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혁명의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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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태사령 |
출판사 | JC미디어 |
연재처 | |
연재 기간 |
1부: 2019. 06. 12. ~ 2020. 07. 15. 2부: 2020. 09. 29. ~ 2021. 09. 30. 3부: 2021. 12. 29. ~ 2023. 03. 10. 4부: 2024. 04. 03. ~ 연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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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태사령.[1]2. 줄거리
때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강자가 약자를 병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약육강식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여겼던 적자생존의 시대.
1880년, 완화군 이선이 된 미래의 역사학도.
"절대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나 이선도, 이 나라 조선도!"
32세 박사 과정 근대 한국 외교사학도였던
이선우가
고종의 장자이자
흥선대원군이 아꼈지만 요절한
완화군의 몸에 빙의하여, 제국주의 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위기의
조선을 살리고 자주적인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강자가 약자를 병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약육강식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여겼던 적자생존의 시대.
1880년, 완화군 이선이 된 미래의 역사학도.
"절대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나 이선도, 이 나라 조선도!"
총 4부작으로 1부 조선, 혁명의 시대(1880~1902)에 이어 2부 대한, 제국의 시대(1902~1918), 3부 대한, 국민의 시대(1918~1926), 4부 여명의 시대(1926~19XX)로 구성되어 있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19년 6월 12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2020년 7월 15일 총 313화로 1부 연재가 종료되었다.
2020년 9월 25일 외전 5화가 동시 업로드된 이후 동년 9월 29일부터 2부 연재가 시작됐으며 2021년 9월 30일 총 261화로 2부 연재가 종료되었다.
2021년 12월 29일 외전을 시작으로 3부 연재를 시작했다. 2022년 6월 27일 3-1부 완결 후 휴식기를 가진 뒤 9월 27일부터 3-2부 연재를 시작하여 2023년 3월 10일 3-2부가 완결되었다. 이후 휴식기를 거친 뒤 3부와 4부 사이의 이야기가 2024년 3월에, 이어서 4부가 4월부터 연재를 시작한다.(프롤로그기준) 4부 본편은 5월16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였다.
4. 역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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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조선\ 문서 참고하십시오.6. 개변된 역사
6.1. 조선/대한제국
- 임오군란(1882년)이 일어나기 전 연해주에서 힘을 기른 이선은 고려대대를 이끌고 귀국, 흥선대원군을 설득해서 구식 군인들에게 밀린 봉급을 지급하고 그가 쌓은 재산으로 쌀을 수입해서 민심을 다독인다. 그와 동시에 외국군의 출병을 막기 위해 해외와 연락을 차단하고, 사태의 원인이었고 국정을 농단해온 민씨 척족들을 처단했으며 중전 민씨는 도주에 성공했지만 이제까지의 죄상이 폭로당하고 폐서인되었다. 이후 기무처 총재로 대원군을, 미래의 지식을 위해 포섭한 개화당 인사들이 실무를 맡은 대원군-개화당 연립정권이 출범했으며 국왕 고종은 사실상 도장 찍는 기계로 전락했다.
- 원래 역사와 달리 청군이 출병하지 않아서 조청수륙무역장정은 정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훨씬 관대하게 체결되었으며 일본의 피해도 적절한 외교협상의 결과로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 이후 개방과 개화 정책들이 빠르게 이뤄진다. 대외적으로는 열강과 수교하고 외교를 통해 조선 중립을 공인받고, 대내적으로는 대원군이 보수파를 다잡고, 대원군의 첫 정권을 순식간에 제압할 만큼 강력한 명분을 가진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들면서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게 잘 모시면서, 원래 역사와 달리 지방 사대부들도 체제로 포섭하면서 지지기반을 넓히고 민생 개혁도 소홀히 하지 않아서 참서가 돌고 보수파의 테러로 홍영식이 부상을 입은 것 외에는 상당히 순조롭게 이뤄진다.
- 갑신정변(1884년)은 친위 쿠데타 식으로 신속하게 실행되어서 이제까지의 개혁에 쐐기를 박는 갑신경장이 된다.
- 거문도 사건(1885년)은 예정대로 일어나지만 러시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은 이선이 다른 열강들을 끌어들여서 강력하게 대처해서 조기에 철군할 수 있게 한다. 이를 계기로 원래 역사와는 다르게 대원군- 이홍장- 이토가 함께 서명한 천진 조약이 체결되었다.
- 1892년엔 길림장군이 간도의 조선 백성들을 동화시키는 강경책을 쓰면서 반발이 일어났는데, 함경도에 주둔하고 있던 연대장 이범윤이 무단으로 월경해서 길림군을 쫓아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연히 청 조정은 노발대발했고 북양함대가 서해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등 전운이 감도나, 독일-러시아-프랑스의 간섭으로 간도의 조선 백성들에 대한 동화정책을 중단하고, 이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군무독판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
한편 조선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쾌히 여긴 청 조정에서는 이홍장의 권력 기반인 북양군을 소진시킬 겸 조선 정벌을 명하고, 이홍장은 고민 끝에 이선을 납치해서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하나 이선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해서 김옥균, 홍영식과 외국 고문들만 납치했다. 이러한 폭거에 조선 전체가 분노하고, 조선은 청과 단교하고 군사적으로 도와줄 국가를 찾던 중 마침 청과 전쟁을 준비했고 조선에도 동참을 권한 일본과 종전까지 한시적인 동맹을 맺게 된다.
이후항상 그랬듯이일본의 선전포고 없는 공격으로 청일전쟁(1894년)이 발발한다. 일본이 북양함대를 제압하고 요동 반도를 침공하고, 조선이 한반도 방면에서 육지로 침공한 청국을 격퇴하고 국경을 넘는다. 청국은 각 군별로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서 지리멸렬한 반면 근대화를 미리 이룩한 일본군, 철도를 통해 보급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던 조선군은 청군을 격퇴하고 승전한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은 요동반도와 대만을, 조선은 간도와 안산을 포함한 요동 일부를 할양 받고, 이 전쟁은 조선 독립전쟁으로 인식되게 된다.
-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종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 청에 몰래 밀서를 보냈음이 알려진다. 밀서 자체는 조선이 패할 경우를 대비한 고육지책으로 포장되지만 민심을 잃은 고종은 결국 이선에게 선양하고 태상황으로 물러나며, 이선은 칭제건원 하며 대한제국 초대 황제 광무제로 즉위한다.
- 가속화되는 열강의 국권 침탈에, 충성스러운 번국이었던 조선과 왜국이라고 멸시한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참패하고 영토를 뺏긴 데다가, 대한제국이 만인대를 앞세워 남만주 영토까지 탐내자 중국의 외세에 대한 분노가 더 거세져서 의화단 전쟁(1899년)이 원래 역사보다 더 큰 스케일로 터진다. 대한제국은 주청공사 홍영식이 살해당한 것을 명분으로 연합군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제국군은 의화단으로부터 동양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수의 문화유산을 약탈하고 서태후 일당에 의해 서안으로 끌려가던 광서제를 확보하는 정치적 이득을 거둔다.
