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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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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18대 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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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당 제6대 황제
현종 | 玄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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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685년 9월 8일 | ||
당
동도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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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 712년 9월 8일 | ||
당
장안 황궁 (現 산시성 시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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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62년 5월 3일 (향년 76세) | ||
당
장안 흥경궁 (現 산시성 시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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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태릉(泰陵) | ||
재위기간 | 당의 황태자 | ||
710년 7월 28일 ~ 712년 9월 8일 | |||
제6대 황제 제18대 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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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 | |||
당의 태상황 | |||
756년 8월 12일 ~ 762년 5월 3일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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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본관 | 농서 이씨 | |
휘 | 융기(隆基) | ||
부모 |
부황
예종 흥황제 모후 소성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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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6남 11녀 중 3남 | ||
배우자 |
정후
폐후 왕씨 서후 정순황후[1], 원헌황후 후궁 매비 강씨, 귀비 양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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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4남 30녀 | ||
아명 | 이삼랑(李三郎) | ||
작호 |
초왕(楚王) → 임치군왕(臨淄郡王) → 평왕(平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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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현종(玄宗) | ||
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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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지도대성대명효황제 (至道大聖大明孝皇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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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 | 천가한(天可汗) | ||
연호 |
선천(先天,
712년 ~
713년) 개원(開元, 713년 ~ 741년)[2] 천보(天寶, 742년 ~ 756년)[3] |
||
절일 | 천추절(千秋節) → 천장절(天長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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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당나라의 제6대 황제이자 역대 당나라 황제 중 최장기간 재위한 황제로 43년동안 통치했다.[4]성명은 이융기(李隆基)이다. 예종 이단의 3남으로 아명은 이삼랑(李三郎)이었다. 시호는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로 줄여서 명황제(明皇帝)였으며, 당명황(唐明皇)이라고도 불린다. 묘호는 현종으로 '검을 현'( 玄)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종의 큰아버지인 중종의 이름이 이현(李顯)이기에 현종(顯宗)이란 묘호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5]
송대 이후 중국에서는 당명황이라는 표기를 더 많이 썼는데, 송휘종대에 황제의 시조로 숭상되던 도교의 신 조현랑(趙玄朗)의 이름을 피휘하여 묘호인 현종 대신 시호인 명황제로 지칭되었다. 또한 청나라 성조 강희제의 본명인 아이신기오로 히오완여이(愛新覺羅玄燁)을 피휘하기 위해 이렇게 지칭하는 것이 후대 제국 및 동아시아 다른 국가에도 확산 및 고착화되었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처음에는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으나 후에 임치왕(臨淄王)으로 다시 책봉되었다. 할머니인 측천무후가 집권하고 있었던 무렵에 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때부터 내심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당 제국의 근위대인 남·북위군[6] 중 일부인 만기군을 슬슬 포섭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측천무후가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당예종의 지지 세력을 여럿 죽였기 때문이었다.[7] 이후 큰어머니인 위황후와 그녀의 딸인 안락공주가 710년 6월 2일 큰아버지인 당중종을 독살하자[8] 6월 20일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었던 만기군을 움직이는 한편 우림군까지 장악한 다음, 고모인 태평공주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 당륭정변)이 과정에서 위씨와 무씨 가문 일파[9]를 대부분 참살하고, 정국을 수습하면서 아버지를 황위에 복위시키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공헌도로만 따지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태자가 될 수 있었지만 적장자가 아니었기에 미묘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적장자이자 큰형이었던 송왕 이성기가 스스로 양보함으로써[10] 큰 무리없이 황태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송왕[11] 이성기와 신왕 이성의는 각각 근면성실과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이융기가 황제에 오른 뒤에도 우애가 지극했다고 하는데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식사와 생활은 물론이고, 기다란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형제들과 같이 잠을 잤을 정도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그림자 형제로 당현종은 같은 뿌리를 두고 엮어 자라는 대나무와 같다고 하여 '죽의'(竹義)라고 그 우애를 정의하기도 했다. 특히 송왕 이성기가 741년(개원 29년) 숨을 거두자 고력사에게 시를 짓게 할 정도로 애도했다고 하며 양황제(讓皇帝)로 추숭까지 시켜주었다.
동생들인 기왕 이융범과 설왕 이융업은 태평공주 숙청( 선천정변)에 동참한 즉위 공신급이었으며, 이융범은 선비와 예를 아는 사람이었지만 이융업은 725년(개원 13년) 처형인 위빈과 황보순이 현종의 중병 중 길흉을 논하다가 발각되어 위빈은 몽둥이로 맞아 죽고 황보순은 좌천되었다. 물론 우애를 깨지는 않은 정도였다. 현종은 이융업을 손수 위로하며
"내가 만약 형제를 시기하고 막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천지신명이 벌을 내릴 것이다."
