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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위( 讓 位)는 군주가 퇴위하여 그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위를 물려받는 사람의 종류에 따라서 다른 단어를 써서 세세하게 구분[반정][선양][찬탈]하므로, 양위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에는 국왕에게서 왕세자로 정상적으로 왕위가 넘어가며, 쿠데타 등의 소동이 없는 평온한 경우에 한정하는 뜻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즉 양위는 광의의 뜻과 협의의 뜻이 다 공존하는 단어다.거의 모든 군주국들이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현대에는 평균수명의 증가와 더불어 고령의 군주가 자의로 후계자에게 양위하는 사례가 늘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재위하면 다른 노인들이 집에서 편한 여생 보낼때 온갖 관심과 국사행위에 끌려가는 일을 겪어야 하는데다가 어쨌든 상징적 국가원수더라도 나라의 상징인데 적당히 원숙한 정도를 넘어서 너무 늙어 있는 모습을 보이면 꿋꿋하게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상 보기에도 좋지 않고 국가 위신에도 좋지 않으니 일종의 은퇴의 의미가 된 듯. 96세까지 재위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괜히 대단하단 말을 들었던 게 아니다.[4] 또 그녀의 아들 찰스 3세가 괜히 불쌍하단 말을 들었던 것처럼, 너무 오랫동안 재위하면 후계자도 덩달아 너무 나이를 먹게 되므로 그 전에 일찍 양위해서 뒷말이 덜 나오게 하는 부분도 있다.
2. 한국에서의 양위
한국사에서 양위를 한 왕은 고구려 태조대왕[5], 신라 진성여왕, 고려 헌종· 신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조선 태조· 정종· 태종· 단종· 세조· 고종이 있다. 이 중 태조대왕은 양위사실 자체의 진위 논란이 있고 진성여왕은 후삼국시대의 개막을 막지 못해 신라를 망쳤다는 책임론으로 당대 강한 양위 압박을 받았던 정황이 드러난다. 고려 헌종과 조선 태조·정종·단종·고종도 일단은 자발적 양위의 모양새는 갖추었지만 정계 흐름상 양위를 강요당한 측면이 강해 스스로의 의지로 양위한 왕은 고려의 신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그리고 조선의 태종, 세조 정도다. 그나마도 알력다툼이 끼어있거나 세조는 양위한 다음날에 사망하였으니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양위한 왕은 충선왕과 태종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충선왕은 고려 왕 노릇보단 원나라 생활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양위한 것이고 태종의 경우 그냥 왕 노릇 그만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세자를 첫째에서 셋째로 갈아치우면서 새 세자가 왕으로 무난하게 즉위하게 하기 위해서 양위한 것이다.[6]사실 임금이 자의로 양위를 하겠다고 하면 주로 충성심 테스트 + 자신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금이 아직 실권을 쥐고 있는데 양위하겠다고 할 때 신하가 "예, 그러시죠" 하는 건, 왕에게 그래 잘됐다 너같은 왕 필요없으니까 이제 꺼져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으므로, 아주 훌륭한 역모죄가 성립한다. 과장 좀 섞인 우스갯소리로 대가리 조금만 늦게 박으면 그대로 역적이 된다. 예를 들어 양정은 세조한테 먼저 양위하시죠라고 양위를 권유했다가 처형당했다. 당연히 신하들은 "아니되옵니다", "불가하옵니다",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주상께서 강녕하신데 양위가 어인 말씀이옵니까?" 하며 석고대죄 모드에 들어갔고, 따라서 양위 이벤트를 펼치고 나면 임금의 권위가 올라간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신 당사자인 세자는 제일 앞장서서 자아비판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위신을 까먹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세자가 석고대죄 없이 양위를 받는다면 세자는 속으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던 불효자가 된다.
조선시대에 양위 발언을 자주 한 왕은 태종·선조·영조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원래 순서대로라면 왕이 되지 못하는 정통성에서 굉장히 불리한 왕들이었다는 점이었다. 태종은 당시 세자에게 선위하겠다는 쇼를 벌여 왕권을 강화하고 낚시에 걸려든 외척과 권신들을 숙청했고,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영조는 경종 독살설에 시달리는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양위 쇼를 반복했다. 당연히 이런 소동을 여러 번 겪은 세자들의 위신과 멘탈이 남아날 리가 없어서, 양녕대군· 광해군· 사도세자는 모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일탈에 빠졌으며 폐세자, 폐위, 임오화변 등의 엔딩을 맞았다.