- 그와 함께 벌어진 러시아의 전면적인 만주 침공에 맞서 만주에도 병력을 진출시킨다. 확보한 광서제와, 러시아의 무자비함 덕에 무혈로 길림과 봉천을 확보하고, 봉천에서 제사를 올려 북벌 완수를 선언한다. 러시아의 세력확대를 경계하던 열강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시 최신 국제법 사례였던 크레타 자치령을 본받아 남만주 지역을 남만주 자치령으로 사실상 얻어서 조선 독립전쟁 때 얻은 영토를 연결할 수 있었고, 승전으로 얻은 정치적 동력으로 오랜 시간 준비한 토지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 영일 동맹(1902년)이 성사될 때 이승만의 외교적 노력과 이선의 개입으로 한국 역시 참여하면서 한영일 동맹이 결성된다. 동맹에 발언권이 생긴 한국의 변화로 인해 러일전쟁(1904년)은 한국이 주 전장이 되지 않고 만주 지역이 주전장으로 변경되었다.
- 러일전쟁이 승자없는 싸움이 되어가자, 미국과 함께 한국도 개입하여 중재하게 된다. 그러나 김옥균과 태프트가 회담, 남만주를 한국의 이권 범위로 두지만 미국에게도 개방한다는 밀약을 맺는다. 이에 따라 남만주를 마치 중립 지대로 두는 것처럼 중재하지만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한국이 33%, 미국이 중심이 된 국제 신디케이트로 34%, 일본이 33% 로 비중을 가지게 되는 조약을 맺는다. 본래 미국은 일본에게 지분 33% 를 주는척 하지만 채무 변제를 조건으로 일본 지분을 받아낼 계획이었으나, 죽어도 만주 이권을 놓칠 수 없었던 일본이 거절하고 한국에게 손을 벌려서, 한국이 일본의 채무 일부를 변제해주는 대신 비중 2% 를 담보로 받아 한국이 최대 지분을 가져 실질적으로 남만주를 식민 지배하게 된다. 나중에는 제국주의 성향이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임기도 끝나가서 남만주철도를 통해 만주를 먹으려던 미국의 계획도 흐지부지 되어서 완전히 한국의 세력권이 된다.
- 이선은 비밀리에 라이트 형제를 후원했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실험할 때(1903년) 이선의 특명으로 노백린이 참관한다. 이후에도 한국은 항공기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인덕에 프랑스에게 토사구팽 당한 라이트 형제를 한국에 기술자로 모셔온다. 이후 적백내전 당시 차르의 친구라고 소련에게 버림받은 이고르 시코르스키 역시 이선이 차르와 친한 인연으로 모셔온다.
- 제1차 세계 대전(1914년)에 한국 역시 한영일 동맹을 기반으로 참전하며, 이 과정에서 영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폐지한다. 동부전선에 육군을 파병, 활약하고 페트로그라드를 노리는 독일의 공세를 격파, 승전국이 되는데 성공한다.
- 개화당 독재: 입헌개화당의 장기집권과 일당우위 야권의 미약함으로 개화당-관료-자본가의 유착이 심화되며 엘리트 과두정적인 성향을 뛰게되며 완전한 민주적 입헌군주국으로의 발전을 저해하기 시작한다. 지도층의 오만은 예상 외의 결과를 불러오는데...
- 이선의 적극적인 서구화 정책과 이선 개인의 취향, 그리고 바뀐 역사에서 조선의 황제와 황실 인원들이 서구와 자주 접촉한 결과 조선 황실의 인원 절반이 슬라브 인이거나 혼혈 핏줄이 되었다. 당장 이선부터 마르가리타랑 이어져 이안과 이라를 낳았고 영친왕도 러시아 귀족 영애와 결혼, 이연을 낳는다. 이후 황태자 이진도 타티아나 공주와 결혼하면서 다다음 황제는 아예 혼혈 출신이 될 예정이다. 또한 이진과 타티아나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모후인 타티아나를 통해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2세의 자손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이 될 것이고, 유럽 왕실들과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 과거사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져 복권까지는 되었던 정도전과 김종서가 이선의 주도로 각각 종묘의 태조와 세종의 신위에 배향되고, 류성룡과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신들의 문무 대표로 선조의 신위에 배향되었다. 또한 정인홍, 윤휴, 이징옥 등 과거 조선왕조에서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처벌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재심 절차를 거쳐 사면 복권하고, 정약용 같이 이때까지는 업적에 비해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발굴하여 알리기도 했다. 이후로도 역사 연구와 해석이 선대왕의 공과라는 이유로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을 여지를 없앴다.
- 원래 역사와 달리 강대국이 된 대한제국에서도 파시스트가 탄생했다. 박용만, 김좌진, 신채호[2] 등이 기타 잇키의 저작을 읽고 보리스 사빈코프와 교류하면서 탄생했다. 다행히 이선은 이들을 어느 정도 자기 통제하에서만 활동하도록 한다.
- 이선이 루이 마운트배튼과 마리야 여대공 결혼식을 기념하여 불경기인데도 차르의 자식들에게 1인당 100만달러[3]씩 총 500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지참금으로 제공해서[4] 한국 황제가 부자라고 전세계적으로 소문나게 된다. 결혼식 이후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말하면 꼭 나오는 말이 한국 황제가 어마무시한 부자라는 말이 나온다. 덕분에 영국 귀족들이나 러시아, 독일의 몰락귀족, 각국의 부르주아 영애들이 한국황제 아들인 이안에게 열심히 꼬리를 친다.
- 1932년 세계적인 경제대공황 속에서 대한제국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초빙하여 한국판 뉴딜정책인 용단개혁을 추진하게 되고 내부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비판속에서도 한국경제가 경제대공황을 극복해간다. 덕분에 미국의 루즈벨트가 자신의 뉴딜정책 비판을 한국과의 친선외교를 통하여 정당성을 확보할 정도이다.
6.2. 일본
-
미래인인 이선은 원래 역사의 침략적 본성을 기억하기 때문에 가장 경계하지만, 미쳐돌아가는 제국주의 시대에선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이웃 나라이다. 동맹을 맺고
청일전쟁을 치렀고,
의화단 전쟁에도 함께 파병해서 중국의 고서적들을
약탈하려고지켜내려고 노력하기도 하며, 영일동맹도 한국과 함께 한 3각동맹이 되고, 러일전쟁에서도 우호적 중립으로 길을 빌려주고 군수물자를 제공하며, 만철의 지분을 1/3씩 갈라먹고, 1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령 칭다오를 함께 공략한다.
- 일본의 침략적 본색이 어디로 간 건 아닌지라 이선은 일본 육군의 중추인 조슈 번을 최대한 정치에서 배제해서 북수남진을 따르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외교, 공작, 테러 사주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고, 여기에 약간의 행운[5]도 더해져서 러일전쟁의 무승부로 일본 육군의 등뼈를 꺾은 데 이어 쿠데타 미수로 인해 북수남진이 확고한 대외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만주에 대한 대한제국의 이권을 인정하고 대만 섬, 북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제도[6], 하이난을 얻고 칭다오와 아모이를 기반으로 남중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7] 그런데 이 역시 이선이 의도한 것으로,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심해지면서 중화민국을 확고히 지지한 대한제국이 이득을 보고 있다.