이라고 다짐했고, 이후로도 이융업이 아프자 현종은 손수
간호를 하다가 촛불이 바람에 날려
수염을 태워먹은 적이 있었는데 "아우가 낫는다면 수염이 문제냐"
면서 대범하게 넘겼다고 한다. 맏형 이성기의 양보로 황태자가 된 이융기는 이후 고모인 태평공주와 정치적 암투를 벌였는데 황태자로서 길게 있을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여긴 부황 예종이 얼마 안 가 태자 이융기에게 양위하여 27세의 젊은 나이에 당나라의 제6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12]
2.2. 재위 기간
2.2.1. 정적 제거
그러나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한때 동지였던 고모 태평공주와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벌여야 했다. 태평공주는 여러 번 현종을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즉위 다음해인 713년 태평공주와 그 일파까지 싸그리 제거하며, 측천무후가 물러난 후 연거푸 군사반란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선천정변)이후 유능한 재상들을 등용하고 측천무후 시기부터 진행되던 사회변화[13]에 맞추어 제도를 개혁하며, 군사력을 재건하고 대외 영향력을 확대하여 당 제국의 영향력을 최전성기로 끌어올렸다. 수문제 당시의 인구수를 넘은 때도 바로 당현종 재임기로, 현종의 재위 말기인 754년에 당 제국 인구는 약 906만 9천 호[14]였는데, 이는 수양제 재위 3년차(606) 때 인구 약 890만 7천 호[15]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2.2.2. 개원성세
이 시기 현종을 보좌한 유능한 재상으로는 요숭, 송경, 장가정, 장열, 이원굉, 두섬, 한휴, 장구령[16] 등이 있는데, 요숭과 송경은 개원지치의 초창기를 빛낸 명재상으로서 정관지치를 보좌한 방현령ㆍ두여회와 비견될 만하여 '방두'(房杜)라는 표현과 함께 '요송'(姚宋)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였다.[17] 한휴는 현종에게 자주 간언하여 좌우의 지지 세력들이"한휴가 재상이 되고 나서부터 폐하는 단 하루도 즐겁게 지내신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할 정도로 잔소리꾼[18]이었다. 그 외에 유명한 정치가로는 유능한 재상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정국을 길게 주도했던
원건요,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우문융이 있었다.[19]단순히 이러한 유능한 재상들의 목록만 놓고 본다면 '부하를 잘 둬서 명군'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종의 강력한 황권을 생각한다면 저러한 부하들은 현종을 보좌하는 자들이었고, 결국 정책을 실시하는 주체는 황제 현종이었다. 즉, 개원성세를 실현해 당나라가 직면했던 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최종적인 공로는 현종에게 있었던 셈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화적법>이다. 이 법은 추수기에 중앙 정부에서 강남 등 곡창 지역의 곡식을 시가의 2~3할 정도 더 높게 처서 사들여(화적) 이를 각지의 군진들에 직접 공급하고, 빈번이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수도권 관중 지역[20]에도 공급하는 제도로, 기존의 지조[21]와 영전[22]을 대체하는 제도가 되었으며, 성공을 거두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데 성공했다. 이런 식의 괜찮은 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루는 데 성공한 공적은 결국 현종에게 있었다.
2.2.3. 천보난치
그러나 이런 태평성대가 계속되며 재위 중반을 향해가자 명군이었던 현종도 긴장의 끈이 풀어졌는지 명재상들을 멀리 하고 아첨하는 부하들을 가까이 하여 국정내의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당 제국은 모병제로 유지하는 대규모의 군진과, 이를 지역별로 엮어서 통솔하는 절도사직을 신설했고 천보 연간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절도사직 10개가 설치되면서 군사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736년에 그 유명한 이임보가 재상의 일원이 되어 명신 장구령[23]을 몰아내 버리면서 불길한 징조가 감돌았다. 그리고 737년, 현종은 수왕 이모를 태자로 세우려는 무혜비와 이임보의 공작에 넘어가 황태자 이영, 악왕 이요, 광왕 이거를 사사시키고 738년에 3남인 충왕 이형(훗날의 당숙종)으로 황태자를 교체했다.[24] 게다가 즉위 초기의 현종은 상당히 검소한 황제였었지만, 이 시기 즈음부터는 검소함이 사라지고 화려한 황제의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보통 기점으로 잡는 건 741년에 연호를 개원에서 천보(天寶)로 바꾼 이후로, 이 때문에 현종 후반의 치세를 개원성세에 대비하여 천보난치(天寶亂治)라고 부르기도 한다.대외 정복전쟁에서는 유명한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인 고선지가 서역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72개 국가를 정복하는 등 당나라의 팽창주의를 이어가면서 영토가 크게 넓어져 당나라가 아시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재정도 나아졌으나, 잦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력이 목숨을 잃고 국고가 궁핍해진 데다가 농촌이 황폐화되었다. 아바스 칼리파조와 같은 강대한 이슬람 세력의 등장, 이들과 충돌한 천보 10재[25] (751년)에 일어난 탈라스 전투 이후로 안사의 난이 연달아 발발하면서 대규모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26]
내치 측면에서는 고종 이후 측천무후의 치세를 거치면서 몰락했던 관롱집단이 유명한 간신 이임보를 필두로 내세워 다시 정국을 장악했으며, 빈천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과거제로 입문하여 개원성세를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관료들은 세력을 상실하고 밀려나게 되었다. 752년 이임보가 사망한 이후, 총애하던 후궁 무혜비 사후 맞아들인 양귀비로 인해 양씨 일가가 전횡하게 되었고, 이에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조정 신료들과 절도사 사이 및 여러 절도사들 간의 모순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안녹산과 안사순[27], 가서한의 사이가 서로 좋지 않았고, 양국충과 안녹산이 서로 대립했던 것이 그것이다.
이때 이임보는 지금까지 장성 안쪽의 내지 절도사직을 문신이 아닌 장군이 담당하게 함으로써 권력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아예 막고 있었는데[28], 문제는 그로 인해 오히려 지방 절도사들의 군사력이 급성장한 탓에 마치 중세 봉건제 제국처럼 흘러가게 되었고, 중앙군은 부패해지면서 빈약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이임보 사후 동북변의 절도사직을 셋이나 역임하던 안녹산이 국경의 정예 병력들을 장악하면서 독자적인 군대가 되었고 755년 양국충 타도를 명분으로 군사반란을 일으켜 수도 장안까지 침공했다. 노쇠한 현종은 사천을 향해 퇴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임보가 권력을 잡은 지 19년 만의 일이었다.
