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6:40:20

소그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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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무역3. 지리적 요건4. 종교5. 소멸6. 후예7. 여담8. 같이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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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Sogd人, 속특 粟特)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사는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이란계 민족으로, 마사게타이의 후손으로도 추정된다. 서기 3세기부터 8세기까지 돌궐 제국의 비호 아래 동서무역을 장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어로는 소그드어를 사용했다.

소그드인들은 자신들의 무역 네트워크를 지켜주고 도시의 성벽을 보호해주는 튀르크인 전사들과 대개 평화적으로 교류하며 서로간의 통혼 혼혈도 잦았다. 유목 제국은 전사 집단에게 사치품을 주어 위신을 세워주어야 전사들의 충성을 받을 수 있는데, 돌궐 제국은 소그드인들의 동서 무역을 통한 무역 수입만으로 이 문제를 큰 전쟁 없이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2. 무역

주로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였으며, 동서남북로 중국 인도, 이란 그리고 북방 초원지대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그드인들은 국제 경제 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소그드인의 문화와 무역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소그드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가서 장사를 하면서 고국에 있는 친척들과 편지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소그드인은 다른 지역에 가서 장사를 할 때도 상업 공동체를 구성하고 본국과의 연락 체계를 유지했으며, 심지어 중국에서도 소그드인의 우편망이 기능하고 있었다. 둔황 근처 옥문관 근처에서 서기 31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그드어 소그드 문자로 쓰여진 편지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들은 사업상의 내용 외에도 흉노에 의해 낙양 약탈 영가의 난 소식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혼란한 사건과 교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모든 편지들은 규격화된 형태로 주소가 적혀 있고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마르칸트, 호탄, 누란, 둔황 및 다른 지역에 있는 소그드인들이 기존의 우편 체계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나타낸다.

당시 편지들을 보면 소그드인들의 평균적인 산수 실력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뛰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서신에는 이자와 예치금을 비롯해서 소포 무게 및 상품의 분할 관련한 내용이 많았다. 소그드인 무역 상인들은 단순히 물건만 들고 나른 것이 아니라 선하증권과 신용장을 읽고 썼으며 곱셈 나눗셈에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계약을 성사시키고 집행하는 법,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법, 환전하는 법,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이루어지는 복잡한 금융거래를 집행하는 방법을 이해해야만 했다. 고대 소그드인들의 체계적인 무역과 금융 시스템은 중세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의 금융업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처럼 정교한 수준의 수학이 보편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 대상들의 사회는 조그마한 강점이나 사소한 실수가 곧 손익을 결정하던 경쟁 세계였기 때문이다.

소그드인이 진출한 지역은 동아시아 외에도 동로마 제국을 포함한 유럽이 있었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소그드인들은 에프탈 서돌궐 제국에게 안정적인 수입만 제공해 준 것뿐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생산되는 여러 공산품을 직접 공급하고 외교관으로 봉사하는 등 이들 유목민들이 단순한 전사집단에서 국가로 성장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소그드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교를 바른다는 중국 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장사에 수완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 부모가 아교를 바르고 금화를 쥐어주었다. 손에 들어온 을 아교 바른 것처럼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또 에는 을 발라 주었는데 이것은 장사할 때 꿀처럼 달콤한 화술로 거래 상대를 뼛속까지 휘어잡으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서돌궐이 소그디아나를 정복한 뒤에도 이란 사산 왕조 동로마 제국으로 보내는 사신으로 소그드인을 보냈다. 수나라 때에도 소그드인들과의 교류가 이어졌으며, 당나라가 현 신강 지역에 튀르크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안서도호부 위구르가 점령할 때 지원하였다.

중동의 소그드인들은 정치적으로도 우마이야 왕조에 맞서 호라산 압바스 세력을 후원시켜 아바스 왕조 성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추정되는데 이는 최근에 제기되고 연구되는 가설로 아직 정설은 아니다. 당나라에 체류하던 소그드인들이 안녹산의 난을 지원했다 실패한 것과 대조적이다.

3. 지리적 요건

파일:Sogdiana-300BCE.png

소그드인들은 오늘날의 타지키스탄 후잔트를 중심으로 거주했으며 트란스옥시아나의 사마르칸트 부하라가 이들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로 소그디아나(소그디스탄)로 불렸다. 특히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를 비롯한 트란스옥시아나 남부는 토지가 기름져서 쿠샨 왕조의 개간 사업 이후 농업이 발달했고 수공업 또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4대 발명품이라 불리는 중국의 발명품들과 유리, 향료, 약재 등 뿐만 아니라 코끼리 기린 등의 동물들까지 소그드인들을 통해 동서로 전파되면서 둘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 덕분에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그 당시 교역이 활발한 국제도시가 되었다. 훗날 이 지역들은 튀르크족이 이주해오면서 튀르크족의 땅이라는 뜻의 ' 투르키스탄'이라고 불리게 된다. 다만 소그디아나 지역 뿐 아니라 다른 트란속사니아 서부, 호라산과 호라즘, 일리 강 유역, 페르가나 계곡, 알티샤르까지 합쳐서 투르키스탄이라고 불리게 된다.