- 그렇다고 일본이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일본제국 근대사를 망가뜨렸다고도 할 수 있는 육해군대신 현역무관제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실각으로 성립되지 못하고, 대한제국이 펼친 공작이 일부 기여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입헌정치가 더 정착될 수 있었다. 러일전쟁 후에는 봉천 전투에서 참패한 육군을 쓰시마 해전에서 승리한 해군이 압도하게 되면서, 해군대신이 육군대신을 잠시 겸임하며 국방성 설립까지 고려할 정도가 되어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도 완화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파리강화회의에선 원래 역사에선 통과되지 못했던 '인종 평등 결의안'도 통과되면서, 반서양 군국주의로 치닫을 가능성도 줄었다.
- 상술한 이유로 인해 한일관계는 상당히 좋은 편이고, 본작을 읽다 보면 이선을 포함한 대한제국 고관들이 원래 역사에서는 한반도 침략의 선봉에 섰던 일본 고관들과 함께 외교협상을 하는 재밌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열심히 따라오는 기특한 동생" 쯤에서 "동아시아의 유이한 문명국으로 함께 할 동지" 정도로 개선되었고, 대한제국은 일본에 경제적으로 예속에 가까웠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꽤 비등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선은 미래인으로서 불편한 감정에 더해 대한제국이 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작중에서는 이선이 일본을 너무나도 잘 다룬 나머지 운요호 사건 이후로 직접적으로 무력 충돌을 하는 악연이 없는데다가 원래부터 일본을 개화의 모델로 삼았던 개화당 인사들은 이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 원래 역사의 근대 일본처럼 폭력과 정치인 암살시도, 쿠데타 시도가 넘쳐난다. 근대 일본의 비대한 군부와 프로이센식 민주주의, 메이지 유신 때 사용된 수많은 정치깡패, 암살자를 지사로 숭배하는 문화 탓에 벌어진 일이고 차이점이 있다면 암살기도 상당수가 실패했고 해군과 문민 정부의 협력으로 제법 문민통제가 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 확산과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훈풍이 불어 원래 역사보다 절제되어 있다.
- 그러나 이선과 일본의 성장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로 한국과 미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일본을 대놓고 견제하고 한국은 산둥반도 문제에서 일본을 견제, 그러면서 연해주와 만주를 차지한 것 때문에 한일관계가 점점 경색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비대하게 성장한 해군의 폭주, 일본의 지사 숭배 문화와 일본 내에서 혁명을 원하는 기타 잇키의 선동질 때문에 여전히 정치적 폭력이 넘쳐서 결국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한다.
- 원래 역사에서 위서로 유명한 다나카 상주문을 이선이 조작해서 미국에 선물한 덕분에 안 그래도 러일전쟁 이후 약화된 일본 육군의 힘이 뿌리채 박살나고 대미 외교관계가 나빠졌다. 물론 다나카 상주문의 내용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서 일본인들도 한국 황제가 조작했다고 생각은 못하고 대충 군축을 위해 일본 인사들이 만들어서 미국에 넘겼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 아무리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군부의 힘이 막강해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동 대학살이 일어난다. 그래도 역사의 변화로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들 중 일부는 살아남았으며 아마카스 사건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인도 대략 40명 정도[8] 사망하였다.
6.3. 중국
- 어그로를 분산시켜 줄 조선이 각성해버려 식민지로 삼을 수 없게된 탓에 열강의 관심이 중국으로 쏠렸다. 그로 인해 원 역사보다 더 심하게 털리고 있다.
- 베트남을 두고 프랑스와 일어난 전쟁은, 조선이 러시아와 인연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해준 덕에 원역사와 달리 무승부 선에서 끝난다.
- 원래대로라면 조선의 역사에 간섭해야 하는 임오군란때 간섭을 못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다. 그 뒤로도 조선에게 신속을 요구하나 강해진 조선이 거부하고 일본이 조선 독립을 지지하여 원역사에서는 청일전쟁이 조선독립전쟁으로 변하여 발발한다. 개혁을 마친 일본군과 어느 정도 개혁이 진행된 조선군에게 패배하고, 남만주 일부를 상실한다. 조선독립전쟁을 기점으로 국운이 꺾이고 동아시아 질서가 와해된다.
- 그 이후에는 원역과 별차이 없이 광서제가 변법운동을 추진하지만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쿠데타로 광서제가 유폐되고, 의화단 운동이 발발하여 열강들이 개입한다. 제국화 된 한국도 같이 개입한 정도만 다른데, 서태후가 광서제를 납치해 시안으로 천도한단 것을 알고 있는 이선이 한국군에 지시해 광서제를 포로로 잡는다. 또 광서제의 호의를 얻기 위해 우대하여, 서태후가 실각하고 청 조정이 다시 정상화되게 돕는다.
- 한국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복권도 한 광서제는 다시 변법을 추진하지만 이미 청은 망조가 든 걸 모두가 아는 상태인지라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결국 쑨원에 의해 혁명이 일어난다.
- 결국 중화민국이 선포되지만, 한국이 혁명지사들을 지원했기 때문에 혁명파들은 한국이 만주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만주와 몽골 등은 중국 본토가 아니라며 청에게 그대로 넘기겠다고 보장한다. 또 원역사와는 정반대로 청의 배신자 원세개가 양강 총독, 청의 마지막 충신 장훈이 북양대신이었던지라 원세개가 청의 통수를 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에서 청에 내전이 터져도 만주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안전보장을 해준 덕에 역사랑 달리 청나라는 망하지는 않고 신장-티베트-몽골-만주를 영토로 삼는 청나라로 존속하게 된다. 또한 중화민국은 청나라가 만들어질 때 만주족들의 한족 학살을 알게 돼서 보복으로 만주족을 학살하자 만주족들도 본인들이 한족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모두 청나라로 도망간다.
- 한편 중화민국은 중국인들의 민주정에 대한 이해가 바닥인데다 청나라를 몰아내면서 생긴 군벌들은 자기네들 따로따로 정치를 하고 청나라가 남긴 빚이며 조약 모두 중국이 계승하는 바람에 중화민국이 혼란스러워진다. 혼란한 중국을 바로잡겠다면서 위안스카이가 총통 자리를 요구, 손문은 양보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아예 독재를 하려고 일본의 14개조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원세개 정권에 대한 신뢰도 추락. 원세개를 몰아내는 내전이 터지고 원세개는 죽는다.
- 그러나 단기서는 강한 지도력으로 청나라를 무찌르려고 자신의 독재정을 펼치고 이것에 반발한 손문과 채악은 호법정부를 선포, 중국은 두동강난다. 그리고 이선은 이 기회에 중국을 완전히 분열시키기로 마음먹는다. 현재 중국은 크게는 단기서가 이끌고 일본이 후원하는 북양 정부와 쑨원이 이끌고 한국이 후원하는 호법정부로 나뉜 상태,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군벌들이 자기들 따로따로 노는 상태다.
- 그 와중에 청나라는 중국의 내전을 기회로 중국 본토로 진군했으나 패배. 이 때문에 오히려 단기서에게 박살 날 위기에 처하자 한국군에게 보호를 요청하면서 완전한 한국의 속국이 된다. 몽골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하여 자치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독립국가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 이선의 부추김으로 일본이 산둥반도나 중국영토 침탈을 가속화해서 일본과의 싸움을 붙인 덕에 중국은 일본산 물품을 불매하지만 자국산은 너무 후져서 대용으로 한국산 물품을 주로 사게 되고[9] 이 때문에 한국공업은 큰성장을 한다.