퇴각을 하던 중에 이게 다 양귀비와 양국충 때문이라고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서(마외병변), 양국충은 그들에게 살해되고 양귀비는 군인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귀비와 양국충이 목숨을 잃자 일단 사태는 수습되어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지만 현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사천에 퇴각해 있는 동안에 다른 영지에서 분조를 이끌고 있었던 황태자가 군인들의 추대로 즉위하여 숙종이 되었다. 자칫하면 황제와 황태자 간의 내전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지만, 현종에게도 공연히 고집을 부렸다가는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라는 것을 파악할 총기는 아직 남아 있었는지, 양귀비의 죽음으로 더 이상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는지 어쨌는지 황태자에게 정식으로 양위를 인정하고 사천에서 순순히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2.3. 퇴위 후
이후 당숙종의 연합군은 반란군을 공격하여 진압하고, 장안을 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757년 장안에 입성했다. 이후 당현종은 장안성의 별궁인 흥경궁에 은거했으며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며느리인 장 황후와 환관 이보국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현종을 강제로 감로전으로 유폐시켜 버리고 그의 부하인 고력사마저 유폐시켜버렸다. 현종은 그들의 처사에 분노했으나 아들인 당숙종이 병으로 않아 눕고 있었으며[29] 현종 자신도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못했기에 대항할만한 힘이나 군대가 없었다.[30] 그의 곁에는 이제 궁인들과 가끔가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혈족들밖에 없었다. 결국 762년 5월 2일에 현종은 옥피리를 불고는[31] 궁인들에게 목욕을 하고 싶다고 말하여 궁녀들이 목욕을 시켜주었고, 다 마쳤을때 갑자기 쓰러졌는데 그 다음날인 5월 3일 새벽 78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했다.늙은 황제는 죽는 순간까지도 양귀비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지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게, 안사의 난 진행 과정을 보면 별로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것 같지 않은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장안성 탈환 이후 안녹산에게 붙었던 군인들에 대한 처벌 내용을 보면 강경한 처벌을 주장하는 현종에게 숙종이 그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내용이 《 자치통감》에 쓰여 있다. 물론 안사의 난 때문에 양귀비가 죽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이런 강력한 현종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품은 숙종 즉위파가 두 황제 사이를 갈라놓아 결국 현종의 최측근인 고력사를 비롯, 여러 부하들이 유폐되고 그 자신도 말년에는 흥경궁에서 태극궁으로 거처가 옮겨져 유폐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붕어했다. 그리고, 현종 사후 13일 뒤에 아들 숙종도 붕어하면서 당 제국의 정국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는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3. 대외 정복전쟁
대외적으로 현종은 기존의 부병제를 기반으로 하는 당나라의 군제가 측천무후의 집권기에 파탄을 맞자, ' 직업군인제'인 모병제 중심으로 개혁하는 데 성공하여 개원 말엽(730년대)에는 부병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당 제국은 이러한 모병제를 중심으로 양성된 대규모 정예군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대외적으로 정복전쟁을 재개하면서 주변국에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3.1. 대 돌궐 전쟁
당현종은 위황후 일파가 일으킨 혼란을 수습하자마자 당나라의 숙적인 돌궐 제2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묵철가한이 화친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이를 거부했고, 북벌을 진행했으나 토번 제국의 공격과 거란 전선에서의 대패로 인해 대돌궐 북벌은 실패했다. 그러나 돌궐 제국 내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전령을 들은 현종은 이에 돌궐 산하의 부족들을 초유하는 등 적극 개입했고, 결국 묵철가한은 발야고(바이르쿠)의 패잔병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렇게 측천무후의 치세부터 예종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돌궐 제2제국의 가한으로 군림하며 돌궐을 전성기에 올려놓고 하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묵철가한(카파간 카간)이 무척이나 허무한 암살[32]을 당함으로써(716) 돌궐 제2제국은 심각한 혼란에 빠졌고, 바이르쿠ㆍ위구르ㆍ통라( 동라)ㆍ 습ㆍ부쿠( 복고) 등 돌궐에 정복되었던 5개 부족이 한꺼번에 당 제국에 귀부해오면서 북방 국경선이 크게 강화되었다.이후 대처에서 미숙함을 보이면서 뒤를 이은 비가가한(빌게 카간)과 궐특근(퀼 테긴)에 의해 돌궐 제2제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회복했지만 묵철가한의 전성기와 같은 압도적인 위용은 보여주지 못하게 되면서 현종은 상당히 여유있게 돌궐 정복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물론 개원지치 시절엔 그래도 돌궐이 여전히 당 제국 못지않은 군사적인 강력함을 내뿜고 있었던 시기라서 기본적으로는 돌궐 수하의 부족들을 귀부시키고 돌궐을 선제공격하거나, 돌궐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등 승리하고 패배하고를 반복하는 소모전이 반복되었다.
723년에는 돌궐과 화친했는데, 여기서 현종은 그 신하인 매록철을 매수했다. 비가가한이 734년에 암살당하면서[33] 돌궐 제2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742년에 돌궐 제2제국에 내전이 발발하자 현종은 바스밀(발실밀), 카를룩(갈라록), 위구르(회홀)를 적극적으로 초유하여 동맹으로 삼았고 그 다음엔 삭방절도사 왕충사가 이끄는 당군이 돌궐 근처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뒤 위구르, 카를룩, 바스밀 부족과 함께 돌궐을 공격했다. 결국 돌궐은 위구르에게 패배한 뒤, 당 제국의 절도사인 왕충사의 당군이 잔당을 마저 공격하면서 돌궐은 완전히 몰살당하게 되었고 당나라는 돌궐 정복에 성공하게 되었다.
3.2. 대 토번 전쟁
이 시기의 토번 제국은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매우 강성했으며, 측천무후 즉위 시기였던 696년 가르친링이 소라한산 전투에서 무주군을 대패시킨 뒤 무주에 이렇게 제안하였다.안서 4군을 우리에게 넘기고, 서돌궐을 반 잘라서 나누는 것이 어떠한가?