그래서 진짜로 왕위를 넘겨주려면 세조의 경우처럼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거나 태종의 경우처럼 따로 신하와 비밀리에 협의를 마치고 넘겨줬다. 그리고 옥새와 관이 정말 세자에게 인계되면 그 때까지 궐에서 엎드려 통곡하던 신하들이 즉시 곡을 그치고 즉위 준비에 들어간다. 이제는 양위를 제지하는 게 진짜 새로운 왕은 필요 없으니까 꺼져라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말한 위신 실추 문제는 없던 일이 되고, 오히려 살아있는 군주에게 완전한 신뢰와 함께 왕위를 이양받았다는 점에서 강력한 정통성을 가지고 집권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양위까진 아니더라도, 세자 책봉[7]과 대리청정 역시 비슷한 효과를 냈다. 오늘날 대통령·수상의 재신임 거론이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유발한다.
3. 일본에서의 양위
중세 일본의 천황은 후계자에게 양위하고 상황으로서 인세이를 행하는 것을 사실상 관습으로 하였다. 그것이 전형으로서 확실히 굳어진 것은 시라카와 덴노가 인세이를 행한 뒤였다. 그 뒤로 꾸준히 천황은 양위 후 상황이 되어 양위 후 살기 위하여 마련된 고쇼인 선동어소를 짓고 살았다. 그러한 전통이 일시 단절되었던 것은 고쓰치미카도 덴노가 양위치 못하고 죽은 이후였다. 이 시기는 바로 그 유명한 오닌의 난과 메이오 정변이 있던 시기, 즉 센고쿠 시대 초기였다. 전국이 개막한 뒤 조정의 상황이 점차 악화되었기 때문에, 고쓰치미카도 이후의 천황은 양위의 의례를 하거나 선동어소를 지을 수가 없었고, 거의 그 생을 다함으로서 재위를 끝내게 되었다. 그러한 양태는 오기마치 덴노 때까지 지속되었다. 오기마치 덴노 시기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집권하여 키나이가 안정되었고, 조정의 재정도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였다.근대 이후의 일본에서는 황실전범을 제정하면서 양위에 대한 규정을 넣지 않아 양위가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과거 양위를 이용해 인세이와 같은 방식의 통치로 천황의 통치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이다. 패전 이후 천황의 정치적 권한이 완전히 제거된 현대에도 황실전범에 양위 관련 규정은 없는데, 이에 대해 궁내청은 2001년에 외압에 의한 퇴위나 자의적인 퇴위를 막아 천황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다만 황실전범에 양위 규정이 없을 뿐 황실전범이 명시적으로 양위를 막는 것은 아니라, 2019년에 있었던 아키히토 상황의 생전 퇴위는 아키히토에 한정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4. 기타 창작물에서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4에서는 마왕 엔딩을 볼 경우 마왕이 딸[8]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겨울왕국 2에서는 엘사가 안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정령이 된다.
한국 대체역사소설에서는 군주 주인공이 잘만 쓰면 정치적 불리함을 곧바로 뒤엎을 수 있는 희대의 절초 취급을 받는다.
[반정]
왕위계승대상자가 국왕의 혈족은 맞으나, 왕위계승순위에서 멀거나 더 정통성이 높은 왕위계승자가 따로 있는데 이걸 물리치고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다. 쉽게 말해서 왕족이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선양]
왕위계승대상자가 국왕의 혈족이 아니거나 매우 관계가 먼 경우를 말하며, 국호가 바뀌는 등 사실상 왕국 자체가 무너지고 새 왕조가 수립되는 경우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타인이 권력을 얻어서 원래 국왕을 몰아내는 것을 형식 좀 차리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찬탈]
선양과는 달리 그냥 국왕을 바로 단칼에 죽여버리고 즉위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국가멸망사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양위, 반정, 선양 등으로 오른 국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하적 의미로서 해당 승계를 찬탈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4]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도 형인
에드워드 8세에게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5]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국양왕도 양위를 했다는 설이 있다.
[6]
양녕대군은 태종 4년부터 14년 동안 태종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세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동안 '예정된 다음 국왕'으로서 그의 영향력이 여기저기 있는데다가 폐세자만 했을 뿐 멀쩡히 살려놓기까지 했는데, 태종이 급사라도 한다면 (실제로도 양위하고 4년 뒤에 사망했다) 세자가 무난하게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리 양위해서 왕으로 자리를 굳히게 하는 편이 좋았다. 사실 혼란기인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미리 넘겨두는 경우가 많았으니(고대 로마 제국이나 중세 프랑스·신성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보면 후계자를 공동 왕으로 미리 즉위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 전국시대엔 후계자에게 미리 당주 자리를 넘기고 자신은 은거자로서 뒤를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급격한 세자 교체 상황에서 태종이 정답을 고른 것이라 볼 수 있다.
[7]
선조(
광해군 건저 파동)·
숙종(
장희빈의 소생
경종과 관련된
일련의 정치파동) 등이 대표적이다.
[8]
친아버지가 마왕, 어머니는 인간이며 마계와 관련된 엔딩들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