- 호법정부는 한국을 제외한 강대국들 중에서 그 누구도 호법정부를 도와주지 않고 한국의 도움도 미약하자 소련과 협력하는 국공합작을 시작한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호법정부의 처지를 감안해주어서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 한국의 독립으로 인해 관동에는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진출해있었고 그 결과로 관동 대학살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학살당한다. 덕분에 일본의 지원을 받는 북양 정부는 일본의 압박을 받아 조사를 게을리해서 중국인들의 지지를 상실하고 그에 맞서는 남쪽의 호법정부가 정통 중국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6.4. 러시아 → 아무르 임시정부(→ 전러시아 국민국가)/소비에트 연방
회귀자인 이선이 힘을 얻기 위해서 처음으로 접촉한 열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큰 틀에서 원래 역사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이선의 개입으로 인해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지 않게 된다. 비록 6년 후 암살당하지만, 그동안 원래 역사의 개혁들을 일부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이선은 로마노프 왕가에 은혜를 입혀서 힘을 얻고 조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으며, 이 친분은 두고두고 조선/대한제국의 자산이 된다.
- 이선은 이후 오쓰 사건에서 암살자를 막으려 노력해서 또 은혜를 입힌다. 원래 니콜라이는 별거 아닌 걸로 대범하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선이 그를 부추겨서 조선의 국익에 위협이 되는 일본의 야마가타 아리모토 파벌을 일시적으로 실각하게 만든다.
-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하고 이선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이선은 국가 전략상 친분을 맺어야 하는 영미권과의 관계를 의식해서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사람은 좋지만 무능한 니콜라이를 친서로 배후조종해서 대한제국의 국익을 챙긴다. 물론 러시아 제국 관료들은 그거에 그대로 당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지만, 전제군주국이란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주를 두고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 제국과 대한제국의 국익이 일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친서를 보내서 러시아가 대한을 적대하지 않게 한다.
- 러일전쟁이 1년 늦게 발발한다. 대련의 요새화가 더 이뤄지면서 일본 육군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을 꺾고 싶었던 이선의 공작으로 육군은 승리, 해군은 원래 역사대로 쓰시마 해전에서 참패하면서 무승부로 종결된다.
- 피의 일요일과 대응되는 사건은 그대로 일어났다. 이선의 조언대로 부르주아 계급과의 타협을 통해 여전히 전제적 요소가 강하긴 하지만 입헌군주제로 개혁하고, 스톨리핀을 총리로 임명해서 개혁을 지속하게 되어서, 산업을 육성하고 자영농을 늘리는 성과를 일부 거두게 된다.
- 이선의 개입으로 라스푸틴이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로마노프 왕조의 수명을 조금 늘리는 데 기여했다.
- 레닌의 형이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하는데 성공해서, 레닌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추방되어서 레닌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독일에서 살게 되고, 민족 문제를 중시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면서 볼셰비키-맨셰비키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본인도 독재자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이 된다.
-
1차 대전이 발발하고 원래 역사와 똑같이 졸전을 펼치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데, 이 시점까지 쌓인 역사의 변화로 인해 일단 러시아 제국은 니콜라이가 퇴위하고 미하일 2세로 국체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후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노동당과 사회혁명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결국 퇴위를 선택하고, 러시아 제국은
러시아 연방 민주공화국으로 재편되며, 자발적으로 핀란드와 폴란드의 독립을 승인한다.
임시정부는 레닌이 이선과 맺은 밀약에 따라[11] 전쟁을 지속하는데, 독일이 원래 역사와 달리 서부전선이 아닌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를 얻기 위해서 맹공을 펼치자 대다수가 농민인 병사들의 전의도 꺼지지 않아서 전쟁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도 체결되지 않았다.
- 전후에는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포함해서 각종 개혁안들이 빠르게 추진되고, 폭력을 내면화한 귀환병들이 돌아오면서 러시아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제국의 채무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제국주의적 밀약들을 모두 공개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피지배 민족들의 독립을 선동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된다. 결국 연합국 최고위원회를 탈퇴하고,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연방구성국들이 잇달아 독립을 선언하고 백군이 결성되면서 결국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게 되고, 원래 역사와 비슷하게 두마를 해산하며[12] 소련으로 거듭난다. 이때 현실과 비슷하지만 야당이 허용되는 명목상 다당제가 유지되었다., 이는 권력 장악 과정의 차이 때문이다.[13]
- 원래 이선은 러시아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야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을 설득해서 이를 달성하려고 했으나, 연합국 모두가 소련을 적대하다가 마침 시베리아를 통해 철수하던 대한제국군이 우발적인 충돌을 일으킨 것을 명분으로 개입을 선언하자 기호지세 격으로 개입하게 된다.
- 한편 니콜라이는 친우인 이선의 개입으로 대한제국으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으나, 자식들인 OTMAA만 보내고 본인은 제국에서 책임을 지겠다며 남고, 아내 알렉산드라도 그를 따른다. 한동안 유폐 상태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지만, 백군이 기세를 올리면서 사회혁명당 좌파 소속의 테러리스트가 그를 처형하면서 원래 역사와 똑같은 최후를 맞는다. 알렉산드라는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눈 앞에서 니콜라이가 죽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가서 처형인에게 달려들었다가 우발적인 발포로 죽게 된다.
- 대한제국은 사회혁명당 우파가 중심이 된 시베리아 자치공화국을 통해 개입하려고 했으나, 암살 시도에서 간신히 살아나서 혁명 후 미국으로 망명 갔던 스톨리핀이 귀국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지도자격 인물로 떠오르고, 반 소비에트 세력을 다 통합한 '전 러시아 임시정부'를 형성했다. 백군이 원래 역사에서나 작중에서나 유능한 관료 스톨리핀을 중심으로 통합되고, 원래 역사를 아는 이선이 개입했기 때문에 소련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이른 것처럼 보였으나... 원래 역사처럼 소비에트와 농민들이 백군의 반동을 우려해서 게릴라전으로 전환하고, 점과 선만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대한제국과 하얼빈 귀속을 두고 협상하러 간 스톨리핀이 만주인 아시아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 아직 모르는 상태이다.
- 끝내 러시아 연방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아 구 러시아 제국은 공산국가인 소련으로 개편되었지만 소련과 대한제국의 협상에 따라 내만주는 대한이 접수했으며 외만주와 바이칼 호 일대엔 한국과 소련 사이의 완충국인 극동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그러나 러시아 백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극동공화국으로 대대적으로 망명하고 극동 공화국 내의 극좌파들이 소련의 명령에 불복하면서 테러와 내전이 넘치는 분쟁지역이 되어버린다. 대한제국은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하여 아무르강 이남의 연해주 지역을 극동 공화국으로부터 분리하고 청나라보다 자율권이 조금 더 있는 괴뢰국으로 세운다. [14]
- 소련은 로마노프 왕가가 살아있는 것과 백군이 살아남은게 거슬리지만 내전의 후유증과 대기근이 오면서 내부 사정이 더 급해서 일단 대한제국 문제를 뒤로 미루고 코민테른을 이용해서 식민지 국가 독립을 지지하는 외교책만으로 일단 자본주의 국가들을 상대하는 중이다.
