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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부장관 (1948~19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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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조판서 · 대한제국 외부대신 · 임시정부 외무부장 | }}}}}}}}} |
송민순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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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대한민국 제34대 외교통상부장관 송민순 宋旻淳 | Song Min-soon |
|||
출생 | 1948년 7월 28일 ([age(1948-07-28)]세) | ||
경상남도
진주부 (現 경상남도 진주시) |
|||
본관 | 은진 송씨 | ||
재임기간 | 제6대 외교통상부 차관보 | ||
2005년 1월 5일 ~ 2006년 1월 25일 | |||
참여정부 초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
2006년 1월 27일 ~ 2006년 11월 30일 | |||
제34대 외교통상부장관 | |||
2006년 11월 10일 ~ 2008년 2월 29일 | |||
제5·6대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 |||
2015년 3월 2일 ~ 2017년 5월 1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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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배우자 | 이명숙 | |
자녀 | 슬하 1남 1녀 | ||
학력 |
마산중학교 (
졸업) 마산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 독어독문학 / 학사) |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의원 선수 | 1 | ||
의원 대수 | 18 | ||
경력 |
제9회
외무고시 합격 외무부장관 보좌관 대통령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 ( 문민정부) 외무부 북미국장 주폴란드 특명전권대사 ( 국민의 정부) 외교통상부 기획관리실장 외교통상부 차관보 6자회담 대한민국 수석대표 초대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참여정부 / 장관급) 제34대 외교통상부장관 (참여정부)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4번 / 통합민주당) 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 제5·6대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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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외교관. 참여정부 마지막 외교통상부장관으로 재직하며 이종석 통일부장관, 윤광웅 국방부장관 등과 함께 당시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던 인물로 꼽힌다.2. 생애
1948년 경상남도 진주부에서 태어났다.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26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1970년 봄에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 있을 적에 자신이 왜 군대에 와 있나 생각하다 주변의 원심력을 우리 스스로가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원심력을 줄이고 구심력을 키워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해 그때부터 시간이 나면 탄약고 옆의 작은 창고에서 춘천 시내의 헌책방에서 산 책들을 밑줄 쳐가며 읽었다고 한다.[1]
3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3년 학교로 돌아와 외교관 시험을 준비했다. 1975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주 독일, 인도, 미국,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1990년대에는 SOFA 개정 작업을 수행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4자회담, 6자회담 등의 북핵 관련 다자협상에 참여하였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의 9.19 공동성명 타결 직후의 모습. 가운데가 송민순이다. 맨 왼쪽은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은 북한측 대표였던 김계관 외무성 부부상)
참여정부 전기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에서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북핵 6자회담의 한국측 대표로 활동하며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공헌했다. 이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무현 정부 후기인 2006년 1월부터 11월까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역임한 데 이어서, 2006년 12월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로 공석이 된 외교통상부장관직에 임명되어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끝난 2008년 2월까지 재직했다. 외교통상부 장관 재임 중이던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념적 성향이 다수의 진보 인사로 구성된 참여 정부 내에 김병준과 더불어 보수 인사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현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유엔 평화유지활동 파견절차법안, 공적개발원조기본법안 등을 제출하였다.
이후 정치에서 은퇴하였고, 2015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이 커지자 2017년 4월에 사임했다.
3.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논란
2016년 10월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언론이 이 책의 한 구절을 포착했다.[2] 자세한 내용은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 항목 참조.
4.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808080>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통합민주당(2008년)| |
4,313,645 (25.17%) | 당선(4번) | 초선 |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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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 명단 |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 <colcolor=#D6C94D> 김진표 → 이헌재 → 한덕수 → 권오규 | |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 윤덕홍 → 안병영 → 이기준 → 김진표 → 김병준 → 김신일 | |
과학기술부장관 →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 박호군 → 오명 → 김우식 | |
통일부장관 | 정세현 → 정동영 → 이종석 → 이재정 | |
외교통상부장관 | 윤영관 → 반기문 → 송민순 | |
법무부장관 | 강금실 → 김승규 → 천정배 → 김성호 → 정성진 | |
국방부장관 | 조영길 → 윤광웅 → 김장수 | |
행정자치부장관 | 김두관 → 허성관 → 오영교 → 이용섭 → 박명재 | |
문화관광부장관 | 이창동 → 정동채 → 김명곤 → 김종민 | |
농림부장관 | 김영진 → 허상만 → 박홍수 → 임상규 | |
산업자원부장관 | 윤진식 → 이희범 → 정세균 → 김영주 | |
정보통신부장관 | 진대제 → 노준형 → 유영환 | |
보건복지부장관 | 김화중 → 김근태 → 유시민 → 변재진 | |
환경부장관 | 한명숙 → 곽결호 → 이재용 → 이치범 → 이규용 | |
노동부장관 | 권기홍 → 김대환 → 이상수 | |
여성가족부장관 | 지은희 → 장하진 | |
건설교통부장관 | 최종찬 → 강동석 → 추병직 → 이용섭 | |
해양수산부장관 | 허성관 → 최낙정 → 장승우 → 오거돈 → 김성진 → 강무현 | |
기획예산처장관 | 박봉흠 → 김병일 → 변양균 → 장병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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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 최규식 | 이미경 | 박영선 | 전병헌 |
김성순 | 조경태 | 홍영표 | 신학용 | 김영진 | |
장병완 | 강기정 | 김동철 | 이용섭 | 박병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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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천정배 | 최재성 | 박기춘 | 안민석 | |
백원우 | 조정식 | 김부겸 | 문학진 | 우제창 | |
박우순 | 송훈석 | 최종원 | 홍재형 | 오제세 | |
노영민 | 변재일 | 이용희 | 정범구 | 양승조 | |
장세환 | 정동영 | 이춘석 | 이강래 | 최규성 | |
정세균 | 김춘진 | 박지원 | 김성곤 | 주승용 | |
우윤근 | 김효석 | 박상천 | 김영록 | 유선호 | |
이윤석 | 이낙연 | 강창일 | 김우남 | 김재윤 | |
이성남 | 박은수 | 최영희 | 송민순 | 전혜숙 | |
전현희 | 서종표 | 신낙균 | 김상희 | 박선숙 | |
안규백 | 김유정 | 김진애 | 김학재 |
}}} }}}}}} |
[1]
'남들이 내린 '선고'에 의하여 나라가 분단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선고를 받아야 했을까. 주변국들의 이익에 따라 한민족이 나뉘어서 이용당했다. 주변의 원심력을 우리 스스로가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원심력을 줄이고 구심력을 키워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때부터 시간이 나면 탄약고 옆의 작은 창고에서 춘천 시내의 헌책방에서 산 책들을 밑줄 쳐가며 읽었다.' (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창비, 2016, 21쪽.)
[2]
동아일보가 최초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 그가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흠집내기 위해 회고록을 낸 것 아니냔 의혹이 일자, 그는 고작 몇 페이지 들먹이자고 550p 가까운 회고록을 썼겠냐며 이런 논란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