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모리스 개빈 James Maurice Gav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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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7년 3월 22일 |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사망 | 1990년 2월 23일 (향년 82세) |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장 |
복무 기간 | 1924~1958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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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브루클린출신으로 아일랜드 이주민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원래 성은 넬리였고 그가 3세때 아버지 제임스 넬리 라이언이 집을 떠났고 생모는 개빈가문에게 제임스를 입양하며 개빈이라는 성을 얻게되었다. 10세부터 신문배달을 했고 1차대전 당시 미용실에서 일을 했고 학교에서 남북전쟁에 대해 배웠다. 그 후 군인이 되고싶다는 꿈을 가졌고 1920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24년 육군 기갑 소위로 임관했다. 파나마에서 소위시절을 보냈고 여러 직책을 맡았다.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참전하자 윌리엄 C. 리, 윌리엄 P. 야보로, 절친인 윌리엄 T. 라이더와 함께 공수부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1942년 제82공수사단의 최초 설립 인원이 되었다. 초대 사단장은 매튜 리지웨이였고 1943년 이탈리아 전역에 최초 투입되어 전투를 치렀다. 주로 시칠리아에서 전투를 치렀다. 전역이 끝난 후 준장으로 진급했고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사단장이 되었다. 이때 37세로 미 육군 최연소 사단장이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되었고 마켓 가든 작전, 벌지 전투에서 진두지휘하며 공을 세웠다.
전후에도 공수부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특히 1950년대 미 공수부대가 핵폭발 후 방사능 오염지대에서도 이동을 할수 있는 다목적 전투 차량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M113 APC 장갑차에 105mm 곡사포를 포탑이 없이 차체에 바로 장착시켜 제작한 기갑차량이었다. 이 차량이름에 개빈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리고 지상군 부대 편제 체제를 바꾸는 시도를 행하기도 했다. 당시 미군에선 핵전쟁 상황에 맞춰서 좀 더 유연하고 가벼운 형태의 편제를 구성해야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여겼고 새 편제 방식을 연구하였는데 ROCID(Reorganization of the Current Infantry Division), 이른바 '펜토믹 사단'(Pentomic division)이었다. 사단 예하의 연대들을 5개의 전투단으로 쪼개서 구성하고, 각 전투단은 5개 소총 중대와 지원 부대로 구성했다. '펜토믹'이라고 불린 것도 이렇게 5개의 전투단으로 구성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펜토믹 사단' 개념을 구상한 사람이 바로 제임스 개빈이다. 그러나 82공수부대와 101공수사단에 시험적으로 편제를 적용하고 연구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기존의 편제에 비해 뚜렷하게 우월한 점도 없는데다, 일부 분야는 오히려 지휘관의 부담이 더 커지는 등의 단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곧 폐기되었다.
1958년 중장으로 퇴역했고 1961년에는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맡았다. 1990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