4. 종교

소그드인들은 개방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동로마 제국과 여타 유럽 국가에서는 기독교인처럼 행동하고, 인도와 중국에서는 불자처럼 행동했는데, 이는 이들이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마니교를 믿고 공부하면서, 여러 종교 문화에 대한 기초 교양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학다식하고 개방적인 소그드인들은 인도의 불교 관련 문헌들, 마니교 경전, 조로아스터교 등의 여러 종교들을 중국으로 전달하는 등 여러 종교가 세계 곳곳에 전파되는 데 기여했다.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도 조로아스터교 사원들이 다수 들어서 있었는데, 이 사원을 드나들던 신자들은 주로 장사를 하러 중국 땅으로 건너온 소그드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아 출신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육로 무역보다는 해상 무역을 선호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중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명교(明敎)라 칭했다.

5. 소멸

파일:Afrosiab2.jpg
아프라시압 유적에 남아있는 소그드 양식의 뾰족한 화살 구멍

이렇듯 동서를 연결하며 실크로드 역할을 해왔던 소그드인들은 8세기 무렵 이슬람 무슬림화된 이후 9세기 무렵 페르시아 사만 왕조에 편입되었으나, 13세기 중세 흑사병 창궐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실크로드 교역의 절정기였던 13~ 14세기에는 소그드인들 대신 토하라인 위구르 제국 튀르크인 간의 혼혈인 위구르인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치게 된다.

소그드인들과 다르게 몽골 제국과 친하면서 소그드인 못지않은 교양을 지녔던 이들 위구르인들은 몽골 제국의 행정 관료로 활약하면서 유라시아 경제 자체를 통째로 주무르기도 하였다. 소그드인들은 14세기 이슬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으나 중앙 유라시아 전역이 이슬람화하고 이들도 마니교 대신 이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특색을 잃고 사실상 동화되면서 소그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소멸되었다.

6. 후예

오늘날 타지키스탄에 거주 중인 야그노비인이 소그드인의 직계후예로 여겨진다. 이들의 후손 중 하나인 타지크인들은 16~ 17세기에는 우즈베크인에게 말을 수입해서 파슈툰족에게 말을 되파는 제한적인 중개무역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수출한 말들은 최종적으로 무굴 제국에서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 아시아 대륙 내륙의 무역이 쇠퇴하고 18세기 중반부터 제국의 상태가 약해지면서 무굴 제국의 지주들의 재력이 감소하고 전략 물자로서의 말의 가치가 점점 감소하자, 19세기에 실크로드 육로 무역은 붕괴되고 타지크인과 야그노비인들은 가난한 목동으로 전락해버렸다. 러시아 제국에게 합병된 이후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부하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파일:2DDEA4B1-DAAA-47DD-A97B-0BE1372B83EF.jpg

현대 타지키스탄 수그드 주 야그노바 계곡 등에 거주하는 야그노비인 야그노비어는 학계에서 종종 신 소그드어(Neo-Sogdian)라고 부르면서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한다.

야그노비인들은 구당서의 기록과 같이 지금도 아기가 태어나면 꿀을 먹이고 손에 동전을 쥐어주는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7. 여담

  • 고구려 온달 온사문, 신라 온군해 등의 성씨가 온(溫)인 점을 들어서 소그드인 계통이 아니었나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의 영역일 뿐이다. 적어도 신라의 온군해의 경우에는,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던 중, 바다 위에서 고구려의 군사들을 만났을 당시 김춘추와 옷을 바꿔입고 대신 죽은 인물이다. 정말로 소그드인 계통이었다면 대대로 오랜 세월 혼혈되지 않은 한 외모가 확 튀었을 텐데, 그랬다면 고구려인들이 속아넘어갈 리가 없다.
  • 위의 가설과 비슷하게 처용가에 등장하는 처용 또한 소그드인 혹은 서역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 발해 유적지에서 소그드 주화가 발굴되고 있으며,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그드인 공동체가 발해의 상공업에 있어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발해에 머물던 소그드인들은 주로 발해의 특산품인 말과 모피를 당나라의 곡식이나 옷감과 교환하는 일을 맡아 보면서 발해 귀족들에게 여러 사치품을 공급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안녹산이 절도사이던 시절 발해에서 수입한 말을 거래하는 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사서의 기록으로도 교차 검증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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