그 정도로 토번의 위세가 강성하였으나, 무측천은 가르 가문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거절한다. 그 이후 699년 가르친링이
토번 제국 내부의 반란[34]으로 인해 숙청당하면서[35], 토번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후 국망포지가 당나라를 공격하나 당휴경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개원 초기(710년대) 토번은 상당히 강성했던데다가 경운 2년(예종 시기. 710년) 토번으로 시집간 금성공주[36]의 탕목읍으로 황하의 만곡 일대인 구곡 지역을 그냥 줘 버리는[37] 삽질을 한 결과 다수의 기병을 충원하는데 성공한 토번군이 714년 대규모로 침공해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38], 설눌이 이를 격파했다.
그 뒤 실뤄라가 감숙성 일대를 공략하여 당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으나 소숭의 이간계[39]로 인해 제거당하고 말았다.[40] 이후 군제 재정비를 끝낸 당 제국은 점차 토번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는 동시에 역공을 퍼붓으면서 정복해나가기 시작했으며, 729년 안서-하서-농우 지역 진출에 필요한 토번의 최중요 거점이었던 석보성을 삭방절도사 이의[41]가 완전히 점령했다.
기세가 한풀 꺾인 토번은 당 제국과의 전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730년 금성공주를 내세워 화친을 요청했다. 이후 737년에 다시 토번과 전쟁이 발발했고, 요충지인 석보성을 741년에 토번에 다시 빼앗겼지만, 당 제국은 또다른 요충지인 안융성을 계략으로 점령했다.[42]
749년 가서한이 석보성을 재정복한 데 이어[43] 753년에는 이전 토번에 넘겨주었던 하서구곡 지역을 수복하는 등 안사의 난 이전까지는 토번 제국을 상대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데 성공했다.
3.3. 대 거란 전쟁과 대 발해 전쟁
당현종은 이이제이책을 실행해 적절히 거란의 내정에 개입하여 거란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730년 당나라의 압제를 받아오던 거란 추장 가돌우가 병력을 일으켜 당나라의 꼭두각시 놀음을 하던 거란 출신 송막 도독을 잡아 죽이고, 거란의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돌궐과 동맹을 맺고 해족과 손을 잡은 뒤 당나라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장수규와 이의 등에게 패배하여 이후 가돌우는 장수규의 이간계에 의해 살해당하고 당나라는 동북방의 거란 방면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그러나 이렇게 거란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발해와의 전쟁도 발발하면서 전선이 양면으로 확대되어 버렸는데, 732년 발해 무왕이 보낸 장문휴의 발해 군대에게 등주를 공격당해 자사 위준이 살해당했다.[44]
이에 분노한 현종이 갈복순[45]을 보내 이를 막게 했으나 발해군은 이미 후퇴한 뒤였다. 그 뒤 반격에 나섰으나 마도산 전투에서 당군이 발해군에게 패배하면서 실패했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연전연승으로 정복을 해나가던 당현종에게 있어서 첫 번째 패전이라 할 수 있었다.
3.4. 대 남조 전쟁
현종이 피라각의 이하(洱河) 주변 6조 통일을 지원하는 등 당 제국과 남조국 간의 군사적, 외교적 관계는 큰 마찰이 없는 편이었으나 각라봉의 즉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각라봉이 당 제국에 빼앗긴 국경 일부를 공격하여 탈환하자 현종은 이를 구실로 하리광으로 하여금 남조국을 정복하도록 했다. 하리광은 당군을 이끌고 남조국에게 빼앗긴 영토를 탈환한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정복에 나섰다.그리고 천보전쟁 이전 당나라는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숙적인 돌궐 제2제국은 이미 내란으로 소멸했고, 740년에는 장구겸경이 토번으로부터 요충지인 안융성을 탈환한 데 이어 749년 가서한이 석보성을 탈환하는 등 대토번 전선에서 우세를 보였던 데다가 토번과 남조 간의 연합 가능성을 차단했으며, 거란을 확실히 제압함으로써 동북방의 패권을 장악하는 등 모든 정세가 당현종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현종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다가 이후 당나라에서 남조국을 지배하기 위해 파견나온 운남 태수 장건타가 남조국을 잔인하게 지배하면서 각종 세금을 착취하자 결국 참다못해 폭발한 각라봉이 반란을 일으켜 장건타를 죽이면서 다시금 전쟁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당군이 곧 남조국을 침략해올 것에 겁이 난 각라봉은 이에 대해 현종에게 사죄했으나, 검남절도사 선우중통은 이를 무시한 채 남조국을 침공했다. 그러나 남조의 끈질긴 저항으로 남조 정복은 실패했고, 선우중통은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46]
그 후 간신 양국충이 두 차례에 걸쳐 남조국을 침공했으나, 남조군의 저항으로 인해 정복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47] 그 뒤 더 이상 참다못한 남조와 토번이 대당연합군을 결성하게 되었다.
4. 평가
개원 연간에는 천명을 받들고 천하를 얻어, 옛일을 오랫동안 교훈으로 삼았다. 경사스러운 기운이 화통하고 밝았으며, 침울한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정치에 조금씩 권태를 느꼈고, 요사스러운 이들이 조정으로 모여들어 관직을 맡았다. 선철들의 말로 ‘처음에는 누구나 잘한다.’고 이야기한다.
《 구당서》, 현종 논찬
《 구당서》, 현종 논찬
현종은 직접 난을 평정하여[48] 가히 귀감이 되었고 또한 여자들을 무너뜨렸다(무위지화의 종식). 바야흐로 정사에 정신을 가다듬어, 개원 연간에는 어느 정도 태평에 이르렀으니(개원성세), 얼마나 위대한가! 사치에 자극을 받자, 천하의 욕망을 궁구하여도 즐길 거리로 삼기에는 부족하였으니,
두터운 사랑에 빠지고 경계함을 잊어버려(천보난치), 몸을 숨기고 나라를 잃기에 이르렀지만(안사의 대란) 뉘우치지 않았다. 그 처음과 끝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습성이 서로 멀리 갔다는 것이 이와 같았다. 가히 삼가지 않았구나! 가히 삼가지 않았구나!