- 이선이 연해주에서 처음으로 대업을 꿈꾸기도 했고 대한과 가까운 곳이다 보니 여러모로 대한제국의 관심이 많은 지역이며 최근에는 땅 투기가 일어난다. 한편 김좌진과 보리스 사빈코프, 박용만이 회담을 가지면서 새로운 사상을 모색 중이다.
- 원래 역사대로라면 러시아를 떠나거나 차마 러시아를 떠날수 없어 소련에 남았다가 숙청, 탄압받은 예술가들이 대규모로 연해주와 대한제국으로 이주 했다. 유명한 이들만 추려봐도 이반 부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미하일 불가코프,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이 건너왔으며 이보다 더많은 인문학자와 예술가가 건너왔다. 이고르 시코르스키 같은 과학자는 덤. 이선은 이들을 대한의 문화발전을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6.5. 중부 유럽
-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이영의 개입으로 암살당하지 않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되도록 전쟁 없이 일을 해결하려고 해서 원래 역사에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날도 평온하게 지나가나 싶었지만, 세르비아에서 흑수단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서 결국 7주 늦게 전쟁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동맹국인 독일에 끌려다니는 것은 원래 역사와 같다.
- 전쟁이 끝나갈 때 즈음 프란츠는 자신의 구상대로 도나우 연방을 출범시키나, 패전의 책임을 지고 퇴위한 후 스위스로 망명한다. 후임인 카를 1세는 입헌군주제로 국체를 바꾸고 나라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 원래 역사와 달리 세르비아가 보인 호전적인 행태가 연합국을 질리게 했고, 윌슨이 미국을 모범으로 삼겠다는 도나우 연방에 호의를 가졌으며, 이탈리아가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성립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성립되지 않고 도나우 연방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구성국으로 생존하게 되었으며 세르비아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만 편입되었다.
- 그러나 도나우 연방은 1923년 경제 위기에 헝가리 사회주의 공화국이 독립하고 뒤를 이어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면서 붕괴되고 만다. 루마니아는 다뉴브연방이 존재하는 역사의 변화로 트란실바니아를 절반밖에 가지지못해 대놓고 헝가리를 침략하려다가 헝가리를 공격하면 베사라비아를 공격하겠다는 소련의 압박을 받고 공세를 포기한다. 덕분에 호르티 미클로시의 진압군이 패배하고 헝가리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계에서 3번째로 수립된 공산주의 정부가 된다.
6.6. 이탈리아 왕국
- 아시아에 식민지가 없는 열강이다 보니 큰 접촉은 없었지만 주세페 가리발디급 장갑순양함을 팔려다가 무산되자 새로운 구매자를 찾기 위해 한국에게 제안하고 이를 판다.
- 파리 강화 회의에서 달마티아를 얻는 것은 실패했지만, 원래 역사와 달리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성립을 막고 쥐트티롤과 이스트리아 반도를 받고,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다수인 피우메는 주민투표로 편입을 결정해서 사실상 얻게 되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이로 인해 승전국이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국민적 분노가 일어나지 않아서 파시즘의 대두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 그러나 영국과 같은 열강들이 이탈리아를 차별하고 공산주의의 위협이 확산되자 결국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이 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변화로 로마 진군은 일어나지 않아서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은 상태는 아니다.
- 결국 무솔리니가 늦춰지긴 했어도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로마 진군을 일으키나 역사대로 추한 모습만 보인다. 물론 더 한심한 이탈리아 국왕은 파시즘 쿠데타를 받아들일 뻔했으나 파시즘을 싫어하는 이선과 우익 쿠데타[15]를 경계한 영국 대사의 개입으로 무솔리니의 반란은 대실패로 끝나고 무솔리니는 스위스로 도망간다.
6.7. 프랑스
강대국이지만 독일과 영국, 러시아에게 밀려 그다지 큰 존재감을 보이진 못하지만 주요 열강으로서 모습을 확실히 보인다. 역사의 변화는 한국과 관련된것이 아니면 큰차이 없이 흘러간다.- 이선이 조선의 독립을 보장, 이 때문에 청나라가 조선이 별문제 없을것이라고 생각해서 베트남과의 전쟁을 오래끌면서 청불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청나라에 적대감을 가지고 조선의 정세에도 개입하며 한국의 독립과 중립화론을 지지한다. 이후 한국과 청나라가 전쟁을 벌이자 역사대로 베트남을 차지한다.
- 한국과의 수교 조건으로 카톨릭과 종교의 자유를 예시로 들었으며 이선은 흔쾌히 허락한다. 프랑스는 러시아와 동맹관계이기에 러시아에 우호적인 한국에게도 우호적 관계를 수립한다.
- 독일의 군사 고문단이 철수하자 한국을 친불 국가로 만들기위해 진급이 적체된 필리프 페탱과 같은 군인들을 군사고문단으로 보낸다.
- 레옹 부르주아의 연대주의를 이선이 지지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극동에도 프랑스 혁명의 사상이 수출되었다며 좋아한다. 민간 여론은 프랑스와 대한제국이 연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한국의 국력이 성장한 몇년뒤 협상국 협상 당시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준 동맹 관계로 맺고 협상국에 참여한다.
- 1차 세계 대전에서는 독일이 동부전선을 우선시하며 베르됭 전투는 안일어났지만[16] 니벨공세에서 원래 역사에서 베르됭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까지 합해져서 어마무시한 사상자가 나오고 일주일만에 전쟁반대 여론이 터진다. 결국 동부전선에 무기를 지원하며 샤를 드골 역시 이때 김광서와 만난다.
-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미권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이탈리아와 함께 연대하며 이탈리아-한국-프랑스의 커피 클럽을 창설하여 영국과 일본에 대항하며 이선 역시 진보적인 황제로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하고 혁명을 찬양해서 이후에는 프랑스와 한국의 관계는 최고로 좋아진다. 워싱턴 조약에서도 이들은 해군력 하위권 동맹으로 서로 협력한다. 한국 역시 반불 활동을 하는 베트남 유학생들을 단속하고 이것에 실망한 한 유학생이 코민테른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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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16일,
알베르 르브룅 대통령,
레옹 블룸 총리를 겨냥한
파벨 고르굴로프의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진다. 해당 인물이 벌인 1932년 알베르 르브룅의 전임자인
폴 두메르 대통령 암살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파벨 고르굴로프가 연해주에 백군 잔당이 대한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완충국, 전러시아 국민국가가 존재한 만큼 백군 잔당이었던 파벨 고르굴로프는 그곳에서 머물며 원역사의 녹색 파시즘에 빠져드는데, 그의 과격함에 보리스 사빈코프마저 학을 떼며 러시아 파시스트 당에서 그를 제명해버렸다.
이후 자신을 러시아 파시스트당 최고평의회 의장이라고 칭하며 원역사대로 남프랑스에 하는데, 원역사와 다르게 남프랑스에 은퇴한 이선이 그곳에 무기한으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운게른에게 영향을 받아 이선을 칭기즈칸과 이반 뇌제의 후계자라고 여기고 있었다.이선은 그의 편지를 읽고 현대에 강림한 환경전사 칭기즈칸이냐며 어이없어하며 알현을 거절했다.
