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생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송영선(1919)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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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colcolor=#fff> 대한민국 제17·18대 국회의원 송영선 宋永仙 | Song Young-s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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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3년 8월 9일 ([age(1953-08-09)]세) |
경상북도 경산군 와촌면 계전리[1] | |
본관 | 은진 송씨 |
학력 |
온정국민학교 (졸업) 경산여자중학교 (졸업) 경북여자고등학교 ( 졸업)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 영어교육학 /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 영어영문학[2] / 석사[3])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 (매스컴학 / 석사)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 ( 국제정치학 / 박사) |
종교 | 개신교 ( 장로회)[4] |
소속 정당 |
|
의원 선수 | 2 |
의원 대수 | 17, 18 |
약력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교사 경북대학교 강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5번 / 한나라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4번 / 친박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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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출신 정치인. 본관은 은진(恩津).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
1953년 8월 9일 경상북도 경산군(現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에서 태어났다. 경북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9년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영어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매스컴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4년 12월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경북여자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회장, 총여학생회장, 응원단장 등을 지냈다. # 경북대학교 졸업 후에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영어 교사, 경북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고,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해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그리고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소장, 한국 안보포럼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2020년에는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정보학과에서 특임교수,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2.2. 정치인 시절
한국국방연구원 재직 시절인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 여론 속에서 국군의 비전투 부대[5]의 파병에 대한 비판이 정계,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강도 높게 제기된 상황에서, TV 토론 등에서 적극적으로 파병 찬성을 주장하면서 처음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당연히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전쟁을 두둔한다며 비판받았고, 보수 진영에게는 맹렬 안보 여전사로 칭송받았다.[6] 이러한 유명세를 바탕으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에 공천, 당선되었다.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막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 계열에 의해 당내 공천에서 탈락되었고, 이에 친박연대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재선했다. 이 시기 대구 달서구 병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친박연대 중앙당 대변인을 맡으며 포기했다. #
2012년 2월 6일 미래희망연대가 새누리당에 흡수합당되자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달서구 을 출마를 선언했다.[7] 그러나 공천을 받지 못 하고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민주통합당 최재성 후보에 큰 표차로 밀려 낙선하였다. 그동안 비례대표로만 당선되다가 처음 지역구에 출마해서 낙선된 것이었는데, 송영선이 하도 인기가 없어서 최재성이 당선되었다는 푸념[8]까지 있었을 정도로 지역에선 크게 어필을 못했다. 애초에 계속 나오던 심장수의 자리를 빼앗고 나왔단 이미지도 있었고...[9][10]
2.3. 이후 근황
허나 후술된 뇌물 논란으로 정치권에서는 퇴출되었다. 이후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에 북한 및 외교/국방 관련 패널로 종종 출연하고 있으며, TV조선 강적들에 패널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선거 제도 관련해 돈없는 사람은 정치 못한다는 뉘앙스의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 걸 보면 부정부패 논란과 관련해 아직도 본인은 억울함이 더 큰 모양.제19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17년 6월부터는 유튜브에 '시사 360'이라는 이름의 개인 채널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주로 외교 안보 관련 현안들에 관한 주장을 담은 2 ~ 30여분 분량의 동영상이 올라온다.
수도권 지역구는 노답이라고 생각했는지 21대 총선에서는 TK이자 보수의 텃밭 중 상텃밭인 경북 경산시 출마를 희망하고 있다. 마침 고향 지역구인데, 현역 4선 최경환 의원이 구속되고 당협위원장직도 박탈되어 다음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제로기 때문. 다만 이번 당협위원장 공모에서만 무려 11명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다른 후보보다 고스펙인 재선 국회의원이라 해도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11] 같은 청와대 수석급 인물도 있고 이덕영 원장 같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표밭을 갈고닦아온 지역친화적인 후보군도 있기 때문에 당협위원장 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꽤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는 김문수, 차명진과 함께 릴레이 삭발에 동참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기독자유당 비례대표 후보 5번으로 내정된 것이 밝혀졌다. #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대구 동구 갑에 예비 후보를 지원했다 취소하고 서울 송파구 병 공천을 신청했다가 컷오프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느닷없이 대구 동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지만 결국 3위로 낙선[12].
2021년 8월 5일 윤상현 의원, 이은재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의힘으로 복당 처리되었다. #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지지 선언을 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중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
3. 사건사고
- 한국국방연구원 재직 시절인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 여론 속에서 국군의 비전투 부대[13]의 파병에 대한 비판이 정계,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강도 높게 제기된 상황에서, TV 토론 등에서 적극적으로 파병 찬성을 주장하면서 처음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 해 가을에 미국이 다시 추가 파병을 요청한 후에도[14], 역시 앞장서서 파병 찬성론을 내세웠다. 여기서 나온 "미국을 감동시켜야 한다", "위험수당 200만원만 주면 갈 사람이 수두룩하다", "파병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게 바로 어떤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거지 근성", " 신용불량자같은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는 망언으로 두고두고 화제를 일으켰다. 국방부는 송영선을 대변인으로 내정했다가 철회했는데, 이 때의 파문이 원인이라는 게 정설.
- 200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해병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자[15] 남자화장실로 달아나 2시간 동안 숨는 추태를 부렸다.
- 2008년 친박연대 대변인이었을 당시 박근혜의 팬클럽 박사모와 당직자간의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정작 당직자 편이 아닌 박사모의 편에 있었다. # 당내 주류는 서청원의원 계열이였고, 송영선은 홍사덕의원과 함께 대표적인 비주류 인사였다.