《 신당서》, 현종 논찬
《 신당서》, 현종 논찬
“그 나라의 바로 전 임금인 당명황[49]만 하더라도
양귀비란 계집에게 미쳐서 정사를 다스리지 않은 탓에 필경
안녹산의 난을 빚어 내어 오랑캐의 말굽 아래 그네들의 자랑하는 장안이 쑥밭을 이루고 천자란 빈 이름 뿐,
촉나라란 두메 속에 오륙 년을 갇히어 있지 않았는가.
현진건, 《무영탑》 中
개원성세라는 전성기를 이끌면서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여 대당제국의 영토를 팽창시키고,
중앙아시아까지 영향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안사의 난이라는 거대한 내전을 발발하게 하여 제국의 몰락까지도 초래한 황제라서 여러모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곤 한다. 역시 인생은 말년까지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체현한 황제였다.
양귀비와의 로맨스는 거의 그를 상징하는 요소이며 그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거리와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현진건, 《무영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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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개원지치 즈음에 군진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절도사 제도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사실 막대한 수의 직업군인을 지방의 군사 지휘자가 단독으로 통솔하여 군벌이 되기 쉬운 태생적 단점을 가진 절도사 제도는 엄중한 통제가 필요한 제도였으나, 천보 시대부터 관리가 극도로 소홀해진 것이 문제였다. 즉 이 시기부터 당나라는 '중앙집권적인 제국'이 아니라 완전히 분권적 봉건제 제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즉 절도사는 자신의 영지내에서 독자적인 군대를 이끌고 군주처럼 왕 노릇을 하는 군사조직이 되었다. 이처럼 엄청나게 양성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직업군인들은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팽창시키다가 나중에 가면 교만해져 중앙 정치까지 개입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대규모 내전을 일삼게 된다. 군사제도를 ' 직업군인 제도'인 모병제로 완전히 바꾸고, 당나라의 군사력을 강력하게 증강시키면서 영토팽창주의를 고수하여, 고선지가 72개가 넘는 국가들을 정복하고 아시아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태종 시대에 최전성기를 달리면서 세계 1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당나라의 군사력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것까진 좋았는데 정작 현종은 이렇게 하늘을 찌르듯 강력해진 군사력을 제대로 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힘이 막강해진 군인들과 절도사들이 더 이상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중앙 조정에 반항하며 내전을 일으키거나 황제의 명령없이 독단적으로 자신의 개인 군대를 이끌고 타국을 정복하러 나가는 등 완전히 병영국가화가 되어갔다. 대표적인 안녹산의 경우, 평로절도사로 14년, 범양절도사로 12년, 하동절도사로 5년을 재임했고, 이들 셋을 겸임하는 상태로 있었는데, 절도사의 원래 정해진 임기가 2년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건 월권 행위에다가 절도사들의 군사력이 너무나 막강해져서 더 이상의 관리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심지어 안사의 난이 발발했을 때도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안녹산이 통제하던 정규 병력만 해도 당시 당나라의 지방 절도사들이 관리하던 총병력 중 37.8%였으며 수만 명에 달하는 사병까지 확보하고 있었기에 군벌에다 통제 불능의 세력이 되었다. 결국 이런 거대한 병력을 통제하고 있었던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거대한 제국 전역에서 대규모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던 수많은 절도사들까지 너도 나도 할 것없이 반란을 일으키다보니 제국 전체를 휩쓰는 거대한 내전으로 흘러가면서 대책이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는 피폐해지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현종은 황후와 형제에게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아버지로써는 최악의 황제였는데 반란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황태자 이영, 광왕 이거, 악왕 이요 등, 자기 아들 셋을 가차없이 죽여버렸고, 아들인 수왕 이모의 왕비이자 며느리인 양옥환을 빼앗아 자신의 첩인 귀비로 삼는 등, 중국 역사에서 후조의 황제인 석호와 더불어 최악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후임 황제인 당숙종이 피폐해진 이유 역시 선제 현종에 의해 형제들이 학살당하는 꼴을 보거나 피폐해진 삶을 봐서 그렇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숙종 역시 아버지처럼 후처와 측근의 참소만 믿고 그에게 효성을 다한 차남 이단을 죽여버린 막장부모였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현종은 좋은 남편, 좋은 형, 좋은 동생이었지만 아들들에겐 나쁜 아버지였다.
5. 기타
- 황자였을 시절, 장안성 동쪽 춘명문 부근의 융경방(隆慶坊)에 저택이 있었는데, 황제로 즉위한 후 방의 이름을 흥경방(興慶坊)으로 고치고 여러 차례의 공사 끝에 방 전체를 흥경궁(興慶宮)이라는 이름의 궁궐로 만들었다. 732년에는 장안성 북쪽의 대명궁과 남쪽의 곡강지 인근에 있었던 이궁인 부용원 및 그 중간에 있는 흥경궁을 연결하는 협성(夾城)을 장안성 동쪽 성벽에 잇댄 이중 성벽으로 완성해 황제 전용 통로로 사용했다. 현종 때의 특기할 사항 중 하나는 천보 3년(744년) 1월에 '년'(年)이라는 표현을 '재'(載)로 고친 것이다. 즉 천보 3년 이후부터는 천보 3재, 4재... 이런 식으로 써야만 했다. 그래도 지엄한 천자의 명령인지라 당나라 전역은 물론 이웃국가 신라에서도 천보 ~재라고 표기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간 중에는 천보 11재(752년)라고 적힌 습자용 목간이 있다. #
- 표기가 '재' 에서 '년' 으로 회복된 건 현종의 아들 숙종 때인 건원 원년(758년) 2월로, 그동안 천보(天寶), 지덕(至德), 건원(乾元)의 3개 연호가 20년 가까이 사용되었다. 현종은 78세까지 장수했기에, 차기 황제가 될 아들, 손자, 증손, 현손을 생전에 모두 봤다. 현종의 현손인 순종이 태어난 해가 761년, 바로 현종이 죽기 1년 전이었다. 등극하기 전에는 격구의 대표 선수였다고 한다. #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50]으로 추정되는 조야나희와의 사이에서 혼혈인 수안공주를 두었다. 별개로 지지했던 양귀비와 안녹산이 비만으로 알려져서 '뚱보 취향의 황제'라고도 불린다(...).