이를 고르굴로프는 이선이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1936년, 프랑스와 소련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자 그는 이를 유대-볼셰비키의 세계전복 계획이 실현되고 있다고 여기며 치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1936년 7월 15일 성 블라디미르 축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폭탄 테러로 알렉세이 황태자가 사망하자 이에 대한 분노로 1936년 8월 16일의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6.8. 독일
이선이 집권한 초반기에는 영국에게 도전하는 패권국이자 빌헬름 2세라는 걷잡을 수 없는 황화론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역사적으로 큰변화는 없었으나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대한제국의 개입과 이로 인한 전후 나비효과로 역사가 크게 바뀌기 시작한다.- 이선은 빌헬름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의화단 전쟁 때 조선과 함께 공사 피살의 피해를 입는 등 작중 바뀐 역사에서 꽤 자주 얽힌다.
-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한국에 군사고문으로 방문하는데 한국의 임진왜란 의병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총력전 사상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팔켄하인이 아시아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러시아가 약하다는 사실을 독일이 알게 되었고 이는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동부전선을 주공으로 삼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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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심판 작전을 시작하면서 유럽 러시아 영토 상당수가 독일에 넘어가고 러시아 군 역시 큰 피해를 입는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양익을 맡은 동맹인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의 무능과 낮은 전투의지, 그리고 소방수로 투입된 브루실로프 장군의 역공과 빠른 대응으로 인해 돈좌된다.
- 이선의 개입[17]과 한국군의 동부전선 참전, 독일이 비밀리에 후원한 레닌이 볼셰비키가 아닌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서 러시아 공화국을 무너트리지도 않아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결국 동부전선의 전쟁은 종료되지 않고 길어지게 된다.
- 결국 페트로그라드에서 러시아를 항복시키려는 마지막 독일군의 공세와 이를 막으려는 6개국 연합군[18]의 싸움이 벌어지고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독일의 동부공세는 완벽히 종말을 맞이한다.
- 그러나 원래 역사와 달리 동부전선이 유지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이 패배했다는 걸 납득 못한 독일 육군 군인들이[19] 대거 자유군단에 합류하면서 원래 역사보다 거대한 강철군단으로 재탄생했다. 거대해진 덩치를 이용해서 아예 쿠데타를 일으켜서 연합국과 전쟁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쟁을 계속한다는 것에 질려버린 독일 국민들이 총파업을 단행, 연합국 역시 개입하려하자 군사 쿠데타는 실패하고 그 결과 오히려 좌익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한다. 총선에서 좌익이 승리한 것 때문에 스파르타쿠스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도 살아남는다.
- 좌익이 승리해도 1920년대 독일 초인플레이션은 막을 수 없었고 그결과 독일에는 극단주의가 성행하게 된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그틈을 틈타 우익민병대인 검은 제국군을 동원, 우익 쿠데타를 일으키나 무솔리니의 실패를 지켜본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히틀러가 주장한 우익혁명이 아닌 강철군단의 사례와 같은 군사 쿠데타를 계획했고 결국 한스 폰 젝트의 국방군에 진압당한다.[20] 결국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무솔리니처럼 스위스로 도망간다.
- 우익 쿠데타를 본 좌익 역시 트로츠키의 요구로 쿠데타를 준비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에서 좌익혁명이 일어날 경우 폴란드가 개입할 거라는 첩보를 이선의 애인 마르가리타에게 들으면서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설득, 좌익 쿠데타는 없던 일이 되고 독일 공산당은 베를린 중앙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민당과 연대하려 시도하며 코민테른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된다.[21]
6.9. 영국
초반에는 그저 별 변화 없이 일본의 후원자로서 러시아랑 친한 이선을 갈구거나 일본을 이용하여 조선을 압박하는 당시 제국주의 초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역사의 변화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영국역사에도 점점 변화가 생기고 영국이 초강대국이다 보니 세계사도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역사랑 달리 이선의 외교와 미국, 러시아의 압박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비슷한 조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한국을 착취못하고 일본과 청의 반발도 생각한 영국은 이선에게 적대적이게 된다.
- 영국령 인도의 이웃나라 티베트를 친러 국가라고 생각하고[23] 침략해서 학살을 일으키나 가장 가난한 아시아 국가를 학살한 것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경악하면서 영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 이선의 노력으로 러일전쟁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영국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원래 역사에서 러시아가 러일전쟁 패배로 힘을 상실하자 루소포비아가 사라져 새로운 위협인 독일에 맞서 러시아랑 동맹을 맺지만 역사의 변화로 전쟁이 늦어지면서 독일의 위협이 러일전쟁보다 먼저 대두. 결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맞서 싸우고 이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할 생각이었는데 일본이 공격하면서 그 계획이 헝클어지자 일본을 방치한다. 덕분에 일본은 원래 역사의 러일전쟁보다 개고생을 한다.
- 영일동맹을 체결할 때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 한국도 같이 끼워넣는다. 처음에는 대영제국이 동방의 소국하고도 동맹을 맺냐고 비웃지만 이후 1차 대전이 터지자 동맹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던 영국인들은 한국을 띄워준다.
-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이 등장하자 다시 루소포비아가 발동해서 한국을 일본을 대신할 새로운 동방의 헌병으로 길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선의 책략으로 인해 한국에게 첨단 비행기와 전차기술만 퍼준 한국군 낚시전설을 당하고 당시 장관이었던 처칠은 친한파 정치인으로 낙인 찍힌다.
- 한영우호를 위해 에드워드 8세가 한국을 방문하지만 친왕비를 희롱하는 바람에 양국간의 외교관계에 큰 문제가 생긴다. 조지 5세는 아들의 성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게 사과를 하고 결국 영국이 한국에게 큰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데일리 메일에 폭로되면서 대규모 스캔들이 발생한다.
- 역사의 변화로 노동당이 자유당과 손잡고 집권하던 중 이재각이 영국과 한국은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는 동지라는 연설을 하게 되고 이것이 영국과 소련간의 외교문제로 번지게 되어 영국은 이기회에 한국에 빚을 진 오리엔탈 스캔들을 무마할겸 한국에 강경대응을 하게 되고 이승만 역시 선거 승리를 위해 영국에 강경대응을 하면서 한국-영국 관계는 더 꼬이게 된다.
6.10. 미국
- 이선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면서 한국 왕자의 방문이 특종이 된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에 가장 부드러웠던 국가 중 하나로 이선에 대해 열광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 빗대어 이선의 모험이라고 할 정도로, 이선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산업적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운산 금광을 미끼로 존 피어폰트 모건과 토마스 에디슨을 만나서 투자를 약속받는다.
- 이선과 만난 톰 소여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이 동양 소년 왕족의 진보적인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직접 전쟁영웅이자 전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를 소개시켜 준다. 그랜트는 군인으로서 희생을 높게 치는 사람이라 신미양요 당시 조선 군인들의 희생을 높게 사며, 원래 역사대로라면 2007년에 돌려주는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를 돌려주는 데 협조한다. 또한 이선의 금광사업에 1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선심을 보이고 미국 사업가들에게 조선이 안전자산이라는 확신을 줘서 투자를 받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 미서전쟁을 일으킬 때 필리핀인들 역시 독립을 하려한다. 이때 역사의 변화로 일본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미서일전쟁으로 확대되고 덕분에 필리핀은 원역사보다는 미국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된다.
