of Love
11. You Didn't Break it
12. The X-Equilibrium Dance
13. Chronic Insomnia

The Ultra Zone (1999)

Real Illusions: Reflections (2005)

The Story of Light (2012)

Modern Primitive (2016)

Inviolate (2022)

6. 사건사고 및 논란

  • 2013년 7월 28일,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 참가 차 내한할 때 발생한 일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공연 다음 날인 29일 대한항공 을 이용하여 일본 나고야로 출국할 때, 대한항공이 기타의 기내 반입을 거절하여 넥 부분이 파손됐다고 본인 SNS에 사진을 올려 대한항공이 국내외 팬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게 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올린 사진의 EXIF 기록에 기재된 일시와 좌표가 7월 28일 대한민국 안산으로 확인되었으며, 공항 활주로에서 비를 맞으며 기타가 탑재되는 사진 속 항공기 로고가 한국으로 입국할 때 이용한 중국의 항공사로 판정되는 등 여러 정황 상 한국에 입국 전 기타가 이미 파손된 것으로 추정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본인도 잘못된 내용을 올렸다는 걸 인지했는지 대한항공에 대해 사과글을 업로드하였다. 관련 기사

7. 여담

  • 버클리 음악대학 재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 피아 마이오코[22][23]와 결혼하여 2명의 아들을 두었다. 자신의 새로운 시그니쳐 기타 모델에 아내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24]
  • 젊은 시절에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리즈시절
  •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했던 프랭크 자파 밴드와[25] 스티브 바이가 어릴적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부터 대마초를 포함한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
  • 스티브 바이가 2018년도에 그의 절친 조 새트리아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 있는데, 나름의 변태적인센스가 돋보인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지 알 수 있을 정도.
  • 1986년작 영화 'Crossroads'에서 악의 기타리스트로 출연해 랄프 마치오[26]와 영혼을 건[27] 기타 배틀을 펼치기도 했다.[28] 삑사리 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고 싶어도 못 내서 일부러 삑사리 내는 연습을 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연주를 못하는 연기를 저렇게나 잘 했으니 오스카 상을 받아야 될 거 같다."라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이 영상에서 스티브 바이가 사용한 붉은색 잭슨 기타는 현재 스티브 바이가 소유하고 있지 않다. 본인 말로는 이 기타의 행방은 기억이 잘 안 난다는데, 추정하기로는 랄프 마치오나 해당 영화의 감독, 스태프 중 누군가에게 준 것 같다고.
  • 만화 공태랑 나가신다! (밴드편 단행본 36권-44권)에 스티브 바이를 오마주한 스티브 파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에서 공태랑 부모님과 인연이 있어서 공태랑 집에서 신세를 지게되는 인물. 대부분 기타 리프로 말을 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공태랑이 밴드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일조한 인물. 그리고 공태랑의 친구 음미의 우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악역인 카이저가 동료들을 상처입히고 협박하자 일부러 밴드를 떠나 은둔하였지만 공태랑과 음미와의 만남으로 다시금 밴드를 하려고 마음먹고, 이와중에 카이저가 자객을 보내고, 일본으로 오면서 밴드편이 진행된다. 천광사나 마유미 그리고 여월 정도 말고는 친구로서 인정하지 않는 공태랑이 유일하게 친구로서 인정하게 되는 두인물이 스티브 파이와 음미다. 그리고 스티브 파이는 공태랑 아버지의 놀랄만한 음악적 재능? 일찍이 겪어봐서 공태랑의 리듬감이나 연주 실력에 놀라다가도 바로 수긍했다. 미국에서 옆집 도장에 있던 공태랑 아버지가 잠깐 놀러와서 스티브 파이의 악기를 연주했는데 놀랄만한 실력을 보여 스티브 파이는 충.공.깽.
  • 취미가 양봉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주로 이사를 온 뒤 시작했다는데 작게 시작한 것이 규모가 커졌다고.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꿀을 수확하는 과정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꿀을 수확 및 판매함으로서 나오는 수익금은 스티브 바이와 리처드 파이크(Richard Pike)가 설립한 “Make A Noise Foundation”이라는 혼자서는 음악을 하기 힘든 어린 뮤지션들을 도와주는 제단의 기금이 된다. 관련 글
파일:steve vai beekeeper.jpg
  • 헤일로 2 리마스터인 애니버서리에서도 몇몇 OST를 다시 피처링했다.
  • 헬스키친 시즌15 8화 초반에 등장한다. 관련 글
  • 2017년 4월에 내한이 확정되었다.(제네레이션 엑스) 그리고 2019년 11월에 제네레이션엑스로 다시 내한했다.개꿀
  • 2019년에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썼다. 링크
  • 60이 넘은 나이에 상대적으로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젊은 피 폴리피아 2022년에 공개한 신곡 Ego Death에서 피쳐링을 했다. 이것도 폴리피아가 헌정해서 곡에 끼워팔기하듯 넣은 것이 아닌, 곡의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피쳐링을 맡긴 것이다. 아무리 기타가 나이를 먹고 능숙해지면 더 잘친다고는 하지만, 1980년대에 데뷔한 기타리스트가 트렌디하다 못해 앞서가는 음악성으로 잘 알려진 폴리피아에 피쳐링을 해 극찬을 받는 건 정말로 비범한 것이다. 수많은 기타 비르투오소들이 1980년대, 90년대에 확립한 스스로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천년만년 그 스타일로만 울궈먹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 사람은 아직도 젊은 신인들 사이에서도 특유의 캐릭터성을 과시하며 동시에 극찬까지 받았으니 정말로 대단한 거라 볼 수 있다.


