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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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향년 ?세)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629년 10월 ~ 1632년 7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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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슈테판 7세 톰샤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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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슈테판 9세 톰샤 | ||
자녀 | 라두 12세 | ||
가문 | 톰샤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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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56대 보이보드.2. 생애
몰다비아 보이보드 슈테판 7세 톰샤의 사생아이다. 이복 형제로 몰다비아 보이보드 슈테판 9세 톰샤가 있었다. 다만 당대의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 상인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1629년 10월, 그는 오스만 제국 관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고 알렉산드루 4세 일리아슈를 밀어내고 왈라키아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이후 자기가 뇌물로 지출한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훨씬 더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걸로 충족되지 않자, 그는 보야르들에게 나머지 금액을 자비로 지불하도록 강요했다. 여기에 그리스에서 왈라키아로 이주한 이들에게 막대한 권리를 부여해, 보야르들의 반감을 샀다.1630년, 보야르들은 트란실바니아 공 라코치 죄르지 1세에게 레온 톰샤를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레온은 라코치에게 서신을 보내 왈라키아를 공격하지 말 것을 청했으며, 1631년 7월 귀화하지 않은 그리스 이민자들을 왈라키아에서 내보내는 법령을 발표하고 새로운 세금을 취소하며, 보야르와 사제들에게 모든 세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내리는 등, 보야르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632년 트란실바니아군은 왈라키아를 침공해 레온 톰샤에게 반감을 품은 보야르들과 연합했다. 하지만 얼마 후 부쿠레슈티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레온 톰샤를 지지하는 군대가 승리했고, 트란실바니아군과 그에게 반기를 들었던 보야르들은 해외로 도주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궁정은 레온 톰샤의 무능 때문에 분란이 일어났다고 여기고 1632년 7월 레온 톰샤를 폐위하고 라두 11세를 왈라키아 보이보드로 선임했다. 이후 레온 톰샤는 코스탄티니예로 이송되었고,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생전에 라두 12세를 낳았다. 라두 12세는 1664년 12월부터 1669년 3월까지 왈라키아 보이보드를 역임했다.