-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경우 원역사와 달리 대한이 무시못할 나라가 되어서 친일 일변도는 아니지만 이득을 얻으려는 제국주의자임에는 변화가 없다. 러일전쟁을 이용해 일본에 빚을 지우게 하고 한국과 협력하여 만주의 자산을 경영하는 만철을 설립한다. 만주의 자산을 크게 누리며 한국 역시 미국을 존중해 청나라 경제고문은 늘 미국인으로 채용시켜 준다.
- 라이트 형제의 실험을 이선이 미리 지원하면서 노백린은 최초로 항공기를 보게 되고 프랑스가 라이트형제를 배신하면서 라이트 형제는 한국에 공장을 차린다. 그덕에 한국은 항공기술에 있어서는 최첨단을 달리게 되었다.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은
치머만 전보를 미국에게 친절하게 알려줬고,
우드로 윌슨은 한국은 믿을만한 국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한국과 함께 동부전선으로 원정군을 보내 승리를 거두며, 원정군 사령관 레너드 우드가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다.
- 헨리 포드가 이선의 선거운동 지원을 받아 선거에서 신승하면서 여당인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었고, 덕분에 윌슨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한국의 설득으로 도나우 연방 인정과 미국의 국제연합 합류, 인종차별 폐지를 이뤄낸다.
- 레너드 우드가 원역사의 워런 G. 하딩 대신에 1920년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와 당선된다. 우드는 개입주의자였기때문에 국제연맹에도 탈퇴하지 않았다.
- 역사의 변화로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한 덕에 1921년 소련에 식량구호를 주는 대가로 내전과 국제전 중단을 요구하고 소련은 폴란드와 한국과의 휴전에 동의한다. 그 덕에 극동공화국이 분단되면서 아무르 임시정부가 들어선다.
- 워싱턴 군축조약에서 김유진으로부터 다나카 상주문을 받는다. 원래 역사와 달리 육군을 부활시키려는 다나카의 행동과 일본이 군축회의에서 미국에 양보할 것이라는 한국의 첩보가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다나카 상주문이 진짜라고 믿어버린다.
-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이 실제 역사보다 3개월 가량 늦게 일어난다. 대한제국의 역사가 대격변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사 전체에 미친 영향은 비교적 미미하기에 이선은 자신의 역사 지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인지를 걱정하지만, 1930년 1월에 밀 선물 시장 붕괴를 시작으로 대대적으로 대공황이 시작된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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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91 / 5.0 | 참여자 208명 2023. 12. 25. 기준 |
명군이 되어보세!를 필두로 수준급의 대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인 2019년에 연재가 시작되었다. 대역물로서는 평범한 소재와 스토리지만, 탄탄한 고증과 설정 구축, 그리고 현실적인 전개로 무난한 대역물 입문작으로 추천되곤 한다. 조선 독립전쟁을 다룬 파트에서는 일개 지휘관들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뒤져서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넣을 정도이며, 이왜진스러운 에피소드들도 다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반적으로 리첼렌 작가 이전의 파격적인 역사개변으로 전개하는 대역물도 아니고 과도한 개발, 근대화와 무력에 기반한 국력 상승이 아닌 외교와 협상, 정치, 조약으로 해결하여 이득을 취하는 국가를 묘사한 작품이고 전쟁이나 근대화보다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변해가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대한제국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적당히 현실성 있는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는다. 서술이 상세하기 때문에 다른 근대화 대역에서 어물적 넘어가기 쉬운 한국 기업과 민간의 발전상 또한 자세히 조명한다.
미래인 이선이라는 인물도 매력적인데 동시대 진보적이라고 생각된 서양인들보다 진보적인 동양의 전제군주라는 특이한 캐릭터 성과 자신이 21세기 역사학도 이선우인지, 19세기의 완화군 이선인지를 고민한다던가, 원래 역사에서 끔찍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들이 변화된 역사에서는 어떻게 행복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 모습에 행복을 느끼면서도 잠시도 편히 쉬지 않고 서슬 푸른 20세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기 전에 고종과 미래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와 원래 역사를 알려주면서 나눈 이야기, 그리고 김옥균에게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 김옥균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장면은 상당한 명장면.
그러나 역사 교양서적에 가까운 딱딱한 문체 때문에 일부 인물의 감정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특히 로맨스 전개가 나올 때마다 어색해졌는데 이영과 이서아 커플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갈등 서술에 관해서도 문제가 있다. 갈등을 회피해서 작품이 지나치게 밋밋해졌다. 주인공 이선은 흥선대원군, 본처 아영, 맏아들 이진과 각각 대립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물쩍 넘겼다. 특히 아버지와 사상이 다른 이진과의 갈등을 미루다가 4부에서 터뜨렸는데 그의 캐릭터적 호감이 너무 부족해 재미도 떨어졌고, 갈등 자체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끝내버렸다.[24]
작가가 <여명의 세기> 작가인 청련과 동문이며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허나 3부 후기에서 태사령과 청련은 동일인물이라는 작가의 커밍아웃이 있었다.[25]
8. 기타
- 작가 말에 따르면 원래 저승에서 자신이 조선을 망친 것을 원망하던 김옥균이 내기 바둑[26]으로 옥황상제에게 이겨서 다시 조선에서 환생한다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김옥균으로 하기에는 너무 제약이 많아서 완화군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는 김옥균이 죽는 1920년대에서 끝나는 이야기였으며 김옥균의 죽음은 4화를 들여서 굉장히 길게 서술된다.
- 중국측 인물들은 전부 한글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온다. 청나라 시절 뿐만 아니라 신해혁명 이후에 등장하는 중국측 인물들과 중국/ 청나라 분리 이후 등장하는 만주족 인물들도 포함. 같은 국적이었던 몽골, 티베트, 그리고 한자문화권인 일본인들은 원음 그대로 등장했다.
- 조선/대한제국이 근대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염병이 여러 번 소재로 등장한다. 창작한 평양의 콜레라, 실제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된 만주 폐페스트, 그리고 스페인 독감이 등장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국과 맞물려서 댓글창에서 병림픽이 열렸다.
- 현실과 미래에 벌어질 일을 현실과 대입해서 작품을 전개하기도 한다. 위의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 19 같은 것들과 한국과 일본간에 무역분쟁이 발생하던지 말이다. 러일전쟁에 의병을 빙자한 한국군을 파견하면서 예의 바른 청년들이라고 속이던지 말이다.[27] K-의학[28], NATO드립[29] 아무르 지역 특수군사작전[30], 대한제국-폴란드 방산협력, 지곤조기[31] 등등 가끔 시사 풍자가 곁들어진다. 물론 풍자하기 위해 전개를 트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풍자하는 방식이라 독자들 평은 좋은 편이다.
- 현실 사건을 예언한듯한 서술이 많다. 영국과 한국은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는 동지라던가, 레옹 블룸이 암살될뻔하는 에피소드에서는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가,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활동했다가 북한의 러시아파병이 결정되자 작가가 직접 언급할 정도.