[1] Passion And Warfare 앨범의 'The Audience Is Listening'에서 특히 잘 보여준다. [2] 조 새트리아니에 따르면 새트리아니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느날 어떤 꼬마가 기타를 들고 집에 찾아와서 ' 당신이 학교에서 연주하는 걸 봤는데 기타를 가르쳐주지 않겠냐'고 물어보길래 '못생긴 꼬마 녀석, 일단 거기 앉아봐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꼬마가 스티브 바이였다고. [3] it는 본인이 직접 검열했다. [4] 팻 메스니에 따르면 자신의 형 마이크 메스니가 당시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스티브 바이를 가르쳤다고 한다. 마이크는 스티브 바이가 이미 버클리 재학 시절 도를 넘어선 재능 (Off-the-scale talented)라고 극찬을 했다! 팻 메스니 본인도 스티브 바이를 대단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극찬했다. [5] 해당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베이비 사이즈 기타가 만들어지는 과정, 내가 외출하면 혼자 남은 기타가 보는 영상, 일본에서는 이 영상을 보면 손가락이 블러 처리된다 등등 죄다 섹드립이다. 확실히 연주 중 짓는 표정, 몸짓이 절대 범상치는 않다. 참고로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저 기타가 최소 18살 이상이길 바란다.이다. 현재는 타임라인을 성관계에 비유한 댓글에 밀린 상태 암이 없어도 할만 하니 핑계대지 말고 연습하자 [6] 저 무시무시한 트리플넥 기타는 아이바네즈에서 그를 위해 특별 제작해준 악기이다. 최상단에는 피에조 픽업을 내장한 어쿠스틱 기타를, 중간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최하단에는 베이스가 달려있는 형태로,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저 세 개를 전부 사용하여 곡을 연주한다는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보여준다. 그리고 잘 안보이지만 3개의 기타 브릿지 밑에 13현의 줄이 달린 하프가 또 달려있다. 거기에 기타의 옥타브를 변경해주는 노브 등 특수기능 노브도 여러개 붙어있다. [7] 매우 과격한 아밍 주법을 구사하는데, 거의 암을 때리다시피 한다. 라이브에선 그냥 암만 잡고 기타를 흔들어 아밍을 하거나 암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등(...)의 기행도 벌인다. 이것 덕분에 아이바네즈는 스티브 바이와의 엔도스먼트를 유지하기 위해 암을 튼튼하고 튜닝이 틀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에 도가 텄을 정도다. 실제로 아이바네즈 기타들은 아밍 주법을 많이 써도 튜닝이 잘 틀어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안정성이 스티브 바이 시그니처를 만들다 생긴 노하우 덕분이라 말하기도 하는 수준. [8] 양손 모두 태핑이 자유자제라 어깨 관절이 빠져서 연주가 힘들어진 상태에서 기브스를 하고 한손으로 앨범 작업을 했다(...) [9] 그러나 잉베이가 플로이드 로즈와 험버커 픽업을 싫어할 뿐이지 스티브 바이 자체는 아주 높게 평가한다. 