- 정이 많은 황제로 불리곤 한다. 중국의 황제들은 후궁을 들이면서 이들을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키거나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는 적절치는 않았다고 해도 진정한 사랑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양귀비 이전에 지지했던 매비 강씨와의 눈물나는 일화는 현종의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 평가가 엇갈리는 그에게 있어서 거의 유일하게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분야는 바로 음악이다. 당현종은 당나라 역사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음악가로 통할 정도로 음악에 비범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갈고羯鼓와 횡적橫笛이라는 악기를 잘 다루었고, 비파도 잘 탔다. <야반락夜半樂>, <소파진락小破陣樂>,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51]을 짓기도 하였다.
- 한국의 성씨인 인천 이씨가 이 사람과 연관이 있다. 인천 이씨의 시조 이허겸의 6대조 할아버지인 허기라는 사람이 사신으로 당나라에 왔다가, 안사의 난 당시 피난가는 현종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나중에 현종이 허기에게 국성인 이씨를 하사했다고 한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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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보길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행이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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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해 · 실위 · 말갈 · 발해 · 습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48252><tablebgcolor=#a48252> ||
신당서(新唐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
1권 「고조기(高祖紀)」 | 2권 「태종기(太宗紀)」 | 3권 「고종기(高宗紀)」 | |||
이연(李淵) | 이세민 | 이치 | ||||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 ||||
이현(李顯) · 무조 | 이단 · 이융기 | 이형(李亨) · 이예(李豫) | ||||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 |||||
이괄 · 이송 · 이순(李純) |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이염(李瀍) · 이침(李忱) | |||||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 |||||
이최 · 이현(李儇) | 이엽 · 이축 | |||||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6><tablebgcolor=#a48252><tablewidth=100%> 76·77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원소황후 · 혜안황후 · 곽숙비 · 공헌황후 · 적선황후78권 「종실전(宗室傳)」 이도종 · 이도흥 · 이효기 · 이도현 · 이숙량 · 이효협 · 이사훈 · 이진(李晉) · 이유량 · 이침 · 이효공 · 이괴 · 이원 · 이신통 · 이도언 · 이효일 · 이신부 · 이박의 · 이봉자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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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여회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위징 왕규 · 설수 · 마주 · 위정 이강(李綱) · 이대량 · 대주 · 유계 · 최인사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진숙달 · 양공인 , 양사도(楊師道), · 봉륜 · 배구 · 우문사급 · 정선과 · 권만기 · 염입덕 · 장엄 · 위홍기 · 강사도 · 장지건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소우 잠문본 ·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 요사렴 · 영호덕분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우지녕 · 고풍 · 장행성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장손무기 · 저수량 · 한원 · 내제 · 이의염 · 상관의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 곽산운, · 왕여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왕효걸 · 당선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류택 · 풍원상 · 장흠서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최융 · 서언백 · 소미도 · 두로흠망 적인걸 · 학처준 · 주경칙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120권 「오왕전(五王傳)」 환언범 , 이복업 습수 설계창, · 양원염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유유구 · 종소경 · 최일용 · 왕거 · 왕모중 위원충 · 위안석 · 곽진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소괴 · 장열 위지고 · 노회신 · 이원굉 · 두섬 · 장구령 · 한휴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장가정 · 원건요 · 배요경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소향 · 윤사정 · 필구 · 이걸 · 정유충 · 왕지음 · 허경선 · 반호례 · 예약수 · 석예 · 제한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배수진 · 최면 · 노종원 · 이조은 · 왕구 · 엄정지 배최 · 양교 · 송경례 · 양창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해완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석 단수실 · 안진경 이성, 이소(李愬), 155권 「마혼전(馬渾傳)」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규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우릉 · 마총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정공저 · 최홍례 · 최현량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유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 고고 · 학비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전휘 · 최함 · 위표미 · 고익 · 풍숙 · 이우중 · 이고(李翺) · 노간사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 이경양 178권 「유분전(劉賁傳)」 유분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가속 · 서원여 · 왕파 · 곽행여 · 한약 · 나립언 · 이효본 · 고사옹 · 이정소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이덕유 진이행 · 이신(李紳) · 이양이 · 조확 · 유첨 · 이울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이고언 · 이각 · 최공 · 소업 · 정숙 · 노균 · 노간방 · 위종 · 주지 · 배휴 · 유전 · 조은 · 배탄 · 정연창 · 왕부 · 노광계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필함 · 최언소 · 유업 · 육의 · 정계 · 주박 · 한악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마식 · 앵수 · 노암 · 노휴 정전 · 왕탁 · 왕휘 · 위소도 · 장준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주보 · 왕처존 · 등처눌 · 진유 · 유거용 · 조덕인 · 양수량 · 양성 · 고언랑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왕중영 · 제갈상 · 이한지 · 왕경무 · 맹방립 양행밀 · 시부 · 주선 · 손유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고인후 · 조주 · 전군 · 주연수 유건봉 · 성예 · 두홍 · 종전 · 유한굉 · 장웅 · 왕조 · 유지겸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194권 「탁행전(卓行傳)」 원덕수 · 권고 · 견제 · 양성 · 사공도 195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196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긍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197권 「순리전(循吏傳)」 위인수 · 진군빈 · 장윤제 · 이소립 · 손지원 · 설대정 · 가돈이 · 전인회 · 배회고 · 위경준 · 이혜등 · 나상 · 위단 · 노홍선 · 설원상 · 하역우 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안사고 · 공영달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장후윤 · 개문달 · 곡나율 · 경파 · 나도종 · 낭여령 · 서제탐 · 심백의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팽경직 · 노찬 · 윤지장 · 유충 · 마회소 · 공약사, 공소안, · 저무량 · 원행충 · 진정절 · 시경본 · 노이빙 · 왕중구 · 조동희 · 담조 · 위융 · 진경(陳京) · 창당 · 임온 · 위공숙 · 허강좌 201·202·203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204권 「방기전(方伎傳)」 이순풍 · 견권 · 원천강 · 설이 · 명숭엄 · 상헌보 · 엄선사 · 두생 · 장과 · 강무 · 상도무 205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06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무사확 · 위온 · 주인궤 · 왕인교 · 양국충 · 이소(李翛) · 정광 207·208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정원진 · 어조은 · 유정양 · 토돌승최 · 마존량 · 구사량 · 양복광 · 이보국 · 왕수징 · 유극명 · 전령자 · 양복공 · 유계술 209권 「혹리전(酷吏傳)」 삭원례 · 내준신 · 후사지 · 왕홍의 · 곽홍패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최기 · 모약허 · 경우 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전승사 · 사헌성 · 하진도 · 악언정 · 나홍신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이회선 · 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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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전에는 혜비(惠妃)의 지위에 있었고
측천무후의 일족이었다. 현종의 총애를 얻었고, 사후에는 황후의 시호를 받았다.