- 2011년의 9.15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북한의 사이버전에 의한 사건이 분명하다"고 주장했으나,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부랴부랴 취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모 사업가를 만나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내가 차기 정부의 국방장관이 될 수 있다"면서, 선거 과정에서 진 빚을 갚을 명목의 금품을 요구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dDwWCyGmGOc|이러한 대화 내용을 담은 육성 파일이 언론에 폭로'''되어]]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그리고 당연히 사건 직후 새누리당에서 제명되며 사실상 정치권에서 퇴출되었다.
- 2016년 7월 16일에는 JTBC ‘밤샘토론 - 사드 배치, 한국 안보에 약일까 독일까?’ 편에 출연해서 중국이 사드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며 "20년 전 11억 거지떼들이 어디 이렇게 겁도 없이"라고 발언해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하지만 이 발언이 국외에도 보도되며 논란이 되자,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하며 한중관계에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소감을 남겼다. 자세한 내용은 송영선 의원 혐중 발언 논란 문서 참고.
- 2018년 12월 8일, KTX 탈선 사고에 대해서 이것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트위터를 올렸다. # 기사에 따르면 "일산동구 백석역 배관 폭발사고와, 서울 KT통신구 사고 등도 모두 북한의 공작 계획대로 되고 있는 가능성이 90%이상"이라고 까지 주장했다고 한다.
4. 기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여옥과 함께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자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둘 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위에 소개된 2016년 7월의 혐중 발언 직전에는, 서울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게 예의라고 발언했다가 구설수에 휩싸이기도 했다. 본인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우리가 국내에서 열리는 자위대 행사에 너무 지나치게 예민하고 자의적인 반응이다"라는 입장. 위 중국 발언과 연계시켜보면 아무래도 한미일 삼각동맹을 아주 중요시 하는 듯.[16]
현재까지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다.
5. 선거 이력
||<tablebordercolor=#e61e2b><tablewidth=100%><tablealign=center><rowbgcolor=#e61e2b><tablebgcolor=#fff,#1c1d1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
7,613,660 (35.76%) | 당선 (5번) | 초선[17]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미래희망연대| |
2,258,750 (13.18%) | 당선 (4번) | 재선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경기 남양주 갑 |
[[새누리당| |
46,722 (41.85%) | 낙선 (2위) |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동 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965 (4.50%) | 낙선 (3위)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17대 총선 (한나라당 비례대표 5번) | 19대 총선 (경기 남양주시 갑) | |
21대 총선 (대구 동구 을) | }}}}}}}}} |
6.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3 - 2008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8 | 탈당[18] |
[[미래희망연대| |
2008 - 2010 | 입당 |
[[미래희망연대| |
2010 - 2012 | 당명 변경 |
|
2012 | 합당[19] |
[[새누리당| |
2012 - 2017 | 당명 변경 |
[[자유한국당| |
2017 - 2019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9 | 탈당 |
[[기독자유당| |
2019 - 2020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탈당 |
[[자유한국당| |
2020 | 복당 |
[[미래통합당| |
2020 | 합당[20]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2021 | 탈당[21] |
|
2021 - 현재 | 복당 |
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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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
은진 송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송광웅과
송강호 전 경북지방경찰청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2]
영어학 전공
[3]
석사 학위 논문 :
不定詞補文(부정사보문) 上昇規則(상승규칙)과 同一名詞句(동일명사구) 削除(삭제)(1979).
[4]
사랑제일교회에 출석 중이다.
[5]
서희-제마 부대로 명명되었다.
[6]
이 시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미국 정부에 대한 반감, 2002년 신효순-심미선 장갑차 사고, 수평적 한미관계를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의 집권 시절 등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맞물려 한미관계가 정치 진영간 논쟁의 핫 이슈가 되었던 때였다.
[7]
사실 달서구 병은 똑같은
친박연대 출신
조원진이 있어 공천을 신청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달서구 을은
윤재옥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공천을 받았다.
[8]
최재성은 지역구 관리를 못 한다는 평이 많았다. 18대 총선만 해도 출구조사에서 경합열세였으나, 개표 결과 친박연대 후보가 표를 상상 이상으로 갉아 먹어 당선되었다.
[9]
'왜 고향인
TK에서 출마 안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물론 처음에는 송영선도 현역 4선 중진
이해봉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
달서구 을에서 출마하려고 했었으나
# 알다시피
대구는 새누리당 텃밭이라서 경쟁률이 높은 데다 연고가 없고 고향인
경산과도 떨어진
달서구에서는 공천을 못 받았기 때문. 그렇다 보니 연고도 없고, 상대적으로 야권에 더 호의적인 수도권에 출마했다가 패한 것이다.
[10]
여담으로 당시 공천을 두고 경쟁했고
경북여고 후배이기도 한
조은희는 2014년
6회 지선에서 서울
서초구청장에 당선되어 본인의 능력으로 구청장 재선을 거쳐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초구 갑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송영선을 대신해 공천을 받은
윤재옥은 이후 달서구 을에서 내리 3선을 하며 중진으로 성장했다.
[11]
이 쪽도
20대 총선에서 대구 중 경산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서구 출마를 시도했으나 지역 기반이 탄탄한 현역
김상훈 의원에 밀려 공천받지 못했다.
[12]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했던
윤창중도 대구 동구 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4위로 낙선했다.
[13]
서희-제마 부대로 명명되었다.
[14]
이듬해 3,000여명의 재건지원 부대인 '자이툰 부대' 파병으로 이어졌다.
[15]
당시 일행은
김학송,
공성진 등.
[16]
보수 진영 대부분 한미일 안보 '공조'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송영선은 그 가운데서도 일본과의 '동맹'을 적극 주장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간 쪽으로 분류된다.
[17]
08.3.23 의원직 상실(한나라당 탈당에 따른 자동상실)
[18]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
[19]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
[2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
[21]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