자기만의 스타일과 아이텐티티를 가지고 있고 항상 최고의 연주만을 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잉베이가 높이 평가하는 아주 드문 케이스. [10] 이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분 꽤나 쇠고집이시다. [11] 정확히 얘기하면 빌리 조 암스트롱이 치는 코드는 '하나하나가 다 활기찬 느낌을 주는데,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느낌을 준다'고 표현하며 그렇게 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12] 물론 잘 한다는 거지 한다는 게 아니다. 그의 속주 실력은 전 락 계를 통틀어도 견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13] 하프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프론트 험버커 앞쪽에 주로 핫레일을 단 픽업을 사용한다. [14] 영상에 나오는 것만 해도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조 새트리아니, 그리고 사운드 성향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는 잉베이 말름스틴도 있다. [15] 이 트리 오브 라이프 인레이는 이후 아이바네즈의 양산형 최고사양 모델군인 J.Custom 시리즈에도 자주 사용되며 명실상부한 아이바네즈 일렉트릭 기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16] 여담으로 폴리피아의 기타리스트인 팀 헨슨의 시그니처 모델군인 TOD 시리즈에는 이 트리 오브 라이프 인레이의 도안을 살짝 비튼 '트리 오브 데스(Tree of Death)'라는 장미 덩굴 모양 인레이가 새겨지기도 했다. [17] 할리데이비슨의 엔진 스타일 제품명에서 각각 이름을 따왔다고 하며, 각각 플랫헤드(Flathead), 너클헤드(Knucklehead), 팬헤드(Panhead), 그리고 에볼루션(Evolution)이라는 제품명이 붙었다. [18] 기타는 악기 구조상 각각의 프렛들에서 나는 음이 피아노같은 다른 악기들에서 내는 음들과 정확히 맞아 떨어질 수가 없는데, 트루 템프라먼트 프렛은 이 미세한 차이를 프렛을 휘게 만드는 것으로 해결하여, 이러한 악기들과 합주를 하거나 할 때 더욱 조화롭게 들리는 특징을 가진다. [19] 아크릴 바디는 서스테인 조절이 매우 힘들어서 취급하는 브랜드가 많지 않다. [20] 폴리피아의 Ego Death 뮤직비디오에 피쳐링했을 때 들고 나온 것도 PIA 모델이었다. [21] 스티브 본인이 공식 사이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기타를 구입하기 전에는 픽업이 하나만 달려있는 '이상한' SG 타입 기타를 사용했었다.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번째 기타'이다. [22] 여성 메탈 밴드 빅센의 베이시스트 출신이다. [23]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등장한 적 있다. 1:14:50부터 [24] 아이바네즈 PIA 시리즈 [25] 프랭크 자파는 뮤지션들의 마약 사용을 단호하게 반대했고, 자기 밴드 소속 기타리스트가 마약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가차없이 해고하기까지 했다. [26] '가라테 키드'(국내명 베스트 키드)로 당시 유명했던 하이틴 스타. 놀랍게도 저 영화 촬영 당시 스티브 바이와는 딱 한 살 차이였다. [27]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영혼을 담보로 하고 펼치는 대결이었다. [28] 영화 내에 나오는 두 사람의 연주는 대부분 스티브 바이가 녹음한 것들인데, 랄프 마치오가 보틀넥 주법으로 연주하는 부분만 슬라이드 기타의 거장 Ry Cooder의 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