양귀비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수왕 이모(李瑁)가 그녀의 소생이었다.
[2]
본 연호에서 유래하여, 현종을 개원천자라 지칭하기도 했다.
#
[3]
천보 3년(742년)부터 n재를 사용하였다.
[4]
게다가 현종은 재위 기간을 끝마치지 못하고 폐위당했기에 만약 폐위당하지 않았다면 50년 동안 통치할 수도 있었다.
[5]
시법에서 현(玄)은 "온화하며 욕심이 없다(含和無欲)"는 뜻이다.
[6]
남군 16위군과 북군 우림군 및 만기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7]
이융기의 생모인 덕비 두씨가 측천무후를
저주했다는 죄로 사사당했다.
[8]
독살 건은 현종이
쿠데타를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 사실 이들의
권력은 중종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당연히 이들 입장에서는 중종은 죽지 않는 것이 훨씬 낫긴 하나, 이들의 행적과 권력욕을 보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두뇌가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미 측천무후를 겪은 적이 있었던 당나라의
군인들이 그보다 훨씬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도 않았을 것이니
프로파간다를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다.
[9]
무삼사 사후에도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무씨 가문은 위씨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사이가 안 좋았고, 측천무후 본인에게도 원한이 컸던 이융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측천무후의 친딸인 태평공주까지 정변에 동참한 걸 보면 무씨 가문과 측천무후의 자식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실제로 무씨 가문의 전횡은 말년의 측천무후의 심기를 어지럽힌 하나의 요인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측천무후는 차기
황제를 무씨에게 잇는게 좋지 않을까 고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정보다는 자기 혈족들에게 물려주는게 측천무후 개인에게도 더 나을 거라고
신하들이 입을 모아 말했기 때문에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사실 당나라는 이씨들이
피를 흘려가며 다른
군벌들과 격전을 벌여 이기고 건국한 제국이었는데 이걸 아무 전공도 없는 무씨가 낼름 삼켜봤자 어떻게든 반발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측천무후 본인부터가 원래
당고종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뿐, 당 제국의 건국 그 자체에는 아무런 지분도 없었기도 하다.
[10]
아마 증조할아버지대에
더 유능한 동생과 황위 다툼을 하다가 목이 날아간 종증조부
이건성의 사례를 본받은 듯 하다.
[11]
훗날 영왕으로 바뀜.
[12]
맏형 이성기는 피리, 동생 이융범은 비파에 능했다고 한다.
[13]
균전제가 붕괴하여 율령제도 변화했다.
[14]
약 5,288만 명으로 추정.
[15]
약 4,600만 명으로 추정.
[16]
당시에서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고, 안녹산의 야심을 간파했다. 참고로, 이 순서는 재상으로서 정국을 주도했던 시대순이다.(...)
[17]
요숭은 제한이 "공은 당대의 문제를 구해낼 수 있는 재상이다."라고 하니까 "한 시대의 걱정거리를 해결한 재상을 어찌 쉽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무진장 자랑스러워했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한 시대의 걱정거리를 해결한 재상'이란 뜻의 구시지상이다.
[18]
이때 현종의 대답은 전형적인
명군의 발언이었다. "짐은 말라 야위었으나 천하의 신민들은 반드시 살이 올랐을 것이다. 내가 한휴를 기용한 것은 사직을 위한 것일 따름이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참고로 이 발언이 나온 건 개원 21년(733)이었다.
[19]
단,
뇌물을 밝히는 게 심해서 우문융은 재상직에는 올랐으나 정국을 주도하는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다.
[20]
당나라는 수도를 장안에 잡고도 자주 부수도(동도)인 낙양으로 정부가 움직이곤 했는데, 이는 관중 지역의 식량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축량천자(逐糧天子)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21]
농민들이 직접 부담.
[22]
군사들이
둔전을 행함.
[23]
한고조를 보좌했던
장량의 후손이었다. 또한 생전에
안녹산의 난을 우려하여 안녹산에 대해 현종에게 경고를 보낸 인물이기도 했다.