- 작가가 카타르 월드컵을 맞아 포르투갈이 한국을 이기면 대한제국이 마카오를 공격하면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를 손봐주는 전개를 만든다고 공약했으나 한국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32] 대신에 크로아티아가 일본을 이기면서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는 전개, 그리고 브라질이 한국에 승리함으로써 브라질 경제를 파탄시켜서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을 사들이겠다고 한다.
-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안녕? 나는 금괴야!", 폭종의 휘릭 휘리릭 끼요오오옷처럼 유명한 대사이자 밈으로 2천만의 총의가 있다. 이강이 이름 모를 미국 여배우랑 결혼하려고[33] 하자[34] 이선이 절대 반대하면서 이강에게 한 말이고 그러는 정작 본인은 폴란드 여의사랑 로맨스를 즐기니[35] 이게 아니꼬운 이강이 이선을 만날 때마다 놀리고 독자들도 주인공의 내로남불적인 행동을 꼬집을 때 쓴다.
- 2022년 만우절 이벤트로는 표지를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와 바꾸고, 작품 말미에 개국 502년생 김유진, 광무 15년 육군무관학교 수석, 육군대학 수석, 대전쟁 동부전선의 영웅, 대한제국군 최연소 장군에 빛나는 김유진 장군의 만주-시베리아 정벌기가 시작된다!는 드립을 쳤다. 물론 드립으로, 만일 김유진이 작중 세계관에서 환생했다면 작중 갑신정변 때부터 개화파였다는 언급이 있는 김상준은 애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고 개화당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유진도 전생에서도 지긋지긋해 한 군대에 굳이 입대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1]
전작으로는 여명의 세기가 있으며 청련이란 필명으로 연재했다. 서로 동문 사이라고 했지만 사실 동일인물이었다고.
[2]
신채호는 작중에서도 사민주의자이자 다문화주의자라서 현대적 의미의 파시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3]
2024년 기준 약 1890만 달러.
[4]
대신 이선은 전러시아 임시정부가 맡겨둔 러시아 제국의 금괴 50톤을 꿀꺽했기 때문에 지참금이 거액임에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5]
분명히 이선의 공작이 시작이긴 했지만, 이게 야마가타를 테러하거나 작중 창작인 러일전쟁 참전군인이 쿠데타를 꾸미던 육군 고관들을 참살하는 사건으로 이어진 것까지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때 실제 역사를 보면 일본이 지구작가의 편애를 받은 것으로 보여서, 작중에서는 대한제국이 편애를 받는 것으로 썼다고 한다.
[6]
이 두 지역은 원래 역사와 달리
미서전쟁에서 미국 편으로 참전해서 얻었다.
남양군도의 나머지 지역은 일본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 시점에서의 일본의 역량으로는 통치가 힘들었던 데다가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독일의 눈치를 보아서 포기하고 후일을 기약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획득했다.
[7]
군부가 아니라도 어차피 다 제국주의자들인데다가, 영토를 확대하지 않으면 문민 정권이 무너지고 군부 정권이 들어서서 더 모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영토 확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8]
공식적으로는 이승만이 숫자를 뻥튀기해서 160명이 되었다.
[9]
한국은 산둥반도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고 역사의 변화로 만주는 청국의 영토가 되어서 한국과 척질 일이 없다.
[10]
청나라의 존재로 봉천 군벌 존재자체가 없다.
[11]
전쟁을 지속하고, 사회개혁을 전후로 미루며, 만주와 몽골에서 영향력을 제거하라는 것.
[12]
다만 그 성격이 달라져서 작중에서는 레닌이 속한 사회민주노동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볼셰비키'는 사전 그대로의 의미가 되고, 사회혁명당 우파가 백군에 가담한 것을 명분으로 한 친위쿠데타에 가깝다.
[13]
사회혁명당 우파는 사임한 뒤 백군에 가담하면서 자연스레 제외되었으며, 사회혁명당 좌파는 독단적으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를 살해하면서 결별, 아나키스트들은 모스크바의 지시를 거부한 끝에 제거되는데, 현실과의 차이라면 다당제를 파괴하려는 쪽이 레닌인게 아니라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14]
이선의 경우 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지해 대한제국의 전쟁 명분이
아나키스트들의 패악질을 공산주의자들한테 뒤집어씌운것임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제한전을 개시한다.
[15]
소련이 성립된 큰 이유가 우익의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좌익이 큰 세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16]
덕분에
샤를 드골이 포로로 잡히지 않앗다.
[17]
러시아 혁명을 인정하는 대신 전쟁을 지속할 것을 요구했다.
[18]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대한제국, 체코군단
[19]
서부전선의 상황을 모르는 동부전선 군인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에서 잘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항복한 꼴이기 때문이다.
[20]
베를린을 점령이라도 해본 강철군단 쿠데타와 달리 검은 제국군은 베를린 점령조차 못했다.
[21]
단 소련과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니며, 레닌과 트로츠키가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면 급진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2]
이 당시 친일 아시아주의자들의 적은 러시아인데 영국이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친영적인 일본인들에 대한 반감이 생겨 오히려 친러여론이 늘어난다.
[23]
실제로는 러시아로부터 총기 조금 지원받았을 뿐이었다.
[24]
단, 대화를 나누면서 이선이 처음으로 후계자에게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5]
후기 내용으로 보아 <여명의 세기>의 저작권을 되찾아 재출간하게 되면서 동일인임을 밝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26]
김옥균은 바둑을 잘했다고 한다.
[27]
돈바스 전쟁 당시 러시아 의용군들을 러시아가 예의 바른 청년들이라고 변명한 것을 비꼰 것이고 당하는 쪽도 러시아다.
[28]
알릭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에 비타민
K가 좋다는 걸 안 이선이 해조류를 추천하면서 한 말이다.
[29]
Not Action Talk Only 라는 뜻으로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행동 없이
말로만 안보를 수호한다는 드립이다. 여기서는
미국 없는
국제 연맹의 행태를 예견하면서 한 말이다.
[30]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라고 선포한 걸 비꼬는 것으로 여기서는
러시아의 조상인
소련이 당한다.
[31]
이선이 소련과의 전쟁을 1920년으로 미루면서 한 말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한국과 소련의 전면전을 부추겼지만 이선은 1920년쯤에 힘을 길러서
전면전을 한다는 핑계로 전쟁을 미뤘고 1920년이 되자 열강들 역시 소련에 유화적이 되면서 흐지부지된다.
[32]
팬들 사이에서는 마침 대한제국 내 파시즘 가능성을 다루던 연재 도중에 공약을 한지라 현실
대한민국이 소설 속
대한제국을 파시즘 국가로 만드는 걸 막았다는 농담이 있다.
[33]
이강은 이를 위해 황위계승권을 포기할 생각도 가졌다.
[34]
이선이 자기가
급사하면 황위를 이를 수 있는 개혁적인 인물이
이강뿐인데 만약
이강이 여배우랑 결혼하면 보수적인 조선의 특성상 황위에 못 오르니 무능한
고종이나 나이 어린
이영이 그 자리에 집권하고 그러면 조선은 망한다고 생각했다.
[35]
처음에는 조선에 여의사가 부족해서 데려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결국 선을 넘는다.
[36]
이선은 역사의 개변으로 자신도 모르는 인물이 등장했다고 받아들이면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하여 사직을 윤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