[24]
무혜비와 이임보의 의도와 달리 이영이 사사되고난뒤 서장자인 1남 경왕 이종(화비 유씨 소생)이 있었으나 신하들중에 지지하는 사람이 없어서 충왕 이형이 사실상 장자취급이었고 현종의 최측근인 환관
고력사의 지지로 충왕 이형이 태자가 된다.
[25]
당현종 천보(天寶) 3년 1월에 '년'(年)이라는 표현을 '재'(載)로 고쳤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결론적으로 당숙종의 건원(乾元) 원년부터 다시 '년'으로 회복시켰다.
[26]
참고로
탈라스 전투로 인해 제지술이 이슬람을 거쳐 유럽까지 전파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로인해 지금껏 잠들어있었던 유럽은 깜짝 놀라기 시작하여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탈라스 전투 항목 참조. 다만 당 제국은 탈라스 전투의 패배 이후에도 고선지의 후임 안서절도사인
봉상청이 대발률국을 정복하는 등 안서도호부의 강역을 더욱 더 확대함으로써 서역에 대한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했다. 《
자치통감》에도 서역에 미치는 당나라의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나와 있다.
[27]
여기서 안사순은 안녹산과 사촌관계였는데, 안녹산이 역적인 반면 안사순은
설눌 밑에서 토번군을 격파한 이래 하서절도사를 지낸 데 이어 삭방절도사로 재직하던 와중
정천리와 협공하여 이헌충을 격파하는 등 당나라의 국경 수비에 주력하고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알리는 등 당나라의 충신이었으나, 안사의 대란이 일어나자 조정으로 소환되어 호부상서가 되었고 이후 가서한의 무고로 동생 안원정과 함께 억울하게 죽었다. 그러나 안사의 난 평정 뒤 명장 곽자의의 주청으로 누명을 벗었다.
[28]
그 이전 이민족 출신이 절도사를 담당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강족 출신으로, 고구려 출신 번장
고선지에게 욕을 한 것으로 유명한
부몽영찰이다.
[29]
특히 숙종은 아버지 현종의 병문안을 자주 갔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병문안도 황녀들이 대신 갔을 정도로 병세가 심해졌다.
[30]
현종도 정치력이 뛰어나고 나름 전쟁터에서 실전으로 단련된 군인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든 데다가 계속된 정치투쟁으로 이때 건강이 얼마나 악화되었던지 숙종의 선처로, 각지에서 바친 진상물로 만든 산해진미들 중에서 현종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를 해서 보내 주었지만 현종은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31]
이는 현종이 악기를 잘 다루었고 취미로 악기 연주를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32]
《신당서》에 따르면 홀로 있을 때 자장(군진에 소속된 장교 중 소장급으로, 요즘으로 따지면 잘해야 중대장ㆍ대대장쯤 되는 지위이다.) 학령전과 우연히 만나 참수당했다고 하며, 《통감》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킨 바이르쿠를 완파하고 승리감에 취해 경비병없이 홀로 돌아가다가 바이르쿠의 패잔병 일부와 우연히 조우하여, 공격받아 전사하고 그 수급이 자장 학령전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정말 이것이
측천무후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하북을 총공깽으로 몰아넣으며 유목민족 전체를 아우르던 위대한 가한의 죽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다.
[33]
빌게 카간은 독살당하기 전 매록철을 죽이고, 붕어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34]
토번의 첸뽀
치둑송첸이 왕권 강화를 위해 가르 가문과 톤미 가문을을 숙청하였다.
[35]
가르친링과 그의 동생 가르다고리가 자결한 뒤, 가르친링의 동생 가르찬파와 가르친링의 아들
가르궁린은 당나라에 투항하여 무측천으로부터 논씨 성을 하사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찬파는 죽고 가르궁린은 당나라의 명장으로 활약했다.
[36]
이렇게 정략적인 이유로 외국에 시집보내는 공주를, 중국에서는
화번공주라 불렀다.
[37]
이 건의는
토번의 뇌물을 먹은 양주 도독 양구의 건의에 의한 것이었다.
[38]
이에 상당히 다혈질이던 당현종은 기존의 농우 일대의 병력에 추가해 병력 100,000명과 군마 40,000필을 추가로 징병하고, 토번으로 친정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그만뒀다.
[39]
토번 조정에 당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40]
토번 측 기록에는 낙향했다고 되어 있지만 《자치통감》에는 암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1]
농서 이씨 황족이었지만 현종의 형제는 아니었다.
[42]
이는 검남절도사
장구겸경에 의한 것이었다. 토번 제국과 남조국 간의 연계를 차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43]
성을 지키는 토번군은 수백 명인 반면 당군은 사상자가 수만 명에 달했다.
[44]
등주는 그 이후 실업자가 늘어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45]
현종이
당륭정변을 일으켰을 때부터 함께 했다. 참고로, 이 갈복순은 명장
곽자의의 외사촌이었다고 한다.
[46]
선우중통은 남조 정복 실패를 승전으로 허위 보고했고,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져 결국 절도사직에서 파면되었다.
[47]
당군이 강압에 못이겨 출전했고, 남방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두 차례의 전쟁 중 두 번째로 발생한 전쟁에서는 양국충이 이밀로 하여금 남조를 공격하게 했으나 패배했고, 이밀도 죽고 말았다. 양국충은 이를 승전으로 허위 보고했다.
[48]
당륭정변 및
선천정변
[49]
송대 이후의 중국에서는 묘호가 아닌 시호를 따온 당명황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이는 송태조 조광윤, 송태종 조광의 형제의 시조인
조현랑이 황제로 추존되어 '현' 자가
피휘되었기 때문이다.
[50]
이란계 백인 민족으로 상업에 능했다고 한다. 오늘날
타지키스탄의 소수 민족인 야그노브인이 이들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
[51]
신파무협의 거장
양우생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백발마녀전의 등장인물 옥나찰의 이름인 예상이 이 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